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선교사의 삶과 사역] 한국에서의 중국선교 (정선영)

수호천사1 2012. 7. 9. 17:21

[선교사의 삶과 사역]
한국에서의 중국선교

첫 번째 사역 기간, 근로자 사역

중국선교에 대한 비전을 받고 중국 대륙에서의 사역을 꿈꿨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국에 있는 중국 영혼을 섬기도록 인도하셨다. 1994년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많은 중국인 근로자들을 섬기게 하셨다. 당시 국내 중국인만을 위한 사역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 역시 중국에 대한 이론적인 강의만 들었었지 중국인 사역 경험은 전무했다. 단지 중국인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교회사역을 시작했다. 굳이 전도를 하지 않아도 중국인들은 몰려들었다. 복음과는 상관없이 “교회에 가면 뭔가 도움을 준다더라.” 라는 소문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미 중국에서부터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숟가락 젓가락 이불까지 빌려달라고 요구한다. 당장 오늘 써야 되니까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면 다시는 사람과 함께 물건을 볼 수 없게 된다. 주일에 교회는 꽉 차지만 월요일 새벽부터 토요일 밤 늦게까지 사방팔방 그들의 도우미로 뛰어다녀야 했다. 대표 사역자는 이렇게 도우미 역할에 육체적인 시달림으로 몸이 피곤해지자 기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인가?’ 나는 사실 협력자에 불과했지만 사역의 포커스가 잘못되었다는 진단을 내렸다. 복음 없이 돕기만 하는 사역은 아무런 의미도, 열매도 없다.

  당시 휴대폰이 없던 시대인지라 교회전화로 중국에서 오는 전화만 받게 했지만, 틈만 나면 전화를 뜯고 개조해 국제전화를 걸어 전화비가 몇 십 만원씩 나오기도 했다. 1997년 한국에 IMF가 시작되어 1998년에는 공단의 공장 문을 닫으면서 중국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한 사람씩 교회에 모여들어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IMF와 함께 선교 후원금이 끊어지고 건물 월세는 밀리기 시작했다. 교회에 위기가 찾아왔다. 교회에 어려움이 닥치자 사역자도 성도들도 모두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결국 임대료 문제로 문을 닫았다. 이것은 단지 육안으로 보여지는 현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선교지는 치열한 영적 전쟁터라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화초가 아름답게 심어진 화원이라면, 선교지는 묵은 황무지라 표현하고 싶다. 황무지에 잡초를 뽑아내고 땅을 갈아 돌을 골라내고 화초를 하나하나 정성들여 심어야 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준비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역자가 용사로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열매가 없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는 실패를 통해 주님을 경험했다. 사역은 나의 열심으로서가 아니라 기도로서 주님과 친밀해 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목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6개월 휴직을 신청하고 골방기도 생활을 했다.


두 번째 사역 기간, 승선 사역

사역의 실패와 가정이 찢어지는 아픔과 상처가 더해져 그 무엇도 할 자신감이 없었다. 6개월 후에 사역 자체를 내려놓을 것인가 계속해야 할 것인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 물었다. “주님! 저는 기도와 전도 하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선교사는 한쪽 날개가 부러지고 비 맞은 새처럼 힘을 잃고 사역에 의욕도 없네요. 교회도, 동역자도, 재정도, 성도도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주님,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렇게 6개월을 골방에서 기도만 했다. 주님을 배반하고 낙심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와 주셨던 것처럼 주님은 나에게도 찾아와 말씀해 주셨다. “부부가 두 아이를 양육하며 야채 장사를 했다. 한 사람이 연약하여 쓰러져 함께 장사를 하지 못할 때, 그 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겠니?” 주님은 나에게 조용히 물으시는 것이다. “글쎄요? 혼자라도 그 자녀를 볼보며 열심히 야채 장사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 때 주님은 “그래, 그렇다면 너도 네가 하던 사람을 낚는 어부 일을 계속 해야 되겠네?” 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내게 중국어문선교회 인천지부를 맡기시고 인천항 중국 선박에 들어가 중국 선원들을 복음으로 섬기도록 하셨다. 우리는 그저 몇 마디 할 수 있는 중국어로 팀원과 함께 인천항으로 들어간다. 중국 선박을 찾아 올라가 식당으로 간다. 마치 우리 집처럼 식당에 들어가 가지고 온 중국어 성경책과 소책자, 전도지를 진열하고 기타를 치며 중국어 찬양을 시작한다. 한 두명 사람이 모여든다. 함께 찬양을 하고 있노라면 찬양에 관심 있는 사람과 별로 관심 없는 선원이 자연스레 구분된다. 우선 관심 있는 선원부터 우리 팀과 일대일로 짝을 지어 교제를 시작하다가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한다. 90%이상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다. 복음을 들으면 이들은 먼저 표정이 바뀐다. 너무 놀라고 신기하고 기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영생” 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 봤다는 것이다. 중국배의 정박한 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하루에 3,4척을 방문한다. 때로는 올라갔던 배를 반복해서 올라가기도 한다. 어느 날 올라갔던 배를 다시 올라갔다. 한 선원이 “선생님! 선생님이 준 성경책을 다 읽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 그래요? 성경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어요?” 내가 물었다. “예, 제가 두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가지는 제가 죄인이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함께 들은 우리 팀은 너무 놀라웠다. 잠깐 멍하니 서로 쳐다보기만 했었다. 30분 정도 복음을 듣고, 성경을 일독하고 바로 알게 되다니, 주님이 일하신 것이다. 

  한 번은 산동성에서 온 선장에게 복음을 전했다. 영접단계에서 그는 결정을 못했다. 미안하지만 좀 고려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럼 편하게 하십시오. 충분히 고려해 보시고 결정하십시오.” 라고 대답했다. 그 배는 매월 오는 배였다. 한 달 후 만나 물어보니 그는 같은 대답을 하는 것이다. 웃으면서 미안해하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계속 고려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기를 3개월이 지났다. 이후에 만나자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선생님! 나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했다. “어떻게요? 언제요?” 나는 신기해서 물었다. 이야기 인즉, 사실 한국 신문에도 크게 난 기사였었는데 이 선장의 배가 중국으로 가서 산동 앞바다 옌타이 항구로 들어가는데 항구 입구에서 한 배가 화재가 난 것이다. 비교적 큰 선박이었는데 옌타이 항구로 들어가는 입구 가까운 곳에서 난 것이다. 이 배는 반드시 그 화재가 난 배 옆으로 통과하여 들어가야 하는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화재 난 배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나를 도와주십시오. 우리 배가 화재 난 배 옆으로 무사히 통과하여 항만에 들어가게 해 주시면 하나님이 정말 계신 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겠습니다.” 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 배는 화재 난 배 옆의 항만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상태였지만 기도한 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기쁨과 감사 가운데 장말 하나님이 계시고 자신의 기도를 들으심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할렐루야! 역시 주님이 하셨다.

  연말 정책회의를 위해 1년 간의 외항선교 사역을 정리하고 통계를 내었을 때 1년에 선원을 접촉한 수, 선원에게 복음을 전한 수, 복음을 전하고 영접된 사람의 수 등을 통계로 낸다. 놀라운 것은 1년에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수가 천 명 이상인 것이다. 한국 인천항에 입항하는 배가 일정하지 않고 선원은 6개월에서 1년 마다 바뀌어서 복음만 전할 뿐, 양육을 할 수 없기에 여러 번 통신 과정으로 양육을 시도해 보았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간의 사역 이후 배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천항 정박료가 너무 비싸서 중국 선박들은 모두 평택으로 간다고 했다. 그래서 외항선교 사역을 정리하고 3년 간의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세 번째 사역기간, 함께 기도로 교회 세워가기

하나님은 안산 중국인 근로자 사역에 다시 부담을 주셨다. 기도 가운데 환상을 보여 주셨다. “많은 영혼들이 어둠 가운데 와서 어둠 가운데 방황하다 어두움 가운데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 주님께 계속 물었다. 주님은 이것이 안산이며 안산에 와 있는 외국인 영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사실 안산에서 많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보고 싶지도, 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님은 또 안산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주시는 것이다. 갈 2:20 말씀처럼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죽지 않았는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주님만 사시지 않았는가? 주님이 원하시면…….

  1999년 안산 반월 공단에서 만난 형제들 3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 1회 만나 양육을 시작했다. 3년 후, 이들은 ‘우리 교회가 생겨서 함께 예배드렸으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원했다. 교회를 개척할 만한 여건은 전혀 안 됐다. 감사하게도 안산 옆 시화단지 내 한 교회의 교육관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인 교회가 2002년 3월에 시작되었다. 첫 주에 19명이 모였다. 보통 50-60여 명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교회가 지금의 안산 원곡동에 있는 안산중화교회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안산은 이미 62개국의 외국인이 다녀갔고 현재는 16개국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16개국 중에 중국인이 80%이고, 중국인 중에 80%가 조선족이다. 안산중화교회는 안산 내 중국인을 복음화 하며 선교중국의 일을 감당하며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의 비전을 갖고 있다. 임대료 없이 5년을 다른 교회의 공간에서 예배드리고 있었는데, 주님은 6년째가 되고 나서야 독립을 하게 하셨다. 다른 교회에서 예배만 드렸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의 물건은 피아노 한 대와 성경책 뿐 이었다. 이사를 하게 되면 교회 건물을 얻고 보증금과 월세, 예배를 위한 모든 비품이 필요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공간을 찾되 비교적 싼 공간을 찾았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60만원인 공간이었다. 내부에 청소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몇 년 간 비어있던 공간이라 더럽고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바닥은 디럭스 타일과 그 위에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너무 오래 되어서 벗겨 내야 했다. 어떻게 청소해야 할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교회 성도들은 매일 노동하는 중국인 근로자가 아니던가? 성도들은 이사를 한다는 게 너무 기뻐서 형제 10명과 몇몇 자매들이 함께 이 작업을 시작했다. 불과 4시간 만에 바닥 디럭스 타일과 카펫을 걷어 냈다. 다음날부터는 이 공간을 예배실로 꾸미기 위해 최소한 500만원이 필요했고 당장 내일 100만원이 필요했다. 우리는 둥글게 모여 통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가 끝난 후 한 자매가 자신의 신용카드를 주면서 “선교사님 우선 이 카드에서 100만원을 찾아 쓰세요.” 했다. 사실 그 카드에는 딱 100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마침내 500만원이 채워졌고 또 어느 날 헌금 바구니 안에는 현금대신 또 신용카드와 비밀번호가 적혀있는 헌금봉투를 넣어 헌금 한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인 교회를 개척할 때 모두 한국 사람이 준비하지만 우리 교회는 한국인 동역자와 중국인 성도의 헌금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어느 날, S형제에게 간증을 부탁했다. 형제는 중국에서 오자마자 우리 교회에 등록했고 지금까지 7년 정도 꾸준히 출석하며 지금은 집사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 형제는 교회 오면 밥을 주니까 매주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한국에서 중문으로 된 책은 오직 성경책 밖에 없으니 성경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일 밤 12시까지 토요일에는 새벽 2, 3시까지 성경을 보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 라고 생각했다.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안 계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다면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제가 담배를 수년 동안 피웠는데 담배를 끊게 해 주십시오. 그럼 제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겠습니다.” 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담배가 피우기 싫어지는 것이다. 기도 외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는 전혀 생각조차 나지 않아 담배를 끊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 것이다. 또 십일조를 드려야겠다고 결심하고 월급 150만원의 15만원을 헌금 했는데, 그 다음 달 월급이 딱 십일조 헌금 금액만큼 추가된 165만원이 나온 것을 보고 정말 놀라웠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지만 늘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느헤미야 52기도(느헤미야 52기도는 하루 24시간 한 주간 144시간을 교회에서 한 시간도 빠짐없이 시간시간 열방을 위해 기도로 파수하는 사역이다-순회선교단)를 했고 이 기도 후에 새벽기도가 시작되었다. 비록 3D노동으로 피곤하고 힘들지만 새벽에 성전에 나와 기도하고 출근한다. 사실 나는 목회자이지만 거리상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내 사정을 아시고 차량을 주셔서 올해부터 새벽기도를 드리게 됨을 감사한다. 올해 첫 주에는 교회 자체 내에서 중국어성경 통독을 하게 되었다. 한 한국인 동역자 자매가 이 성경통독을 참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중 “이번에 이 성경통독을 참석하면 너의 소아당뇨병을 치료해주시겠다” 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믿음으로 병원의 인슐린 주사와 약을 끊고 성경통독에 집중했다. 감사하게도 그 소아당뇨 병이 깨끗하게  치료가 되었다. 연초부터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셨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또 1월 마지막 주에 제2차 느헤미야 52기도를 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중국인을 섬기기 때문에 제한받지 않고 영적으로 도움 되는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뿐만 아니라 중국선교를 통해서 선교중국으로 이 비전을 품고 나아가고 있다. 믿음이 성숙하여 봉사하던 형제자매들이 한 명씩 돌아갈 때면 아쉽기만 하다. 봉사자가 없을 것 같아도 하나님은 사람을 또 보내주시고 빈 자리를 채우신다. 반복해서 믿음이 자라나시게 하시고 열매를 보게 될 때는 또 중국으로 돌려보내신다. 한국에서의 중국인 교회는 나그네를 섬기는 교회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와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나고 믿음이 성장하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 땅 위에서는 영원히 자립할 수 없는 교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산의 고통을 경험하며 성숙한 믿음으로 귀국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음에 이 사역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국내에서 보안에 부담 없이 자유롭게 중국선교를 할 수 있는 것이 특권이고 또 하나의 축복이라 생각된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린다.


정선영 목사 | 안산중화교회 담임


출처| 중국어문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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