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메이슨

[스크랩] One World Government --- 최종목표, 단일화 된 세계정부(世界政府) 수립

수호천사1 2011. 3. 10. 09:40

 

가면 쓴 공산주의자 : 힐러리 클린턴

최종 목표, 단일화 된 세계정부(世界政府) 수립
自由세력으로 위장한 미국 내 左派인사 해부
김필재 기자 2008-05-26 오전 4: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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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힐러리 클린턴이 마침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란 바로 공산주의자들이다. 듣기 거북한 그녀의 웃음 소리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힐러리의 ‘막시스트’ 이데올로기다.

그녀가 공산당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다. 그녀의 급진적 이데올로기는 그녀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중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힐러리는 좌파 성향의 로펌(law firm)에서 일한 적이 있다. 1971년 여름 힐러리는 ‘Treuhaft, Walker and Burnstein’(유태계 회사)의 재판연구원으로 일했다. 문제는 로버트 트레우하프트(Robert Treuhaft)가 미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USA) 정식당원이자 공산당을 위해 일한 하버드 출신 변호사였다는 점이다.

당시 예일대 로스쿨 학생이었던 힐러리는 담당 교수의 소개로 트레우하프트 로펌과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 트레우하프트는 ‘흑표범당’(Black Panthers)과 공산당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註: ‘흑표범당’은 바비 씰, 휴이 뉴튼, 엘드리지 클리버 등의 흑인 좌파들이 중심이 되어 1966년에 조직한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미국 내 공산조직이다. 1965년 말콤 X의 암살 이후 흑인 운동은 직접적인 투쟁을 강조하는 ‘블랙 파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흑표범당’은 이 슬로건의 실제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극렬 좌파 조직이다.]

그녀가 트레우하프트에서 일한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힐러리 자신은 바로 어제와 같이 느낄 것이다. 그러나 급진적인 그녀의 이념이 최근 들어 온건한 성향으로 재포장됐다. 힐러리의 전기를 집필한 바바라 올슨(Babara Olson)은 베테랑 언론인이자 논평가인 클리프 킨케이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힐러리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집중 조명했다.

[註: 바바라 올슨: 폭스 뉴스와 CNN에서 활동한 보수성향의 뉴스 해설자. 9.11테러 당시 ‘Politically Incorrect’를 녹화하기 위해 63명의 승객과 함께 ‘아메리칸 에어라인 77편’에 탑승했으나 이내 비행기가 테러범에 공중납치 되어 펜타곤(Pentagon)에 충돌 사망했다.]

올슨은 “나는 힐러리가 막시즘에 뿌리를 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막시즘은 젊은 시절 힐러리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중략) 특히 보건 및 교육과 관련해 힐러리는 개인보다 정부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녀는 가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슨은 또 힐러리가 쓴 ‘It Takes a Village’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당신(힐러리)은 가정을 파괴하려 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가정 파괴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슨의 지적을 믿지 못하겠다면 힐러리의 공식 선거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라. 그러면 공산주의와 관련된 수많은 주의·주장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힐러리는 ‘It Takes a Village’의 서문에서 “정부는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해, 마치 정부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또 ‘동등한 조건에서의 경쟁’과 ‘부(富)의 분배’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힐러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모든 어린이들이 보호와 사랑을 받아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워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지속시켜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힐러리의 주장대로라면 연방정부의 역할은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연방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힐러리는 지역·주·연방 정부와 UN이 어린이들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미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큰 정부’(big-government)를 지향하는 힐러리의 철학은 그녀가 입을 열 때 마다 떠들어 대는 고정 멘트다.

힐러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진 부자들을 상대로 한 모금 행사에서 “공익을 위해 우리(정부)는 당신들이 가진 것을 회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비슷한 시기 일단의 원로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사유화는 어떤 해답도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힐러리는 모든 것을 국유화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막시즘적 사고방식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힐러리가 ‘세계정부’(World Government)를 구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註: 힐러리의 남편인 클린턴은 어린시절 프리메이슨 조직인 ‘드몰리 인터네셔널’에 가입했다. 비밀결사체인 프리메이슨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리메인슨은 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반(半)공개 조직으로 활동해왔으나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 이후 인터넷과 매체를 통해 공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메이슨에게는 국가 관념이 없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오로지 ‘세계 단일정부 수립’과 ‘세계 독점 경제’라 할 수 있다.]

클린턴 일당이 공직에서 물러나기에 앞서 이들은 미국의 주권을 향해 한 번 더 칼을 들이댔다. 그것은 바로 국제형사재판소를 만들기 위한 UN 조약에 사인을 한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인권 문제와 관련된 범죄(대학살·반인륜적 범죄·전쟁범죄)와 관련, 조약 당사국이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할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을 때 재판소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이 같은 권한으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미군들이 전범으로 기소되거나 수감될 수도 있게 됐다. 문제는 국제형사재판소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Citizens for Global Solutions’(CGS)이라는 강력한 조직을 위해 일한다. CGS는 세계를 ‘단일 정부 시스템’ 하에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CGS는 홈페이지를 통해 “단체의 설립 목표는 연방적 구조를 가진 민주화된 글로벌 정치 체제를 만들기 위한 실용적 제안을 연구·조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CGS는 이를 위해 국제 보건정책을 비롯,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미명하에 국제 경찰 등의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CGS의 목적은 단일화(세계정부)된 폭정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상을 보기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에 영구히 새겨진 구둣발 자국을 상상하라’고 했던 조지 오웰의 유명한 격언이 지금처럼 선명하게 울려 퍼졌던 적은 없다. 힐러리에게 투표하는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오웰이 상상했던 세계에 한발 더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 제시카 슈레인들(Jessica Schreindl), 美 센티널 온라인 칼럼니스트
원제: Hillary: the new face of communism, 2007년 10월 15일자

번역/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어린시절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클린턴은 DJ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2] 빌 클린턴 의 '프리메이슨' 커넥션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타임지를 포함해 이 회의에 참석하신 여러 대형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임원 여러분들께 지난 40년간 보여주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만일 지난 세월 동안 여러분들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세계를 향한 우리의 계획을 발전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세계정부’(world government)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아슈케나지 계열 유태계 재벌 '데이비드 록펠러', 1991년 6월 5일 빌더버그 회의 기조연설>

조지 H.W. 부시 대통령(프리메이슨 '스컬 앤 본즈' 회원)에 이어 지난 1993년 대통령에 당선된 클린턴(William J. Clinton)은 1946년 8월 19일 아칸소 주 호프(Hope)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아칸소는 원래 미국의 비밀 테러 조직으로 악명 높은 KKK단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KKK단의 전신은 프리메이슨 조직의 하나인 '금원의 기사단'(Knight of Golden Circle)이며 형제 조직으로는 러시아의 니힐리스트(Nihilists)종단과 독일의 벰게릭트(Vehmegerict)종단 등이 있다. KKK단의 본래 이름은 그리스어로 쿠클로스(Kuklos), 즉 ‘서클’ 또는 ‘단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후 한 단원이 ‘KKK단(Ku Klux Klan)’으로 이름을 바꾸자고 한 데 동의하여 현재까지 그렇게 불려지고 있다. 한편 클린턴은 어린시절 사탄을 숭배하는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템플 기사단’(Knight Templar)산하 종단인 `드몰리 인터내셔널`(The Order of Demolay)에 가입했다. 드몰리 인터내셔널의 가입조건은 반드시 12~21살 사이의 젊은이여만 한다.

클린턴, 어린 시절에 프리메이슨 가입

드몰리 인터내셔널은 1919년 Frank S. Land라는 마스터 프리메이슨과 9명의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조직됐다. 특히 클린턴의 경우 현재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대부분 33도 프리메이슨)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으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드몰리 인터내셔널은 표면상으로는 형제애, 애국심 그리고 도덕성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이 조직은 현재 미국내 군*정*재계에서 수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드몰리 인터내셔널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숭상하는 템플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인 자크 드몰리(1244~1310)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웹스터(Nesta H. Webster*1867~1960)는 ‘비밀사회와 전복운동’(Secret Society and Subversive Movement*1924년 발간)에서 과거 템플 기사단원들이 저지른 호모섹스에 대한 기소를 조사했다.

웹스터는 템플 기사단을 처형한 프랑스의 왕 ‘필립 4세’가 1307년 10월 13일 템플 기사단원들을 체포했을 당시의 죄목 중 하나가 ‘부자연스런 성적 비행’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사실에 대해 프리메이슨들은 이들의 자백이 혹독한 고문의 결과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1309년 교황 클레멘스 5세가 고문 없이 템플 기사단원들을 조사했더니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특히 그랜드 마스터인 자크 드몰리와 지부 책임자들은 3명의 추기경과 4명의 공증인이 배석한 가운데 고문 없이 조사를 받았는데,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침 뱉고, 호모 섹스를 벌인 사실을 시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린턴과 '아칸소 재정 진흥기관'(ADFA)의 정체

프리메이슨 최고 계급인 33도까지 올라갔던 맨리 P. 홀(Manly P. Hall*1990년 사망)은 그의 저서인 `The Lost Keys of Freemasonry`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단 프리메이슨의 신비한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참된 신은 ‘루시퍼’(Lucifer)라고 믿게 된다.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서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 빌 클린턴은 이처럼 젊은 나이에 프리메이슨이 되었으며 이후 프리메이슨의 반(半)공개 조직이라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록펠러(유대인)와 헨리 키신저(유대인, 이탈리아의 P2 프리메이슨 단원)가 조직한 ‘삼변회’(Trilateral Commission)와 ‘빌더버그’ 그룹(Bilderberg Group)의 정식 멤버가 된다.

클린턴은 이러한 배경을 기반으로 1977년 약관 30세의 나이에 법무장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2년간 아칸소주 법무장관을 지내면서 자신의 조직을 단단하게 구축했고, 1979년 1월에는 전 미국에서 최연소 주지사가 되었다.

주지사가 된 클린턴은 주정부 금융기관으로 '아칸소 재정 진흥기관'(ADFA)을 창설하고, 세금으로 거둔 돈을 유망한 사업체, 학교, 대학 등에 낮은 이자로 융자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ADFA의 요직을 자신의 수족들로 채우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ADFA의 원래 목적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정치 자금을 만들기 위해 마약 장사를 하고 이를 통해 돈을 세탁해 주는 일이었다.

클린턴 비리, 미국 내 기독교 단체가 고발

이와 같은 클린턴 비리에 대해 미국 내 메이저 언론사들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미국 내 독립 침례 교단에서 운영하는 몇몇 홈페이지와 독립 언론들은 그의 비리를 낱낱이 고발해 왔다. 특히 클린턴의 마약밀매 관련 비리를 쫓다 지난 91년 의문사한 대니 카솔라로(Danny Casolaro, 프리랜서 기자)의 이야기를 담은 'The Octopus'(짐 케이스-1999년 사망, 켄 토마스 공저)에는 이에 대해 매우 자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 언론들이 밝히는 클린턴의 비리는 다음과 같다. 클린턴은 ADFA를 만들기 위해 부인인 힐러리 소유의 변호사 회사 ‘로즈 로펌’(Rose Law Firm)의 웹스터 허벨(Webster Hubbell)에게 ADFA의 기본 취지와 법안을 작성하여 주 의회에 제출토록 하고, 자신은 뒤에서 공작하여 법안이 통과되도록 했다.

ADFA창설 직후 클린턴은 허벨을 시켜 ‘파크 오 미터’(Park-O-Meter)라는 주차장 요금기 제조회사를 설립하고 제일 먼저 융자를 받도록 만들었다.

클린턴 부부, 엉터리 회사 차려 마약 밀매

그런데 이 회사는 엉뚱하게도 주차장 요금기가 아니라 경비행기의 앞부분의 둥그런 부분을 만들어 수출했다. 그러나 사실 이 회사는 상대국의 마약업자가 엉터리 회사를 차려 부품을 수입하는 것처럼 꾸미고, 그 엉터리 회사에서는 그 코에 마약을 담아 다시 미국으로 밀수입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클린턴은 마약을 비행기로 수송하기 위해 아칸소 주의 메나(Mena)라는 작은 마을의 비행장에 경비행기 몇 대와 비행사 몇 명을 고용했다. 이중 배리 실(Barry Seal)과 테리 리드(Terry Reed)의 경우 이와 같은 불법적인 활동을 견디지 못하고 클린턴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베리 실의 경우 지난 1995년 ‘워싱턴 포스트’기자에게 메나에서 무기를 싣고 가서 남미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니카라과의 콘트라에 수송했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마약을 싣고 와서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등 여러 도시로 운반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장장 11주 동안 고민한 끝에 특종 기사를 게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로버트 카이저(Robert Kaiser)편집장이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며, 사실 무근의 내용”이라며 기사 게재를 중지시켰다. 이유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발행인이자 사주인 캐서린 그래함(Katherine Graham*유대인)이 클린턴과 함께 삼변회와 빌더버그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테리 리드는 입건되었으며 배리 실의 경우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 성향의 언론매체인 ‘FreeRepublic’의 98년 7월 21일자 ‘Clinton`s Rogues Gallery’에서 확인 할 수 있다.

‘FreeRepublic’은 과거 클린턴의 섹스 파트너였던 제니퍼 플라워즈의 옆집에 살면서 그의 섹스행각을 목격하고 이를 폭로했던 게리 존슨(Garry Johnson)변호사가 운영하고 있다. 클린턴의 성욕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여서 경호원들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경호원들 가운데에는 참다못해 클린턴이 바람피운 내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클린턴 내각, 유대계-동성애자 다수 차지

한편 클린턴은 대통령이 된 후 행정부에 레즈비언과 공산주의자들을 배치했다. 실제로 전직 FBI요원으로 `Unlimited Access`를 저술한 게리 올드리치(Gary Oldrich)는 지난 92년 클린턴 대통령의 인수위 담당자들의 상당수가 백악관 내에서 레닌의 얼굴이 새겨진 뱃지를 달고 있었으며 모택동의 사상을 담은 ‘레드북’(The Red Book)을 지니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미국 내 기독교 언론사인 ‘월드 넷 데일리’(World Net Daily)의 편집인 J.R. Nyquist는 지난 99년 7월 22일자 논평을 통해 클린턴의 친공(親共)적 성향을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 버클리대 교수 출신으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경제 고문관 협의회 의장을 지낸 로라 타이슨(Laura D. Tyson)은 4천 만 러시아인 소작농을 굶겨 죽인 스탈린 공산주의 경제 신봉자였다.(‘Jeremiah Project’ 97년 11월 23일자)

그녀는 최근 ‘비즈니스 위크’ 기고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이 부자를 더 부유하게 하는 반면 영세민들에게는 인색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클린턴 행정부를 구성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동성애자였다. 가령, 백악관 내 보건사회부 비서관 도나 샬라라(Donna E. Shalala, 삼변회 회원)는 레즈비언 단체로부터 그녀가 자신들의 회원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클린턴이 퇴임하면서 재임 중 자신이 싫어한 최악의 장관이라고 평한 자넷 리노(Janet Reno)법무장관의 경우도 게이 단체에서 레즈비언이라고 확인해 준 바 있다. 한편 공중 위생국장 이었던 조이슬린 앨더스(Joycelyn Elders)의 경우 예비학생 및 유치원 아동들에게까지 콘돔을 나누어주고 사용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대법원의 루드 베이더 진스버그(Ruth Bader Ginsburg*유대인)의 경우 극렬 페미니스트 법률가이자 프리메이슨의 전위조직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법률고문으로, 아동과 성인의 성 관계 합법화를 지지한 바 있으며, 남녀 공용 군대와 걸 스카우트와 보이 스카우트의 통합을 요구한 전력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점성술-요가-명상 심취

힐러리 클린턴은 힌두교 스승을 두고 점성술과 점괘를 보고, 요가나 명상 등에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예산 부국장을 지낸 엘리스 리블린(Alice Rivlin)은 빌더버그, 삼변회의 멤버였으며 유엔대사, 국무장관을 지낸 메들린 올브라이트(유대인) 역시 삼변회의 멤버였다.

당선과정에서 유대계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클린턴은 미국 역사상 1~2차 임기 중 역사상 가장 많은 유대 인사를 각료로 기용하는 등 유대로비와는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 마이니치신문 기자이자 정치평론가인 이타가키 에이켄(板垣英憲)은 클린턴 정권의 경제 기반을 ‘(프리메이슨)정치권력+월가의 유대인 자본+헤지펀드’라는 이른바 ‘월가 복합체’(complex)로 일컬어지는 권력구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미키 켄터 무역 대표부 대표, 루빈 재무장관(유대계인 로스차일드가 계열의 골드만 삭스 전 회장),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전 세계은행 임원),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 댄 글릭맨 농무장관, 로버트 라이시 노동 장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 등의 주요 인사들은 모두 유대인이다.

미국 내 주요언론, 클린턴 비리 외면

재임시절 클린턴은 루빈, 서머스, 그린스펀과 함께 금융세계화를 추진, 마치 세계의 돈을 지배하는 ‘머니(money)교’처럼 권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권력구조 하에서 클린턴 정권, 월가(Wall street)와 헤지펀드는 극비경제정보를 독점적으로 공유했으며, 자유시장원리에 기초한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결과 미국 경제를 단숨에 회복시키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클린턴 행정부의 음모와 불법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아칸소 주에 생긴 '정직한 정부를 위한 시민회'(Citizens for Honest Government: CHV)는 지난 94년 여러 증거 자료들을 모아 ‘The Clinton Chronicles Book’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워싱턴에 있는 상하 양원의 의원들에게 전달했으나 ‘근거 없는 소리’라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리를 캐던 대니 카솔라로 기자는 1991년 8월 10일 사망(경찰 발표 자살)했다. 사진은 카솔라로 기자의 죽음을 다룬 1991년 8월 17일자 뉴욕 타임스지ⓒ newsmakingnews.com [3] 클린턴 비리와 연관되어 '의문사한 사람들'
대부분 ‘교통사고’나 ‘단순자살’로 가장


<주>아래에 소개하는 명단은 클린턴의 비리와 연관되어 1991년부터 의문사한 사람들이다. 경찰에서 발표한 사인은 대개 ‘교통사고’나 ‘단순자살’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주요 인물들만을 소개한다.

▲William E. Colby 전 CIA 국장 : 73년부터 76년까지 CIA국장을 지냈다. CIA비밀을 과다하게 공개한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났다. 97년 4월 27일 사망당시 빈센트 포스터의 ‘자살’에 의문을 제기하는 뉴스레터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발표된 사인은 익사.

▲Vicent Foster : 백악관 고문으로 힐러리와 ‘로즈 로펌’을 공동운영했다. 클린턴 부부의 재정문제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으며 화이트워터 사건과 관련해 증언할 예정이었다. 93년 7월 21일 백악관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발표된 사인은 자살.

▲Paul Wilcher : 메나 비행장 건을 조사하던 워싱턴의 변호사로 1993년 6월 22일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발표는 자살.

▲Jon Parnell Walker(RTC 수사관) : 아파트 발코니에서 떨어져 죽었다. 빈센트 포스터가 죽기 전에 방문했던 아파트였다.

▲C. LeBleu, T. McKiahan, R.Williams, S. Willis : 클린턴의 경호원들로 1993년 2월 28일 Waco 종교단체 검거 때 모두 총에 맞아 죽음.

▲W. Barkley, B. Hassey, S. Reynolds, T. Sable : 클린턴의 경호원들로 1993년 5월 19일 헬리콥터 사고로 죽음.

▲Alan G. Whicher : 클린턴의 전 경호원이었고 후에 경호 책임자로 발탁되었으나 1995년 4월 19일 오클라호마 빌딩 폭파 사건 때 사망.

▲Kathy Ferguson : 클린턴의 경호원 대니 퍼거슨의 전 부인으로 1994년 5월 11일 의문의 시체로 발견됨. 공식발표는 자살.

▲Bill Shelton : 클린턴의 경호원 대니 퍼거슨의 동료. 州 경찰관이며 캐시 퍼거슨의 약혼자로 1994년 6월 12일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사인은 자살.

▲Luther (Jerry) Parks(클린턴 경호팀장, 아칸소주 리틀락 담당) : 클린턴의 불법 활동에 관한 문건을 가지고 있었다. 93년 9월 26일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건은 분실 됨.

▲John A. Wilson : 워싱턴 시의원으로 클린턴의 비리 사실을 폭로하려 했으나 1993년 5월 19일 죽음. 공식발표는 자살.

▲John Walker : 화이트워터 건을 수사하던 고위 수사 담당관으로 1993년 8월 15일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발표는 자살.

▲Luther Jerry Parks : 클린턴 선거유세팀의 경호책임자로 1993년 9월 26일 살해당함.

▲Mary Mahoney : 25세 여성으로 클린턴 밑에서 백악관 인턴으로 근무했다. 클린턴을 성추행으로 고문하기 며칠 전, 근무하던 스타벅스 매장에서 5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

▲Suzanne Coleman : 클린턴이 아칸소 주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 ‘로맨틱한 관계’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후 뒤통수에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사망 당시 26세로, 임신 7개월의 몸이었다. 공식사인은 자살.

▲Paula Grober : 클린턴 연설 수화통역가였던 그녀는 78년부터 죽을 때까지 클린턴과 함께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92년 9월 12일 자동차 사고로 사망, 목격자는 없었다.

▲Judy Gibbs(펜트하우스 모델, 매춘부) : 1996년 화재로 집에서 여동생과 함께 불타 죽었다. 주디 깁스의 가족은 클린턴이 그녀의 ‘고정고객’이었다고 진술했다.

▲James McDougal :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 조사를 위해 케네스 스타 특별 검사 측의 증인으로 출두할 예정이었다. 98년 3월 8일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사인은 약물과다 복용.

▲Dan Casolaro(프리랜서기자) : 아칸소 메나 비행장과 ADFA 건을 조사하고 있었으며 1991년 8월 10일 살해당함. 경찰 발표는 자살.

▲S. Heard, S. Dickson : 클린턴 정부의 의료보건자문위원회 위원으로 1993년 9월10일 의문의 비행기사고로 사망.

▲Ed Willey : 클린턴 대통령 선거 유세팀의 재정위원회 책임자로 1993년 11월 30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됨. 공식사인은 자살.

▲Herschel Friday : 클린턴 대통령 선거 유세 팀의 재정위원으로 1994년 3월 3일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죽음.

▲Ronald Rogers : 1994년 3월 3일 `정직한 정부를 위한 시민회`(CHV)와 인터뷰를 하러 가는 도중 살해당함.

▲Ron Brown : 민주당 전국위원회 전 의장이었으며 통상부 장관이자 클린턴의 자금 모금인 이었다. 96년 5월 3일 항공기 추락으로 사망.

▲Barbara Wise(통상부 직원) : 96년 11월 29일 통상부 사무실에서 옷이 반쯤 벗겨진 채 변사체로 발견됨.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Charles Meissner(통상부 국제경제정책 담당 서기관보) : 론 브라운 장관 사망 직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

▲Kevin Ives & Don Henry : 아칸소 주 거주 소년들로 항공기의 낙하물(코카인)을 목격했다. 87년 8월 23일 철로에서 잠을 자다가 기차에 치여 죽은 것으로 발표됐다. 후에 부검의는 소년들이 기차에 치이기 전에 이미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두 소년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던 이들이다.

-Keith Coney : 88년 7월 정체불명의 차에 추격을 당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
-Keith McKaskle : 항공기의 낙하물 목격자로 1988년 클린턴의 주지사 선거날 왜건 힐이라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으면서 “클린턴이 오늘 선거에서 이기면 나는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88년 11월 칼에 찔려 사망했다.
-Gregory Collins : 89년 1월 얼굴에 총을 맞고 사망. 발표된 사인은 자살.
-Jeff Rhodes : 89년 4월 불탄 시체로 쓰레기장에서 발견됨. 머리에 총상을 입고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Boonie Bearden : 두 소년이 기찻길 죽음을 목격한 소년. 96년 4월 18일 실종됐다.

프리존 뉴스 김필재 기자

출처 : 선지자와 예언
글쓴이 : 다니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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