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전통사상의 특징
중국 고대의 여러 학파 중세서도 중국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가와 도가이다. 그러면 먼저 이 유가와 도가를 중심으로 중국 철학, 사상의 특징을 살펴보자.
중국 철학, 사상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의 지리적 배경과 경제적 배경을 잠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국은 대륙국가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슬기로운 사람은 활동적인데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즐기며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論語․雍也》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논어․옹야》)
라고 하였다. 여기서 물을 좋아한 슬기로운 사람들은 고대 서양문화를 대표하는 그리스인들에 비유하고, 산을 좋아한 어진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비유한다고 생각하여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자가 살던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모험을 해본 중국의 사상가는 아무도 없었으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해양국에 살며 이 섬 저 섬으로 옮겨 다니며 유세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농업국이고 대륙국이므로 전통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여 왔다. 오늘날까지도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국에서 토지는 부의 첫 번째 원천이다. 중국 전통사회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네 계층으로 신분을 구분하였는데, 사(사대부)는 대체로 토지의 주인이었고, 농(농부)은 실제로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인이었다.
중국에서 사대부나 농부는 명예로운 직업이었지만, 반대로 상(상인)은 가장 경시하는 직업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농업이 생산과 관련이 있는 것에 반하여, 상업은 오직 교역에만 관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역하기에 앞서 생산을 해야 하고, 또 농업국에서는 농사가 중요한 생산양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륙국이고 농업국이었기 때문에, 해양국이고 상업국이었던 그리스와는 다른 사상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의 사상은 농사꾼의 생각을 체계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농업에서 의존하는 것은 사계절에 따라 바뀌는 기후요, 하늘에서 내리는 비요, 곡물을 생산하는 토지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다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의 힘으로 조절해 보려고 하여도 조절하기 힘든 것이다. 오직 인내심으로 그것에 순응할 따름이다. 그런 까닭에 농경문화에서 가장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천지, 자연, 만물에 순응하고, 또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내 농경문화 속에서 자라나서, 농경에만 의존하였으므로 밖으로 생계를 찾아 나가는 일이 적었고, 또 대개 한 곳에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살아왔으므로 보수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외부로 생계를 찾아 나가지 않았으므로 늘 내부를 보는 것을 중요시하고, 시간적인 연장을 중요시하였다.
중국인은 항상 내부를 향해 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늘 인생과 사회는 혼연일체가 되고, 또 사물과 자아도 서양 사람들과 같이 대립된다고 본 것이 아니라 늘 일체라고 생각하였다(物我一體). 이 일체가 된 것을 크게 말하자면 자연이요, 천(天)이고, 작게 말하면 각자의 소아(小我)다. 소아와 대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것이 중국인들이 말하는 소위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서양인들은 세계가 언제나 이체(二體)가 대립되는 것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개인도 언제나 이체가 대립되는 것으로 본다. 서양의 고대관념으로는 사람에게는 영혼과 육체 두 부분이 있고, 영혼부분이 접촉하는 것은 이상적인 정신세계요, 육체부분이 접촉하는 것은 감관적(感官的)인 물질세계인데, 정신세계는 물질세계와 초연하게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중국인은 비교적 심신(心身)이 일치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지 결코 영육(靈肉)의 대립이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장사꾼들은 숫자, 계산이 습관화되어 있고, 주문한 물건과 도착한 물건이 같은 것인지의 여부 따위를 정확하게 대조 확인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지만, 농사꾼들은 경작이나 수확에 관해서 그렇게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고, 다만 자기의 육감으로 그때그때 일을 처리하여 나갈 뿐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직관(直觀)을 중시하고 인식론(認識論)이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다. 인식론적인 문제는 인식주관과 인식대상이 확연하게 구분되어야 제기되는 것인데, 중국인들에게는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농사꾼들은 사계절에 따라서 바뀌는 기후에 농사를 의존하였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일월(日月)의 운행과 사계절의 순환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러한 순환에 주의를 기울인 중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寒往則暑來, 暑往則寒來. 《주역(周易)․계사(繫辭) 하》)든가 “달이 차면 기운다”(月盈則食. 《주역․풍괘(豐卦)》)는 식으로 만물은 항상 어떤 면을 향하여 나아가다가도 늘 원상태로 되돌아오는 것, 즉 반복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항상 ‘너무 지나치는’ 것은 불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즉 ‘중용(中庸)’을 중시하였다. 그들은 너무 많이 소유하여 잘못되는 것보다 적게 소유하여 잘못되지 아니하는 편이 더 낫고, 너무 과도하게 일을 하여 그르치느니보다 차라리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과도한 소유(過度所有)와 과도한 작위(過度作爲)는 다분히 자기가 바라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가와 도가의 차이점과 공통점>
앞에 언급한 것은 유가와 도가의 공통된 특징을 말한 것이다. 유가나 도가나 다 대륙국이요 농경국인 중국이라는 나라의 농사꾼의 철학을 반영한 점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가?
농부의 생활은 단순하고, 그들의 생각은 순박하다. 도가는 농부들의 이러한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하였으므로 원시사회의 단순성을 이상화하고 문명을 비난하며, 어린이의 순진성을 이상화하고 지식을 멸시하였다. 《노자(老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라는 작게 하고, 백성들을 적게 하자.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노끈을 매어 문자로 사용하게 하자. 그 음식을 달게 먹고, 그 옷을 곱게 입고, 그 집에 편히 살고, 그 일과를 즐기게 하면, 비록 이웃 나라가 바로 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라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을 것이다.(제80장)
小國寡民……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第八十章
농부는 언제나 자연과 접촉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찬미하고 사랑한다. 이 찬미와 사랑은 도가에 의해서 극도로 발휘되었다.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것과 인위적인 것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자연 그대로의 것은 인간행복의 원천이요, 인위적인 것은 인간고통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도가는 이 사상을 끝까지 전개시켜 나갔기 때문에 성인의 정신수양의 최고목표는 자신이 대자연(天), 즉 우주와 합일(合一)되는 데 있다.
농부들은 이동할 수 없는 대지 위에서 살아야 하고, 사대부인 지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특수한 재능이나 특별한 행운을 갖지 못하면 자기 부모나 조부모가 살던 그 땅에 살아야 하며, 자기의 자녀 역시 계속하여 그곳에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말하자면 넓은 의미에서의 가족은 경제적인 이유로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가족제도가 극히 발달되었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조직이 잘 되어있는 제도였다. 유가사상은 대부분 이 사회제도를 합리화한 이론적 표현이었다.
가족제도는 중국이 사회제도 그 자체였다. 오륜(五倫), 즉 군신(君臣), 부자(父子), 장유(長幼), 부부(夫婦), 붕우(朋友) 관계 중에서 세 가지가 가족관계며, 나머지 두 가지는 가족관계는 아니지만 가족관계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군신관계는 부자관계로, 붕우관계는 장유관계로 간주될 수 있고, 또 사실 늘 그렇게 생각되어 왔다.
가족제도 때문에 조상숭배도 발달되었다. 조상숭배의 대상은 보통 후손들에게 터전(土地)을 마련해준 시조였다. 그래서 시조는 가족단합의 상징이 되었고, 그러한 상징은 이처럼 방대하고도 복잡한 조직체를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유가사상은 대부분 이 사회제도의 합리적인 정당화 또는 그 이론적 표현이다. 농경의 경제조건이 중국사회의 토대를 쌓았다면 유가사상은 그 윤리적 의의를 천명하였다. 이 사회제도가 이러한 경제조건의 부산물이었고, 도 이 경제조건은 그 지리적 환경의 산물이었으므로 중국인들은 그 제도나 윤리적 표현을 당연시하였다.
유가는 사회조직의 철학인 동시에 일상생활의 철학이기도 하다. 유가는 인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에 도가는 인간의 자연적인 면과 자발적인 면을 강조한다. 유가는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도가는 그것을 초월하여 소요(逍遙)한다고 한다.
‘사회경계 내에서의 소요’로 인하여 유가는 도가보다 더 세간적(世間的)인 것처럼 보이며, ‘사회경계를 초월한 소요’로 인하여 도가는 유가보다 출세간적(出世間的)인 것처럼 보인다. 이 양대 사상조류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보충하는 관계를 가졌다. 이 양자는 일종의 세력균형을 유지했으며, 이로 인하여 중국인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에 대해 평형감을 한층 더 유지할 수 있었다.
3∼4세기에는 도가를 유가에 접근시키려는 도가가 있었는가 하면, 11∼12세기에는 유가를 도가에 접근시키려는 유가가 있었다. 전자를 신도가(新道家)라 부르고, 후자를 신유가(新儒家)라 부른다. 이러한 신도가와 신유가들의 역할 때문에 중국의 철학은 세간적이면서도 출세간적인 것이 되었다.
‘세간적’이라는 것은 세속의 인간관계라든가 인간사 등의 사회적인 것을 말한다. ‘출세간적’이라는 것은 세속을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세간과 출세간은 마치 서양의 실재론(實在論)과 관념론(觀念論)처럼 서로 대립적이다. 중국철학의 과제는 바로 이 대립의 종합이다. 그렇다고 하여 대립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종합적인 전체를 이루어 놓는 일이다. 중국철학에서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이런 종합을 이루어 놓은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였다.
중국 성인이 도달한 정신적 경지는 불교나 서양종교에서의 성인이 도달한 경지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성인은 세간사에도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그는 소위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내성’은 안으로 정신을 수양하여 극치에 이른다는 것이요, ‘외왕’은 바깥으로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내성외왕을 추구하는 길, 즉 내성외왕지도(內聖外王之道)가 바로 중국철학사상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중국인들의 생활과 문화》, 이장우·노장시, 중문출판사, 198-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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