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학

[스크랩] 이상적 교회상-1

수호천사1 2012. 9. 11. 17:16

이상적 교회상-1

 

이상적 교회란 성경에서 제시하는 교회의 이상을 잘 따르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성경의 진리를 따르기보다 인간이 만든 관습과 제도를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진리, 사랑)을 머리 삼지 않는 교회는 결국 인간(거짓, 욕심)을 머리 삼아 따르다 사탄의 의도대로 죄악과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a)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로마서12/5~8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각 사람이 서로의 지체가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에 따라 가진 은사들이 다르니 예언이면 믿음의 분량대로 예언하고 또 섬김이면 섬기는 일로, 또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또 권면하는 자는 권면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지도하는 자는 근면함으로, 자비를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전 12/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한 몸에 지체는 많아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

고전 12/26~27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그와 함께 고통을 받으며 만일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느니라.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는 그 지체들이라.

에베소서 1/22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 아래 두시고 그분을 교회에게 주사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4/11~12 그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됨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하나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라. 그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과적인 역사를 따라 각 마디를 통하여 공급을 받아 알맞게 결합되고 체격이 형성되어 몸을 성장시키며 사랑 안에서 몸 자체를 세워 가느니라.

성경에 나오는 교회에 관한 언급 중 가장 많은 것이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성도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머리 삼아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는 거듭난 성도의 무리가 머리 되신 예수님의 집단적인 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하나지만 몸은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지체는 머리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귀천이 없이 모두 소중하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한사람의 지체가 머리가 되려고 하거나 지체끼리 서로 싸우는 일은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나 목사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끔 목사와 성도가 또는 성도끼리 싸우는 이유는 예수님을 머리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욕과 명예심을 버리고 섬기는 자세로 예수님과 성도를 위한다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분란이 일어납니다.
마귀가 교인들에게 욕심 시기 질투심 권력욕 명예욕 등을 심어 서로 이간질 시킴으로 깨어 긴장하고 악한 감정을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교회에 목사 장로 선교사 교사 집사 등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직분과 달리 교회의 직분은 모두 예수님 앞에 평등한 봉사직분입니다.
따라서 서로 존중하고 직분 욕심을 내지 말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 구성원은 예수님으로부터 진리와 사랑을 받아 온전히 자라나 서로를 위하며 성화되어야 합니다.

 

b) 교회는 예수님을 머릿돌 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마태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에베소서 2/19~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이돌이 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

벧전 2/4~5 사람들로부터는 정녕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귀중한 산 돌이신 그분께 나아와서 너희도 산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적인 제물들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느니라.

사도행전 4/11 이분은 너희 건축자들이 쓸데 없다고 제쳐 놓은 돌이었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교회에 관한 두 번째 정의는 예수님을 머릿돌 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란 것입니다.
복음을 최초로 받아들인 사도들이 기초가 되고 그 위로 성도들이 쌓아 올려지며 피라미드 꼭대기 같은 예수님의 머릿돌로 완성된다면 하나님이 거하실 완벽한 처소가 될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신 성령이 임함으로써 성도들에겐 기쁨이요 하나님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영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에 육적인 외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정집이든 지하무덤이든 들판이든 헛간이나 창고이든 예수님을 구원주로 삼고 성령을 사모하면 하니님 성전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외형적 건축에 신경쓰면 무리한 헌금과 빚으로 은혜가 떨어지고 많은 물의를 일으키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았듯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산 돌이 되기 위해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 좁은 길로 따라가야 합니다.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아나 거룩해진 성도만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지상으로부터 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영적인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c)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하는 모임입니다.

마태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믿는 무리에게 성령이 함께 하셔서 기쁨으로 교제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함께 하셔서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작은 천국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나누면 힘을 얻어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d)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구약시대에는 율법과 제사로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신약시대에는 영(사랑)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드립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관습대로 행한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가장 큰 예물은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 하나님을 찬양하고 정성을 다한 물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e)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2/42~47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나누며 기도하더니 모든 혼 위에 두려움이 임하고 사도들을 통하여 이적과 표적이 많이 일어나더라.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지내며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또 날마다 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나누면서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

사도행전 4/32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한 마음과 한 혼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없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쓰니라.

초대교회의 성도는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면서도 기쁨으로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와 같이 선을 행하니 세상 사람들도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날로 믿는 자가 늘어났습니다.
이는 이웃 사랑을 명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며,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어서 자기 것을 나누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물질을 나누기를 매우 꺼려하고 인색해지기 쉽습니다.
거듭난 성도는 십자가 보혈로 이러한 죄성을 씻어내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께 인생을 믿고 맡기니 아낌 없이 남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남을 대가 없이 돕거나 섬기면 하나님께서 뿌듯한 기쁨을 부어 주십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더라도 이를 과시하지 말고 예수님이 알아 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교회가 외형적 성장보다 이웃 사랑에 매진할 때 세상도 교회에 대한 오해를 풀고 호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f)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곳입니다.

에베소서 5/26~27 이는 그가 교회를 말씀에 의한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깨끗게 하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서 점이나 주름진 것이나 또는 그러한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을 복음으로 교회 안으로 불러들여 변화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일이나 정치에 참여하거나 세상 추세를 따라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한 이 세상은 점점 타락과 멸망의 길로 가다가 마지막 때 심판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진리로 거룩해진다면 분열과 타락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g)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로 예수님과 하나 된 무리입니다.

에베소서 5/31~32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 둘이서 한 몸이 될지니라. 이것은 위대한 신비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관하여 말하노라.

성도가 예수님의 개인적인 신부라면 교회는 예수님의 단체적인 신부입니다.
교회와 예수님은 부부사이처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로 서로를 위하고 섬깁니다.
교회는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증거하며 예수님만 찬양하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무리입니다.
세상을 떠나 예수님과 하나 된 교회는 말세에 주님과 혼인잔치를 치루기 위해 들림받을 것입니다.

 

h) 교회의 헌금은 자발적으로 내야 합니다.

고후 9/7 각 사람은 미리 마음 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예레미야 23/1 주가 말하노라. 내 초장의 양을 죽이고 흩어 버리는 목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교회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음에 정한 대로 자발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인색하게 내거나 강요에 못이겨서 억지로 내지는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기쁘고 정성스럽게 낸 헌금은 교회운영과 선교와 구제를 위해 잘 사용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헌금을 강요하거나 사용해 성도들을 시험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i) 교회 지도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성도를 위하고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벧전 5/2~4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고 돌보되 마지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

목사, 장로, 집사 같은 교회 지도자는 세상 직분처럼 권세를 부리는 직분이 아니라 성도를 섬기는 직분입니다.
양의 목자 되신 예수님을 대신해 직분자들은 성도들을 사랑과 권징으로 바르게 이끌 책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억지로 하거나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성도를 권력으로 지배하려 하지 말고 거룩한 행실로 모범을 보여 자연스럽게 이끌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교회의 조건

교회의 진정한 주인


이진천 목사 
 
누구나 성경적인 교회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교회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르고 때로는 교회 안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하기도 합니다. 비록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대다수의 교회들도 막상 성경을 가지고 철저한 검증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면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교회가 완전한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지역교회(Local church)는 결코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나 요한계시록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서 보듯이 그들은 교회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많은 책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1.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이 가끔 혼돈을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는 교회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재산을 두고 분쟁하기도 하며, 주인 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교회에는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이 직접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가리켜 "내 교회"(마16:18)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부분의 외형적인 교회들은 목회자나 헌신적인 성도의 물질을 기초로 해서 세워집니다. 그 까닭에 교회가 그들의 소유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이들의 헌신이 없다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건물 중심의 교회는 세워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가정 교회 형태의 소그룹 중심의 교회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어찌되었든 초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교회는 외형적으로 규모 있는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주인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교회를 물질로 농락하거나 오염시키는 일들을 단호하게 차단하셨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상당한 부자 중에 하나인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을 드렸지만 재산의 일부를 숨겨 둠으로서 교회를 농락한 결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소유주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소유 안에서 누리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실제 소유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교회 안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 안에 사는 자들에게 규칙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규칙에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 어느 국가에서나 규칙에 따라 살 때 상을 주고, 규칙을 어기며 살아갈 때 벌하듯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 사는 자들이 규칙(말씀)대로 사는 자에게는 심판 후에 상을 주시고, 또한 규칙(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에게는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 된 자리를 결코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아무리 시대와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소유가 주님이신데 아직도 교회 재산을 놓고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상대방의 교회를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가 주님의 교회에 대하여 이처럼 무례한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간 큰 사람입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분명히 주님이 주인으로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사도행전20:28)

 

2. 교회는 세상과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사탄의 공격목표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현재 세상은 사탄의 권세 아래 놓여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다가 올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는 굴복 당하게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불 호수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 사탄은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주님의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교회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되어져 온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의 문화에 노출이 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공격해 옴으로서 쓰러뜨리고 곤경에 빠뜨립니다. 그 까닭에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깨어있으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벧전5:8). 우리가 육신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 보고, 말하고, 생각하는 활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곧 죄와 관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상과의 분리를 분명하게 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수많은 죄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요일5:4).

우리가 분리함에 있어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거짓 진리와 가르침"들입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주님의 교회를 위협하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이용되어져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수많은 부분에 걸쳐 성경과 다른 것들이 가르쳐지고 행해지는 것들을 봅니다. 그들은 그러한 일들에 대하여 아무런 가책도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교회의 변질을 가져왔습니다. 그것들은 사탄이 가장 즐겨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본래부터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러한 것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의식과 절기, 행사 등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경과는 관계없는 것들을 교회 안으로 들이게 함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습니다. 과연 오늘날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의식과 절기들, 그리고 행사들은 성경과 일치되고 있는 것입니까? 만일 성경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대부분 사탄이 교회 안에 심어 놓은 작품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교제하는 교회들은 어떠한 교회들입니까? 과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라면 모두가 교제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또한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다면 인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이단이나(딛3:10), 진리에서 벗어나거나 불법을 행하는 자(딤후2:19-22)들로부터 떠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분명합니다. 먼저는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살펴보고(고후13:5), 그 후에는 우리의 주변과 교회들이 바른 믿음 위에 있는지를 살펴본 후 교제를 해야 할 것입니다.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분리되어 사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이들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신실하게 살고자 한다면 오히려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교회 안에 속한 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복음 안에서 살며, 전하는 자들에 대하여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고전1:18). 그러나 비록 어리석다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가 흠이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3:13)

 

3.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한 때 한국의 어느 유명한 목사가 주장한 "무리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그 개성에 맞는 성도들끼리 모인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한 말입니다. 가령 기도하는 교회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모이고, 성경공부를 즐겨하는 교회는 성경을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성도들이 모이게 되고, 구제와 봉사를 좋아하는 교회는 구제와 봉사를 필요로 하는 자들과 몸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모이고, 전도를 즐겨하는 교회는 자연히 전도하기를 즐기는 성도들이 모이게 될 것이고,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교회는 병자들과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교회가 가지는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온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모든 몸의 기능을 손과 같이 하십시오"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그를 향해 미쳤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몸의 기능은 각 지체마다 다른 역할을 하도록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인 교회는 각 지체(성도)마다 다른 역할을 담당하도록 구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고전12:14-21). 만일 성도들로 하여금 동일한 역할을 하도록 요구한다면 그는 아마도 문제가 있는 지도자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몸에 약하게 보이는 것일수록 더욱 요긴한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고전12:22). 여러분은 눈이나 입, 귀와 같은 것들이 강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러한 것들은 조그마한 상처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몸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체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교회 안에 속한 성도들 가운데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온 성도들이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몸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한 마디로 생각에 따라 몸이 움직여 주는 것입니다. 만일 생각 따로 몸 따로 움직인다면 이는 분명히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하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가지 않고 세상의 전통과 풍습을 따라 간다면 이는 분명히 정상적인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오직 주님의 명령을 따라 힘 있게 운동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아니 지금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만일 주님의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반드시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다 지체라(고린도전서12:27)

 

결론

성경 어디에도 건물을 가리켜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교회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모인 여러분들입니다. 비록 건물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주님의 교회에 속한 자들이며, 또한 각 지체(member)입니다.

오늘날 현란한 교회 건물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오늘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제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 속에서 많은 회중들과 함께 찬양을 하고 말씀을 듣고 경배를 한다고 할지라도 오늘 내가 주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또한 그 안에 속하지 않았다면 그는 주님의 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교회의 지체(member)가 되어서 살아가십시오. 이제부터 여러분은 결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만일 구경꾼이 된다면 우리의 교회는 불구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있는 위치와 소명을 알고 최선을 다하여 건강한 믿음의 삶을 경험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 그리고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어 가는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의<신약교회> 특징

 

1.이 교회의 창설자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자들 곧 제자들로 교회를 조직하셨다.

그리고 이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다른 제자들이 제자를 삼게 됨에 따라 또 다시 다른 교회를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Bapt. Successions-Ray-Revised Edition 1st Chap.)

 

2. 이 조직체 즉 교회에는 성서와 사도 및 초대교회가 실시하였던 규례에 따라 두 종류 즉 오직 두 가지의 직급 목사와 집사가 있었다.

목사는 감독이라 불리웠으며 목사와 집사 이들은 다 교회에서 선출하되 교회의 종 이엇다.

[목사와 집사는 교회 안<교회밖이 아닌 교회안의 성도들중에서..>에서 선출함, 목사는 교회를 섬기는 낮은 자 인 종이며 결코 교회의 지배자가 아님]

 

3. 교회에는 그 운영과 회원을 훈계함에 있어서 <다른 교회로부터 서로 완전히 분리되며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예루살렘은 안디옥을 다스릴 권리를 가지지 않았엇고 안디옥은 에베소를, 에베소는 고린도를 다스릴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운영은 회중적 곧 민주적이어야 한다.

[교회 위에 교회 없고 교회 밑에 교회 없다는 말이다.

교단이나 총회가 교회 위에서 교회를 관리, 감독하는 것은 조직적 지배구조인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양심에 따라 오직 성서대로 믿을 수 없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기도하다.]

 

4. 교회에는 단 두 가지 의식이 주어져 있는데 이는 곧 침례와 주의 만찬이다. 이러한 것은 계속적인 것으로 또한 기념으로써 시행되어져야 한다.

[신약교회 2.000년 역사에서 1.200이라는 긴 박해의 기간 동안 순교한 약 6.000만 명이 넘는 믿음의 선배들이 박해자 로마카톨릭으로부터 붙여진 죄목이 유아 세례를 거부한자 와 침례를 행한 자 란 것이었다.]

 

5. "구원받은"사람들만을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 들여야한다. (행2:47)

이러한 사람들은 어떠한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다만 은혜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며 (에베소 2 : 8 , 9)

이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태 28:19)

그리고 이렇게 구원을 받고 침례받은 사람들만이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 만찬은 오직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교회에서 거행되어야 한다.

 

6.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성경 그것만이, 사실은 신약성서 그것만이 조직체로써의 교회뿐만이 아니라 그 조직체에 속한 회원 각 개인의 신앙과 행위 바르게 하는 유일한 기준과 지침이 된다.

[교회의 모든 교리는 신약성서 오직 그것뿐이라는 신앙을 지켜옴]

 

7. 이 조직체의 창설자이시며 그 회원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유일한 주이시며, 입법자이시며 그 교회의 유일한 머리가 되신다.

교회는 다만 주의 뜻과 완성된 말씀[신약성서]을 실행하는 집행부이며 결코 전해내려 온 <진리를 수정하고 삭제하여 새 진리를 제정하는 입법부> 가 되어서는 안된다.

 

8.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인적인 것이어서 순전히 자발적으로 또는 권유에 따라 밭아들여지는 것이지 강압적으로 또는 국가 권력의 강압적으로 되어질 것이 아니다.

분명히 개인적이며 각자가 선택하여 할 것이다.

이는 성서 명령이시며 누가 대신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살아갈 수 없는 것이며 강압적으로 되어질 것도 아니다.

 

9. 주의하시기 바란다. 그리스도께서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오늘날 알려져 잇는 카톨릭이나 루터교회 또는 장로교회나 감리회 등등 이러한 교파적인 호칭을 주신 일이 없다.

다만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제자라 부르셨고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에게는 제자들이라 부르셨다. 그 제자들의 조직체는 예루살렘이나 안디옥 또는 그 밖의 어느 곳에서나 교회라 불리 웠고 이러한 분리된 조직체가 하나 이상일 때에는 교회들이라 불리 웠던 것이다.

교회라는 단수 용어는 하나 이상의 조직체에 대해서는 결코 쓰이지 않았었고 그 모든 교회들을 말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10. 나는 또 하나의 특징을 말씀드리려 한다.

우리는 이것을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적인 교회들을 세속적인 정부와 결합 또는 혼돈 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모든 사람에게는 완전한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옮긴글

 


 

침례교회 신앙

 

신약교회에는 다음과 같은 틀림없는 몇 가지 특징이 확증되어 있다.

그것은 서기 1.120년 , 윌덴스파 교회의 신앙선언과도 같은 것이며
이 신앙고백은 오늘날에 침례교회의 신앙선언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1) 그 교회의 창시자는 그리스도 예수다 (마 16: 18)
(진실한 교회만이 진실한 교회를 전파시키고 행동할 수 있다.)

2) 그 교회가 가질 수 있는 허락된 직분은 두 가지 뿐이다.
- 행20:28 ,빌1:1, 딤전3:1, 행6:1-6)목사와 집사이다.

[목사와 감독과 장로는 하나의 직분으로서 세 가지로 달리
부르는 이름이며, 3가지 직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

그들은 교회의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이며 지배자는 아니다.
그런데 교회의 목사가 지배자로 되었을 때에 교회의 타락이 시작된다.
(목사지배의 교회 )

3) 그 교회는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교회이며 운영은 회중 제도이다.
즉, 하나 하나의 교회는 주의 몸이며 주 예수로부터 대 사명(마28:19-20)
을 위임받아 그 명을 수행함에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를 갖는다.

4)그 교회는 오직 두 가지의 예전을 갖고 그것을 성서적으로 충실하게 지켜 행한다.
즉, 밥티스마(침례)와 주의 성찬이다.

5)그 교회를 구성하는 회원(성도)은 모두 거듭남(새로태어남, 본 어게인)의 체험을 가져야
하며, 그 후 신약의 올바른 교회에서 시행되어지는 성서적 밥티스마[침례]를 받은 자들이다.

6)그 교회에서 시행하는 밥티스마[침례]는 신앙인에 대한 침례로써 되어진다.
즉, 유아 세례를 부정한다.

7) 그 교회의 구원의 교의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으며,
결코 의식이나 율법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8) 그 교회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기록되어진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 만이
그 신앙과 생활을 완전하게 하는 충분한 규범이라고 믿는다( 딤후3:16-17)

9)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머리로 하고, 구주로서 따르며, 예수만이 교회에 대한
율법(규칙)의 수여자 이시며, 교회는 단지 그 율법(규칙)의 충실한 수행자이다.
(따라서, 교회는 신약성서의 말씀의 권위에 전적으로 복종 한다- 약4:11-12).

10)그 교회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한다. 따라서 모든 교회의 활동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자유의지를 기본으로 하며 결코 다른 사람을 강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강제되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박해를 당해 왔지만 결코 다른 사람을 박해하지는 않았다.

11)그 교회는 지역적이며 눈에 보이는 가시적 회중(성도)에 의하여 성립된다.
통합적이며 불가시적 교회는 아니다.

12)그 교회는 교회 규칙(치리)을 지키고 영적인 청결로써 형제 사랑을 강조한다.

13)그 교회는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한다.

14)그 교회는 항상 선교적이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는 (딤전3:8-13)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 중의 하나가 집사 직분이다.
그리고 교회부흥에 중요한 위치는 차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집사직분이다.

1. 집사를 세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1) 사도들의 협력자로 세웠다(행6:1-4) - 여기에서는 집사라는 말이 문맥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집사임이 틀림없다.
2) 구제 사업을 전담하도록 세웠다(행6:1-4) - 집사는 목사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뿐 아니라
    교회의 어려운 일을 맡아야 한다.
3) 복음전도를 위해 세웠다(행7장) - 모든 집사들은 스데반 집사와 같이 목숨을 걸고 전도하는 일에
    앞장을 서야한다.

2. 집사 직분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원어(디아코노스)의 뜻은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신복, 수종하는 자를 뜻하고 있다.
2) 교회의 일군(롬16:1) - 사도들의 신임을 받고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자가 교회의 일군이 되었다.
3) 섬기는 자(빌2:30) - 죽음을 겁내지 않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라야 교회의 일군이 되었다.
  (1) 주인의 뜻을 분별하여 섬겨야 한다 - 자기의 뜻대로 섬기는 자는 좋은 일군이 아니다.
  (2) 띠를 띠고 섬겨야 한다(눅12:35) - 단정한 자세로 주인을 섬긴다.
  (3)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든지 부르면 대답하고 시키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4) 사환(마22:13) - 주인의 명령을 집행하는 자로서 주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5) 사역자(고전3:5) - 새신자 양육을 돕는 자로서 항상 신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3. 집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인가?

1)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행6:3) - 체험적인 신앙인
2)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행6:3) -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
3) 믿음이 충만해야 한다(행6:5) -  믿음으로 일하는 자
4) 칭찬을 받는 자야 한다(행6:3) - 성도들의 모범이 되는 자
5) 품행이 단정해야 한다.(딤전3:8) - 덕스러운 생활을 하는 자
6) 일구이언하지 말아야 한다(딤전3:8) - 말에 책임을 지는 자
7)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딤전3:8) - 생활이 구별된 자
8)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딤전3:8) - 정직한 자
9) 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한다(딤전3:9) - 믿음을 귀히 여기는 자

결론 

  집사의 직분은 이름대신에 부르라고 붙여준 이름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 선택받은 하나님의 일군이다.
  그러므로 집사의 직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고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자


옮긴글

 


 

평신도 대신 성도라 부르자

교회에서 평신도는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 계급제도화 

 

평신도는 성경에 나오는 용어가 아니다. 평신도(라이코스)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말이며 초대교회는 직분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은사 중심의 교회였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동역자들이었다(고전 12). 성직자와 평신도에 대한 개념이 성경적으로 지지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평신도라는 말로 인해 이들의 신분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낮은 신분'이 되었다. 히브리 성경을 번역한 그리스어 판본 성경에서는 라오스(laos)라는 말은 당시 다른 이방인들과 대비되는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초창기 그리스도교 문헌을 보면 평신도란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로 교회 공동체를 일컬을 때 사용했다. 사도, 형제 자매 등의 말과 자주 혼용해서 사용한 것이다. 

직분 없는 낮은 신분 

이렇듯 교회가 생긴 초창기에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전체(성직자 포함)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그러다 평신도란 말을 라오스(laos)의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교회에서 평신도는 지위가 낮은 신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모든 지체는 하나의 몸을 구성한다. 따라서 더 귀한 자도 없고 더 낮은 자도 없이 모두 평등하다(고전 12:24,25).

평신도라는 용어는 교회를 분리한다. 목회자, 장로, 집사 모두 교회의 직분자이며 또한 성도다. 목회자,장로, 집사 할 것 없이 거듭난 그리스도인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지체요 형제이며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다(벧전 2:5,9).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요삼 1:9)가 있어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이분법으로 교회를 분리하고 있다. 목회자와 장로, 집사를 구별하는 용어로 평신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은혜의 신약시대에 구약에서 제사장들처럼 자신들을 특별한 사제직인 위치에 올려놓고, 평신도(?)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는 목회자도 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서로의 기능을 수행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유지한다. 따라서 기능상의 구별은 존재하지만 신분상의 구별이 되어서는 안된다.

천주교에서조차 평신도를 대체할 용어를 찾고 있다. 평신도는 헬라어 라이코스(laikos)로 라오스(laos:백성)에서 파생된 단어로 일반 백성을 의미하였으나, 주후 95년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대제사장,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과 구별되는 '직분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평신도라고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성직자와 평신도의 혼인에 대하여 언급하는 부분에서 사제와 대조시켜 평신도라는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 후 로마 가톨릭에 의해 성직 계급과 평신도로 나누는 행위가 교리화되었고, 1950년대 가톨릭 신학자 핸드릭 그래머, 반 룰러, 이반 콩가르가 '평신도 신학'을 주창해 평신도 개념을 고착화했다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평신도라는 말이 교회의 계급을 전제로 하는 부정적인 뜻을 지닌 말이라 하여 주교회의에 개정 건의가 올라와 검토했으나 마땅한 용어를 찾지 못했다"며, 주교회의 용어위원이 대체용어의 공개 모집(?)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사목, 2001.7.15).

교회 일치에 합당한 '성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평신도라는 이름은 계급제도라는 종교적 형태를 교회에 뿌리박게 하였다. 교회는 목회자 중심의 교회로 여겨졌고, 평신도는 교회의 부속으로, 2차적인 위치로 생각하거나 취급하는 경향이었다. 유기체로서 교회의 진리는 인간 조직의 계급제도 안으로 실종되었다는 자성의 소리도 들린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계층적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제사장직을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21세기에서 15세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각종 교육 기관 등이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평신도(?)를 위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는 베드로의 경고를 기억한다면, 권위의 산물인 '평신도'라는 이름부터 쓰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 모든 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성도가 있다. 성경에 적힌 사례의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어 '게도오시임'은 거룩하게 구별된 이스라엘을 지칭하고 있다(신 33:3,시 16:3,34:9). '하시딤'은 경건한 자, 율법에 충실한 자를 말한다(시30:4,31:23,37:28,50:5,52:9). 헬라어 '하기오이'는 신약에 62회 기록되어 있으며 거룩한 자, 깨끗하게 구별된 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행 9:13,41,26:10, 롬 1:7,고후 1:1,13:12 엡 1:1,3:8).

헬라어로 성도(saint)라는 단어는 그 어원상 '거룩한'(holy)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우리를 옛 생활방식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살게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라는 이름을  버리고 성경적이고 교회 일치를 위해 성도라는 본래의 이름을 쓰자고 제안한다. 
 

이완호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등대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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