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셨을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으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이사야 43: 10)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으니라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찌니라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이사야 44: 6~8)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교파가 있습니다.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쓰면서
스스로들을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성경을 그런식으로 적용시키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누구인지를
성경이 정확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
그 보혈의 능력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지 영적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표현이 없고,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여호와의 증인'
'나의 증인'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이 땅에 존재하고 있고
성경말씀대로 그들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의 역사를 예언하고 성취해 나가시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구약이 신약의 예표요, 그림자, 교훈이라고 말씀셨습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경계와 교훈을, 자신의 영적 신앙생활에 적용시키면서
하나님 앞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본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누구도 그것을 아니다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 이상을 뛰어넘어 누구든 자신들이 여호와의 증인이고,
영적 이스라엘이다, 하는 식으로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결코 '이스라엘'의 위치와 가치를 바꿀수 없습니다.
너희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명기 7:6-7)
하나님이 자신의 증인으로 한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셨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이스라엘 민족의 수효가 적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스라엘을 향해
흔히 '작지만 큰 나라'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작은 나라'를 택하셨는지 쉽게 짐작할수 있습니다.
큰 사람 능력이 많은 사람이 큰 일과 능력을 행하는 것과,
그런 일을 해낼 수 없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이
같은 일을 해냈을을 때의 의미과 가치는 하늘과 땅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중략)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중략)
여호와께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핧아 먹은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사사기 7:2~7)
하나님의 구원은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말씀도 있고,
어쨌든 이 말씀 만으로도 하나님께 '적은 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초부터 그 수도 많고, 땅도 크고, 강대한 나라였다면
지금처럼 세계가 이스라엘 민족을 주목할 수 있었을까요?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비참한 역사를 가진 작은 나라,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 만한 크기의 작은 민족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그 나라를 주목하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시는 목적을 성취해가고 계십니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6)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더러는 완악해 진것이라" (로마서 11:25)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이리요 (로마서 11:11-12)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해 이 말씀은 사실이라는 증거를 나타낼 뿐 아니라,
창세전부터 있었던, 구원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이방인을 위해 이스라엘은 넘어지고 싶지 않아도 넘어져야 하고,
완악하고 싶지 않아도 완악해져야 합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박지 않았으면
이렇게 됐네, 저렇게 됐네 말하기도 하고,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실패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하네, 저렇게 해야 하네..성경에도 없는 주장들을 하곤 하지만,
그런 주장들은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들입니다.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도,
겉모양만 놓고 본다면 그들의 생각대로 그들의 판단대로 한 일처럼 보입니다.
또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너머를 보면 결국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저들이 저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것이 아니고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였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요 18:36)' 라고 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 그 자체가
'죽으심'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에
'생명'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오셨는데, 만약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펼친 것이지만
하나님은 미래의 일들을 다 아시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애초에 사탄과 그의 반역을 허락하신 것처럼.
뛰는 놈위에 나는 놈,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뭐 이런 말도 있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방법입니다.
어쨋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그 자체로도, 이방인들의 편에서도 아주 특별한 민족입니다.
그들의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움직이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주관하시는 세계 속에 바로 '내'가 있고
또한 나의 '운명'이 있음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을 봐라! 가 아니라
그 속에 바로 '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지으시고 선택하시고, 주관하는것처럼
너도 내가 만들고, 주관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그 사실을 믿게 하시기 위해 오늘 이스라엘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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