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카톨릭의 비 그리스도교 선언? (종교혼합, 다원주의)

수호천사1 2011. 4. 20. 16:18

카톨릭의 비 그리스도교 선언? (종교혼합, 다원주의)

 

하느님의 종들의 종인 주교 바오로는 성스러운 공의회의 교부들과 더불어 일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하여 “타 종교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선언하는 바이다.

 

서론 - 마음속의 종교

1.

인류가 날로 더욱 긴밀히 결합되고 여러 민족들 사이의 유대가 더욱 강화되어 가는 현대에 있어서 교회는 비그리스도교적 타 종교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바이다. 인간과 인간, 민족과 민족 사이의 일치와 사랑을 도모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며 교회는 여기서 특히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 즉 모든 사람을 공동목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들을 포함한다.

 

사실, 여러 민족들은 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전인류를 온 땅 위에 살게 하시었으니(사도17,26참조) 모든 민족들은 단 하나의 기원을 가졌고 또한 단 하나의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하느님의 섭리와 착하심의 증거와 구원의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미칠 것이고(지혜서8,1;사도14,17;로마2,6-7;1디모2,4참조)마침내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는 천상 성도에서 간선자들이 다시 모이게 될 것이며 거기서 여러 민족들이 하느님의 빛 속에 거닐겠기 때문이다.(묵시21,23이하 참조)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인간의 마음을 번민케 하는 인생의 숨은 수수께끼들의 해답을 여러 가지 종교에서 찾고 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의의와 목적은 무엇인가? 선이 무엇이고 죄는 무엇인가? 고통의 원인과 목적은 무엇인가? 진실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는가? 죽음은 무엇이고 죽은 후의 심판과 판결은 어떨 것인가? 마침내 우리 자신의 기원이자 종착역이며 우리의 실존을 에워싸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마지막 신비는 과연 무엇인가?

 

힌두, 불교, 기타 종교

 

2.

고금을 통하여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는 사물의 변화와 인생의 역사 속에 현존하는 심오한 힘을 어느 정도 느껴 왔다. 때로는 최고의 신이나 아버지를 긍정하였다. 이같은 느낌과 긍정은 그들의 생활에 종교적 깊은 뜻을 부여한다.

 

종교라는 것은 관련문화의 발전을 따라 세밀한 개념과 세련된 어법으로 인생 문제에 해답을 주려고 애쓴다.

 

예컨대 힌두교(인도교)에 있어서 사람들은 신의 비밀을 탐구하여 한없이 풍부한 신화와 깊은 철학의 시도로써 표현되는 동시에 인생고에서의 해탈을 찾아 수덕생활이나 깊은 관상이나 신뢰와 사랑으로 신에게로 도피하고 있다. 또 불교에 있어서는 여러 학파에 따라 무상한 현세의 근본적 불완전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열심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완전한 해탈 상태에 이르든지 혹은 자신의 노력이나 위로부터의 도움에 의하여 최고 조명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그밖에 전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종교들도 교리와 생활규범과 성스러운 예식 등을 가르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간의 마음이 느끼는 불안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그 길을 제시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과 행동의 양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요한14,6)그분 안에서 사람들이 종교 생활의 풍족함을 발견하고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과 화해시키셨음을(2고린5,18-19)교회는 선포하고 있으며 또 반드시 선포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더불어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서로 협조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생활을 증거하는 한편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내지 윤리적 선과 사회적 내지 문화적 가치를 긍정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를 모든 자녀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회 교

 

3.

교회는 또한 회교도들도 존경하고 있다. 생명의 실존자, 자비롭고 전능한 천지의 창조주(성 그레고리오 7세의 편지 21, 마우리따니아의 왕 안시르에게 보낸 편지, 라틴 교부 제 148권, 450면 이하 참조) 사람들과 얘기하시는 유일신을 그들도 흠숭하며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순종하였듯이 그들은 그들 신의 비밀한 결정에도 순종하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았다고 즐겨 주장한다. 예수를 하느님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예언자로는 공경한다. 동정 성모를 공경하며 때로는 그의 도움을 정성되이 청하기도 한다. 또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부활시키시고 갚아 주실 심판 날을 기다린다. 여기서 그들은 윤리 생활을 존중하며 특히 기도로써, 또는 애긍시사와 재계로써 하느님을 섬긴다.

 

역사 과정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회교도들 사이에 불목과 원한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교회회의가 모든 사람들에게 권고하는 바이니, 과거를 잊어버리고 서로 이해해 주기를 진실로 힘쓰며 모든 이에게 사회정의와 윤리선과 나아가서는 평화와 자유를 공동으로 옹호해 주고 촉진시켜 주기를 바란다.

 

유태교

 

4.

이 성스러운 교회회의는 교회의 신비를 탐구함에 있어서 신약의 백성과 아브라함의 혈통을 맺어 주는 인연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 교회의 믿음과 불리움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구세 계획대로 이미 성조들과 모세와 예언자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인정한다. 믿음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인(갈라3,7참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부르심을 받았고, 선민이 종살이 땅에서 탈출한 역사적 사실은 교회의 구원을 신비롭게 표상하는 것이라고 공언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옛계약을 맺으신 그 백성을 통하여 교회가 구약의 계시를 이어 받았고 이방인들의 야생 올리브 가지가 접목된 좋은 올리브 뿌리에서 교회가 자라고 있음을 잊을 수는 없다.(로마11,17-24)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십자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화목시키고 당신 안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음을 교회는 믿고 있다.(에페2,14-16참조)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고 하느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고 참된 예배가 있고 하느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 훌륭한 선조들의 후손들이며 그리스도도 인성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로마9,4-5)하신 사도 바오로의 혈친에 관한 말씀도 교회는 언제나 되새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초석이요 기둥인 사도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한 초기 제자들 대부분이 유대 백성 중에서 태어났음을 잊지 않고 있다.

 

성경이 입증하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은 자기를 찾아 주시는 때를 알지 못하였고(루가19,44참조) 대부분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복음의 전파를 받해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로마11,28참조) 그렇지만 사도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그들이 하느님의 은혜와 부르심을 회심없이 받았으나 조상들 때문에 그들은 아직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로마11,28-29;교회헌장n.9참조) 교회는 예언자들과 사도 성 바오로와 함께 하느님만이 알고 계시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날이 오면 만백성이 한 소리로 주를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느님을 섬기리라”(소포3,9;이사66,23;시편 65,4;로마11,1-32참조)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유대인들의 정신적 공동 유산이 이렇듯 큰 것이므로 이 성스러운 교회회의는 서로의 이해와 서로의 존경을 증진시키며 권장하는 바이다. 특히 성경과 신학의 연구와 형제적 대화에서 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록 유대인들의 집권층과 그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강요하였지만(요한19,6) 그리스도 수난하실 때에 저질러진 범죄를 당시에 살고 있던 모든 유대인들에게 차별없이 책임지우거나 더구나 오늘의 유대인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교회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마치 성경상의 귀결인 듯이 유대인들을 하느님한테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리를 가르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에 복음의 진리와 그리스도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을 가르칠까 삼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누구를 박해하든지간에 박해라면 무엇이나 다 교회가 배격한다. 교회는 유대인들과의 공동 유산을 상기하며 정신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종교적이요 복음적인 사랑에서 유대인들에게 대한 온갖 미움과 박해와 데모 같은 것을 언제 누가 감행하였든지 간에 차별없이 통탄하는 바이다.

 

교회가 언제나 주장하였고 또 현재에도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에서 모든 사람들의 죄 때문에 자원으로 수난하시고 죽으시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을 얻도록 하신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의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의 표시와 온갖 은총의 원천으로 선포하는 그것이다.

 

결론-보편적 사랑

 

5.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형제로 대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감히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이웃 형제들을 대하는 인간의 대토는 이처럼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으니, 성경이 말해 주듯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은 알지 못합니다.”(1요한4,8)

 

여기서 마침내, 인권과 거기서 귀결되는 권리에 있어서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사이의 차별을 주장하는 온갖 이론과 실행의 기반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갖 차별과, 혈통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조건이나 종교적 차별의 이유로써 생겨난 모든 박해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아 배격하는 바이다. 따라서 성스러운 교회회의는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유훈을 따라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이방인들 사이에서 행실을 단정하게 하십시오”(1베드2,12)할 수만 있다면 각자의 능력대로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여(로마12,18참조) 참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도록 간절히 비는 바이다.(마태5,45)

 

이 선언문에서 말한 각 조항과 전체에 성스러운 공의회의 교부들이 찬동하였다. 우리도 그리스도께로부터 부여된 사도적 권한으로, 존경하올 교부들과 더불어 이를 성령 안에서 인준하고 결정하고 제정하여, 공의회에서 결정한 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반포하기를 명하는 바이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1965년 1월 28일 가톨릭 교회 주교 바오로 자서

(교부들의 서명이 따른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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