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고 고백하는가?

수호천사1 2011. 3. 24. 11:14

1.“너희는 예수를 누구라고 고백하는가?” 

모든그리스도인들이 대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 물음은, 본문에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라는 물음에 이어 던진 물음이다. 사실 두 물음은 ‘같은 분’ 예수를 두고 하는 것이기에 그 대답은 똑같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듯이 여기 ‘사람들의 대답’과 ‘제자 베드로의 대답’은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 요한 등 ...’ 예수님을 위대한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그러나 너희는”(But you)! - 매우 강조하고 있다 -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  주님의 마음은 이렇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들, 바로 예수의 제자인 너희들, 나와 줄곧 다니며 가르침을 받으며 함께 살았던 너희들의 진정한 고백을 듣고 싶다!” 곧 그들과는 다른 <올바른 고백>을 듣고 싶다는 말씀이다. 

 

2.“예수는 누구인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이 던져진다. 

이에대해 베드로가 말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고백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곧, 그대의 고백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하여,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을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이며, 약속의 주님이며,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유일한 중재자시다. 특히 누가복음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많은 메시야 칭호와는 다른, 진정한 메시아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하게 참된 '메시야'이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요1:29),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를 가진 분이며”(막2:10), 권세 있는 교훈을 베푸시며(마7:28-29), 종말의 때 우리를 진리로 가르치시는 하나님이다(히1:1-2). 평화의 왕 영광의 임금(눅21:38), 어떤 세력과도 싸워 능히 이기시는 능력의 왕이다(계17:15)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을 안다. 이 중보자 없이는 하나님과의 모든 교제가 끊어진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우리의 삶도, 우리의 죽음도, 하나님도, 우리 자신도 모른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만을 목적으로 하는 성서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우리자신에 대해 모호함과 혼란만을 볼 것이다”(팡세,2003:322)  

 

사실,‘예수는 메시아’라는 고백은 초대교회 선포의 핵심이었다. 요한은 자신이 복음서를 남긴 이유를,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며(요20:31), 사도들도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으며”(행5:42), 바울 또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공중 앞에서 증언하여”유대인들을 이겼던 것이다(행18:28 등)

 

3.예나 오늘이나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견해들이 떠돌고 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했듯이, 오늘날도 예수님은 여러 모양으로 왜곡되고 있다. 시류와 유행을 따라 그릇된 고백과 주관적 논리가 가득하다. 가장 많이 퍼진 것이 예수님이 개인의 구주, 가정의 주님이 된 것이다. “오늘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종교개혁을 통해, 인간의 신앙을 ‘외면적 신앙’에서 해방하였다. 그러나 그 신앙을 ‘순수한 개인적 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종교가 「가사」(家事)이고, 「가사」가 종교다”(「유대인문제」). 그래서 그리스도신앙은 점점 좁혀져, 옛날 드라빔처럼 「가정수호신」이 되고 있다. “종교는 이제 우주(cosmos)나 역사와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실존이나 심리상태와 관계하고 있다.  종교가 이러한 사적(私的)리고 개인적인 영역에 자리잡는 일은  근대 사회에 와서 더 강하다”(피터 버그, [종교와 사회]).  

 

하나님나라는내세의 보장과 개인의 평안으로 좁혀졌고, 신앙생활이 일주일에 한번 씩 교회에 출석하는 종교행위가 되었으며, 말씀적용이란 것도 언제나 사소한 일상을 맴돌고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서구처럼 기독교가 이제 주류 종교로 자리잡은 한국에서 예수님은 ‘문화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특히얼마 전까지 이름을 날렸던 <최고경영자 예수>란 책을 보자. ‘가난한 이들의 예수’가 어느 순간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명해 낸 예수상이다. 서평자는 말한다 “최고경영자(CEO, Chief Executive Officer)란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로서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주도하며 기업을 끌고 나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책은 예수의 위대한 지도력을 거울삼아 최고경영자의 이상적 모델을 추구한 책이다. 역사상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예수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예수를 위대한 CEO로 설정하여 그 도덕성, 실행력, 리더십 면에서 경영학적 교훈을 찾고 있다....”  자본의 논리에 철저히 움직이고 움직여야 하는, 오직 이윤창출이 목적인 최고경영자와 복음서의 예수님이 어디 어울리기나 한 것인가? 이처럼 예수란 이름을 수없이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실제’에 접근하지 못하는 고백들, ‘참을 수 없는 해석의 가벼움!’이다.

 

4.기억하자. “예수는 그리스도다”

예수를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에 비추어 우리 생을 정돈하는 것이다. 개인 일, 가정사뿐 아니라, 결혼과 직업, 역사와 정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이 중심이어야 한다. 예수를 삶의 변두리에서가 아니라, 생의 한 가운데서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아니라 모든 자연과 모든 역사 안에서 매순간 모든 장소에서 인간들의 마음과 대면하고 도전하는 실제(the reality)다”(니버) 우리는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온 세상도 「예수가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오늘그리스도는 사실상 우리의 삶에서 퇴출당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성전을 지어드린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그곳에 머물게 한 다음 우리는 우리 집에 살고 있다. 신앙은 삶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가 되었다. 종교는 소위 일요방(Sunday room)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분 좋게 이곳에서 한두 시간 머물렀다가 즉시 자신의 일로 되돌아간다. 인간의 삶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장소를 그리스도께서 차지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영이 그대에게 하실 궁극적이고, 명확한 말씀을 갖고 계실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의 영적 생활 중 작은 장소만을 그리스도에게 내어드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헌신할 때에만 그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한 결정적인 말을 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신다.”(본회퍼,1999:53-5)

 

“만물이그분(예수)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분께로 돌아간다”(롬11:36)

“그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로2:3)

“그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다”(골2:9-10)

 

그리스도이신예수께서 온 세상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근본적 문제인)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된 존재로 산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힘겨운 상대인)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길이요 진리다. 그리하여 우리인류가 그분을 진정으로 섬길 때 평화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분을 믿을 때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경험한다. 그야말로 전존재를 다스리신다.

 

파블로네루다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여기서 ‘그대’를 ‘예수’로 바꾸어 읽어보자. 우리에게서 <그대>도 이처럼 살아 역사하는 힘일까!  

  그대 덕분에 나는 다시 태어나 조국을 되찾았다오 그대는 나에게 주었소  

   우리 외로운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자유를그대는 나에게 가르쳐 주었소 

  사랑이 불처럼 타오르도록 그대는 올곧게 서게 해 주었소 똑바로 뻗어가는 나무처럼

  그대 덕분에 나는 배웠다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가려낼 수 있는 통찰력을

  그대 덕분에 나는 알았다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이 모든 사람이 승리할  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대 덕분에 나는 배웠다오 형제들과 딱딱한 침대에서 자는 기술을

  그대는 현실 위에 나를 붙박아 주었소 꿋꿋하게 바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그대 덕분에 나는 기꺼이 불의한 자들의 적이 되고 슬퍼 분노하는 사람들을 지켜 주는 벽이 되었다오

  그대는 내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었소 빛으로 가득 찬 밝은 세계와 커져 가는 기쁨을

  그리하여 그대는 내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도록 해 주었소 그대 속에 있는 나, 이미 나 혼자만으로 끝나는 삶이 아니기에 

 

*덧붙임 

1.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3중직」으로 설명한다.

<제2권 15장 1-6항>. 교리적 설명의 한계는 있지만, 경청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에 빗대어 그리스도란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메시아(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는 ‘기름 붓다’에서 온 말로, 사람들을 제사장 왕 예언자를 ‘기름부음 받은 자’(an anointed one)라고 불렀다. 

 

예수님은누구인가? 그분은 우리의 제사장이다.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세력인 죄, 우리 문제의 근원인 죄, 인간을 끝없는 갈등과 분열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죄, 모든 사람을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가는 죄, 그 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믿는다. 죄의 용서, 의롭게 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그 죄와 싸우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제물로 드렸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동쪽으로 서쪽으로 옮기시듯, 온전히 소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롬5:1). 

 

예수님은우리의 예언자다. 우리는 오직 예수 안에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있음을 믿는다. 갈 길 몰라 헤매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 방황하는 자에게  바른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다. 삶에 지쳐 힘겨워할 때 용기와 격려를 주시는 분이다. 홀로 정의의 길을 걸어갈 때 그 길이 진리의 길이라는 확신을 주신다. 그분의 말씀만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이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며 주님은 모든 율법의 참뜻을 밝히며, 모든 말씀이 살아 움직이게 한다. 

 

예수님은우리의 왕이다. 하나님나라는 우리의 경제, 문화, 정치,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예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성전 안의 예배가 아니라 온 세상에서 찬양이,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기는 것이다.

 

2.마태복음은 누가와 마가와는 달리 이 고백을 ‘교회’와 연결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고백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와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공동체 없는 그리스도 고백은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주님은 “이 새로운 공동체, 이 작은 공동체! 그러나 그 어떤 권세도 이를 이길 수 없다!”고 약속하신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꿈이다.

 

이것은주님의 교회가 바로 이 고백 위에 세워져야 함을 말한다. . 교회의 힘은 이 고백 위에 바로 세워졌느냐에 있다. 주님은 그런 교회에게 「천국열쇠」를 주신다. 그 고백 위에 선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함을 약속하신다. 열쇠란 권세의 상징으로, 고대 중동지역에 왕의 전권을 가진 대신처럼, 교회가 바로 그런 하나님의 능력의 대행자라는 것이다. 구원의 열쇠를 가진 공동체! 이것은 교회에 주신 놀라운 특권이다.  이를 통해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이를 통해 하늘마저 움직일 것이다. 

 

오늘한국기독교가 이 땅에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웅장한 교회당, 기발한 프로그램, 첨단의 멀티시스템, 잘 짜인 설교, 수준 높은 교인들일까? 그것은 교회가 “예수는 그리스도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일에 있다. 이 고백을 말이 나이라 「실제로(in reality) 하느냐에 달려 있다. 

 

3.세 복음서의 차이점을 보자

1)<마태와 마가>에 따르면, 이 본문은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끝내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장면으로서(마16:13-20:34; 막8:27-10:52), 주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2)누가복음은 여기서도 예수님의 기도를 말한다(18). 

누가에게는 기도가 정확한 장소 언급(가이사랴 빌립보-마태 마가)보다도 중요한다. 

3)“사람들이 ‘인자’(마태), ‘나’(마가 누가)를 누구라고 하는가?”

  ‘당신은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 

  ‘당신은 그리스도입니다’(마가). 

  ‘당신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누가)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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