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땅에 그처럼 많은 종교들이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의 생에 대해 전혀 알기 못하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무언가에 의지해보고자 하는 발상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약 4:14).『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잠 27:1).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적인 열심을 다해 무언가를 믿고 따라가면 그러한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착각 속에서 종교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들이 인간들의 내일을 보장한다고 믿는 발상 자체가 큰 착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교들을 창시한 자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갔기 때문이다(시 9:17, 전 9:3).
그렇다면 정녕 인간들의 앞일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한 위대한 계획을 세우셨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 뿐인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저주가 되게 하시고(갈 3:13)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하시는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었다(요 3:16, 롬 5:8,9).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다시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그 뒤로 승천하셨으며(고전 15:3-6) 더불어 그분께서는 이제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과업을 위임하셨으니, 바로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인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 고 하시니라』(행 1:8).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부르셨고 그는 신실하게 복음을 전파했으며(딤후 1:10-12) 이 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생명들을 낳았고 마침내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복음 전파하는 사역이 곧 주님께서 그분의 사람들에게 맡기신 "mission", 곧 선교인 것이다. 성경적인 선교가 있는 곳에는 항상 그에 합당한 생명의 열매들이 있기 마련이다(잠 11:30).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인간들의 죄를 사해주고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그의 영을 거듭나게 하시기 때문이다(요 3:5,6).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능력이요,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다.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고전 1:18,21).
그러나 오늘날 한국식 기독교들은 정작 성경적인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단순히 사람들을 자기들 교회로 데려오려고만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러한 행위들을 소위 전도라고 명명하며 몇몇 교회들은 매년 전도왕 등을 선출한다고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행위들도 결국 타 종교에서의 포교 활동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구령을 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선교 활동을 했다고 간주할 수 있는가? 단지 휴지 나눠주고 교회 주보 보여주며 교회 홍보하여 자기들 모임으로 데려오는 것이 “혼을 이겨오는 것, 구령” 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들의 이 같은 전도 활동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는 포교로 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이 같은 행위들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이름 붙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도 마치 타 종교의 신처럼 많은 사람들을 갈구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은 결국 복음의 빛을 가리는 일들을 자행하고 만 것이다(고후 4:3,4). 진정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을 칭찬하시겠는가?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들을 교회 사명으로 맡겨 주신 것인가? 우리가 알 것은, 그 같은 행위들은 단지 기독교 포교 활동일 뿐, 성경적인 선교와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일전에 문화일보의 한 기사에 따르면, 한 대학교 신입생이 한 행인의 집요한 포교 활동으로 골치를 썩었다고 한다. 그 학생이 왈, “예비소집 때 한 남자가 과 선배라고 소개해 연락처를 알려 줬는데 알고 보니 과 선배도 아니고 졸업생이었다. 교회로 데려가려고 하기에 자리를 피했지만 그 후에도 매일 문자에 시달린다.” 이 같은 행위들은 복음의 진리의 확산을 막고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선교가 무엇인가? 생명을 낳는 일과 무관한 종교적인 포교 활동이 아니라 지옥에 갈 혼들을 주님께로 이겨오는(soul winning) 사역이 성경적인 선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