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종들도 기사와 표적들을 나타낸다는데, 하물며...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시고, 말씀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기사와 표적들을 나타내 주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기독교는 잘못된 신비주의를 배격하고 그러한 것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사탄도 기사와 표적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등의 부정적인 말들을 더 많이 강조함으로써 참된 주님의 교회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하나님의 기사와 표적 그 자체까지도 터부시하게 만들어 가는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런 사람들이 흔히 강조하는 말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성경은 기사와 표적을 항상 하나님의 역사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거짓선지자나 거짓그리스도, 사탄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낼 수 있다. 기사와 표적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일 수 있지만, 사탄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마24:24). 기사와 표적과 같은 가시적인 현상을 보고 추구하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2:9~10)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권능과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상과 같은 말들이 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이고 또 사실상 맞는 말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의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이 기사와 표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도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상에 일예로 소개한 말들과 같이 어떠한 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말하지만 성경의 어느 한 쪽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 성경적으로 옳지 않은 말이다. 성경적인 복음이란 성경적인 복음의 양면성을 똑같이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성경은 이상의 구절과 같이 거짓선지자나 거짓그리스도, 사탄도 기적과 표적을 나타낼 수 있기에,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일 수 있지만, 사탄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음을 말씀하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는 분이시며, 참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사와 표적이 따라온다는 것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래에 소개되는 성경말씀들을 읽어보라. 기사와 표적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며, 기사와 표적이 함께 하지 않는 사역자는 참 하나님의 사역자가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히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고후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행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롬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초대예루살렘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했던 까닭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냥 입의 말로만 증거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따르는 하나님의 기사와 표적이 함께 하였기 때문이었고 사도바울을 비롯한 모든 사도들의 복음증거사역이 힘 있게 전개되었던 까닭도 주님께서 주시는 기사와 표적이 함께 하였기 때문이었다.
(행 2:22,42-47) 『[22]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물론 말세가 될수록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고, 수많은 이단들이 나타나서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고 하고(마24:24), 악한 자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살후2:9-10)시킬 수 있기에 그러한 것들을 경계하는 것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히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고후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이상의 말씀들과 같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기사와 표적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성경적인 진리의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사와 표적이 함께 한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이 시대에는...
거짓된 기사와 표적으로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들이 많아서 문제라기보다는, 진리의 성령님 안에서 성경적인 참된 복음을 증거 하기에 하나님께서 기사와 표적으로 확증해 주시는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 너무도 적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사탄을 힘입는 거짓된 선지자들이 나타나 거짓된 기사와 표적을 행할까봐 두려워하고 그러한 것을 경계하는 사역보다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힘입고 성경적인 참된 복음을 증거 함으로 하나님의 기사와 표적을 더 많이 나타내는 사역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 아닐까?
구더기를 경계한답시고 된장 자체를 못 만들게 하는 것보다는,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구더기는 그 때 그 때 들어낼지언정 몸에 좋은 된장을 만드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인 것처럼 사탄적인 일들을 경계한답시고 기사와 표적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보다는 성령님 안에서 기적의 복음을 선포함으로 기사와 표적이 더 많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글과 설교는 “사탄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낸다.”는 식으로 사탄을 예찬(?)하는 것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토록 동일하시며 우리에게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주신다.”는 식의 성경적인 것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역의 현장에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면 이상한 사역자가 아니라, 오히려 사역의 현장에서 기사와 표적이 안 나타나면 그러한 사역자야 말로 정말 이상한 사역자로 보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사탄의 종들도 기적과 표적을 나타낸다는데,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들이 기적과 표적을 안 나타낸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히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고후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전 4:19-20)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막 16:17-18)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아멘.
※이글을 비롯하여 이병천카페의 모든 글들은 출판예정의 글들로써 무단 전제를 금합니다. 필요하신 분은 출처를 밝히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신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신약의 이해 (0) | 2013.12.07 |
---|---|
[스크랩] 구속사적 설교 작성 (0) | 2013.12.07 |
[스크랩] 부흥과 치유를 맛보며 지옥에 떨어지는 목사와 교인들 (0) | 2013.11.06 |
[스크랩] 기독교인이 제사(祭祀)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0) | 2013.11.06 |
[스크랩] 문자적 성경해석의 중요성 (0) | 2013.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