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땅을 가로지르는 복음의 물결
서북의 선교전략적 중요성
중국 서부대개발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인 요청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략과 정책을 가지고 다가가고, 소수민족은 즐거움 반 두려움 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은 대형 스피커를 통해 “중국의 미래는 서부개발에 달려있다.”라는 뉴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도시도 최근 서부대개발의 표어 아래 열차, 고속도로 등 기간 산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보다 몇 배 운송시간을 단축시킬 고속도로 건설, 상하이(上海)까지 연결되는 천연가스 운송파이프 매설 등으로 당장 혜택을 기대할 수 잇게 되었고 이외에도 염해(鹽海) 개발 등 다양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는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낡은 건물이 헐리고 새 도로들이 건설되면서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서부는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 역사 속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온 이 지역에 이제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려는 것일까? 세계는 여러 시작으로 이 개발을 이해하고 있다. 서양 언론매체들 중에는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길들이기”라는 정치적인 해석으로 보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단지 이러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계획이 서북지역의 소수민족 갈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중국의 거시경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고, 이 지역에 엄청난 지하, 천연자원의 보고(寶庫)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당국은 서부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강한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 우리는 더 넓게, 그리고 더 가까이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 기대가 된다. 최근 들어 이 지역에서 발생되는 소위 민족신문이나 잡지에 서부대개발에 대한 각계 각층의 글이 실리고 있다. 이러한 글들의 중심 내용은, 서부대개발로 인해 자기 민족의 고유문화(문화는 바로 종교를 의미)가 침해를 받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모슬렘인 회민(回民: 이슬람을 신봉하는 소수민족을 지칭)들은 이에 대해 더욱 민감함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선교의 바통은 중국인이 받아서 해야 한다는 큰 비전을 가지고 동북과 해안 지역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역을 전개해 왔다. 이에 따라 서부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채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서부개발 시대가 도래한 지금, 중국 복음화를 위해 부르시고 비전을 부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
선교를 가로막는 양대 산맥
서부지역 가운데 필자가 사역하는 서북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북지역 인구는 99년 통계로 간쑤(甘肅)성 2519만, 칭하이(靑海)성 510만명, 신장(新疆)위그르자치구 1,775만, 시짱(西藏: 티벳)자치구 245만 등 총 5,049만 명으로 수는 별로 많지 않지만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중국 전체의 1/3을 차지한다.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고 소수민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에, 한족을 중심으로 전개해왔던 중국선교에서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계선교의 최대 장애물인 이슬람과 라마불교가 거대한 산맥처럼 강력하게 버티고 있는 곳이 바로 서북지역이다. 따라서 서북지역 복음화는 중국을 통해 세계선교를 하겠다는 우리의 비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지리적으로 볼 때 시짱과 신장은 대부분 높은 고원과 사막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중국 안의 또 다른 중국을 보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고원과 사막을 가로질러 서부로 계속 간다면, 카스피해까지는 약 1,800km 정도, 그 유명한 바쿠항(남북으로 러시아문화와 이슬람문화가 만나는 지점)까지는 약 2,000km 정도 된다. 이것은 중국 시안(西安)에서 신장 우루무치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하며 기차로 갈 경우 2박 3일이면 도착한다. 이 거리 안에는 미전도 종족이 약 80%이상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모슬렘들이다. 하지만 사막(타림)과 높은 산맥(히말라야산맥, 파미르 고원, 씽뚜쿠스 산맥, 칼라쿠무 사막과 이란 고원 등)이 가로막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았기에 어느 누구도 오기를 꺼려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선교적 관점에서, 티벳은 라마불교 지역이므로 그 영향이 아시아와 인도까지 미치고,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신장은 중국 전체 이슬람권 민족들과 아시아의 이슬람,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이슬람에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지역의 특성 중의 하나는 다양한 민족(16개)들이 서로 공존하면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인정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라마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짱(티벳)족과, 이슬람을 중심으로 하는 위구르족, 후이(回)족이 중국 서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북지역이라고 해서 소수민족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보다 한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낮지만, 대부분의 도시는 한족이 인구 면에서 절대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역시 정치, 교육, 경제 모두 한족 중심의 통일되고 획일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들의 힘이 약해지고 분산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지만, 한족 문화정책과 한족들의 본토 정착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수 민족들도 최소한 한어를 배워야 출세할 수 잇다는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면에서 동의를 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전개되고 있는 서부대개발이야말로 한족 인구를 더 많이, 더 빠르게 이곳으로 이동케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바통을 잇는 협력자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하긴 하지만 한족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력이 소수민족 지역 깊숙한 곳까지 퍼져있고, 이들이 소수민족과 더불어 오랜 시간 이웃하여 살아왔기에 한족 교회는 소수민족 접근에 있어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작게나마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 O시를 예로 들면, 1981년부터 올해까지 삼자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만 약 1만 명이 넘고 신도 수는 약 3만을 넘는다. 이 지역의 삼자교회는 모두 6개(최근 3개가 비준)인데, 본래 가정교회였다가 십자가를 세우고 정부의 허락을 받아서 삼자교회로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가정교회방식의 예배와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최근 연해 각 지역 교회에서 서북지역 복음화에 대한 부담과 비전을 가지고 많은 전도자들이 들어오고 있으며, 열심 있는 한족 전도자에 의해 곳곳에 소수민족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문화대혁명 당시 핍박을 피해 변경 주변으로 숨어 들어왔던 한족 크리스천 가정들이 지금은 모두 가정교회가 되어있다. 신장 주변도시인 O시를 예로 들면, 문화대혁명 때 이 지역에 들어온 가정처소들이 지금 약 100개 이상 수많은 소수민족 틈에서 자생하고 있다. 특히 이곳의 한족들은 몇십년, 혹은 몇백년 동안 이들 소수민족과 이웃하여 지내왔기에, 이들에게 소수민족 전도에 대한 도전만 주면 부담감을 갖고 일하게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이 소수민족 지역 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우리 사역자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족과 소수민족, 각 소수민족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편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복음전파에 적지 않은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외국 사역자들에 비한다면, 이들이 갖고 있는 민족간의 편견은 계속적인 도전과 함께 사명을 일깨워만 준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한족 지도자들과 함께 소수민족 지역에 들어가 전도한 경험에 의하면, 이들은 이미 준비는 되어 있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동안 전도하기를 꺼렸던 것 같다. 그러나 함께 소수민족을 전도하고 그들의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한족 지도자들은 신선한 충격과 도전을 받은 듯했다. 우리가 이 한족들을 협력자로 여기지 않는다면 중국선교, 특히 서북선교에 있어서 큰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한국인이 이 거대한 땅 중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엄청난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래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각자에게 부어주신 비전에 따라 다양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복음은 연해에서 내륙으로, 동부에서 서부로 그 물결의 흐름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조류나 유행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요, 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한족 교회가 서북을 복음화하고, 그 후 서북의 소수민족들이 자기들과 동일한 문화를 갖고 있는 주변 국가의 민족들을 복음화 할 수 있도록 그 바통과 사명을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한족 교회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주어야 하듯이, 한족이 소수민족을 도와서 주변의 민족들을 복음화함으로써 복음의 서진이 가능할 것이다. 이 관계는 서구 교회가 아시아의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 그 선교의 바통을 이어받은 우리를 통해 주변 국가인 중국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고원과 사막을 위한 헌신자
이 지역에 있는 동안 참으로 치열한 영적전투를 겪으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쉼이 없는 기도의 중요성이다. ‘사역은 곧 기도’라는 의식을 갖게 되면서 다른 것은 쉬어도 기도를 쉬면 마치 죽음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 곤란, 그리고 아픔들 가운데 오직 기도의 무릎만이 나의 영혼과 가정, 그리고 사역을 강하게 붙들어 주고, 흑암에 갇혔던 영혼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헌신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황무하고 버려진 땅, 정치ㆍ경제적으로도 소외되어 온 이 땅에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복음의 역사에서조차 소외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거리마다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전하는 자가 없어 그들이 이 복된 소식을 듣지 못한 채 계속 절망 가운데 놓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곳의 동역자들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서북에서 사역을 하려면 두 번의 헌신이 필요하다. 하나는 주님께 대한 헌신이요, 다른 하나는 이 고원과 사막에 대한 재헌신이다.”
누가 주를 위해 이 땅에 와서 무릎을 꿇고 사망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위해 부르짖을 것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이러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여리고 성과 같이 강하게 버티고 있는 이슬람과 라마불교를 믿음으로 정복할 갈렙과 같은 주님의 용사를…
홍자청/ 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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