휴거에 대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글/김병덕 목사
데살로니가전서4:15-18절을 보면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휴거-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휴거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거의 거의 모든 교회가 이 휴거에 대해서 찬성을 하고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두가 이 휴거에 대해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휴거라는 말이 누구에게서 나왔습니까? 그것은 바로 종말론 자들에게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성도는 종말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꼭 이 휴거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마치 휴거가 있을 것같이 기록이 되어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참고자료보기=☞제수이트가 만든 휴거신학(神學)
과연 이 세상에는 휴거가 있을까요? 아마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것 자체로 이단이라고 주장을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설교는 읽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거의 모두가 휴거가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반대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휴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주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믿음이 있는 성도가 영접을 받아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서 주님과 함께 천년 왕국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서로 주장합니다. 한쪽에서는 환란 전 휴거라고 하기도 하고 또 한 편에서는 환란 후 휴거라고도 하고 있고 또 다른 편에서는 환란 전에 휴거가 있는데 이 환란 기간 동안 믿음을 지킨 자들이 나중에 휴거가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니까 두 번의 휴거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장난을 합니다. 공부를 했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시대 교인들이 이쪽으로 휘둘리고 저쪽으로 휘둘리고 있는 그런 형국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모든 사람들이 후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환란 전 휴거냐 아니면 환란 후 휴거냐를 논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휴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거의 이단적인 사상으로 몰라 부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보기=왜 휴거가 성경에는 없을까?
그리고 휴거를 기다립니다. 이 시대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자기들이 휴거를 당해야 하는데 휴거를 당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휴거를 당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행위를 강조를 하기도 하고 또 휴거를 기다리려면 깨어 있어야 하는데 매일 새벽 기도도 나와야 하고 또 예배에 참석을 해야 하고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들로 또 교회에서 어떤 행위를 잘 해서 주님께서 오실 때 공중에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휴거에 근거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휴거라는 직접적인 단어는 없을지라도 사람들은 당연하게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휴거를 당하려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당장 내일이라도 오시면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표본에 맞는 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휴거를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또 환란 후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피난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피난처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누구는 내가 피난처를 알고 있다 환란이 있을 때는 거기로 피해 있어야 환란이 끝나고 나면 주님께서 공중에서 자기들을 영접해 주실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피난처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주 열심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난처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환란이 시작을 되면 자기가 그 피난처로 인도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열심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가 어떤 징조가 보이면 우리는 그곳으로 다 피하면 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이 휴거로 인하여 여러 가지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환란 전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은 양심적입니다. 그러나 환란 후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100% 율법주의자이고 또 그들은 그 휴거를 통해서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휴거를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행위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휴거라는 것을 가지고 교인들을 겁박을 하면서 환란 기간 동안에 너희가 그래도 피난처에 들어가 있으려면 지금 행위를 잘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란 기간 동안에 살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그래서 전기, 물, 비상식량, 등 기타 자기들이 환란 기간 동안에 있어야 하는 모든 생필품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심지어는 백여 명씩 그룹을 지어서 칠년 환란이니 삼년 반 환란이니 하면서 그 환란이 지나가기 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좀 황당하지 않습니까? 이 지구에 환란이 닥치는데 어디 피할 곳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자체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며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람으로 생각을 합니까? 또 사단을 우리 인생으로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숨을 곳도 없고 설령 숨을 곳이 있다 해도 그곳에서 환란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환란이 준비를 해서 숨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이야기를 하면 육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과 육을 분별을 못하고 있는 하님한 사람들이 환란을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 가를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육의 싸움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면서 타임캡슐을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원자폭탄이 터져도 끄떡없이 그 안에서 몇 년 동안 생존을 할 수 있는 방주를 짓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그리스도, 사단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난 가를 너무 모르고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꽤나 똑똑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휴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분명한 것은 이 휴거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살아 있는 자들 중에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들이 당하는 것을 휴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휴거를 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이 오실 때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다면 휴거가 있을 것이고 만약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면 휴거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휴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이전에 주님께서 오실 때 과언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노아의 때를 보겠습니다.
창세기6: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지구의 심판입니다. 물론 이때는 지구 전체를 멸망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 에덴에서 쫓겨나고 이제 사람들이 번성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수명이 거의 1000년 까지 살다 보니까 사람들은 지적으로도 뛰어나고 하나님에 대해서 잊어 버리지를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때다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 한번은 바로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 인류를 멸망 시키셔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에게 은혜를 베풀어 에덴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하고 인류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실 수 있기 때문에 아담이 죽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수 없어서 죄를 지어 전연 죽어야 하는 아담에게 은혜를 입히고 그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하고 그 육체가 죽는 것으로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번성을 하시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여대를 지나면서 인류를 급속하게 타락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타락을 했다고 하니까 도덕적으로 타락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의 도덕은 최고의 의인이나 최고로 악한 사람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인생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큰 차이로 보일지라고 하나님께서는 어차피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타락을 해서 노아 홍수를 통해 인류를 멸망 시키셨습니까? 그렇다면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예정 하셨다는 말씀과 전혀 배치가 되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은 도덕적으로 타락을 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첫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을 너무도 잘 아셨기 때문에 만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경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오셨습니까?
그리고 이미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들의 죄를 지고 가시게 하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실 것을 이미 예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노아 때 인생들이 죄를 지었다고 멸망을 시켰다고 생각합니까?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이미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는 그 자손들이 죄악의 종자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해서 그 후에 탄생이 된 인류의 모든 사람은 다 죄악의 종자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뻔히 죄악의 종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는데 그 죄가 있다고 해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인류를 거의 다 멸망을 시키셨겠습니까?
예표입니다. 구약은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인류가 또 불로 반드시 멸망을 당할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과연 의인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노아의 홍수 당시에 이 세상에 의인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6:7-92절을 보면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면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죽이시기도 작정을 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왜 있었는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의인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물로 멸망을 시키고 있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해서 지구에 인류가 번성을 했는데 노아 때가 되니까 벌써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안 믿었겠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담이 범죄 해서 에덴에서 쫓겨난 것을 알고 또 에덴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에 다시 에덴에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아주 잘 믿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의인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의인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구에 종말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의인이 없을 때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할 자들을 생각하시면서 노아와 그 가족에게 은혜를 주셔서 인류를 보존케 하신 것입니다.
지구에 의인이 없었습니다. 그때 인류 모두를 멸망시킬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그 얼마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멸망이 될 때에는 의인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럼 이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어떠했는가를 보겠습니다.
창세기18:32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이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을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을 생각해서 그래도 그 안에 의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을 시키시려합니까 하면서 묻고 있습니다.
의인 오십을 말 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의인 오십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성적인 눈으로 볼 때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의인 오십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십니까? 하면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물어 봅니다. 의인 사십 오명이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습니까? 의인 사십이 있어도 멸망을 시키시겠습니까? 의인 삼십이 있어도 멸망을 시키겠습니까? 의인 이십이 있어도 멸망을 시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말을 할 때마다 의인이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인 십 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시 의인 열이 있으면 멸망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시니까 아브라함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 세상이 불과 유황으로 멸망할 것을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과 그 가족을 살리셨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그 가족을 구원해 주신 것이지 실제 소돔과 고모라에는 다 멸망을 받아야 하는 사람밖에는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과연 이 지구 안에 의인이 있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휴거- 의인이 있어야 휴거가 될 것 아닙니까? 요한계시록에서 환란을 당하는데 남은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해석을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 마치 환란 전이나 환란 후에 휴거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환란이 과연 언제의 환란이냐 하는 것도 사실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남은 자들이 회개를 해서 들림을 받았다는 말씀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지상에 성도가 있다는 말씀이 있는 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볼 때 바로 보아야 합니다.
누가 회개를 합니까? 이미 요한계시록에서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부을 때 이 세상에는 회개를 하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하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휴거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어디에서는 살아 있는 자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 한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누가 끌려올라 간다고 하는지 그러 말씀이 없는데 왜 휴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휴거를 근거할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재앙임 임할 때 이 세상에 성도가 있다는 말씀도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순서대로 보면 안 됩니다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순서에 의해서 마치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순서대로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어느 것은 순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은 전혀 순서와 상관이 없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어디에 칠년 환란이 있고 어디에 삼년 반 환란이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설령 그런 말씀이 있다 해도 성경은 비유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휴거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면서 한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마지막 종말의 때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휴거가 되겠습니까?
저는 휴거에 대해서 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교회사를 통해서 본 휴거론 자들은 다 율법주의로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휴거론을 주장하는 자체가 행위를 강조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바로 이 휴거론이 잘못 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도 합니다. 더 확실한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8:8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재판장의 과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한 과부가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재판장을 매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재판장이 과부의 말을 무시하다가 너무 찾아와서 귀찮게 하니까 그 원한을 풀어 준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원수가 무엇입니까? 의문에 쓴 율법이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원수로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재판장의 비유를 들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과부를 비유로 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간청을 하면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원한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간청을 하는데 원한을 풀어 주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당연합니다. 정말로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매일 주님께 찾아와서 기도를 하고 간청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간절히 바라는 이 과부를 비유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선물로 받을 것인가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속히 원한을 풀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한을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원수가 되는 의문에 쓴 율법을 폐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천국을 바라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습니다. 인자가 다시 올 때에 세상에 이런 과부가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성도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은 넘쳐 나고 교회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많은 것 같이 보이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종말에 대한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이 세상에는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사실은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명심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휴거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성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 수십억명이 있어도 성도가 단 한 사람이 없다면 휴거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미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노아의 홍수를 보여 주셨고 또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의인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는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있다면 주님께서는 절대로 오시지 않습니다. 종말이라는 의미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 멸망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키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휴거가 된다는 말은 성경을 오해를 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마가복음13:28절을 보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았습니다. 잎이 무성하면 당연히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해서 말라 죽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이 무화과나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잎이 무성해서 정말로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보이는데 그 안을 보니까 열매가 하나도 없어서 저주를 받아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종말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잎은 무성합니다. 보이에는 너무 좋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너무도 풍성하게 많이 있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열매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을 성도는 없고 다 종교인으로 전락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다시 오실 때 믿음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이미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없는데 어떻게 휴거가 됩니까? 물론 성경에는 마태복음이라든지 여러 곳에서 휴거가 있는 것 같은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모르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들도 휴거를 직접적으로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 오해를 하고 휴거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은 이유는 이 세상에 그래도 의인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종말이 오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가 되면 이 세상에 의인이 사라지고 그때는 율법의 행위로 무화과나무와 같이 교회가 아주 무성하게 보이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취해 모두가 천국에 간다고 노래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이 말씀이 문제입니다. 휴거에 가장 영향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데 자는 자들이 먼저 부활을 하고 난 후에 살아 있는 자들이 휴거가 된다는 말씀과 같이 보입니다.
공동번역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말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살아 남아 있다 해도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결코 먼저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살아남아 있는 자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아 있다 해도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결코 먼저 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어느 번역이 맞다 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번역에는 분명히 우리가 살아남아 있다 해도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저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말씀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면 살아 있는 성도가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멸망을 시키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굳이 환란을 주어서 믿음을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이야기입니다.
믿음을 내가 지킵니까? 내가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믿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내 안에 성령이 임하셔서 확신을 주는 것이지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환란을 통해서 우리 믿음을 시험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말로 성령을 시험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줄 모르고 이 시대 휴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휴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는 성도가 살아 있을 일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진리가 사라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존재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에 땅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다 재앙을 내립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일곱 대접의 재앙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마치 살아 있는 자들이 있어 그들이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을 하고 난 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것 같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데살로니가서를 기록한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에 초대 교회는 너무도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잔인한 방법을 통해서 성도들이 로마의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서 정치적이 목적에 의해서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다는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11절을 보면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대로 오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까 정말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곳곳에서 주님께서 금방이라도 오실 것 같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 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사도 들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위로입니다. 그들을 위로를 해 주었어야 합니다. 내일 죽을지 모르고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들이 위로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부활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도들은 죽은 후에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너무 힘들게 고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빨리 오실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해 주었어야 합니다. 바로 이 말씀이 위로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을 말씀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말씀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님이 당장이라도 오실 것을 위로로 해 주다 보니까 그럼 살아 있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그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너희는 공중으로 바로 들림을 받는다고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공동번역. 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위로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부활을 믿는데 주님이 안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도적같이 오시는데 그런 내일 이라도 오시면 그럼 살아 있는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말에 사도들이 위로의 말로 부활이 된 후에 너희는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과 같이 평안한 교회가 아닙니다. 언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사자 밥이 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고 또 주님이 빨리 오시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뜻으로 위로를 하는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은 두 번 있습니다. 첫 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천년 왕국을 살기 위해서 부활을 합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이 끝나고 둘째 부활이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마지막 부활의 모습입니다. 만약에 휴거가 있다면 첫째 부활을 말씀을 하고 난 후에 반드시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성도들이 어떻게 휴거가 되는 가를 말씀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그 말씀이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휴거 없습니다. 이미 믿음이 있는 성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절기를 예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절기에 수장절이 있습니다. 곡식을 모아 창고에 넣고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 후에 다른 절기가 없습니다.
성도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종말에 대해서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휴거가 있다는 말 자체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말입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거짓 종말론에 미혹되지 마시고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데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첫째 부활에 참여를 하는 성도입니다.
어떤 모양이 될지 어떻게 첫째 부활에 참여를 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첫 째 부활을 하는 성도입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말은 이단적인 말입니다. 그런 말에 미혹되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평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첫째 부활에 참여를 해서 천국에서 영원한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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