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에 나타난 걸림돌

수호천사1 2012. 9. 16. 11:18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에 나타난 걸림돌


한국 교회는 서양 선교사들의 실수와 오류를 비판하면서도 한국 선교사들 역시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예컨대 서양 선교사들이 문화적 우월주의에 입각해서 서구 문화를 무차별적으로 이식시키려 했다든가 아니면 서구의 강력한 정치력 및 경제력을 배경으로 선교 현지인들 위에 군림한다든가 아니면 복음을 나누어가지는 것이 아니라 시혜를 베푸는 것과 같은 고자세를 견지했다든가와 같은 점들이 서구의 선교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되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 나서는 현 시점에서 선교 현지들을 분석해보면 이들과 유사한 실수와 실책을 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오류들은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지향하는 지금에 와서 선교의 걸림돌로 되돌아오고 있다. 또한 타문화의 타언어권에서 선교를 하는 데에는 불가피하게 부딪히는 문제점들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문화적 차이에 기인하는 부적응의 문제이지만 여타의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서 넘어야 할 걸림돌들이다. 이들을 대략적으로 간추려보면 언어, 문화, 금전 즉 선교 자금, 한국인의 의식, 가족과 자녀 교육, 선교 정책, 전문 선교 교육과 훈련 등과 관련되는 문제들이다.

가. 언어 문제

선교사들이 선교 현지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난관은 문화적 적응과 언어 소통일 것이다. 한국 선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이 한국어가 세계 공용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대체로 영어와 같은 세계 언어들 중의 하나와 현지어를 동시에 습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언어를 현지에 가서 습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언어를 습득할 때까지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의사소통의 불능은 여러 가지 파생적인 문제들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선교는 현지 교회와의 협력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데, 원활한 의사소통없이는 이러한 협력을 끌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직접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통역자들을 두어야 하고, 통역자가 때로는 현지 교회와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수도 있다. 또한 의사소통이 안되기 때문에 현지인에게 비우호적이거나 비사교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으며, 이러한 비사교성이 현지인들을 무시한다든가 교만하다든가와 같은 잘못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 역시 언어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고립된 선교지에서 자신들이 현지인들로부터 소외와 배척 또는 무시를 당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반사작용으로 현지인들에 대해 고압적이 되거나 과다한 선교비 투자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는 수도 있다. 이처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선교에서 그 자체가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부수적으로 파생되는 문제들이 선교를 난맥에 빠뜨린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선교사들이 현장과 밀접하게 교류하고 적응할 수 있기 위한 언어 교육을 파송에 선행해서 실시해야 할 것이다.

나. 문화 문제

선교는 어떤 면에서 타문화에 대한 기독교 문화의 접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즉 선교 현지의 문화와 복음을 접합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접합은 단순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는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선교 현지의 문화와 복음 그리고 복음에 체현되어 있는 서구적인 기독교 문화, 여기에 덧붙여서 선교사의 모사회의 문화이다. 한국 선교사들 역시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즉 현지 문화와 자신들에게 체현된 한국 고유의 문화 그리고 복음과 그에 부착된 서구 문화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일으키는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한국 선교사들은 한민족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하고 한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자신들의 문화가 현지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문화적 우월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선교지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하고 또 선교지의 문화가 설사 한국 문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나름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그릇된 자부심이 현지 문화를 미개하다든가 미신적이라든가 비합리적이라는 등으로 치부해버리는 오류를 한국 선교사들 역시 범하는 수가 있다.

선교에서 선교사의 문화는 사실 무시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복음과 선교 현지의 문화인 것이다. 현지의 문화 중에서 복음과 극단적으로 배치되지 않는 요소들은 설사 선교사의 문화에서 볼 때 수긍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수용하고 존중해야 한다. 되풀이 하자면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에 먼저 적응하고 동화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복음과 상반되는 것, 이를테면 우상 숭배와 같은 것에 대해서 복음의 입장에서 배격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교회가 선교사들에게 선교의 사명감만 고취시킬 것이 아니라 선교지와 그 문화에 대한 사전의 이해를 넓힐 실질적인 선교 훈련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다. 자금 문제

선교가 선교비의 투자 정도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교에서 선교비는 고질적인 불화의 씨앗이 되고 있다. 한국 선교사들 역시 한국 교회의 경제력과 선교에 대한 열정 덕택에 최근에 와서 선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선교를 자금으로 하려는 잘못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선교지의 실정과 필요에 맞는 선교비 투자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선교사 본인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사명과 부합하는 선교 사역을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금의 투자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왜곡된 경제 논리를 적용해서 무조건 선교비를 투자하는 식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수들이 있다. 예컨대 선교 현지에 절실하게 요구하는 사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사없이 교회당을 크게 건축한다든가 신학교를 건립한다든가 등의 사업을 벌이는 수가 있다. 교회 건축보다는 더 시급한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사역이 자신이 해야 하는 선교 사역인지 또는 능력에 맞는 것인지 또는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 대비없이 우선 수중에 있는 선교비의 투자에만 관심을 둔다. 그래서 이따금 그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고 나면 교회 건물이나 신학교와 같은 것이 더 이상 사용이 되지 않고 버려지는 낭비를 낳기도 한다. 또한 선교 현지의 필요와 요구에 대한 지식과 실사없는 선교비 투입은 자칫 현지 교회와 현지인들에게 경제적 의타심을 길러주고 자립심을 위축시키는 수도 있다. 적절하고 필요한 선교 사업을 통해 현지 교회와 현지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우는 것이 선교사들이 해야 하는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교비 지출로 인해 그들이 경제적으로 기생하고 더 나아가 의식에서까지도 종속되고 의타적이 되는 잘못을 한국 선교사들이 종종 범하고 있다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에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해외에 자금을 보내야 하는 분야이다. 선교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본국의 교회 재정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더 심한 타격은 해외에 나가 있는 선교사와 선교 사역에게 가해졌다. 환율 인상으로 인해 당장 실제로 송금되는 선교비가 적어지자 선교 사역을 축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선교 사역으로 인해 외환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여론이 조성되면서 선교비 조성과 후원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불황은 선교 후원자들의 힘을 상대적으로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후원 단체나 교회가 선교지의 형편과 사역에 대한 실제적인 조사없이 임의로 선교비를 삭감하거나 후원을 중단함으로써 선교 사역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들도 있다. 후원 교회가 선교사들에게 후원비를 동결하거나 전혀 보내지 않고 소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경제 불황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또한 후원교회가 조급하게 실적을 요구하고 또 실적에 따른 선교비 후원을 함으로써 선교 사역이 파행적으로 수행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은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습득하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로 곧바로 '선교'가 아니라 '선교 사업'을 벌이게 되고, 보고를 위한 선교 사역을 하게 된다. 이처럼 선교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단시일 내에 그 성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선교는 사업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이다. 이러한 점들을 숙지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할 때 선교 자금과 관련된 이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라. 한국식 성공 모델의 일반화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가 주목할 만큼 성공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것은 한국 교회의 선교 방식이 우리의 문화와 상황 그리고 역사적인 여러 조건들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한국인은 태국에서 불교를 국교화하고 있는 것과 같이 특정 종교를 국교로 신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래 종교였던 기독교에 대해 훨씬 개방적이었던 것도 한국 교회가 선교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이었다. 아니면 일제 강점기 동안의 암울했던 정치 사회적 상황이 종교에 대한 귀의를 촉진했으며 그 대상이 기독교였다는 것도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 교회의 성장 뒤에는 한국 교회 나름의 특수한 요인들이 작용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 선교에 있어서도 한국 교회의 선교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현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 교회의 성공적인 선교 방식을 그대로 이식하는 오류를 범하는 수들이 있다. 선교지마다 그 나름의 고유한 문화와 특수성 그리고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교지마다 그 나름의 적절한 선교 방식이 고안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식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 교회의 성공적인 선교 방식은 우리에게 적합한 모델이었을 수는 있지만 다른 선교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일반 모델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에서 역군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한국식 성공 모델이라는 신화를 깨고 선교지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선교 방식을 모색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마. 계획성없는 추진력의 문제

한국 사회의 경제 발전은 흔히들 과감한 추진력에 기인한다고 한다. 이른바 '밀어붙이기식'이라는 것이다. 경제 개발이 그러한 밀어붙이기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이 그러한 불르도저식의 추진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선교에서도 우선 일을 벌이고 밀고나가면 된다는 식의 무분별한 추진력에 후한 평가를 해준다는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이 실제에 대한 엄격하고 합리적인 계산을 한 다음에 그 사업에 대한 성공의 확신이 서면 일을 시작하는 반면에 한국 선교사들은 이성적으로 따져보기보다는 먼저 행동에 옮기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한국 선교사들의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정신이라고 한다면 장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지만 때로는 선교 현지 실정과는 동떨어진 무모한 계획과 추진으로 낭비를 하는 수들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일이 기존의 것을 유지하거나 폐하는 것보다 더 쉬울 수 있다. 선교가 곧 선교 현지의 고유한 것을 폐하고 새로운 것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밀어붙이기식의 선교 사역보다는 현지와 더불어 동화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만약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에서 이러한 과감한 추진력만 앞세우고 더불어 살면서 선교하지 못한다면 한국 선교사들이 배척을 당하는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바. 가족 문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 사역과 가족에 대한 헌신 양자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마련이다. 선교 사역에 전념하다보면 가족을 소홀히 하게 되고 가족에 헌신적이다보면 사역에 소홀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성공적인 선교는 이 양자를 얼마나 잘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후자에 대한 문제는 대체로 선교사 부인과의 관계와 자녀 교육으로 모아진다. 선교사가 아내를 내버려둔 채로 선교 사역에만 전념해서도 안되지만 선교사의 아내가 남편의 사역에 방해물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는 아내 역시 선교사 부인이 아니라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부부가 선교사로서 선교 사역을 한다면 이 양자의 양립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 문제는 부모들의 사명 때문에 자녀들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당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또한 한국 사회 특유의 자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면만을 보자면 선교지에서의 자녀 양육은 일찍부터 타문화와 언어에 접하면서 세계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이를테면 선교지의 열악한 사회적 교육적 여건들로 인해 선교사 자녀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없거나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걷지 못하는 수가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향해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들의 자녀 교육 문제라는 걸림돌의 해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 정책 문제

선교 사역은 개개 선교사들의 임의적인 판단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교사들을 파송한 교회, 즉 교단이나 선교 단체의 선교 계획과 정책에 따라서 수행되는 것이다. 한국 교회 역시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이러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선교 계획과 정책이 필요하다. 선교지에서 벌이는 선교 사역들이 선교 본부--교단 또는 선교 단체--의 계획과 정책에 따라 펼쳐질 때 개별 사역들이 합해서 선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는 선교를 개별 선교사들에게 일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선교 본부에 해당하는 교단의 총회나 선교 단체가 선교지의 실정과 필요 그리고 여타 선교지들과의 관계 등을 감안해서 총체적이고 실제적인 선교 계획과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일선 선교사들에게 제시해서 따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선교사들이 임의적인 판단에 의해 선교 사역을 찾아서 하도록 방임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가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으로 되도록 방치하는 셈이다.

아. 훈련 문제

위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걸림돌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근본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해법이 있다면 선교사들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실시하는 것일 것이다. 선교 사역은 전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직에 필수적인 전문 지식과 특별한 기술 습득없이 사명 의식만으로 해낼 수 있는 분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선교사 자격은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과 열정 그리고 헌신적인 정신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생각을 고칠 때이다. 선교사는 선교 전문가이다. 뜨거운 가슴만이 아니라 선교지에 관한 지식을 가져야 하며 사역을 위한 특수 지식과 능력도 있어야 한다. 예컨대 언어 습득 능력이나 의사소통과 대인 관계 능력 그리고 타문화에 대한 적응 능력과 같은 것은 선교사들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선교사들이 이처럼 전문인이 될 때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을 얼마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에서 당면한 문제는 전문인으로서 선교사를 양성하고 교육하고 훈련하는 데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신학 교육 뿐 아니라 특정의 선교 사역에 필요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 교회는 아직 그러한 선교 교육 기관과 선교 훈련 기관이 미흡한 실정에 있다. 대한예수교장로교회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세계선교대학원과 세계선교연구원에 위탁해서 선교사들을 교육하고 훈련하고 있지만 짧은 훈련 기간으로 인해 전문가로서 선교사를 양성하는 데는 부족하다. 보다 실제적인 선교 훈련이 되려면 전지 훈련과 같은 선교 현지 적응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며, 강의실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경험으로 습득하는 실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견습선교사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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