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갖가지 해석과 예언
앞서도 언급했지만 도참, 비결서를 이해하고 해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한문 실력은 물론 역학과 문자에 파자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어떠한 관점에서 비결서를 보고 이해하는지에 따라서 내용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저마다 견해에 따라 달리 해석을 하고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는 말이다.
먼저 격암유록이라는 책을 인용해 언급한 증산도의 해석을 살펴보면, 이 책의 여러 구절을 발췌해 그들의 교리체계에 맞게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天下文明始於艮”이라는 구절을 들어 ‘인류 구원의 대도는 한국에서 출현한다’로, “天降大道此時代”는 ‘지금은 하늘이 큰 도를 내려주는 시대’라면서 은연중에 그 도가 증산도의 도임을 내비친다.
또 “月日光塵霧漲天 自古無今大天·#55106; 天變地震飛火落地”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어두운 안개가 해를 덮는구나. 예전에 찾아볼 수 없는 대천재로 하늘이 변하고 땅이 흔들리며 불이 날아다니다가 땅에 떨어진다’로 해석하면서, 이는 바로 말세와 후천개벽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자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포의 대왕을 일컫는 것이라며 종말론적으로 해석한다.
이어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인간들을 태워버림으로 십 리에 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네’라고 부연해 위기의식을 강조한다. 그리고 “上帝豫言聖眞經 生死理明言判”은 ‘상제님의 말씀이 담긴 성스러운 진경이 생사의 이치와 심판의 말씀이 명백하다’로 설명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상제를 증산도 상제로 풀이했다.
물론 격암유록의 내용 중에는 세상의 종말을 시사하는 듯한 구절도 있고, 도에 대한 언급이나 성군, 상제 같은 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도나 상제가 곧 증산도에서 말하는 도이고 증산상제라고 단언하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해석이야 각자의 뜻이지만 이를 연결할 논리적 고리가 불분명한 것이다.
격암유록을 자신들 종교의 전거로 삼는 또 하나의 교단은 영생교다. 영생교 교주 조희성은 고서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영생학회 전문위원이라는 직함을 주고는 격암유록에 이러이러한 내용이 예언되어 있다면서 자신을 증거하도록 했다.
영생교 교주 조희성은 박태선의 전도관에서 전도사로 일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영생교의 집회장에 가서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집회 인도방식이나 설교는 물론 제스처까지 생전의 박태선 장로와 매우 흡사했다. 그가 내세운 교리 또한 내 눈에는 예전 전도관의 교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여기서 특정 종교를 비판하거나 그들의 신앙에 대해 왈가왈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격암유록과 관련된 사례를 들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영생교에서 격암유록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들의 전도활동에 어떻게 활용하는지만을 밝히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賽四一’에 나오는 “利見機打破滅魔 人生秋收糟米端風 驅飛糟風之人 弓乙十勝”이라는 구절을 들어 ‘바라보기만 해도 마귀가 멸해 없어지는데 그가 바로 인생을 추수하러 온 사람이다. 그 사람이 누구냐? 지게미 糟자에서 쌀 米자를 바람으로 날려 보내고 남은 무리 曹가 궁을십승이다’라고 해석한다. 여기에 나오는 조(曹)씨 성을 가진 인물이 궁을십승 주님인데 이는 바로 영생교를 세운 조희성님을 두고 예언된 말이며 ‘우리 주님을 초초로 바라보기만 해도 마귀가 박멸된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그 구절을 찬찬히 짚어보면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賽四一’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41장’의 일부 내용을 약간 바꾸어 한문으로 옮긴 데 불과한 것으로 이사야서 41장 15~16절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 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또 다른 주장을 하나만 더 살펴보자. 영생교측은 ‘聖山尋路’편에 나오는 “永生不死聖泉何在 福地桃源仁富之尋”이라는 구절을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성스러운 샘은 어디 있느냐, 복된 땅 도원인 인(仁)천과 부(富)천 땅에 가서 찾아라’로 해석한다. 또 ‘末運論’에도 仁富之間’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바로 인천과 부천 사이 역곡에 있는 영생교 본부 승리재단을 말하는 것이라는 식이다. 조선시대에 살았던 남사고가 450여 년 뒤에 출현할 한 교주의 성씨와 그 교단 본부의 위치까지 예언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국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계룡대가 서 있는 곳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계룡산 신도안은 우리나라 신흥종교 및 유사종교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격암유록을 펼쳐 보이며 자기가 바로 그 책에 나오는 ‘구세진인’이요, ‘정도령’이라고 주장하는 또 한 사람의 종교인이 있다. 일찍이 음란죄를 범치 않겠노라며 스스로 자신의 고환을 거세한 ‘세계일주평화국’ 교주 양도천씨다. 기독교 목사 출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감록’을 신봉하면서 자기가 바로 정감록에서 말하는 정도령이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사람이다.
‘정도령 사명 선언서’라는 제목으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격암유록에 “三八之北出於聖人” “渡南來眞主”라는 글이 있는데 이는 ‘평안북도 태생으로 1947년에 월남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며 또 이 고서에 ‘정도령사명자는 미륵이라고 씌어 있는바, 내 어릴 때의 아명이 미륵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바로 신인(神人)임을 확증케 하는 또 한 구절이 있는데, ‘挑符神人’ 편에 나오는 “克己魔로 十勝變이 不具者年 赤?로다”에서 말하는 불구자는 바로 성불구자인 자신을 두고 예언된 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불구자년’은 해를 간지로 표시한 병신년(丙申年)을 그 소리와 같은 다른 말, 즉 ‘병신’을 ‘불구’로 바꿔 쓴 데 불과하다. 그것을 자신의 성불구 사실과 연결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격암유록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용하는지에 대하여는 이상의 세 가지 사례만 봐도 능히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그 밖의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설명과 주장을 살펴본다.
격암유록 해설서를 처음 펴낸 한 역술인은 14장의 ‘羅馬簞二’라는 제목을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마(馬)는 하늘의 진리를 상징하는 동물이고 라(羅)를 파자한 사유(四維)가 맞지 않으면 똑바른 세상이 되지 못하여 방정(方正)하지 않다.” 또 16장 ‘哥前’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가(哥)가 앞이면 뒤는 흠(欠) 이라는 특이한 측자법을 써야 풀린다. 가(哥) 뒤에 흠(欠)이란 글자가 없으니 정말 흠핍(欠乏)하여 조화일치는커녕 노래 가(歌)조차 없고 그것은 괴로움이고 고통인 것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羅馬簞二’는 성경의 ‘로마서 2장’을, ‘哥前’은 ‘고린도전서’에서 ‘고’와 ‘전’, 두 글자를 취해 한자로 음사하여 표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제목에 대해 저자는 이처럼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으니 그의 탁월한 어휘 구사와 기상천외한 작문 실력에 그저 경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이번에는 한 단학 수련단체의 법사라는 이가 쓴 책을 보자. 그는 먼저 자신의 저서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비결은 남사고 선생께서 하늘의 신인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 설과 선정삼매에 들어가 써 내려갔다는 설이 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도수련으로 상단전이 완성되어서 선정삼매에 들어가 미래의 우주정보를 받아 써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격암유록 본문에 자주 나오는 전(田)이라는 글자를 그는 “전(田)은 단전을 의미하는데 단전에는 상·중·하단전이 있다”고 해석한다.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 나오는 전(田)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쓰임에 따라 다소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나,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소위 인체의 단전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글자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체험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 등을 보고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가지고 있다. 종교인은 각기 다른 종교적 배경과 신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역술가는 역학이라는 그 분야의 논리나 가설을 바탕으로, 단학 수련을 하는 사람은 그가 소속된 단체의 수행체계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제각기 자신만의 세계관과 지견으로 이 책의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격암유록이 유·불·도를 위시해 동학·증산교·기독교 등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종교를 망라하는 사상을 담고 있으며, 다른 비결서에 비해 양적으로 방대할 뿐 아니라 그 표현 기교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여 일반인에게 난해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여러 도참, 비결서 중에 이 책만큼 다양한 사상과 내용을 가진 책도 없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이 책만큼 세간에서 악용될 소지가 많은 책도 다시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는다면 격암유록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저토록 많은 사람이 왜 이 책을 450여 년 전에 씌어진 위대한 예언서라고 무비판적으로 맹신하는 것일까.
앞서 지적했듯, 격암유록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고서로 소장돼 있음을 강조한 여러 해설서를 먼저 들 수 있다. 어쩌면 격암유록을 인용하거나 관련 출판물을 펴내는 사람 자신도 바로 이 점 때문에 맹목적으로 신뢰하게 됐을지 모르겠다. 한자를 파자법으로 쓰기도 하고 때로는 이두(吏頭) 식으로 한자의 음을 그대로 우리말로 사용하는가 하면, 한자의 훈(訓)을 빌려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단어의 글자를 도치시켜 쓸 때도 있고, 고도의 상징적인 말이나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표현법을 쓰는 등 온갖 기기묘묘한 표현기법이 등장하는 이 책의 특징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일반인으로서는 자칭타칭 그 방면의 전문가라는 인사들이 하는 말이나 그들의 저작물 등을 통해 격암유록의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격암유록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유포되고 위대한 예언서로 신봉되기에 이른 것은, 이 책에 민족에 대한 드높은 자긍심과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근현대사의 여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적중했다는 점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末運歌’에는 “錦繡江山我東方 天下聚氣運回鮮 列邦諸民父母國 萬乘天子王中王”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금수강산 우리나라 동방에 천하의 기운이 모여든다. 세계 만백성의 부모국이니 만승천자가 나와 왕 중의 왕이 되네’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글을 대하면 누구나 참으로 가슴 뿌듯한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말세 이후에 우리나라가 초강대국이 되어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되고 세계만방에서 사신들이 공물을 가득 싣고 온다는 등의 말은 또 얼마나 우리를 희망에 부풀게 하는가.
또한 ‘末運論’에는 “太神歲壬申乙巳運 五白而七四始末”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태조의 햇수는 임신년(1392년)에서 을사년(1905년)까지 가고, 그 시작과 끝은 500년이며 (왕조는) 7×4=28대(代)이다’로 해석된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에 조선을 개국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국운이 다했다. 그 500년간 역대 임금은 28대였다. 그러니 격암유록을 쓴 이는 조선왕조 역대 왕의 대수는 물론 그 몰락시기까지 미리 내다보고 정확히 예언했다는 것이다.
‘末初歌’에 있는 “靑鷄一聲半田落이 委人歸根落望故로 兩人相對河橋泣에 牽牛織女相別일세”라는 구절을 역학논리를 응용해 풀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청(靑)은 오행으로 목(木)이고 천간으로는 갑(甲)이나 을(乙)이 된다. 계(鷄)는 닭이므로 지지로는 유(酉)가 된다. 따라서 청계는 을유년을 뜻하고 서기로는 1945년이다. 일성(一聲)이 한 큰소리를 뜻한다고 보았을 때,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굉음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반전(半田)은 田을 半으로 나누면 일(日)자가 되므로 일본을 의미한다. 따라서 ‘靑鷄一聲半田落’은 1945년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일본이 망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오는 위인(委人) 두 글자를 측자하면 왜(倭)가 되어 역시 일본을 의미한다. 따라서 ‘委人歸根落望故로 兩人相對河橋泣에 牽牛織女相別일세’라는 말은 ‘일본은 망하여 제 나라로 돌아가고 우리 민족은 마치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울면서 서로 이별하듯 남북으로 갈라진다’는 것을 예언한 문구가 된다.
‘末運論’에 있는 “患亂之發 問於何時 玄蛇前三”이라는 구절은 ‘환란이 발생하는 때가 어느 때인가 묻는다면 계사년 3년 전이다’로 풀이할 수 있다. 현(玄)은 북방을 뜻하며 천간으로는 임(壬)이나 계(癸)이고, 사(蛇)는 뱀으로 지지로는 사(巳)이니 결국 ‘玄蛇’는 癸巳年을 말한다. 1953년이 계사년인데 그 3년 전이라 하니 1950년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을 말한 것이다.
‘三八歌’에 “十線反八三八이요 兩戶亦是三八이며 無酒酒店三八이니 三字各八三八이라”는 구절이 있다. 십선반팔(十線反八)은 판(板)자를 파자한 것이고, 양호(兩戶)는 戶자를 양쪽에 쓰면 門문자가 된다. 이어서 무주주점(無酒酒店)은 酒店에서 酒자가 없다는 말이니 그러면 店자만 남게 되어 결국 위의 세 구절은 각각 板자와 門자, 店자를 가리켜 ‘판문점’을 말한 것이 된다.
더욱 기묘한 것은 마지막 절(節)에서 보듯 板門店 이 세 글자가 각각 8획이 되는 것에 운을 맞추어 三八歌로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지은 이가 놀라운 통찰력과 재치는 물론 시문(詩文)에도 능한 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末初歌’에 “四九辰巳革新으로 三軍烽火城愚賊을 軍政錯亂衆口鉗制니 口是禍門滅身斧라”라는 내용이 나온다. 동양철학의 논리에서 四와 九는 오행이 금(金)이고 천간으로는 경(庚)과 신(辛)이 된다. 이어서 진사(辰巳)는 辰월과 巳월을 뜻한다. 앞의 천간과 지지를 써서 경(자)년 (임)진월, 그리고 뒤는 신(축)년 (계)사월이 된다. 앞의 경자년 임진월에는 4·19혁명이, 뒤의 신축년 계사월에는 5·16군사정변이 일어났다. 결국 위의 글은 혁명을 일으켜 부정부패의 적을 척결한 군사정권이 대중의 입을 다물게 하여 독재정치를 할 것이니 언론이나 국민은 말조심을 하라는 얘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구절만 더 보자. ‘末初歌’에 “無面相語萬國語는 金絲千里人言來요 東北千里鐵馬行은 三層畵閣人坐去라 空中行船風雲捷은 赤旗如雨白鶴飛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만국이 서로 말하는 것은 쇠실을 통해 사람의 말이 천리를 오가기 때문이오, 동북천리를 철마가 달리는 것이 마치 높은 집에 사람이 앉아서 가는 격이라. 공중에서 배가 풍운 속을 민첩하게 다니는 것이 마치 흰 학이 나는 것과 같도다’로 해석된다. 전화가 발명되고 기차와 비행기가 운행되리라는 것을 예언한 셈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예언들이 아닐 수 없다. 수백년 뒤에 일어날 일을 이토록 눈앞에 보여주듯 생생하게 예언하는 것이 귀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가능하다 하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을 썼다는 남사고라는 인물을 신인(神人)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일 게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일까.
9. 전도관과 격암유록
문제의 핵심은 ‘격암유록’을 과연 언제, 누가 썼느냐 하는 부분이다. 필사본이 세상에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필사자는 이 책이 수백년 전에 씌어진 것이며, 자신이 쓴 책의 말미에 그 책을 갑신년 윤사월, 즉 1944년 봄에 복사했다고 적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이 필사본에 예언된 역사적 사건 가운데 최근세의 것이 5·16군사정변이라는 사실이다. 혹자는 격암유록에 제5공화국 정권이나 88올림픽도 예언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억지 주장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술은 분명히 5·16군사정변이 마지막이다.
나는 여기서 1958년에 신앙촌에 입주해 책을 집필하고 난 뒤 1961년에 그곳을 떠난 선친을 생각한다. 신앙촌에서 아버지가 위임받은 일이 바로 전도관에 관련된 책을 쓰는 일이었고, 그때 집필한 책의 제목이 ‘格菴遺錄’이었음은 내가 분명히 보았고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다. 나로서는 아버지가 격암유록이라는 책의 집필을 마친 시기가 바로 1961년 5월 무렵으로 그해 가을 신앙촌을 떠나신 일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도은이라는 사람은 선친이 쓴 책을 원본으로 해서 필사본을 쓴 것이 아닐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지나간 역사를 수백년 전 예언인 듯 감춰 쓰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은 그 후의 사정에 맞추어 첨삭하거나 보필했다고 볼 수 있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술과 달리 전도관과 박태선에 대한 내용은 1975년의 일까지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이 필사본은 1975년 이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1977년에 이 필사본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정감록’을 비롯해 ‘도선비기’ ‘무학비결’ ‘삼역대경’ ‘궁을가’ ‘토정가장결’ ‘서계이선생가장결’ 등과 기독교 ‘성경’에 이르기까지 온갖 도참, 비결류와 경서에 나오는 용어와 일부 내용들이 인용된 격암유록 본문 전체를 완벽하게 해독하기란 실로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수차례 정독하고 나니 나는 이 책이 어떤 목적으로 어디서 쓴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이 이 격암유록을 해독할 만한 풍부한 식견이나 지혜를 갖춰서라기보다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말과 내용이 내게 너무나 친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신천촌(信天村), 인부간(仁富間), 소사(素沙), 범박(範朴), 소래산(蘇來山) 등 여러 곳의 지명이 나온다. 우리 가족이 살던 신앙촌이 바로 인부간, 즉 인(仁)천과 부(富)천 사이에 있는 소사읍 범박리에 있었고, 소래산은 인근에 있는 산 이름이다. 그 밖에 생명수, 천향, 구원방주, 보혜사 같은 말들 또한 주일 집회 때마다 제단에서 늘 들어온 얘기였다. 물론 내가 격암유록을 몇 번 독파했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 내용을 모두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이 펴낸 격암유록에 관련된 출판물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깨우치기도 했고 잘못 알고 있던 구절이 새롭게 인식되기도 했다.
이 책은 겉으로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예언, 세상의 종말과 그 말세 때의 환란을 피할 수 있는 방책, 그 밖에 여러 가지 잡다한 내용이 기술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전도관과 박태선 그리고 신앙촌에 관한 것이다.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자명하게 밝혀지는 일이다. 먼저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몇 구절을 살펴본다.
‘挑符神人’에 “最好兩弓木人으로 十八卜術誕生하니 三聖水源三人之水 羊一口의 又八일세”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해독하려면 먼저 파자된 문자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다. 十과 八과 卜 세 글자를 함께 쓰면 朴자가 된다. 다음 三과 人과 水 세 글자는 泰자를 이루고, 끝으로 羊과 一과 口와 八, 이 넷은 善이 된다. 박태선(朴泰善)을 이렇게 파자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구절의 전체적인 내용은 ‘가장 훌륭한 성인으로 박태선이 탄생한다’가 된다.
다음은 전도관이 파자로 씌어 있는 글을 보자. ‘道下止’에 나오는 “人惠無心村十八退 丁目雙角三卜人也 千口人間以着冠也 破字妙理 出於道下地也”라는 구절이다. 惠에서 心을 없애고, 村에서 十八(木)을 물리쳐 남은 과 寸을 함께 쓰면 專자가 되고, 여기에 맨 앞에 나오는 人을 붙이면 傳자가 된다. 따라서 ‘人惠無心村十八退’는 전(傳)이라는 글자를 말한 것이다. 다음으로 丁자 밑에 目을 쓰면 이 되는데 그 위에 한 쌍의 뿔(雙角)을 얹어 首를 이루고, 여기에 三, 卜, 人, 이 셋을 합한 ?(?)자를 함께 쓰면 道가 되어 결국 ‘丁目雙角三卜人也’는 도(道)자를 파자로 쓴 것이다. 다음 千, 口, 人, 이 세 글자를 합하면 舍자가 되고 여기에 冠(官)을 같이 쓰면 ·#53949;자가 되므로 이 ‘千口人間以着冠也’는 관(·#53949;)의 파자다. 마지막 구절에서 이 글을 쓴 이 스스로가 전도관을 파자의 묘리로 표현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도하지(道下止·도가 내려온 터)’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혹자는 위에 나온 글도 시각에 따라 또 달리 해석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의 구절들은 그 파자풀이가 너무도 명백해서 다른 견해가 있을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이는 앞서의 다른 파자풀이와 비교해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제부터는 격암유록 본문에 나오는 차례대로 박태선과 전도관에 관한 구절들을 해독해보기로 한다.
“八力十月二人尋 人言一大十八寸”은 먼저 八과 力, 月과 二, 여기에 人까지 다섯 자를 조합해 勝(승)자를 만들고 세 번째 있는 十자를 앞에 쓰면 十勝이 된다. 십승은 정감록과 기타 비결 등에 전란과 기근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자주 나오는 십승지(十勝地)를 말하는 것으로 말세의 피난처를 의미한다. 다음 人과 言을 함께 써 信자가 되고, 一과 大는 天, 十과 八과 寸을 조합하면 村자를 이룬다. 따라서 ‘人言一大十八寸’은 신천촌(信天村)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위의 글은 ‘말세의 피난처를 찾아라. (그곳이 바로) 신천촌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신천촌은 신앙촌을 가운데 글자 하나만 바꿔 쓴 것이다.
“十勝十勝何十勝 勝利臺上眞十勝”이란 구절은 앞의 글과 비슷한 내용이다. ‘십승십승 하는데 그곳이 어디냐, 승리대 위가 진정한 십승이다’라는 뜻이다. 승리대는 전도관의 별칭이다. 박태선은 생시에 승리제단을 짓는다고 신자들로부터 헌금을 걷은 바 있고, 1980년대에 출현한 영생교의 본부가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데 그들도 역시 이곳을 승리제단이라고 부른다.
“吉地吉地何吉地 多會仙中是吉地 三神山下牛鳴地 溪水範朴是吉地”라는 구절은 ‘길지길지 하는데 어디가 길지인가. 신선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길지다. 삼신산 아래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땅, 계수와 범박, 이곳이 길지다’로 풀이된다. 전도관 신자들을 신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 울음소리란 신자들이 제단에서 기도할 때에 마치 송아지가 어미 소를 찾는 울음소리처럼 영모님을 부르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 것으로 보인다. 송아지 울음소리의 ‘음메’와 ‘영모’소리가 그 음이 유사한 데서 착안한 표현일 것이다. 전도관에서는 박태선을 영모님으로 부른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삼신산은 경기도 소사 신앙촌 주위에 있는 소래산, 노고산, 성주산, 이 세 산을 말하는데 이 중 특히 소래산(蘇來山)은 그 글자가 뜻하는 것처럼 예수(기독교 전래 초기에는 예수를 야소(耶蘇)라고 쓰고 그렇게 불렀다)가 오시는 산이라며 은연중에 박태선을 이 땅에 오신 재림예수라고 선전하였다. 계수(桂樹)와 범박(範朴)은 신앙촌이 위치한 소사읍 계수리와 범박리의 동리 이름이다.
“好事多魔此時日 雙犬言爭艸十口 暫時暫時不免厄”은 ‘호사다마로 이때에 옥고를 치르는데 잠시잠시 액을 면치 못한다’는 의미다. 雙犬言爭(쌍견언쟁)은 言자를 사이에 두고 두 마리 개가 다투고 있음을 말함이니 바로 감옥 옥(獄)자를 뜻함이오, 艸자와 十과 口는 苦(고)자를 파자한 것이므로 ‘雙犬言爭艸十口’는 옥고(獄苦)를 의미한다. 위의 글은 박태선이 1960년을 전후해 두 차례 구속되어 감옥생활을 한 것을 두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옛 비결에도 이렇게 그의 옥고가 예언되어 있다면서 그의 구속과 옥중생활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구절로 볼 수 있다.
“十勝兩白矢口人 不顧左右前前進 死中求生元眞理 出死入生信天村”이란 ‘십승과 양백을 아는(矢+口=知) 사람(人)은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라. 죽음 가운데 생명을 구하는 것이 으뜸가는 진리다. 신천(앙)촌을 나가면 죽고 들어오면 산다’는 의미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구절이다. 십승의 의미는 앞에서 애기했고, 兩白은 양백진인(兩白眞人)을 줄인 말로 말세의 진인, 곧 박태선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격암유록에 첫 번째로 나오는 ‘南師古秘訣’ 한 장 가운데서만 발췌한 전도관과 박태선, 그리고 신앙촌을 증거하는 구절들이 위와 같다. 총 60장 전문에서 다 찾아내 열거한다면 얼마나 많겠는가. 시기적으로 늦게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내용과 마지막 장인 ‘甲乙歌’에 등장하는 한 구절만 더 보자.
“堯舜亦有不肖子息 末聖豈無放蕩兒只”는 ‘요순임금도 불초자식이 있었다. 말세성군이라 해서 어찌 방탕한 자식이 없겠는가’의 의미다. 이 구절은 1975년 박태선의 장남 박동명의 엽색행각과 방탕한 생활이 세상에 알려져 일반인의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을 의식해 쓴 것으로 보인다.
“三處朴運誰可知 枾從者生次出朴 天子乃嘉鷄龍朴 世人不知鄭變朴”은 ‘세 곳을 다니는 박(朴)을 누가 알겠는가. 감람나무를 따르는 자는 (죽지 않고) 사네. 천자이시며 아름다우신 박, 바로 계룡산의 정도령이 박으로 변하여 오신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네’라는 말이다. 여기서 朴은 물론 박태선을 가리킨다. 전도관의 신앙촌은 처음 경기도 소사를 시작으로 후에 덕소, 경남 기장에 건립되었는데, 세 곳을 다닌다는 구절은 이 세 신앙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주일 집회 때마다 박태선은 소사-덕소-기장의 순으로 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했다.
예전부터 민간에서는 정감록 등 도참, 비결에서 말세의 진인으로 나올 인물을 정도령으로 지칭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로 박태선이 비결에서 예언된 정도령으로 오신 분이라는 게 이 구절에서 증거하는 내용이다. 감람나무 또한 전도관에서 박태선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 글에서 감람나무를 그 음이 유사한 감나무(枾)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1970년대 후반에 세상에 나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격암유록이라는 책은, 450여 년 전 조선 중기의 예언가였다는 격암 남사고라는 인물의 이름을 빌려 불과 30~40년 전에 누군가가 일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옛 비결서로 위장해 집필한 위서(僞書)임이 분명하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실을, 마치 후대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다양하고 교묘한 표현수법으로 기록한 것이다.
10. 필사자와의 만남
격암유록이 450여 년 만에 신비의 베일을 벗고 출현한 민족의 경전으로, 천기를 밝힌 위대한 예언서로 선전되고 이용되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무력함이 스스로 안타까울 뿐이었다. 세간에 나도는 ‘격암유록’이 위서임을 밝히는 책을 써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 책과 관련된 나의 가족사나 개인적인 사정을 함께 밝힐 수밖에 없을 터였다.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었고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나는 4년 가까이 재직 중인 회사의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느라 국내를 떠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격암유록에 대해서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1998년 연말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서점에 들러 그동안 새로 간행된 관심 있는 분야의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나는 ‘위대한 가짜 예언서, 격암유록’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지은이는 역학과 비결서 등에 깊은 식견과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럴 수가’ 하고 연이어 감탄했을 정도로 격암유록에 대한 이해와 해독 내용이 내 견해와 대부분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란 사실은 그가 격암유록의 필사자인 이도은이라는 노인을 만났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었다. 내가 1985년 필사본에 적힌 주소지로 직접 찾아가 수소문했으나 행적을 밝히지 못한 것을, 이 책의 저자는 너무도 쉽게 추적해 노인을 직접 만난 것이다.
이 노인은 신앙촌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책에는 필사자 자신이 스스로 필사한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있었다. 이는 그때까지 격암유록이란 책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추정과 심증을 뒷받침하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특히 이도은이라는 이름은 가명이고 본명은 이○○이며, 충청도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거의 확신에 가까운 어떤 정황을 회상케 했다. 아버지가 1960년을 전후해 신앙촌에서 책을 집필할 때 종종 우리집을 찾아와 아버지에게 무엇을 묻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던 사람이 바로 충청도 말씨를 쓰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낸 것이다. 나이가 얼마쯤 아래인 그를 아버지는 ‘이 선생’이라고 호칭하였고, 그는 아버지께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했다.
나는 그제야 필사본 격암유록이 어떻게 씌어졌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씨가 필사한 책은 나의 아버지가 최초로 집필한 격암유록을 원본으로 그 후의 상황들을 이씨가 추가로 보필해 완성해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쓴 필사본을 직접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제 필사자 이○○씨를 내가 직접 만나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위대한 가짜 예언서, 격암유록’의 저자가 1993년에 이씨를 만났을 때 그의 나이가 여든여덟이라고 했다. 이때가 1998년이었으므로 그의 나이는 아흔셋이 될 터였다. 고령의 나이이긴 해도 책에서 정정하다고 묘사할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나는 먼저 ‘위대한 가짜 예언서, 격암유록’의 저자를 만나보기 위해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책에 나와 있는 번호는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영세한 출판사라서 그 사이 문을 닫았거나 다른 사정이 있는지도 몰랐다. 책을 쓴 저자의 이름도 필명인 듯했다. 나는 격암유록에 대해 나와 동일한 견해와 인식을 가진 저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바로 필사자 이 노인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소사의 신앙촌으로 향했다.
소사의 신앙촌은 이미 오래전에 일반 주거지역이 된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예전 신앙촌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 노인의 소식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무슨 불운이란 말인가. 그가 불과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아들 집에서 사망했다는 것 아닌가. 격암유록과 관련해 나의 심증과 추정을 확인해줄 유일한 인물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천길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절망이었다. 그를 만나면 증언을 확보해두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에서 여행용 가방에 녹음기와 카메라까지 준비해 갔는데….
나는 이 노인의 아들이라도 만나보면 또 다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들이 살고 있다는 서울로 향했다. 어렵사리 만난 이 노인의 아들은 60대 초반의 대학 교수였다. 나하고는 나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안면은 없었지만, 옛날 신앙촌 얘기를 함께 나누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친화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내가 먼저 신앙촌에서 살던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는 안색을 바꾸면서 “용건이 뭐냐”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의 태도와 표정으로 보아 신앙촌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과 기피의식을 가진 게 분명했다. 나는 그의 처지와 심중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다. 나 자신부터 신앙촌에 관한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과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 노인을 찾게 된 연유를 말하고, 어릴 때 종종 뵈었다는 말과 함께 그분의 사진이 있으면 한번 보고 싶다고 청했다. 그는 마지못해 영정으로 사용한 듯한 액자사진을 보여주었다. 확대해서 인화한 사진처럼 보였으나 전체적인 얼굴 윤곽이며 온후한 인상이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람, 우리집에 드나들던 ‘이 선생’의 모습이 분명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혹시 그가 남긴 서책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이 교수는 “그런 것은 없다”면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돌아서 나오는 나의 심경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감정으로 착잡하기만 했다. 우선은 격암유록에 대해 그때까지 내가 갖고 있던 심증과 추정이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이제 무엇으로, 어떻게 격암유록이란 책의 실체를 밝힐 수 있겠는가 하는 아득한 절망감이었다.
11. 역사의 증명
이제 격암유록이란 책을 누가, 언제 썼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필사자이며 동시에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당사자라고 주장한 이 노인도 세상을 떴다. 그리고 내게는 이 노인이 쓴 필사본의 원본이 선친께서 최초로 집필한 ‘格菴遺錄’이라고 주장할 만한 아무런 물적 증거가 없다. 설령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 예컨대 그 원본을 어디선가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 또한 종이에 붓으로 쓴 한 서책에 불과할 뿐 그 집필 동기나 경위 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것은 한 종교의 회유에 응해 가짜 예언서를 집필한 선친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 터인데 자식으로서 무슨 실익이 있다고 그런 불효를 범하겠는가. 책의 집필을 전후해 그토록 번민하며 허탈해 하시던 아버지의 심경을 이제 뒤늦게나마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필시 위서를 쓰는 데 대한 당신의 양심에 따른 자책과 고통이었을 것이다.
지난 세기말, 여러 지구적 재난과 종말론에 편승해 그토록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격암유록도 새천년 시대를 맞이한 이후 그 인기가 현저히 수그러들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썼다는 ‘제세기’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역사가 이 책들의 진위를 증명했다고나 할까.
이른바 무슨 무슨 경(經)이나 록(錄), 비결(秘訣)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세간에 은밀히 유포되어 나돌던 책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나같이 출처나 저자도 분명치 않고 내용 또한 갖가지 교묘한 수법으로 애매하게 기술되어 있어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풀어 둘러댈 수 있는 책이었다. 신흥 종교인들이 대중을 현혹하고 그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삼았던 책, 역술가나 민족 신앙인들, 혹은 도를 구한다는 사람이나 옛것을 좇아서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자신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며 온갖 어지러운 잡설로 풀어내는 책.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와 같은 서책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 옛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고서요, 자랑스러운 민족의 유산이라며 맹신하고 추종해왔던가. 그에 따른 개인적인 희생과 사회적 파장은 또 얼마나 컸을 것인가.
첨단 과학문명을 구가하며 높은 교육수준과 온갖 다양한 정보로 무장한 인터넷 시대의 현대인들이 점집을 드나들며 사주나 풍수에 사로잡혀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붓기도 하고 엉터리 예언서에 빠져드는 현상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듯하면서도 또한 한없이 어리석은 것이 인간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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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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