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자립교회 설립 방안
- 한국교회 자립의 관점에서 -
변창욱(장신대)
1. 들어가는 말
한국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설립한다. 현장 선교사뿐 아니라 후원교회에서도 교회 세우는 일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한국 선교사와 후원 교회들은 교회 세우는 일에 크나큰 열심을 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지에 어떠한 교회를 세우느냐? 그리고 그 세운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 가느냐? 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교 역사를 보면, 선교사의 재정 후원으로 지어진 교회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연약한 반면에, 외부의 재정적 도움을 받지 못한 교회가 더 건실하게 성장하고, 심지어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당한 기간에 현지 교회가 더 빨리 성장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위대한 세기’(Great Century) 혹은 ‘선교의 세기’(missionary century)로 불리는 19세기 말에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늦게 개신교를 받아들인 한국교회 선교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선교지에 불과했지만 복음에 높은 수용성을 보이며 놀라운 성장을 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가난했지만 초기부터 자립 ․ 자치 ․ 자전하는 교회로 자라가며, 외국 선교사의 재정 도움을 받지 않고도 중국이나 일본 보다 더 빠른 시기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설립 초기부터 자립하는 교회로 건강하게 성장해 온 한국교회가 진작 선교지에서는 자립하는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물질 의존적 교회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교지 교회는 약하고 교인들은 가난하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도울 마음과 물질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선교지에서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하느냐? 이다. 선교사와 한국교회가 안타까운 마음이나 선한 의도로 제공하는 도움이 건강한 자립 교회 설립을 가로 막거나 지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도착하자마자 교회 개척을 시도하면서도, 어떻게 자립교회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배우지도 못한 채 선교지로 나간다. 또한 선교지 자립 선교 방안에 대해 가르치는 곳이 없으며 자립교회 설립에 대한 적절한 교범(manual)도 부족한 형편에 있다. 따라서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 개개인이 적지않은 시행착오와 뼈저린 실패를 겪으면서 배울 수밖에 없다. 한국 선교가 본격적인 선교사 파송을 시작하는 1980년대 초부터 30여년이 경과한 지금,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WMC) 100년을 회고하며 새로운 10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의 시행착오를 되돌아보고 바람직한 자립 선교 방향을 모색한다. 특히 한국에 온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이 채택했던 네비우스(John Nevius) 자립 정책을 통해 성장한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자립 선교 역사를 통해 여러 교훈을 얻으며 선교지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건강한 자립 교회 설립을 위한 한국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2. 자립 선교와 돈 선교
A. 문제 제기
모든 서구 선교사는 돈을 많이 가지고 페루에 와서 귀족처럼 산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 기 힘든 지역이나 교통이 나쁜 곳, 아마존 밀림이나 안데스 산악 지대 등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하고, 생활하기에 좋은 수도 리마나 큰 도시의 아스팔트만 밟고 다니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명령만 하려고 하는 우리 교회의 적이다.
1986년 페루
한국 선교사들은 우리 덕분에 많은 돈을 모아(amass) 이곳에서 잘 살고 있다.
2003년 필리핀
첫 번째 인용은 1986년 10월 남미 페루의 안데스 산악 지대에 위치한 교회의 청년이 서구 선교사에 대해 내린 평가이며, 두 번째 인용은 2003년 10월 필자가 필리핀 선교사로 있을 때 마닐라 외곽에 위치한 신학교의 필리핀 교수가 한국 선교사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 당시 필리핀 교계 지도자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필자에게 충격이었고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기억하며 되씹고 있다. 그런데 한국 선교사에 대한 인식이 23년 전 남미 페루의 한 엘리트 청년이 미국과 서양 선교사에 대해 내린 평가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 컸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 설립 아니면 신학교, 선교 센터, 학교, 병원, 사회사업 기관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선교 사업에 엄청난 선교비를 보내고 있는데, 선교지에서 ‘돈 선교’(money mission) 한다는 비난을 공공연하게 받고 있다. 심지어 한국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언제까지 도와야 하는가? 라는 한탄과 자성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높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교회는 애당초 돈 선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교회는 한국 교인들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통해 홀로 일어섰을 뿐 아니라 성장한 교회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후발 선교지 타 선교지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노력은 한국교회를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자립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세움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만 잘 연구해도, 선교지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며, 보다 나은 선교 정책을 세워 추진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선교지에 어떠한 교회를 세우고 있는가? 서구 선교의 과오와 실수를 되풀이하여 같은 비난을 받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교회가 본격적인 선교사 파송을 시작한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를 기준으로 보면, 30여년이 경과한 지금 초기 선교사들이 은퇴하고 현지교회 지도자들에게 지도력과 교회 건물을 이양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그런데 선교사가 세운 교회가 자립선교의 기반위에 세워져 있지 않아서 넘겨주면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제는 한국 선교사들이 한국교회 자립 전통에 근거한 자립 교회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찾을 때라고 생각한다.
B. 자립 선교
서구 선교가 본격화된 19세기는 지리적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위대한 선교의 세기였다. 그러나 선교이론 면에서는 19세기 중반까지 어떠한 선교원리나 정책이 없이 선교사의 열정만으로 선교가 추진되었다. 아직 선교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검증된 선교 방법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영국 성공회 선교부(CMS) 총무 헨리 벤(Henry Venn, 1796-1873)과 미국회중교회 해외선교부(ABCFM) 총무 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 1796-1880)에 의해 선교의 최종 목표는 자립 ․ 자치 ․ 자전하는 토착교회의 설립이라는 삼자원리가 주창되었다. 이후 중국 선교사 존 네비우스(John Nevius, 1829-1893)는 삼자이론을 자신의 교회개척 경험을 바탕으로 선교지 상황에 맞게 좀 더 분명하고 실천가능한 방법론으로 발전시켰다.
네비우스 방법은 현지 전도인들을 고용하는 “옛 방법”의 실패를 경험한 후, 새롭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교회개척 방법론으로 고안되었다. 처음부터 외국 선교자금에 의지하거나 유급 전도인을 고용한 교회는 “모식신자(謀食信者, Rice Christian)를 양산할 뿐 결코 “자립”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현지교회가 자립의지를 상실하고 선교사와 외부 지원금에만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지교회의 자립을 저해하는 옛 방법을 포기하고, 외부 선교자금의 유입과 선교부의 봉급을 받는 현지 사역자 수를 최소화하는 한편(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보수를 받지 않는 현지인 전도자의 사용을 극대화하는 “새 방법”을 제창하였던 것이다.
한국에 온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20대 후반의 선교 경험이 전무한 젊은이들이어서 중국의 베테랑 선교사 네비우스를 초청하여 한국에 적용할 선교방법을 배우기 원했다. 네비우스는 1890년 5월 상해에서 열린 제2차 중국 개신교선교사대회에서 “선교방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후, 1890년 6월 안식년을 떠나는 길에 서울에 두 주간 머물며 한국의 선교사들에게 자신의 선교 방법론을 전수했다. 이후 주한 장로교선교부는 그 초기부터 네비우스 자립 선교방법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여 거의 모든 장로교선교사들에 의해 수용되었고, 특히 언더우드와 마펫(Samuel A. Moffett)에 의해 네비우스보다 더 철저하게 자급(自給)의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1891년 미 북장로교 선교부가 발표한 선교정책을 보면, 모든 면에서 자립 원칙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보수를 받는 현지인 사역자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고, 미션 스쿨(mission school)의 경우에도 교과서 값은 받도록 하며 학비도 무료로 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또한 신학반의 경우, 숙박과 식비는 각자 부담하게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교통비만 지원하도록 했다. 찬송가와 성경을 비롯한 전도용 책자들도 무료로 배부해서는 안 되며 최소한 생산비의 1/3 이상에 판매하도록 했다. 자립 원칙은 당시 의료사업에도 반영되어, 극빈자를 제외하고는 무료진료를 지양하고 적은 진료비라도 내게 하고 입원환자는 자신들의 침구를 가져와야하고 식비를 지불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병원 설비(plant)는 선교자금으로 구입했지만, 병원 운영비 대부분은 환자들로부터 받는 진료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1886년 초 언더우드에 의해 고아원으로 시작된 소년학교(경신학교 전신)도 1890년 9월 마펫이 새로 책임을 맡고서 무료에서 유료로 정책이 바꾸었다. 즉 부모로부터 학비 일부를 부담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후 입학시켰으며, 여름방학 때는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었다. 또한 1896년에 부가된 미 북장로교 주한 선교부의 시행세칙에 의하면, 선교부의 학교 운영비 보조가 절반을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최소한 50% 자립을 목표로 한 것이다.
1893년 1월에 조직된 한국 장로교선교부공의회에서 채택한 10가지 선교정책 중에 “진취적인 교회는 자립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한국교회 중에 외부[선교]자금 의존비율을 줄이고 자립비율과 헌금하는 교인들의 수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자립 선교 원칙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마펫 선교사는 1897년 교회 자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토착교회의 자립 정책은 전적으로 개인 선교사에게 의존한다. 만일 개인 선교사가 그 방 법이 최선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면 토착교회로 하여금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확신이 없으면 선교본부에서 토착교회 자금 지원을 철회해도 토착교회에 돈을 주지 못하 게 막을 방법이 없다. 선교사는 본부 외에 다른 곳에서도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네비우스 자립 선교 원칙에 따라 선교한 지 19년이 되던 1909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한국인 사역자 사례비 지불과 신축 예배당 자립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1> 한국인 사역자 사례비 자급 현황(1909년)
한국인 사역자 수 |
한국교회 전액 부담 |
한국교회 + 선교자금 지원 |
한국교회 부담비율 |
1,052명 |
991명 |
61명 |
94.2% |
위의 <표-1>을 보면, 1909년 당시 1,052명의 한국인 유급 사역자 중 991명의 사례비를 한국교회가 전액 감당하여 94.2%의 매우 높은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 그 나머지 61명의 교역자들은 한국교회가 전액 재정 부담이 어려웠기 때문에 선교사의 재정 후원을 부분적으로 받기도 했으나 그 비율은 단지 5.8%에 지나지 않았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교회 개척을 시작할 때마다 현지 교역자 고용문제는 늘 주요 문제로 대두된다. 풀러신학교의 박기호 교수는 필리핀 선교사로 사역하던 초기에 선교사들(GMS) 간에 다음의 2가지 자립 방안을 놓고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소개한다.
첫째, 사역 초기에는 자유롭게 현지인을 고용하여 사역을 촉진시킨 다음 점차적으로 자 치, 자립, 자전하는 교회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견과, 둘째, 봉급을 주고 현지인들을 고 용하여 교회들을 개척하는 일은 처음부터 지양하고, 철저하게 자치 · 자립 · 자전하는 원 리 위에서 교회들을 개척하자.
박기호는 현지인을 돈을 주고 고용하면 처음에 교회수도 급속히 늘어나고 교인들도 늘어나지만 자립 교회에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현지인 교역자를 고용하지 않으려던 선교사도 조급한 마음과 후원교회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를 개척한 후 처음에 현지 교역자를 돈으로 고용했다가 몇 년 내에 순차적으로 지원 액수를 조금씩 줄여 나가는 방법을 사용한 경우에 목표한 기간 내에 자립에 성공한 교회는 없었다고 보고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지 교역자를 고용하여 점차적으로 지원금을 줄여나가는 방법(gradual reduction)은 서구 선교부가 1950년대-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사용해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방법에 의해 완전 자립까지 이른 교회는 거의 없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심리적으로 “이 교회는 내 교회”라는 인식이 현지 목회자와 교인들 속에 생겨나지 않는 한 자립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표-2> 예배당 건축비 조달 현황(1909년)
예배당 수 |
한국교회 전액 부담 |
한국교회(2/3) + 선교자금(1/3) |
한국교회 부담비율 |
800개 |
780여개 |
20여개 |
97.5% |
위의 <표-2>를 보면, 1909년 세워진 800개의 교회 중에 780여개가 선교사의 재정 지원 없이 한국 교인의 전적인 헌금으로 세워져 97.5%의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 그 밖에 한국교회가 건축비 2/3를 감당하고 선교사로부터 나머지 건축비 1/3을 지원받아 건축한 20여 교회가 있었다. 또한 1912-13년의 미국 북장로교 평북 선천 선교지부의 선교규범에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자립 원칙이 강조되고 있다.
1. 자립 교회를 세우려면, 처음부터 자립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2. 빈곤의 문제는 자립 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3. 예배당 건물은 외국 선교자금으로 건축되어서는 안 된다. 4. 현지인 전도자나 교역자 사례비를 선교자금으로 지불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선교 초기부터 자립정책을 철저하게 적용시켜 나갔다. 그 결과, 전도 사업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자급을 이루었고, 교육과 의료 사업에 있어서도 상당한 비율의 자립을 이루었다. 의료 사역 특히 선교 병원(mission hospital)은 의료 장비의 구입과 유지를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전세계적으로 많은 선교 병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하여 폐쇄된 병원도 있고, 현지 정부에 이양해준 병원도 있고, 병원 문을 닫는 대신 시골 지역으로 이전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선교 병원을 계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자립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참고로, 영국 성공회가 1909년 충북 진천에서 진료소로 시작한 애인병원(愛人病院)의 1911년-1913년 재정 수입을 보면, 환자 치료수입은 총수입금의 40% 정도를 차지하여 약40%의 재정자립도를 이루었다.
많은 선교 병원들이 구호 사업의 일환으로 전개되다 보니 영세한 규모의 팀 사역 보다 1인 진료소(dispensary) 형태로 여러 선교 지부에 분산되어 운영되거나, 고비용이 드는 병원보다 이동 진료소(mobile clinic) 형태로 유지되기도 하며, 때로는 지속적인 후원을 받지 못해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또한 30-40년 전만 해도 선교 병원은 경쟁 상대가 없었다. 선교지의 병원 시설이 대부분 낙후되어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2/3세계의 선교지에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병원이나 민간 병원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선교사의 도움을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예배당을 세웠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선교사 교회가 아닌 한국인 교회였고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들은 교회에 더 큰 애착을 가지고 교회를 자립 운영해 나갔다. 자립과 관련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교회 건축 정책은 외국 선교비를 쓰지 않고 한국 교인들 스스로의 헌금으로 세우게 하는 완전 자립이 원칙이었다.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예외적인 경우에 선교부 자금으로 교회건축을 보조하지만 지원 액수가 총 건축비의 1/3을 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두 가지 방안이 있었다. 첫째 방안은, 현지 교인들이 교회 건축비 전부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경우에, 교인들이 건축비의 2/3를 부담하도록 하고, 나머지 1/3은 선교부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안은, 한국교인들이 건축비의 1/3을 감당하도록 하고, 나머지 2/3의 건축비 중에서 1/3은 선교부의 선교자금으로 지원하고, 나머지 1/3은 선교부 돈에서 빌려주고 3년에 걸쳐 갚아 나가도록 했다.
한국의 장로교 선교사들은 자립에 대해 공통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즉 그들 모두가 한국에서 자립 교회 설립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1910년 에딘버러(Edinburgh) 선교사대회(WMC)에도 자립이 쉽지 않다던 중국에서 완전 자립과 부분적 자립에 성공한 여러 선교 사례가 보고되었다. 예컨대, 중국 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가 개척한 산시성의 여러 교회는 자립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인근 마을의 전도자와 교사까지 후원하고 있었다. 인도의 경우에도, 선교부의 정책이나 선교사의 자립에 대한 확신이나 신념에 따라 각 선교지역의 자립도는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자립에 대한 선교사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선교사는 자립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1901년 영국 브라이턴(Brighton) 선교대회에서 우간다 선교사 터커(Alfred Tucker) 주교는 2,000개의 현지인 전도자, 27명의 현지 목회자, 700여개의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훈련하고 안수를 주기까지 “단 한 푼의 영국교회 자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모든 시설이 현지인에 의해 세워지고 보수되고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9년 후 터커는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가난하지만 그곳의 30명의 목회자와 2,000명의 현지 일군 사례비 전액을 현지 교인의 헌금으로 충당하며 자립하고 있다고 재차 보고했다.
그런가 하면, 이와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선교지도 있다. 선교사가 외부 자금으로 지어준 교회는 외부인의 교회일 수밖에 없다. 현지 교인들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마 6:21). 다음의 글은 미국의 선교팀이 남미에 가서 미국교회의 후원으로 교회를 건축해 주고 난지 2년 후에, 현지 교인들이 미국으로 급하게 보내온 편지 내용이다.
“미국에 있는 친구 여러분, 당신들이 이곳에 건축한 당신들의 교회 건물 지붕에 비가 새 고 있습니다. 속히 와서 수리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1934년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 50주년(희년) 대회에서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부는 현지교회의 재정 자립은 궁극적으로 현지 교회의 책임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자립 정책은 해외 선교비(Mission money)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교회 건축이나 현지 교역사 사례비 지불에 있어 현지 교회의 재정 책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선교대회에서 스왈른(W. L. Swallen)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자립 선교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처음부터 나는 한국 교인들이 아무리 가난해도 그들 스스로 교회 재정을 책임질 수 있 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어떻게 해나갈지 몰랐지만, 내 마음 에 그러한 확신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 각을 바꿀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1934년 출판된『미 북장로교의 한국 선교 50년사(史)』에서 로즈(Harry Rodes)는 “네비우스 방법 때문에 한국교회가 성장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 방법의 수용이 가능해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서 그는 급속한 교회성장이 일어나기 전에 네비우스 방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네비우스 방법이 한국교회 성장의 원인이었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네비우스의 방법이 좋다고 해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잠재적 역량이 없었다면 좋은 방법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선교 초기부터 한국교인들의 자발적인 전도열심(self-propagation)과 자립의지(self-support)는 남달랐다.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자기 교회의 교역자 사례비를 책임지려는 자립심과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며 자신들의 예배당을 세우기 위해 금지환과 금비녀를 뽑고 전답(田畓)을 헌납하는 교인들의 놀라운 헌금 열이 있었기에 네비우스의 선교방법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네비우스의 자립 정책은 한국교인들의 강한 자립과 구령 열정 그리고 독특한 민족적 특성의 여러 요인들이 합력하여 진원지인 중국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접목되고 뿌리내려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3. 자립 교회 설립을 위한 제안
(1) 처음부터 자립원칙을 고수하라.
중국에서 고안된 네비우스 자립 원칙이 그 진원지 중국에서는 실패하고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가난한 한국에서 성공했고 한국보다 부유한 중국에서는 실패했을까? 그 주된 이유는 "처음부터" 자립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의 경우 네비우스만 철저한 자립을 주장했을 뿐, 나머지 선교사들은 선교부의 자금으로 교회 건축을 하고 유급 전도인을 고용했다. 오랫동안 비자립 원칙에 익숙해진 중국 교인들의 관행을 바꾸어 자립으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선교사에 의해 자립 원칙이 수용되었기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2) 중류층 하층부나 하류층 상층부에 교회를 세우라.
자립교회는 일정 시간이 경과한다고 저절로 세워지지 않는다. 서구 선교사들은 하류계층이나 극빈층은 피하고 중류층 지역에 교회를 세웠다. 대부분 중산층 출신이었던 선교사들은 의식적으로 중류층 하층부나 하류층 상층부를 목표하여 교회의 청소년을 10년 이상 “교육”으로 문명화하여 한 단계 신분상승을 시킨 후, 중류층 중심의 자립교회 설립을 꾀했다. 이는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이 되면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수입이 증가하여 자립 교회의 재정적 기반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립 교회는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 훈련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이처럼 자립교회를 설립할 때 교회가 설립될 지역의 사회 계층과 지역 주민에 대한 세밀한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
(3) 현지인들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일어서도록 동기를 유발하라 .
현지 교인들에게 자신들은 가만히 있어도 선교사가 모든 재정을 책임지고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현지 교인들이 외부 지원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와 헌금을 하도록 가르쳐서 그 수입으로 교회의 재정을 책임지게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선교사는 처음부터 자립을 염두에 두고서 다양한 자립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선교사가 너무 성급하게 선교 자금을 가져와 현지교회를 세우거나 프로젝트를 하려는 태도를 견지하면 결코 자립의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한국의 서북지방에서 비슷한 시기에 사역을 시작한 장로교가 교세에 있어 감리교보다 급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로교가 처음부터 예배 처소를 스스로 마련하도록 교인들의 자립심을 꾸준히 키워온 반면, 감리교는 초기부터 선교부 자금을 가져와 교회를 건축하고 교역자 사례비를 지불하여 처음 한동안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후에는 교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즉 한국 감리교인들이 자력으로 교회를 세우고 교역자 사례비를 감당할 기회를 주지 못하고 너무 빨리 선교사가 외국 자금으로 미리 예배당을 세움으로써 교인들의 자립의지의 싹을 잘라 버린 결과였다. 그리하여 교인들이 선교사와 외부의 선교자금 의존적으로 길들여져 버렸다. 그 결과 1909년 평양의 장로교 교세는 감리교의 10배나 되었다.
(5) 교회가 들어설 지역의 수준에 맞게 교회를 건축하라.
우리는 서구식의 좋은 건물에 온갖 편의 시설까지 갖추어 선교지에 교회를 지어주려는 유혹을 흔히 받는다. 선교지에 외국 자본으로 시작된 많은 프로젝트는 때가 되면 현지인들에게 이양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양 이후에 발생한다. 선교사가 떠나는 경우, 현지 교인들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유지·관리·보수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고 경비가 과도하게 든다. 이로 인해 교회는 더 필요한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며 이런 문제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거나 교회 건물의 소유권 분쟁에 휩싸이기도 한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현지인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생각하지 못하여 생겨나는 문제이다. 선교지 교회는 교회가 들어선 지역 주민의 수준에 맞는 적정 규모와 시절로 지어주어야 한다.
(6) 선교지 상황에 따른 자립 방안을 세우라.
선교사는 선교지의 여러 여건과 상황을 잘 연구하여 현지에 맞는 자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 선교사 네비우스는 미국 뉴 잉글랜드산 사과와 배를 산동지역에 수입․ 보급하여 교인들의 소득 증대를 꾀했다. 한국 대구 지역에서 사역했던 안의와 선교사(James E. Adams) 선교사도 개량종 사과 묘목을 미국에서 가져와 교인들에게 보급하여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주려고 했다. 필자가 출석하던 필리핀의 마닐라 새생명교회(New Life Church)는 남부의 네그로스(Negros) 오리엔탈과 옥시덴탈 섬 지역에 개척한 여러 현지교회 목회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하면서, 몇 가지 자립 방안을 시도했다. 처음에 암퇘지 새끼를 나누어주고 잘 키워서 자립의 기반으로 삼기를 원했으나 새끼를 얻기도 전에 다 잡아먹고 말았다. 이후에 그 교회들에 망고나무를 심어주어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7) 완전 자립을 목표하되, 이것이 불가능하면 최소한 부분 자립에 대한 계획을 세우라.
일반적인 자립교회 개척이론에 의하면, 한국 평안도의 자립적 중산층 교회 설립과 성장을 통하여 입증된 것처럼 급속한 교회성장이 일어나는 도시나 교육받은 중류층에 교회가 설립되고 자립정책이 도입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자립교회의 설립은 선교의 궁극적 목표여야 한다. 그러나 자립 원리를 모든 선교지에 일관되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교회 성장이 느리거나 자립을 위한 경제적 기반이 거의 없는 소작농 계층이나 빈민층 지역에서 처음부터 자립정책을 엄격하게 적용하다보면 교회개척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마저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맺는 말
선교지 교인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립할 수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헌금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선교사는 결코 자립 교회를 세우지 못한다. 사실 현지교회가 헌금하지 않기 때문에, 더 가난해 진다. 한국교인들은 중국이나 일본 교인들보다 더 가난했지만, 한국교회만이 자립에 성공했다. 한국교회는 가난은 자립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중에도 생활비 전부를 드렸던 과부(눅 21:1-3)와 극한 가난 속에서도 힘에 지나도록 풍성한 헌금을 드렸던 마게도냐 교회(고후 8:1-5)를 축복하셨다. 또한 우리 한국교회를 축복해 주셨다. 우리의 이러한 축복이 선교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막아서는 안된다.
선교지 의존성의 문제는 단지 30년이나 50년 전에만 일어났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전세계 모든 선교지에서 교회 개척과 설립뿐 아니라 현지 목회자, 개발 프로젝트, 의료 프로젝트 등 선교의 제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제적 문제이다. 선교사들은 가난의 문제는 단지 돈이나 헌 옷을 가져다주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시혜자로서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수혜자 입장에서는 "의존성 증후군"(dependency syndrome)에 빠질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만일 선교사들이 100% 외부 자금으로 현지 목사의 사례비와 교회를 건축해주면 현지 교인들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일할 수 있는 잠재력을 송두리 채 빼앗아 버리게 된다. 건강한 교회는 외부 자금에 결코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 선교자금은 칼의 양날과 같아서 사용하기에 따라서. 현지 교회에 해가 되기도 하지만 유익을 주기도 한다. 성경도 우리의 유여(裕餘)한 영적 · 물질적 자원을 지혜롭게 현지 교회와 나눌 것(고후 8:14)을 명하고 있다. 하지만 선교사는 현지교회 지도자들이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선교사나 재정 후원자를 바라보게 해서는 안된다(빌 4:19). 우리가 나눌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보배인 “예수의 이름”이어야 한다. 현지인들과 ‘함께’(with) 하지 않고 선교사가 일방적으로 베푸는(for) 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선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우월의식이나 간섭주의적 태도(paternalism)에 빠지기 쉽다. 이 경우에 ‘시혜자-수혜자’의 일방적인 관계가 되고, 현지인들은 종속적이고 의존적인 관계로 고착화되기 쉽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바람직한 선교나 건강한 파트너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선교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선교사 자신도 현지 교회와 더불어 상호 배움과 나눔의 기회로 삼으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빌 2:5-7). 물량주의 선교의 폐해를 이해하고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 선교사와 후원교회 모두의 공동의 노력이 요청된다. 선교사는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건강한 자립교회와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선교사는 영구히 머무를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선교사의 역할은 한시적이어야 한다. 웅장한 선교 센터를 세우고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생각하며 반영구적으로 거주할 생각을 하는 선교사는 현지교회의 자립 성장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고 외쳤던 세례 요한처럼 우리 선교는 망하고 현지 교회는 흥해야 한다.
네비우스의 자립정책을 통해 자립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한국교회가 선교지 도처에서 물량주의 공세 때문에 비난받고 있는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물질적 축복으로 선교지에 많은 교회를 세운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네 물질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세워진 교회 대부분이 현지 교인들의 아무런 헌신이나 물질적 참여없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우리의 교회 개척 방식은 재고해야 마땅하다. 또한 선교지 교회 대부분이 빈민층에 세워져 있어 자립의 관점에서 볼 때 언제까지 도와야하는가 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선교사는 현지 교회 설립 뿐 아니라 설립된 교회가 완전 자립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부분적인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자립 선교 전통이 오늘의 한국 선교에 주는 교훈이며 도전이다. 얼마나 많은 교회를 세웠느냐? 보다는 어떠한 교회를 세웠느냐? 가 더 중요하다. 이제는 선교사와 파송교회 모두가 성급하게 가시적인 열매를 얻으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현지교회의 자립이나 리더십 이양(devolution)과 같은 장기적 안목에서 선교를 바라보아야 한다. 자립교회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외부 선교자금을 끌어와 현지 교회나 선교센터를 세우려는 과시적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나 외부 자금(外資)의 도입은 신중하고 지혜롭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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