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중국교회
요한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한 중국교회
개혁개방 정책 실행 이후, 3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가정교회의 성도들은 정부의 통계자료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므로 가정교회의 성도의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현재 성도의 수는 거의 1억에 가까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교회의 이런 경이적인 수적 성장과 천 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재까지 중국교회는 자체적인 선교사역에 성공한 예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중국교회의 부흥은 전적으로 은혜로 인한 부흥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귀한 하나님의 은혜는 늘 한족 문화권 안으로만 흘렀지, 밖으로는 얼마나 흘러갔는지 깊이 생각해보야 할 문제이다. 나만 은혜 받고 내 배만 채우려고 들 때, 그것은 더 이상 은혜라고 볼 수 없다. 중국교회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나눌 줄 아는, 즉 선교에 앞장 서는 교회가 될 때 축복을 받기에 더욱 합당한 교회로 거듭날 것이다.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력증강에 힘입은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은 이미 중동을 넘어서 아프리카는 물론, 중남미 등 세계곳곳에 미치고 있다. 중국이 국제사회를 향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서, 국내 선교는 물론 왹구인 선교사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모슬렘권이나 불교권 등의 나라들을 향한 해외선교에서도 준비된 중국교회들이 주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내에는 후이족이나 위구르족과 같은 모슬렘권과 티베트족이나 투족과 같은 불교권이 공존하기 때문에 장차 동일한 문화권에서의 해외선교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해외선교를 위한 중국교회의 준비
몇 년 전부터 시작하여,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수많은 중국인(거의 한족)들이 여행, 유학, 사업 등으로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중국인들도 외국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만일 이들이 선교사로 헌신한다면 이들보다 더 훌륭한 선교사는 없을 것이다.
절약 정신이 몸에 베인 중국인들은 소비활동이 낮을 뿐만 아니라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부지런한 민족이다. 그러니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적은 비용으로도 잘 견디고 중국음식점을 꾸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비량 선교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잡초와 같은 근성으로 가는 곳마다 토착화할 수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중국인들이다. 서양인들도 한국인들도 이것이 어렵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협력을 잘 하는 편에 속한다. 이러한 성향은 좋은 선교사를 배출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국력의 차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아직도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에 가려면 비자 받기가까다로운 데 비해 중국여권을 갖고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나라들 또한 적지 않다. 회교권, 불교권, 기타 사회주의 국가에까지 중국인들은 기술자로, 노동자로, 사업가로, 심지어 유학생 신분으로 얼마든지 들어간다. 그 수많은 중국인들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서 간다면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소수민족 선교
2005년 정부의 인구 통계자료에 의하면 소수민족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44%라는 통계가 나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같은 중국 내이기는 하지만 소수민족의 문화는 한족문화와 엄연히 다른 문화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타문화권 선교는 확실한 소명을 받은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이다.
소수민족 선교에 필요한 조건
1. 철저한 영성 훈련과 재정적인 뒷받침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은 자는 시간을 들여 선교지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교회는 또한 이 선교사 후보생이 진정 선교사로서의 자질이나 영성을 갖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기본적인 영성훈련(선교사로서의 인격과 성품 개발훈련도 포함)을 잘 받을 수 잇는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선교지로 나갈 선교사 가정이 있다면 그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중국에는 아직 공식적인 선교기관이나 단체가 없기 때문에 선교사는 반드시 교회의 파송을 받고 교회의 관리를 받아야 함이 옳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선교사는 마땅히 선교지에서 필요한 생활비를 교회를 통하거나 혹은 어떤 정기적인 후원공동체를 통하여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활비의 기준은 선교사 본인이 선교 현지의 물가상황에 근거하여 스스로 책정하고 교회에서 그의 요구가 합당한지를 판단하고 적절하게 책정해 주는 것이 옳다. 대개 선교지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생활수준과 비슷하거나 조금은 높게 책정하는 것이 좋다. 왜 굳이 재정적 문제를 제출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다. 전에 필자는 어떤 목회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국교회의 목회사역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교인들이 성서적 원리에 따른 헌금생활이 약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들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드릴 각오는 되어있는지 몰라도 헌금을 드리는 것을 마치 사람에게 바치는 것처럼 아까워하는 것 같다.” 필자는 생활비 부족으로 인한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족선교사들을 보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비를 보장받고 선교지로 나가는 것은 실제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2. 현지언어 습득과 문화이해
중국의 문화를 나타내는 단어로 화샤문화(華夏文化)라는 복합적인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영어로 표기할 때는 “화샤문화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중국에서의 “문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언어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내의 55개 소수민족을 또 다시 수백개의 언어종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중국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족과 다른 소수민족 사이에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이 다르다. 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동과 서, 남과 북의 차이는 때로는 서로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각각의 문화에는 단지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코 우열이한 있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현지언어를 배워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선교지로 나왔다. 단순히 보통화(표준어)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사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4년을 공들여 현지언어와 문자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 공부만이 아니었다. 언어를 공부하는 과정 속에 일반 서민부터 시작하여 공무원, 그리고 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 고유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배우게 되었다.
일단 현지 언어로 현지인들과 능숙한 대화가 가능할 때 비로소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들과 친구가 되었을 때 이들이 한족인 당신을 바라보던 색안경을 벗고 당신과 좀더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고, 나중에는 당신을 향해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알게 될 때 당신은 진정 이들의 민족적인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되어 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게 되고, 이들의 민족적인 슬픔이 우리들 자신의 슬픔이 되어 함께 울 수 있게 될 것이다.
3. 겸손과 섬김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 선교사는 모든 거쇼을 참고 견딜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필자와 알고 지내던 한족선교사의 현지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는 정말 소수민족을 섬기려고 노력했다. 입에 맞지도 않는 이들의 음식을 때로는 구역질까지 나오는 것을 참아 가면서 먹었고, 벼룩과 이와 벌레들이 있는 텐트 속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렇게 이들의 언어를 배워가면서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이들에게 한어로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겨우 알아들은 사람들은 이상한 종교를 전한다면서 마을 밖으로 내쫓았다.
결국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되고 극도로 침체된 상태의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뜨거운 열정으로 이 민족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식으로 자기를 대우한 것에 대한 물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홧김에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와의 대화 속에서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한족으로서의 우월의식이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지금은 깨달았는지 모르겠지만, 소수민족들의 역사와 문화 속에는 한족에 대한 한(恨)이 있다. 필자가 아는 어떤 소수민족 학자는 소수민족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자신들을 한족에 비교한 약소 민족이라고 결론 짓는 민족적 차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소수민족 중에는 아예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 조차도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후손이 한족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족선교사가 만일 이들에게 한어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문화적인 침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돌출되는 강대민족을 향한 약소민족의 끝없는 저항이 바로 이 한풀이를 위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이들의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있는 그 한을 누가 풀어 줄 수 있을까, 해답은 바로 주 안에서 거듭남을 체험하고, 역사에 대해서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한족 형제자매들에게 있다. 거듭난 한족 그리스도인이 정부(정부의 구성원 절대 다수가 한족이고 정부의 정책 또한 대부분이 한족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임을 명심해야 한다)를 대신해서 옷을 찢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한족이 이들에게 지은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이들을 포용하고 섬겨야 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소수민족의 아픈 상처를 싸매주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교회의 믿음의 자녀들 뿐이다. 그리고 죽기까지 이들을 섬기는 길, 이것이 바로 예수의 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중국교회에 축복과 고난을 함께 허락하셨다. 이 마지막 때에 소수민족 복음화 사역에 중국교회를 쓰시고자 하는 계획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소수민족의 한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많은 고난을 중국교회에 허락하셨는지 모른다. 자신이 아픔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절대로 깊이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필자는 이 한족선교사처럼 복음전파를 포기하고 귀향한 것을 꼭 실패한 선교사라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실수 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한족선교사가 돌아가서 자신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은 후에 선교를 위해 준비하는 선교사 후보생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강사가 될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4. 다른 선교사들과의 협력
필자도 언급하기 쉽지 않은 예민한 문제이다. 어느 소수민족 지역으로 가든지 그곳에는 이미 와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일 것임)들이 있을 수 있다. 가능하면 외국인 선교사들과 만나서 좋은 교제를 나누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혹시 더 깊은 교제로 이어진다면 당신은 외국선교단체간에는 어떤 협력관계를 갖고 사역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선교행정이라든가 선교사의 관리나 훈련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오랜 선교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들인 것 a만큼 당신이 배워야 할 것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실수를 했거나 실수하고 있는 부분들도 많을 것이다. 당신이 겪는 이 모든 것은 장래에 국내(중국)에도 선교단체들이 생겨날 경우, 이들이 범했던 실수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곟하 시대가 되면서 어느 한 선교단체가 독자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앞으로 어던 단체나 교회든지 협력관계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사역하기는 점점 어려워 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인단체들에 해당되는 문제이고, 그 문화적인 중심에 있는 국내(중국)교회와 왹구인단체 간에 협력관계가 있게 될 경우, 그 결과는 어떠할지 아직은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만일 당신이 어떤 특정사역에서 왹구인선교사와 함께 동역할 필요가 있다면 어떤 관계로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필자가 여기서 굳이 누가 사역의 주도권을 잡느냐는 문제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선교사와 당신의 관계는 선교사와 현지인조력자의 관계와 같은 수직관계가 아닌, 서로 평등한 동역관계라는 사실을 외국인선교사에게도 분명하게 해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관계 속에서 함께 일할 때 당신에게도 그 사역에 대한 충분한 책임의식과 사명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5. 교회 개척과 토착화
교회의 토착화라는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관한 것이다. 1890년 중국 산동성에서 사역했던 미국인 선교사 죤 네비우스(John L Nevious 1829-1893)가 그동안 중국에서 사역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논문집 <선교방법론>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이 글에서 피선교지 교회가 외국선교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발전해 가도록 유도함으로써, 능력있고 강인한 교회로 키우는 것이 선교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진취적인 토착교회(즉 현지인교회) 형성’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선교정책의 기본이념으로 자진 전도, 자력 운영, 자주 치리의 세 가지를 내세웠다. 그는 특히 토착교회의 자립능력을 강조하여, 현지인 전도사도 외국선교부의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고 현지교인들의 헌금으로 활동하게 하였고, 학교나 병원 등 시설비가 많이 드는 기관을 제외한 교회건축비는 현지교인들이 부담하도록 유도하였다고 한다. 이같은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을 그 당시 한국에 와있던 미국장로회 선교사들이 다시 수정하고 보완하여 한국의 국정과 한국인의 정서에 알맞은 선교정책으로 변화 발전시켜 이 원칙에 따른 선교사역을 했다. 그 결과 한국교회의 주도적인 역할은 늘 한국인 스스로가 감당하였다(그 당시 한국 내의 상황 역시 기독교 부흥에 큰 영향을 준 것도 있다). 비록 짧은 120년의 기독교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현지토착화를 이루는데 큰 성공을 거둔 반면, 중국은 천 년의 역사와 네비우스가 직접 선교현장에서 사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와 같은 기적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에도 교회토착화를 위한 외국선교사나 선교단체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외국선교회는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중국교회의 사람이다‘라는 책략을 택하여 외국 공회의 명칭을 바꿔 ’중화기독교전국총회‘와 같은 비교적 큰 규모의 기독교 단체를 성립하기도 했지만 각 공회는 재정과 인사 등 실제권력은 여전히 외국선교회가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중국교회의 지도자는 실질적인 권한을 이행할 수 없는 외국인선교사들의 대리인에 불과했다. 그래서 당시 어떤 사람들은 “이 기관은 미국인의 돈으로 세운 것이니 미국인에게 맞도록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면서 수긍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며 “오늘날 중국교회는 토착교회가 없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진리와 생 명> 제 2권 9-10기, 1927년)
이 같은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 당시 중국교회가 진정한 토착화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외국선교사의 장기집권에 있지 않앗나 싶다.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선교사들이 떠나간 중국은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는 듯 싶었는데, 이 땅에서 교회는 결코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왕성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 인류를 향한 구원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어떠한 민족문화의 토양 속에든지 뿌리 내려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진정한 복음이 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중국인 형제자매들을 비꼬아 ‘가짜 서양놈들(假洋鬼子)’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부르는데는 아마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중화제일의 사상에 심취해서 서양인들을 멸시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의든 타의든 막론하고 예수를 믿기 시작한 중구인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전통문화보다는 서양인들의 서구적인 문화를 닮으려는 극단적인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 선교사란 선교지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화를 전수하러 간 “문화 전도자”가 아니라 “복음 전도자”이다. 선교사는 철저하게 현지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문화적 우월의식 없이 온전한 섬김의 자세로 현지인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교사는 현지인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을 사랑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독교를 그들의 가치와 관습에 맞추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선교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관이 드러날 것이다. 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일 중국인 형제자매들이 복음의 참 뜻을 깨달은 균형 있는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면, 무조건적으로 서양인들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흉내를 내지 않았다면, 중국인 형제자매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받은 그 엄청난 영적각성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자신의 새로운 세계관을 따라서 정직하게 살며 사회의 공의를 이루는데 노력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의 중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그리스도인 총서기가 중국을 다스리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회의 토착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삼자원칙인 자치, 자양, 자전(중국의 삼자교회의 삼자애국운동의 기본인 자치, 자양, 자전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은 이웃나라인 한국에서는 큰 효과를 거둔 반면, 중국에서는 실패한 사실에 주목하여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어과정을 어느 정도 끝낸 선교사는 이젠 본격적으로 소수민족 지역에서 지혜롭게 복음을 전해야 할 단계에 이른다.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자가 생긴다면 이런 믿는 자들이 네비우스 정책의 삼대 원칙인 자치, 자양, 자전에 따라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들을 전도자로 양육해서 당신과 같은 현지인선교사로서 파송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교회는 선교를 할 때 만이 교회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6. ‘선교사역은 주님의 것’이라는 인식
지혜로운 선교사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은 내 것이 아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이다. 이런 선교사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사역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 이런 선교사를 통하여 양육된 제자는 선교사의 제자가 아닌 주님의 제자요, 이런 선교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교회 역시 선교사의 교회가 아닌 주님의 교회이다. 이것을 명심하자. 내 것은 없다! 오직 주님의 것만 있다!
중국을 주께로 2009. 11/1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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