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회주의, 그 진단과 처방
< 박재훈 목사, 작동교회 >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지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초창기에 비해 오늘날 교인수는 비교할 수 없이 많아지고 교회 건물은 더욱 웅장하고 화려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국 기독교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소위 모태신앙인이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섬겨 목회하면서 점점 염려가 되는 한가지 현상을 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어떤 방안을 찾고 싶어 말씀을 드린다. 개교회주의에 대한 것이다.
1. 한국교회 위협하는 개교회주의
개교회주의라 함은 현대 한국 기독교의 독특한 상황을 말한다. 일찌기 교회사적으로 이런 문제로 골치아파본 일이 없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다.
개교회주의란 어느 한 교회의 사역이나 성장 혹은 영향력을 하나님의 교회 전체의 사역이나 성장 혹은 영향력보다 더 중시하고 다른 교회와 경쟁하는 관계로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한 교회가 할 수 있는 구제나 선교 및 사회 활동을 교단이나 여러 교회가 연합해서 추진할 때는 동원되지 아니하는 인적인 물적인 자원들이 개교회가 추진할 때는 문제없이 동원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그런 현상을 일컫는다.
이 개교회주의에 긍정적인 측면은 전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고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고 부흥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기 위함이지 개교회 자체의 영광을 위함은 아니다.
오늘날 어쩌다 이렇게 개교회주의 사상이 팽배하게 되었을까? 개교회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상호 경쟁을 중요시 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아주 흡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또한 고스란히 자본주의에서 보는 약점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가진 자는 점점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점점 더 잃게되는 그런 현상이다. 개교회주의도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 즉 교회끼리 경쟁을 할 때 힘있는 교회는 성도를 많이 끌어올 수 있는 파워를 가진 목회자를 모실 수 있고, 그런 목회자가 목회하면 교회의 힘은 더욱 극대화된다. 그리하여 대형교회는 점점 더 커지고 작은 교회는 점점 작아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힘이라 함은 돈의 힘인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힘도 주로 성도의 수와 헌금 액수이다. 이것은 대기업의 생성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아마 교회의 자본주의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나라가 우리나라일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이 목적이어야
물론 한국교회는 바람직하고 건전한 부분이 많이 있다.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목회자들, 깊은 영적 체험과 뜨거운 기도, 높은 교육열, 폭넓은 구제와 선교사업 등을 들 수 있다. 오늘날 멋진 건물, 화려한 인테리어, 쾌적한 냉난방시설, 넓은 주차공간 등은 많은 교인을 모으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시설을 구비하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돈이 많은 교회라야 더 많은 성도를 모을수 있고 그렇게 모인 성도가 더 많은 헌금을 하는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에는 많은 유형무형의 신앙적 배경이 깔려 있지만 자본주의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종교법이 없고 따라서 종교활동에 국가의 간섭이 거의 없다. 또 총회나 노희 등 교단 조직도 개교회 활동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교회는 격렬한 경쟁을 통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교회의 활동은 개교회의 유익이 우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확장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각교회들끼리 선의의 경쟁하는 모습이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매우 추하게 보여 교회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전도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드리운다. 한 건물에 여러개의 교회가 입주하여 서로 교인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은 시장의 장사꾼과 무엇이 다른가? 모든 경쟁의 궁극적 목표는 승리에 있다. 승리하기 위하여 과도한 경쟁을 벌이고 도덕성도 내팽개친 경쟁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교회의 경쟁은 일반 상식도 내던진 잘못된 믿음을 앞세워 비신사적이고 비도덕적인 모습을 띠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교회들이 서로 경쟁상태에 있는 한, 전체적 복음 사역을 위한 교회 연합활동은 기대하기가 힘들어진다. 우리나라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영적인 문제, 사회적 제 문제들 앞에서 연합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런 연합 활동이 실종되고 나중에는 같은 교단 교회들끼리의 연합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게된다. 이렇게 교회들이 연합하지 못하므로 발생되는 손실은 막대하다. 신학교나 선교단체 지원도 교단들이 연합해서 하면 인적 물적 자원이 많이 절약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텐데 개교회가 혹은 교단들이 따로 이행함으로 그 피해와 비효율성이 크지 않을 수 없다.
개 교회들이 연합하면 이룩할 수 있는 대내외적인 사업들을 연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구의 20%가 넘는 성도를 자랑하면서도 한국교회는 정치 문화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일치하여 힘을 모은다면 우리 사회의 모슨과 부조리들을 상당부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3. 외형적 성장지상주의가 문제
개교회주의가 생겨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짐작컨데 한민족의 가장 큰 약점인 합리적이지 못한 개인주의와 파벌주의가 우리 개신교에 접목되엇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민족이 지닌 개인주의와 파벌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정한 룰을 무시하고 우선의 이익 앞에서 전체의 궁극적인 이익을 희생시킴으로 결과적으로는 자신도 손해를 입는 바람직하지 못한 개인주의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민족적인 약점을 개선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좋지 못한 유산을 고스란히 전수한 것이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서구사회나 같은 동양적 유교문화권에 있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은 극심한 개교회주의를 찾아볼 수 없기에 이것은 우리 민족의 독특한 약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교회간 교단간의 경쟁이 주로 성도의 숫자, 헌금의 액수 등 수량적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에 집중된 면 역시 자본주의 경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성도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그 원인의 하나로 볼 수 있겠다. 초대교회때는 성도의 수가 극소수 이다 보니 혈육보다 더 귀한 형제자매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도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여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세력으로 부상하자 다른 교회는 동역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간주된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목회자들의 그릇된 사고와 가르침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이익보다는 자신의 교회의 이익과 성취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가 문제라고 본다. 이 문제 많은 개교회주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현실적으로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다소 이상주의 적인 처방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교구제를 장려해 보면 좋을것 같다. 각 교단별로 교구제를 설정해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성도들을 가까운 교회에 출석토록 장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먼거리에 위치한 교회에 나가기 위해서 지출되는 막대한 교통비와 시간을 절약하고, 식구들이 각기 다른 교회에 다니는 기현상을 막을 수 있으며, 지역사회 교회들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전도에도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또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어느정도 평준화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목회자 생활비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하여 사례비를 많이 주는 교회만 실력있는 목회자를 모실 수 있는 이런 병폐를 방지할 수 있다. 목회자들의 사례비를 평준화하려면 노회와 총회에 납부하는 상회비도 많이 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설교자 순환제를 도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것은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인데 일정한 지역내의 모든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에서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안의 모든 교회를 순번적으로 돌아가면서 설교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목회자들에게 매주일 새로운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깊이있는 설교를 할 수 있게 하고 한편 성도의 입장에서는 항상 새롭고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마치는 말
가장 좋은 방안은 구태여 제도와 규칙을 정하거나 바꾸지 않아도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신사도를 지키면 개교회주의는 많이 완화될 것이다. 가능한한 다른 교회에 다니는 성도의 등록을 금지하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여 좋은 목회를 하도록 하고, 교회가 적정한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즉시로 분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교회가 더욱 절제하고 자본주의적 교세 확장보다는 마케도냐 교회들처럼 어려운 교회를 도와 모든 교회가 어느정도 평균케 되도록 할 수만 있다면 개교회주의의 부정적인 면은 상당히 극복되리라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함이므로 개교회가 따로 따로 활동하기보다는 연합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더 큰 유익이라고 판단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닐까.
또한 이런 목회자가 진정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목회자요 성경에 충실한 목회자라는 인식이 한국교회에 팽배할 때 자본주의적인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만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지금의 서글픈 풍조가 개선될 것이다
기독교개혁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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