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교회당 건축은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거창하게 교회 건물들을 짓는 것을 보며······.
요즈음은 어디서나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붐이 이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는 것 같으면 하나 같이 '성전 건축' 이라는 거창한 구호아래 작정 헌금, 건축 헌금, 그 외 무슨 무슨 헌금, 모금을 위한 바자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기구들이 각기 설정한 목표액을 거두기 위해 교인들을 독려하며 애를 쓴다. 결국 수많은 교회들이 각각 거창한 건물을 지어놓고 그 크기와 위용을 자랑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얼마 후에는 교육관이니, 선교센터니 하며 계속하여 부속되는 건물들을 추가한다.
유럽에 있는 거대한 교회 건물들도 이제는 사람들이 없어서 흉한 모습만 남아 있든지 아니면 관광지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곳도 많은데······.
'정말 하나님께서 사람들처럼 큰 건물의 위용을 즐겨하시기 때문에 이렇듯이 거창하게 지어야하나?' 하며 마음에 있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나, 그래도 명칭이 '선교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라고 하니, 반대를 하면 마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으로 취급될 것 같고······.
그렇다고 누가 성경을 통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확실히 증거를 해주는 이도 없이 그냥 몰아 부치듯이 모든 일을 추진하니······.
이래저래 속으로는 의문을 갖고 있어도 내어놓지 못하니 답답함만 더욱더 느끼는 것이 오늘날 교인들의 마음인 것 같다.
자! 답답해서 가슴만 두드릴 것이 아니라, 성전에 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만일 오늘날과 같이 성전이라고 하며 큰 건물들을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더욱더 열심을 내어 건축에 참여를 하는 것이 믿는 자로서 마땅하다.
그러나 만일······ 만에 하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에게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일이라면, 혹은 사람들의 뜻에 불과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이제 그런 일들은 그만두어야 한다. 아니 그런 일들을 말리고 그러한 거짓에 속는 사람들을 깨우쳐 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따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성경에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2) 솔로몬의 성전
성경에 나타난 성전으로는 솔로몬의 성전이 가장 유명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최초의 대형 건축물이기도 하다. 솔로몬이 치리한지 4년째 되는 해에 착공을 하였는데 공사를 위하여 동원된 인부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에서 삼만 명이고, 건축에 필요한 돌과 목재 등을 운반하는 자가 칠만 명, 채석하는 자가 팔만 명이었으며, 감독하는 자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삼천삼백 명이었다.
이들은 백양목으로 성전을 짓고 순금으로 성전을 입혔다. 돌들도 귀한 돌들을 멀리서 배로 운반을 해서 썼고, 성전에 쓰이는 대부분의 기명들도 금이나 은과 같이 귀한 것으로 만들었다. 장장 7년에 걸친 대 역사였고, 그 성전의 화려함과 위용은 어느 건축물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성전을 건축하는데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아주 궁금하다.
역대기상에 보면 다윗이 성전을 짓기 위하여 준비한 것은 금이 십만 달란트 (1 달란트는 30kg이다.) 나 되고, 은은 백만 달란트나 되며, 그 외에 놋과 철, 목재와 석재까지도 마련하였다.
역대상 22:14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에 셀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이를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이 엄청난 금액이다. 오늘의 (Feb. 10, 1999) 금 시세는 1온스(oz) 당 287.85 달러다. 1kg은 32.25트로이 온스(Troy oz)다. 그러므로 금 1kg의 가치는 32.25온스(oz) X 287.85 달러 = 9,283.1625 달러이다. 이를 약 9,280 달러로 계산해보자. 십만 달란트를 오늘날의 도량으로 바꾸어보면 100,000 X 30kg = 3,000,000kg이다. 3,000,000 X 9,280 = 27,840,000,000 (278억 4천만) 달러가 된다.
또한, 은도 계산해보면 1,000,000 X 30kg X 179.31 달러 (은 1온스(oz)는 5.56 달러다.) = 5,379,300,000 (53억 7천9백3십만) 달러나 된다. 여기에는 다윗이 개인적으로 낸 금 3,000 달란트와 족장들이 낸 5,000 달란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들 모두를 합해보면 대략 27.8 + 5.3 + 2.2 = 35.3으로 353억 달러가 된다. 그 외 다윗과 족장들이 낸 은과 놋, 철, 목재와 돌들을 더해보면 그 가치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금과 은과 귀한 석재와 목재들로 성전이 지어지고 난 후,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니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드려진 번제물과 제물들을 태울 뿐더러 주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다.
역대하 7: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이곳을 희생 제사의 집으로 택하였다.' 고 하시고 '내 눈과 내 마음이 거기에 영원히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응답이신가?
(역대하 7:12)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역대하 7:16)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3) 성막
솔로몬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성막과 함께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식양을 보여 주신대로 광야에서 성막을 지었는데, 금과 은과 놋과 아름답게 수놓은 휘장을 포함하여 귀한 것들로 만들어졌다. 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사방은 흰 세마포로 둘려있고, 그 안에 희생 제물들을 불사르는 번제단과 정결하게 씻기 위한 물두멍, 네 겹의 덮개가 씌워진 성소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성소는 지성소와 성소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고 이곳은 대제사장이 일년 일차씩 있는 대속절에만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휘장으로 나누어진 성소에는 향을 사르는 향단과, 진설병을 올려놓는 테이블과 일곱 가지로 된 촛대가 놓여있었다. 이들 모두는 금으로 둘러싸여 있거나 금 덩어리를 쳐서 만들은 것이다.
성막이 완성된 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속죄 제사와 번제와 화목제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들을 제사장을 통해서 수행하였다. 이러한 제사에 관하여는 레위기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막 위에는 구름이 있어 그들을 인도하였는데 구름이 이동을 하면 이스라엘 백성도 이동을 하고 구름이 머무르면 그들도 그곳에 머물렀다.
(출애굽기 40:36-38)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약속의 땅에 들어온 백성은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는 시기를 보낸 후, 그 나라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떠나서 그의 이방 아내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경고하셨으나, 그가 듣지 않고 계속하여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의 아들 대에 와서 나라가 둘로 나뉜 것이다. 먼저 북방 이스라엘이 앗시리아 군대에 의해 멸망이 되고 남방 유다도 바벨론 군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가 파괴되었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백성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고, 성전에 쓰였던 기명들과 그 나라에 있던 자들이 자원하여 바친 많은 보물들과 재료들을 함께 보냈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성전건축은 훼방을 받아 한동안 중단이 되었으나, 학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권고와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백성이 일어나 건축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들은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 행하지 못하였던 예물과 제사를 건축한 성전에서 다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식양을 따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지어졌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속죄 제사와 예물을 드렸다.
여기까지 보면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성전을 짓기를 원하시는 듯 하다. 물론 요즈음도 이러한 말씀들을 인용하여 교회 건축을 추진하며 교인들을 독려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강조를 하면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거창한 성전을 건축하기 원하실까? 이제 이런 부분도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기 원하실까?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성막과 함께하심을 보고 느끼면서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실로에다 성막을 세웠다.
(여호수아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종 되었던 곳에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갈라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을 뿐더러 그들에게 젖과 꿀이 나오는 약속의 땅을 주셨고 그들의 지파대로 땅을 나누어 주셨다. 그렇지만 그들의 마음은 조상 아브라함과 같지 않아서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하였던 장로들이 죽고 난 후에는 주위의 이방인들처럼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죄악 가운데서 돌이키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들에게 내어주시어 고난을 받도록 하시니, 고통 중에 비로소 자기들의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때마다 사사들을 보내시어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다. 독자들도 사사기에 기록된 대로 얼마나 자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죄악 가운데 행하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계속하여 긍휼을 베푸셨으나, 심지어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제사장이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멸시하여 그들이 먼저 먹으려고 행패를 부렸고, 또한 성막 문에 모인 여인들과 동침도 하였다. 그래도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을 징계로 다스리지 않았다. 제사장이 이렇듯이 하나님을 멸시하니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는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들은 블레셋 사람들(팔레스타인들)과의 전쟁 중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그들에게 빼앗겼다.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시편 78:55-62)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그럴찌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 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하여 죄악 가운데 행할뿐더러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며 우상들을 섬기니, 하나님께서는 실로에 세운 성막을 떠나셨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세운 성막을 떠나셨다는 사실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역사하시어 그들이 섬기는 다곤 신상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물고기형상을 한 신상)을 산산조각 내시며,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것을 증거 하셨다.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섬기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전도를 하신 것이다.) (사무엘상 5:1-5)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레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당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또한 하나님께서 다곤 신상을 섬기는 아스돗인들을 악성 종기로 치시니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러한 형편인데도 그들이 섬기는 신인 다곤은 블레셋 사람들(팔레스타인들을)을 구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본 블레셋 사람들(팔레스타인들)은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실어 보내게 되었고, 이러한 연유로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팔레스타인들)에게서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사무엘상 5: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그 후, 언약궤는 오벳에돔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것을 안 다윗은 궤를 가져다가 휘장 안에 두었다. 어느 날 그가 보니 자신은 백양목으로 만든 좋은 집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성전도 없이 휘장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런 것이 다윗의 마음에 걸렸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그에게 베풀어 주신 풍성한 은혜에 감동을 받은 그는 건축에 필요한 금과 은과 그 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였다. 또한 그의 신하들도 금과 은과 놋과 철을 무수히 바쳤고, 백성들도 온전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므로 그들의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했다.
(역대상 29:9)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쟁으로 피를 흘린 다윗에게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도록 하셨다.
(사무엘하 7: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열왕기상 5:5)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다윗과 그의 백성과 솔로몬에 의해서 지어 진,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귀한 성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에서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섬기고 그들이 행하는 것처럼 죄를 짓고 지냈다.
이를 본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계속하여 권고하시는 데도 그들은 돌이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였다.
심지어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할 시기에는 왕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오려서 불에 사르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교만과 고집이 가득한 모습인가?
결국 시드기야왕 때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성전이 파괴되었고, 성전에 있던 귀한 기명들은 포로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모두 끌려갔다.
(역대하 36: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 가고
이렇게 해서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완료되리라'는 말씀대로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흩어버리시고 70년간 땅이 안식을 하도록 하셨다. 그 후 언약하신 70년이 차니,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을 이루시고자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감동시키시어 이스라엘 백성과 성전의 기명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셨고 다시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셨다. 오늘날 이란 Persepolis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코레스 왕의 궁전 모습. 원래 이름은 parsa (파사)였는데, 그리스 시대에 Persepolis (페르세폴리스) (The city of the Persians) 로 바뀌었다.
(역대하 36:22-2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찌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4) 왜 하나님께서 성막을 떠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는 성막과,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는 성전과 함께하시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셨다. 여기서 하나님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왜 떠나셨을까?, 왜 성전은 파괴되었을까?'를 깊이 생각하여보아야 할 것 같다.
이사야 1장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상태가 어떠한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미물인 소와 나귀도 자기의 주인을 아는데 택함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지으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며,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주위의 이방 백성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신으로 삼아 섬겼고 그들이 행하는 것 이상으로 죄를 지었던 것이다.
(이사야 1:2-5)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이들은 앗시리아와 같은 이방 민족들의 침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사로잡혀가고 고통 가운데 살게 되었다. 그럴지라도 이들의 마음은 교만하여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히브리서에 기록된 것처럼 톱을 켜서 죽이는 잔인한 형벌을 가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깊은 구덩이에 넣기도 하였고,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기를 싫어하였다. 이들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가 어떠했든가 하면, 성전을 가리키며 '이것이 주의 성전이라' 고 말을 하면서도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고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였다.
심지어 바알에게 분향하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이 모든 가증한 것들을 행하도록 구원을 받았도다.'라고 말을 하였다. 이 정도로 그들의 마음은 완악할 대로 완악하여져서 '죄를 지을 수 있도록 구원을 받았다' 고 하면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오히려 죄를 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예레미야 7:9-10)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이 얼마나 간악한 일들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그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셨더니,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죄짓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이것이 주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신뢰하지 말라' 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레미야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가리키며 '이것이 주의 성전' 이라고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 그들이 실제로 섬기는 대상은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사람들이 만든 하늘의 여신이었다.
(예레미야 7:17-19)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 여신을 섬기며 살았다는 사실······.
결국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되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실로의 성막을 떠나실 때처럼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들을 섬기고, 죄를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던 그들의 완악함 때문인 것을 이제 우리가 잘 알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아껴보지 않고 온 이스라엘을 이방 왕들의 손에 내어주시고 성전은 파괴가 되도록 하셨다.
(역대하 36: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과연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 안에 계셨을까? 여기서 참 중요한 것을 상고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과연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 안에 계셨을까? 이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만일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 계시다면 어떻게 성전이 불타버리고 성전 안에 있던 기명들을 이방인들에게 빼앗길 수가 있었겠는가? 먼저 그 화려한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고백한 것을 함께 들어보자.
열왕기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솔로몬은 비록 그가 온힘을 다하여 성전을 지었고, 그 역사에 엄청난 양의 금과 은과 모든 귀한 것들이 사용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실 수 없으심을 알고 '하물며 내가 지은 집에 계시겠나이까?' 라고 고백을 한 것이다.
5) 이방인들의 성전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아테네에서 동행한 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있던 신전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보고 아테네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증거하였던 내용이 있다.
(사도행전 17:22-31)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솔로몬이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않으셨다. 또한 이방인들이 세운 성전에는 더더욱 계시지 않으셨던 것을 바울이 아테네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파한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생각을 좀 해보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드넓은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한 태양계, 그 태양계에서도 자그마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곳에 어느 한 부분에 있는 나라, 그 작은 나라의 한 쪽에 서있는 건물······.
하나님 편에서 보면 지구라는 것 자체가 한없이 작은 땅인데,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작은 지구의 한 귀퉁이의 사람들이 만든 전에 들어와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스러운 것인가? 그 신전을 아무리 크고 아름답게 지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실 수 있겠는가?
만일 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을 인간보다 조금 더 나은 능력자로 표현한,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을 섬겼던 사람들의 미련에 불과하다.
* 참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이름 *
Zeus(제우스, 로마의 Jupiter(주피터)), Hera(헤라, 로마의 Juno(주노)), Hephaestus(헤파이스토스), Athena(아테네), Apollo(아폴로), Artemis(아르테미스, 로마의 Diana(다이아나)), Ares(아레스, 로마의 Mars(마르스)), Aphrodite(아프로디테, 로마의 Venus(비너스)), Hestia(헤스티아, 로마의 Vesta(베스타)), Hermes(헤르메스, 로마의 Mercury(머큐리)), Demeter(데메테르) 그리고 Poseidon(포세이돈).
이들은 이렇듯이 미련하였기에 신들을 여러 가지로 세분하여 Demeter(데메테르) 농업의 신이니, Aphrodite(아프로디테) 사랑과 미의 여신이니, Poseidon(포세이돈) 바다의 신이니, Apollo(아폴로) 태양신이니 하며 각기 종류대로 신들을 만들어 섬겼다. 그들이 상상하고 섬기는 신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들보다 조금 더 능력이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모태로부터 절름발이인 사람을 고쳐 주어서 그가 걷게 되었을 때, 그것을 본 사람들이 바울을 허메 (로마의 mercury(머큐리), 그리스의 Hermes(헤르메스)와 같음)라고, 바나바는 쓰스 (로마의 Jupiter(쥬피터), 그리스의 Zeus(제우스)와 같음) 라고 불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쓰스(로마의 Jupiter(쥬피터)) 신당의 제사장은 그들 앞에 소들과 화관들을 갖고 와서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다.
(사도행전 14:8-1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누구라도 조그마한 능력을 행한다면 아니면 마술을 부린다면, 아마 제사장들은 또 그 앞에 경배하며 제사를 드릴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하지만 이것이 보통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에 대한 관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어리석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니, 그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다.' 라고 담대하고 확실하게 증거를 한 것이다.
(사도행전 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이제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누가복음에 보면 몇 사람이 성전이 얼마나 우아한 돌들과 예물로 단장되었는가를 보면서 성전에 관해서 말하고 있을 때, 주께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21:5-6)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왜 예수님께서는 아름답게 지어진 성전을 보시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라고 하셨을까? '다 무너지리라' 는 말씀이 축복의 말씀이 아닌 것은 독자들도 잘 알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게끔 되었을까?
성전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진] 성전 모형도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성전에 들어가시니 그곳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장사를 하고 있었다. 주께서 이들을 채찍으로 성전에서 몰아 내시고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계실 때 이미 '성전 = 장사하는 집'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성전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돌로 만들어졌을지라도 그저 아름답게 지은 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요한복음 2:13-17)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 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더욱이 요한복음 2장 13절에는 이상하게 유월절을 유대인의 유월절이라고 언급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처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유월절 제사를 드릴 때는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주의 유월절 제사'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12:26-27) 이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여호와의 유월절이 유대인의 유월절로 표현되었다면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이 의미는 더 이상 유월절이 여호와의 유월절이 아니고 매년 지키는 유대인들의 명절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마치 오늘날 부활절 행사는 거창하게 하면서도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므로 거듭나지 못한 채 교회 생활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이들에게도 부활절은 매년 있는 하나의 명절 외에 더 이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는 것을 본 유대인들이 '이런 일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 고 주께 물었다. 이에 주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리라' 라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2:18-21)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륙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여기서 주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보자.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리라.' 이 말씀을 알아듣지는 못한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는데 사십육년이 걸렸는데 어떻게 삼 일 만에 세우겠느냐?' 고 반문을 한 것이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을 일러주셔도 그저 육신에 속한 것만 생각을 하지 영에 속한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니고데모를 보라. '거듭나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더니, 기껏 생각하는 것이 어미의 태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생각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하신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성전 건물을 짓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 된 자기 몸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이다. 성막이나 성전은 모두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식양을 보여 주셨다.) 그곳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드리는 속죄 제사 역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에 불과한 것임이 히브리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가 되었다.
(히브리서 9:23-2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뜻은 성막이나 성전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말미암는 속죄, 즉 어떻게 죄 사함 받는지 알기를 원하신 것이다. 눈물을 많이 흘려도, 봉사와 선행을 많이 할지라도, 아무리 오래 통성 기도를 할지라도 혹은 교회 건물을 지어서 드렸을지라도, 죄는 하나도 씻어지지 않은 채로 그저 있는 것을 이를 해본 독자 들은 알 것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얼마나 큰 건물을 짓고 그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 하는 죄의 문제에 있다.
처음 사람 아담이 범죄를 한 후 두려워 숨어 떨었던 것이 창세기 3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가 건물을 짓지 않아서 두려워했을까? 아니면 그가 많은 사람을 끌어 모으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숨었을까? 아담과 하나님 사이가 멀어진 것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인 것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멀어진 이유도 죄 때문임이 분명히 증거가 되어 있다.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그렇기 때문에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광야에서 지은 성막이나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여 지은 솔로몬의 성전일지라도, 그것은 단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에 불과하다. 즉 피를 흘림으로 이루어진 속죄, 영원한 죄 사함을 받는 것에 대해 모형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성막과 성전을 짓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염소와 송아지가 아닌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예비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산 제물로 드리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가 되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영원한 속죄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가로막혔던 담은 이제 무너졌고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누가복음 1:74-75)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 죄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교회 건물을 크게 지었을 지라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는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영원한 속죄는 믿지 않는 불신자에 불과함을 알 수가 있다.
세상이 살다보면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먼저 할 일을 나중에 하고 나중에 할 일을 먼저 했을 경우, 그 혼란의 피해는 말할 수 없이 큰 것을 독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는 사람이 먼저 할 일은 성전이라고 하면서 교회 건물을 크게 지으려고 하거나 사람들을 많이 모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를 사함 받아야 할 것이다. 우선 하나님과 화평이 이루어지고, 사귐이 있어야 하나님과 동행을 하고, 그의 음성에 순종도 할 것이 아닌가? 그 후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인도하시는 데로 인도를 받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본분이 아니겠는가?
건물을 크게 지으려고 하는 것이나, 사람을 많이 모으려고 하는 것은 사람이나 좋아하는 짓인 것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그 아름답고 보배로운 솔로몬의 성전과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바벨론 군대에 넘겨 버리신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함을 독자들도 잘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이 사람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셨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10:1-5)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솔로몬의 성전도 하나님께서 아끼지 아니하고 파괴가 되도록 하셨는데, 하물며 오늘날 사람들이 지은 건물들이야 말할 것이 더 무엇인가?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있지 건물의 위용에 있지 않음이 더욱 분명하다.
건물을 건축한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다면 아마 거대한 건물을 지었던 바로 왕이나 그 외 제국을 다스렸던 왕들은 선두를 다투었을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성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신 일이 없으셨던 것이 사무엘하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인 이스라엘에게도 성전을 지어달라고 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하물며 이방인들에게 성전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셨을까?
(사무엘하 7:6-7)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자 이제 성전이라고 하며 건물을 짓겠다는 것은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독자들도 잘 알았을 것이다. 성전이라고 하며 커다란 건물을 아름답게 지어놓고 그곳에서 양도 잡고 송아지도 잡겠다는 의도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을 뜻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행위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그렇게 큰 건물을 지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주님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이제까지 성전과 성막을 짓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신 이후 지어지는 영적인 집에 관하여 독자들도 상고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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