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약

[스크랩] 문자적 성경해석의 중요성

수호천사1 2013. 11. 6. 18:18

문자적 성경해석의 중요성

[부제: 신천지의 미혹에 주의하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말은 1981년 한국불교 조계종의 정종이었던 성철이 했던 말이다. 중국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 나오는 “산시산 수시수 불재하처 (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부처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라는 싯구의 서두를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어수선하고, 불교계도 교권싸움으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며 정치계와 불교계의 지도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자 던진 말일게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참으로 단순한 말이지만 진리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산은 산이기에 산을 가지고 물이라 주장하면 안 되는 것이고, 반대로 물은 물이기에 물을 가지고 산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이치가 그러해야 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변질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절대 기준과 절대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기독교신앙의 절대기준은 성경말씀이다. 이 말에 대하여 토를 달 사람은 이단과 정통을 막론하고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의 똑같은 성경구절을 가지고도 각각의 교단과 교회,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여러 가지의 해석들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본문이 어떻게 그토록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 가능한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성경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해석에도 절대변하지 말아야 할 어떤 절대 기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인간언어의 제약을 받으며, 문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기록된 것이다. 물론 영적인 것을 의미하고 상징적인 것을 의미하는 성경구절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는 갈4:21-31, 마13:1-23, 단7:1-28 등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경본문 자체에서 그런 것들이 그 어떤 영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곧 바로 해석해주거나 그러한 의미를 규정해 주고 있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본문 자체가 규정해 주는 특별한 경우들을 제외하고, 성경은 1차적으로 그것의 문자적인 의미를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성경 66권은 각권의 저자와 주제들이 각각 다르기에, 동일한 단어이지만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서로 다른 단어지만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것들도 있다. 성경저자들 각각의 성향과 기록목적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한 성경의 한 단어가 갖는 의미를 66권 전체로 무리하게 확대시키고 획일화시켜서는 안 된다.

 

일예로, 마태가 말하는 “천국”(마4:17)과 마가와 마태 이외의 성경 기자들이 동일하게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막1:15,눅4:43,요3:3,행28:23 등)는 그 표현의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한 것이다. “천국”이라는 표현은 정통 유태인이었던 사도바울이 역시 유태인이었던 디모데에게 딱 한 번 사용한 것(딤후4:18) 이외에, 유태인들을 향한 복음서인 마태복음에서만 사용된 독특한 표현법인데, 그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마태자신이 밝히고 있고(마19:23-24), 사도바울도 유태인이었던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 디모데후서에서만 “천국”이라는 표현을 단 한 번 사용하였고 그 이외의 모든 서신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http://cafe.daum.net/gvlove0691/K3nD/935 참조).

 

이상과 같이 표현의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있는 반면에 표현의 방식과 단어가 똑같지만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른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동일한 단어인 “육체(헬. 사르크스, sarks)”라는 말이 갈라디아서3:3과 요한일서4:2에 사용되었지만, 갈라디아서3:3에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의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요한일서4:2에서는 인간의 영과 구분되는 “인간의 순수한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차이점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자체의 문맥에 집중해야 한다. 이단 신천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창세기 2:7에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기에 성경에서 말하는 땅은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고, 그렇기에 계16:1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땅’에 쏟는다.”는 의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성경자체의 문맥을 무시한 상태에서, 어떤 단어나 어구를 획일적으로, 잘못 적용하거나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계의 현실을 볼 때 많은 경우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그러한 성경해석의 기본적인 원리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안타까운 경우들이 있음을 본다.

 

일예로,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와 해석들을 소개해 보겠다.

 

# 무천년설: 문자적 1,000년을 부정하고 이를 우화적 또는 영적으로 해석하는 학설로, 천년 왕국이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세상 종국(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현세라는 견해

 

# 후천년설: 교회가 복음전파와 성령님의 사역으로 영적 번영을 이루는 시점으로부터 천년의 기간을 천년 왕국으로 보며, 그 이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는 학설, 1,000년이란 숫자를 어느 정도 문자적 숫자로 보며 현 세대의 종국에 가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교회가 왕성한 후 이 땅에서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참된 평화의 시대가 1,000년 동안 계속된다고 믿는 견해

 

# 전천년설: 1,000년을 문자적으로 취급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된 후 이 땅에 실제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 왕국이 건설된다는 견해

 

일반적으로 이단이 아닌 정통이란 칭하여지는 교회들이 이상의 세 가지 견해들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세 견해가 다 맞을 리는 없다. 세 가지 가운데 단 하나만 맞거나, 혹은 세 가지가 다 틀리고 그 외에 또 다른 진짜 의미가 있거나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고 그름의 진정한 기준이 되는 것일까? 상기한 바와 같이, 천년왕국을 말하는 계20장의 성경본문 그 자체가 그 본문에 대한 어떤 영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별도로 규정해주거나 해석해주지 않고 있기에, 1차적으로 성경의 문자 그대로 천년왕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본문자체에서 그것이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갖는다거나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보거나, 혹은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을 옳지 않은 것이며, 때로는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만큼은 교단과 교회들의 입장에 따라 매우 예민한 부분이기에 이 정도에서 그치고자 한다.

 

다만, 똑같은 하나의 본문을 가지고도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해석의 견해들을 내놓는 것이 가능하다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교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그냥 상징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거의 없다는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문자적 성경해석의 기초를 무시하고, 상징적인 해석들을 너무 쉽고 너무 너그럽게(?) 허용해주다보니. 어느 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재림의 사건들까지도 실제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로서 상징적인 의미들을 갖는것이라는 망언을 쏟아내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문자적인 재림과 천년왕국을 믿지 않는다. 재림이란 단지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라든지, 아예 역사적인 재림 같은 것은 없다는 주장을 피력한다. 많은 자들이 실제적인 지옥을 부인하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천국(하늘 나라)은 지상에서 행복하면 그곳이 바로 주님이 함께 계시는 천국일 뿐 내세 천국은 허상이라고 가르치기를 서슴치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승천도 모두 비유라는 주장을 펼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실로 통탄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라는 책망을 하셨는데, 이 시대가 과연 그런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즈음 교주 이만희가 보혜사성령이며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이단, 신천지교회가 기존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을 유린해 가고 있음을 본다.

 

수많은 교인들이 신천지에 미혹당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말씀을 해석하는 방법이 기존교회들과 별 차이가 없으나, 해석의 내용과 적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있다. 이단인 신천지교회는 기존교회의 성도들을 찾아가 성경공부를 하자고 유혹한다. 영적으로 갈급한 성도들은 성경공부라는 말에 혹하여 그들의 성경공부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성경전체를,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비유로 보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상징적 혹은 풍유적으로 해석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존교회에서도 그런 식의 설교와 성경공부들을 많이 해왔기에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해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그들이 이끄는 대로 얼떨결에 이끌려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예로 그들 신천지는 요한계시록 13장과 창세기 1장 등을 본문으로 다음과 같은 엉뚱한 해석을 제시한다.

 

“비유한 하늘과 땅과 바다는 무엇인가?

본문의 ‘하늘’은 선민(選民)의 처소를 말하는 것이며, ‘땅’은 믿지 않는 불신자

또는 배도자의 처소를 말하는 것이며, ‘바다’는 세상 사단의 거처를 말하는 것이다.

비유한 세 가지 처소 중 ‘하늘’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있는 장막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곳을 하늘이라고 한다. 사단은 세상에 속했고,

세상은 사단의 통치권 안에 있으므로(마 4:8-9, 눅 4:5-6, 엡 2:2 참고)

사단의 처소는 하늘이 아닌 세상 곧 ‘바다’라고 한다(단 7:3, 17 참고).

‘땅’은, 흙으로 된 사람이(창 2:7) 믿고 하늘의 하나님께 속하였다가 다시 육으로

돌아가 아담같이 흙에 속해 살므로, 땅은 배도자 곧 육체의 처소인 것이다.

사람이 같은 땅에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소속으로 인해 그 곳을 하늘이라

할 수도 있고 땅이라 할 수도 있으며, 바다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그 명칭을 ‘하늘이다, 땅이다, 바다다.’라고

비유를 베풀어 호칭한 것이다. 또 그 사람으로 인해 그 처소의 명칭이 달라진다...”

 

이상의 주장들은, 교주 이만희씨가 자기 자신을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바와 같이, 참으로 상식이하의 어리석고 무식하며 어이없는 해석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교회의 교인들 중 상당히 많은 교인들이 그러한 성경해석에 엄청난 감동을 받고 그들의 열열한 추종자들로 바뀌어져간다.

 

“‘하늘’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있는 장막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곳을 하늘이라고 한다... 사람이 같은 땅에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소속으로 인해 그 곳을 하늘이라 할 수도 있고 땅이라 할 수도 있으며, 바다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그 명칭을 ‘하늘이다, 땅이다, 바다다.’라고 비유를 베풀어 호칭한 것이다. 또 그 사람으로 인해 그 처소의 명칭이 달라진다...”는 식의 이상한 삼단논법에 홀려 미혹되고, 그동안 기존교회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송이꿀보다 더 단 말씀들이라고 극찬하며 신천지로 또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간다.

 

왜 이상과 같은 어이없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것일까?

 

그동안 한국교회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따르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성경문맥과 상관없이 설교자들 자신의 구미에 맞게 성경본문을 비유적, 풍유적, 자의적으로 마구 해석해 온 결과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에 한국교회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기본에만 충실했어도, 이상과 같은 이단 신천지의 비유적, 풍유적,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들을 때, 그것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미혹을 단호히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천지가 왜 이단이며 그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그들은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나 그 해석과 적용을 성경의 전후문맥과 상관없이 너무 주관적이고도 독선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예로 렘 31:27에 등장하는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라는 말씀은, 병행구인 겔 36:11의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이 말씀처럼 이스라엘과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돌이켜 본토로 돌아와서 사람도 짐승(가축)도 다시 부흥하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신천지는 이 구절을 들어서 이스라엘과 유다는 신약의 예수교회를 의미하고, 사람의 씨는 눅8:11에 나오는 하나님의 씨인 진리(생명)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요, 짐승의 씨는 가라지를 의미하는데 사탄의 씨인 비진리(사망)의 말이라고 해석하며, 알곡은 자기 밭(일반교회)에서 거두어져 알곡이 모이는 곳간에 들여져야 구원인데, 좋은 씨인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인 신천지교회가 알곡성도들이 모여서 구원을 받게 되는 곳간이며, 그렇기에 신천지로 와야만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라지가 되어서 단에 묶여,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펴고 있음을 본다. 말세에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고 떨어진다는 말씀(마24:15,29)도 성경에서는 야곱의 가족을 해, 달, 별(창37:9-11)이라 했기에 말세에는 사탄이 성전(일반교회들)을 점령함으로 그런 곳에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하고 어두워져 멸망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어둠의 시기에 인자와 같은 이가 천사들과 함께 와서 영혼을 추수한다는 예언의 말씀(계14:14-16)처럼, 인자와 같은 이만희가 그 추수군(신천지교인)들과 함께 그 밭(일반교회)에 예언대로 이룬 말씀대로 증거할 때 처음 익은 열매(계14:4) 알곡 신앙인(렘23:28), 택하신 자들을 천국 곳간인 시온산 12지파(계7:4)로 모으는 일이 있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신천지라는 해괴망측한 논리와 해석을 주장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같은 해괴망측한 논리 -성경본문의 문맥과 전혀 상관없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이상한 교리 -에 빠져서 신천지로 흡수되는 기이한 현상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이리 저리 인용해대니까 그것이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말씀으로만 신앙의 기준을 세우는 참된 가르침인 것처럼 사람들이 현혹되어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주장과 성경의 해석은 그 전후 문맥만 간단히 살펴보아도, 그런 것들이 전혀 성경의 가르침과는 무근한 이단사설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성경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은 단순히 성경구절을 인용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성경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단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성경말씀을 문자적으로 보지 못하고, 혹은 부분적으로 축소시키거나 확대하는 오류들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성경을 다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성경말씀을 그 전후문맥에 따라 정확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신중함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출처 : 이병천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글쓴이 : 이병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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