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민족 - 소그드인
당의 수도인 1백만 도시 장안은 실크로드와 직결되는 국제도시이기도 하였다.
실크로드는 서쪽으로 열린 중앙아시아의 대교역로였고, 그 중심지가 파미르고원에서 흘러나오는 제렙샨(황금을 뿌린다는 의미)강 유역의 옥토를 중심으로 하는 소그드지방이다. 이 지역에 사는이란계 소그드인은 대부분 조로아스터교도들로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식민,상업활동을 펼쳤다. 그들을 열심히 케러반(대상)을 조직해 장안까지 들어왔으며 대부분이 서시주변에 정착하여 보석.융단.향료의 판매.금륭 등에 종사하였다.
그들을 장사수완에는 중국 상인들조차도 당해내지 못했던 듯하다. 구당서에서 "소그드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아기의 입안에 설탕을 머금게 하고 손에는 아교의 재료가 되는 풀을 쥐어준다. 그것은 아이가 성장했을 때 설탕처럼 좋은 말만하고 아교가 손에 달라붙듯이 한 번 쥔 돈은 절대 놓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에서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를 단속하는 관청의 장관을 살보라고 하는데 그것은 소그드어로 '대상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사르토파우'의 음역이었다. 그 지위는 대부분 소그드인들이 차지하였다.
소그드인의 출신지는 그 사람의 성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사마르칸트 출신자는 '강' 부하라 출신자는 '안' 키슈 출신자는 '사'라는 성을 썼다. 안사의 난의 지도자 안록산사사면도 소그드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당대에 호인이라고 부를 경우에는 소그드인을 가르키기도 하고 북방의 흉노와 돌궐등의 가르키기도 한다.
소그드인들은 페르시아 이란계사람들로 예전부터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실크로드상에서 대상으로서 중간상으로서 많은 이익를 챙기고 있었으며 당대에 외튀켄산맥을 중심으로 제국을 건설한 오르콘위구르제국의 수도에도 많은 사람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국의 수도의 한 골목은 소그드인들이 촌락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문자를 위구르제국에 전달해 주었다. 이 문자는 이슬람이 위구르인들에게 들어오기 전까지 위구르인들은 이 소그드문자를 쓰고 있었다. 이 문자는 칭기스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하면서 몽골인들에게 전달 되었다. 몽골제국의 통치스승은 유목민이면서도 정착민인 그러므로 법률과 행정등이 고도로 발달한 위구르인들을 참모로 초빙을 하였다. 그러므로 초기 칭기스칸의 참모로는 타타통아라는 인물이 늘 따라다녔고 쿠빌라이에게는 또다른 에흐메트라는 위구르인이 참모의 역할을 했다.
이 언어는 다시 만주인들이 개량을 하여서 만주문자로 탄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북경의 청나라 유적들에는 이 글자가 아직도 건제하게 볼 수 있다. 지금도 만주족,시보족(만주족의 한 갈래)는 이 문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의 몽골인(내몽골자치구에는 이 문자가 사용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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