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서진선교의 당위성(當爲性)을 역사는 이렇게 증거한다

수호천사1 2011. 7. 14. 21:06

서진선교의 당위성(當爲性)을 역사는 이렇게 증거한다


   복음전파에 있어서 서진선교(西進宣敎)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다. 복음을 전파해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이치
(理致)다. 이런 서진선교의 당위성에 대한 첫 번째 증거를 성경에서 찾아 확인한 바 있다. 이제 그 두 번째 증거를 지난 2천년의 역사속에서 찾아 확인하려 한다.

   이번에도 먼저 독자들의 양해
(諒解)를 구한다. 본 이야기에서는 자세한 설명이 어려워 괄호에 [MyLoveChina] 카페에 게시된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링크시켰다. 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마우스로 클릭하면 바로 연결될 것이다. 물론 카페에 게시된 글도 오래전에 쓴 글이기에 부분적으로 수정(修正)해야 할 내용이 있다. 그렇지만 오늘 이 글에서 더 쓸 수 없는 내용들이 포함(包含)되었기에 링크했음을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이제 역사적으로 복음전파의 동진선교(東進宣敎)와 서진선교에 대한 내용을 간략
(簡略)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다 정확하게 분별(分別)할 수 있는 안목(眼目)이 열려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먼저 역사적으로 이해되는 동진(東進)에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사도 도마는 인도를 중심으로 동양(東洋)선교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중국과 심지어 우리나라까지 다녀갔다는 전설(傳說)이 있다. 지금도 인도에는 과거 도마가 전도하여 세운 교회의 뿌리가 남아 있어 도마교회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도마의 동양선교는 열매는 아주 미약(微弱)했고, 현재는 역사적 전설로만 남아있다.

   
(2) 중국 명나라 시대에는 페르샤에서 기독교의 한 종파(宗派)인 네스트리우파의 동양(東洋)선교에 의해 복음이 전해져서 경교(景敎)라 불리며, 태종 638년에 공인(公認)되면서 귀족중심으로 활발하게 발전했다. 그러나 명나라 말기에 박해(迫害)를 받으면서 소멸(消滅)되었고, 지금은 역사적인 유물(遺物)로만 전해지고 있다.

   
(3) 중국 원나라 시대에 네스토리우파는 경교란 이름을 대신하여 '야리가온(也里可溫)'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중흥기(中興機)를 맞이했다. 그러나 야리가온 역시 원나라 황실의 적극적인 엄호(嚴護)로 귀족중심의 종교였다. 따라서 원나라가 멸망하면서 함께 소멸되어 오늘날은 역사적 유물로만 전해지고 있다.

   
(4) 러시아 정교회는 제정 러시아에 큰 힘을 행사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레닌 맑스주의 공산당에 장악(掌握)되어 소비에트연방에 세워지면서 기독교의 정통성(正統性)과 복음의 순수성(純粹性)을 상실(喪失)한채 공산당과 타협(妥協)하는 변절(變節)된 교회로 전락(轉落)되고 말았다.

   
(5) 이슬람교는 아랍인을 중심으로 시작하였고 발흥(勃興)한 종교다. 또한 기독교에 대하여 가장 호전적(好戰的)인 종교이기도 하다. 이런 이슬람교는 동진(東進)하면서 크게 번창(繁昌)하여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비 아랍권인 서남아와 동남아 일대를 이슬람국화 시켰다. 현재 세계에서 최대의 이슬람국은 인도네시아다.

   
(6) 공산주의를 태동시킨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본래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는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동방(東方)의 구 소련과 중국에 전해져서 가장 찬란(燦爛)하게 꽃피웠고, 지금은 우리의 분단(分斷)된 나라 북한이 가장 무모(無謀)한 공산주의의 나라가 되었다.

   
(7) 유럽에서는 중세시대에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다. 이는 이슬람 세력이 점령(占領)하고 예루살렘을 탈환(奪還)해야 한다는 명분(名分)으로 일으킨 동진(東進)전쟁이었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이 기독교에 대해 강한 적대감(敵對感)을 갖게 한 단초(端初)가 되었을 뿐이다.

   
(8) 10세기 이래 수 세기동안 유럽의 강호 해양국가들은 세계 도처의 약소지역민들을 무력으로 정복하여 지배주의 식민지정책을 펼쳤다. 이때 교회의 선교사들도 함께 파송하여 선교했다. 그렇지만 저들의 선교활동은 순수(純粹)하지 못해 선한 영향력(影響力을 끼치지 못했다. 결국 오늘날 당시의 나라들이 독립하면서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이슬람국으로 바뀌게 되고 말았다.

   
(9) 과거 2000여년 동안 국토가 없는 민족으로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1943년에 옛 조상의 땅인 팔레스틴에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이라는 신생국가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그 땅에서 수 천년을 살아왔던 팔레스타인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만행(蠻行)을 저질러 저들로부터 원성(怨聲을 사게 되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과격 이슬람 단체들에게 지하드의 명분을 주어 저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타킷으로 하는 테러가 온 지구촌을 불안에 빠뜨리게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10) 미국은 오랫동안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열(熾烈)한 전쟁을 치렀다. 그 전쟁은 오늘날 끝났으나 완전한 승리가 아닌 불안한 승리로 끝냈을 뿐이다. 따라서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전쟁의 대상은 이슬람국가가 아니라 이슬람의 호전적인 알카에다와 텔레반과 같은 국제조직이다. 저들과 지금도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위와 같이 열거
(列擧)한 역사적인 사실들은 한결같이 동진(東進)의 결과들이었다. 또한 이것은 동진선교로 실패한 선교라 할만 한 일이다. 이것을 우연(偶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를 무시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런 깨달음을 편향(偏向)된 생각이라고 치부(置簿)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깊이 상고(詳考)해 보길 바란다.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는 결코 우연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역사적으로 이해되는 서진(西進)에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복음이 시작된 곳은 예루살렘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초대 교회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2세기에 이르러 교회의 중심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로 옮겨졌다.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이송(移送)되면서 성장하게 되는 계기(契機)가 마련되었다. 그 후로 교회는 수 백년에 걸쳐 엄청난 박해와 수난을 당했다. 그러다가 콘스탄틴 대제(大帝)가 다스리던 시절에 공인(公認)되면서 교회는 왕성한 부흥기(復興機)를 맞게 되었다.

   
(2)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 민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다. 이 나라는 4~5세기에 발흥(發興)하여 유럽의 최강국이 되었다. 그리고 왕국의 왕권이 강화되면서 로마교황청 중심의 교권(敎權)은 프랑크왕국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세계교회의 주도권(主導權)은 이제 로마가 아니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제국이었다.

   
(3) 1517년 당시 카토릭교회의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부패에 개혁(改革)운동의 기치(旗幟)를 들고 저항(抵抗)하기 시작했다. 동 시대에 죤 칼빈과 쥬잉글리, 요한 웨슬리 등 많은 개혁자들이 일어나 전 유럽교회에 개혁의 바람이 강하게 일어나 중세교회의 대정화(大淨化)가 이루어졌다. 이 때부터 교회는 개혁자들에게 집중(集中)되었다.

   
(4) 16세기 말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청교도(淸敎徒)운동이 일어났다. 청교도운동은 기독신앙의 자정운동(自淨運動)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청교도들은 제도화(制度化)된 교회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1920년에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천지 아메리카를 향한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신생극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5) 19~20세기 세계선교는 미국교회의 주도권하(主導權下)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세계선교의 영향력은 21세기가 시작된 지금도 막강(莫强)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그 막강한 힘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 이제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선교를 이끌어 갈 나라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到來)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사명을 대신한 나라는 과연 어느나라일 것인가?

   
(6) 한국선교는 19세기에 일어난 세계선교의 가장 찬란(燦爛)한 금자탑(金字塔)이다. 주로 태평양을 건너 온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한국선교는 기독교 역사상 전무(全無)한 대부흥(大復興)의 역사를 이루었다. 이제 21세기는 한국교회가 미국교회의 뒤를 이어 세계교회의 선교종주국(宣敎宗主國)이 되기에 충분(充分)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너무 성급하게 단정하지 말자. 좀더 진지(眞摯)하게 생각하자.

   
(7) 중국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준비된 나라였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약 70-80년 빠르게 선교가 시작된 나라다. 그렇지만 중국선교는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공산당의 지배와 더불어 중국에서 활동하던 모든 선교사들이 쫓겨났고, 교회는 과거의 경교와 같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생력으로 꿋꿋하게 버텼다. 문화혁명이라고 하는 암흑같이 캄캄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더 놀랍게 성장했다. 

   
(8) 실크로드가 다시 열리고 있다. 고대(古代)의 실크로드는 동서교역로(東西交易路)로 중국이 그 중심이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실크로드는 중국의 서부대개발정책(西部大開發政策)과 함께 다시 열리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자국의 발전을 도모(圖謀)한 정책이지만,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는 길로 준비된 새로운 실크로드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만 실크로드는 여전히 옛날이나 지금도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

   이제까지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서진(西進)에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 보았다. 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발견되지 않는가? 선교한국의 비전을 이루고자 하는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진로(進路)가 어느 방향인지 명확(明確)하게 깨달아지지 않던가? 참으로 한국교회는 선교한국의 사명(使命)을 바르게 감당하려면, 중국교회가 21세기에 감당해야 할 사명의 좋은 동반자(同伴者)이면서 조력자(助力者)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한국교회가 전 세계를 향하여 전방위적인 선교에 대한 열망
(熱望)을 부정(否定)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에 순응(順應)하자는 것이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역사를 통해 증거되는 사실을 외면(外面)하거나 간과(看過)하지 말자는 것이다. 참으로 한국교회는 선교의 근본적인 주류(主流)가 어느 방향인지를 분명하게 인지(認知)하여, 올바른 선교정책을 수립하고 진행하기 위해 총력(總力)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결코 자기만의 열정(熱情)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 그 뜻을 겸허
(謙虛)하게 받아들여 순종할 때에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한국교회가 성경에서 확인되고, 역사 속에서 확인되는 서진선교를 더 이상 무심(無心)하게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서진선교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려 한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통해 선교한국의 주력이 중국이어야 할 이유에 대하여 구체적
(具體的)으로 나누려 한다. 오늘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길 위해 축복한다.

   2011. 7. 13 (수)

  글/
불꽃 石一進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글쓴이 : 왕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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