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과 적그리스도 21
요한계시록 17장④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6절 상). 금잔을 든 계시록 17장의 여자는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음녀는 교회를 핍박함으로서 중죄를 자기에게 쌓아올렸다. 오직 하나의 그리스도인 교회가 긴 박해 기간 동안에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수천만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곧 로마 카톨릭 교회이다. 중세기의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지성인이라면,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종교재판을 통해서 이단이라는 죄목 하에 잔혹하게 죽어간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로마 교황은 자신이 양심적으로 믿는 신앙 때문에, 로마교회가 강요하는 가르침과 우상숭배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서를 높이 쳐들며, 죽음도 불사하면서 죄를 대항하여 피로서 항거한 5천만의 남녀들을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살상한 것으로 추산된다.” H.G. 게이네쓰, 시대의 임박한 종말, 204.
“일찍이 인간 가운데 존재했었던 어떤 제도보다도 로마교회는 더 많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는 사실이 역사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진 개신교인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William 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the Spirit of Rationalism in Europe, 2권 p.35,37
우리는 다니엘 7장에서 ‘작은 뿔’의 신원을 밝히는 여덟 가지 특성들을 공부하는 가운데 어떻게 교황권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확인했다. 교황에 의해 잔인한 고문과 학살이 성도들을 대상으로 도처에서 자행되었다(http://cafe.daum.net/ALILANG/68AN/15).
그것은 유럽 역사의 암흑시대(the Dark Ages)라고 불리는 시기에 발생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소유했기 때문에, 라틴어 대신 일반 언어로 성경 구절을 말했다는 이유로, 즉 교황권의 정책을 부정했기 때문에 무수히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은 죄인을 산채로 태워 죽이는 형벌로서, 생각할수록 끔찍한 것이 화형이다. 화형은 일찍이 제국 로마가 기독교도들을 박해할 때 종종 사용하던 형벌이었다. 그런데 이 잔인한 처형 방식을 이교 로마(pagan rome)를 계승한 교황 로마(papal rome)도 이단으로 정죄된 개혁교도들을 사형에 처할 때 애용했다.
화형 집행 방법이야 대강은 알고 있겠지만 프랑스의 사례를 좀 더 실감나게 소개하면 이렇다. 화형에 처할 죄수가 있을 경우 미리 선정된 장소에 화형집행대에 해당하는 기둥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사람의 키 높이까지 짚과 장작을 몇 겹씩 쌓아올린다. 물론 기둥 주변에 죄인이 들어갈 수 있는 입구와 죄인을 묶기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만들었다.
죄수에게는 불에 잘 타게 하기 위해 죄수복 대신 유황이 칠해진 셔츠를 입혔다. 이윽고 죄수를 줄과 쇠사슬로 기둥에 단단히 묶은 후에는 죄수가 들어가던 입구 통로까지도 짚과 장작으로 채워 넣었다. 이렇게 한 후에 불을 붙이면 사방의 장작더미가 일시에 붙이 붙었다고 한다.
화형당하는 개혁교회의 선구자 San Isidro, 1172년
산 사람을 화마 속에 넣는 행위가 그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로마 교황이 개신교도를 처형하는 방식이었다. 『고문실의 쾌락』(자작출판사, 2001)이라는 책자에 보면 1796년 1월에 이단자에 대한 화형 집행 장면을 목도한 사람의 편지가 실려 있다. 편지에는 화형이 얼마나 참혹했던가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처형은 정말 잔인했습니다. 여자는 화염에 휩싸여 한 시간 반, 남자는 한 시간 이상 산 채로 고통 속에 몸부림쳤습니다... 죄인이 계속해서 갈구하는 것은 단지 몇 더미의 장작을 더 태워달라는 것뿐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화염은 타버린 만큼의 장작만 보충하면 똑같은 온도를 유지하며 탔습니다. 그의 간절한 탄원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줄지도 않았고 땔감이 더 많이 허락되어 죽음이 앞당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존 올드캐슬 경(Sir John Oldcastle)의 잔혹한 화형
그는 산채로 쇠사슬에 묶여 그의 발 밑에 불을 붙임으로써
천천히 타죽게 되는 무서운 판결을 받고
잔인하게 순교당했다, 1417년
(출처: 존 폭스의 책 'Christian Martyrs of the world')
Joy in Suffering Algerius, Rome, 1557
(Algerius의 순교 장면 Jan Luyken의 동판화)
머리 위로 끓는 물을 붓고 있다. 사제가 십자가를 들고 개종을 강요하고 있다.
화형 당하는 후스(Bohemian Richentalova Kronika, 15세기 초)
"교황은 교회의 머리가 아니며, 추기경들 역시
거룩하고 우주적인 교회의 전체 몸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머리이시며,
그의 택정함을 받은 자들만이 그 몸이며,
우리들 각자는 그 몸의 지체인 것이다.
-존 후스-
보헤미아의 개혁자 존 후스(1369~1415)는
그의 주요 저서「교회 위에서(On the church)」를 통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Body of Christ)’라고 정의하였다.
후스는 성직자들의 전통적 권위를 부정했으며,
오직 주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음을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관점을 설명할 기회도 받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고 화형에 처해져 죽음을 맞이했다.
화형 집행관들은 재를 모아 호수에 뿌려 버림으로써
이단의 흔적이 일체 남지 못하도록 하였다.
후스의 이름은 보헤미아어로 ‘거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의 대적들은 이러한 사실을 들어 후스를 조롱했다.
그러나 한번은 후스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미련한 거위 대신에 금후(今後)에는,
진리가 매서운 눈을 가진 독수리와 매들은 보내실 것이다.”
이러한 말은 16세기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존 후스는 화형대에서도 불타 죽기 전까지 앞으로 올 개혁에 대해
가장 깊이 있고 심오한 예언을 남겼다.
“당신들은 지금 ‘거위’를 굽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백년 안에 구을 수도 없고 그을일 수도 없는 고귀한 백조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가 노래할 때 사람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일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살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1517년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화형 당한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에 나오는 윌리엄 틴데일의 화형장면(목판화).
화형대에서 집행관이 틴데일의 목을 죄고 있다.
화형대 옆에 "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라는 틴데일의 마지막 말이 새겨져 있다.
메리 여왕의 통치하에서 화형으로 순교한 리들리(Ridley)와 라티머(Latimer)
로마 카톨릭은 성경대로 믿는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자로 정죄하여 불에 태워 죽였다. 교황권은 요한복음 15장 6절의 말씀, 곧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는 구절 중에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을 “만일 사람이 교황권을 거절하면”으로 해석하여(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에) 천주교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화형시키는 일을 합리화했다.
종교재판소에서는 끔찍한 고문들이 자행되었다. 셀 수 없는 수천만의 사람들이 이 박해기간 동안 학살을 당했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그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인 왕들도 사람들을 죽이라는 그 어떤 가르침도 받지 않았으며, 또한 피로 더럽히는 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며 예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교훈을 전혀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실하신 하나님은 강요된 것은 어떤 것도 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발적인 예배를 바라신다. 따라서 참으로 그가 적그리스도인지, 참으로 그가 그리스도가 아닌지는 그의 상반된 행동이 폭로할 것이다. 그 자신의 피를 흘리는 자는 그리스도이다!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흘리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다!
사지를 찢어 죽이는 악형
(사진술이 생기기 전 하나님은 섬세한 화가들을 기록의 증인으로 세우셨다)
이단자를 처형하는 방법 가운데 화형에 버금가는 잔인한 방식이 있었다.
네 마리의 말이 사방으로 달려가면 사지는 찢어지고 몸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런 끔찍한 일이 집행되는 동안에 성의를 입은 사제는 십자가를 들고 지켜보면서
“네 영혼을 마귀에게 주노라”는 말을 엄숙한 음성으로 선포한다.
그림 중앙에 사제가 십자가를 들고 서있다.
“위그노(Huguenots) 교도 대학살”
1572년 8월의 프랑스 개신교도들의 성 바돌로메의 날 대학살을 경축하는
교황 그레고리 13세(Gregory XIII, 1572~1585)의 메달.
제수이트, 도미니칸 파가 주동이 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프랑스 위그노 대학살을
기념하는 동전이다.
앞에는 교황의 흉상이 들어 있고 뒷면에는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천사와 그 앞에서 칼에 찔려 쓰러져 있는 위그노 교도와
두려워 떠는 얼굴로 도망하는 성도들이 새겨져 있다(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교황 그레고리 13세(Gregory XIII)의 용 메달
위의 메달을 제작한 교황 그레고리 13세(Gregory XIII)가 1582년에 주조한 메달로,
그는 날개 달린 용을 자신의 상징으로 채택했다.
날개 달린 용은 옛 뱀, 곧 마귀를 상징한다(계 12:9).
시스틴 성당(Capelle Sistina) 천정의 용
이곳은 교황의 공식 예배당으로 교황 선거장소이기도 하다.
성 바돌로메(Barthoromew)의 날 대학살(1572. 8. 24)
한 달간 프랑스 전역에서 약 10만여 명의 위그노 성도들이 학살당했다.
파리 전역은 성도들의 피로 강을 이루었다.
화형으로 순교하는 개혁교도
17세기에 있었던 왈도파에 대한 박해는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서기였던 존 밀턴(John Milton)이 쓴 유명한 서사시에 나타나 있다. 밀톤의 시는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다음의 시에서 계16:19, 17:5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에게 있어 바벨론은 음녀인 로마 교회를 말한다(그는 교황을 바벨론의 대제사장으로 불렀다). 밀턴은 예언을 바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이드먼트에서 일어난 최근의 학살에 대하여
(1655년)
오, 주여! 주님의 죽임당한 성도들의 원한을 보수하소서.
그들의 뼈가 차가운 알프스 산맥 위에 흩어졌나이다.
우리의 모든 조상들이 막대기와 돌을 섬길 때,
그들은 주님의 진리를 그토록
순결하게 변함없이 지켰나이다.
주님의 책에 그들의 신음을 꼭 기록해 주소서.
자들은 주님의 양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양떼들입니다.
주님의 양떼들이 피에 주린
피이드먼트 사람들에 의하여 피 흘리며 죽어가나이다.
아이를 가진 어머니도 돌에 맞아 쓰러지나이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골짜기와 하늘까지 울려 퍼집니다.
그 순교자들의 피와 재는
지금도 폭군들이 난무하는
온 이태리 땅에 씨가 되어
수백 배의 결실로 자나날 것입니다.
그 폭군들은 주님의 방침을 깨달은 후에
바벨론에 임할 재난과 함께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요한이 이 “여자”를 볼 때 그는 충격을 받고 당황했으며 그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놀랐음을 주목하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6절 하). 만일 이 “여자”가 “로마 제국”이었다면 요한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을 텐데 이는 요한 자신이 로마의 박해로 90년경 밧모섬에 죄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요한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로마 제국에 “놀랐겠는가?” 자신도 그들이 죽이려한 이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말이다. 로마는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것은 로마 제국이 아니다.
성령은 여기에서 교황들이 자기들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가르친 사적인 해석, 즉 과거주의 해석방식의 모든 체계를 엉망으로 만드신다. 지혜 있는 성도는 속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로마 제국”이라면 요한이 무엇 때문에 놀랐을까? 그는 그렇게 멍청했는가? 로마는 그를 밧모섬에 유배하였고 그는 “하나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때문에 박해 당했다. 만일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순교하였다면 로마가 그의 피를 흘리게 했을 텐데 왜 그가 자기 피를 흘리게 한 로마 제국이라는 이 “여자”에게 놀랐겠는가? 그럴 리는 전혀 없다. 이 여자는 교회, 곧 “음녀”였기 때문에 요한은 그렇게 크게 놀랐던 것이다. 교회가 어찌 성도들의 피에 취할 수 있단 말인가!
한 나라의 통치권을 잡게 되면 로마 교회는 그 나라 안의 모든 반대자들을 죽여 버렸다. 교황권에 의해 수천만의 기독교인들이 온갖 잔인한 형태로 학살되고 죽음에 처해졌다. 아래에 인용한 글은 「핼리의 성경 자습서」의 한 구절로서 음녀, 곧 로마 교회의 잔인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거룩한 집』으로 불리는 종교재판소는 인노센트 3세에 의해 창설되어 두 번째 교황인 그레고리 9세 때에 완성되었습니다. 그곳은 이단자를 찾아내어 벌을 주는 교회 재판소였습니다. 누구든지 이단자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한 번 거기에서 의심을 받게 되면 고발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비밀리에 행해졌습니다. 재판관이 선고를 내리면 죄인은 민법회의에 넘겨져 종신형을 살거나 화형을 당했습니다. 죄인의 재산은 몰수해서 나라와 교회가 반씩 나눠가졌습니다.
인노센트 3세 이후로 이 종교재판은 남부 프랑스에서 가장 혹독하게 행해졌으며 그뿐 아니라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에서도 수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그 후로 종교재판은 종교개혁운동을 말살시키는데 있어 교황권의 주된 역할을 했습니다.
한 푼의 동정심도 없이 무자비한 승려와 사제의 명령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산 채로 화형에 처했던 바, ‘그리스도의 대리자’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재판은 역사상 가장 추악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교황의 제의로 이루어져 500년간이나 교황의 세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록의 어느 부분도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황이 사의를 표명한 곳은 없습니다.”
교황권의 그러한 핍박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신조에서 비롯된다. “이단자란 누구인가? 이단자란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가르치는 특정한 진리를 분명히 알면서도 이를 고집스럽게 반대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을 것과 안 믿을 것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공언하는 영세 받은 신자이다.” M. 뮤럴, 카톨릭 교회의 전통적 해설 4권, p.170
1998년 5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사도 서신에서 다음과 같은 천주교회 법령을 발표하였다. “진리 곧 거룩한 카톨릭 신앙을 부인하거나, 의심하거나, 그리스도인 신앙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법에 의하여 경고받은 다음에도 본인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 자는 출교시킴으로써 이단자 또는 배도자로 처벌해야 한다. 성직자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기타 다른 벌금형에 처한다.” 음녀가 갖고 있는 핍박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계 속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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