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학

[스크랩] 기도의 창과 화살

수호천사1 2012. 2. 27. 11:06

기도의 창과 화살

 

에베소서 6:18-20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6 10절에서 시작되는 이 문단은 20절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이 문단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말한 후에 기도로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가 영적인 무기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0절은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라고 합니다. ‘전신 갑주란 군사가 사용하는 모든 무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 당시 로마 병사의 무기 중에는 반드시 창과 화살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편지를 받은 에베소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주께 드리는 기도를 창과 화살로 연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본문에는 창과 화살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이 편지의 수신자는 전신 갑주라는 말 때문에 창과 화살이 연상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도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로마 병정의 과 화살에 대하여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 창과 화살이 사용되고 어떻게 사용되었지를 알면, 기도와 간구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먼저 창이 무엇입니까? 고대 로마 병사를 보면 보초들이 창을 들고 서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창을 들고 중요한 장소와 중요한 사람을 항상 보호합니다. 만일 보초병이 잠들어 있거나 창이 없다면 그는 적이 침투해 들어와 중요한 장소 및 사람을 파괴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경계를 보는 보초병은 늘 창을 들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보초병이 자신의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주로 주요 인물이 암살되거나 중요한 작전 기밀 정보가 누설됨으로써 아군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처럼 기도는 창을 든 병사들처럼 깨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기도로 깨어 있으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향해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까? . 마귀를 대항하여 깨어 있는 것입니다. 왜 마귀를 대항합니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함입니까? 성경이 마귀를 대항하라고 말하는 것은 죄와 세상와 마귀와 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기도란 창을 든 병사처럼 내 마음이 죄나 세상이나 마귀 편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언제나 마음을 지키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있으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640-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때 기도로 깨어 있으라고 명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또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21:36). 바울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기도 가운데 깨어 있기를 당부합니다. “(기도로)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5:14).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4:2).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니라”(살전 5:6). 특히 바울은 우리가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고 명합니다.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6). 베드로 사도 역시 우리에게 기도 가운데 깨어 있기를 간절하게 권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계시록을 보면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15).

 

아무튼 우리는 보초병처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수는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켜서 우리 안에 있는 육신과 내통하여 우리를 넘어 뜨릴 것이며 나아가 외적으로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죄와 미움과 무질서와 더러움과 악으로 가득차게 만들 것입니다.

 

흠미로운 것은 보초는 보통 여러 사람이 함께 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곳 저곳에 보초를 서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또한 중요한 장소일수록 반드시 보초를 세우며 또한 더 많은 보초를 세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기도의 보초들이 되어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특히 말씀을 증거하는 복음의 사역자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이 사회의 안정을 위하여 정부 관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를 통하여 보초를 서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절과 20절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들이 기도해야 할 내용은 바울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도록 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복음이 증거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는 항상 복음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을 들고 깨어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창과 화살은 적이 가까이 오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특별한 무기입니다. 사실 적이 바로 앞까지 오면 싸워서 이길 수는 있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적을 미리 공격하면 그들이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 활과 창은 거리를 초월하여 원수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마귀 원수의 세력을 미리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창이나 활은 나의 동료가 적에게 공격을 당할 때 원수를 표적으로 하여 던지거나 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적으로부터 나의 동료를 구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 시험든 자, 마귀의 역사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자, 죄의 세력에 갇혀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마귀는 우리의 동료에게서 떠나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여 죄를 이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니, 어떤 사람에게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귀신 때문에 거꾸러지고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신체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나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연약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 아들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너무 불쌍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 그 아들을 고쳐달라고 애걸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좇지 못합니다. 결국 그 아버지는 소년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오게 되는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그 소년에게서 나오게 합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죽은 것 같이 쓰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어 일어서게 합니다. 그리고 28절과 29절을 보면 그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9:28-29). 이는 마귀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 나타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료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특히 시험든 교우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믿음이 떨어져 방황하는 교우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여러가지 감당할 수 없는 안타까운 고통을 당하는 형제 및 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죄의 노예가 되어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원거리에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화살과 기도의 창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화살과 창을 마귀를 향하게 하여 주의 능력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들을 죄와 세상의 유혹으로 공격하는 마귀들을 향해 계속 창과 화살을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 형제 자매를 위하여 쉬지 않고 계속 기도의 화살과 창을 던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이러한 기도는 영적인 무기가 되어 우리의 가족들과 동료들을 보호하며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니 얼마나 자주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을 원어로 보면 항상이라는 부사에 두 가지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경우에 기도하고 모든 기도와 모든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배가 고플 때나 배가 부를 때나 모든 일이 막혔을 때나 모든 일이 형통할 때나, 언제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어떤 만남, 어떤 사건, 어떤 일에든 모든 사건과 관련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항상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하는 것처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본문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서 1 20절도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로마서 8장은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8:26-27). 즉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하면 성령이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말씀으로 충만한 것과 같은 상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성경적인 사고를 하는 상태가 성령 충만한 상태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는 육신의 생각을 하여 멸망과 죄악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생각을 하는데, 그 결과는 승리와 영생과 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면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가운데 기억나면 그것은 성령의 검입니다. 마음 속에 성령의 검을 품고 그 검에 따라 기도한다면 그 기도가 바로 성령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암송하고 성령의 조명하심 가운데 성경을 많이 깨달은 자들은 성령 안에서 힘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억나는 말씀을 붙들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바로 창과 활을 원수에게 던지는 영적 무기이며 공격인 것입니다.

 

이제 창과 화살의 종류를 알려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먼저 기도에는 퓨로슈케이스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모든 기도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퓨로슈케이스) 기도란 하나님과 친근한 대화를 의미합니다. 어린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이나 어린 자녀가 부모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뭐든지 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일용한 필요를 아뢰는 것도 프로슈케이입니다. 정욕에 쓰려는 기도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자녀가 배가 고파서 떡을 달라고 하면 어찌 무한한 떡을 가지신 아버지께서 떡을 주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프로슈케이스인 것입니다.

 

프로슈케이의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기도 제목 중에 가장 중요하며 가장 귀한 간구는 성령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에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고, 우리가 꼭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것은 성령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11:13).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라고 말하는데 이는 퓨로슈케이스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회개와 함께 성령을 구해야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간구의 기도가 있습니다. 원어로 데에이시스라고 합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드리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 단어는 사실 강청하는 기도로 발전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강청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그 약속을 이루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데에이시스기도를 발견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5:7).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간절함으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데에이시스 기도가 프로슈케이 기도와 차이가 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자비를 철저하게 기억하고 의존하면서 처절하게 기도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강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자명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강청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거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거룩을 위해 하나님께 눈물과 간절함으로 강청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와 증거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강청하며 눈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이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때, 우리는 강청하며 계속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강청하는 기도가 간구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의를 이루기 위해 간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의 약속의 근원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근거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4-16).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간구에 대하여 단 한가지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7).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과 연합하기 위해 기도하며 또한 말씀이신 예수님과 연합한 상태에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곧 내가 구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 안에 거하고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가운데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구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하십니다. 이에 사도 요한이 말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지금 내가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간구이면우리는 담대하게 간구 또는 강청할 수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이미 그 기도를 이루신 줄 믿고 기도하셔도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8절에 보면, 이미 우리가 바울을 통해 살펴 보았지만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가 나옵니다.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러한 기도를 보통 도고 기도라고 말합니다. 대신하여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흔히 중보기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죄악을 범하고 내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욥기를 보면,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사탄에게 이용당하여 아주 많은 죄를 짓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려고 하지만, 욥을 통하여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이때 욥이 드리는 기도가 도고 기도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42:7-8). 욥이 자기에게 죄를 범한 엘리바스, 빌닷, 소발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기도를 드리자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42:9)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중보 기도는 성경에서 매우 유명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는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라고 외치며 광란을 일으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광란하는 그 백성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가 자기 백성을 위해 대신하여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그 무지하고 완고한 백성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32:10-14).

 

바로 이것이 중보 기도입니다. 철 없이 망녕되게 행하는 이웃들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변호하는 기도입니다.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들을 변화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저를 사용하시길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기도를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뜻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기도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성공하더라도 거지 나사로보다 비참합니다. 그 이유는 거지 나사로는 영생을 소유하였지만 부자는 결국 지옥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관심은 항상 영생에 있습니다. 영생을 소유하려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즉 십자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나아가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영생입니다. 이는 영생의 생명을 현재에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 영생을 누리는 것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성령 안에서 지금 순간의 사건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생의 현재의 삶이 바로 믿음으로 가능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실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 위해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이 내 뜻이 되고, 그 분의 지식이 내 지식이 되며, 그 분의 감정이 내 감정이 되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러할 때 사탄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우리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도 이러한 영적인 창과 화살이 되는 기도의 무기를 들고 이 세상에서 마귀와 내 속의 죄성과 세상을 이기며 전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용사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오스왈드 챔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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