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선교 대상의 변화에 따른 국가와의 대면접촉 관계성 다변화
1. 들어가며
전통적인 목회 방식의 전도가 대부분이었던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산업선교의 방식은 전면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위주로 전개되는 경제개발 정책이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는 곳에 출발점이 있었다. 교회는 국가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본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지역이 영등포와 인천 지역이었다.
교회는 노동자 성서연구와 예배, 노동자 그룹 활동,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 노동조합운동과 의료 활동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유신체제의 탄압 그리고 유신정권의 종말 이후, 5공화국 정권에까지 탄압은 지속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탄압속에서도 산업선교는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으며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한국사회의 전면에 대두하게 되는 토대로써 작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산업구조가 2차 산업 중심에서 3차 산업으로 구조조정을 경험하게 되면서 서울의 대표적 산업공단이었던 구로구와 영등포를 비롯하여 인천과 경기도의 산업공단을 중심으로 생활세계를 영위하고 있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이탈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1980년대에 들어서 한국인의 평균학력이 높아짐으로 인해 공단의 생산 직종에서 일하기를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일조를 하였다. 이러한 생산현장의 인력 공백을 채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중국동포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3세계로부터 한국사회에 이입된 이주민들은 출신국의 열악한 경제 환경 요인에 의해 빈곤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결국 한국 산업구조속에서의 인력의 공백과 이주민의 빈곤한 삶은 이주민이 한국사회로 이입될 수밖에 없는 ‘필요충분 조건’이 정확하게 부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선교와 노동권 사이에서
1) 외노협과 이주노조
이주노동자가 노동운동의 주체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현 서울경인 이주노동조합(MTU-Migrant Trade Union)의 전신인 경인노조가 출범하면서 이주노동 운동의 주체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지만 경인노조의 출범 이전의 이주노동자 운동은 주로 종교계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조직이 ‘외국인 이주․노동 운동 협의회’인데 본래의 명칭은 ‘외국인노동자 운동협의회’(이하 외노협)였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사를 되짚어 볼 때 외노협의 활동은 많은 업적을 이루어 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첫째, 한국사회에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한 심각성을 공론화 시켰다는 점이다. 서울의 지하도에서 한약재를 팔던 중국동포들과 경기도 지역의 작은 공단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채 삶을 영위하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문제에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던 한국인들에게 이들의 실상을 고발함으로써 한국사회 속에서의 불합리성을 자성할 수 있게 만든 계기였다. 둘째, 한국정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는 점이다.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에 관해 침묵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실상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는 한국정부를 움직이게 하였으며 만족 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정부도 서서히 이주노동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셋째,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의 중요한 주체적 세력이라는 점이다. 현재 외노협에 가입된 회원 단체수는 40여 단체로서 가장 큰 규모의 조직이다. 이는 한국정부의 대화 창구로서 정부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제문을 써 주신 이정호 신부 역시 외노협의 회원단체인 남양주시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 샬롬의집의 관장을, 김해성 목사는 (사)지구촌 사랑나눔의 대표를 각각 맡고 있다. 이분들은 선술 되었던 외노협 활동의 선봉에 서서 이주노동자 운동을 이끌었던 사실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노협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주노조의 입장은 외노협과 궤를 같이 하고 있지 않다. 이주노조의 입장에서 외노협은 이주노동자가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시혜의 대상으로만 존치되는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노협의 운영은 회원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주노동자는 외노협의 의사결정에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 이주노조와의 입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노동허가제’와 ‘고용허가제’에 관한 입장 차이다.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던 외노협과 고용허가제를 거부하고 노동허가제의 도입을 요구한 이주노조의 입장 차이는 순수한 노동권을 고민하는 이주노조와, 선교와 노동권을 복합적으로 고민하는 외노협의 원론적인 입장 차이로 환원될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외노협의 이영 사무처장의 입장 표명에 의하면 외노협도 노동허가제에 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의 귀결 지점을 노동허가제에 두고 있음으로 이주노조와 큰 차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2) 국가와의 저항과 협력
이주노동자 운동은 성서적으로 해석했을 때 제집에 찾아 온 나그네를 보살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랑의 실천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면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적 헤게모니의 결집을 위한 기동전으로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선교는 국가 권력에 의해 탄압받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교회의 역할을 통해 노동자 내부의 결속력과 외부의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산업선교의 연장선상에 존재하고 있는 종교기관의 이주노동자 운동의 초기 모습은 국가와의 대립점에 위치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신체제와 5공화국의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일상화 되었던 시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문민정부 시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까지의 산업선교 모습은 ‘국가에 대한 저항’의 시기였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유화적 제스쳐를 취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과 소통의 창구를 열기 시작했다. 진보적 색채를 띄고 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에게 국가의 보조금을 비롯해 과거의 어느정부 보다 폭 넓게 지원하였다. 이러한 지원의 결과로 종교적 성향의 지원단체들은 괄목할 만한 내적․외적 성장을 보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를 ‘국가와의 협력’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출현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거두었고 종교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단체든 노동운동을 중심적 의지로 상정한 단체든 간에 대부분의 지원단체들은 한국정부로부터의 지원에 소외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또다시 ‘국가에 대한 저항’의 시기로 회귀 할 수 있슴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정부의 성향에 따라 운동권과의 관계설정이 변화할 수 있다는 증거이며 국가와의 협력관계 구축을 통한 이주노동자 운동의 한계를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맺음말
위의 논의 결과에 따라 이제 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의 방향성에 관해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국가 권력의 향배(정부의 성향)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이주노동자와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제반 조건을 구축하는 일이 이주노동자 운동에 몸담고 있는 모든 분들의 몫이 될 것이다.
한국산업 구조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지만 한국사회 구성원의 최하위층을 형성하는 이주노동자는 국가권력에 의해 삶의 지평이 좌지우지 되어서도 안되며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갈 대표적 민중집단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추후 이주노동자 운동에 몇 가지 첨언을 하면서 토론문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외노협과 이주노조, 그리고 인권연대를 아우르는 이주노동자 운동의 연대이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고언을 다시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이주노동 운동의 세역은 분열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주노동 운동권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강한 연대성을 담보하지 않더라도 정책적 논의라도 토론 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는 한국정부에게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 할 것이다. 둘째, 운동의 다변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외노협과 이주노조 소속의 이주노동 운동만을 지양하고 이주노동자의 직접적인 노동운동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금속노조 경주지부 영진기업지회는 1월 29일 이주노동자의 고용보장 및 처우 개선 등을 담은 단협을 체결했다 한다. 단협에서 노사는 “회사가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때는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또한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사업장 내 모든 노동자에게 3일간의 하계휴가를 부여키로 했으며 휴가비도 똑같이 10만원씩 지급된다. 설과 추석에는 현금 3만원과 선물을 한국인 노동자와 동등하게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상의 사례와 같이 한국인 노조에 이주노동자가 적극적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기존의 운동 방식을 다변화 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셋째,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운동을 지속 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의 구축이다. 정부의 지원 유․무에 따라 사업의 진행이 부침(浮沈)을 거듭한다면 지속가능한 이주노동운동의 활동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이주노동자 시책에 대해 표면적인 반대입장을 견지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을 배재한 새로운 경제적 토대의 뒷받침이야 말로 옳고 그름에 대한 대정부 발언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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