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하느님과 일치하는 민족경전의 유일신 하느님 사상
우리 겨레가 에벨로부터 셈계의 일신 신앙을 계승한 욕단 계열의 천손(天孫)으로서 처음부터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던 일신교도들이었다는 사실은, 한민족의 경전으로 간주되는 「단군 천범」(壇君天範) 및 「삼일신고」(三一神誥)를 통해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이 경전들은 우리 겨레의 정통적 종교와 신앙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경전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우리 알이랑 민족은 천손민족답게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동일한 하느님을 섬겼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1) 천범(天範)
단군의 천범은 고려 말 이암(李巖)[문정공(文貞公), 1296~1364]이 엮은 책 「단군세기」(壇君世紀)라는 사서(史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아사달에 도읍하여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한 단군의 이야기를 싣고 있는데, 1세 단군 ‘왕검’으로부터 47세 단군 ‘고열가’까지 대략 2,100년 동안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 역시 고려시대에 많이 있었던 「고기」들을 토대로 완성한 것이다. 따라서 「천범」은 밝달나라 조선을 건국한 단군(욕단)이 친히 조선 백성들에게 전한 한민족의 경전임을 알 수 있다. 천범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오직 제(帝, 하느님)는 일신(一神)으로 가장 높은 일위(一位)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 세계를 주관하시며 수없는 만물을 지으시니 넓고 넓어 쌓이지 아니하는 물건이 없고 티끌 하나라도 새지 않게 하시었다. 오직 제(帝, 하느님)는 일신(一神)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고 천궁(天宮)을 다스리시며, 만 가지 착함과 만 가지 덕의 원천이 되시는 하느님은 많은 영들이 지키고 모시니, 크게 길하고 가장 빛나는 밝은 곳을 말하여 신향(神鄕·하느님의 나라)이라 한다…(중략)…많은 무리들은 오로지 하늘이 내리신 법을 지켜 만 가지 착한 것을 돕고 악한 것을 감하여 본성에 이르면 하늘나라를 볼 것이다. 천범은 하나일 뿐이니 그 문은 둘이 아니다. 너희들은 오직 순수하게 참다움을 다할 것이니 이로써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보게 되리라….”
단군 천범은 가장 먼저 하느님은 일신(一神)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 뿐만 아니라 천궁, 즉 하늘나라에 대해 밝혔고, 하늘이 주신 천법(天法)을 잘 지키라 하였으며 이를 잘 지키면 조천(朝天), 즉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하늘나라에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범은 오직 하나라 하였다. 이 하늘법은 진리(true reason, truth)와 같아 그 문이 하나이며 모든 것을 지키면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한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연상하게 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천범은 모든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함을 알 수 있다.
2) 삼일신고(三一神誥)
삼일신고는 단군 이전 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의 상고사를 서술하고 있는「태백일사」(太白逸史)라는 사서(史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조선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였던 이맥(李陌)이 펴낸 것으로, 그는「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이었다. 그는 연산군 때에 문과에 등과하여 왕족들의 친목회를 관장하는 직책을 맡다가, 강직한 성품을 지닌 그의 반대 직간으로 인해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서 연산군 10년(1504년)에 괴산으로 유배되었으나―이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된다―다시 중종 때에 소환되어 중종 15년(1520년)에 찬수관(撰修官)을 지냈다.
이때 그는 내각의 많은 비장 서적을 접할 수 있었고, 그가 귀양 시절에 읽은 책의 내용과 들은 이야기들을 비교하여 차례로 엮어서 「태백일사」라 이름 했던 것이다.「태백일사」발문(跋文)에서 이맥은 이 책의 집필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歲)는 갑자년(1504년), 괴산에 유배되어 적소에서 마땅히 근신하니 매우 무료한 터라. 집에 간직한 여러 상자들을 취하여 조사해본 즉 사전(史典)으로 가치가 있는 것과 또 평소에 여러 고로(古老)들에게 들은 것을 합쳐서 채록하였는데 책으로는 채 만들지 못했던 바라. 뒤 16년(1520년) 경진(庚辰)에 내가 찬수관으로 뽑혔기 때문에 열심히 내각(內閣)의 비서(秘書)들을 얻을 수 있어, 이를 읽고 앞의 원고에 곁들여 편찬하고, 이름 지어「태백일사」라 하였다.”
태백일사는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국본기」(桓國本紀),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등으로 엮어져 있다.
「삼신오제본기」는 주로 우주 생성, 「환국본기」는 환인이 다스렸다는 환국의 역사, 「신시본기」는 환웅이 다스렸다는 신시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삼한관경본기」는 진한(진조선), 마한(막조선), 번한(번조선) 가운데 마한과 번한의 역사가 실려 있다. 「고구려국본기」는 고구려, 「대진국본기」는 발해, 「고려국본기」는 고려의 역사를 다룬 것이다. 「소도경전본훈」은 단군 조선의 신앙과 교리를 다루고 있다. 삼일신고는 「소도경전본훈」에 기록되어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의 삼일신고는 본래 단군의 훈고(訓誥)로 당시의 사관(史官) 신지(神志)에 의하여 기록되었으며―단군 시대에 ‘가림토’라 하는 원시 한글이 존재했었다―이는 그 후 은대(殷代)의 왕수극(王受剋)에 의하여 은문(殷文)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둘 다 없어지고 오늘에 전해지는 것은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현금 삼일신고에는 발해 고조왕(高祖王) 대조영(大祚榮·669년∼719년)의 「찬문」―어제삼일신고찬(御製三一神誥贊)―일편과 그의 아우인 반안군왕(盤安君王) 대야발(大野勃)의 서문이 실려 있으며, 그 후에 3대왕 문왕(文王) 3년(739년)에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가 씌어진 사실들을 보아 알 수 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삼일’(三一)은 단군교 계통에서 말하는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강화도 마리산을 보더라도 단군 자신이 삼일의 하나가 아니라 단군이 마리산 천제단에서 하늘, 곧 삼위일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삼일신고는 인류 시조의 가르침을 문자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의 5장으로 되어있는데, 연구가들은 앞의 3장(천훈, 신훈, 천궁훈)만이 원래의 단군 한배검이 전하여 준 것이요, 뒤의 2장(세계훈, 진리훈)은 후세 사람이 앞의 3장에 붙여놓은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앞의 3장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1장 ‘하늘’에 대한 말씀 (天訓 천훈, 36자)
1절: 하느님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아 파란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만 것도 하늘이 아니니라
2절: 하늘은 모양과 바탕이 없으며, 시작과 끝이 없으며, 위아래와 사방이 없고
3절: 비고 비어서 어디에나 있지 않은 데가 없고 무엇이나 싸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帝曰 爾五加衆 蒼蒼非天 玄玄非天 天無形質 無端倪
제왈 이오가중 창창비천 현현비천 천무형질 무단예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無不在 無不容
무상하사방 허허공공 무부재 무불용
제2장 ‘하느님’에 대한 말씀 (神訓 신훈, 51자)
1절: 하느님은 위없는 으뜸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내시고,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시며
2절: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시어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3절: 소리나 기운으로 원하고 빌면 꼭 친히 만나볼 것이니, 참된 성품으로 그 씨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 머리 위에 내려 임재하시리라
神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 生天 主無數世界 造甡甡物
신재무상일위 유대덕대혜대력 생천 주무수세계 조신신물
纖塵無漏 昭昭靈靈 不敢名量 聲氣願禱 絶親見 子性求子 降在爾腦
섬진무루 소소령령 불감명량 성기원도 절친견 자성구자 강재이뇌
제3장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 (天宮訓 천궁훈, 40자)
1절: 하늘은 하느님의 나라이라 천궁이 있으니 온갖 선으로 층계를 쌓고 온갖 덕으로 문을 삼았으며
2절: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서 천사(군령)와 장로(제철)들이 지키어 모시나니 지극히 복되고 가장 빛나는 곳이니라
3절: 하느님과 성품이 통하고 공을 이룬 사람이라야 천국에 가서 영원한 기쁨을 얻으리라
天神國 有天宮 階萬善 門萬德 一神攸居 群靈諸哲護侍 大吉祥
천신국 유천궁 계만선 문만덕 일신유거 군령제철호시 대길상
大光明處 唯性通功完者 朝 永得快樂
대광명처 유성통공완자 조 영득쾌락
삼일신고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삼일신(三一神), 즉 삼위일체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과 동일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이에 관한 글은 다음 순서에 올립니다). 여기서는 삼일신고의 가장 핵심적인 교훈인 천훈·신훈·천궁훈 세장을 통해 고대 한국인이 숭배했던 하느님이 성경의 하느님과 동일한 ‘유일신 하느님’이셨음을 확인할 것이다.
먼저 제1장 ‘천훈’(天訓)은 ‘우주론’인데, 하느님께서 내신 하늘의 원리를 설명했다. 하늘은 파란 것도 검은 것도 아니요, 형질도 없고 시간의 시작과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상하사방(上下四方)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공으로 표현되는 존재자로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무소불용(無所不容)한 것이 하늘이라고 교훈한다. 공간적인 우주세계를 곧 천(天)이라 하여 그에 대한 설명을 한 것으로 하늘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다음 제2장 ‘신훈’(神訓)은 ‘신론’(神論)으로 하늘이라는 우주 안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창조주 하느님을 설명했다. 이 제2장을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신훈’이 교훈하고 있는 하느님은 실로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① 지존자이시다(사 33:5; 57:15) - “하느님은 위없는 으뜸 자리에 계시사”
② 덕이 있으시다(벧전 2:9, 벧후 1:3) - “큰 덕과”(이 말은 하느님의 성품이 사랑과 정의로 가득하신 분임을 나타낸다. 이교(異敎)의 신들은 덕이 없으며 다만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③ 지혜와 명철이시다(잠 3:19) - “큰 지혜와”
④ 능력과 권능이시다(대상 29:12) - “큰 힘을 지니시어”
⑤ 창조주이시다(창 1:1, 사 40:26) - “하늘을 내시고”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으며”
⑥ 만물의 주재자이시다(롬 11:36) -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시며”
⑦ 빛이시다(요일 1:5) - “밝고도”
⑧ 영이시다(요 4:24) - “신령하여”
⑨ 측량할 수 없다(시 145:3) -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⑩ 음성과 마음으로 기도하면 만날 수 있고 임재 하신다(렘 29:12~13 ; 33:3) - “소리나 기운으로 원하고 빌면 꼭 친히 만나볼 것이니…너희 머리 위에 내려 임재하시리라.”
분명히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제천의식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숭배의 대상, 천(天) 혹은 하느님(한알님)은 성경에 기록된 창조주 하느님과 동일하신 분이었던 것이다. 결코 막연한 하늘이거나, 범신론적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의 신인 절대자가 하늘에 계심을 분명히 알았고, 자기네들은 그 하느님의 백성 곧 ‘천손민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바로 그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늘에 ‘천제’를 드렸던 것이다.
알이랑 민족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은 홀로 한 분이신 창조주 하느님만을 섬기던 일신교도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종교(천신숭배·제천신앙)는 역사적으로 변화함을 입지 않고 태초로부터 내려와(아담→아벨→셋→에노스 계열을 통해), 노아→셈→아르박삿→셀라→에벨을 거쳐 벨렉과 욕단에게로 계승된 유일신 신앙이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 한민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그 하느님을 믿고 받들고 섬겼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다. 한민족은 고조선시대부터 기독교의 하느님을 섬겨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결코 유대인의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일찍이 숭배했던 그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 하느님을 잊었다가 기록된 계시인 성경을 통해 다시 찾은 것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고대뿐만 아니라 삼국·고려·조선·근세를 거쳐 오늘날 까지도 한국인의 영성 깊은 곳에 여전히 살아있는 신이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가 선교 100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2천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큰 부흥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이다. 한국교회 부흥의 가장 큰 요인은 기독교의 하느님은 한국인이 원래 믿고 받들고 섬겼던 그 하느님과 같은 신이므로 한국인의 정서와 영성에 아주 잘 영합(迎合)한다는 사실에 있다.
유일신을 섬겼던 한민족에 대해서는 한국에 왔던 개신교 선교사들의 기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캐나다 선교사인 게일(J. S. Gale)은 그의 저서「전환기의 조선」(Korea in Transition)에서 “한국인의 신이란 ‘하느님’으로서, 즉 유일하게 위대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James S. Gale, 「전환기의 조선」,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7, p.70).
헐버트(H. E. Hulbert)라는 미국인 선교사는 그의 저서「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종교관은 외래적인 의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원시적인 자연숭배와도 거리가 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느님이라는 어휘는 ‘하늘’이라는 단어와 ‘주인’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한자의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한국인들은 이 하느님이 우주의 ‘최고 지배자’라고 믿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Honer B. Hulbert, 「대한제국 멸망사」,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9, pp.469~470).
이외에도 장로교 선교사인 H. G. Underwood의 부인인 L. H. Underwood는「Underwood of Korea」에서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 (the Kingdom of Kokurei)에서는 하느님이라 불리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 … 그리고 유일한 신 하느님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리키는 것 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일신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신과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신 여호와가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왕하 10:15, 요 5:44, 17:3).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느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의 유일하신 하느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사 3:16).
헐버트 선교사는 이에 대해 “한국인들은 유일신을 믿으며, 이 하느님에게 부여된 속성이나 권능은 외국의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거의 보편적으로 말하는 여호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느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며,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출 20:3-6, 신 4:7-9). 이 같은 차원에서도 한민족은 우상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 “중국에서는 천주라는 이름을 갖는 우상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실제적인 형상을 부여하려고 한 적이 없다. 한국인들은 하느님을 어떤 우상적인 의식으로 경배하지 않는다”는 헐버트 선교사의 증언이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로 한국인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하느님을 섬겼던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처럼 우리 겨레는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단군, 곧 욕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제3장 ‘천궁훈’(天宮訓)은 ‘천국론’인데,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나라(天宮)에 대해 설명했다. 그 곳은 만선(萬善)으로 층계를 쌓고 만덕(萬德)으로 대문을 만든 곳으로, 뭇 신령(천사)들과 빛나는 선인(성도)들이 모여 있는 밝고 빛나는 곳이며, 영원한 기쁨이 있는 낙원이라고 교훈한다. 이 역시 성경에 계시된 천국의 모습과 일치한다.
단군이 백성을 교화하기 위하여 썼다는 이 ‘삼일신고’의 시원(始原)은 여러 가지 문헌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건국한 조선시대는 물론이지만 그 이전 태초 무문자 시대에 구전하던 글(口傳之書)이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것으로서 ‘삼일신고’는 우리 겨레의 형성과 그 시원을 같이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삼일신고’는 이미 기원전부터 민간 속에 유포되어 읽혀졌으며, B.C. 37년 고주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삼일신고’의 독법(읽는 법)을 서술해 놓고 있기 때문에 ‘삼일신고’는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 가운데서 외래의 영향을 받지 않고 형성되어 내려온 굉장히 오래된 문헌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삼일신고’는 우리 알이랑 민족 배달 동이 겨레가 외래 사상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민족 내적으로 고유하게 가지고 있었던 독창적인 사상이었던 것이다. 발해의 대야발은 이 ‘삼일신고’에 대하여 “삼일신고는 중생을 철인으로 되게 하는 둘도 없는 진경”이라고 하였다. 그 사상이 굉장히 독창적이라는 것이며, 다른 어느 곳에도 이와 같은 사상은 없다는 것이다.
실로 고대 한국인의 신앙은 여러 면에서 독창적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은 유일신론적이었다. 고대 이방 종교들은 모두 다신론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선조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겼다. 더욱이 고대 한국인의 신앙은 반(反)형상적이었다. 즉 그들의 하느님은 어떤 형태로든 묘사되거나 형상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숭배하고자 결코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점, 많은 면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의 선조가 섬긴 하느님은 삼일신(三一神),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 ‘삼위일체’라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성부·성자·성령의 개념과 일치한다(이에 관한 글은 다음 차례에 올립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실로 이와 같은 사실은 고대 한국인의 신앙이 독창적이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를 불허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조차도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도 우리 한민족의 조상들처럼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겼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삼위일체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은 신학적으로 회교도들의 신(神)인 ‘알라’처럼 ‘단일신’이지 ‘유일신’이 아니다. ‘유일신’이란 성경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느님’을 말한다. 유대인의 하느님 사상에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한국인은 아득한 옛날부터 ‘단일신’ 하느님이 아닌 ‘유일신’ 하느님, 즉 ‘삼위일체 하느님’을 섬겼던 것이다.
다신교 숭배의 고대 세계에서 우리 조상이 지녔던 이와 같은 ‘독창적 유일신관’은 한국인이 참으로 홍수 이후 셈계의 일신신앙을 가지고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극동 아시아까지 이동해 온 욕단계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이것 이상으로 더 강력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 마리산 참성단단군이 유일신 하느님께 제사 드린 곳
고조선의 시조 단군왕검은 개국 51년에 운사(雲師)에게 명하여 마리산에 제천단인 ‘참성단’을 쌓아 하느님께 제사를 올렸다(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이 제단이 있는 산을 근래에 마니산(摩尼山)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와전된 것이다. ‘마니’가 아니고 ‘마리’이다. ‘마리’란 우리 말 머리(頭)의 고어이다. ‘우두머리산’이란 뜻이다. 즉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한알님께 제사 지내는 산이기에 ‘우두머리산’인 ‘머리산’, 곧 ‘마리산’인 것이다. 시조 단군이 마리산 정상에 쌓은 천제단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대홍수 후, 욕단(단군)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신 신앙을 갖고 알이랑 고개를 넘어 서쪽에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기 때문이다. 즉 단군은 마리산 천제단에서 서쪽에서 섬겼던 그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산 천제단은 엄연히 기독교의 성지이다. 마지막 때에 한국인은 서쪽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제사했던 단군의 자손답게, 서쪽으로 복음을 들고 예루살렘 땅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사 52:7~10; 46:10~13).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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