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선교의 당위성(當爲性)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한다
서진선교(西進宣敎)가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로 성경의 증거를 찾아보기로 하자. 성경은 동(東)쪽과 서(西)쪽에 대하여 명확하게 차별(差別)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에 대하여 그 사실적인 사례(事例)를 성경의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동(東)쪽'과 '서(西)쪽'의 차이점(差異點)은 무엇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 먼저 '동(東)쪽'에 관한 성경의 증거들을 살펴 보기로 하자. 이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먼저 양해(諒解)를 구할 것이 있다. 본 이야기에서는 성경의 증거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괄호 안에 더 자세한 설명을 알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사례번호에 [MyLoveChina] 카페로 링크하였다. 마우스로 클릭하면 바로 이동하여 내용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다. 저들은 에덴동편(東便)으로 쫓겨나 쫓겨난 자의 삶을 살았다. (창3:24)
(2) 아담의 아들 가인은 시기와 질투로 동생 아벨을 죽여 첫 살인자가 되었다. 이로서 가인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東)쪽으로 도망하여 도망자의 삶을 살았다. (창4:6)
(3) 홍수심판 후 노아의 가족은 번창하여 세상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저들은 동(東)쪽으로 계속 이주(移住)하다가 시날평지에서 더 이상 흩어짐을 면하자며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 바벨탑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挑戰)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언어의 혼잡(混雜)으로 인해 오히려 사방으로 흩어지는 결과를 맞이했다. (창11:2)
(4) 아브라함은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살던 곳으로부터 동(東)쪽에 있는 소돔들을 하나님의 동산과 같다고 착각(錯覺)하여 소돔을 택하여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롯의 선택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때, 롯도 더불어 몰락(沒落)의 삶을 살았다. (창13:11)
(5) 아브라함은 적자(嫡子) 이삭을 낳기 전에 애급여인 하갈을 통해 서자(庶子) 이스마엘을 낳았다.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은 생모 하갈의 고향 애굽에서 처녀를 구하여 결혼했다. 이것은 서(西)쪽에서 오히려 동(東)쪽으로 데려 온 것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았다. (창21:21)
(6)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은 후에 여러 명의 첩을 통해 또 다른 서자들을 낳았다. 저들은 아브라함이 자기 생전에 적자 이삭의 곁을 떠나 동국(東國)으로 이주하여 살게했다. 결국 저들은 이스마엘과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창25:6)
(7)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은 이복형제 이스마엘과 함께 장례를 했다. 그후에 저들은 서로 헤어지면서 이스마엘은 하윌라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지방을 선택하여 이주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가나안 땅으로부터 동(東)쪽에 있는 땅으로 이주하여 결국 하나님의 약속과는 거리가 먼 삶게되었다. (창25:18)
(8)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 에서는 장자권(長子權)과 축복권(祝福權)을 동생의 계략(計略)에 의해 빼앗긴 것을 뒤늦게 깨닫고 분노하여 복수(復讐)를 다짐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된 부모는 야곱을 작은 아들 야곱을 어미 리브가의 고향으로 피신시켰다. 야곱이 형의 복수를 피하여 간 곳은 동방(東方)땅으로 결국은 부형을 속인 대가로 도망자(逃亡者)의 삶을 살게되었다. (창29:1)
(9) 야곱과 에서는 아비가 죽어 장사지낸 후에 서로 헤어져 살기로 하고 동(東)쪽 세일산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비 이삭에게 기업으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포기한 것으로 선민(選民)의 자리에서 스스로 도태(淘汰)된 삶을 살았다. (창36:8)
(10) 모세는 히브리인으로 태어났으나 애굽 공주의 양자로 입양되어 애굽궁전에서 자랐다. 저가 장성한 후에 저의 우월감(優越感)은 작은 사고를 첬고, 그 일로 인하여 애굽의 동(東)쪽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는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에서 도망자의 삶을 살았다. (출2:15)
(11)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성의 엘리멜렉은 극심한 가뭄을 피해 가족을 이끌고 동방(東方) 모압지방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저의 이주는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정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말았다. (룻1:2)
(12)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동방(東方) 앗수르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다. 앗수르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 강제로 앗수르 각 지방으로 분산(分散) 이주시켰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으로부터 쫓겨난 것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왕하17:23~24)
(13) 고대 유대 왕국도 동방(東方) 바벨론제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바벨론 왕도 유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 각 지방으로 강제로 분산 이주시켰다. 따라서 유대 백성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으로부터 쫓겨난 것과 같은 삶을 살수밖에 없었다. (왕하25:21)
성경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동(東)쪽은 항상 하나님의 뜻과 무관(無關)했다.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도전(挑戰)과 반역(叛逆)이었다. 따라서 결국 동(東)쪽은 하나님께 '쫓겨남'이나 ' 버려짐'의 방향이 되었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에도 동일(同一)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다음으로 '서(西)쪽'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의 죄를 지은 후 에덴동산 동(東)편으로 쫓겨났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를 지은 상태로 생명나무를 따먹고 영원히 살 것을 우려(憂慮)하사 사람을 배려(配慮)하신 까닭이었다. 따라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저들에게 생명나무는 방향은 서(西)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창3:24)
(2)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아브람을 부르사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람은 갈바를 몰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무조건(無條件) 순종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순종을 믿음으로 여기사 아브라함을 인도하사 갈대아 우르의 서(西)쪽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약속하신 땅이다. (창12:1~6)
(3)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켜야 했다. 이삭의 아내는 고향에서 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으로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따라서 신임(信任)하는 종에게 자기 고향에 가서 아들의 배필을 찾아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이에 종은 아브라함의 명령대로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이삭의 아내된 리브가를 만나 이삭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결국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고향을 떠나 서(西)쪽으로 와서 이삭의 아내가 되어 선민의 조상이 된 것이다. (창24:1~ )
(4) 야곱은 하란에서 20년의 타향살이를 했다. 이 기간은 야곱이 형과 아비를 속인 죄의 값이었다. 20년이 지난 후 야곱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저가 그동안 오랫동안 살았던 곳으로부터 서(西)쪽에 있었다. (창31:3)
(5) 하나님은 미디안광야에서 초라하게 살아가던 모세를 광야 서편(西便) 호렙산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셨고, 모세를 애굽에서 400년 이상을 노예민족으로 살던 히브리인들의 해방자로 부르셨다. (출3:1~12)
(6) 히브리민족은 출애굽 후로 모세를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원망으로 일삼았다. 그런 까닭에 저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는 세월을 보내다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본래 가나안 땅은 애굽에서 북진(北進)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땅이었다. 그런 땅을 하나님은 시나이반도를 돌아서 가나안 땅의 동(東)쪽에 이르게 하셨고, 서(西)쪽을 향하여 요단간을 건너게 하신 것이다. (수3:14~16)
(7) 여호선지자 에스겔은 이상 중에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東門)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라고 증거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서(西)쪽에 있다는 것을 증언하는 의미인 것을 유의해야 한다. (겔43:4,5)
(8) 모압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가나안의 베들레헴으로 이주했다. 이는 룻이 모압여인으로 자기의 고향으로부터 서(西)쪽에 있는 선민의 땅에 이른 것이 된다. 그곳에서 룻은 보아스를 만나 재혼하여 이스라엘의 위대한 임금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 (룻4:16)
(8) 동방(東方)의 박사들은 밤에 새롭게 뜬 큰 별을 연구하다가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가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저들은 고향을 떠나 별을 따라 서(西)쪽을 향하여 무작정(無酌定)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했다. (마2:1~12)
(9) 예수님이 세상에서 남기신 최후의 말씀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선언이셨다. 이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둥근 지구를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하여 전파해야 할 것에 대한 명령이셨다. 그리고 그 방향은 서(西)쪽이었다. (행1:8)
(10) 바울은 본래 소아시아지방 선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마케도냐인의 환상을 본 후로 서(西)쪽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었다. 이것은 현대 서진선교의 사실적인 효시(嚆矢)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사도 바울의 서진선교는 세 차례동안 반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죄인의 몸으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송치(送致)되었고, 그곳에서 순교했다. (행16:9~10)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동(東)쪽은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되었고, 서(西)쪽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의 부르심과 축복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 변개(變改)된 일이 아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항상 질서로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신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었다.
하나님은 복음의 전파가 혼란(混亂)이나 무질서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창조적인 질서를 따라 이루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秘訣)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서진선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진선교가 복음전파의 마땅한 주력선(注力線)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이 다소 충분하지 못한 바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다음 이야기에서 역사적으로 복음전파가 어떻게 서쪽을 향하여 이동하며 전진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은 오직 서진선교에 대한 하나의 열정으로 두서(頭緖)없이 쓴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으로 충만히 임하시길 축복한다.
2011. 7. 12 (화)
글/ 불꽃 石一進
'선교(영원한사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국의 토종 선교단체가 국제단체로 탈바꿈 중이다 (0) | 2011.08.12 |
---|---|
[스크랩] 선교의 ‘땅끝’ 이슬람권 예수 영접·변화를 위해… ‘무슬림을 위한 30일 기도’ (0) | 2011.08.12 |
[스크랩] 서진선교(西進宣敎)는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다 (0) | 2011.07.14 |
[스크랩] 서진선교의 당위성(當爲性)을 역사는 이렇게 증거한다 (0) | 2011.07.14 |
[스크랩]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선교운동 (박바울) (0) | 2011.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