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으로 본 안수에 관한 연구 /주준태목사
목회적 차원에서 신비주의적 안수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 송상절 박사의 견해
중국의 세례 요한이라고 불리우는 송상절 박사(1901~1944)의 안수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자. 송 박사가 복음을 전할 때에 평도란 곳에서 18년간 중풍병자로 있던 로(Lo)부인이 안수기도를 받고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가 다시 제남을 방문했을 때 그곳 신자들은 송 박사를 영은을 받은 전도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송 박사는 이러한 외부적인 체험보다도 증거하는 생활을 강조하였다. 송 박사는 Surabaya를 떠나기에 앞서 병자를 위한 기도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3일 이상 참석한 사람만 목사의 증명을 받아가지고 오게 하였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만원을 이루었다. 야고보서 5:4~16을 읽고는 자신을 가리키면서 “여기 장로가 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내 손에는 어떤 마술적인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게서는 아무 것도 바라지 마십시오. 다만 내 곁에서 계시는 분만을 바라보십시오. 나는 그 분의 수종자입니다”고 말했다.
다시 마가복음 16:18을 인용하면서 자기가 항상 병자를 고쳐줄 믿음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중국에서 내가 처음으로 병자를 위하여 기도했을 때 나는 기도를 끝내고 아멘이라고 하고서도 차마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들으셨을까? 내 나름대로의 대담한 추축은 아닐까? 단순한 신앙을 가진 이들 앞에 돌팔이 의사처럼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오, 이러한 의심을 품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헌데 믿을 수 없는 능력이 나타났고 장내는 나음을 받은 병자들의 찬송과 감사로 진동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러분이 다 나을 것이라고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병자를 다 고쳐 주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계셨을 당시에도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미천한 종들은 더하지 않겠습니까?” 병자들은 강단으로 나왔다. 송 박사는 무릎을 꿇고 그들에게 기름을 바른 후 병마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했다. 오후에는 고침을 받은 자들의 감사와 간증회로 모였다. 설교자와 교인들 사이에는 부드러운 애정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복음으로 그들을 낳은 영적 아버지였다. Surabaya에 남은 중국 신자들과 선교사들은 송박사가 다시 돌아 오겠다는 약속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2. 로버츠(Oral Roberts) 목사의 견해
20세기 미국의 유명한 신유부흥사 로버츠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은 신유의 체험과 능력을 말하고 있다. “내가 구원을 얻으려고 기도하였을 때 나는 내 발에 성령의 능력을 느꼈다. 그 능력은 다리를 통하여 천천히 펴져서 삽시간 후에 나의 온 몸에 충만해졌다. 나는 내 얼굴이 빛나기 시작함을 느꼈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멘시 목사님이 나의 병을 위하여 안수기도하는 동안 그 어떤 힘이 나의 폐를 찌르자 온 몸에 나는 통증을 느꼈다. 문득 아름다운 빛이 나를 둘러 싼다고 느낀 다음 순간 나는 깨끗이 나았으며 나의 폐병은 에이다 읍에 있는 병원에서 X-광선으로 검사해본 결과 완쾌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내가 죠지아주의 어느 오순절 성결교회를 목회하고 있을 때 그 교회의 집사가 발에 무거운 전동기를 떨어뜨려서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 나는 갑자기 우러나오는 측은한 생각으로 그 이상의 별다른 생각 없이 그의 상한 발을 만지면서 진심으로 몇 마디 기도를 올리고 일어난 순간 그의 비명은 그치고 그 발은 완전히 고쳐져 있었다”
그 이후 오랜 동안 나의 주의를 집중시킨 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그것의 행사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님 자신과 사도들은 사람들의 영혼, 마음 육신을 모두 구원하는데 능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의 구원을 심령적인 면에만 지나치게 치중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하루는 요한복음을 읽다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요 14:16)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얻게 되었다. 이 보혜사는 삼위일체 중의 한 위로서 예수와 동등의 속성과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성령이시다. 이 보혜사는 장차 사도에게 있어서 예수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즉 성령의 나타나심은 곧 예수의 육신이 더욱 널리 나타나심과 같은 것이다. 나는 12년 전에 성령의 세례를 받았으나 이 오순절의 경험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비로소 그때에 주님께서는 내가 얻은 바 성령의 충만은 곧 예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과 같은 것임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의 활동기록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사도행전은 아직도 신령한 의미에 있어서 지금도 하나님의 성도들의 피와 믿음 그리고 노력을 통하여 계속 기록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대학강의 준비에 바쁘던 시간에 나의 일생에 가장 큰 발견을 하였다. 그것은 요한 3서 2절의 말씀이었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인생으로 하여금 행복되고 정상적이며 강건하여서 영육간에 잘되는 생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참된 근거를 성경에서 발견하였다. 나는 인간이 영혼과 마음 그리고 육신의 세 면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다음 사도행전 10:38, 요한복음 10:10 등의 기록들을 통하여 나는 하나님은 선성이시며 마귀는 원래 악성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에게 악성이 존재할 수 없으며 마귀는 본성이 악한 것이다. 나는 나의 평생에 처음으로 진실한 믿음의 기반을 얻었으며 의심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해산되었다. 이제는 조금도 하나님의 선성, 사랑, 목적 등에 대해서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앓는 사람을 볼 때면 그 사람이 결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악한 마귀에게 사로 잡히거나 병들게 된 것이 아님을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병자가 사단의 억압에 의해서 번민과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내가 그 병자 앞에 서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의 영혼과 육신에게 마귀를 떠나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믿기 때문에 병자의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만 하면 병자가 고침을 받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뜨거운 충동을 그때 느꼈었다. 나는 온 세계를 이 불 속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그때부터 유지해 왔다. 그 뒤에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과 육체에 직접 하나님의 구원의 힘을 감각하므로써 분명히 증거되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내게 말씀하셨는데 “지금부터 네 오른손이 나의 능력을 나타내리라”는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내 오른손에 하나님의 임재의 실제적인 감촉을 느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내 오른손에 나타나는 순간마다 병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때때로 신유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드릴 때 나의 오른손에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지 못하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엔 청중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이적의 이루어짐을 보지 못하다가도 한번 하나님의 힘이 나의 오른손에 감축되기만 하면 모든 청중이 곧 신유의 능력이 임하셨음을 깨닫곤 하였다. 나는 전도할 때에 항상 행동의 선후를 가린다. 멸망에 처한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가장 거룩하고 놀라운 이적인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먼저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들의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전에는 결코 병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나의 믿음은 언제든지 복음을 설교한 직후가 가장 강하였다. 신유는 내 마음을 하나님께 접근시켰다. 그리하여 신유의 진리를 통하여 나는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의 심각한 번민 끝에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전도는 예수께서 행하신 바와 같이 신유의 능력으로서 전파한 말을 입증할 이적과 증거를 보여주는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3. 비판
송 박사와 로버츠 목사의 기록들을 보면 신비주의 안수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보통으로 하는 기도보다 안수하고 기도함으로 더욱 확실한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또 병자를 보고 이 병은 하나님께서 주신 병이라고 한다든가 병이 낫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믿음을 가지고 안수기도하는 것이 훨씬 능력있는 기도가 될 것이다. 반면에 신비주의 안수는 다음 세 가지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첫째, 지나치게 성경을 문자대로 단순히 해석함으로 이 병은 반드시 나아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다거나 안수하는 행위와 하지 아니하는 행위를 확대 해석하여 신앙적인 것과 비신앙적인 것으로 대립시키는 변질된 이론적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결국 안수하는 행위자체에 어떤 신앙과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 되고 만다.
둘째, 혹 안수기도하여 은혜를 받는 경우 안수한 사람이나 안수받은 사람에게 생기는 시험인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에 안수자를 신격화하고 그 자신은 은혜자로서 자처하게 되어 오만에 빠지게 된다. 이점에 대하여 칼빈이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다. 안수받은 자는 그때로부터 안수가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문제가 있을 때마다 각종 안수를 받으러 다니게 되고 마침내 안수가 아니면 신앙생활을 부지하지 못하는 안수주의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은혜와 축복을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순종으로 받는다는 위대한 진리가 안수라는 기도의 한 보조적인 방편 때문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능력 있는 기도는 있어도 안수의 능력이란 말은 없으며 안수의 능력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일은 더욱 없다.
셋째, 대체로 신비주의 안수론자들은 자기들의 경험을 과대하게 극적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의 계시, 음성, 환상 등을 별다른 주석 없이 사용함으로 많은 사람을 현혹케 한다. 육체적 체험 가운데 성령이 임하고 능력이 나타난다는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물리적인 힘으로 생각하는 영적 감상론자가 되는 것이다. 신비주의 안수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는 결국 그 배경이 되는 신학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수 문제에 있어서 올바른 성경적, 신학적 원리를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과 함께 목회적 지도와 보살핌이 필요한 것이다.
4. 결론
안수는 초대교회의 특수한 형편 가운데 유용하게 사용된 은혜의 방편이었으나 지금은 개척시대가 아니므로 임직의식의 상징으로만 사용할 수도 있다는 해석은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많다. 필자는 안수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 성질을 지적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자연성(自然性)
안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자연스런 표시로서 그 절정을 예수님의 안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손이란 말이 이러한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성도들이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형제의 사랑과 친절을 가지고 주 앞에서 서로 짐을 나누어지고 함께 연합한다는 상징적인 행위로서 안수기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관습이라 하겠다. 기도에 따르는 자연스런 신앙적 행위로서의 안수를 초보적이고 유치한 것으로 매도해 버릴 때 나타나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 다양성(多樣性)
성경에 나타나는 안수의 양식은 여러 가지인데 오직 임직예식에만 그리고 반드시 머리 위에만 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희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안수를 꼭 성경이 말한 그대로만 행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므로 안수는 그 정당한 성경적 원리에 따라 현대교회가 요구하는 대로 자유롭게 그 시기, 장소, 방법을 선택하여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3) 특수성(特殊性)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수는 하나의 풍속이었고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하나의 분위기였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꼭 그대로 해야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으나 현대교회는 안수를 귀중한 교회적 유산으로서 엄숙하고 특별한 기도의 방법으로 보존해야 할 것이다. 안수를 교회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공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정당하게 사용한다면 안수의 유용한 사용은 어린이, 병약자,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정신적 경험과 심리적 육체적 치료를 줄수 있을 것이다.
- 필자가 1976. 11. 30 고려신학대학원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논문이 8년 후에 “월간목회 ’84년 11월호” P.59~65에 요약, 게재되었다. 칼럼에서는 각주를 생략하였다 -
84. 11 ; 월간목회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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