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웨슬리 신학과 우리나라 교회의 신학적 재정립의 필요성
한민수목사
한국성서대학교 성서학과 졸업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졸업
세종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졸업
총신대 신학대학원 신학과 졸업
총신대 대학원 신학과 구약신학전공 졸업
크리스챤치유상담연구원 일반과정 목회상담학과 졸업
Ⅰ 들어가는 말
요한 웨슬리는 18세기의 위대한 부흥 운동의 지도자이며,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알려져 있다. 웨슬리는 부흥 운동뿐 아니라 위대한 설교가, 신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요한 웨슬리는 영국의 동부지역인 링컨(Lincoln) 주(州)의 조그만 마을 엡워드(Epworth)의 한 영국 국교회 사제관에서 사무엘과 수잔나의 열 다섯 번째 자녀로 1703년에 태어났다. 아버지 사무엘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학자요 성실한 목회자였고, 어머니 수잔나는 여성신학자요. 엄격한 가정교사였다. 요한 웨슬리의 부모는 정치적으로 왕권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토리(Tory)주의자가 되었고, 신학적으로는 고교회(The High Church)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철저히 청교도적인 근면, 검소, 정직 등의 덕목을 매우 중시하였다. 어머니 수잔나는 웨슬리에게 기도문과 언어 성경 그리고 일반과목뿐 아니라 당대의 청교도들이 힘주어 강조한대로 자녀들의 의지가 부모와 하나님 앞에서 전폭적으로 굴복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웨슬리는 생애의 첫 11년간을 이러한 부모 영향 아래서 그의 전체의 신학적, 정치적, 그리고 철학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1)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면서 the Holy Club의 리더가 되어서 매일 매시간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가난한 자들을 방문하고, 고아들을 돌아보는 규칙적인 생활에 몰두했다. 이에 대해 다른 학생들은 회원들을 “규칙주의자‘(Methodist)라 비웃었다.2) 웨슬리는 선한 일을 많이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웨슬리의 회심은 그가 선교단체인 S.P.C.K의 버튼 박사(Dr. Burton)의 제의를 받아들여 신대륙인 조지아주(州)의 거류자들을 위한 선교사역을 위하여 1735년 10월 런던을 떠났을 때 이루어졌다. 미국에 도착하기 10일 전인 1736년 1월 25일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으나 그와 달리 평안한 가운데 기도하는 모라비안 교도를 만난다. 웨슬리는 평안함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모라비안교도들로부터 큰 충격을 받게 된다.3)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 웨슬리는 동생 챨스와 함께 모라비안 교회 목사인 피터 뵐러(Boehler)를 만나서 감화 받았다.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진정한 신앙생활을 배우게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평안을 찾았다. 웨슬리는 1738년 3월 4일에 뵐러와의 만남 직후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안에서 우리가 신앙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우리가 구원받게 해 줄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고 회개하였다.4)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에 누군가가 그에게 평신도가 인도하는 작은 성경공부 모임에 가자고 제안했다. 그때 웨슬리는 마지못해 갔다고 기술한다. 그는 전날까지 “나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내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였다.”고 했다.5) 올더스게이트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어떤 집에서 그 평신도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었을 때 마음속에 뜨거움을 느꼈다.6) 1738년 5월 24일에 놀라운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게이트가에 있는 어느 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나는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7)
웨슬리는 올더게이트의 체험을 경험하고 1738년 6월 13일부터 8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 독일의 헤른흐트(Hernhuth)에서 진젠돌프를 비롯한 모라비안 교사들의 설교와 신앙 간증을 듣고 배우고 돌아왔다.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 83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신앙운동은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큰 신앙운동의 불을 일으켰다.
현 시대 우리나라 교회에서 웨슬리의 신학이 필요하다. 감리교의 교단적 배경을 초월해 한국 교회가 웨슬리의 신학적 유용성을 받아들임으로 교회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자는 웨슬리의 신학을 연구하고, 교회의 적용에 대한 논의를 해 보고자 한다.
Ⅱ 웨슬리 신학과 우리나라 교회
1. 웨슬리의 교회론
웨슬리가 처음으로 교회론적인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바로 그가 내적인 성결(inward holiness)의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기 시작한 1725-28년이었다. 그는 안수받기 위해 책을 읽는 가운데 세 가지 중요한 주제에 접하게 되었다. 즉, 거룩한 삶과 성례전의 중요성 그리고 초대교회 전통의 권위이다. 웨슬리는 조지아에 머물렀을 동안에 교회론을 연구했다. 그는 감독의 문제나 모라비안 질서의 타당성과 “평신도에 의한 세례”에 관해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교회의 질서란 보다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서 행하던 많은 형식과 의식이 오랜 전통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서 진정한 성서적 근거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8) 웨슬리는 1743-54년에 완성시킨 『신약성서주해』에서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간결하게 정의 내린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고 “기독교 신자들의 총체” 또는 “지상에서나 낙원에서 참 신자들의 총체”이다.9) 웨슬리가 사도행전 5장 11절에 관한 주석을 단 것을 보면 아마 그의 신약 교회에 대한 이해를 더욱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교회란 복음으로 부름 받고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사랑으로 활기를 띠며 성도의 친교로 연합되어 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통해 훈련받은 사람들의 공동체”10)라고 정의 내린다.
우리나라 교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교회론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교회의 부흥운동은 대교회주의로 성장해 나갔다.11) 대형교회위주의 성장을 통해 나타나는 장점은 많지만 반대로 많은 병리 현상들이 나타났다. 첫째로, 교인의 성장에 비해 교인들의 신앙의 성숙이 함께 하지 했다. 둘째로, 한국 교회의 목회 현장은 한국 교회가 있는 자리이며, 목회자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참되 교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원로목사와 후임 담임목사의 갈등, 원로목사의 목회세습, 목회자의 회계부정 등이 발생한다.12) 셋째로, 문어발식 지교회의 확장이다.13) 넷째로, 익명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교인들이 대형 교회를 지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형 교회가 가지는 익명성(匿名性)이다. 소형 교회가 가지는 교인에 대한 관심도 바라지 않고 교인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책임도 회피하려는 도피심정이 익명성을 가지게 하고, 이러한 익명성이 대형 교회를 지향하게 된다.14) 우리나라 교회들의 성장과 함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모방함으로써 교회론의 부재가 큰 문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교회는 웨슬리가 성경에서 얻은 교회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고 “기독교 신자들의 총체” 또는 “지상에서나 낙원에서 참 신자들의 총체”라고 말한 것처럼, 대형화가 되든, 소형화가 되든지 건물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교회이다. 한스 큉도 교회의 정의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선민’(選民)이나 ‘성도’(聖徒)라는 칭호를 지니게 된 것은 우연의 일이 아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그들이 구약의 칭호인 동시에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칭호인 ‘하나님의 단체’라는 칭호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현재에는 흩어지고 감추어져 있으나 장차 모여서 이루어질 종말의 하나님 백성을 가리켰다. 이에 해당하는 희랍어 ‘하나님의 교회’(ekklesia tou theou)가 새로운 공동체의 이름으로 통용되었고, 오늘날 간단히 ‘교회’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15)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체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교회는 건물과 모인 청중들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믿음의 가족의식을 가진 지체로서의 교회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대형교회는 옆 자리에 누가 앉아 예배를 드리는지도 모르는 기형적인 예배가 되었다. 이는 한 지체의식으로 돌아가야 할 교회론의 정립이 필요하다.
2. 웨슬리의 신관
웨슬리 신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면서 기독교에 크게 공헌 한 것 중에 하나인 성결론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 즉 신론에 의하여 좌우된다. 웨슬리의 신관은 그가 말한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된다. 성결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연결될 때에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성결한 분이기 때문이다. 성결하신 하나님만이 거룩한 성품을 인간에게도 부여하셨고 또 부여하기를 원하신다는 근거에서 인간의 성결을 논할 수 있다. 인간의 성결은 하나님의 성결의 반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16)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통일성”(The Unity of the Divine Being)에서 전통적인 신론에서 보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웨슬리의 신론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을 강조함에 특징이 있다. 인간의 구원의 관계하여서 신론을 전개하는 웨슬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이 그 중심이다. 웨슬리는 더욱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하늘에서 증거 하는 이가 셋이 있다. 그리고 이 셋은 하나이다.”17) 하나님은 셋이고 하나라는 이 사실을 역시 나는 믿는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또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신관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18)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문제는 교회세습, 대형교회의 폐해, 기독교인들의 윤리의식 부재, 성적 범죄,19) 목회자들의 학위 병(病)20) 사회에 대한 “빛과 소금”의 역할의 부재, 기독 정치, 경제인들의 부도덕성, 개교회중심주의 등은 모두가 웨슬리가 주장한 신관이 우리나라 교회에 재정립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웨슬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결”이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뿌리내려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사회의 빛과 소금의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가 된다.
3. 선행은총론
웨슬리는 구원이라는 말을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즉 궁극적 구원과 현재의 구원을 모두 포함하여 사용한다. 그러나 강조점은 현재의 구원에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믿음으로 구원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첫째는 무엇보다도 이는 현재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참으로 이 땅 위에서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실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2)한마디로 말해‘너희는 죄에서 구원을 받았는니라’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미리 천사를 통하여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예언한 바 그 큰 구원입니다. (3) 셋째로, 이는 과거의 조의 죄책(guilt)에서의 구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범죄하여 곁길로 나갔는데 만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지적하시고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그 앞에 설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는 것입니다(롬 3:22). (4)죄책에서 구원받은 자는 또한 두려움에서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5)또한 이 신앙에 의하여 저희들은 죄책에서 구원받은 동시에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21)
우리나라 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구원의 기쁨이다. 대형교회 및 성장하는 교회의 부흥비결은 예배의 감격이 있고, 구원의 감격이 있다는 것이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은 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구원의 감격을 경험한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전도, 봉사, 헌신을 하게 된다.
4. 온전한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리는 그의 성화론을 설명함에 있어 ‘온전’(perfec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때마다 웨슬리는 성경에서 ‘온전’이라는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며 성도들에게 온전해질 것을 강조했다. 그는 반문하기를 어떻게 우리가 ‘온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웨슬리에 의하면 성화는 중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온전한 성화는 중생보다 한 차원 높은 신앙 체험으로서 악한 성품 자체가 모두 없어지는 상태로 보았다. 이러한 상태는 사랑으로 충만해짐으로서 이룩된다. 그래서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를 온전한 사랑이라고 불렀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온전한 성화는 하나의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했다. 웨슬리는 사람이 온전히 성화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중생한 성도들은 죽음과 동시에 혹은 죽음 직전에 온전히 성화되지만, 그보다 더 일찍 성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웨슬리의 사상이다.22)
웨슬리는 성화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해 설교한다. 그는 인간이 그의 제한성과 연약성에 벗어나는 완전무흠한 상태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 올 영화(Glorification)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서 설교한다.
“(1)완전하다는 말처럼 마음에 부담을 주는 표현은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완전이라는 말을 하기조차도 싫어하는 것입니다...(2)그리하여 이런 표현이 너무나 많은 반대를 초래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예 사용되지도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리스도의 사신은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회피하지 말아야만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깨끗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3)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기 때문에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에서 완전합니까? 사도 요한은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저들은 저희의 깊은 영혼으로부터 성부 성자 성신을 알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분량에까지’ 성장한 완전한 사람입니다. (2)..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이들일지라도 완전합니다. 곧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의미에서 완전합니다. (3).저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그리하여 죄에서 자유함을 받은 이들은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23)
우리나라 교회가 윤리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곧 우리들이 하나님의 완전을 닮아가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완전하다.’는 말을 회피하기보다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힘쓰는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 웨슬리의 말처럼 ‘완전하다.’라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5. 웨슬리와 평신도 활용
1) 웨슬리와 평신도
웨슬리는 평신도를 적극 활용하여 선교적 그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였던 웨슬리는 복음 선교의 방법을 지금가지 교회가 사용해오던 제도화된 수단들을 활용했는데, 복음의 선포, 성만찬 집례, 그리고 사도적 훈련 등의 그것이다. 웨슬리의 신학과 교리는 신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 그리스도교 생활에 몸담게 하는 힘이 되었는데 필요한 수단을 조직적으로 발전시켰고, 또한 성화된 생활에 초점을 두고 이 실천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방법을 조직화하였다.24)
첫째로, 야외설교(Field Preaching)이다.
둘째로, 평신도 설교(Lay Preaching)이다. 웨슬리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선발하여 성직자와 평신도를 망라한 전도단을 선발하여 훈련시켜 설교를 하도록 하였다. 이들의 설교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음을 체험하게 하고 그것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셋째로, 신자양육(Christian Nurture)이다. 웨슬리는 그가 전도한 곳에 신도회와 속회(Class)를 조직하고 조(Bands)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뜨거운 인격적인 교제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활동 외에 매일의 기도와 매주일 1회의 금식을 권장하였다.
넷째로, 찬송이다. 복음적이고 힘찬 템포의 뜨거운 찬송을 불렀다.
다섯째로, 순회설교이이다(Itinerancy).
여섯째로, 사회봉사이다(Societies Service).
2) 평신도의 설교사역
제사장의 역할이 설교자로 대신 바뀌게 된다. 종교개혁으로 미사가 예배로 대치되게 되었고 이 결과로 미사 집례 신부에 해당하는 설교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설교가들이 말씀을 맡아서 증거 하는 동안 평신도들은 성경에 소홀하게 되었고 성경 연구는 권위 있는 학자만이 하는 것으로 오인되게 되었다. 청교도, 침례교, 감리교도 평신도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 가졌던 비전을 잃게 되었다. 만민제사장설을 믿고 실천한 전통 개신교 교단들은 이제 교권주의의 노예가 되었다고 꼬집는다.25) 이제 교회는 평신도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바뀌고 있다. 평신도들이 설교 사역뿐만 아니라 구역과 셀그룹을 지도하고, 주일학교 교사 등으로 설교와 같은 사역을 감당한다.
3) 평신도 소그룹 사역
미국의 뉴 호프 커뮤니티 교회는 평신도 사역을 강조한다. 평신도 목회의 세 가지 단계로 나뉜다. 1단계로, 훈련과정에 있는 평신도 목회자들. 2단계로, 훈련 받은 평신도 목회자들. 3단계로, 5명의 평신도 목회자들을 감독하는 평신도 목회자 리더로 구성되어 사역하고 있다.26) 칼 조지(Carl George)는 미래형 교회인 메타교회(Metachurch)는 소그룹을 통한 교회활동을 강조하고 목회자는 평신도 훈련을 위한 사역에 많은 시간과 힘을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교회는 소그룹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소수의 목회자가 필요할 뿐이다.27) 그러므로 미래 교회는 평신도 훈련이 강조된다. 우리나라 교회는 평신도의 소그룹을 중심으로 구역예배를 셀그룹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셀그룹 원리에서 교회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네 크기로 구분하는데 첫째, 우주적인 교회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 둘째는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지역 교회들, 셋째로, 지역 교회 안의 부서와 조직체들,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집단인 셀그룹이 존재한다.28) 인도네시아의 오바자 목사는 셀목회를 하는 과정에서 그 원리를 요한 웨슬리와 한국의 조용기 목사에게 배웠다고 한다.29)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셀그룹 사역을 하고 있는 주자는 NCD의 리더요. 부산의 <풍성한 교회>이다. 김성곤 목사는 평신도 사역자를 세움에 있어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참석하는 예배나 설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엄청난 노력과 눈물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우리 주님이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은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체계적인 양육과 훈련과 함께 실제로 리더가 사역과 삶을 보여 줄 때 가능합니다.”30)
오정현 목사는 남가주사랑의 교회 사역에 있어 부흥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소그룹이었다고 말한다.
“미래의 교회는 소그룹을 통해 심령과 심령이 통하는 데서 나오는 격려와 존경, 개인적인 성장을 고무시키는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소그룹이야말로 개인주의와 실용, 이기주의의 황폐화된 심령을 옥토로 만드는 가장 좋은 텃밭입니다...예수님은 3년 동안의 공생애 사역을 통해서 소그룹에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초대교회도 온 이방세계가 그들의 선교의 장이었지만 그들은 소그룹으로 모였습니다.”31)
이제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을 주요 사역자로 사역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 웨슬리가 ‘속회’라 불리는 셀그룹을 10,000개를 발전시킨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교회는 가장 작은 단위인 셀그룹을 활성화 시키고, 셀의 평신도 사역자들을 훈련 시켜 활용해야 한다.
4) 평신도 사역자의 은사활용
새들백 교회의 릭 웨런 목사가 현대 교회에 공헌한 점 중 하나가 구도자들을 교인으로 만드는 법과 교인들을 성숙한 성도로 만들어 교회 안에서는 물론 세상에 나가 평신도 전도자와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사역의 교과과정의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릭 웨런은 첫째로, 모든 신자들은 모두 사역자들이다. 둘째, 모든 사역자들이 중요하다. 셋째, 상호 협력해야 한다. 넷째, 사역은 은사와 마음과 능력과 인격과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32) 새들백 교회뿐 아니라 윌로우크릭 교회는 평신도들이 사역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은사 개발 사역을 함께 첨가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평신도를 사역에 참여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은사 배치 사역을 평신도 사역의 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은사 배치 사역은 성령이 보여주는 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또 이를 계발하고 사용하도록 돕는 길이다.33) 교회에서는 이제 평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활용함으로써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 혼자만의 은사와 사역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평신도들을 세우고, 훈련시키고, 은사를 개발하며 사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5) 평신도와 기도
웨슬리의 기도는 성서연구가 우선되었고, 성서에 입각한 기도 운동이었다. 성서를 알아야만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고, 바른 영성훈련을 할 수 있다. 웨슬리의 기도는 소유를 위한 기도보다는 궁극적으로 성화를 위한 기도였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개인의 훈련을 위하여 매일 같이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싫든 좋든 매일 성경을 읽고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바로 이것이 나의 삶이다.”라고 했다. 첫 번째, 웨슬리는 매일 성경을 읽었다. 그는 성서를 우선으로 하고, 성서에 입각해서 기도생활을 했나갔다. 두 번째, 영적훈련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런 영적훈련을 감성과 자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영적인 노력이나 영적인 갈급함을 따라서 영성훈련을 감정적인 것으로 묘하게 기술적으로 끌고 나가려는 유혹들이 있다.34)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이다. 김성곤 목사는 자신의 사역에서 기도의 즐거움에 대해 말한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호들의 영성과 열정은 기도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기도가 뜨겁고 기도하는 시간도 많습니다. 건강한 교회의 목회자들은 목회자와 교인들은 기도하는 시간을 즐거워하고 기도의 맛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은사를 받고 응답을 받으며, 성도들 사이에 기도 응답의 간증이 나눠지고, 그것이 또 다른 기도의 열심을 일으킵니다.”35)
교회는 기도를 통해 살아나고, 기도를 통해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과 함께 기도를 통해 교회가 부흥하고 정화된다. 칼빈은 기도는 “경건한 자녀들이 하나님께 친밀하게 하는 대화”라고 말했다. 즉 기도는 신앙인들이 “하나님과 하는 대화”이다. 기도는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존재 앞에서, 그 존재에게 말하고, 그 존재로부터 말씀을 듣는 행위이다.36) 바운즈는 “기도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기도는 교회와 신앙인들이 영적인 성장하는 무기이다. 교회는 매일 2시간씩 기도한 웨슬리의 모본처럼 목회자와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될 때 부흥하는 교회, 영적인 성숙이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
6. 교회와 여성
웨슬리와 칼빈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웨슬리는 ‘복음’, 진리는 실제로 칼빈주의와 털끝만큼의 차이밖에 없다.‘는 말을 하였고, 칼빈의 세 가지 큰 주제, 예정론, 원죄설, 칭의설 중에서 두 가지는 기독교의 기본교리서 복음주의적이며, 기독교 경험의 기초가 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여성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웨슬리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수잔나에 대하여 더욱 많이 듣는다. 어머니 수잔나가 웨슬리에게 미친 영향은 참으로 다양하고 깊은 것이다. 여성의 능력과 역할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점을 웨슬리가 가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웨슬리는 ‘아무리 여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소명을 받으면, 설교하는 일이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수잔나를 ‘preacher of righteoeness’라고 불렀다. 웨슬리가 편지를 교환한 많은 여성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그 당시의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웨슬리는 여성의 지도력을 격려하고 북돋아 주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웨슬리의 개방적인 의식 때문에 감리교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 여성들은 선구자로서 분명하고 주요한 역할을 감당해 냈다.37)
영국의 초기감리교회는 여성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여성, 특히 과부들의 열심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감리교회는 성장될 수 없었다. 영국 전역에서 새로운 감리교신도회(Methodist Society)를 개척하고 예배처를 짓거나, 사는 일에 충성한 사람들이 여성들이었고 그 중에 과부들이 많았다. 죽은 남편의 유산을 감리교의 발전을 위해 헌납한 과부들이 많았다. 여성 중에는 가난한 계층 여성들, 종살이 하는 소녀들, 방적기돌리는 여성들, 가난한 가정주부들이 용감한 개혁과 과감한 사회개혁의 중요한 직위를 가졌다. 감리교회 내에서는 여성의 지위를 공중기도, 간증, 권면, 속회지도 그리고 설교 등으로 발전시켰다.38)
현재 한국 교회는 교회 구성원의 70%를 여성이 구성하고 있고, 교회의 공식적인 예배로부터 대부분의 교회활동에 이르기까지 주로 여성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의 결과는 30%인 남성의 예배 참석율이 70%인 여성의 예배 참석율보다 전체적으로 낮은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비율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실제로 교회예배에 참석하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20: 80 정도라 할 수 있다. 아마 주중에 이루어지는 교회활동의 경우에는 남성 대다수가 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비율의 편차는 더 크다고 할 것이다.39)
지난 일주일간 참석한 예배 (단위 : %)
|
주일낮 |
주일저녁(오후) |
수요예배 |
새벽기도회 |
철야기도회 |
구역예배 |
남 |
72.3 |
26.0 |
19.0 |
10.6 |
11.9 |
9.7 |
여 |
84.6 |
31.0 |
28.4 |
16.5 |
15.8 |
39.6 |
자료 : 한국갤럽, 「한국 개신교인의 교회활동 및 신앙의식 조사보고서」(1998)
상황이 이러한데도 한국 교회 내에서 여성은 보조적이고 주변적인 위치에 있다.40) 아직 여성 목사가 허용되지 않는 교단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설사 여성의 목사 안수가 허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남성 목사에 비해 소수이며, 그 역할 또한 남성 목사와는 비교할 수 없다. 목회자는 신학적 차이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고, 교회 내에서 여성의 사역 비중은 더욱 높여야 한다. 실천적인 입장에서 오정현 목사도 “현재의 한국 교회 여성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무엇보다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갈등 상황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늘날의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입장의 여성의 역할과 이미 일어나고 있는 전통적인 여성해방의 물결의 중간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것 같다.”41)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교회의 여성 구성비를 통해 이제 교회는 중요 직분에 함께하는 사역이 필요하다.
7. 희년운동으로서 노동운동
웨슬리 당시에 희년운동이 아주 구체적인 조직적 운동으로 발전한 것은 노동조합운동이라 볼 수 있다. 인류 최초로 산업혁면이 영국에서 발생하였고,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도 영국에서 최초로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 인류최초로 형성된 노동운동이 감리교도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웨슬리의 종교적 영향으로 감리교는 어두움 속에서 빛을 던져주었다. 1799년 정부는 산업노조 결성을 발대하였다. 고용주의 대부분이 지방관리들이었기 때문에 “종은 주인에게 복종해야 하고, 더욱 높은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성서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산업노동자들의 권리를 묵살하였다. 그러나 서서히 무명짜기직공 노조, 목수 노조, 대장장이 노조, 건축공 노조, 봉재노동자 노조 등이 1801-1818년 사이에 조직되어 감리교 속회처럼 매주 1페니씩 노조 기금을 모았다. 마침내 1831년 산업노동자중심으로 ‘전국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Working Classes)이 런던을 본부로 결성되어 처음에는 산업노조(trade union)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정치노조(political union)으로 발전하였다. 런던의 광부노동운동의 대표 12명 중 9명이 감리교설교가들이었다.42)
외국인노동자의 문제는 국가뿐만 아니라 교회의 주요 사역이 되고 있는데 외국인노동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43) 외국인노동자사역44)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국경 없는 마을’45)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역이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시민사회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46) 손봉호는 “오늘날, 기독교가 현대인의 일상생활 핵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통로는 시민운동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적 기업, 기독교적 과학기술, 기독교 문화, 기독교 정치가 바람직하고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그 현실성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47)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진정한 기독교의 사회참여는 사회봉사와 사회활동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48)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빛처럼, 소금처럼 행세하던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인도하는 빛으로서,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으로서 거듭나야 한다.49) 웨슬리의 노동운동은 기독교적 인권운동의 한 분야가 되어 지금도 계속되어야 한다.
8. 웨슬리의 재정관
웨슬리는 빈번하게 사도 바울의 말씀을 사용하였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복을 돈 사랑 속에서 추구하는 자들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쾌락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웨슬리도 이러한 바울의 사상을 받아들여,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을 더욱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비판한다. 웨슬리는 “부자와 나사로”라는 설교에서 부의 축적의 위험을 종말론적 심판과 연결시킨다. 이 설교는 웨슬리가 1788년 3월 23-25일 사흘간 버밍햄을 방문하는 동안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웨슬리는 돈 사랑의 위험을 그의 설교 “부에 대하여”(On Riches)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성화생활에 방해됨을 지적한다. 그는 설교에서 첫째로, 돈 사랑은 무신론(atheism)의 유혹을 받을 위험이 있다. 부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잊어버리게 만든다. 부유한 사람과 위대한 사람들 속에서 방탕의 기술이 얼마나 큰가를 감탄한다. 웨슬리는 “어리석은 자여, 당신이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당신을 볼 수 없다고 상상하는가? 웃어라! 놀아라! 노래하라! 춤추어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둘째로, 돈 사랑은 무실론에서 우상숭배(idolatory)로 쉽게 전이됨을 웨슬리는 지적한다. 참 하나님을 예배드리지 않는 자들은 거짓 신들을 예배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돈 사랑은 안목의 정욕에 휩싸이게 한다고 강조한다. 부자들은 눈을 즐겁게 하주는 새것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심미주의에 빠져 들게 된다. 넷째로, 돈 사랑은 이생의 자랑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나다. 런던 시 전체가 부와 선을 같은 의미의 단어로 사용한다고 비판한다.50)
우리나라 평신도뿐 아니라 목회자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물질문제이다. 2006년 5월 15일에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대해 대법원 3부(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32여 억 원의 교회 공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금란교회 김홍도(68) 목사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7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51) 또한 2005년 2월 16일자 신문에 의하면 대형교회 중 하나인 광성교회 원로 김창인 목사(72)는 검찰에 소환돼 38년간(1966년 5월∼2003년 12월) 담임목사 재직 당시 교회의 예산 집행에 관한 조사를 받았다.52) 우리나라 교회를 이끌어 가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공금횡령과 세습, 성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회는 이제 웨슬리의 돈에 대한 설교를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재정 관리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교회의 재정이 투명한 대표적인 교회가 서울광염교회이다. 광염교회는 감자탕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1년 결산에서 100만원만 남기고 100퍼센트 공개하는 것이 재정원칙으로 하고 있다.53) 우리나라 교회는 재정이 깨끗해야 한다. 재정으로 인해 교회는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고, 재정 비리는 목회자 뿐 아니라 신앙인들을 병들게 한다. 우리나라 교회는 재정의 투명성과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Ⅲ 나오는 말
본 연구자는 웨슬리 신학과 웨슬리 신학의 교회 적용 문제를 연구해 보았다. 우리나라 교회는 웨슬리의 회심의 사건이 매일 있어야 한다. 올더스게이트가에서 있었던 회심의 은혜를 각 교회에 있어야 한다. 회심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지만 회심의 은혜를 누리고, 복음을 전함으로써 웨슬리의 회심과 같은 은혜를 체험이 교회마다 있어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것이다. 교인들의 성장은 곧 믿음의 공동체의 성장이다. 교회는 한 지체로 평신도 사역이 활발해야 하며, 평신도가 소그룹 속에서 리더로 세워져야 교회는 성장한다. 웨슬리가 세웠던 평신도들처럼 교회는 평신도 설교, 평신도 기도운동들이 일어나야 한다. 또한 웨슬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은사 사역과 여성의 지위 개선, 그리고 교회의 사회참여야 말로 현 시대의 우리나라 교회가 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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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카페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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