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가 인수한 참기름공장을 다녀와서
월요일 인천에 있는 참기름 공장의 개업 예배에 다녀왔다. 그 참기름 공장은 공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기계 두 대를 놓고 참기름을 짜는 소규모 참기름 가게였다. 그 공장은 어느 집사가 운영하던 자그마한 공장이었는데 갑자기 멕시코로 이민을 가게 되어 아는 선교사가 인수를 받게 된 것이다. 그 집사는 참기름 공장을 운영하면서 어느 지역의 선교에 이모 저모로 도움을 주어왔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공장을 인수하면 사역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그 선교사가 기도 끝에 인수하여 대충 정리를 해놓고 평소 알고 지내던 목회자 몇 분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다.
참기름 공장을 운영하게 된 선교사는 10년이 넘게 어느 지역 선교에 헌신해 왔는데 선교현지에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원래 사역하였던 지역의 선교에도 이모저모로 관여하고 헌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결정을 하고 참기름 공장을 운영하게 된 것은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사역도 하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선교 후원이 필요한 만큼 채워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서 생활비도 보태고, 사역비도 채우기 위해 자그마한 공장을 인수한 것 같다.
만약 내가 20년 전에 이런 일을 보았으면 그 선교사에게 비판을 하고 강력하게 만류하였을 것이다. 사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하였을 당시만 해도 교역자가 교회 개척을 하면 교역자는 물론 사모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상식이었다. 나나 내 친구들도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두 손 놓고 가족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보다는 차라리 노동이라도 해서 먹고사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된다. 그래서 그 선교사가 공장을 인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의논해 왔을 때 인수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선교사가 참기름공장을 운영하게 된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한국교회의 선교원동력과 저력에 비해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사역을 하고 있다. 80년대 만 해도 선교사는 적고 교회의 선교열정은 강해서 후원받는데 어려움이 적었고, 잘 알지 못하는 선교사에게도 후원하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선교사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데 비해 한국교회의 교세와 재정은 날로 정체 내지는 쇠퇴해 가고 있다. 그래서 새롭게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기왕에 후원하던 것을 중단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흔해 질 것 같다.
마침 개업예배 설교자가 선교사들을 돕는 사역을 하는 분이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선교사들이 중도에 철수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교사 사회에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예측하였다. 그분은 선교사들이 귀국하였을 때 숙소 문제나 병원, 특히 치과진료 문제 등 다방면으로 편의를 봐주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애환과 고민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선교사를 부르신 하나님은 선교사의 생활비와 사역비도 책임져 주신다. 그런데 현실은 어렵다. 수완이 좋은 선교사들은 차고 넘치게 후원을 받는가 하면 진실하고 성실하지만 수완이 좋지 못한 선교사들은 필요한 최소한도의 선교비를 후원 받기도 어렵다. 한국인은 원래 은근과 끈기가 민족성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좋은 성품이 사라져 간 것 같다. 그래서 선교사 후원도 꾸준하지 못하고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선교비 후원을 받아도 실제 필요에 비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교비는 고정되어 있거나 감소하는데 생활비와 사역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다 채워주실 터인데 뭘 걱정하느냐고 말하면 할말은 없다.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환경이나 문화에 따라 다르게 역사하신다. 선교사들도 변화된 현실과 문화의 페러다임을 읽고 그에 걸맞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백지수표와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부족한 선교비를 선교사들이 현지에서나 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달해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100% 자비량 선교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어떤 형태의 사역을 하든 후원은 받아야 한다. 동시에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파트타임 직업이나 사업, 장사를 하는 것도 고려해 볼일이다. 찾아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사업이 있을 것이다. 선교비를 충당하는 일을 하기 위해 본업을 소홀히 하면 안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선교사들은 부족한 선교비를 버는 것을 수치스럽거나 불신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언뜻 생각하면 선교사가 선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것을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텐트 메이커였지 않은가?
친한 선교사가 있다. 그는 파송교회에서 100만원 정도를 후원 받기에 생활비는 물론 사역비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는 사역을 왕성하게 하며 자녀 교육도 나름대로 잘 하고 있다. 그는 물론 사모와 아이까지도 선교지에서 올 때나 갈 때 보따리 장사를 하여 여비와 약간의 돈을 번다. 그냥 왔다 가는 법이 없다. 그 사모는 선교지에서 소규모 상업을 하고, 선교사도 필요한 선교비를 충당하기 위해 현지의 한인 네트웤을 활용하기도 한다. 누구나 그 선교사와 같이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기 전에 상업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의 선교비 부족 현상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발등의 불과 같이 되었다. 선교사들의 의식 전환이 요청된다. 말로만 바울의 텐트 메이커 사역형태를 운위하지 말고 부족한 선교비를 보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물론 하나님께 구하여 받겠다는 확신이 있는 선교사는 믿음으로 선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니면 생활 수준을 현지인의 눈 높이로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적은 선교비를 갖고도 생활하며 사역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심지어 선교비 한 푼 없이도 선교를 한 분도 있으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선교후원이 없다 해도 선교사역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선교비가 부족할 때 불평이나 좌절에 빠지지 말고 기도를 하든, 후원자를 발굴하든, 일이나 상업을 하든, 아니면 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계속 남을 것이냐 철수할 것이냐의 결정도 선교비 후원에 의존하여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남으라 하면 남고, 철수하라 하면 철수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선교비의 증감에 일회일비 한다면 선교사의 가슴은 병들고 말 것이다. 동역자들이여! 선교비의 증감에 초연하자. 동시에 부족한 선교비를 보충하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필요한 경우 일이나 상업도 하고, 그렇게 하는 동역자들을 백안시하지 말고 이해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자. 만약 선교비에 여유가 있으면 부족한 동역자들과 나눔으로 동역자 간에 상호 격려의 사랑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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