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근동 종교의 상징 세계와 야훼 종교의 첩경 예비

수호천사1 2012. 9. 16. 11:36

근동 종교의 상징 세계와 야훼 종교의 첩경 예비


1.  서   론

 고대 근동의 종교들 가운데 특히 신비 종교의 제의와 언어들은 구약의 표준 종교들이 보다 쉽게 이해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첩경을 마련해 주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숭배, 그레코-로마세계의 아티스와 시빌리숭배, 바빌로니아의 이쉬타르와 탐무즈숭배, 페니키아의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숭배, 페르시아의 미드라스숭배 등 이었다. 이러한 고대 근동의 종교들은 ‘야훼께서․․․․․․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박 넝쿨’ 같은 종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하찮은 환경도 야훼 신앙의 보편화를 위한 지름길로 사용하셨음을 다음에서 알 수 있다.

2.  삶과 죽음의 기로(岐路)

가. 할례와 성 교섭

 할례는 모든 남성들이 그들의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냄으로서 그들의 생식기가 생산의 여신에 의해 거룩하게 되도록 의도한 제의에서 기원하였다. 이집트인들은 고 왕국 시대와 같은 이른 시기에 셈족에게서 배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 성소에서 제사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야만 했다. 이것은 야훼와의 계약관계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하나의 의식으로서의 성 관계 행위는 아라비아에서 바빌로니아, 가나안, 소아시아 그리고 지중해의 여러 나라들로 전파된 고대의 아스탈트 제의로서 미루어 볼 때 여신의 특색 있는 제의가 성 행위(prostitution)와 함께 행하여졌으며, 종교의 보수성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나라들을 비롯해 셈 족 종교의 변형된 모습 속에서도 고수되어졌다.

나. 신의 도덕적 통치와 성숙한 기도

 고대 근동 신화에서 신들은 사람처럼 행동 -먹고 마시고 속이고 싸우고 다른 사람을 시기하기도 하여- 한다. 마치 어떤 도덕적 기준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신 개념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바뀌어졌으니 즉, 고 바빌로니아 왕국 멸망 후에는 옛 수메르 인들의 신화에서 나타나는 신들의 비도덕적 개념에 대한 제사장들의 태도가 변화된 것 같다. 왜냐하면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에 보면 “아누와벨이 나를 부르시기를 함무라비 왕아! 너는 신들을 두려워하고 온 땅에 의를 나타내고 악한 자들을 파멸시키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압제하는 것에서 해방하라” 고 하고 있다. 왕권에 의무적으로 부과된 도덕적 개념에 대한 고대의 발자취는 라가쉬의 왕 우르캉기나의 기원전 2000년대의 비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왕은 그의 신인 닝길수에 의해서 그의 전임자 왕의 통치 시대에 많이 생겨난 제사장과 관리들의 탐욕을 처단하여 그 통치를 끝내도록 신의 대리자로 임명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자세가 수메르 시대에도 일반적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오랜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경험은 바빌로니아 인들에게 그리고 또한 앗시리아 인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히브리 예언자들이 이와 같은 의문을 품었다. “왜 우리들의 신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했는가?” 그들의 답은 동일하였는데, 바로 죄에 대한 벌로 재난이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빌로니아 인들의 죄의 개념을 보면 그들은 제의에서의 부족함, 금기의 파괴, 도덕적 행위의 회피,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의 책임 부족, 정직하지 못함과 너그러움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러 신들에게 한 기도문과 찬송시에는 죄가 예배자와 신 사이에서 불화를 일으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도문에는 제사하는 자가 알지 못하여 금지된 음식을 먹었다고 신에게 고백하는 것에 강조점이 맞추어져 있고, 무의식중에 금지된 구역을 밟았다는 것에 주안점이 주어져있다. 그래서 바빌로니아 인들에게는 죄와 죄의 원인 사이에 예리한 구별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또한 병과 재난, 사람과 신 사이의 불화 등에 대해서도 그렇다.

 바빌로니아 인들은 신의 보복 개념과 의에 대한 보상의 개념이 이 생의 삶에만 한정되어 있다. 고대 히브리 인들의 형벌과 보상의 개념에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사상으로서, 이집트인들도 사후의 생에 가서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불멸의 축복이 인내를 필요로 하는 시련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데, 그것은 오시리스 신의 왕국 안에 있음을 믿었다. 세월이 흐른 후 바빌로니아 인들은 사후의 생은 무시무시한 어두움으로 차 있다고 생각했던 기록을 보여준다. 신들이 도덕성을 갖고 있다는 사상을 가지게 되자 세상에 대한 신들의 통치 사상은 선행에 대해 보상이 기대되고 죄에 대해 육체적 징벌이 기대되었다.

다. 사후의 생

 인간의 사후의 생에 대한 고대 근동 세계에는 독립된 두 개의 사상 체계의 기원이 존재, 즉, 모든 셈 종족들의 공통의 것,   → 이것들은 동서 셈 종족들에 의해 수메르 문화와 접촉한 셈 종족(서부 아모리 족이 소유했던 것), 하나의 신앙 체계로 이루어졌다.    

  혼의 생존에 대한 신앙은 바빌로니아의 텔로와 닙풀 그리고 게셀과 므깃도 및 벳세메쉬 등에 있는 고대의 무덤들에서 나온 식기 등의 먹고 마신 일상용품으로 미루어 보아 사후의 생활이 이 세상의 삶에 계속되는 것으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사후의 혼이 소유하는 힘은 영적이며 허깨비 같은 환상적이며, 이동적이다. 지성, 감성, 의지 등과 같은 영력들은 결코 감소되지 않고 증가하나 육체적인 힘은 사라진다. 살해당한 아랍 인의 혼은 그 나쁜 일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를 살해한 자를 원수 갚기 위해 올빼미를 통해 불렀다. 그의 살해자의 피를 상징하여 그 무덤 위에 붓는 제주를 마시기 전에는 진정되지 않는다.

  히브리 인들 가운데도 죽은 자가 기억, 지각력, 감정, 그리고 예지를 갖는다고 믿었다. 살해된 아벨의 피에서 호소하고 있는 그 혼은 자신에게 행해진 일을 의식하고 야훼께서 갚아 주시기를 땅속에서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사무엘의 영을 사울은 기억했으며 그가 왕의 몰락에 대해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임종시에 아들에게 내리는 아버지의 축복이나 저주는 사후에도 큰 힘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영은 확실하게 그것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의 함락으로 죽은 영들이 기뻐함과 죽은 군중에 대한 바로의 음영의 위로, 이 모든 것들은 음영들이 계속적으로 인식할 수 있음과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육체에서 분리된 영이 신자에게 환영으로 나타나고 음성을 내어 말한다는 믿음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바빌로니아에서 모든 종류의 병은 귀신들(demons)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생각했고, 오직 축귀자에 의한 주문과 기도로만 풀려날 수 있다고 믿었다. 야훼는 가나안의 하위의 영들의 기능들을 흡수한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러한 이유로 사울의 광기는 ‘야훼의 부리신 악신’(an evil spirit from Yahweh)에 의하여 라고 설명했다. 문둥병자는 오직 강력한 주문으로만 몰아낼 수 있는 귀신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병의 유전과 전염은 육체적으로 분리된 친척의 영들에서 온다고 설명했다.

  역시 영들은 동물을 사로잡기도 한다. 바빌로니아의 까마귀와 매 그리고 앗시리아와 이집트의 올빼미는 초자연의 능력을 지닌 새들로도 여겨졌고, 이러한 새들은 악귀들의 성육화이기 때문에 자연히 흉조로 간주되었다. 바빌로니아와 아라비아에서는 귀신들은 역시 짐승들이나 뱀들의 형상을 취한 것으로 믿었다. 어떤 동물을 금기시한 것은 아마도 귀신들린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히브리 인들의 부정한 짐승들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하여튼 나쁜 전조의 이들 새들과 뱀은 히브리 법전에서 부정한 짐승들의 목록에 기재되어 있다.

    무덤과 관련된 죽은 자의 영에 대한 보편적인 원시 셈 족의 신앙은 초기 아모리 인들의 보다 원시적인 사상과 합금이 되어 죽은 영은 ‘거대한 지하 땅굴’로 간다는 신앙을 낳았다. 이것은 원래 수메르 인들에게서 기원하여, 바빌로니아의 셈 족을 거쳐서 바빌로니아 인들이 서부 지역들을 다스릴 때 서부 셈 족으로 퍼졌고 그래서 마침내 수세기를 거쳐서 히브리 인들에게까지 내려왔다. 바빌로니아 인들에 의하면 이 거주지는 ‘아라루’, ‘키갈’ 또는 ‘키갈루’로 ‘거대한 지하’ 또는 ‘지하세계’를 뜻했고 ‘일카루’는 ‘거대한 도성’인데 ‘죽은 자의 땅’, ‘죽은 자의 산악 집’, ‘담무즈의 집’, ‘죽음’, ‘땅’, ‘나크브’, ‘공간’ 및 ‘땅굴’등으로 알려져 있다.

죽은 자의 거주지에 대한 아모리 인과 가나안 인들의 개념들은 히브리 문헌에 남아 있는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이러한 믿음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죽은 자의 주거지는 스올로서 알려져 있는데 가끔 ‘마웨트’(죽음) 혹은 ‘메팀’(죽은자) 혹은 ‘에레스’(땅)와 병행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또 가끔 ‘낮은 땅’ 혹은 ‘지하세계’ 그리고 ‘샤하트’ 혹은 ‘불’ 즉, ‘구덩이’로 알려져 있다.

3.  희생 제의와 공동 식사

가. 속죄 제물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의 의식에서 사용되었던 대속에 대한 원리로는 3가지 다른 방법들이 있다.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의 신년 축제의 다섯째 날에 양의 머리를 자르고, 도살을 맡은 제사장이 그것의 날고기를 사원의 대문과 벽에 바르고, 남은 양의 머리와 고기는, 인간이 제거해 버리고 싶었던 부정, 불결, 불성과 함께 모두 강으로 던져 버렸다. 이러한 의식은 야훼 앞에서 속죄하기 위하여 그 제단 위에서 완전히 불살라졌던 히브리 번제와 똑같이 대등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히브리 인의 속죄양 의식은 바빌로니아의 푸부 의식과 확실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나. 제물의 피를 마심

  모든 고대의 희생 제물은 거룩한 특성이 있다. 의식을 통하여 한 생명이나 생명-피를 먹음으로써 그들의 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연합되어지는 전체 공동체의 신성한 행위를 수행했다. 희생 동물의 혈관 속에는 자기 몸과 동일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었고, 그리하여 그 희생물의 피는 바로 종족의 피로서 뿌려졌으며 거룩한 모임의 구성원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피로서 생명의 성소를 범한 죄의 대가로 지불되어졌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들이 그 고기를 먹게 되고 그 결과로 그들의 신과 구성원들 간의 신비적인 연합이 공고해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만 예배자와 그들의 신 사이에 생생한 연합의 끈이 생겨나고 유지된다. 이러한 연합은 특별히 희생 제물의 피 속에 내재하는 실제적인 생명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고대의 아랍 문화에서는 ‘피-계약’의 많은 예가 있는데, 사람을 대신해서 당사자들은 모두 이때에 희생 제물의 피에 손을 담그고, 그와 동시에 신성을 상징하는 거룩한 돌에 바르거나 그 기둥 밑에 쏟아 붓는다. 그릇에 손을 같이 넣는 행위는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교제를 의미하고, 따라서 연합된 구성원들은 ‘피를 핥은 자’로 불리워진다. 한 종족의 피를 마신 자는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고, 그 씨족의 형제가 되고, 모든 씨족원들에 대해 ‘생명-피’를 나누는 신비한 모임에 속하게 된다. 이러한 연합의 결과는 영속적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이며 또한 종교적인 일치를 의미한다.

   히브리 인들에게도 이런 친족 개념이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 속에 있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희생 제물의 피를 한 손으로는 제단에 바르고, 다른 손으로는 백성들에게 뿌렸다. 동일한 관념의 발전된 형태가 시편 1편 5절에서 하나님과 예배자들 사이의 계약으로 나타난다. 순수한 자연 종교에서는 신과 그 공동체 사이에 육체적인 연합이 형성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이 손상되거나 약해졌을 때에는 친족 관계의 끈이 끊어지거나, 풀어진 것으로 여겨서 진지한 의식을 통해 다시 연합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례전적인 의식은 소외되어진 신과 다시 연합되게 하는 하나의 속죄 의식이고, 희생 제물의 연합은 속죄 의식의 미발달된 개념을 포함한 것이다. 셈 족 제의의 옛 형태는 교제와 구속에 대한 개념이 하나로 되어 있다. 즉, 구속은 교제 행위의 하나로 보았다. 이러한 사상들에 대한 실제 행위는 의식을 준행하는데 있어서, 전체 공동체가 참여하게 되면 희생 제의의 형태를 나타나게 되고 개인적인 예배 행위에서는 그 자신과 신과의 개인적인 연합 관계를 갖게 된다.

  개인은 이때에 피-계약으로부터 유추한 의식에 따라 자신의 피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이것과 동일시되어지는 다른 원칙을 따르게 된다. 자신의 피를 제단에 뿌리게 되는 것은 신에게 그의 기도와 그 자신을 잘 보이려고 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구약성서에 보면 이스라엘 하나님과 두로의 신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바알의 선지자들이 그러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맙보그에 있는 시리아 여신의 축제에서 여신 갈리와 그 추종자들은 무기로 자신들의 살을 깊이 벤 상처를 만들거나 자신들의 등을 다른 사람이 때리도록 하였다. 시리아 어로 엣카쉬사프는 ‘탄원하다’는 뜻인데, 문자적으로 ‘누구를 베다’는 의미이다. 고대 근동에는 인간 희생 제물이 드려졌는데 이것은 그 희생 제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희생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값비싼 희생으로 드려졌다. 희생 제물의 피를 흘리고 있는 동안에 그 희생 제물은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히브리 인들은 애곡자가 죽은 자를 위해 몸을 베거나 구멍을 뚫는 일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교의 풍습들은 고대의 왕국들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히브리 어로 제단을 미즈베 라고 부르는데, 이는 ‘도축자의 장소’라는 뜻이다. 이것은 고대 시대의 희생 제물이 제단 근처에서 도살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는 삼상14:34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사울 시대의 히브리인들이 제물들은 피의 봉헌이 있어야 온전하게 된다는 희생 제의의 형태를 알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이스라엘 인들에게는 피를 먹은 자를 쫓아내는 심판이 있었다. 히브리 인들의 희생 제의의 법칙들은 절대로 피를 먹어서는 안 되었고 예배자들에게 뿌리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피-계약의 다양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이다. 후대에는 고기의 일부를 먹기도 하였으나, 피는 특별한 경우-제사장을 성결케 할 때나 문둥병자의 정결 의식-에 신과 그의 종 사이에 가장 강력하게 특별한 연합을 갖고자 할 때 사용되었다. 

다. 제물의 살을 나누어 먹음

로써 모든 사회적인 행위들에 연합되고 사회적인 의무는 함께 지게 된다. 근동의 모든 아랍 인들에게는 사막에서 만나는 이방인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된다. 자기가 피를 흘리게 되면 자신의 강건한 팔과 자기의 종족이 복수할 것이라는 공포심 외에는 폭력에 저항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만일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이라도 서로 한입씩 나누어 먹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그에 대한 공포심은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 사이에 소금이 있다’라는 것이 되며, 서로 해치지 않을뿐더러 서로 간에 형제가 되므로 서로 돕고 보호하게 된다.

 신과 예배자 들은 함께 먹고 마시며,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그들 간의 교제가 선포되고 확인되었다. 구약성서에는 함께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희생 제물이었는데 신이 만일 그 계약에 제 3자로서 참여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서로가 단순히 한 상에서 식사한 것 밖에는 안 된다. 고대 근동인 들은 함께 먹는 공동 식사는 그 자체가 실제적인 것으로 인식하였고 그들의 종교가 그것을 확정하고 강화하였다. 베두윈 족들을 포함한 모든 아랍 인들은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은 상대를 위해서는 혼신을 다하여 보호해 줄 성스러운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이런 사상은 히브리 인들과 가나안 인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수9:24를 보면, 이스라엘 인들은 야훼께 묻지 않고 기브온 족속의 음식을 취하고 동맹을 맺은 사건이 나온다. 이 경우는 형식적인 연합이 맹세에 의해서 확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음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미 연맹을 수락한 것이 된다. 

4.  신비종교와의 투쟁과 야훼종교의 승리

  고대 근동의 신비 종교들 가운데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적수는 미드라이즘이었다. 이 종교와의 투쟁은 성서의 표준 종교들에게는 피나는 것이었고, 마침내 성서의 종교들은 그들을 정복하고 그 전과를 선교의 밑거름으로 이용하였다.

가. 미드라이즘의 자료

   미드라이즘의 배경과 자료는 거의 대부분 페르시아의 공동체들과 그들의 사제들이 있었던 소아시아에서 발견되어지는데, 미드라스 전설은 잃어버려졌고 다만 조각 작품들로부터 재구성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모든 미드라교의 성소에는 훌륭한 미술가들의 교리를 표현한 작품들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흔적들이 시리아, 이집트 등의 동방 헬라 세계 전체에 걸쳐서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미술과 조각 및 건축물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 종교에 대한 지식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그들의 성소에 건립되었던 우상들은 기독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당시의 건조물들을 포함한 그 종교의 여러 유적들은 현재에도 유럽에 많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들 중 최대의 미드라교의 신전은 1912년 카라칼라 호아제의 온천탕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이것은 로마 황실의 후원으로 3세기경에 이 종교가 크게 성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 미드라이즘의 역사

  이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와 마기 족을 통하여 전수되었고 마기 족은 서부 페르시아에 살았던 비 아리안 계통의 원시 토착민들로서 조로아스터교도들과 접촉하게 되자 그 백성은 승려로서의 위치를 차지했던 사람들로서 이들은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서 통치하던 아케메니드시대 말에 융성했다.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가 세계적인 대제국이 되었을 때에 이 미드라이즘은 그들의 정복지를 따라 서쪽으로 퍼져나가서 마침내 그 땅의 주신으로서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 종교는 기원전 75~68년경에 고대 로마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이 종교는 인류가 점차 세기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던 기원후 1세기말과 4세기 사이에 근동 세계에 두루 퍼졌고 3세기 중엽에는 크게 확장되어 로마 제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미드라이즘은 군대와 노예 및 상인들에 의하여 로마 제국 내로 전파되어 그리스, 서 갈리아, 스페인 등지에까지 전파되어 나갔었다. 폼페이우스의 동정 이후 로마 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리하여 거의 200여 년간 기독교의 주된 경쟁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부터는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고, 5세기 초에는 그것은 역사의 한 유물에 불과하게 되었다. 미드라이즘의 전파는 대체로 로마 제국의 군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미드라이즘의 제의에는 그의 군인 신도들에게 생명과 용기를 전하여 줄 수 있는 자인 ‘황소-정복자’의 영웅적 ‘상징’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드라이즘은 최종 단계에서 태양 범신교로 흡수 통합되었는데 3,4세기의 로마 사회의 당시의 철학과 과학을 조화시킨 신학을 제공하였으며, 아우렐리우스 황제 재위시에 로마의 국교로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제 숭배가 종교적 본능을 충족시킬 수 없었듯이, 태양에 대한 국가적 예배는 적합지 못하였고 따라서 로마 제국의 군대와 관리 계층의 종교였던 미드라이즘은 마침내 원로원 내에서도 이교를 옹호한 교양인 집단들에게는 힘을 잃은 신분의 한 상징이 되었으며, 제국의 변경과 알프스 계곡들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다. 미드라이즘의 교리

   미드라스는 세계의 창조주, 어둠의 위협에서도 창조 사역을 한 빛의 신이며 흑암의 왕자인 아리만과 여러번의 싸움을 통해서 세계를 파멸에서 구출하고 태양의 오른손을 꽉잡고 토록토너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신화적인 황소를 살해한 위대한 전사로 묘사된 미드라스는 동시에 구세주로도 간주되었고 이 미드라스는 태양의 본성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태양의 암흑 기간이 가장 긴 동짓날 무렵인 12월 25일을 그의 탄생일로 경축하고 있다. 이 신은 참으로 비천한 출생 설화를 갖고 있다.

  원래 미드라스는 한 바위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다만 예물을 갖고 와서 그를 경배하던 몇 사람의 목자들에게만 보였다. 새로 출생한 신은 바람으로 추위를 느끼자 무화과나무로 가서 그 잎사귀로 자신의 옷을 해 입고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세상에 이미 내려와 있는 악한 존재들을 패배시킬 임무를 떠맡고, 자신에게 백성들을 맡겨준 태양과 더불어 우정과 사랑의 조약을 맺었다. 그 다음 그는 오르마즈드에 의하여 창조된 성스러운 황소를 붙잡아 죽였다. 이 황소를 죽이는 일이 미드라이즘 예배의 중심이며 절정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아리만은 그것을 방해하려고 그의 사자를 이 지상에 내려 보내었다. 드디어 황소의 영혼은 천상에 오르게 되고, 실바누스의 이름 아래에 있는 목자들과 사람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미드라스는 그의 행위를 통하여 생명의 창조자가 되었다.

  한편 아리만은 땅에 가공할 만한 가뭄을 내려 보냈다. 미드라스는 바위를 향하여 화살을 발사하여 그것에서 물을 기적적으로 뽑아냄으로써 아리만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다음에 아리만은 홍수를 이 지상에 보냈고, 그 홍수에서도 한 사람이 그의 가축과 더불어 한 배에 들어감으로써 멸망을 면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미드라스는 그의 구원 사업을 성취시켰고 세상에 악한 신들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게 되었을 때, 미드라스는 그의 천상의 보좌로 되돌아갔다. 그는 태양신이 베푼 연회의 대접을 받은 후 태양신의 수레를 타고 불멸의 처소(저택)로 인도되어 갔으며, 그때부터 그가 그의 신실한 신도들을 보호하는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서 그 종교의 입교자들에게 불멸을 부여할 것을 그들에게 약속해주었다. 이 메시아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곧 다시 오실 사오쉬얀트’로 불리워졌다. 그리고 구세주로 믿어진 이 사오쉬얀트는 처녀에게서 태어나 인류를 구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악령인 앙그라 마이뉴(어둠의 정령의 지도자)는 궁극적으로 패하게 되고 아후라 마즈다의 영원한 왕국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여기에 축복된 불멸과, 그리고 세상과 신과의 화평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최후의 심판, 부활, 현 세계 질서의 종국적인 파멸 및 새로운 신세계 질서의 확립에 대한 종말론 교리가 나왔다.

라. 미드라이즘의 최후와 복음 전파의 첩경

  미드라이즘에서 주목할 만한 교리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기록된 것과 유사한 창조와 홍수 이야기, 짐승도살, 그리고 종말론에 대한 사상들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유대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까지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서로 간에 되받아 비난하는 역습으로 기원후 2세기초에는 극히 참담하였다. 그러나 4세기 초에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미드라이즘은 강력한 억압을 받아서 그것의 추종자들이 자연히 유사한 종교들에 흡수 통합되었다.  특히 4세기 말에는 미드라이즘은 기독교도들의 공격을 치열하게 받았다. 그 이유는 그들 두 종교간의 의식과 교리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미드라이즘의 비밀 제의 가운데는 목욕 재계, 신성한 만찬 등 일곱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미드라이즘은 떡(빵)과 물 또는 포도주로 성찬식을 행하였고, 이 의식은 입교 후보자들이 신과의 교제 속으로, 즉 보다 깊은 신비 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기독교의 변증자들은 이 성찬식을 기독교의 성만찬에 비교하였다. 그리고 기독교도들은 미드라이즘의 침례를 사탄에 의해 영감받은 것으로 보았으며, 그들의 성만찬은 기독교 성례전의 악마적인 모방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결과적으로 미드라이즘은 역사에서 그 임종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고 다수의 미드라이즘 신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고 기독교도로 전향하거나 흡수 통합되었다. 그들의 말로는 성서 종교들의 새로운 첩경을 마련해 주었다. 미드라이즘과 유대교 및 기독교 그들 세 종교 간의 유사성은 매우 광범위하니, 사원의 일종인 회당은 그들 신도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예배는 일상적인 연회에서 최고 절정에 달하였고 신도들은 미드라스와 태양 사이의 동맹을 제의로 연출함으로서 구체화하였다.  

   협동 정신, 그들 신의 비천한 출생 설화, 태양신과 더불어 그들의 하나된 모습, 목자들의 예물과 경배 전설, 홍수와 방주, 불수레의 기교로 나타냄, 바위에서 물을 나게 한 기적, 의식에서 종과 촛불의 사용, 성스러운 물과 공동 식사, 주일과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거룩하게 지킴, 높은 도덕적 행위의 강조, 금욕과 절제의 강조, 천국과 지옥의 교리, 원초적 계시, 신적 기원으로부터 발산된 로고스의 중재, 속죄 보상의 희생, 선과 악 사이의 끊임없는 싸움과 선의 최후 승리, 영혼 불멸, 최후 심판, 육신의 부활과 우주의 치명적인 파멸 등. 이러한 유사성은 실제로, 그리고 명백하게 미드라이즘으로 하여금 유대교와 기독교에 저항하도록 만들었고 그 투쟁의 기간을 더욱 연장시켰다. 이러한 사상과 교리들의 뿌리는 다른 그 어떤 것들에서 빌려 온 것이라기보다 일반적인 근동 기원에 놓여 있다. 이러한 미드라이즘의 많은 요소들이 후에 마니교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것은 역시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을 수용할 준비가 아직 덜되어 있던 당대의 이방인들에게는 기독교로 들어가는 지름길로 들어서게 만든 것이었다.

5.  결   론

   여호수아 24장에 나오는 세겜의 계약 장면을 보면 이스라엘 선조들 가운데는 야훼가 아닌 다수의 다른 이방신들을 섬겼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라고 하였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한 동부 계통의 근동 종교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또한 모세의 인도를 받은 히브리 인들의 이집트에서의 이주도 ‘너희 열조가 강 저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야훼만 섬긴 것’으로서 이집트를 비롯한 남방 계통의 종교에서의 탈출이었다.

  이러한 묘사들은 한결같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인종적으로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종교적인 관련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창세기의 사화는 다시 이스라엘 인들의 발에 묻어들어 온 이방신들을 땅에 파묻어 버려야 한다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뵈게린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주론적 문명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런 히브리 인들이 근동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근동 세계는 벌써 만신전의 세상이 되어 있었고 따라서 세월이 흘러가는데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마저 휩쓸려 근동의 종교에 흡수되고 동화되어 갈 가능성이 컸으나 그때마다 예언자들을 비롯한 야훼 종교의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영웅적인 투쟁으로 야훼 종교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

  히브리 인의 야훼 신앙은 고대 근동의 셈 족의 다신론 및 자연신론 신앙과는 크게 다르고 제의의 내용과 행습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 야훼 종교가 모세와 에스라의 도가니를 통과한 후에도, 고대 셈 족의 종교의 옛 그늘들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하였다. 이것은 마치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에는 이 땅의 전통 종교들이 드리워져 있는 것과 같다. 그 예를 들면 영혼 불멸(영생 개념이 아님), 상선 벌악, 인과응보 등의 사상들은 불교의 그늘들이며,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에서 형식, 권위 및 외형 등을 중시하는 것은 유교의 그늘들이며, 사회의 변혁과 사람의 인권을 중시하는 사상의 밑바탕에는 동학의 숨결도 있으며, 금식, 철야, 새벽기도, 성미 그리고 삶의 이중성 등에는 샤머니즘의 그늘들도 깃들어 있다. 이런 불교, 유교, 천도교 및 샤머니즘 등 한국 전통 종교들의 그림자들이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성장에 역기능만을 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그늘들이 뜨거운 태양열을 막아주어 이 땅의 기독교가 잘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의 역할과 햇볕가리개의 역할을 했음을 우리는 분명히 시인한다.

   구약성서의 이스라엘 인들은 근동 세계의 주변의 종교에 대하여는 배타적인 구속신앙을 가진 백성들이었고 야훼는 인간과 역사를 중시하는 그 신과 더불어 계약 관계에 의해 자신들이 묶이었다고 믿게 된 백성들의 하나님이었다. 그는 일찍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을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의 폭압에서 탈출시키고 이집트의 인간 폭군들로부터 민족을 구출하신 하나님이시며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주신 분이시다. 이것이 그들의 종교와 신앙의 출발점이었다.


 참고

-예를 들면 이쉬탈에 대한 기도문에서 “내가 당신께 기도하오니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의 부정을, 나의 부끄러움과 나의 죄악된 행위를 간과하시고 나의 부끄러운 행위, 나의 기도를 받아주소서. 나의 속박을 풀어주시고 나의 구원을 보증하소서!”라고 했다. 

    앗술바니팔 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주목할 만한 기도문에는 “사람은 벙어리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그가 아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가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의 주여! 당신의 종을 버리지 마소서! 그가 사망의 연못으로 가오니 건지소서! 내가 지은 악한 것으로부터 선한 것으로 돌이키게 하소서! 나의 죄악을, 의복을 벗기듯이 벗기소서! 나의 죄악을 옮겨주시니 내가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자비하신 어머니처럼 조용히 나에게 임하소서”라고 하였다.

-미드라 성소에 양각으로 새겨진 기념물 가운데는 주후 2세기경 페르가몬의 미술가에 의해 현상태로 확정된 것이 분명한데, 그리스 예술에서 동방을 의미하는 전통 복장을 한 미드라가 왼쪽 무릎을 황소의 등에 얹고 왼손으로 그 황소의 뿔을 잡고 목을 찌르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황소 희생제사는 아주 고대의 종교 제의에서는 신과 황소를 동일시했었다. 이러한 황소 희생은 사신으로 까마귀를 보낸 태양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그는 마음으로 원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그가 희생됨으로 죽어가는 황소로부터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솟아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장엄한 창조 이야기이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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