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개발에 관한 연구

수호천사1 2011. 2. 28. 12:30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개발에 관한 연구

                            

                                               노 흥 호

 


 목 차

 

I. 서   론  ..................................................   1
  A.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목적  .............................   1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   3

II. 존 웨슬레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  .......................   6
  A. 웨슬레의 생애  ..........................................   6
  B. 시대적 상황  ............................................  11
     1. 정치. 사회. 도덕적 상황  .............................  11
     2. 종교적 상황  .........................................  13
  C. 웨슬레의 교회관   .......................................  14
     1. 교회의 본질  .........................................  14
     2. 교회의 표적  .........................................  16
    D. 웨슬레의 목회 훈련관  .................................... 17
       1. 목회의 계승  .........................................  17
     2. 교직제도  ............................................  20

III. 존 웨슬레의 목회 훈련의 조직과 내용   ...................  26
  A. 목회훈련의 조직  ........................................  27
     1. 연합신도회   .........................................  27
     2. 속   회   ............................................  31
     3. 반   회   ............................................  37
     4. 선발신도회   .........................................  42
     5. 참회자반   ...........................................  44
     6. 연   회   ............................................  45
  B. 목회훈련의 내용   .......................................  47
      1. 하나님 말씀   .......................................  48
      2. 성 례 전   ..........................................  58

IV. 존 웨슬레의 목회 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   ..........  70
  A. 목회 훈련의 방법  .......................................  70
      1. 헌신 훈련   .........................................  71
      2. 경건 훈련   .........................................  75
      3. 성경 탐구 훈련   ....................................  78
      4. 설교 훈련   .........................................  81
      5. 지도자 훈련   .......................................  86
  B. 성결교회와 목회 훈련의 실천적 적용   .................... 100
      1.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   ............................ 100
      2. 목회 훈련의 방법   .................................. 109

V. 결   론  .................................................. 132
  A. 요   약   ............................................... 132
  B. 제   언  ................................................ 140

*  참  고  문  헌  ........................................... 145


                  . 서   론


 A.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목적

웨슬레는 18세기에 부패한 영국 사회를 구원한 전도자요 개혁자로 교회제도를 새롭게 조직함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단지 하나의 전도부흥사나 조직자로 보고 그에게는 신학이 없다는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본다.   그러나 오늘날 웨슬레를 정확히 신학자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스케빙톤 우드 (A. Skevington Wood)는 고찰하기를 "너무나 오랫동안 메소디즘의 창시자는 주로 행동가요 최소한의 의미에서만 건설적인 사상가였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급격히 웨슬레의 신학적 역할을 재평가하는 것을 본다.   오히려 그가 강조한 교리의 특징적인 성격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보았다.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18세기의 영국 교회의 상황에서 재천명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설교의 도장에서, 성서의 빛 아래서, 성도들의 체험에 비추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시정하였다.
웨슬레는 교리의 본체 (substance)와 교리에 대한 상세한 내용 (circumstance)을 구분하였다.   웨슬레는 전자 (substance)를 근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후자 (circumstance) 곧 교리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방법, 시간,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체험되는 상세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성서의 빛 아래서, 또는 체험을 통한 경험으로 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천명된 성서적 기독교의 기본 교리의 골자 (substance)를 재강조하면서 그 교리를 당시 선교 상황과 신앙 체험에 적응성을 지닌 산 신학 (a living theology)으로 형성한 것이다.  와인쿠프 박사는 "웨슬레의 공헌은 그가 신학에다 살과 피 (flesh and blood)를 덧붙였다는데 있다"라고말했다.    웨슬레는 위대한 실천가이며 신학자이다.   왜냐하면 웨슬레에게 있어서 신학과 실제는 진정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웨슬레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로도 소홀히 다루어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웨슬레의 목회관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웨슬레를 목회자로 보는 것에 대하여 주저한다.   왜냐하면 현재 드류신학대학에서 목회신학을 강의하고 있는 토마스 오덴에 의하면 전통적인 목회자라 함은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부름받아 안수식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하나님의 자기 노출에 전적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양육하도록 따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된 하나의 구성원이다."하였다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레에게는 교구가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복음 전도자이지 목회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웨슬레가 교구를 갖지 못한 이유는 영국 국교회가 교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는 나의 교구이다"(The World is my Parish)라는정신을 가지고 웨슬레는 진정한 목회를 하였다.
본 논문의 목적은 그동안 너무나 등한시 되어왔던 웨슬레의 목회에 대하여 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로 인하여 현대교회에 필요한 목회훈련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본 논문은 웨슬레의 생애 전반이나 그의 신학 사상 전체를 다루려고 의도하지 않는다.   다만 목회자로서, 목회훈련자로서의 그의 모습과 신학사상, 그리고 그의 목회활동을 찾아 그의 목회 훈련을 정립해 보고자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광범위한 제목하에 많은 제약과 한계를 갖고 기술된다.
이 논문을 기술함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는 존 웨슬레의 목회관에 대하여 발표된 것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본 논문을 위해 웨슬레가 직접 저술한 [Thomas Jackson (ed.), The Works of John Wesley (14 Vols., 3rd edition, Ohio, 1977-79)], [John Telford (ed.),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8Vols., London, 1931)], [Edward H, Sudgen (ed.), Wesley's Standard Sermons (2Vols., London, 1951)]과 한국어 번역판인 [존웨슬레 총서] 제 1권 - 10권 (서울 : 유니온 출판사, 1983)을 일차자료로 사용하였고, 그밖에 웨슬레에 관한 도서, 연구 되어진 논문, 목회학에 관한 도서 그리고 정기 간행물을 이차 자료로 활용하여 논문을 기술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전체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I 장은 서론으로 본 논문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목적, 연구의 방법과 범위를 다루었다.
제 II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기 위하여, 그의 생애, 목회 훈련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상황, 웨슬레의 교회관과 그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 III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의 조직과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목회 훈련의 조직으로는 역사적인 고찰을 따라 연합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그리고 연회를 다룸으로써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역사적 근거를 밝히고, 목회훈련의 내용으로는 하나님 말씀 (성경, 설교)과 성례전 (세례, 성만찬)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을 살펴보겠다.   목회 훈련의 방법으로는 헌신훈련, 경건훈련, 성경탐구훈련, 설교훈련 그리고 지도자훈련을 살펴보고, 그 실천적 적용으로는 성결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 V 장은 결론으로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을 요약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오늘의 한국 성결교회 목회 훈련 개발을 위하여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I. 존 웨슬레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


A. 웨슬레의 생애

웨슬레는 (1703 - 1791) 18세기의 대부분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한 위대한 목회자요 유력한 설교자이며  기독교 역사상 손꼽을 만한 대부흥사요 감리회를 조직한 조직자이다.
웨슬레는 1703년 링컨주 엡워드 교구의 주임 사제관에서 목사인 사무엘 웨슬레 (Sammuel Wesley)와 부인 수산나 웨슬레 사이의 15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3대에 걸친 선교적인 혈통이 말해주고 있듯이 신앙생활은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 수산나 웨슬레는 어린 자녀들이 말을 하게 되면 일어날 때와 잠을 잘때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였고 가정 예배시에는 항상 정숙하게 하였으며, 식사 시간에는 기도를 하게끔 하였다.
1709년 2월 9일 목사관의 화재는 웨슬레의 뇌리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이었다.   이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노년에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 밑에다가 '이는 불꽃에서 끌어낸 타다 남은 나무 조각이 아닌가?' 하고 적어 넣었다.  불타는 집은 멸망하는 세계를 상징한다.  웨슬레의 사상에 있어서 각 사람의 영혼은 불에 둘러싸인 어린애와 같이 회개하지 않은 죄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불길에 에워싸인 것이다.  한밤중에 불타는 집에서 구출된 그는 더 무서운 불길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멸망에 대한 기억이 죽는 날까지 그의 생각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1711년 버킹검 (Buckingham) 공작의 추천으로 챠터하우스 (Charter - house)에 입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경건 생활과 성경 읽기와 기도하기를 배웠다.   이 학교를 졸업한 후 1720년 옥스포드 (Oxford) 대학 크라이스트 처치 (Christ - church) 대학에 입학하여 히브리어, 라틴어, 윤리학, 철학, 신학등을 공부하였다.   이후로 부터 학문적인 면에 꾸준한 발전이 계속 되었다.
이 시기에 웨슬레가 접한 책들 가운데서 토마스 아 켐퍼스 (Thomas A.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n of Christ)를 읽고 (1726) 내적 종교의 본질과 범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 대한 모방을 다짐했고, 제레미 테일러 (Jeremy Taylor)의 [거룩하게 사는 그리고 거룩하게 죽는 규율과 연습] (The Rule and Exercise Holy Living and The Rule and Exercise of Holy Dying)을 읽은 후에(1725년) 의도의 순수성이 중요함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것임을 확실하게 자각하여 헌신을 결단하였고, 윌리암 로 (William Law)의 [완전한 그리스도인] (Law's Practical Treatise upon Christian Perfection)과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로의 부름]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을 읽었던 바 (1728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을 결단하였다.
이외에도 웨슬레가 전 생애를 통하여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음을 그의 일기가 말해주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하여 간접적인 경험을 쌓아나가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갔으며, 내적인 면을 늘 새롭게 발전시켜 나아갔다.   지식 그리고 실천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행동으로 일치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웨슬레는 그동안 축적한 모든 경험들을 행동화 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펴 나갔다.
1725년에 영국교회 (성공회)에서 신부 (Deacon 서열로), 1728년에는 사제 서열로 안수를 받으면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726년에는 옥스포드 링컨 대학의 강사로 피택이 되었고, 이곳에서 신성모임 (Holy Club)을 조직하여 멀지않는 훗날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교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줄 운동이 시작되었다.   웨슬레는 신성모임에서 엄격한 원칙을 창안해 나갔다.   그래서 웨슬레와 그의 동료들은 엄격주의자(Methodists), 성찬주의자 (Sacramentaians), 열광주의자 (Enthusiasts), 성경벌레 (Bible Moths), 개혁모임 (Reforming Club) 그리고 적선하는 자 (Supererogation Men) 등으로 불렸다.  신성모임은 1735년 10월에 웨슬레 형제가 미국 죠지아주로 선교를 위하여 떠나면서 해체되고 말았으나, 훗날 웨슬레의 목회훈련에 있어서 교회조직과 방법에서 그 영향을 볼 수 있으니 그에게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 하겠다.
1735년 10월 미국 죠지아주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되어 항해 도중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서 그들의 신앙을 보게 되었다.   그는 죠지아주에 도착하여 토착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웨슬레는 이들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었다.   왜냐하면 이들 인디언들은 순수해서 복음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접촉하면 할수록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점점 멀어짐을 느꼈다.  웨슬레 신학을 연구한 케논 (William R. Cannon)박사는 웨슬레 자신의 말을 인용하여, '그가 신성모임 운동을 하고 미국 죠지아주 선교를 하였던 그때까지의 자기는 아들의 신앙이 아니라 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즉 1738년 회심이전의 웨슬레의 신앙과 신학은 인간 중심적이었으며 비신앙적이었다.  그는 죠지아주 선교에 실패를 하고 다시금 영국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회심이 없는 상태에서 올바로 목회사역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죠지아주 선교에 실패를 하고 돌아온 웨슬레에게 결정적인 신앙의 변화가 찾아왔다.   웨슬레는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올더스게이트가 (Aldersgate Street)에 있는 어느 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었다.   9시 15분전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는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는 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 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어서 1739년 1월 1일 (월요일) 새벽 3시경에 페터 레인 모임에서  웨슬레는 홀 (Hall)씨와 킨췬, 잉햄, 화이트필드, 동생 찰스등 60여명의 신앙동지들과 통성기도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새벽 3시 경 계속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위에 강하게 임하여 많은 사람들이 벅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분의 위엄이 임재하는 가운데 두려움과 감탄속에 조금 정신을 차리자마자 한 소리로 우리는 외쳤다.  오 하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주 이십니다.

이러한 양 사건은 그의 목회사역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즉 설교의 내용과 종교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당시 영적 파산 상태에 처한 영국교회를  구원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의 원천을 체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1739년에 처음으로 감리교 예배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1751년에는 바질리 (Vazille) 부인과 결혼하였고, 1790년 10월 6일에는 최후로 야외 설교를 하였으며, 향년 88세로 1791년 3월 2일 오전 10시 런던 씨크로드 주택에서 서거하였다.

B. 시대적 상황

18세기를 크게 특징 지운다면 첫째는 현저한 과학적 발전의 시대였다.  둘째는 파국적인 정치적 변화의 시대였다.   세째는 문학과 철학적 성취의 시대였다.    네째는  정신의 힘이 가장 심각하게  종교에 적용된  시기였다.  그러면 영국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   정치, 사회, 도덕적 상황과 종교적 상황을 살펴 보고자 한다.

   1. 정치, 사회, 도덕적 상황
이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은 의회정치와 왕정 복고의 변혁기를 맞이하여 혼돈, 무질서, 소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청교도들이 (Puritans) 일어나 스튜잇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찰스 1세를 (Charles I, 1600-1649) 사형에 처하고 공화국을 건설하여 약 10년간 통치를 했다.   이당시 청교도들이 너무나 지나치게 엄격하여 아무 해도 없는 오락과 취미까지도 억제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왕정이 복고되자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가 왕의 자리에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때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시기가 없었다.  그 원인은 첫째가 왕실의 타락이요, 둘째는 청교도들의 지나친 엄격주의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그 결과로 극단의 향락주의가 만연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영국 사회의 사회적, 도덕적 상황을 보면 극장에서 상영되는 각본들은 저속하고 음탕한 내용들로써 관람객의 풍기를 문란케 했는데, 이것은 가정 불화의 요인이 되었고 이혼을 조장하는 등 영국 사회를 부패케하는 원인이 되었다.   상류가정의 한가한 부인들은 소설읽는 품팔이를 고용하여 음탕한 소설을 들으면서 소일하는 일이 많았다.   또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도박장이 되어서 가산을 탕진하고, 도둑질, 자살, 가정불화, 가정파탄의 진원지가 되었다.   특히 군왕이나 대정치가들이 도박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음주 문제는 거리의 집들 가운데 1/4이 술집일 정도여서 그 피해는 악정과 전쟁의 피해 못지 않게 컸다.   국가의 도덕적 타락은 잔인하고 모욕적인 각종 경기로 나타났는데 닭 싸움, 거위타기, 개교미, 소 싸움, 소 놀리기 등... 그런데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사소한 일로 격투와 폭행을 일삼는가 하면, 불량 청년들이 횡행하여 통행인들을 괴롭히고 금품을 강탈하며 부녀자를 농락하곤 하였다.  웨슬레가 영국 사회를 "오늘의 영국 사회의 특징은 불경건이다" 라고 하였고, 역사가 해롤드 니콜슨 (Harold Nicolson)도 18세기 영국 상황을 평가하길 "도덕적으로 무질서한 시기였다"라고 평가하였다.

   2. 종교적 상황
영국 사회의 종교적 상황으로는 이성을 존중하는 이신론 (Deism) 사상이 종교에 지배적이어서 기독교를 인간의 이성으로 부터 시작하는 종교로 변화시켰다.  이신론의 대표적인 매튜 틴달 (Matthew Tindal)은 인간에게는 이성이 긍극적 기준이다.   그러므로 이 이성이 곧 계시의 기초요, 신앙의 표준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도 인간 사상의 또 하나의 집대성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이처럼 17,18세기의 종교가들은 계시와 이성의 조화로 시도하며, 위로부터 임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과 전통적인 초자연주의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하여 마침내 신앙을 이성에 예속시키는 일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자연법칙을 세웠고 인간에게는 양심과 이성과 자유를 주어 자연이 법칙을 따라 운행하듯이 인간도 양심을 따라 도덕률을 준수함으로 완전해 진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신앙은 영력을 잃어갔고 형식주의로 기울어 갔으며 지도자들은 아무런 종교적 열정이나 영감, 죄인을 구원하려는 뜨거운 구령열이 없었다.   나아가 상류사회는 종교에 대한 무용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으며 정치인들은 타락하였다.   종교인들 조차도 세속화되어 설교의 권위를 추락시켰고 경전을 사문화시켰다.  이로 인하여 생명적 기독교가 희귀하게 되었다.   대중은 기독교의 타당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레키 (W. E. H. Lecky)가 논평한대로 종교적 권태가 영국을 뒤덮었던 것이다.
웨슬레는 이시대의 무력감에 대하여 "누가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가 ?  누가 그들이 은총으로 성장할 것을 생각하는가 ?   누가 때때로 그들을 권고하고 칭찬하는가 ?   누가 그들이 필요할 때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기도했는가 ? ...    그러나 보라 !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   동서남북을 돌아보고 어느 교구의 이름을 대보라 !" 하면서 한탄하였다.   웨슬레는 자기 시대의 악과 종교적 무기력을 한탄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18세기의 지적인 성격을 특징짓는 합리주의적이고 이신론적 철학에 직면한 기독교를 소생시키고, 그당시 영국에 있어서 현저하게 성행했던 부도덕과 타락에 대한 정화를 가능케 하기 위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C. 웨슬레의 교회관

   1. 교회의 본질
웨슬레는 신약성서주해에서 사도행전 5장 11절을 다음과 같이 주해하였다.

교회라는 말이 사도행전에 처음 나온다.   여기에 신약성서의 교회 원형을 비로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그들은 다 복음으로 부름을 받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았다.   여러 계급 사람들이 통일 되었고 사랑으로 생동하는 단체가 되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즉음으로 엄격한 신도 신앙 생활의 지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웨슬레는 "교회에 관하여" (Of the Church)라는 그의 설교에서 말하기를 교회라는 단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염려하면서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같이, 교회는 두세 신자가 함께 모이는 곳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는 교회는 제도나 의식이나 교권이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인 회중이라하여,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교회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숫자에 관계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가 모인 곳에 주님이 계시기에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쓸때 그의 집안에 있는 교회(몬 2) 라고 언급하였듯이 한 그리스도인의 가족이라도 교회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전체 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함께 연합된 회중이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교회는 우주적이다.  웨슬레는 "우주적 교회(the Catholic Universal Church)를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입게 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서, 이들은 한 몸이며 한 성령에 의해 생명을  얻고 한 믿음과 한 소망 그리고 한 세례를 가지며 만민의 아버지 되시는 한 하나님을 소유하여 결합된 하나님의 몸이다"라고하였다.   이처럼 웨슬레에게 있어서 교회란 본질적으로 거듭난 성도의 모임 (Communion of Saints)인 것이다.

   2. 교회의 표적 (The Marks of the Church)
웨슬레는 영국 교회의 39개조 종교신조를 개정함에 있어서 교회에 관한 조항 19조를 그대로 두었고, 19항을 13항으로 줄였을 뿐이다.

보이는 교회는 믿는 자들의 모임으로서, 거기서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적절하게 집행된다.

이 신조 자체는 종교 개혁 또는 고전적 개신교 전통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예를 들면 교회에 대한 정의에는 목회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이신조는 분명히 다양한 주장에 대하여 관용적이다.    콜린 윌리암즈 박사는 이 종교신조가 의미하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지적하였다.

보이는 교회는 본질적인 것이다.   첫째 되는 것은 산신앙 (Living Faith)인데, 사실상 이것 없이는 보이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교회가 전혀 존재할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결과적으로 이를 청취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할때  그 신앙은 쇠잔해지고 죽어 버린다.   세째는 성례의 합당한 집행, - 하나님의 신앙을 더하게 하시는 정상적 수단이다.

웨슬레의 주장은 말씀과 성례에 기존하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관련된 객관적 신성성이 신자들 속에 산 응답의 객관적 신성성을 초래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참으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세가지의 강조가 교회의 존재와 선교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함께 견지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수다한 교회관과 모이는 교회관이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   경건성을 초래  고 산신앙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례와 설교에 관련될 것이다.   웨슬레의  해답은 교회속의 작은 교회 (ecclesiolae in ecclesia)의 개념, 곧 말씀 아래 살고 있고 세례를 받은 전체 회중 가운데서 규칙적 생활을 따라 거룩함의 누룩이 되고자 하는 신자들의 임의적 소집단들의 개념을 사용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교회의 표적은 목회훈련의 근거로써 중요하다.   산신앙은 목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며, 순수한 말씀과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은 산신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목회훈련의 내용인 것이다.

D. 웨슬레의 목회 훈련관

   1. 목회의 계승
웨슬레는 1744년 실시한 제 1회 연회에서 목회의 임무는 무엇인가? 대하여 "하나님이 위탁하신 영혼을 돌보는 것" 이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목회를 하나님께서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위탁하신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웨슬레에게도 전통적인 목회의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웨슬레는 목회의 계승을 정의함에 있어서 카톨릭의 수평적 견해와는 달리하고 있다.   그는 1761년 런던 {크로니클}지에 보낸 편지에서 개혁 교회의 목회에 분명한 연속적 계승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개혁 교회에는 '하나님이 임명하시고 지원하시는 목사들과 교사들의 영구적인 계승 (a perpetual succession)이 있다'.   따라서 개혁교회에는 하나님이 임명하시고 또한 지원하시는 목사들과 교사들의 계승이 중단되지 않는다.   그들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개종시키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임명하시고 지원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명칭이 그들에게 적합하다.   이 교사들은 처음 성자들에게 주어진 신앙 (the faith once delivered to the saints)을 모든 세대를 걸쳐서 전달하는 특유한 계승자들이고, 그 회원들은 참 신자들이 모인 '하나의 거룩한 집회' (the only society of true believers)와 더불어 진정한 정신적 교제를 나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 (the Whole people of God)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의 백성은 무시할 수 없는 일부분이다.

여기서 목회의 계승은 말씀과 관련되어 정의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목회의 당위성이 엄연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가 목회자라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며, 그는 단순히 복음전도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 주장의 기본 개념은 그는 교구를 갖지 못했고, 구체적인 목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웨슬레가 교구를 갖지 못했음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서였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날더러 다른 교구에서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말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는 현재로 내자신의 교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사람입니까 ? ...
이제 괴로운 마음으로 이 문제에 관한 나의 원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온 세상을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내가 이세상의 어느 구석에 있더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합당하고 정당하며 그것을 나의 본분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나를 부르셨으며, 이 일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따른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웨슬레는 분명히 목회자였다.   그는 목사를 여전히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도구로 보았으며, 목사의 역할에 대하여 '목사에 대한 순종' (On Obedience to Pastors) 이라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목사들은 양 무리에 앞서가며 (이것은 오늘날까지 동양 목자들의 습관입니다), 모든 진리와 성결의 길로 그들을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며, 순전한 말씀의 젖으로 그들을 먹여야 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교리에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들에게 그 안에 감추어진 모든 본질적인 교리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책망을 위하여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들이 바른 길에서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쳤다면, 그들을 경고해야 합니다.   바르게 하는데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들에게  그릇된 것을 어떻게 수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하며, 평화의 길로 되돌아오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의로 교육하기 위하여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외적인 성결을 성취할 때까지 그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웨슬레는 목사의 역할에 목회훈련이 있음을 명백하게 주장하였다.   사실 목사는 훈련되어진 사람이어야 하고, 또한 훈련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일 목사가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그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목사는 훈련시키는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목사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훈련이란 신자의 삶을 말씀과 성례전으로 기인하는 능력이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 까지 미쳐 모든 진리와 성결의 길로 인도하도록 책먕, 경고, 지도, 감독, 권면, 징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회훈련은 초대교회에서 부터 존재하였다(갈 2:14 ; 고전 5:11-13).   린지(Lindsay, Thomas Martin 1843-1914)는 말하기를 "목회훈련은 초대교회의 신경(Nerve)이었으며 교제와 수찬금지는 목회훈련의 신경과 같았다"라고하였다.

   2. 교직제도 (Ministry)
교직제도에 있어서 웨슬레는 처음에 감독제도를 성경적이요, 사도적이라고 믿었으나, 스틸링플리트 (Stillingfleet)의 평화제의(Irenicon)와 성경 (Lord King)의 '초대교회에 관한 이해'(Account of the Primitive Church)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교직에 관한 문제가 대두된 것은 그가 전도 사역을 위하여 동생 찰스 (Charles Wesley)와 자신을 돕는 보조자를 뽑기 시작했을 때 부터 였다.   웨슬레가 임명한 평신도 설교자 (Lay Preacher)들은 대부분 안수도 받지 않았는데 교회제도상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 하는 문제였다.   또 미국에 감리교회가 생기게 되자 그곳에 감독과 목사를 임명하고 안수하여 전도의 장으로 파송하였다.   이와같은 웨슬레의 일련의 행동은 당시 영국 교회안에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웨슬레는 성경과 초대교회에서의 예를 들어 나름대로 설명을 하였다.   그는 두 종류의 교직자가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설교하거나 전도하는 책임이 있는 교직자이고, 둘째는 교회를 다스리고 성례전과 안수례를 집행하는 교직자이다.   전자는 특별한 전도자로서 제도적인 통로가 아닌 좀더 직접적인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세워졌다고 보았으며, 후자는 목사 - 사제 (Pastors -  Priests)로서 교회의 정상적이고도 기존화된 제도적인 목회자로 보았다.   그리하여 웨슬레는 영국교회의 사제들은 목회나 성례전 그리고 안수례를 집행하는 권한을 갖는 교직자이고, 메소디스트의 전도자 - 설교자들은  설교와 전도의 책임을 가진  교직자로 본 것이다.  이로 인하여 웨슬레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정규 목사들의 목회에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반면에, 평신도 보조자들은 참된 말씀을 조직함으로써 수직적인것과 수평적인 것을 함께 견지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교역자의 서열에 있어서 셋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셋은 감독(Bishop)과 장로(Presbyters or Priests), 그리고 집사(Deacons)이다.  그러나 감독과 장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본질에 있어서는 두 서열로 보았다.   즉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 (감독과 장로)와 그아래 서열의 교역자 (집사)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웨슬레는 교직제도는 모든 시대를 위해서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보았으며, 오히려 여러 다른 교직제도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다양성이 있어온 것이 틀림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성경에서는 교직제도에 있어 어떠한 획일성이 없다고 하였다.
교직제도에 대하여 자유로운 태도를 견지한 웨슬레는 교직이 교회 또는 교파에 따라 다종 다양할 것임을 인정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직책에 따라 그 수임자도 시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그의 '교직자의 직무에 관하여'라는 설교에서 그가 항상 메소디스트들을 사제 (Priests)로서가 아니라 예언자 (Prophets)로 임명했으며, "우리는 그들이 성례전을 집행하지 않고 단지 설교만 하도록 용납했다." 라  했다.
웨슬레는 어떤 댓가를 지불하든지 이 구분 만큼은 분명하게 하여 영구적인 것이 되게 하였다.   그는 일생 끝까지 메소디스트가 영국 교회와 분리된 한 종파로서가 아니라 영국교회내 성결의 누룩 (a leaven of holiness), 교회안에 있는 작은 교회 (ecclesiolae in ecclesia)로 여전히 남아있게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교회의 제도 및 교직에 대하여 상대적이며 실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레는 교직제도의 타당성을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사로서 안수할 수 있는 이론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세가지 교직제도 서열로써 문제에 대해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가시적 연속성을 참으로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자신이 목사나 감독을 안수한 것에 대해서 두가지 근거를 들어 나름대로 정당화 시켰다.   첫째, 성서에서는 장로와 감독이 같은 것이므로 자기도 안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며, 둘째는 불가피한 필요성에 응한 것이라고 하였다.  즉, 교회의 제도나 법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고 이해한 웨슬레는 자신의 안수를 성서나 초대교회의 전통이나 또는 영국 교회의 교리에도 일치될 수 있다고 하여 정당화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가 복음을 널리 자유롭게 전파하는 것을 최상의 사명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에 순종하는 뜻에서 이를 정당화한 것이다.  웨슬레는 미국을 위한 자기의 안수가 '정당하나 변칙적'(valid but irregular)이라는 상징으로서 '감독' (Bishop)을 '감리사' (Superintendent)로, '장로' (Presbyter)를 '장로'(Elder)로 직함을 바꾸었던 것이다.
웨슬레에 있어서 안수의 중요성을 콜린 윌리암즈박사는 다음과 같이 보았다.
① 웨슬레는 기계적 계승설을 용납하지 않는 반면에, 교회의 유기적 연속성을 주장하였다.
② 웨슬레는 목회를 안수의 연속성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③ 웨슬레는 가시적 연속성 뿐만 아니라, 말씀과 교회의 선교의 연속성에도 관심을 두었다.
④ 웨슬레가 확신한 것은 신약성서에는 제시된 '제도'가 없으므로 개혁교회는 일개의 합법적 교회 (교회 전체가 아니라) 이지만 목회의 세가지 질서는 정상적인 것이었다는 것과, 연속성과 일치를 위하여 가급적이면 그것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웨슬레는 교역자의 서열에 있어서는 셋으로 구분하였지만 본질적으로는 두 서열로 이해하였다.   즉, 성례전과 안수례를 집행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 (감독과 장로)와 그 아래 서열의 교역자 (집사) 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시듯이 교직의 직분도 시대를 따라 다르게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그는 성서에는 어떤 결정적인 교회 정치제도를 주신 것이 없으며 따라서 일정한 형태를 주신것도 없다고 하였다.   1836년에야 비로소 안수가 재개되었고, 그 세기 말엽에 가서 감리교는 자체를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18세기의 대부분을 산 사람으로 감리교를 조직한 조직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의 집안에서 철저하게 교육 받았으며 그것이 훗날 목회훈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일생에 있어서 1738년 5월 24일 중생의 체험과 1739년 1월 1일 성결의 체험은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웨슬레가 처해 있었던 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과 무질서, 사회.도덕적으로 불경건 시대였고, 종교적으로 이신론의 지배를 받았던 시대로 이로 인하여 신앙은 영력을 잃어갔고, 형식주의로 기울어졌으며, 종교 지도자들은 아무런 종교적 열정이나 죄인을 구원하려는 뜨거운 구령열이 없었으니 실로 새로운 갱신이 요청되는 시대였다.
웨슬레는 목회훈련의 장으로 교회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에게 있어 교회란 본질적으로 거듭난 성도의 모임이며 교회의 표적은 산신앙, 순수한 말씀, 그리고 성례의 올바른 집행이다.
웨슬레는 목회의 임무를 '하나님의 위탁하신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보았고, 개혁교회에 분명한 목회의 연속적 계승이 있음을 피력하였다.   그는 목사를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도구로 보았으며 목사의 임무에 훈련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교직자의 서열을 셋 (감독, 장로, 집사)으로 보았으나 본질적으로는 두 서열(감독과 장로, 집사)로 이해함으로써 목회훈련의 길을 열어 놓았다.

이상으로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이해를 살펴보았고, 제 III 장에서는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II.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


웨슬레가 우룻에서  부목사 직에 있을 때 어떤 신도 한 사람이 그에게 "당신이 ...  천국에 가려면 동지를 얻거나 그렇지 않으면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에 은둔적 신앙을 장려한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웨슬레의 머리 속에는 이 말이 언제나 떠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웨슬레는 실제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기독교인의 완전이라는 높은 수준도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교회에 대한 이해와 초기 메소디즘의 체험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 메소디스트 운동이 점차로 확장되고 신도가 증가됨에 따라 웨슬레는 영국교회에서 사용하던 신도회 (Society) 제도와 모라비아 교도들이 사용하던 반회 제도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또한 웨슬레는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이었으며 일생을 설교로 살았고, 성례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본 장에서는 웨슬레의 전도 (목회) 활동으로 형성된 연합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그리고 연회의 조직과 성격을 살펴봄으로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조직을 살펴보고, 목회훈련의 내용으로는 하나님 말씀과 성례전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A. 목회 훈련의 조직

   1. 연합신도회 (The United Societies)
웨슬레는 영국사회의 성직자로 일생을 살기를 원했고, 또한 그렇게 살았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영국사회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새로운 교회나 교단을 만들 생각을 전혀 갖지 않았다.   그의 목회활동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교구의 영국 국교회에 참석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원을 갈망하여 장래에 임할 진노를 피하고 진실한 믿음을 간직하려는 이를 위하여 신도회 (Society)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웨슬레는 신도회의 기원을 서술함에 있어서 "형식을 갖추고 성결한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서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고 권면의 말씀을 들으며 서로 사랑으로 돌봄으로써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돕는다."라고하였다.
사실 웨슬레가 1739년 6월 11일 (월)자 일기에서 그의 확신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의 원칙은 이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 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으며,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어디라도 가야한다고  판단될 때 그곳에 가야한다는 확신입니다 ....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든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

이와같은 확신과 신앙으로 그는 신도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신도회에 가입하는 유일한 조건은 "다가오는 진노에서 피하고 그들의 죄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갈망"(To free from the wrath to came, to be saved from their sins)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영혼에 진실로 몰두되어야 하며 그 결실에 의해서 보여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회원은 계속해서 간구해야 하고 그들의 구원의 갈망을 계속 증거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웨슬레는 1743년 5월 1일 선포한 신도회 규칙에서 이의 설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으니, "1739년말 8-10명이 런던으로 나를 찾아와, 진노에서 면하는 방법에 대한 권고를 위해 몇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요청하여 왔고, 나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일 것을 정하였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모임은 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그 수가 날마다 증가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규칙 (The Only Rule)과 충분한 규칙 (The Sufficient Rule)으로 삼고 신도회의 총칙을 실행하도록 훈련시켰다.   또 이 총칙을 습관적으로 범했을 경우 잘못을 타일렀고 그래도 회개치 않으면 출회시켰다.   이 총칙은 그들의 일상생활의 구체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그 조목들은 다음과 같다.
① 악을 행하지 말 것
실례로서, 웨슬레는 불경건한 말, 술취함, 밀수, 사치스런 옷, 불 필요한 낭비, 방종, 탐욕을 금하도록 하였다.
② 선을 행하라
특히 가난한 자, 병든 자, 실족한 자를 돌보아 주고, 믿음의 식구들에 대하여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가르침과 권고와 책망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보호하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모든 규례에 참여하는 것

신도회에 속한 자들은 교회의 예전과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전체 회중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웨슬레는 설교가 교회에서 저조함을 목격하고, 회원들은 신도회에서 말씀의 선교에 참여하고 거기서 기도하고 상호 격려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웨슬레는 복음 선전의 최선의 방법으로 신도회를 활용하였다.   "런던과 브리스톨과, 성 아이브스와 슈유카슬과, 그밖에 신도회가 있는 곳에서부터 점차로 조금씩 범위를 넓혀 전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적은 누룩이 소리없이 점차로 큰 세력으로 퍼져나가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늘 함께 하실 것이다."라고하였다.   그는 신도회를 복음전파의 기지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신도회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신도회는 회심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모임이었지, 다른 이유 즉 교회나 교단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으니 교회안에 있는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로 복음 선전의 최상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하며 영혼을 돌보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다.   또한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진실한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어 사랑을 실천하며 선교를 돕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교구 교회가 예배중인 시간에는 신도회 모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도회 회원들이 교구 교회 예배에 참여하는 것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만일 신도회에 가입한 신도들이 교회의 예배 시간에 따로 모이면 그들과는 다시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는 이 조직이 방대해지자 회심자를 속회와 개개인의 신앙 생활을 독려하는  신앙 고백반인 반회로 나누었다.   속회가 연합신도회의 신앙 훈련적인 모임이라면 반회는 신앙 고백적인 모임이다.   속회가 연합신도회의핵심 조직이라면 반회는 속회의 핵심 조직이다.   이것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도표 1)

(도표 1) +--------------------+
 |  연 합  신 도 회 |
 +---------+----------+
 +-------------------+-------------------+
+--------+-------+ +---------+-------+
| 신앙 훈련 모임 | | 신앙 고백적 모임|
+--------+-------+ +---------+-------+
 | |
 | |


  속         회 +--------------------+    반        회
 | |   목    회    자 | |
 | | | |
 | |   순 회 설 교 자 | |
 철 야 기 도 회 | |    애   찬   식
 | |   평 신 도 보조자 | |
 | | | |
 회  심  자  회 |   속          장 |   선 발 신 도 회
   (새신자회) | | |
 | |   집          사 | |
 | | | |
 회 원 포 교 부 |   병 자 심 방 인 |   참  회  자 반
   (3개월 마다) | | |
 | |   교          사 | |
 | | | |
 지도자의인도 |   회          원 |   개개인 스스로
 +--------------------+


   2. 속   회 (Class Meeting)
웨슬레에게 있어서 속회의 기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을 속으로 나누어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돌보게 하는 길밖에는 더 좋은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런던에서는 감리교의 속회의 기원이다.   여기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께 충분히 감사드릴 수 있는 길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   이 제도가 말할 수 없이 유용하다고 하는 것은 그 후로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명백해졌다.

속회는 1742년 2월 15일 (월) 브리스톨 에서와 동년 3월 25일 (목) 런던에서  처음으로  시작하였으며, 조직은 12명씩이 되었고, 한 주 한번씩 목요일에 모이도록 하였다.   1746에는 전 지역에서 메소디스트의 전형 (Patterns)이 되었다.   그리고 이 속회에는 전 감리회원이 조직되었으며  대거지역를 중심으로 지역과 회원들의 인접관계를 참고로 하여 조직 되었다.  웨슬레는 이 속회가 감리회 전제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처럼 속회는 감리회 조직의 핵심일 뿐 아니라 새로 개종한 자를 위한 교회의 조직으로서 이상적인 것이었으며 신앙훈련의 모임이었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작은 교회 (ecclesiolae)로 견지할 의도로 예언자적 직능과 제사적 직능을 구별하도록 호소하였다.
웨슬레는 속회가 한 곳에 모이기 시작한 이유를 "①속장의 시간 허비 ②찾아오는 것 싫어 하는 일 (집주인, 친척) ③속장이 만나도 자유롭게 권면, 책망, 위로, 격려할 기회가 없음 ④찬반 의견을 한 데 모을 수 없음 ⑤친척과  이웃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므로 이를 풀기 위해 서로 대면이 필
요하므로 한곳에 모이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속회원은 매주 한번 한 시간 정도로 저녁에 모여서 자신의 영적인 성장 상태에 대하여 말하고 특별한 필요나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받거나 도움을 받았다.   또한 그 운영을 보면 "필요한 때는 조언이나 책망을 받게 되었고 다투었던 일을 화해하였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를 한 두 시간 하고 나서 기도와 감사로 결론을 맺었다"라고하였다.   또한 속회원들은 일주일에 1페니, 세달에 1실링을 내도록 되어 있었고 이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순회 전도자들을 지원하는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속회 회원들에게 조그만 티켓을 발행해 주었는데, 그 카드엔 그 사람의 이름과 날짜, 웨슬레나 메소디스트 설교자 한 사람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속회 회원증으로 이것을 가진 자는 애찬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신실치 못한 회원들은 그 다음 기회에 티켓을 새로 발급 받지 못하고 결국은 애찬식에서 제외되었다.
속회의 회원이 되려는 사람의 자격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남녀노소 구별없이 다 가능하였으나 신도회에 가입이 허락될 때 증서가 발급되며 3개월의 예비 기간 후 마지막에 속장이  완전한 속회원의 자격을  자문했다.   가입된 속회원은 속회에 규칙적인 출석을 이행해야 하였고, 만일 세 번 이상 연속 결석하면 자동으로 속회에서 추방되었다.  웨슬레는 속회원이 지켜야 할 규칙은 연합신도회 회원이 지켜야 할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미국의 속회 연구가인 데이빗 왓슨 박사 (David Lowes Watson)는 속회의 신학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속회는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인간 역사의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할당한 특별한 사역들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게하는 신통한 은혜의 수단이었다.

이와같이 속회는 그 신학적인 의미로 볼때에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역할이 되었으며 동시에 이 은혜의 수단인 속회를 통하여 사람들을 회심시키기도 하였다.
목회훈련적 측면에서 웨슬레가 속회 회원과 그 지도자들에게 부여한 지침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회원 : 일주에 목요일 한번 모임
      1. 가난한 자들의 생활을 보살피기 위하여
      2.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3. 그들을 위로하고 충고하고 격려해 주기 위하여
   (나) 속회지도자 (Leader) : 매주 한번씩 모임
        1. 속회내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영적 성장을 조사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충고하고 견책하고 위로하고 권고한다.   그들이 바치는 헌금을 모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
        2. 신도회에 교역자나 구역장을 만나서 병든 자나 생활이 흐트러진 자, 견책을 듣지 않는 자들에 대해 교역자에게 보고하고 전 주에 여러 속회에서 받은 헌금을 전달한다.
     (다) 구원받기 위한 행동 지침
        1.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있어서 악한 생각을 피한다.
           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는다.
           나. 안식일에 사고 팔며 일하여 성일을 더럽히지 않는다.
           다. 독한 술을 팔고 사지 않으며 마시지 않는다.
           라. 말다툼을 피하고 법정에 고소하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마. 부정한 물품을 사고 팔지 않는다.
           바. 고리로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사. 불경건한 농담을 하지 않는다.
        2. 선한일을 행한다.
           가. 기회가 있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되 특히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며 환자나 죄수를 찾아가서 도와준다.
           나. 성결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도록 한다.
           다. 이같은 일을 오래 참음과 꾸준한 노력으로 계속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매일 같이 진다.
        3. 하나님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가. 공예배에 참석한다.
           나. 설교를 들으며
           다. 주의 만찬 (성만찬)에 참여 하며
           라. 은밀히 기도하며
           마. 성경을 보고 연구하며
           바. 금식한다.
     (라) 경건 생활 지침
        1. 기   도
           가. 회개와 화해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가 ?
           나.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개인 기도를 하는가 ?
           다. 매일 아침 5시에 새벽 기도회를 드리는가 ?
        2. 성서연구
           가. 매일 일정한 분량을 계속적으로 읽는가 ?
           나. 성경을 보기 전에 정기적으로 기도를 하는가 ?
           다. 성경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려고 하는가 ?
           라. 성경 연구를 치밀하게 하는가 ?
           마.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연구 하는가 ?
        3. 성 만 찬
           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만찬에 참여 하는가 ?
           나. 참석 전에 엄숙하고 진지한 기도를 드리는가 ?
           다. 참여하면서 자기 몸을 바쳐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가 ?
        4. 금 식 : 매주 금요일 마다 성경대로 금식하는가 ?

웨슬레가 속회 회원들을 철저히 훈련시키고자 하였음을 이와같은 지침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웨슬레는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각자 주일마다 방문하는 교인들의 생활에 대해 유심히 관찰하여 보고해 줄 것을 당부하였고, 그들은 지시대로 이행하였다.   그로인해 옳은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이 밝혀 졌다.   그 중 얼마는 가던 길에서 돌아서 회개했고 또 얼마는 우리에게서 아주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이로인하여 웨슬레는 런던과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방법을 실시하였다.   악한 자들이 색출되고 훈계받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죄의 길을 끊어버린다면 다시 그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그러나 계속 그 길을 버리지 못하면 공개적으로 이름을 밝혔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위해 슬퍼하며 기도하였다.   이와같이 웨슬레는 속회의 조직과 운영을 통하여 목회 훈련을 실천해 나갔던 것이다.

   3. 반   회 (The Bands)
Band에 대한 번역은 대단히 다양하다.   송흥국씨는 소회라고 했고, 민경배교수는 단이라고 번역하였으며, 노 해씨는 신도반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여기서는 반회라는 용어로 통일하고자 한다.
웨슬레는 속회 조직 이전에 1738년 페터레인회 (Fetter Lane Society) 조직시부터 반회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모라비안 교도들의 조직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 조직에 있는 급장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웨슬레가 급장제를 채용하지 않은 이유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급장 (Moniters)이란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잘못을 범한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하고 그것을 권면하는 것이었다.   웨슬레가 이제도를 폐지한 것은 이 일이 반회안에 있는 회원 상호간에 책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반회는 남녀별, 기혼, 미혼별로 4개 반별로 6명 단위로 조직되었다.  반회 회원에게는 평균 3개월에 한번씩 반회 티켓이 발급되었다.   이 티켓 표면에는 'Band'나 'b'자가 표기되어 있고 속회 티켓과 같은 기능을 가지며 애찬식과 성찬예배 (Covenant Services)와 신도회 모임에도 참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반회와 속회의 티켓이 발행된 수에 의하면 감리교 전체 회원이 속회 회원인데 반하여 반회의 회원은 속회 회원 전체에 20%정도였다.   그리고 매주 일회씩 남자반은 수요일 저녁에, 여자반은 일요일저녁에 모였다.
웨슬레는 반회 회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목회 훈련을 시켰다.
   1.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모임을 갖는다.
   2.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정된 시간에 정확히 모인다.
   3. 참석자들은 정시에 찬송이나 기도로 시작한다.
     4. 각자가  지난 번 모임  이후에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범해온  죄와 심령의 상태를 숨김없이 순서대로 말한다.
     5. 참석한 개인의 상태에 적합한 기도를 드림으로 모임을 끝낸다.
     6. 참석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하고 다음에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죄와 심령의 상태와 및 유혹받은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본다.
     7. 매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가. 지난 모임 이후에 어떤 죄를 범했는가 ?
        나. 어떤 시험을 만났는가 ?
        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
        라.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는가 ?   그중에 죄인지 아닌지 의심나는 것은 어떤 것인가 ?

또한 웨슬레는 신도회의 가입 조건으로 내세웠던 것을 세분화하여 반회 회원들에게 당신은 '세상을 이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아래의 사항은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다음과 같은 규칙을 주었다.
   1. 조심스럽게 악을 행하는 일을 피하라.   특히,
      가. 주님의 날에는 무엇이든지 사거나 팔지 말라.
        나.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면 어떤 술이든 먹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라.
        다.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있어서 여러 말을 하지 말라
        라. 아무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런것들 중 아무것도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
        마.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의 흠을 말하지 말고, 그런 사람을 보면 즉시 중지하도록 하라.
        바. 반지, 귀걸이, 목걸리, 레이스, 옷깃의 주름장식 등 불필요한 방종한 생활을 하지 말라.
     2. 열심히 선한 일을 도모하라.   특히,
        가. 당신이 가진 소유로 자선을 베풀라.   그리고 당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라.
        나. 당신의 면전에서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책망하라.   그러나 사랑과 지혜의 온유함으로 하라.
     3. 끊임없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라.   특히,
        가. 매주 교회에 출석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라.   그리고 모든 공적인 반회에 참여하라.
        나. 원거리, 사업, 또는 질병의 이유가 아니라면, 매일 아침 성서 공부반에 참여하라.
        다. 당신이 한 가정의 호주라면, 매일 개인 기도를 드리고 가족 기도회를 가져라.
        라. 틈나는 시간마다 성서를 읽고 그 안에서 묵상하라.
        마. 연중 매 금요일은 금식 또는 절제의 날로 지키라.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웨슬레는 반회 회원들을 아주 철저하게 목회훈련 시켰음을 알 수 있다.   1747년 6월 15일 부터 18일까지 열렸던 제 4회 연회에서 반회 회원들의 숙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6.   반회 회원을 숙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답 1.   각 속회를 방문할 때 먼저 반회 회원들을 아침에 나오게 해서 그들의 생활과 신정을 엄밀히 심사할 것.
        2.   기혼남녀를 따로 매월 첫 수요일과 일요일에 만나보고, 독신 남녀는 제 2 수요일과 일요일에 만나보아 심사할 것.

이렇게 철두철미 했던 반회도 가변적 은혜의 수단으로서 한 를 보이게 되어 계속해서 존속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으니, 스나이더는 이 반회가
1880년 경까지 존속했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속회는 신도회에 새신자를 받아 훈련시키고 여러 선교적 활동에 참여하는 신앙훈련적 모임 (Disciplinay Cell)이고, 반회는 회원 자신의 신앙을 심화시키고 체험시키며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여 그에 합당한 신앙의 결실을 맺는 신앙고백적 모임 (Confessional Group)이다.  즉 속회는 신도회의 핵심 조직으로써 윤리적 (Moral), 영적 (Spiritual) 생활을 지키도록 훈련하고, 가르치며, 구제하는 것이고, 반면 반회는 기독자의 완전을 추구하는 모임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과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모이는 속회의 핵심이다.  오늘날 기구화되고 대형화 되어가는 한국교회에 웨슬레의 반회와 같은 교회안에 작은 교회가 목회훈련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다.

   4. 선발신도회 (The Selected Society)
선발신도회는 반회 회원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빛가운데서 산다고 믿는 사람들과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반회 안에 보다 친밀하고 철저한 선별된 집단이다.   이 모임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주제에 특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이 모임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완전의 지속적인 추구, 받은 바 은총을 실행하고 부여받은 모든 재능을 증진시키며, 서로 더욱 사랑하도록 북돋으며, 서로를 더욱 주의 깊게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지시하며, 모든 경우에 자신을 남김없이 열어 보일 수 있는 선별된 모임에 참여할 것.

이 모임의 구성원은 칭의를 받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성경의 뚜렷한 진전을 보인 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이들은 속회나 반회에서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보다 깊고 완전한 친교를 요구하는 자들이었다.
웨슬레는 이들을 매주 월요일 저녁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 선발신도회 규칙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모두 마음 속에 가장 값진 규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잡다한 규칙은 필요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웨슬레는 연합신도회의 규칙과 같으나 이밖에 다음의 세개의 조항만을 첨가하였다.
     1. 신도회에서 거론된 것은 다시 발설하지 말것이며 비록 회원에게라도 말아야 한다.
     2. 각  회원은 모든  정당한 일에는 담임 목사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3. 각 회원은 주 1회씩 성심성의껏 우리의 공동금고에 헌금을 하여 앞으로 공공유익을 위한 일에 쓰도록 한다.

이 모임의 특징은 누구나 자유로이 말할 수 있으며 회원은 모두 평등한 것이었다.   웨슬레는 이러한 모임을 통하여 전통적인 입장에 굳게서서 좌우로 탈선되지 않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이 모임의 회원들을 적어도 세달에 한번씩은 면담하여 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함을 알고자 하였다.  선발신도회는 웨슬레 자신의 체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질문에 근거하여 신앙고백적 모임이 되어 신도회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모임에서 물은 질문은, 당신의 죄를 용서함 받았는가 ?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가 ?   당신은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가졌는가 ?   즉, 하나님의 자녀인가 ?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에 채워졌는가 ?   당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 를 묻고 이에 대하여 진실하고도 신중한 고백과 대화를 하였고 서로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상으로 선발신도회는 내적 신앙을 기준하여 조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웨슬레는 이 모임을 통하여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없었던 초대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교회조직이 다분히 외적 조건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에 대하여 깊은 반성과 새로운 측면의 목회훈련 조직을 개발함이 시급하다 하겠다.

   5. 참회자반 (Penitents)
웨슬레는 이 모임을 정의하기를 "믿다가 무슨 일로나 낙심했던 사람들이 따로 모이는데 그 모임을 참회자반" 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참회자반은 한마디로 신앙의 파산자들의 모임이다.   처음에 구원을 갈망하여 신도회에 참여하였으나 그 중에는 더러 낙심하고 낙오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웨슬레는 신도회 안에서 고의로 죄 지은 자, 자기도 모르게 경박해지고, 게을러지고, 나태해진 자들이 생기자 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참회자반을  조직하여 목회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다시 신앙 생활을 하도록 독려 받았다.

   6. 연   회
신도회가 조직된지 5년 후인 1744년에 웨슬레는 런던 파운드리에서 그의 보좌 목사 4명, 평신도 사역자 4명,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 도합 10명이 모여서 제 1회 연회를 조직하였다.   이것은 웨슬레의 목회 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이 되었다.   이 연회의 의제는 다음과 같다.
   1. 신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2.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3. 교리와 장정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문제, 어떻게 훈련하며, 또 실행할까 하는 문제였다.

웨슬레는 연회에서 목회훈련의 제반사역과 신도들과 기타 지도자들의 실행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특별히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소속된 단체의 임무와 그 단체의 지도자들의 생활등에 대해서 자세한 지침들을 주었다.   그리고 1763년 고시문 (Model Deed)을 발표하여 "연회에서 임명받은 교역자들은 자신이 발행한 4권의 표준 설교문과 신약성서 주해에 포함된 도리 외에 다른 것은 설교하지 않는다는 조건 속에서만 감리교의 예배서를 쓸 수 있다"라고규정함으로써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가 생각하고 지켜온 교리와 목회훈련에서 탈선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조직적 사역은 목회훈련 사역을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 목회 훈련의 내용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내용으로 하나님 말씀(성경, 설교)과 성례전(세례, 성만찬)을 들 수 있겠다.
웨슬레는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이었다.   캐스토(Robert Michael Casto)가 그의 박사 논문에서 지적하였듯이 성경은 웨슬레의 생애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웨슬레는 성경을 근면하게 읽었다.   그는 매일같이 성경을 원어로 몇 시간씩 읽으면서 진지하게 연구했으며, 진실로 성경에 능통하였다.
또한 그는 설교로 일생을 살았으니 매일 2,3회씩 설교하였으며, 주당 15회씩 평균해서 42,400회의 설교를 하였고, 하나님께 부름받기 1주전까지 설교를 하였다.   웨슬레의 설교는 성경 말씀에 그대로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1746년에 출판한 설교집 서문에서 말하기를 "나는 구원받는 방법에 관하여 성경에서 발견한 것을 이 설교들에서 설명하였다."라고하였으니 그에게 성경은 설교의 기초요, 설교의 내용이었다.
나아가 그는 성례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으니 은혜의 수단 8가지 중 성례전을 제일 중요시 하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세례가 구원의 필수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웨슬레는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1750년 길버트 보이스 (Gilbert Boyce)에게 편지를 하였다.

그대는 세례의 형식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례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부정한다.   만일 그렇다면, 퀘이커 교도는 저주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이외에 구원에 필수적인 것 (엄격히 말하면)은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웨슬레는 성만찬을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법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그가 이끄는 페터 레인회 (Fetter Lane Society)에 이른바 정적주의자들의  '은혜의 방법 무용론'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기 때문에 무슨 인간적인 방법을 쓸 필요가 없고, 다만 고요히 그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으로 족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웨슬레는 하나님께서는 교회내에 설정된 은혜의 방법을 통하여 그 은혜를 베품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고 역설하였다.

   1. 하나님 말씀
      a. 성   경
웨슬레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였다.   1739년 6월 11일 한 절친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신앙에 있어서나 실생활에 있어서 성경 이외의 다른 법칙은 하나도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원칙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명령을 하시어 나의 능력에 따라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악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착한 사람들을 더욱 더 착하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웨슬레에게 신앙과 실생활의 기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메소디스트의 특징이라는 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유일하고도 충분한 법칙임을 믿는다.   우리는 여기서 카톨릭 교회의 신자들과 구별된다."라고하였다.   또한 1766년 6월 5일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기반은 성경이다.   나는 성경 고집장이다.   나는 크거나 작거나간에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을 따른다. (My ground is the Bible.   Yes, I am a Bible - bigot, I follow it in 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 성경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목적에 배반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반대한다.

이와같은 것을 통하여 그가 철두철미하게 성경 중심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유일한 법칙이요, 원리인고로 그것은 은혜의 수단이 되며,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자는 누구나 성경을 탐구해야 그 은혜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성경을 근면하게 읽었다.   그는 매일같이 성경을 원어로 몇 시간씩 진지하게 읽었다.   그에게 성경을 읽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는 그의 설교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성경읽는 목적을 썼다.

여기에 나는 일들로 부터 떠나 홀로 앉아 있다.   오직 하나님만 여기 계실 뿐이다.   그 분 옆에서 나는 성경을 펼친다.   나는 그분의 책을 읽는다.    천국에 가는 길을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읽는다.

또한 그는 구약성서 주석의 서문에서도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성경읽는 목적에 대하여 권고하였다.

그들이 성경을 읽되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 하신 것같이 외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읽기를 원한다면, 매일 일정
한 시간을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읽는 목적으로 내어 놓으라.

이와같이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 읽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웨슬레가 오로지 성경만을 읽는 것은 아니었다.   웨슬레는 성경 이외에도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1725년 부터 1734년 사이의 옥스포드 시절에 400여권의 책을 읽었다.   그린 (V. H. H. Gveen)은 웨슬레가 그 시절의 자기 일기에다가 그가 읽었다고 언급한 책들을 종류별로 열거하였는데, 희랍과 로마의 고전을 비롯하여 종교, 문학, 철학, 연극 등 그 책의 종류와 범위는 매우 다양하였다.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 생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1778년 9월 1일 일기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아마도 나는 전보다 5,6백권의 책을 더 읽었을지 모른다.   또한 옛날보다 역사나 자연 철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런 것으로 신성을 아는 지식에 보탬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40년 전에도 나는 지금 설교하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를알았고 설교하였다.

이와같이 웨슬레 자신의 일기를 통하여 볼 때 그가 결코 편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는 고전으로부터 당대의 저서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는 '한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길 원했다.   그는 기독자의 완전에서 (1777년)  "이것은 1730년 6월부터 자신이 줄곧 추구해온 목표" 라고 하였다.   한책의 사람이라는 용어는 웨슬레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설교집에서 자신이 얼마나 한책의 사람이 되길 원했는 가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는 한가지 사실 곧 하늘로 가는 길을 알고 싶다.... 나를 한책의 사람이 되게 하라....  마음의 문을 연 후에 나는 성경의 근사한 구절을 찾아 비교 연구 한다.   그리고 그 구절에 대하여 온갖 정신과 열정을 집중하여 명상한다.   그래도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경험이 있는 자들과 상의하고 또한 독서를 한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배운 것을 가르친다.

진실로 웨슬레는 한책의 사람이었다.   이것은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후에 평신도 보조자에게 목회 훈련을 시킬 때 그는 "신도도서" (Christian Library) 라고 목록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웨슬레는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천국의 안내서요", "모든 계시의 시금석"인 성경을 철저히 탐구 하였고, 성경을 신앙과 실천 생활의 유일한 규칙 (The only rule)과 충분한 규칙 (The sufficient rule)으로삼아 목회 훈련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던 것이다.
      b. 설   교
웨슬레는 설교를 통하여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의 목회 중에서 설교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자신은 설교로 산다고 하였다.   "점심때 우드씨츠 (Woodseats)에서 설교하였다.   저녁에는 셰피일드에서 나는 진정 설교로 살아간다 !"  무엇보다도 웨슬레의 설교는 성령의 감화에 힘입어 있었고 ,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 집회에서 강한 체험을 했고, 1739년 1월 1일 페터레인 (Fetter Lane) 집회에서 능력을 받은 후부터 그의 설교에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의 설교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성격은 어떤 것인가 ?   그는 그의 설교집 서문에서 설교의 목적을 피력하였다.

나는 하늘로 가는 길에 관하여 성경에서 발견된 사실을 다음의 설교들 속에 기술하면서 하나님의 길과  인간이 발명한 것들을 구별하였다.   나는 진실하고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종교를 서술하되, 그것의 본질적인 것을 빠뜨리지 않는 동시에 비본질적인 것을 첨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즉 그에게 있어서 설교의 목적은 하늘 가는 길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설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고, 그들이 계속하여 성장하고 믿음을 유지함으로 하늘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함이었다.
웨슬레는 전도열에 불타는 설교자였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고전 9:16)' 라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명감과 구령의 열정 때문에 그는 임종할 때까지 전심 전력을 다해서 영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설교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라고 몰려드는 군중에게 지혜와 의와 구원이 되시는 그리스도 를증거해 주었다.   웨슬레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바울과 그 전도 일행이 당했던 수 많은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들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령사업의 고삐를 늦추지 아니하고 전도마차를 몰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목마르고 굶주린 영혼들에게 달려갔다.   그가 수 많은 환난과 고초 속에서도 얼마나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했는지는 그의 삶 전체가 증거가 될 것이다.
영국 국교회 내에서 웨슬레에게 설교 행위를 금지 시켰을 때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특정지역이 있을 수 없다는 세계 선교를 향한 비젼을 가지고 야외설교를 감행하였다.   이때 그는 '전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만약 내가 어떤 원칙에서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원칙은 이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으며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하다면 어디라도 가야 한다고 판단될 때 그곳에 가야 한다는 확신입니다.'   이 원칙에서 나는 미국에도 갔었고, 이 원칙에서 모라비아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제도 같은 원칙에서 아바시니아 (이디오피아)나 중국 같은 곳 어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든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의 교구에서 이와같은 일을 하지 못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현재 교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구를 갖지 않을 것으로 알고 내가 그런 일을 전혀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  사람입니까 ?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 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이루는 일에 충성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계속 얻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히 지시하시는대로 종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기회를 얻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할 뿐'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명백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일에서 손을 떼게 하시고 이 한가지 일 곧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는 일'에만 전념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사실 웨슬레는 야외설교에 대하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그는 좋은 시설과 분위기 속에서 설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강단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야외설교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야외설교의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화이트필드 (Whitefield)였다.
웨슬레는 처음에 이렇게 야외에서 설교를 하는 것이 이상해서 도대체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나아가 그는 교회밖에서 하는 것은 거의 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었다.  이와같이 생각했던 웨슬레가 처음으로 야외설교를 실시하였다.   물론 그는 기쁜 마음으로 야외설교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후 4시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분은 더욱 언짢았으나 노상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이때 나는 그 도시에 인접한 작은 언덕 위에 서서 약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야외설교였지만, 산상수훈을 가르치실 때 주님께서 야외설교를 하셨고 많은 복음의 증인들이 야외설교를 실시한 증거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난 후 부터는 설교를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양하지 않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후 1772년 9월 6일 일기에는 야외설교에 대하여 "오늘에 와서 야외설교가 내 십자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임무를 알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다른 방법은 발견하지 못하였다."라고하였다.   비록 웨슬레에게 야외설교가 십자가요, 짐이었으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요 구원을 갈망하는 소리라고 생각할 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신앙적인 열정이 생겼다.   후에 1782년 6월 26일 일기에서 그는 야외설교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1747년 6월 15일에서 18일까지 열렸던 제 4회 연회 마지막 날 "우리는 야외설교에 너무 중점을 두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네가지로 의견을 피력하였다.
  ① 왜냐하면 우리의 사명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방황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② 우리는 특별히 큰 길이나 울타리 밖에 나가 억지로라도 그들을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눅 14:23)   우리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할 사람이 없다.
  ③ 이 방법의 반대 의견은 온당치 않다.   즉 그 집(교회당)은 오는 사람 모두를 다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 집은 그 집에 오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이 야외에 모이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④ 그뿐 아니라,  다른 방법보다 이  야외설교로 더 큰 은혜가 임하였다.
웨슬레는 교회에 와 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 설교를 하였고, 광산, 부두, 탄광, 창녀촌 등 교회의 장벽이 높아 교회를 찾아 오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가 설교했다.   이것은 '찾아가는 자세'로서의 적극적인 목회의 자세로 웨슬레는 순회 야외설교에서 보여 주었던 것이다.
웨슬레는 오전 4시에 기상하고 다섯시에 첫 설교를 하는 등 시간을 지켰으며 또한 그의 순회 설교자들을 위하여 엄격한 규율을 세웠는데, 이에 의하면 아침 5시 전에 일어나서 6시부터 12시까지의 독서와 기도를 하고, 정오부터 하오 5시까지는 심방을 하고, 5시부터 6시까지는 하나님께 은밀히 기도를 하게 했으며, 하루에 적어도 두번 전도하게 하였다.   하루 24시간중 5시간은 반드시 독서와 성경공부를 하여야 했으며, 설교는 간단하게 하고, 예배는 한시간 안에 마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설교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는 사역을 설교와 관련지어 구분하였다.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 1 기 : 1725년부터 1729년까지
나는 설교를 많이 하였다.   그러나 수고에 대한 열매를 거의 못 얻었다.   노력에 비하여 그럴 수가 없는 실패였다.   그 이유인즉, 나는 내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이미 신자인 줄 알고 그들은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줄로 생각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에 중심을 둔 설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 제 2 기 : 1729년부터 1734년까지
나는 회개에 깊은 기초를 두고 설교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역사에 조금씩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극히 작은 열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믿음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③ 제 3 기 : 1734년부터 1738년까지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좀 더 많이 언급하면서 보다 열심히 설교하고 심방을 하곤 하였다.   그랬더니 그만큼 더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④ 제 4 기 : 1738년 이후
나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였다.   결국 모든 설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가 주춧돌이 되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말씀은 덤불속의 불처럼 역사하였다.   군중들은 "내가 구원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나중에 모두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는 것이었다.
웨슬레의 설교를 향한 열정은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1791년 3월 2일 런던 시크로드 교회당 자택에서 88세로 서거하기 바로 일주일 전까지 1791년 2월 23일 레더헤드 시장 저택에서 설교하였다.   슬레는 일생동안 매년 5천여 마일 이상을 순회 여행을 하였으며, 매년 평균 800여회, 매일 2,3회씩 설교를 하였다.   영혼 구원을 위한 그의 열정은 그로 하여금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  훨씬 늦은 밤중까지 쉬임없이 충성을 다하도록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설교는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2. 성 례 전
웨슬레는 당시 모라비안파의 정숙주의 (Quietism)를 경계하면서 은혜의 수단을 강조하였다.   웨슬레에 의하면 은혜의 수단은 8가지인데 그중에서도 세례와 성만찬은 은혜의 수단에서 제일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수단에 제약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은혜 주시기를 즐겨하신다고 웨슬레는 생각하였다.  웨슬레게에 있어서 세례와 성만찬은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이었다.
      a. 세    례
웨슬레는 '세례에 대하여'(A treatise on Baptism)라는 그의 논문에서 기독교의 세례에는 세가지 가중요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세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세례란 무엇인가 ?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계약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입회 성례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설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만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구적으로 의무를 지워주는 본래의 성례전 즉 은혜의 표시와 인장과 담보와 수단을 설치하실 권세가 있다.   우리는 그것이 설치된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승천하시기 오래전에 그것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할례 대신에 설치된 것이다.   즉 할례가 하나님의 계약의 표시와 인장이었듯이 세례도 그러하다.

웨슬레에 있어서 세례란 입회 성례전으로 하나님의 계약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훈련의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웨슬레는 세례의 유익에 대해서도 그의 논문에서 5가지로 말하였다.
  ①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를 적용하여 본래의 죄 (Original Sins)의 죄책을 씻어 버림
  ②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고 그분이 영원히 명하신 영원한 계약속으로 들어간다.   이 계약은 새로운 계약이며 영적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③ 우리는 교회에 입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
  ④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결과로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된다.

웨슬레는 세례에 대하여 말하기를 "세례안에서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으며 (Imgrafted in to), 성령을 통하여 이 새로운 뿌리에서부터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성령은 우리를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닮아가게 하신다."라고 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롬 6:23)을 나타내며, 죄사함 (행 2:38)과 양심의 정결 (히 10:22)을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세례의 지속에 대해서도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가 그의 교회에 항상 남아 있기를 원하셨다.   세례는 교회가 있는 만큼 오래 지속되도록 의도되어 있다.   세례는 유대교에서 할례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의 백성이라는 인증이듯이 분명한 유추에 의해 세례도 바로 복음의 계약이 인정되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가 지속되는 한 영구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지상 과제이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세례가 영구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세례의 방식에 대하여 침례 (Immersion)와 물뿌림 (Sprinkle), 그리고 물부음 (Pouring)의 형태가 있으나 이와같은 세가지 방법은 교회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 어느 방식도 이것만이 성서적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주장을 할 수 없다 하였다.   왜냐하면 어느 특정한 방식으로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세례를 입회 성례전이요, 하나님의 계약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그 세례에는 성경적인 유익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세례가 영구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하여는 성경에 어느 특정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 세례가 목회훈련의 내용이 됨은 실로 당연한 일이다.
      b. 성 만 찬
웨슬레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성만찬은 수찬자에게 선행적 은총, 의롭게 하는 은총, 그리고 성결케 하는 은총을 전달한다고 보았다.   성만찬은 신앙을 견고케 하는 예전이며 회심을 재촉하는 예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성만찬을 회심케하는 의식 (Converting ordinance)이라고 하였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사랑의 행동 표시이며,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법으로서 성령의 은사는 성만찬을 통하여 신자의 마음속에 내려온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표적 (Sign)과 인증 (Seal), 현재 은혜의 표적과 인증, 천의 보증과 인증, 그리고 성도의 교제의 인증으로 보았다.
웨슬레의 성찬 교리는 실질 존중설 (Vitualism)로써 쯔빙글리의 견해에도 반대하며 화체설이나 공재설도 아니다.   그는 빵과 포도주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나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달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웨슬레는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자주 성만찬을 받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로 다음의 세가지를 들었다.
① 그리스도의 평이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② 그것을 행하는 유익이 그분에게 순종하여 그것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주 크기 때문이다.
③ 우리로 하여금 그 죄를 떠날 수 있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줄 것을 확약한다.

웨슬레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그의 믿음의 유무에 관계없이 의식을 통하여 자동적으로 (ex opere operato) 은혜를 받는다고 보았는가 ?   웨슬레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자동적으로 은혜가 임한다는 데에 반대하면서 성만찬에서 받을 수 있는 은혜는 합당한 수찬자에게만 전달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웨슬레에게 있어서의 수찬자의 자격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웨슬레의 목회생활을 보면 그가 죠지아주 시절에는 영국 교회의 고교회주의를 가져서 교회의 권위와 의식을 극히 존중하여 영국교회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찬과 장례식을 거절했으며, 비국교도 자녀에게는 다시 세례를 주었고, 세례는 반드시 침례로 받아야 할 것을 고집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목회 초기의 태도는 그가 합당한 수찬자의 자격을 외적인 조건에 의하여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웨슬레가 후년에는 이러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을 볼 수 있는데 볼즈스에게 성경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였던 사실은 이런 변화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복음적 회심후인 1738년에서 1740년 동안에 있었던 모라비안과의 논쟁에서 수찬자의 자격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였다.
그 당시 모라비안들은 주장하길 성찬을 받을 수 있는 자는 확실한 믿음이 있는 자라고 하였다.  만약 확실한 믿음이 없는 자가 은혜의 수단인 성찬에 참여함은 하나님 앞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확실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종류 또는 한등급(a kind or degree of faith)을 가진 자도 참여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믿음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로워지기 전에, 또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성령의 영속적인 증거 즉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시다는 확신을 갖기 전에도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사람이 온전히 의롭다함을 얻기 전에는 어느 정도의 칭의의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믿음의 정도는 마귀와 이방인의 예수에 대한 지식과 구분되는, 즉 예수가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최소한의 것으로도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성만찬에 참여하는데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신에게 성만찬을 요구할 정도의 정당함이 없고 자신의 죄악성과 무기력을 깨닫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고 느끼는 자, 주님이 기쁘게 주시는 것을 받으려는 갈망과 죄를 억제하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안에서 그의 영혼을 새롭게 하려고 은혜를 갈망하는 자"면 다고 하였다.
이러한 웨슬레의 개방적인 태도는 비국교도 (Dissenter)에게도 성찬을 허용했으며 합한 준비를 한 어린이에게도 허용했다.  이는 그가 수찬자의 자격으로 외적인 조건보다도 내적인 조건을 더욱 중시하는 변화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성만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외적인 의무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성찬이 개방되면 무질서하게 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1747년 존 베네트 (John Bennet)의 의사록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졌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 5  우리는 어떻게 자격없는 수찬자를 다스릴 것인가 ?
답 1  신도회에 가입할 때 아주 주의깊게 살펴서 허락함으로써
         2  매 계절마다 지정한 달에 우리에게 나오는  자에게만 성
          찬표 (Notes)를 발급함으로써

이와같이 웨슬레는 성만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이상으로 살펴 보았지만 웨슬레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 중에서 특별한(In particallar)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 교리는 실질존중설 (Vitualism) 이었다.   나아가 성도는 계속해서 성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여겼으며, 참여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종류 또는 한등급 (a kind or drgree of Faith)을 가진 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이러한 개방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성만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 하였다.   그가 목회 사역을 수행함에 성만찬은 중요한 목회 훈련 내용이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의 목회활동으로 인하여 연합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그리고 연회가 조직되었다.   웨슬레는 신도회를 조직함이 교회나 교단을 만들 목적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단순히 영혼을 돌보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진실한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어 사랑을 실천하며 선교를 돕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는 이 조직이 방대해지자 신앙 훈련 모임인 속회와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신앙 고백반인 반회로 나누었다.   또한 반회 회원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빛가운데서 산다고 믿는 사람들과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선발신도회를 조직하였고, 믿다가 무슨일로나 낙심했던 사람들을 참회자반으로 따로 조직하였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이러한 교회조직을 알기 쉽게 보여 주었고 (도표2), 이 춘 교수는 이것을 좀 더 상세하게 보여 주었다 (도표3), 신 회를 조직하고 5년후에는 목회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으로 연회를 조직하였다.   웨슬레는 이러한 조직을 통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고, 이것이 그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웨슬레보다 먼저 중생의 체험을 하고, 야외 전도를 하여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화이트필드 (Whitefield)는 "나의 형제 웨슬레는 지혜롭게 일하였다.   그는 전도하여 얻은 사람들을 신도회 (Society)에 가입시켜  그 활동의 결과를 보전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법을 경시하였기 때문에 내가 얻은 신도들은 모래알 같이 흩어졌다."고 하였다.
또한 웨슬레의 목회훈련 내용으로 성경, 설교, 세례, 그리고 성만찬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최고의 권위이며 신앙과 실생활의 기준이었다.   그는 성경을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천국의 안내서일 뿐아니라 모든 계시의 시금석으로 인정하였고, 신앙과 실천 생활의 유일한 규칙과 충분한 규칙으로 목회훈련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던 것이다.   웨슬레의 일생은 설교로 산 인생이었다.
영국교회에서 교구를 허락하지 않았을 때, 그는 '전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웨슬레는 야외설교를 통하여 '찾아가는 자세'를 보여 주었으니, 광산, 부두, 탄광, 창녀촌 등 교회의 장벽이 높아 교회를 찾아오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가 설교 하였다.
웨슬레는 세례를 입회 성례전으로 보았고, 그 세례에는 성경적인 유익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세례는 영구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 방법은 성경에 어느 특정한 방법이 제시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성만찬에 있어서 그는 성만찬을 은혜의 수단에서 특별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성찬 참여 조건에 대하여 개방적인 태도를 소유하면서도 성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가 목회훈련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은 내용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도표 2)           웨슬레의 감리교인 조직
              CHURCH OF ENGLAND  (영 국 교 회 )
 +-----------------------------------------------------------+
+-+-------------+ |
|     Class ++---------+ |
|     속 회 | Band | +-------------------+
| | 반회+----+------+ |     Class |
+-++---------+-+-----| Select | |     속 회 |
 || Band | |   Society +--------+-+ |
 || 반회 | |선발 신도회|  Band +-----------------+
 ++---------+----+ +---------+-+  반회 | |
 |   Class | +------------+ |
 |   속 회 | |
 | | |
 +---------------+ +-----------+---------++
 | | Band | Class |
 | | 반회 | 속 회 |
 | +-----------+ +-----+-----+ |
+-+------------+  Band | +---------------++
| |  반회 +-----------------+ |
|  Class +-+-------+-+   Class | |
|  속 회 | |     속 회 | |
+----------------+-------| +----------------+
 +-------------------+

(도표 3)             웨슬레의 교회구조 도표


 +-----------------------------+
 |       우주적 교회 |
 |    (Church Universal) |
 +--------------+--------------+
 +--------------+--------------+
 |       영 국  교 회 |
 |     (Church of England) |
 |     예배, 설교, 성례전 |
 +--------------+--------------+
 +--------------+--------------+
 +--------------+|    연합 쏘사이어티 (감리회) |
 | 참회자의 모임||      (United Societies) |
 | 토요일 ++ 주일모임 |
 |기도,찬양,약속|| [찬양, 권면, 성례전(정규목사|
 +--------------+| 참여할때만), 교육, 기도(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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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


A.  목회 훈련의 방법

하나님의 대표자이며 성령의 도구인 목사는 자격 구비의 사람이어야 한다.   구약의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받고 그와 함께 사역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을 선택하였는데 그 자격을 보면 ①재덕이 겸전한 자 ②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③진실무망한 자 ④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이 다.   신약에 들어와 목회서신에서 교회의 직분자인 감독, 장로,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자격을 제시하였다.   감독은  ①책망할 것이 없는 자  ②한 아내의 남편  ③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  ④술을 즐기지 않는 자  ⑤관용하며 다투지 않는 자  ⑦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 ⑧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⑨새로 입교한 자가 아닌 자 ⑩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하고, 장로는 그 자격으로  ①책망할 것이 없는 자 ②한 아내의  남편인 자   ③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음의 자녀를 둔 자, 그리고 집사의 자격은  ①단정한 자  ②일구이언 하지 않는 자 ③술에 인박이지 않는 자  ④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 ⑤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이다.
백동섭목사는 그의 저서 {목회학}에서 목사의 자격에 관하여 ①자연적인 자격 ②교육적인 자격 ③영적인 자격 - 개인적 속죄 경험이 있고, 성령으로 충만한 -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동섭목사는 그의 논문 {한경직 목사의 목회론}에서 교직자의 자격을 4가지로 열거하였다.   ①중생해야 한다.   ②피소되어야 한다.   ③영안이 밝아야 한다.   ④성장해야  한다.
이와같은 자격을 구비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웨슬레는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천사처럼 설교한다고 하여도, 적절한 훈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라고하였으며, 스케빙톤우드도 감리교를 "정밀한 훈련의 종교"(A Religion of exact discipline)라 하였다.   여기서는 목회 훈련의 방법으로 헌신 훈련, 경건 훈련, 성경탐구 훈련, 그리고 설교 훈련과 조직의 핵심이 되는 지도자 훈련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헌신 훈련
웨슬레는 철저한 헌신의 사람이었다.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 시절 내외적으로  철저하게  헌신된 삶을 살 것을 결심하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금식, 기도, 성경연구, 종교서적 탐구와 구휼운동에 힘썼다.

우리는 아침과 저녁 한 시간동안 개인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9시와 12시 그리고 오후 3시에 기도문 (Collect)을 외운다.   항상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고 은혜의 표적이 있나 지켜보았다.  그리고 항상 신앙적 열의를 지니려고 노력했다.   경건한 말을 사용하고 성경을 자주 상고하였다.   나날의 일과에서 생긴 모든 특이한 일들을 암호로 일기에 적었다.   매일 한시간은 따로 시간을 정해 명상을 했다....  일 주일에 두번 금식하고 교회의 모든 의식을 지켰다.   매 주일마다 성례전에 참여했다.   사람들 앞에 나가기 전에는 어떠한 무의미한 말을 하지 않도록 할 말을 준비했다.   그들이 아는 한에 있어서, 그들은 초대교회 (The Primitive Church)를 그들의 표본으로 취했다.

그의 미국 선교의 목적도 "궁핍을 모면하려는 것도 아니요, 오물이나 쓰레기 같은 재산이나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요, 다만 영혼을 구하는 것,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함" 이다.   그러므로 이당시 그의 삶은 "지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알고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미국 선교 시절 그는 구원의 확실한 체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끊임없이 바쳤다.

나는 생각한다.   진정으로 복음이 진실하다면 나는 안전하다.  가난한 이들을 먹이기 위하여 내 소유를 이미 다 내주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다 내주고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르고 물에 빠져 죽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사랑을 이루기만 한다면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복음이 진실하다는 것이 믿어진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나의  행위로 믿음을 보이리라'.   그런 기회만 주어지면 수천번이라도 그렇게 하리라.

웨슬레는 올더스게이트 회심 체험 이후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일에 장소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더욱 헌신적이었다.   그로인하여 그에게 다가온 시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가 알게 하시려고 얼마나 여러가지로 골고루 준비를 하시는가 !   2년 전에는 벽돌장이 날라와서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돌이 날라와 내 양미간을 때렸다.   지난 달에는 주먹으로 한 대 맞았고 오늘 저녁에는 두 대를 맞았다.   한 대는 동리에 들어오기 전에 맞았고 한 대는 나온 다음에 맞았다.   그러나 둘 다 대수롭지 않았다.   한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서 내 가슴팍을 쳤고 또 한 사람은 금방 피가 튀어 나오게 힘껏 내 입을 쳤지만 그들이 나를 밀집으로 때린 것보다 더 심한 아픔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나는 케스위크 (Keswick)까지 정말 멋지게 말을 타고 갔는데 가는 동안 내 마음은 하나님을 생각하였다."라고하였다.
1753년 11월 26일 (당 51세) 웨슬레는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서 자신이 하나님께 부름받을 때가 가까운 줄로 알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묘비에 비문을 새기도록 명하였으니, 그 내용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 자신을 얼마나 바치고자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곳에 존 웨슬레 잠들다.   활활 타는 불 속에서 꺼낸 아직도 불붙은 나무인 그는 결핵으로 51세를 일기로 사망하다.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10파운드도 재산으로 남기지 못하고 가다.
나같은 무익한 종에게 하나님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
기도를 드리며...

그러나 그는 장수하였다.   80세가 넘어서도 그는 주께서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으니 그의 헌신의 불길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81세인 지금 21세 때와 다름없는 힘이 생기며 오히려 젊었을 때 앓았던 두통, 치통 등 육체적인 질병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로선 오로지 '주께서 다스리신다 !'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순간까지 그분을 위해 살게 하소서 !'

그는 하나님께 부름받기 1년 전에도 끝까지 헌신의 사람이었다.

돈이 한 푼도 없으니 누구에게 돈을 남겨 줄래야 줄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죽은 다음 책들이 팔리면서 돈이 생길 것으로 생각되어 그돈을 어떻게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유언서에 덧붙였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선한 일을 하고 싶다.  일단 죽은 다음 어떻게 돌아갈지 누가 알 수 있으랴.

웨슬레는 1791년 2월 24일 하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으니, 그의 삶은 실로 헌신의 지속이었다.
웨슬레는 자신이 이처럼 하나님께 헌신적이었듯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이 헌신적이 되도록 훈련시켰다.   그는 헌신을 신도회 가입 조건으로, 속회, 반회, 참회자반의 규칙으로 실천해 나갔으니 만약 여기에 불응하는 사람은 즉시 그 모임에서 추방되었다.

   2. 경건 훈련
웨슬레의 경건 생활은 가정 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집 아이들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주기도문을 가르쳐서 배우게 했는데 항상 잠자리에 들 때와 일어날 때 주기도문을 하도록 하였다.   점점 자라면서는 부모들을 위한 기도와 그 밖의 몇가지 기도를 덧붙여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짤막한 교리와 성경 귀절들도 배우게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말을 하거나 걷는 것을 제대로 하기 전에 이미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곧 이어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는 조용히 하도록 가르쳤고, 그 다음에는 무릎을 꿇거나 말을 하지 못해도 몸짓으로 표현해서라도 축복을 원하는 기도를 하도록 가르쳤다.

웨슬레의 어머니인 수산나여사는 자녀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그녀는 규칙들을 제정하였고, 자녀들이 질서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도록 하였다.   그 규칙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비겁한 마음을 먹거나 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고치기 어려운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길까봐 늘 살폈다.   그래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누구든지 잘못하였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시는 안하기로 약속하면 때려주지 않는다는 법을 세워 놓았다.
  ② 거짓말이나 훔치는 일이나 교회 안에서 장난치는 일이나 주일날 장난 치는 일이나 복종을 안하는 일이나 싸우거나 하는 등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절대로 벌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법은 없다.
  ③ 똑같은 잘못 때문에 두번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일단 고치고 난 다음에 다시 그것을 책망 해서는 안된다.
  ④ 특히 스스로 생각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항상 칭찬을 해 주고 결과에 따라서 상도 준다.
     . . .
  ⑦ 약속을 하면 엄격히 지켜라.
이같은 가정에서의 경건 훈련은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미국 선교를 위하여 가는 배에서도 경건 훈련을 지속하였다.   그 당시 생활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이제 약간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평상시의 우리의 생활은 이랬다.   새벽 4시에서 5시까지는 우리 각자의 개인 기도 시간으로 했고, 5시에서 7시까지는 함께 성경을 읽었는데 초대 교회의 문헌들을 세심하게 비교하면서 연구하였다.  7시에는 조반 식사를 하고 8시에는 공동기도 시간을 가졌다.   9시에서 12시까지는 나는 독일어 공부를 하였고 델라모트씨는 희랍어 공부를 했고 내동생은 설교문을 썼고 잉험씨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12시에는 함께 모여 우리가 지난번 모임을 가진 이후에 우리 각자가 할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다음 모임 전에 할 것으로 계획해 놓은 것을 함께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1시쯤 해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나아가 죠지아 선교시절 그는 스스로 네가지 결의를 하였고, 누가 보든 안보든 경건하게 살고자 하였다.
  ① 절대적으로 개방성을 띠우고 내가 대화해야 할 상대와는 조금도 숨김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② 계속해서 진지하게 노력하며 잠시라도 경박한 행동이나 웃음거리를 즐기는 일에 빠지지 않는다.
  ③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말은 전대 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 일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지라도 나는 안한다.   그것이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
  ④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일은 결코 즐기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러기에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없는 일은 어떤 것이라도 하지 않는  다.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가에서 복음적 신앙체험을 한 이후에도 웨슬레의 규칙적인 경건생활은 변하지 않고 계속 되었다.   1739년 4월 12일 그의 일기에 기록된 공적 생활을 보면 이사실이 명확하게 입증된다.

나의 정상적인 공적 활동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매일 아침 나는 기도회를 갖고 뉴우게이트에 가서 설교하였다.   매일 저녁 한 두 모임에 가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쳤다.   월요일에는 오후에 브리스톨 근처에 가서 야외 설교를 하였다.   화요일에는 바스와 투 마일 힐을 번갈아 찾아가서 설교를 하였고, 수요일에는 ... 목요일에는 ...  금요일에는 ...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아침에는 보올링 그린에 가서 ...  일요일 11시에는 한남산 근처에서, 2시에는 클맆튼에서, 5시에는 로우즈 그린에서 설교하였다.   이렇게 해서 날이 갈수록 나의 힘이 더해갔다.

웨슬레는 본인이 경건하게 살 뿐 아니라 그를 돕는 평신도 보조자들에게 경건훈련을 시키고자 엄격한 규율을 제정하였다.   그것은 아침 5시 전에 일어나서 6시부터 12시까지는 기도와 독서를 하고, 정오부터 하오 5시까지는 심방을 하고, 5시부터 6시까지 하나님께 은밀한 기도를 하고, 하루에 적어도 두번이상 전도하고, 하루 24시간 중 5시간은 반드시 독서와 성경공부를 하고, 설교는 간단히 하고 예배는 한 시간 안에 끝마치 하였다.

   3. 성경탐구 훈련
한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인 웨슬레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네 가지의 웅대하고 강력한 논증을 하였다.   즉 기적들과 예언자들, 교리의 선함과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이 그것이다.  모든 기적들은 신적인 능력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모든 예언자들은 신적인 이해력으로부터, 교리의 선함은 신적인 선함으로부터, 그리고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은 신적인 거룩함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네가지 웅대한 기둥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이해력, 선함과 거룩함 위에 세워졌다.   신적인 능력은 모든 기적들의 근거이며, 신적인 이해력은 모든 예언자들의 근거이고, 신적인 선함은 교리의 선함의, 신적인 거룩함은 저자들의 도덕적 성품의 근거이다.
나아가 웨슬레는 성경은 선한 사람들이나 천사들, 악한 사람들이나 악마들의 창작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작이라 하였고, 나아가 성경의 신적 영감을 주장하는 간결하고 강력한 논증을 세가지로 제시하였다.
  ① 그것은 선한 사람들이나 천사들의 창작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그 책을 쓰면서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는 거짓말을 계속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② 그것은 악한 사람들이나 악마들의 창작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의무를 규정하고 모든 죄악을 금하며 그들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행으로 선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③ 그러므로 성경은 확실히 신적 영감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웨슬레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나아가 그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였다.   즉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안내서요, 모든 계시의 시금석으로 신앙과 실생활의 최고의 권위었다.
웨슬레는 '우리 영의 증거'(The Witness of Our Own Spirit)라는 그의 설교에서 "선악의 그리스도교적 표준은 하나님 말씀 곧 신구약 성경의 문서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옛 예언자들이나 거룩한 사람들이 쓴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고, 참으로 교리를 위하여, 혹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가르치는 일에 유익하며 그것에 반대되는 것을 책망하고 잘못을 고쳐 주며,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 성경의 전부다" (딤후 3:16)라고 하였다.   즉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모든 사항에서 그의 양심이 적용되어야 할 전체적이고도 유일한 외적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탐구 방법은 묵상이었다.   그는 매일 경건하게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는 것을 통하여 평생 경건한 삶을 이끌어 나갔다.  그는 {구약성서 주석} 서문에서 성경 묵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하는 길이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그것을 묵상하라.   그러면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알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도록, 너의 온 마음과 온 혼과 온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너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그 모든 마음이 네 속에도 있지 않겠는가 ?   그 결과 너는 이책에 쓰여져 있는 모든 거룩한 기질을 기쁨으로 경험하는 한편 너는 너를 부르신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외적인 모든 대화에서도 거룩하게 될 것이다.

웨슬레는 이와같은 목적에 어울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① 할 수 있는 대로 매일 아침과 저녁에 그 목적을 위하여 약간의 시간을 배정하라.
  ② 여유가 있다면 매번 구약에서 한 장, 그리고 신약에서 한 장을 읽으라.   그렇지 못하면 단 한 장만이라도 읽든지 일부분만이라도 읽으라.
  ③ 성경을 읽되 단일한 눈으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알고 그것을 행하려는 확고한 결심으로 읽으라.   그의 뜻을 알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④ 신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라.   그리고 저 웅장하고 근본적인 교리를, 원죄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 중생,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결 사이에 있는 연관성과 조화에 대한 신념을 가지라.
  ⑤ 성경은 성령에 의하여 쓰여졌기 때문에 그 동일한 성령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에 항상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읽은 것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도로 끝마쳐야 한다.
  ⑥ 읽을 때 잠깐씩 쉬면서 우리가 읽은 것에 의해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을 반성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은혜로운 뜻을 준행하게 하신 일에 대하여 찬양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함을 깨달을 때에는 겸손히 기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네가 어떠한 빛을 받은 자라면 최선을 다하여 그것도 즉시로 사용하여야 한다.   조금도 지체하지 말라.  네가 무슨 결심을 하든지 할 수 있는 대로 첫 순간에 실행하기 시작하라.   그러면 이 말씀이 진실로 현재와 영원의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설교 훈련
웨슬레는 진정 일생을 설교로 산 사람이었다.   1725년 (22세) 옥스포드주 남방 라이에서 처녀 설교를 한 이후 매일 2,3회씩 설교하였으며 주당 15회씩 평균해서 42,400회의 설교를 하였다.
미국  죠지아주로 가는 배에서 아무 준비없이 즉석 설교를 하기도 하였으며 사 나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한 것도 설교를 함으로였다.
1738년 5월 24일 구원의 놀라운 체험이 있은 후 그의 설교는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모든 설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가 주춧돌이 되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는것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설교에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니 한 예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세인트 토마스 교구에는 미쳐 날뛰는 젊은 여인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몹시 괴롭혔다.   나는 그 여인에게 말을 해주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내가 말을 시작하자 그 여인은 잠잠하였다.   '나사렛 예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고 또 당신을 구원하실 분입니다.'라고 그 여인에게 내가  말을  해주는 동안  그 여인의 빰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웨슬레에 있어서 1739년은 중요한 해이다.   왜냐하면 회심 이후 본격적으로 야외설교를 통한 전도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한 해로써 1739년 3월 29일 화이트필드의 요청을 받고 브리스톨에 가 야외설교를 시작하여 4  2일에는 약 3,000여명에게 설교하였고 킹 우드의 한남산 정상에서 약 1,500여명되는 사람에게 설교 하면서 브 스톨을 중심으로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웨슬레는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과 그 일행이 당했던 수 많은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는 죄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까지 설교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

스피톨필즈 (Spitolfields) 교회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샤드웰 (Shadwell) 성 베드로 교회에서 오후에 집회를 가졌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가지 필요한 것으로 중요한 진리를 말하는 동안 진지하게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라도 더 나은 것을 선택하기를 바랬다.

웨슬레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1749년, Drections Concerning Pronunciation and Gesture)에서 설교시 발성과 몸짓에 관하여 지침을 주었는데, 그 첫부분은 어렵지 않고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에는 좋은 권고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언사의 첫번째 과제는 잘 들리게 말하고 쉽게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맑고 큰 성대는 큰 재산이지만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도 기본적인 발성법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웨슬레는 자기의 설교자들에게 고함치는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존 킹 (John King)에게 "당신의 영혼이 멸망하는 것에 대하여 더 이상 절규하지 마시오 .... 나는 가끔 크고 열렬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절규하지 않습니다".라고하였으며, 그리고 사라 말렛 (Sala Mallet)에게 "절규하지 마시오.   말할 때 당신의 자연적인 음량대로 하시오.   지나치면 듣는 사람에게 거슬립니다." 라고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웨슬레는 몸짓은 얼굴과 손의 조용한 언어라고 하였다.    그는 능력 부족을 몸짓으로 보상하려는 풍자식 설교가들 (Windmill Preachers)의 무용론에 대하여 자세히 밝혔다.  그는 설교자의 자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훈련시켰다.

그대들의 회중 앞에서의 처신은 진지하고 신중하고 엄숙한 것이 되게 하라 ....  그대의 제스처든지 말씨든지 혹은 발언이나 무엇이든지 모양없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조심하라 말에나 옷차림에 버릇없이 함을 주의하라.

웨슬레는 연회를 통하여 설교에 대하여 훈련을 시키고자 의도하였다.  제 1회 연회에서는 "허황되거나 또는 비방하는 류의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임할까 ?" 하는 질문에 대하여 "만일 그 설교가 사람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만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족하되,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사업과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퇴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기회를 보아 그런 설교자에게 직언을 하거나 서신으로 권고함이 좋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설교의 일반적인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에 "초청하고, 신복 (설득)시키고, 그리스도를 전달하고, 그리고 북돋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설교에나 있어야 한다"라고고하였다.
제 3회 연회에서 "경험상 어떤 설교가 가장 큰 은헤를 끼치는가 ?" 하는 물음에,
① 청중의 생활에 가장 관계가 깊고, 설득력이 있고, 실제적인 설교.
②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를 강조하는 설교.
  ③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알지 못하는 인간의 가증스러움을 나타내는 설교라고하였다.
제 4회 연회에서는 "전도인은 얼마나 자주 설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주일이나 그 밖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 두번 이상 설교하지 말 것이다.   특별한 경우에 관해서는 재량것 할 것이다"라고하므로 설교의 횟수에 대하여 지침을 주었다.   나아가 "설교에 관하여 이들에게 유익한 조언이 없겠는가 ?" 라는 물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① 일정한 시간에 설교를 시작하고 그치라.
② 자작 찬송을 부르지 말라.
  ③ 교중 앞에서 몸가짐을 근엄하고 무겁게 그리고 엄숙하게 하기를 힘쓰라.
④ 설교에 쓸 성구는 가장 평이한 것을 택하라.
  ⑤ 성경 본문에서 떠나 우왕좌왕 하지말고 본문에 집착하여 주목적을 향해 나가라.
⑥ 언제나 설교제목은 청중에게 맞게 하라.
⑦ 너무 지나치게 비유적이나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라.
⑧ 몸가짐이나 발음에 거북살스럽거나 부자연한 점이 없도록 주의하라.
⑨ 서로의 결점을 발견하는대로 충고하여 주라.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설교로 일생을 산 목회자였다.   올더스게이트가에서의 체험은 그로 하여금 둘도 없는 사도직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게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야외설교는 짐이었으나 많은 영혼을 구하는 방법이 되었다.   웨슬레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에서 설교시 행하는 자세 및 태도에 대하여 가르쳤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훈련시켰다.   연회는 그에게 있어 설교훈련을 시키는 정식 의결기관으로 활용 되어졌다.   설교훈련은 그의 목회자 훈련에 있어서 중심이 되었다.

   5. 지도자 훈련
      a. 평신도 보조자 (Lay - Assistant)
평신도 보조자는 1744년부터 분명하게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그 명칭도 다양하게 사용되어 처음에는 평신도 보조자로 불리웠다가, 협력자 (Helper)가 되고 또 평신도 설교자 (Lay - Preacher)로,  그리고 다시 이들 중 대부분은 지방설교자 (Local Preacher)로 남았고 소수는 순회 설교자 (Itinerant)가 되었다.   그리고 후에 이들은 감리교회의 순회구역 (Circuit)의 전도인이 되었다.
이들은 현재 전도사나 장로같은 직분으로 보인다.   이 평신도 보조자들은 웨슬레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다.   스티븐스 (Stevens)는 "순회 전도자들은 그 단체내의 어려움을 다루며 부랑자들을 대면하며 어떤 기후에도 용감하며 보수를 받지 않고도 살아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의 여정에서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은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설교하고 소책자를 전해 주러 다니며 규칙에 따라 살고 두려움이 없이 죽도록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함부로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고 신중을 기했다.   1746년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제 3회 연회에서 장정문제에 대하여 토의하면서 하나님께로 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선택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8.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나님께로 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 진가(眞假)를 시험할까 ?
     답.     아래와 같이 질문을 할 것이다.
          1.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분을 알고 있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지 않는지 그들의 담화에 있어서 모든 면으로 거룩한지 알아볼 것.
          2. 그들이 그 일을 위하여 재능과 은혜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명확하고 건전한 지성이 있는지,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지,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정당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언변을 주셨는지, 그들이 이론 정연하게, 유창하게 명백히 발표를 할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볼 것.
          3. 그들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일이 있는지,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설복시키도록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전도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인식하여 용서를 받은 사람이 있는지 등을 알아 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가지 조건이 긍정적이라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이 조건들은 그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를 받은 증거가 된다고 할 것이다.

웨슬레는 이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발하기 위하여 죄사함을 확실히 받은 신앙고백의 단체인 반회와 선발신도회에서 평신도 보조자들을 선발하였다.   나아가 웨슬레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도 철저한 검증을 하였다.

     문 9.   그러나 어떤 특정 인물에게 이런 증거가 있는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
     답   1.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우리의 보조자중 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설교도 들어보고 그로 더불어 위의 조건들에 대해 사실도 해볼 수 있다.
          2. 우리 자신들이 직접 그의 설교도 듣고 그와 더불어 이야기도 해볼 수 있다.
          3. 우리는 그의 설교로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람을 만나 철저히 알아볼 수도 있다.
          4. 우리는 구두로나 글로 자기가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이유를 진술하거나 쓰도록 해볼 수도 있다.
          5. 우리는 일반 회중들과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고 실행하도록 하여주기를 구할 것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평신도 보조자의 선정은 그의 목회사역에 핵심 요소였던고로 매우 심사숙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웨슬레가 평신도 보조자들을 전문적인 사역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시켰는데 그 지침들을 보고자 한다.
(1) 평신도 보조자의 직무
교역자가 없는 경우에 양떼를 먹이고 지도하고 다스리되,
        ㉮ 조석으로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해석해 준다.
        ㉯ 매주 연합신도회와 반회와 선발신도회 그리고 참회자반을 소집 한다.
        ㉰ 각 속회를 월 1회 방문한다.
        ㉱ 신도 사이의 이견을 듣고 조정해 준다.
        ㉲ 말썽을  일으키는 신도를 심사하여 시정해 주고 반회나 신도회에서의 제소를 받는다.
        ㉳ 집사나, 지도자들이나, 선생이나, 건물관리인들이 각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가를 살핀다.
        ㉴ 집사나  반회와 속회의 지도자들을 만나보고 또 그들의 회계장  부를 검사한다.
  (2) 평신도 보조자의 자격
        ㉮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언행이 거룩한 자라야 할 것이며 사업을 감당할 재능과 은혜를 입은 자라야 하고, 과거 이력중에 전도에 방해 요소가 없는 자라야 할 것이다.
        ㉯ 지식함양에 있어서 : 유익한 서적을 읽고, 아침 시간에 독서하고, 하루 5시간 정도 독서를 하라.   이같이 못하면 전도 사업을 그만두고 본연의 직장으로 돌아가라.
  (3) 평신도 보조자들을 위한 설교지침
  (4) 평신도 보조자의 수칙
         ㉮ 근면할 것.   잠시라도 일없이 지내지 말것.   그리고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것.   더구나 외지에 가 있을 때에는 각별히 시간 낭비를 말것.
         ㉯ 항상 근엄한 태도를 가질 것.   그대의 '모토'는  "주앞에서 거룩함을 지킬 것"을 삼으라.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고 경솔한 행동과 처사는 지옥불을 피하듯 하라.   파안대소하는 것은 저주와 맹세처럼 여겨 삼가라.
         ㉰ 여인을 가까이 말라.   그들을 사랑하되 그들과  접촉하지는 말라.   세속적 풍습은 우리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
         ㉱ 아무의 험담도 믿지 말라.   남의  잘못을  그저 볼  뿐이다.  그러나 동정적으로 이를 대하고 모든 일에 건설적 태도를 가지라.   판사는 언제나 피고 편에 서는 것이다.
         ㉲ 누구의 험담도 말라.   남의 험담을 하면 그것은 결국 암처럼 그대를 먹어 들어갈 것이다.   남의 험담을 들었을 때라도 같이 응수하지 말고 무슨 생각이나 그대로 발설말고 가지고 있다가 당사자를 만나서 확인하라.
         ㉳ 그대가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그리고 될수록 빨리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그대의 마음속에서 곪아 터질지도 모른다.  될수 있는대로 빨리 서둘러서 마음의 불을 끄도록 하라.
         ㉴ '신사인양' 무슨 일이나 하지 말라.   그대는 이런 신사투의 모습과 무관한 것이 마치 무도 교사의 모습과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모든 사람의 종임을 기억하라.
         ㉵ 그대는 죄 외에는 아무것도 부끄러워 말라.   시간이 있어서 남의 심부름으로 장작을 운반하는 것이나, 물을 길어 주는 것이나, 그대의 신을 닦는 것이나, 남의 신을 닦아 주는 것이라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 아무의 금품도 받지 말라.   만일 누가 그대가 주릴 때 음식을 제공하거나 필요할 때 옷을 준다면 그것은 받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은이나 금을 주는 것은 받지 말라.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 치부하였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 나의 동의없이 빚을 쓰지 말라.
         ㉸ 시간을  잘 지키라.   무슨 일이나 꼭 제시간에 하라.   그리고 우리의 규칙을 엄수하고 그것을 변경하지 말라.   지키되 책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양심을 따라서 하라.
         ㉹ 무슨 일이나 나 자신의 뜻대로 말고, 복음의 아들로서 하라.  그리하여 우리의 지시를 따라 그대의 시간을 선용하되 양무리의 집을 방문하며(특히 환자를 각근히 문병하며), 그리고 우리가 때때로 권고한대로 독서와 명상과 기도에 힘쓰라.   무엇보다 그대가 우리와 함께 주님의 포도원에서 일을 하는 이상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나 그의 영광에 합당하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대로 우리의 지시를 따를 각오를 가지라.

마틴 쉬미트 (Martin Schmidt)는 평신도 보조자의 규칙을 초기 기독교 뿐 아니라 수도승적 청교도주의 (Monastic Puritanism)적인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5) 평신도 보조자의 독서
웨슬레는 평신도 보조자들의 지식 함양에 있어서 자신이 읽은 책들 중에서 유익하고 건전한 책들을 선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읽게 하였다.

살루스트 (Sallust),  시이저 (Caesar), 씨세로 (Marcus Tullius Cicero), 에라스무스 (Erasmus), 캐스텔리오 (Cebastian Castelleo, 1515-1563), 테렌스 (Terence), 버어질 (Virgil), 호레이스 (Horace), 비다 (Marco Giralomo Vida, 1489-1566), 희랍어 성서 (Greek Testament), 에픽테터스 (Epictetus), 플라토 (Plato), 익나시우스 (Ignatius), 에푸라임 사이러스 (Ephraim Syrus), 호머 (Homer), 희랍 격언집 (Greek Epigrams), 뜌포트 (James Duport, 1606-1679), 어쉬감독 설교집 (Bishop Ussher's Sermons), 안트 (Johann Arndt, 1555-1621, 루터교 경건주의자), 뵘 (Anthony Willam Boehm, 1673-1722), 날슨 (Valentine Nalson, 1683-1723), 파스칼 (Pascal), 푸랑케 (August Hermann Franke, 1663-1727, 저명한 독일 경건주의자), 겔 (Robert Gell, 1595-1665, 켄터베리 대감독 보좌목사)등의 저서와 기타 우리가 준비한 소책자를 읽을 것이다.

또한 웨슬레는 평신도 보조자를 돕는 보좌인 들을 위해서도 생활일과표와 읽어야 할 서적을 제시해 줌으로 보죄인들도 철저하게 목회 훈련을 시켰다.
   1. 언제나 4시에 기상할 것
     2. 오전 4시부터와  5시까지와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일부는 명상과 기도에 쓰고 일부는 성경을 2,3절 혹 1,2장 정도 읽고, 일부는 실용적인 신학서류를 읽되, 특히 헨리 스쿠갈 (Henry Scougal, 1650-1678, 스코틀랜드인)의 "인간 영혼 속의 하나님의 생명", 이라는 책이라든가, 천로역정이라든가, 로씨의 저서든가, 비버리지 (Wm, Beveridge, 1637-1708)의 수상록이라든가, 헤이린 (John Heylyn, 1685-1759, 런던 St. Mary-le-Strund 목사)의 기도서, 할리버튼 (Mr. Halyburton, 1674-1712, 스코틀랜드 St. Andrew 신학교 교수)의 자서전과 드렌티 (Monsiewr De Renty 불란서 귀족)의 전기등을 읽을 것이다.
     3.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는 1시간을 조반에 쓰고, 그 나머지는 아래 열거한 책들을 기도와 함께 순서적으로 정독하라, 피어슨 감독 (Bishop John Pearson, 1613-1686, Chester 감독)의 '신조에 대하여'와 펠 감독 (John Fell 1625-1686, Oxford 감독)의 '바울서신주해'와, 뵘 (Anthony Wm Boehm 1673-1722, St James, 교회목사)과 날슨 (Valentine Nalson, 1683-1723, York주 St, Martin 교회 부목사)씨의 설교집과, 파스칼의 명상록과, 우리 회가 발간한 소책자들과 시가들과, 밀턴의 실락원과, 케이브목사 (Wm Cave 1637-1713 London, Allhallows 교회목사)와 풀류리 (Claude Fleury, 1640-1723, 불란서, 궁중목사, 교회 역사가)의 원시 기독교와  엑하드 (Mr. Laurence Echard, 1670-1730)의  교회사 (예수 탄생시부터 콘스탄틴 대제까지의)등을 읽을 것.

이상으로 웨슬레가 평신도 보조자를 어떻게 선발하였으며, 목회 훈련을 어떻게 시켰는가를 살펴 보았다.   이들은 수 많은 영혼을 구원시켰고, 훗날 온전히 헌신하여 목회자가 되기도 하였다.
      b. 속   장 (Class Leader)
웨슬레는 신도회 마다 그 안에 12명씩의 속회를 구성하고 그 중에서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을 속장으로 임명하여 속회를 돌보게 하였다.   이 속장의 임명 및 면직은 웨슬레 자신이나 담임 목사들이 하도록 하였다.   속장의 직분은 부목회자(Sub-Pastor), 위임받지 않은 교역자 (Non-Commissioned Officer), 그리고 영적 경찰관 (Spiritual Police)등으로 다양하게 서술되었으며, 이러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속장은 영적인 지도력과 목회적, 행정적 지도력이 요청되었는 고로 웨슬레는 철저한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다.
웨슬레는 연합신도회 총칙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제 3조에서 속장의 임무 두가지를 명시하였다.
     ① 자신의 속회의 회원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본다.   이는 그들이 가난한 자의 구제를 위하여 기꺼이 드리는 것을 받고,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번성하는가를 묻고, 또한 그럴만한 사태가 생길 때 조언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이다.
     ② 목사와 신도회의 집사를 일주일에 한번은 만난다.   이는 집사에게 지난 속회의 헌금을 전해주고, 각 회원의 헌금 대장을 보여주며, 또한 목사에게 병든 사람, 문란하게 생활하는 사람, 돌이키지 않는 사람등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이 두가지 임무를 중심으로 하여 속장의 임무를 좀 더 세밀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속장은 매주간에 속회원을 찾아보고 목요일에 모이는 속회에 참석 시킬 것
     ② 속장은 속회에 모일 때 마다 속회원이 헌금을 내도록  촉구할 것.
     ③ 속장은 매주간 유고 속회원을 찾아 심방할 것.
     ④ 속장은 매주 속회 일지를 기록하여 속회 인도자가 보도록 할 것.
     ⑤ 속장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모이는 속장들의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할 것.

그리고  속장들 가운데 유능한 속장은 속회 인도자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웨슬레는 속장을 철저하게 훈련시켰을 뿐 아니라 적절하게 목회 사역에 동참시킴으로 신도회의 영적성장을 이루고자 목회하였다.
      c. 집   사 (Stewards)
집사는 속회의 속장과 같이 감리교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이다.   이 명칭에 대하여 노종해 목사는 유 로 번역하였고, 김영운 목사는   사로 번역하였다.   여기서는 집사로 통일하고자 한다.
1744년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열렸던 제 1차 연회 마지막 날인 29일 (금) 집사의 직무와 수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답을 하였다.
   문 6. 집사의 직무는 무엇인가 ?
     답 1. 신도회의 일반 사무를 처리한다.
        2. 각 속장들에게 헌금을 수합한다.
        3. 때때로 필요한 지출을 한다.
        4. 빈자에게 구호금을 전달한다.
        5. 공유건물의 청소와 수리를 관리한다.
        6. 재정 수지 상황을 장부에 게재 보관한다.
        7. 보조자 (부목)에게 집과, 학교와, 반회와, 신도회의 규칙이 엄수되고 있는지를 보고하여야 한다.
        8. 필요한 경우에는 목사에게 보고하라.
        9. 보조자가  혹시 신앙도리나 생활에 오류가 있다면 사랑으로 이를 충고할 것이다.
       10. 만일 그 잘못을 시정하지 않을 때에는 이 사실을 목사에게 알릴 것이다.
       11. 매주 동료집사와 만나 위의 모든 조항에 대하여 상의를 하라.
     문 7. 집사의 수칙은 무엇인가 ?
        1. 검소할 것, 정직히 저축할 것은 무엇이나 저축해 두라.
        2. 수입 이상의 지출을 말고 빚을 지지 말라.
        3. 무슨 일이나 성급히 또 경솔히 하지 말라.   무슨 일이나 착수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서 하라.
        4. 외상을 오래 끌지 말고 그 주간에 갚으라.
        5. 남을 도와줄 때 찌푸린 안색이나 불평을 하지 말라.   도울 수가 없을지라도 남을 섭섭하게 말라.
        6. 사람에게서 사의를 기대말라.
        7. 그대는 부목사 (부목)의 하수인임을 기억하고 항상 겸비한 태도로 말하라.

이 집사들은 매주 목요일 아침 6시에 모여 밀린 사무를 처리하고 환자와 빈자에게 필요한 구제금을 전달 지급하였다.   집사들은 신도회에서 4-7명으로 조직되었고 이들의 주요 임무는 신도회를 유지 관리하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e. 병자심방인 (Visitor of the Sick)
웨슬레는 병자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속장과 집사들이 심방하고 구제 하였으나 이들이 환자들이 요구하는 만큼 심방할 수 없으므로 병자심방인을 따로 두었다.   웨슬레는 신도회 회원 중에서 자원자를  택하여 2명씩 짝지어 다니게 하고 한 주일에 적어도 3번은 심방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병자심방인을 위하여 수칙을 정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솔직하고 겸손할 것.
   ② 온유하고 오래 참고 진실할 것.
   ③ 청결할 것.
   ④ 환자를 너무 가까이 말것.
웨슬레는 말하기를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욱 놀라운 축복을 내리시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았고 많은 환자가 나음을 얻었으며 고통과 빈곤으로 시달리던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음이 무겁던 자들이 기쁨을 얻게 되었고 슬피 울던 자들이 위로 받게 되었으며 이 방문자들도 그들이 섬기는 주님으로부터 그들의 노력에 대한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목회현장의 필요에 따라 직분자를 선정 임명하였고, 철저한 확인 및 감독을 통하여 목회 훈련을 실시하였다.

  . 성결교회와 목회 훈련의 적용

   1.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
      a. 조   직
(1) 복음전도관
성결교회가 시작된 1907년에는 이미 한국에 다른 주요 교단 교회들이 선교활동을 시작한지 약 22년이 지난 후였다.  성결교회는 외국인 선교사가 오기전 1907년 5월 2일 정빈과 김상준의 양인이 일본에 동양 선교회가 설립한 '동경 성서 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함으로 시작된 '자생적 교단'인 것이다.   동년 5월 30일 서울 무교동 12번지 자리에서 기와집 한 채를 사서 복음 전도관 간판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으니 이것이 한국 성결교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성결교회가 교파나 교단 형성에 전혀 뜻이 없이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자 내걸었던 간판이 복음전도관이었다.
처음에는 "교파 형성의 의도 없이 출발하여 ... 성결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할" 목적으로 전도에만 열중하던 정빈, 김상준과 양인이 복음전도과 이라는 교단을 조직하게 된 것은 신도 수가 너무 많이 증가되어 불가피한 일이었다.  나아가 복음 전도관이 한국 선교에 착수한지 15년이 지났을때 설립된 전도관이 33개소에 이르렀고 수천명의 신자가 형성되므로 신자들을 돌아보기 위하여 목회치리 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신도회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고, 신도회가 훗날 감리교라는 교단으로 발전하였다.   성결교회의 기원이 되는 복음전도관 은성결의  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할 목적으로 어느 교파의 설립이나, 간접 전도가 아닌 '직접 복음 전도'를 전도방법으로 활동하였다.  이것이 신도수의 증가로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같은 점을 볼때 성결교회의 창립 경위는 웨슬레의 메소디스트가 조직될 때와 유사하며, 외국에 있는 기성교회 (장로교회나 감리교회, 침례교회) 들처럼 기성교회의 정책에 따라 교회를 시작하는 경위와는 달랐다.   교회의 조직과 제도는 선교를 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점차로 제정되어 마침내 하나의 교단이 된 것이다.
(2) 치리의회
김상준. 정빈 두 사람에 의하여 1907년 5월에 설립된 '복음전도관'은 14년 동안 아무 조직도 없이 전도에만 주력했다.   그러다가 1921년도에 길보른 총리가 한국에 주재하게 되면서부터 교회가 조직이 되고, 그 해에 '교역자 간담회'를 발족하여 1923년까지 지내왔다.   1924년부터 1928년까지는 '교역자회'라는 이름으로 내려왔으나, 정치적인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29년에 이르러서 '연회'를 창립하게 되면서 폭넓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1907년 5월 무교동에 '복음전도관'을 창설한 뒤, 만 22년 만에 '연회'가 창립되었고, 이 연회로써 성결교회의 교역자들이 비로소 참의(參議)의 특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창립연회에서 다음의 사항을 결의 하였다.
① 음력 정월과 7월에 사경회와 대전도회를 개최한다.
② 금년 1년 동안에 한 교회에서 한개의 지교회를 신설한다.
③ 재단법인 이사 가운데 한국사람 이사를 세운다.
④ 중앙 사무국을 설치한다.
⑤ 재판법을 제정 공포한다.
⑥ 진남포.웅기.청주.상주.이리에 교회를 새로 개척한다.
 1929년에 조직된 연회가 제 4회에 이르렀을 때, 연회 대의원 전체 의견에 따라서 '성결교회 총회'를 창립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로써 1933년 4월 11일 오후 7시에 '경성 성서학원' 대강당에서 이명직목사의 사회로 '한국 성결교회 창립 총회'가 개최되었다.  1940년 일제의 강요로 주한 선교사들이 자기나라로 들어감을 계기로 성결교회는 자립하는 교회가 되었다.  해방후  교회의 명칭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로 하였고, 교회의 정체(政體)는 신앙양심을 기초로 한 대의제도(代議制度)로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장로교회에서는 당회, 노회, 총회 3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를 치리하고, 감리교회에서는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등 5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를 치리하고 있다.    성결교회에서는 당회, 지방회, 총회등  3단계의 치리 기관을 두어 교회의 조직을  치리하고 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연회는 그의 목회 사역 전체를 움직이고 목회훈련을 시키는 최고의 의결기관이었다.   그의 목회훈련의 의도는 교회 및 교단형성이 아니고, 교회안의 작은 교회로서 그가 이끄는 메소디스트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오늘의 성결교회는 옛날의 복음전도관이 아니다.   한국의 장. 감. 성 3대 교단의 하나로 1989년 12월 31일 현재 1,623교회, 601,081명 신자를 소유한 대교단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신학은 웨슬레신학이면서 치리의회는 장로교와 흡사한 점이다.   대의제도에 입각한 직원의 선출이나 치리회의의 단계적 구성들이 매우 비슷하다.  이점은 성결교회가 장로회의 치리의회를 받아들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교회조직에 대한 웨슬레 입장에 대하여 재조명이 필요하고, 오늘의 성결교회에 그 실천이 혁신적으로 요망된다 하겠다.

      b. 내   용
(1) 하나님 말씀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성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경전은 성경전서, 곧 구약과 신약이니 이 경전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자들이 영감에 의하여 기록한 것인즉 이는 하나님의 말씀됨을 믿나니 성경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넉넉하므로 무릇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신학설(神學說)이나, 여하한 신비설이나, 체험담은 신빙할 수 없으며 이런것을 신앙의 조건으로 하거나 구원의 필요로함을 배격한다.

이와같이 성결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목회에 중요한 텍스트로 보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규범이 된다.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 하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실제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해석되어진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비판 연구는 기피되어 왔다.
성결교회 헌법에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성경전서는 우리 신앙의 표준이며 교회 정치제도와 신도생활의 규범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성경전체에 일관된 복음으로 할 것이요, 어느 일부분의 구절로 자기의 학설이나 체험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하며, 또는 성경의 묵시됨을 부인하거나 비평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는다.

이와같은 성경에 대한 입장은 성결교회 창설 당시부터 강조되었다.   이것은 성결교회의 산파 역할을 한 동양선교회의 신조이자강조점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초대 성결교회에서는 성결만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신학서적이나 세속의 글들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은 경향이 많았
다.   그리하여 당시의 교역자 양성기관이었던 경성 성서학원 에서의 교과 과정이 거의 성경 과목이요, 타학문 분야의 학과목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성경만을 읽고 공부하라고 권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웨슬레가 말한 '한책의 사람'을 잘못 이해한데서 기인하였다고 본다.
웨슬레가 성서를 사랑하기를 "오 주여 !  그 책을 나에게 주십시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책을 가져 가야겠습니다." 라고 하였듯이 성결교회는 그의 역사에서 "성경"을 간직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면 1940년대의 일제 말엽에 조선총독부가 당시의 한국 기독교회의 경전에서 구약을 폐기케 하려고 종용내지 강요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교단 존폐의 위험을 무릎쓰고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 바로 성결교회였다.
성경을 사랑하며, 성경의 순수성을 그대로 지켜보려고 한것이 성결교회 초창기 지도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이었다.   오늘날 성경 중심의 신학, 설교, 목회를 강조하는 그 전통은 귀하게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성서의 권위에 대하여 흔들릴 때에는 교회의 기반이 흔들리며 '복음의 능력'도 희미하게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유산을 꽃피우기 위하여 성서를 사랑하고 아끼는 열정과 함께 목회현장에서 충분한 규칙과 유일한 규칙으로 받아들여 목회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성 례 전
웨슬레는 예수께서 친히 실례로 보여주셨듯이, 세례란 모든 신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임하는 하나의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그는 성례전으로서의 세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교회 또는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수단" 이 고 믿었다.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세례에 대하여 정의하길 "세례는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로 믿음과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표가 되는 성례",라고하였을 뿐만아니라 "세례란 신자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아 중생하므로 교회에 속함을 받는 예식" 이라고 하였다.   즉 성결교회는 세례를 '교회의 속함을 받는 예식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표하는' 예식으로 보는 것이다.
웨슬레는 세례가 주는 혜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말씀하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안에 접붙임을 받는다.   곧 그리스도의 몸안에 받아 들여진다.

성결교회는 학습.세례 문답집에서 세례가 주는 혜택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① 세례를 받으면 교회의 정회원이 되며, 정회원은 교회 헌법에 따라 교인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② 신자는  세례를 받으므로써  구원의 확신과 거듭난 체험을 증거하게 된다.
  ③ 세례를 받음으로 가장 귀한 예식인 성찬예식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세례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하여 "이미 학습을 받은 후 세례문답에 합격한 자로 한다 (가급적 세례문답 준비반의 교육을 수료한 자로 한다)", "학습교인이 6개월 이상 교회의 지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계속한 분에게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신앙을 견고케하는 예전이며 회심을 재촉하는 예전으로 보고 그는 성만찬을 회심케 하는 의식 (Converting Ordinance)이라고 하였다.  그는 성만찬을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다.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성만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성찬은 우리의 속죄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기 위하여 떡과 포도즙을 받는 예식이다.
성찬은 주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예식이니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몸을 찢으시고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 예식이다.

성결교회는 성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 예식으로 보는 것이다.   나아가 웨슬레가 성만찬을 단순한 '기념'이라는 해설에 반대하였듯이, 성결교회도 성만찬을 단순한 기념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합당한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때 그는 자기의 필요한 은혜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수찬자의 자격이 문제가 된다.  성결교회는 수찬자의 자격에 대하여 "세례교인으로,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자" 라고 말하고 있다.   성만찬은 목회훈련의 내용으로 성도에게 가시적 설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가시적 설교는 믿음과 행동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올바로 집례되어야 할 과제를 갖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례는 교회가 어떤 사람을 구별하여 세례받도록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은혜의 왕국 안으로 편입시켜, 객관적으로 이미 주어진 바 구속의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증거하는 행동인 것이다.   성결교회는 세례를 교회에 속함을 표하는 예식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표하는 예식으로 보았고, 성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념하여 우리의 신앙을 깊게하는 예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성례전은 성결교회의 목회훈련의 중요한 장으로, 보여지는 말씀으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례, 성만찬에 대한 좀더 깊은 신학적 입장 표명과 합당한 집례를 위하여 '규칙'의 제정이 요구되어진다 하겠다.

   2. 목회훈련의 방법
      a. 지도원리
성결교회는 헌법에 아래의 일곱가지를 지도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① 우리는 신구약성경을 경전으로 하되 특히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성경해설의 요제로 한다.
  ②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설립한다.
  ③ 우리는 사도신경을 신앙의 근간으로 하고 성경을 진리의 대해로 하여 영적인 발전을 도모하기로 한다.
  ④ 우리교회의 정체는 신앙양심을 기초한 대의제도로 한다.
  ⑤ 우리는 예배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최고 행위로 알아 모일때마다 엄숙하고 경건되게 거행한다.
  ⑥ 우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의 교훈으로 지.정.의가 겸전한 인격으로 성장하게 하여 성결의 체험을 받도록 지도한다.
  ⑦ 우리는 설교와 문서로 복음선교에 주력하는 동시에 모든 실제 생활로써 시범하기를 힘쓴다.
이와같은 지도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목회훈련이 요망된다.  사실 성결교회는 감리교나 장로교에 비하여 순수한 복음적 사명 그것도 간접 전도가 아닌 직접 전도의 사명이 주어져 있다고 믿어 오는 좋은 전통이 있다.
      b. 지도자 훈련
(1) 목   사
      ⒜ 목사의 정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위주로 하는데 이에 대한 주무를 관장한 자는 사도였다.   그들은 주님 당시에 있었던 임시적이고 특수한 임무의 직분이었다.   사도직은 끝났으나 주님의 교회는 영원토록 지속된다.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백성을 다스려야 할 직책이 요청되었다.  그 직분이 목사이다.   그러므로 목사직의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목사의 어원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 서다.   사도들의 하는 일의 계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나 사도가 될 수 없는 처지라서 또 다른 이름이 필요하였다.   가장 적절한 이름이 '목자'인데 이는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양무리의 지도자이다.
목사직의 명칭은 다양하다.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살피는 자이므로 감독(딤전 3:1) 이라는 명칭을 비롯하여,  장로(딤전 5:7), 교사(엡 4:11)등 다양하다.   이 명칭들은 사역의 성격에 따라 목사에게 주어진 것이다.
성결교회 헌법에 목사를 정의하길 "목사는 안수례를 베풀어 세운 성직이니 그 지위를 말하면 사도시대의 교회의 감독이요, 목사요, 장로 (행 20:17-28)라 함과 동일하니 금일 교회 내에서 가장 신성하고 존귀한 직분으로서 광의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신이요, 복음의 사신이며 (고후 5:20, 엡 6:20), 교회의 사자이며 (계 2:1), 신앙과 진리의 교사이며 (딤전 2:7, 딤후 1:11), 신약의 집사요 (고후 3:6), 복음의 제사장이다 (롬 15:16).  이같은 여러 명칭으로 부르는 것은 무슨 계급을 가리킴이 아니요, 그 책임을 다방면으로 설명함이다.   그런 명칭을 가진자인 고로 사회는 저를 선생이라 부르나니 그 직분의 존귀함을 생각하여 안수를 신중히 하여야 한다 (딤전 5:22)."고 하였다.
      ⒝ 목사의 자격
성경에서는 목사의 자격에 대하여 디모데전서 3:1-7과, 디도서 1:5-9과 베드로전서 5: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 디모데전서 3 : 1 - 7
      1) 책망할 것이 없고 (3:2)
      2) 한 아내의 남편 (3:2)
      3) 절제하며 (3:2)
      4) 근신하며 (3:2)
      5) 아담하며 (3:2)
      6) 나그네를 대접하며 (3:2)
      7) 가르치기를 잘하며 (3:2)
      8) 술을 금하며 (3;3)
      9) 구타하지 아니하며 (3:3)
     10) 관용하며 (3:3)
     11) 다투지 아니하며 (3:3)
     12)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3:3)
       13)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순종케 하는 자 (3:4)
       14)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3:16)
       15)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자라야 할지니 (3:7)
        * 디도서 1 : 5 - 9
       16)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1:7)
       17)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1:7)
       18)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1:7)
       19) 선을 좋아하며 (1:8)
       20) 의로우며 (1:8)
       21) 거룩하며 (1:8)
       22)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고 (1:9)
       23)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1:9)
       24)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고 (1:9)
        * 베드로전서 5 : 1 - 3
       25)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5:2)
       26) 즐거운 뜻으로 하며
       27)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5:3)
       28) 양무리의 본이 되라 (5:3)
상기한 목사의 자격은 바울과 베드로가 가르쳐 준 것으로 28가지의 자격을 말하고 있다.   성결교회 헌법에 목사의 자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서울 신학대학원 (신학전공) 혹은 목회 대학원을 졸업한 남자와 총회가 직영하는 교역자 양성기관을 졸업하고 위탁교육 과정을 이수한 후 서울 신학대학 목회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남자로 본 교회에서 3년간 목회의 경험이 있으며 연령이 28세 이상이 된자
           단, 가) 목회경력 3년중 단독목회 경력 2년이상 된 자
               나) 본 교회에서 장로직으로 5년 이상 시무하고 서울 신학대학 졸업 후 단독목회 경력 1년 이상된 자
               다) 특수전도 기관에서 목회하는 자는 단독목회로 간주하되, 기관과 연한은 시행세칙으로 정한다.
        2) 부지런하여 구령의 열이 있는 자
        3) 교회를 영적으로 인도하고 치리할만한 재능이 있는자
        4) 신앙이 순수하여 이단을 용납하지 않을  식견과 과감성이 있는 자
        5)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깨끗함으로써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자 (딤전 4:12)
        6) 재물에 대하여 청렴하고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않는 자
        7) 교회나 사회에서 비판을 받는 일이 없는 자
        8) 가정이 화합하며 자녀를 성경적으로 지도하는 자
        9) 타직업을 겸하지 않고 전적으로 헌신하는 자ㅜ
성결교회의 목사 안수 자격중에 단독목회는 서울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려면 전도사로서 누구나 신개척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선교적 정신에서 나온 법조문이다.   그러나 이런 조문은 신학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온 전도사들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이행조건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도 이 법조문은 성결교회를 성장하게 하는 좋은 조문이라고 생각된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려고 하는 전도사들에게는 쉽거나 어렵거나 교회를 개척하고, 단독목회 2년의 경험을 해야한다.   만일, 제힘으로 개척이 어려운 경우에는 어느 교회가 신개척 교회를 설립해서 전도사로 청빙을 해 주든지, 아니면 이미 세워진 교회의 단독 목회자로 청빙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신학대학에서 목회를 목적으로 하는 신학도들에게 학교측에서 미리 교회설립에 대한 목회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졸업한 뒤에 자신을 갖고 신개척에 임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목회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단독목회자로 사역을 하게 된다면, 목회는 주먹구구식이 될 수 밖에 없고, 본인이나 교회를 위해서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총회는 단독목회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여 교단발전을 꾀하는 한편 철저한 목회훈련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총회적 차원의 단독목회자를 위한 목회훈련 프로그램 제시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목사의 임무와 권한
목사는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예배를 주장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며, 장로와 협동하여 교회를 치리하고 신자를 심방하며, 불신자에게 전도하고 과부, 고아, 고독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돌보아야 한다.  더나아가 권한으로는 지교회의 당회, 직원회, 사무 총회의 의장이 되며, 본교회의 감찰회, 지방회, 총회의 의장이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를 위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목사의 정의, 자격, 그리고 임무와 권한을 살펴보았다.

웨슬레의 목회 훈련에 비추어 볼 때 목사의 훈련이 절실히 요청된다.  목사라고 훈련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막중한 임무와 권한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훈련되지 못한다면 본인과 교회를 위하여 아무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목사의 계속교육 (연장교육)이 요청 되어진다.
 (2) 장   로
      ⒜ 장로직의 기원
장로의  기원을 살펴보면 그리스도 교회의 장로직은 유대인 회당에서 쓰여진  호칭으로  유대교회 장로직에서 도입된 것이다.  성경에 장로라는 칭호가 최초로 창세기 50장 7절에서 소개되었다.  그리스도교 교회의 장로는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때 흉년을 만나 고생하는 유대지방의 형제들을 돕기 위해서 구호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낸 일이 있는데 그때 구호금을 인수한 사람들이 바로 장로였다.
      ⒝ 장로의 자격
성결교회 헌법에 장로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① 연령이 30세 이상되는 자로, 신자의 의무를 다하고 그 생업이 정당하며, 처자가 순복하고 그 가정이 교회생활에 성실하며 덕망이 있는 자
  ② 본 교회의 집사 근속시무 7년 이상된 자로 십일조 헌금을 이행하는 자, 단, 본 지교회나 복음주의 타교파에서 동등 경력으로 전입한 자는 본 지교회 집사 근속시무 2년을 경과하여야 한다.
  ③ 그 성품이 원만한 인격을 가진 자
  ④ 은혜의 경험이 명확하고 성결의 생활을 하는 자
  ⑤ 성경지식과 임직에 상당한 사명이 있으며 대중을 통솔할 만한 능력과 학식이 있는 자
  ⑥ 파산받을 만한  부채가 없는 자
      ⒞ 장로의 권한
  i) 목사와 장로의 차이 : 목사와 장로의 차이는 지위가 아니고, 목사가 장로와 달리 더 받은 부가적인 은사 (예배인도와 설교) 때문이다.
 ii) 목사와 장로의 동일 : 장로는 "교인의 택함을 받은 대표로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을 관리하며 권징을 치리하고, 각급 치리회에서 목사와 같은 권한으로 회무를 처리한다."라고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 사역상 동등 교리는 중세 때 교회의 계급적 사제주의로 말미암은 교권 횡포를 개혁하기 위한 개혁자들의 성경적 교리이다.
        ⒟ 장로의 직무
  i) 권징의 치리 : 장로는 교인의 택함받은 대표로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을 관리하며 권징(勸懲)을 치리하는 직무가 있다.
 ii) 회무처리 : 장로는 각급 치리회에서 목사와 같은 권한으로 회무를 처리한다.
iii) 위로하고 권면 : 영적 상태를 돌보아 심방하며, 도리상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당회로나 개인으로 위로 권면한다.
장로는 웨슬레에게 평신도 보조자와 유사하다.   웨슬레는 평신도 보조자를 대단히 중히 여겨 철저한 확인과 감독 그리고 규칙 제정과 엄수를 실시하였다.   이를 비추어 보건대 오늘날 성결교회가 장로직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목회적 훈련이 필요하다 하겠다.
(3) 권   사
      ⒜  권사직의 기원
성결교회가 직원으로 여기는 권사직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찾아내기 어렵다.   권사직은 성경적인 근거에서 제정된 직제이기 보다는 역사적인 필요에서 제정된 교회직제이다.   웨슬레가 가변적 은혜의 수단으로 여러 평신도 지도자를 두었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 권사의 자격
성결교회 헌법에 의하면 권사의 임무는 "당회의 지도하에 교역자를 도와 신자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며, 우환질고와 낙심 중에 있는 자를 권위하며 불신자에게 전도한다"라고하였다.   이와같은 임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권사의 자격은 매우 중요하며 그 자격은 다음과 같다.
  ① 권사는 본 교회 집사로서 7년이상 근속한 연령 45세 이상된 자로 하며, 타 지교회에서 전입한 권사는 해 지교회에서 1년 이상 경과한 후 당회 결의로 봉직하게 된다.
  ② 권사는 본 교회의 교리와 정치에 순종하며, 십일조 헌금을 바치는 자로 한다.
(4) 집   사
      ⒜ 집사직의 기원
집사라는 말의 희랍어는 디아코노스 (        )이다.   이단어는 세단어가 합해서 된 명사이다.   디아 (   )는 전치사로 '통하여'의 뜻이고, 콘 (   )은 '먼지' 또는 '진흙탕'이고 오스 (  )는 '대역자'(代役者), '사역자(使役者)' 라는 듯으로 디아코노스는 세단어가 합해서 된 명사이다.  그러므로 집사의 어원적 의미는 "먼지 속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일하는 일꾼"을 뜻한다.
신약의 초대교회가 오순절 이후 크게 부흥케 되어 기독교 신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 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게 될때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물질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여겨 믿음과 성령의 충만한 사람 일곱을 선택하니 이것이 집사의 기원이다.
      ⒝ 집사의 자격
성결교회 헌법에 정한 바에 의하면 집사의 자격은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① 정회원 중에 신앙이 독실하며 덕망이 있으며, 상식이 충분하고 은혜의 경험이 명확한 자
  ② 본 교회의 교리와 정치를 알아 순종하고 그 직업이 정당하며, 십일조를 바치며, 연령은 22세 이상된자
      ⒞ 집사의 직무
집사는 "초대교회가 집사를 세워 공급하는 일을 하게 함과 같이" 하  세운직제로 그 직무는 "당회의 지도하에 교회 제반 사무를 분장하며 예배석을 정리하며 교역자를 도와 신자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환란 중에 있는 자를 돌보는 것"이   기본 임무이다.   그 직무들을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사는 성도들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집사는 교회에서 헌금위원과 안내위원으로 봉사해야 하며, 어렵고 불쌍한 자를 돌아보는 것과, 신.불신자를 막론하고 구제하는 일을 힘써야 한다.
둘째, 직원회 회원으로 봉사해야 한다.   직원회는 교회의 재정을 주관하며, 교회의 사무, 유지, 관리 운영면에서 교회에 봉사한다.
세째, 목회자의 좋은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c. 목회 훈련 프로그램
(1) 목회 훈련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지침들
신자들이 더욱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목회 훈련 프로그램 개발이 요청된다.   이런 모든 것들은 단지 학술적인 연구로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 생활에 반영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앨빈 린그린(Alvin J. Lindgren)은 '선교를 위한 일반 신도 훈련의 방법'에서 다음의 세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로,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개인적인 성장의 경험을 갖게하라.   둘째로, 가장 유능한 평신도 지도자를 발굴하고 이용하라.   세째로, 과제 성취를 위하여 평신도를 훈련시켜라.
목회 훈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권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는 어렵다.   제이 E. 아담스(Jay E. Adams)는 성경적인 권위 확립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① 그리스도께서 그의 목자들에게 부여해주신 교회 구성원들이 존중해 주기를 기대한다면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 만연된 권위에 대한 존중심의 결핍은 이면에 있어서 교역자가 감당해야 할 교육적인 사명이 크다는 사실을 밝히 증거해 준다.   그리스도로부터 권위를 받았다는 것은 권위에 대한 가르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딛 2:15).
②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원들이 자기 목자들에게 순종하기를 기대하신다면 목자들은 그 권한을 활용해야 한다.   설교만 하고 '바리새인들처럼'행동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권위있게'해야 한다.   즉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조심히 그러나 과감하게 충분히 그리고 확실하게 사용해야 한다.
③ 그리스도께서는 목자에게 그의 양들을 인도하도록 위임하셨으며 그 지도를 양들이 따라주기를 기대하고 계신다면 복음의 사역자는 진정한 목회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 리더쉽은 인격적이면서 참여적(involved)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리더쉽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속에서 거룩하게 생활하며 본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권위는 그 권위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채워져야 한다.
④ 지도자가 성경적인 지도력을 권위있게 발휘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알아야 하고 깊이있게, 충실하게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지도력과 권위는 성경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한 목자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⑤ 만일 강력(强力)하게 지도력을 발휘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의 원리를 따라 모든 계획과 프로그램과 행정적인 활동을 후원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관습(慣習)과 전통(傳統)만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으므로 지도자로서,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서 연구하고 물어보고 검토하며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⑥ 지도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성경적인 뒷받침을 확신할 수 없다거나 신앙이나 생활문제에 관해 성경의 가르침을 확실히 알 수 없는 가설적인(그릇될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맹종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권위를 사용할 경우 잘 분별해야 하며 사려깊은 판단을 해야 한다.   목회 활동에 필요한 권위와 지도력이 양떼를 섬기기 위해 있을 뿐만아니라 전적으로 양떼를 위해 존재하므로 양떼의 유익과 복지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양무리로 하여금 은혜 가운데서 자라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방편이 되어야 한다.   권위와 리더쉽은 양떼와 그 안에 속해있는 각 양들의 번영을 위해 사랑 가운데서, 조심스럽게 염려하는 가운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⑦ 모든 권위는 그리스도의 권위이므로 그의 이름으로 그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즉 권위가 사용될 때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목회 훈련은 웨슬레가 교회 지도자로 평신도를 대거 훈련시켜 파송함으로 자신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목회자가 혼자서 전교인이 해야 할 일을 다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실패를 야기시킬 것이라고 제이 E. 아담스는 주장하였다.
① 전 교인이 사역에 참여하므로 받게 될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지 못하므로 실패한다.   즉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의 계획으로 대치시켜 버린 것이다.
② 교인들만이 확보(確保)할 수 있는 많은 기회와 접촉을 가지지 못하므로 실패한다.
③ 혼자서 너무도 많은 일을 도맡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분산되어 실패한다.   한 개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한 생각이다.
④ 목사 - 교사로서도 실패한다.   목양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 그리고 전도의 일에까지 너무도 광범위하게 힘을써야 하므로 어느것 한 가지도 잘 할 수 없을 것은 뻔한 사실이다.   설교도 망치고 교인들도 돌보지 못할 것이며 전도의 열매도 극소화(極小化)될 것이다.
⑤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며 발휘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목양하게 하기 위해 교회에 그를 세웠는데 고의든 아니든 간에 그 뜻을 어기고 그리스도께 욕(辱)을 돌려드렸으므로 실패함 - 이것은 모든 실패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실패다.   이와같이 목회자는 자신의 사역(전도의 일을 포함하여 어느 정도는 모든 신자에게 속한)을 위해 각 개인들을 준비시키지 못했다.
현대 교회중에 그릇된 목회자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적인 목회자는 목회 훈련을 통하여 모든 신자들을 혼련시켜서 자신의 임무를 감당하도록 하며, 이로인하여 구원받는 영혼의 수를 나날이 증가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 훈련을 시키는 교역자가 된다는 것은 기술, 지식 및 아주 예민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역자는 전문적이어야 하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그들의 교역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교역을 완수하는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2) 목회 훈련 프로그램 제안
지금까지 살펴본 목회 훈련의 지침들을 바탕으로 하여 보다 더 의미있고 현실적으로 실제성이 있는 목회 훈련 프로그램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 청지기 교육 프로그램 (87년 동명 성결교회)
         ㉮ 개회예배
         ㉯ 청지기와 사명 (임직자의 자세)
         ㉰ 청지기와 헌금 (십일조, 감사, 특별헌금을 중심으로)
         ㉱ 청지기와 모임 (정기예배와 회의를 중심으로)
         ㉲ 청지기와 사명 (임직자의 모범)
         ㉳ 청지기와 예배 (시간, 위원, 찬양대 중심으로)
         ㉴ 청지기와 기독교 신학 (평신도 운동을 중심으로)
      ⒝ 89년 성결교회 교역자 수련회
      ˚일시 : 90.  3. 12 - 14.
      ˚주제 : 목회갱신과 교회성장
         ㉮ 개회예배
         ㉯ 목회갱신과 예배 예전
         ㉰ 목회상담과 교회성장
         ㉱ 목회자의 건강관리
         ㉲ 목회자의 자기갱신과 교회성장
         ㉳ 목회 진단 방법론
         ㉴ 예배의식과 예배음악
         ㉵ 모범예배
         ㉶ 영성개발과 목회갱신
         ㉷ 교회교육과 교회성장
         ㉸ 제자양육과 교회성장
         ㉹ 선교지향적 목회와 교회성장
         ㉺ 교회성장을 위한 설교갱신
         ㉻ 폐회예배
      ⒞ 필자의 제안
i) 커리률럼
      제 1 단계   구원의 확신
         1 과   새생명의 의미
         2 과   새생명의 필요성
         3 과   새생명과 하나님의 성품
         4 과   새생명과 그리스도
         5 과   새생명과 회심
      제 2 단계   그리스도인과 성경
         1 과   책중의 책
         2 과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인물
         3 과   구약편
         4 과   신약편
         5 과   성경의 능력
         6 과   개인적인 성경 연구 방법
         7 과   올바른 성경 애독 생활
      제 3 단계   그리스도인의 설교 훈련
         1 과   설교란 무엇인가 ?
         2 과   설교의 필요와 목적
         3 과   설교의 권위
         4 과   복음으로써의 설교
         5 과   설교와 성서해석
         6 과   설교와 성령
         7 과   말씀의 종
         8 과   설교의 방법과 평가
      제 4 단계   그리스도인의 성례전
         1 과   성례전이란 무엇인가 ?
         2 과   개신교와 천주교의 차이
         3 과   성례의 필요성과 유익
         4 과   성례전을 거룩하게 유지하기위한 실제적인 방법
      제  5 단계   그리스도인의 지도자 훈련
         1 과   교회의 정의
         2 과   목  사
         3 과   장  로
         4 과   권  사
         5 과   집  사
      제 6 단계   그리스도인과 소집단
         1 과   교회조직
         2 과   교회에서 소집단의 중요성
         3 과   집단 역학의 정의
         4 과   집단 역학의 제원리
         5 과   소집단을 통한 목회 훈련
         6 과   소집단에서 활동을 통한 신앙생활 변화
      제 7 단계   그리스도인과 영성 훈련
         1 과   영성의 정의
         2 과   인간의 영성과 성령의 관계성
         3 과   현대인의 영성개발 방법
         4 과   개인 훈련 - 묵상, 기도, 금식, 성경공부
         5 과   관계 훈련 - 청빈, 침묵, 순종, 섬김
         6 과   공동체 훈련 - 고백, 예배, 인도, 경축
ii) 목회 훈련 일정표
+----+--------+----+---------+-----------+------------------------+
|기간|단   계 |읽기|개인 공부| 암송 구절 |     실        습 |
+----+--------+----+---------+-----------+-----------+------------+
|8주 |1 단계 | | 요한복음| |  (초보자) | (성숙한 자)|
| |구원의 | 신 | | 매주 2구 |  우정맺음 | 제 1단계를 |
| |확신 | | | 절씩 암송 |    2 사람 | 1-2명에게 |
+----+--------+ +---------+ +-----------+ 가르침 |
|9주 |2 단계 | 약 | 요한 1,2| |  경건노트 | 경건노트 |
| | 성 경 | | 3서/마가| |  간증 2회 | 전  도 |
| | | | 복음 | |  성경노트 | 봉  사 |
+----+--------+ 통 +---------+ +-----------+------------+
|8주 |3 단계 | | 에베소서| |  설교실습 | |
| | 설 교 | | 빌립보서| |  반응체크 | |
| | | 독 | 로 마 서| |  설교평가 | |
+----+--------+----+---------+ +-----------+------------+
|5주 |4 단계 | | 고린도전| |  세    례 |  집례실습 |
| |성례전 | 구 | 서 | |  성 만 찬 | |
| | | | 모세오경| | | |
+----+--------+ +---------+ +-----------+------------+
|10주|5 단계 | 약 | 구약공부| |  리 더 쉽 |  리 더 쉽 |
| |지도자 | | | |  훈    련 |  개    발 |
| |훈  련 | | | | | |
+----+--------+ +---------+ +-----------+------------+
|6주 |6 단계 | 통 | 역 사 서| |  공 동 체 |  신앙생활 |
| |소집단 | | 시 가 서| |  훈    련 |  변    화 |
+----+--------+ +---------+ +-----------+------------+
|6주 |7 단계 | 독 | 예 언 서| |  영 성 과 |  영성개발 |
| |영  성 | | | |  성    령 |  훈    련 |
+----+--------+----+---------+-----------+-----------+------------+

iii) 목회 훈련 과정과 교회와의 관계
+------------+ +------------+ +-------------+
|   구   역 | |교 회 학 교 | | 기 타 기 관 |
+------------+ +------------+ +-------------+
 구역장 추천              교회 학교 추천            기타 교회기관장
                          지도자 추천               추천

       ↘                        ↓                  ↙
 +--------------------+
  훈련 중 사역      ← |      1    년 | →     훈련 중 사역
 +--------------------+
                         ↓   ↓   ↓    ↓
 +---------------------+
 |  사 역 자 로  위 임 |
 +---------------------+
           ↙             ↓          ↓           ↘
+-------------+ +------------+ +--------------+ +--------------+
| 전 도 학 교 | |구      역 | |교 회 학 교 | | 기 타 기 관 |
+-------------+ +------------+ +--------------+ +--------------+
   전도 학교         계속적          계속적             계속적
    (사역)        연구그룹소속   연구그룹소속        연구그룹소속
                     (사역)         (사역)               (사역)

       ↓              ↓                  ↓              ↓
+-------------+ +------------+ +--------------+ +-------------+
| 각 개인이 | | | | | | |
|  소속된 | | 재 생 산 | |    재 생 산 | |  재 생 산 |
| 곳에서 재 | | | | | | |
|   생산 | | | | | | |
+-------------+ +------------+ +--------------+ +-------------+
       ↓              ↓                  ↓               ↓
 전도 한 사람      3단계부터         보조 교사 훈련    기타 기관
    대상           새로운 그룹        및 주일 학생     소속원 대상
                   인도케 함             대상
                       ↓
                   끝나면 정규 구역에 배치됨
                   혹은 은사별로 사역하게 됨

 

이상으로 필자는 목회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해 보았다.   커리쿨럼은 목회 훈련의 내용이며, 목회 훈련은 1년을 주기로 하여 실시되는 코스를 갖는다.   그리고 목회 훈련 과정과 교회와의 관계는 유기적인 관계로 형성되어야 하는 것으로 제시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은 먼저 개인이 모범을 보이는 방법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헌신의 사람이며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자신이 이와 같이 살았듯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이 그와같이 되도록 훈련시켰다.   그는 이것을 신도회 가입조건으로 규칙을 정했고 만약 여기에 불응하면 그 모임에서 추방시켰다.   한책의 사람인 그는 성경의 신적 영감을 주장하며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탐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성경탐구 훈련을 시켰으며 일생을 설교로 살았다.   그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에서 설교훈련을 구체적으로 실현시켰다.   연회는 설교훈련을 시키는 공식기관이 되었고, 설교에 대한 지침을 주었다.   웨슬레는 치밀하고도 조직적인 편성으로 평신도 지도자들인 평신도 보조자, 속장, 집사, 그리고  병자 심방인을 세워서 목회훈련을 수행하였다.   평신도 보조자는 현재의 전도사나 장로와 같은 직분으로 보인다.   웨슬레는 함부로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고 시험을 해보고 신중을 기하여 선택하였고 전문적인 사역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지침, 규칙등을 제시해 주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직접  철저한 확인과 감독을 통하여 목회훈련을 시켰다.   웨슬레는 3개월에 한번씩 평신도 지도자들을 면담하여 도덕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랐는지, 오해와 갈등이 있는지도 알아보아 평화와 형제애를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기도와 권고를 하고 특이한 것은 표 (Ticket)를 준비해 두었다가 그들의 이름을 적어 '이 표를 갖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란 증명표'로 삼게 하여 이 표가 있어야만 신도회 회원으로 인정하였고, 속회와 반회에도 참여케 하였으며, 성찬식에 참여시켰다.   이 표는 3개월에 한번씩 바꾸어 주었고 불품행자에게는 주지 않아 회원에서 제거하였다.  웨슬레는 신도회마다 속회를 구성하여 그중에서 속장을 선발했고, 속장에게 임무를 부여하여 적절하게 목회사역에 동참하도록 훈련시켰으며, 집사와 병자를 위하여 병자 심방인을 두어 병자를 돌아보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목회현장의 필요에 따라 지도자를 선발하고, 훈련시켰으며, 철저한 확인과 감독을 통하여 목회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실천적 적용을 위하여 성결교회를 살펴보았다.
성결교회는 역사적 기원이 웨슬레의 신도회가 훗날 교단이 된 것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즉 성결교회도 웨슬레의 메소디스트와 같이 교파 형성의 의도가 없이 복음 전도관으로 출발하였으나 신도수가 증가됨으로 불가피하게 교단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성결교회의 교회조직은 다분히 장로교의 조직과 매우 유사함을 볼 수 있었으니, 대의제도에 입각한 직원의 선출, 치리의회인 당회, 지방회, 총회의 단계적 구성들이 매우 비슷하다.   이 치리의회는 목회훈련에 있어서 막중한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목회훈련을 위한 방법으로 성결교회의 지도원리, 지도자 훈련, 그리고 목회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해 보았다.   목회 훈련 프로그램은 교회와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목회 훈련의 내용을 커리쿨럼으로 하여, 1년 주기로 하여 지속적으로 되어져야 하는 과정으로 제시했다.

           . 결   론


A. 요  약

지금까지 "웨슬레의 목회 훈련 개발에 관하여" 살펴 보았다.   웨슬레는 피력하기를 "만일 사람이 천사처럼 설교한다고 할지라도, 적절한 훈련이 없이는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라고하였다.   스케빙톤우드도 감리교를 "정밀한 훈련의 종교 (A Religion of exact discipline)" 라고평하였다.
제 I 장은 서론으로 본논문의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목적, 연구의 방법과 범위를 살펴보았다.
제 II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다.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웨슬레의 생애, 목회 훈련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 목회의 현장인 교회에 대한 웨슬레의 이해, 그리고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웨슬레는 3대에 걸친 선교적인 가문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신앙 훈련을 받았다.   어머지 수산나 웨슬레는 어린 자녀들이 말을 하게 되면 일어날 때와 잠을 잘 때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였고 가정 예배 시에는 항상 정숙하게 하였으며, 식사시간에는 기도를 하도록 훈련을 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영적인 문제에 대한 추구는 1725년에 진지하게 시작 되었으며, 그것은 웨슬레가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한 방향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즉, 그는 내적인 성결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그것을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결을 추구하며 매주일 성만찬을 갖기 시작했고 이것은 평생동안 계속되었다.   웨슬레는 1725년 9월 영국교회에서 신부(deacon)서열로, 1728년 7월에는 사제서열로 안수를 받아 영국교회의 성직자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곧 1726년 옥스포드에 있는 링컨대학에 강사 (fellow)가 되었고 1727년에는 문학석사 (M.A.) 학위를 받았다.   웨슬레는 옥스포드에서 거의 1729년부터 1735년까지 계속 가르치고 연구하였다.   그는 신성클럽 (The Holy Club)을 조직하여 지도자가 되었다.
웨슬레가 속해있던 18세기는 인류 전체가 해방과 광명을 절실히 요구하는 시대로 현저한 과학의 발전 시대였고, 파국적인 정치적 변화의 시대였으며, 문학과 철학의 성취적 시대였고, 그리고 정신의 힘이 가장 심각하게 종교에 적용된 시기이다.   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은 의회정치와 왕정복고의 변혁기를 맞이하여 혼돈, 무질서, 소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사회 도덕적으로는 부패와 도박이 뿌리 깊이 퍼져있었고,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기존의 종교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영국 국민사의 저자 '요한 리차드그린' (1837-1883)은 웨슬레의 운동이 영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메소디스트 교회 (감리교회) 자체는 메소디스트 신앙 부흥 운동이 산출한 지극히 작은 결과이다.   이 운동은 영국 교계 일반 교직자들을 혼수상태에서 깨우쳤다.   그러나 이보다도 훨씬 큰 공적은 이 운동에는 무지와 죄악과 육체적 고통과 방탕과 빈곤 등이 모든 사회악과 싸우는 열정과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 점이다."  그당시 영국의 사회는 목회 훈련이 절실히 요청되는 사회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사도행전 5장 11절을 주해하길 '신약성서에서 교회라는 용어가 이곳에서 처음 나온다 ....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으로 엄격한 신도 신앙 생활의 지침을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교회를 지침을 받는 공동체로 보았으며, 그 본질에 있어서는 거듭난 성도의 모임 (Communion of Saints)으로 교회는 진리를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증거하여 그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예배와 봉사를 목적으로 모이는 유일한 곳으로 그리스도 몸의 현현 (Body of Christ)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교회의 표적을 산 신앙, 순수한 말씀 선포, 그리고 올바른 성례의 집행으로 보았으며, 이중에서 무엇보다 가시적 교회의 본질적 요소는 산 신앙이며, 순수한 하나님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올바른 집행이 신자들 속에 산 응답의 객관적 신성성을 초래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리스도교 목회는 그리스도 자신이 교회를 설립하고 인도하기 위하여 목회의 직무를 제정하고 확립하셨다는 근본적인 확신에 의하여 지탱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목회란 하나님의 위탁하신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구원받도록 그리스도 안에 간직하신 은혜를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얻도록 뭇 영혼을 위탁해 주신 일을 수행하는 사명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개개인의 영혼을 돌보는 단순한 개인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한 목회 즉 목회 훈련을 주도하는 입장에서 교회를 이끌어 나아갔다.   그는 교회가 철저하게 교인들의 신앙을 훈련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목회의 계승을 정의함에 있어서 개혁교회에 분명한 연속적 계승이 있음을 주장했고 그로 인하여 목회의 당위성이 엄연히 존재함을 주장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교직제도 (Ministry)는 상대적이며 실용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조직이나 제도가 모두 복음을 가장 능률적으로 넓게 전파하는데 활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역자의 서열을 셋으로 구분하였지만 본질적으로는 두 서열로 이해하였다.   즉, 성례전과 안수례를 집행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 (감독과 장로)와 그 아래 서열의 교역자 (집사) 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시듯이 교회의 직분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그는 성서에는 어떤 결정적인 교회 정치제도를 주신 적이 없으며 따라서 일정한 형태를 주신것도 없다고 하였다.
제 III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의 조직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목회훈련의 조직으로 연합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신도회, 그리고 참회자반을 살펴보았다.   웨슬레가 연합신도회를 조직함은 어떤 교단이나 교회를 만들 의도가 아니었고, 단순히 영혼을 돌보며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신도회 안에 속회와 반회, 그리고 특별히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선발신도회, 믿다가 낙심했던 사람들로 참회자반을 조직하였다.   그는 참으로 조직의 명수였다.   이같은 조직은 가변적인 은혜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졌다.   아쉬운 것은 오늘날까지 조직이 그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일부는 상실한 점이다.   또한 오늘날 교회의 조직이 다분히 외적인 면에 기준을 두고 있는데 반하여 웨슬레의 조직은 외적, 내적인 면에 조화가 있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목회 훈련의 내용에 있어서는 성경을 신앙과 실천생활의 유일한 규칙 (The Only Rule)과 충분한 규칙 (The Sufficient Rule)으로 삼고 신도회의 총칙을 제정하여 회원들이 규칙을 실행하도록 훈련시켰다.   그는 일생동안 한 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이 되길 소원하며 살았으며 성경을 목회 훈련의 기본 텍스트 (Text)로 받아들였다.   나아가 웨슬레는 설교로 일생을 살았고, 설교를 통하여 목회를 하였다.   그의 목회중에서 설교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는 교구를 갖지 못했으나, 야외설교를 통하여 많은 영혼을 건졌으며, 전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웨슬레는 당시 모라비안 교도들의 정숙주의 (Quietism)를 경계하면서 은혜의 수단인 세례, 성만찬을 목회 훈련의 내용 중에서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세례는 하나님의 계약속에 들어가게 하는 입회 성례전으로 이해되었다.   그는 세례에 분명한 유익이 있음을 강조하고, 이것이 영구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세례의 방법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었다.
웨슬레는 성만찬을 특별한 (In Particullar)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 교리는 실질존중설 (Vitualism)이었다.   나아가 그는 성도는 계속해서 성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의무라 여겼으며, 참여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종류 또는 한 등급 (a kind or drgree of Faith)을 가진 자도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므로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성만찬의 신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질서 유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을 살펴보았다.
목회 훈련의 방법으로는 헌신훈련, 경건훈련, 성경탐구 훈련, 설교훈련, 그리고 지도자 훈련을  살펴보았다.   웨슬레는 철저하게 헌신의 사람이었으며, 자신을 따르는 평신도 사역자들도 철저하게 헌신적이길 원했다.  그는 헌신을 신도회 가입 조건으로 제시하였고 여기에 불응하는 사람은 그회에서 추방시켰다.
웨슬레의 경건훈련은 가정생활에서 부터 시작되었으며, 이것은 그의목회 훈련의 방법이 되었다.   그는 평신도 보조자들에게 "아침 5시 전에 일어나서 6시부터 12시까지는 기도와 독서를 하고 정오부터 하오 5시까지는 심방을 하고 5시부터 6시까지는 하나님께 은밀 기도를 하고, 하루에 적어도 두번이상 전도하고, 하루 24시간 중 5시간은 반드시 독서와 성경공부"를  하도록 경건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한책의 사람인 웨슬레는 철저하게 성경을 탐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경건하게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는 것을 통하여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였다.   특히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탐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묵상을 제시하였고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며 성경탐구 훈련을 시켰다.
웨슬레는 진정 일생을 설교로 산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2,3회씩 설교하였으며, 주당 15회씩 평균해서 42,400회의 설교를 하였다.   그는 {발성과 몸짓에 관한 지침}(1749년, Directions Concerning Pronunciation and Gesture)에서 설교시 발성과 몸짓에 대하여 지침을 주었고, 연회를 통하여 설교훈련을 시켰다.   제 1회 연회에서는 '허황되거나 또는 비방하는 류의 설교를 듣는 태도 문제'와 '설교의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에 대하여 문답이 있었고, 제 3회 연회에서는 '가장 큰 은혜를 끼치는 설교는 어떤 것인가 ?' 와 제 4회 연회에서는 '설교의 횟수, 설교에 유익한 조언'에 대하여 문답을 하며 연회를 통하여 설교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나아가 웨슬레는 목회 훈련을 실천함에 있어서 지도자의 훈련을 매우 중요하게 보아 평신도 보조자, 속장, 집사, 그리고 병자 심방인을 선정, 임명하였고 이들에게 구체적인 규칙과 임무를 부여하여 훈련을 시켰다.  1747년 제 4회 연회에서 목회 훈련에 관한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었다.

     문 10. 우리회의 전도인들이 그들의 직무 수행과 생활에 있어서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
     답     그렇다 할 수 없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그들을 우리는 대학생처럼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생활과 연구생활에 대하여 매일 시문(試問)해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물어볼 것은,
            ˚매일 4시에 기상하는가 ?
            ˚지난 연회에 설정한 방법에 의하여 공부를 하는가 ?
            ˚우리가 제안한 대로 독서를 하는가 ?
            ˚매일 규칙적으로 공부할 필요를 느끼는가 ?
            ˚불규칙한 생활에 대한 유혹은 무엇인가 ?
            ˚그대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취침하는가 ?
            ˚매일 일지는 꼭 쓰는가 ?
            ˚매 금요일에 금식을 하는가 ?
            ˚그대는 근엄하게, 유익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대화를 하는가 ?
            ˚누구와 담화하기 전에 먼저 기도를 하며, 그 담화에 어떤 뚜렷한 결말을 짓는가 ?

이처럼 웨슬레는 일단 결실된 신자들을 철저한 목회 훈련을 통하여 교회의 지도자로 성장시켜 나아갔다.

웨슬레가 18세기 영국에서 행한 목회 훈련을 오늘날 20세기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실천적 적용으로는 성결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성결교회가 창립 되는 경위도 웨슬레의 메소디스트가 조직될 때와 유사하다.   웨슬레가 '신도회 단체'로 출발하였듯이 성결교회도 애당초 교회 설립을 의도하지 않고 순수 전도 단체인 '복음전도관'으로 시작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성결교회는 복음주의이며, 신학과 성서해석에서는 웨슬레 정신을 견지 하면서도 교회조직으로는 장로교의 교회조직을 받아들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회훈련을 위한 조직중 치리의회인 당회, 지방회, 그리고 총회의 조직과 회무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성결교회에서 총회는 웨슬레의 연회와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목회훈련의 방법을 위하여 성결교회의 지도원리는 대단히 바람직하다 보여진다.   이에 대한 구체적 적용을 위한 세부 시행규칙이 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지도자는 목사, 장로, 권사, 그리고 집사를 살펴보았다.   목사는 그 자격에 있어서 대학원 수준을 요구함을 보았고, 장로는 웨슬레의 평신도 보조자와 유사하나 직무에 있어서 상이점이 발견되었고, 권사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보기 어려운 직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집사는 웨슬레의 집사와 유사함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목회 훈련 방법을 근거로하여 필자 나름대로 목회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해 보았다.
웨슬레가 18세기에 행한 사역을 오늘날 20세기에 성결교회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뒤따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빛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B 제   언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미 선교 100주년을 넘어 기독교 2세기를 향하여 줄달음질 하고 있다.   한국교회 속의 성결교회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3대 교파의 하나로 1989년 12월 31일 현재 1,623교회, 601,081명 신자, 1,369명의 목사와 1,569명의 전도사, 그리고 경상비 40,972,740,917원의 대교단으로 급성장하였다.
오늘날 같이 "물량주의, 불건전한 신비주의, 교회분열" 이런극심한 시대에는 목회에 대한 사명이 더욱 강조 되어진다.   이런 가운데 성결교회의 역할은 한국교계에 크게 기대되어 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인은 본 논문을 준비하였다.   논문을 마치면서 본 교단의 목회훈련의 발전을 위하여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목회 훈련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이 필요하다.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목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목회의 구현은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철저하게 목회 훈련을 통하여 되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목회 훈련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2. 목회 훈련은 기독교 공동체에 대하여 헌신하기로 서약한 데 근거하여 훈련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에게 헌신한다는 것이 기독교 공동체의 공동 체험을 위해 특별한 헌신이나 훈련에 결부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진실하다 하여도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헌신하겠다는 서약에 매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목회 훈련은 기독교 공동체에 대하여 헌신하기로 성약한 데 근거하여 훈련되어져야 한다.
  3. 목회 훈련의 목적이 단순히 기술개발에 관한 제고가 되어서는 안된다.
목회 훈련의 목적은 철저하게 하나님 영광 (Soli Deo Gloria)이 드러나도록 되어져야 할 것이니, 그 내용과 방법 그리고 실천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 목회 훈련을 위한 교회 구조 형성이 새로와져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속회 (Class), 반회 (Bands)등 특별한 형태를 취하지는 않으나, 어떻게 구조화 되든지 간에 목회 훈련이라는 기본 목표가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5. 목회 훈련을 위하여 교회 지도자의 사명이 재인식 되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 지도자의 갱신이 없이는 진정 목회 훈련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목회자 혼자서 전교인을 다 훈련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모른채 방치할 수는 더욱 없다.   목회 훈련 과정에서 목회자를 대신하여 목회 훈련을 이끌고 나갈 사람이 필요한데 그가 바로 교회의 지도자이다.   웨슬레는 교회의 지도자로 평신도들을 대거 활용하였으니, 평신도 보조자. 속장. 집사. 그리고 병자심방인이다.   그는 반회와 선발신도회 회원 가운데 권면과 설교의 은사가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면 남.여를 구별치 않고 지도자로 임명하여 그들을 훈련하고 파송함으로써 자신의 목회 훈련 공백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6. 목회 훈련을 위하여 새로운 형태의 교역과 지도자를 일으키고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목회 훈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통상적 통로 (전형적 교육, 안수 등) 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과 그룹에서 서로 나눈 삶을 통하여 일어나는 새로운 형태의 교역과 새 지도자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웨슬레의 메소디스트에서 발견되어졌다.
  7. 목회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한국은 목회학 석.박사 과정이 있으나 실제적으로 훈련이 되어지는 프로그램 개발이 빈약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의 대부분이 목회의 미경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분히 이론 위주 교육에 치우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본교단 제 45회 총회에서는 선교 교육원 설치를 결의하였으니, 선교 교육원은 교역자 재교육과 평신도 지도자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도록 되어있다.   시작의 단계이므로 실제적인 프로그램개발이 절실히 요청되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8. 목회 훈련을 이끄는 중심이 한 개인이나 단체가 되기보다는 공인되어 있는 교단 총회본부가 되어져야 할 것이다.
목회 훈련은 책임있고, 공인된 기관에서 일관성있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개인 또는 마음이 맞는 동호인 중심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9. 오늘날 개신교의 예배는 성례전의 빈약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겠으나, 올바른 목회 훈련을 통하여 시정되어질 수 있겠다.
많은 개혁신앙의 신조에는 언제나 말씀의 선포 다음에는 성례전의 올바른 집례가 행하여지는 곳이 교회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루터(M. Luther)나 칼빈(J. Calvin)등의 개혁자들이 매주 말씀의 예배와 성례전이 병존할 것을 가르친 바 있고, 웨슬레도 성례전을 중요하게 강조하였다.  그러나 쯔빙글리(Zwingli)는 말씀 중심의 예배와 성례전 중심의 예배를 분리시키고 성례전 예배는 연중 4회로, 그리고 성만찬의 의미는 단순한 기념설로만 확정하였다.  성결교회는 성만찬을 헌법에서 "매년 2회 이상" 밖에 시행하지 않도록 하여 쯔빙글리가 주장한 단순한 기념행위에 불과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말씀과 '나' 자신만을 연결시켜 나가는 개인주의적 신앙을 초래하였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생동적 신앙의 결여를 가져왔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성결교회는 예식서에서 "성찬예식은 가능한 매달, 또는 분기별로 진행함이 좋다"고 하였으니, 올바른 목회훈련을 통하여 보는 말씀이 듣는 말씀과 균형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10. 목회 훈련적 측면에서 목회자 연장 교육의 정착화가 교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서울 신학대학에는 이에 부응하는 '평생 목회 훈련 프로그램'이 상존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목회자들은 일단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목회에 전념하다 보면 교육은 신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것으로 알고 실제 목회사역에서 얻어지는 귀중한 경험과 그들이 지닌 기본적 학문의 바탕과 지식마저도 사장시켜 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본다.   목회자 연장교육을 통하여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 관심사에 대하여 연구하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교환한다면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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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  어  표

 

 Letters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A. M. Edited by John Telford, 8 Vols. London : Epworth Press, 1931.

 Sermons       Wesley's Standard Sermons,  Edited by Edward H. Sugden, 2 Vols.  London : Epworth Press, 1951.

 Works         The Works of John Wesley, An edition of the Complete and unabridged Works by the Photo offset Process from the authorized edition published by the Wesleyan Conference Office in London, 1872, 14 Vols, Ohio : Schmul Pub, 1977 - 1979.

 [총서]        웨슬레사업회(편).  [존 웨슬레 총서] 제 1권 - 10권, 서울 : 유니온 출판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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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의 성결사상


                 차        례


 Ⅰ.서론 -------------------------------------------------------  1
     A.연구의 의의와 목적 --------------------------------------  1
     B.연구방법과 범위 ----------------------------------------  2

 Ⅱ.요한 웨슬레의 성결사상 ------------------------------------  4
     A. 웨슬레의 성결이해 -------------------------------------  5
      1.웨슬레의 성결의 근거 ----------------------------------- 5
      2.성결의 성서적 의미 ------------------------------------- 6
      3.성결과 삼위일체의 관계 -------------------------------- 11
      4.성결의 필요성:죄의 이중성 ------------------------------ 17
     B.성결의 증거 --------------------------------------------- 25
      1.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다 --------------------------- 25
      2.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25
      3. 온전한 헌신을 하게 된다 ---------------------------------26
      4.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26
     C.성결에 대한 설명 ---------------------------------- 27
      1.이 명직의 설명 ---------------------------------- 27
      2.조 종남의 설명 ---------------------------------- 31
      3.웨슬레의 설명 ---------------------------------- 33

 Ⅲ.성령과 성결 ------------------------------------------------ 38
     A.성령의 역사 -------------------------------------------- 39
      1.성령의 즉각적 역사 ------------------------------------- 39
      2.성령의 지속적 역사 ------------------------------------- 41
     B.성결을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 ----------------------------- 43
     C.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사역 -------------------------------- 45
      1.관계적 성화 -------------------------------------------- 46
      2.초기의 성화 -------------------------------------------- 47
      3.점진적 성화 -------------------------------------------- 49
      4.온전한 성화 ------------------------------------------- 50
      5.그리스도인의 완전 -------------------------------------- 51
     D.성결의 확신:성령의 증거 --------------------------------- 53
      1.성서적 근거 -------------------------------------------- 54
      2.증거의 내용 -------------------------------------------- 55

 Ⅳ.성결된 삶의 표적 ------------------------------------------  58
     A.기독교적인 사랑 ----------------------------------------- 58
     B.웨슬레의 사랑 관념 -------------------------------------- 59
      1.사랑과 믿음 -------------------------------------------- 59
      2.성결의 표적인 사랑 ------------------------------------- 61
     C.사랑과 그 대상 ----------------------------------------- 61

 Ⅴ.결   론 ---------------------------------------------------- 64
     A.요약 ---------------------------------------------------- 64
     B.비평과 제언 --------------------------------------------- 65

  참고도서 ---------------------------------------------------- 67


            I.   서  론

 


A.  연구의 의의와 목적

 

    요한 웨슬레(John Wesley)는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났던 어느 누구보다도 실제적인 종교면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다.  웨슬레의 신학을 취급함에 있어서 여러가지 문제나 연구할 점이 있으나 그 중에도 특히 웨슬레 신학을 지배하는 것은 성결의 신학이다.  그렇기에 그의 신학의 중심은 구원론 이는, 그 핵심이 성결과 관련을 갖게 된다.  또한 이 성결의 본질은 성령의 역사를 통한 완전이 성결사상의 촛점이 된다.


    성결이란 용어가 죄로부터의 온전한 구원, 또는 신자의 생활의 완전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왔다.  그러기에 성결은 도덕적, 영적으로 순결한 상태, 모든 죄가 씻음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고 성령으로 충만한 온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루돌프 오토(Rudolph Otto)는 그의 책 "The Idea of the Holy"에서거룩에 대한 경험이야 말로 바로 종교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성결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해석되어지고 평가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성결은 하나님께 기원을 갖으며 신성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어 진다.


    웨슬레는 그의 완전론에 관하여 '죄인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변화되고, 그 변화의 성장 과정 중에서 보다 높은 혹은 깊은 또 한번의 은총의 경험을 통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단계,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 이른다' 라고 하였다.  웨슬레의 이와같은 심오한 완전론은 1739년 1월 1일의 성령 세례의 체험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웨슬레 신학을 연구하는 많은 신학자들과 전도자들은 웨슬레 신학의 진수를 잃어버리고 피상적인 완전에만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웨슬레 신학의 중심인 성결사상을 연구한 후 성결과정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을 더 깊이 연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B.  연구 방법과 범위

 

    성결은 웨슬레 신학의 중심일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처럼 귀중한 웨슬레 신학이 오늘날 변질되고 망각되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다시한번 웨슬레의 성결사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성결과정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의 중요성을 고찰하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문헌 연구 방법으로 연구될 것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웨슬레 자신의 자료를 참고하려 한다.   이차적으로 웨슬레의 번역된 서적을 통하여 연구할 것이며 국내서적과 출판된 간행물을 통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본장은 전부 5장으로 구성된다.  제I장에서는 연구의 의의와 목적을 다루려 한다.  그리고 연구의 방법과 범위에서는 연구 자료의 선택을 밝히고자 한다.


    제II장에서는 웨슬레의 성결사상에 대해서 연구할 것이다.  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웨슬레의 성결의 근거를 살펴본 후, 신 구약에 나타난성결의 성서적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뿐만 아니라 웨슬레가 이해한 성결과 삼위일체와의 관계를 연구하며, 성결의 필요성을 연구하고 그리고 성결에 대하여 설명 하고자 한다.


    제 III장에서는 성결과 성령과의 관계를 연구하고자 한다.  먼저 웨슬레가 바라보는 성령의 이해를 살핀 후 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역할을 연구하고자 한다.


    제IV장에서는 성결된 삶의 표적인 사랑에 대해서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웨슬레의 성결의 표적인 기독교적인 사랑의 개념을 살펴 볼 것이다.


    제 V장에서는 본 논문의 결론으로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얻어진 중요점을 요약 정리한 후에 비평과 함께 웨슬레 신학에 기초를 둔 기독교대한 성결교회의 방향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성결인의  자세를 제언하려 한다.

 

 

 

          II. 요한웨슬레의 성결사상

 


    '성결'이란 단어는 종교적인 용어이다.  이 용어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사용되고 또 종교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리고 성결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The Moral Attribute)중의 하나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성결은 하나님을 가장 하나님되게 하며 신성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어 진다.  또한 성결은 영원자이신 하나님께 그 기원을 가진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심으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사5:16)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은 그의 의로우신 행동을 통하여 표현됨을 뜻한다.  성결은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하심의 충만이요, 표현이며 하나님의 행동의 표준이다.


    웨슬레는 성결에 대하여 죄인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변화되고, 그 변화의 과정 중에서 보다 높은, 보다 깊은 또 한번의 은총의 경험을 통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단계,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이른다고 하였다.


    한편 웨슬레는 성화의 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은 순간부터 거기에는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점진적인 성화(Gradual Sanctification)가 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거기에는 또한 순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무엇이 있는 마지막 순간과 무엇이 없는 처음 순간이 있어야만 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결은 중생으로 시작한 구원 역사의 완성이요, 그 정점(Climax)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성서에서는 '온전한 구원' 이라고 한다.

 


    따라서 필자는 본장에서 웨슬레의 성결론을 언급하고자 한다.

 

 

 

A.요한 웨슬레의 성결이해

 

1.요한 웨슬레의 성결의 근거


    기독교 진리는 모두 성서의 교훈에 근거해야 하며 성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되어져야 할 것이다.


    요한 웨슬레는 자신의 기독자 완전의 교리 즉 성결교리를 어디에서 발견하였나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1729년 나는 성경을 진리의 유일무이한 표준으로, 순수한 경건의 유일한 궤범(軌範)으로 읽고 또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과 그가 행하신 대로 행하는 것, 그것도 그의 마음의 어느 부분만 아니라 그 전부를 품으며, 여러 점에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점에 있어서 그의 행하신 대로 행하는 것이 필요불가결함을 더욱 더 선명한 빛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시기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경건을 그리스도에게 대한 한결같은 추종이요, 주님께 대한 내적(內的) 외적(外的) 동화(同化)라고 생각하게 된 관점(觀點)이었다'.


    따라서 성결이란 성경에 거룩함이라고 한 바 영혼의 그 상습적 경향이다.  그것이 바로 죄 씻음 받는 것, 즉 '육체와 영혼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해 지는 것을 의미한다.


    웨슬레가 주장하고 가르치던 성결은 바로 '성서적 성결'(Scriptual
Holiness)이었다.  그의 성결의 교리는 단순히 인간 이성이 만들어 낸 이상론이거나 관념론이 아니다.  그것은 성서적 성결이며 실제적 성결이다.

 

 

 


2.성결의 성서적 의미


    a.구약에서 성결의 의미


   성결에 대한 구약원어는 코데쉬(     )이며, 이것은 명사이고 형용사는 카도쉬(    )이다.   코데쉬(     )는 '거룩한 장소'나 '물건'을 뜻하며, 추상적으로는 '신성함','거룩함'으로 번역되고, 카도쉬(     )는 '거룩한'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성결이나 성화는 원래 같은 어원 즉 Qadosh에서 나온 말이므로 같은 사건의 여러가지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즉 카도쉬(Qadosh)는 세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광휘(光輝), 둘째 성별(聖別), 세째 정결(淨潔)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광휘는 영광과 관련된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 빛은 거룩의 빛이요, 영광의 빛이므로 속된 것들은 감히 그 앞에 나설 수 없는 두려운 빛이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나타나실 때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19:16)할 때의 그 빛이다.  

 

이스라엘이 성막을 완성하였을 때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였은 때 충만하였던 바로 그 영광이다.(출40:34-38, 대하7:1이하).   죄인들이 이 영광의 빛 앞에 설 수도 없고, 단지 성결한 자만이 가까이 할 수 있다(출20:20-25,3:5).   이 빛은 신성의 핵심의 표현이다.   창조하고 파괴도 하며 벌하기도 하며(민14:10) 자비로도 나타난다(출33:18).


    둘째 성별은 광휘와 관련된 말이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환상을 봤을때 영광 가운데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과는 구별되는 높은 보좌에 계신 분이었다(사6:1이하).  

 

성별은 적극적 의미로는 하나님을 위한 구분 또는 헌신이며, 소극적 의미로는 모든 부정하고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됨이다.  크리스챤은 죄로부터 떠나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을 위한 구별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분된 것이므로 맏아들이 거룩하고 (출13:3이하), 이스라엘이 거룩한 민족이다(레19:2,신7:6).   심지어는 제사장의 옷도(출28:2) 하나님을 위하여 구분되었기에 거룩하다.  

 

그러나 성별된 것이 모두 내적으로,실제적으로 거룩해지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많았으며, 제사장이 거룩하지만 내적 정결 없는 이들도 있었던 것과 같다.   성별은 구약에서는 의식적 의미가 강하나 신약에 와서는 실제적 성결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우리로(하여금)그의 거룩함에 참여케"(히12:10)하여 "그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벧후1:4).


    세째 정결은 의식적인 면과 도덕적 실제적인 면이 있다.   구약에서는 대부분이 의식적 정결의 의미와 관련되며 특히 제사의식과 관계가 깊다.  그러나 신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은 그 자녀들의 정결을 요구하신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한 자로다"(시24:3,4).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4:8).  

 

레위기에 많이 나타나는 희생 제물이 형식적, 의식적, 외적인 속죄였다면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내적, 실제적, 도덕적인 정결이 가능케 되었다(히9:13,14).   성결과 관련하여 완전(Perfection)이란 말은 구약에서 주로 두가지 말이 사용된다.   하나는 '완전한' '충만한' '건강한' 등의 뜻을 지닌 샬렘(Shalem)이요, 다른 하나는 '완전한' '전체의' '건전한' '흠이없는' '진실한' 등의 뜻으로 쓰이는 탐(Tam)과 탐밈(Tamim)이다.   완전은 온전함, 완전한 평화, 의로움, 마음이 바름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b.신약에서 성결의 의미


   구약에서 성결이 여호와와 그의 백성에 대해 사용된 것처럼, 신약에서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신약에서 성결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은 다음과 같다.


     (1)하기오스(Hagios):거룩한(Holy)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구약적 의미의 성별의 개념을 1차적으로 가지면서 실제적인 변화와 정결을 표현한다.   바울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모든 성도를 일컫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롬1:7,고전1:2).  

 

말썽 많았던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자들"(고전1:2)이었으며, 베드로는 "너희도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벧전2:5)고 권면하면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벧전2:9)라고 구별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기오스는 자주 성도나 신실한 자들로서 사용되기도 한다(엡1:1, 골1:2, 계13:10).


    신약의 성결 사상을 잘 나타낸 곳은 벧전1:15-16이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결의 근거는 하나님의 성결이다.   성부가 성결하시므로 자녀들도 거룩해야 한다.  

 

또한 "모든 행실에서" 거룩할 것을 명령함으로 실제적이며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다.   바울은 엡1:4에서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함으로, 하기오스의 윤리적 성결을 말하고 있다.  "흠이 없게" 라는 말은 구약에서 제사드릴 소나 양은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찌니"(레22:21)라는 말과 같으며,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으며"(히9:14),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9)라고 함으로 거룩하신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다.

 


     (2)하기아스모스(Hagiasmos):가지지 못했던 것이 은총으로 주어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벧전1:2에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에서 처럼 외부의 행동이나 역사로 말미암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거룩이 인간 자신의 공로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임을 알 수 있다(고전1:30, 히12:14, 살전4:3,7).

 

 


     (3)하기아수네(Hagiasune):하나님을 닮은 도덕적 정결을 의미한다.


    이 도덕적 정결은 성서가 요구하며 또 나누어 주기로 약속된 것이다.  고후7:1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하여 도덕적 정결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 것임을 보여준다.
     (4)하기아죠(Hagiadzo):거룩케 하는 행동을 표현하는 동사이다.   즉 인간의 거룩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은총이요 선물인 것이다.


    요17:17,19에 이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케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엡5:26에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으며, 살전5:23에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여 거룩케 하신 행동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서에는 성결의 사상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구약에서는 의식적 성결의 의미가 강하지만 그러나 내적이며 실제적인 개념도 나타나 있다.   신약에서는 이것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서 실제적 성결의 개념이 강하다.   구약이 성별의 의미가 강하다면 신약은 정결의 의미가 강하다.  성별된 자가 온전히 정결하기 까지의 과정이 성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3.성결과 삼위일체의 관계

 

    a.요한웨슬레의 삼위일체 이해


    성결이란 신성에 관계되는 특수한 것이다.  여러 속성 중의 하나이면서 또한 그 이상이다.   성결이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의 총체와도 같으며, 하나님의 여러가지 속성을 모두 합한 것이다.


    1775년에 요한1서 5:7절을 가지고 "삼위일체에 관하여"라는 설교를 하였는데 거기서 웨슬레는 자신의 삼위일체관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삼위이시며 한 분이시다.   그러나 어떻게 그러하시냐  하는 방법(manner)에 대하여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 신비성이 있다....... 나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게 계시하신 만큼만 믿고 그 이상을 믿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삼위가 일체되는냐 라는 방법은 계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 대하여 믿는 바가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라는 그 방법을 모른다고 하여 그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웨슬레는 올바른 교리 형성에 있어서 그것이 한갖 사변적 관심으로 탈락하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을 그의 신학적 작업에서 언제나 기울여 왔다.  웨슬레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하였다.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나는 의식적으로 모든 철학적 사변(Philosophical Speculation)을 피하기로 하였다."


    웨슬레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삼위일체의 사실(fact)은 믿지만 삼위일체의 양식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다.   하나님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 만으로써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교리의 '본질'과 그것의 '철학적 해석'의 어려운 구분을 지으면서 교리의 '사실'(fact)과 '해석'(Manner how)을 구분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이고, '해석'은 그가 계시하지 않은 것이다.  철학적 해석은 계시의 사실들을 그 시대의 언어로 밝히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본질적인 교리의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 그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삼위일체 신에 관한 지식은 참된 기독교 신앙 즉 생명적 종교
 의 필수 조건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 요한이 말한대로, 그의
 속에 성령의 증거, 즉 성령이 그 자신의 영으로 더불어 그가 하나
 님의 자녀임을  증거함이 없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부이신 하나님이 성자이신 하나님의 공
 로에 의하여 자신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성령이신 하나님의 증거하
 심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참된 종교를 가진 자라 볼
         수 없다.

 


    그에게는 삼위일체에 관한 철학적 해석을 믿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그 사실을 믿고 그것을 신앙에 적용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삼위일체'또는 '인격'(Person)이란 말의 사용을 거절하면 마치 그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화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것 처럼 생각하고, 그 말을 꼭 써야 한다는 요구를 자기 개인적으로는 할 수가 없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왜냐하면 이런 말들은 성서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시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요, 아버지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에 대한 설명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아들과 성령과 아버지를 한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웨슬레 신학의 실용적인 면을 볼 수 있다.


    한영태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웨슬레의 신학이 실용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순한 기독교 신학의 사변적인 면을 회피하거나, 신앙의 윤리적인 면을 강조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신학과 사역은 죄인의 구원, 실제적 변화를 강조하였기에 실용적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신학은 구원을 위한 실용주의(redemptive pragmatism)라 할 수 있다.  더우기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성결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웨슬레 신학의 중심은 성결론이다.  웨슬레는 구원이 칭의와 중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결을 목표로 한 부단한 과정이라 보았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죄인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그 구원은 겨우 초기의 단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성화(성결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를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론은 성화의 교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성화를 단지 성령의 사역에만 귀속시키는 오류를 방지하고 바로 잡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필자는 이제  웨슬레의 성결론을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살펴봄으로 웨슬레의 성결론이 보다 성서적이고 엄연히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완전한 진리인 것을 설명하기로 하겠다.

 

 

 

 


    b.성결과 삼위일체

 

     (1)성부 하나님의 성결


    그리스도인의 성결은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다.  이는 그분의 전능한 사랑에서 기인한다.  하나님의 성결은 절대적이요, 완전한 성결이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나 신성의 본질이다.  

 

아모스 4:2에서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르켜 맹세하시되"(God has sworn by his Holiness)라고 할 때 성결은 단순히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거룩하지 못하며, 그의 본성에는 거룩성이란 전혀 없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그가 가졌던 원초적 의로움(original righteousness)을 상실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있어서 성결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져야만 한다.   이는 자녀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요, 또한 선물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죄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을 향해 구별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성품에까지 참여하기를 원하신다(벧후1:4).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성결)함이라"(살전4:3)고 하였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살전4:7)라고 분명히 나타내었다.  

 

성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부르셨으므로, 이제 우리에게 성결을 명령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4-45, 19:1,2, 20:26, 사57:15, 벧전1:15, 마5:48, 살전5:24).   이것이 죄인을 향한 거룩한 사랑이다.

 

 

 

     (2)성자 하나님의 성결


    그리스도인의 성결은 십자가 위에서 흘린 보혈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이셨고 죄가 없으셨다.  곧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며,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였다(히7:26).


    웨슬레의 성결의 정의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품으셨던 마음 전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행할 수 있게 하시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완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살아야 한다(히12:2).  무엇보다도 주님의 십자가에 궁극적 목적이 바로 우리의 성결을 위한 것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13:12).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이 땅에 오셔서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우리는 흔히 십자가의 은총이 내 죄를 용서하고 나를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신학적으로는  의인(義認)과  중생(  重生)을 의미함이다.  그러나 주께서 예비하신 은총은 그보다 더 높은 성결의 단계가 있으니 십자가는 바로 우리를 성결케 하심이 그 궁극적 목적이었다.  곧 성결이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주님의 기도가 내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성령 하나님의 성결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며 동시에 거룩케 하는 영이시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擇)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라고 분명히 거룩케 하는 행위자가 성령임을 밝히고 있다.   성령은 성결의 집행자(행위자,agent)이다.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통해 인간의 영혼 속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결교회 헌법에도 "성결이라 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의 세례를 받음이니 곧 거듭난 후에 신앙으로 순간으로 받은 경험이다" 라고 하여 성령에 의해 성결케 됨을 말하고 있다.   성령은 우리를 정결케 함으로 온전히 성결한 상태를 이룬다.   우리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딛3:5)구원을 받으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살후2:13)구원을 받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성결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성삼위 하나님의 본성과 역사에 근거를 가진다.  우리의 구원 과정과 같이 성결은 성부의 계획을 성자가 실천하심으로 예비하셨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이다.

 

 

 

4.성결의 필요성 : 죄의 이중성

 

    웨슬레가 타락한 인간을 말함에 있어서, 어떤 근거로 그러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는가? 라는 것은 그의 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웨슬레는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세가지로 이해하였다.  첫째는 자연적 형상, 둘째는 정치적 형상, 세째는 도덕적 형상이다.  그러므로 웨슬레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이성과 의지 그리고 자유의 천부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영(spirit) 혹은 혼(soul)이다.  인간은 모든 하등동물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다.  더 나아가서 창조된 원상태로서의 인간은 의롭고 참으로 성결하게 살았던 것이다.  

 

인간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고, 바로 그 사랑은 인간의 성질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관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유, 이성 등 본래의 기능을 옳게 사용함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유지했으며 순종했다.  이것이 범죄 이전의 인간의 상태였다.  이때의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복된 삶을 누렸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웨슬레에 의하면,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한 원상태로 부터 타락하였다.  웨슬레는 이같이 아담의 불순종과 반항이 자유를 남용한 것이며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형상과 원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즉 죄인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 인류에게 만연되고 있는 죄의 기원이다.

 

 

 

    a.죄의 종류

 

     (1)원죄:상태로서의 죄


    웨슬레에 의하면 인간은 모태로부터 타락된 죄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이 그의 영혼 전체에 파급되어 모든 능력을 전부 부패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 악한 뿌리에서 솟아나는 악한 기질들을 보게 된다.  그 악한 기질은 교만, 정신적 불손, 편견, 허영, 증오, 시기, 질투, 보복, 분노, 원한, 비통, 적개심, 세상에 대한 애착, 자아의지 그리고 우매한 욕망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욕망들이 원죄의 악한 뿌리로부터 나오지만 자연인(natural man)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연인은 자기들의 정신적 결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해의 눈을 열어주시면 그들도 자기들의 공허, 우매, 무지, 그리고 죄와 부정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원죄라는 말은 모든 인간의 실존적인 상태를 설명해 주고 있다. 

 

즉 인간의 도덕적 영적 상태가 나면서부터 죄에 감염되어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라는 탄식이나 "악인은 모태에서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시58:3)라는 말들은 모두 유전된 부패성 즉 원죄를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은 가르치기를 인간의 사망과 모든 악한 부패성은 인간의 죄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이것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들에게도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 유전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죄의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2)자범죄:행동으로서의 죄


    웨슬레는 원죄와 자범죄를 구분하여 원죄는 죄의 뿌리 또는 모체와 같아서 자랑, 고집, 불신앙, 우상숭배 등이며 자범죄는 원죄라는 뿌리에서 나오는 싹과 같은 것으로서 여러가지 있으며 이것을 특수한 죄라고 보았다.  순수한 죄는 개인의 죄이며 이것이 바로 자범죄이다.   그래서 원죄는 원인이며 자범죄는 결과이기 때문에 둘은 서로 구분된다.   그리고 원죄를 내적인 죄, 자범죄를 외적인 죄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한 것을 권장하고 악한 것은 금지시키는 것이 계명의 목적이다.  따라서 이 계명은 인간의 행위를 제지시키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계명을 위반했을 때는 죄가 되는 것이다.  즉 유혹이 있을 때에 나의 의지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내적인 죄가 된다.  그리고 내적인 죄가 있은 후에 영혼 속에 악한 욕망이 형성되고 팽창하여 결국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은 사라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외적인 죄를 범하는 단계에 이른다.

 

 

 


    b.성결의 필요성


    사람에게는 아담으로부터 전해오는 원죄가 있고, 또 죄로 인하여 부패하여진 악한 정욕과 구습이 있고, 양심이 더러워졌으니, 여기에서 성결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성결함 속에서 주를 섬기게 될 것이며, 재림하시는 주앞에 흠없이 서게 될 것이다.  이 은혜는 인간의 수양이나 고행이나 노력으로 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과 주의 보혈을 믿는 순종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성결이 필요하다.

 


     (1)성결은 하나님의 요구이다.


    성경을 종합해 보면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성결을 요구하시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살전4: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벧전1:15-16)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결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11:44),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는 말씀속에서 하나님은 현세에서 인간에게 성결을 강조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결 요구는 영적 성결뿐만이 아니라 몸의 성결 즉 전체의 성결(Whole Holiness)을 강조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2)원죄에서 깨끗함을 받는다.


    성결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담의 유전으로부터 정결함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범죄에서만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아담의 유전죄에서까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인간이 아담의 유전죄에서 정결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곳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이 본문에서 옛 사람이나 또는 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아담의 유전죄를 말하는 것이며, 단순히 인간의 육체를 가리킨 말이 아니다.   이 본문에서 죄의 몸이 멸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담의 유전죄까지 담당하여 구속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이 본문에서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라고 한 것은 아담의 유전죄에서 정결함을 받아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들 중에서 아담의 유전죄가 어떠한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죄에서 정결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성결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육을 쓰고 사는 동안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결은 이러한 유전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웨슬레는 이러한 아담의 유전죄에서부터 벗어나 인간이 현세에서 완전하여 질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3)주님을 닮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고 하였다.  주님을 닮으려면 성결해야 되며, 거룩하지 아니하면 주님을 닮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가 주님을 닮는 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여 준비하여야 된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는 사람들에게 내적 성결은 물론 외적 성결까지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 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이 말씀은 성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며 아울러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접하려는 성도들에게 성결을 강조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성도들은 성결의 은혜가 필요하며 성결함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다.

 

 

 

    c.성결의 방법


    성결의 은혜를 받으려면 중생한 후에도 죄가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후에 계속 내적 죄가 남아 있다고 보았으며, 그 내적 죄가 그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죄를 위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말하면 인간의 본성과 은혜가 대결하고 또 다른 표현으로는 영과 육이 싸우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온전한 성결을 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필자는 성결의 은혜를 받는 방법을 성경을 근거로 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말씀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강조했다.   요한복음17장 17절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는 방법이 된다.

 


     둘째:예수의 피이다.


    히브리서 9장13-15절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였고  요한 일서 1장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말씀은 모두가 예수의 피로 성결케 됨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세째:믿음이다.


    사도행전 15장 8-9절에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하였다.  이는 예수의 은총을 믿음으로 모든 죄에서 용서함 받고 성결함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결의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B.성결의 증거

 

1.모든 죄에서 자유를 얻는다


    모든 죄란 범죄자와 원죄에서 자유를 얻어 범죄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됨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속성의 일부인 자유의지를 주셨다.


    인류의 시조 하와가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범죄함으로 그 귀한 자유의지를 잃어버리고 죄의 종이 되고 말았다.  그 후부터 인간은 죄의 종이 되어 항상 죄를 짓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성결의 은혜를 받게 되면 죄를 짓지 않고 살 자유를 얻게 되는 특전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결된 증거는 죄의 종이 되지 않고 죄에서 자유를 얻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성결한 증거를 알게 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롬8:2)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성결된 증거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하고 있다.

 

 

 

2.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성결된 증거는 마음의 평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평안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평안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결한 심령은 세상적으로는 근심과 두려움이 있어도 마음에는 평안이 있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4-7)고 권면했다.

 

 

 

 

3.온전한 헌신을 하게 된다


    웨슬레는 미국 죠지아 선교에서 실패하고 귀국한 후 자기 신앙을 재확인하였으며,올더스게잇(Aldersgate)의 경험 이후 그 신앙이 뜨거워져서 온전한 헌신자가 되었다.  그후부터 53년간 웨슬레는 실패하지 않고 온전한 헌신자로서 사명을 다했다.  이것이 웨슬레의 성결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온전한 헌신에는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4.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성령의 열매는 성결의 증거로 나타나며, 내적 역사지만 외적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아홉가지로 설명하였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여기에 기록된 아홉가지의 열매는 성결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높은 단계에 있는 영적인 열매들이다.  이 아홉가지 열매를 사도 바울은 왜 성령의 열매라고 말했을까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열매들은 성령을 받지 않고는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에 의해서 새 생명이 생기고 자라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라고 말했던 것이다.

 

 

 

C.성결에 대한 설명

 

    웨슬레 신학에서 성결론의 중요성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 성결교회도 성결이 중심사상이다.  헌법 제1조에는 본 교회의 목적은  "국내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 성결의 은혜를 전하여......"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 8조 본교회 사명은 "......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던 성결의 교리를 그대로 전하려는 사명하에서......"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의롭다 함을 얻을 뿐 만 아니라 "거룩하여 진다"라는 교리는 "현재 여기에서"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깊이를 말하는 성서적 교리이며, 중생한 자는 완전(기독자 완전 또는 성화)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성결"의 도리이다.

 

 이제 성결에 대한 정의와 그 본질을 설명하고자 한다.

 

 

 

1.이 명직 목사의 설명

 

    a.성결의 정의


    이 명직 목사는 1929년에 [성결교회 약사]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완전한 성결이라 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의 세례를 받음이니 곧 거듭난 후에 믿음으로 순간에 받는 경험이니라.  또한 완전 성결은 원죄에서 정결하게 씻음과 그 사람을 성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능력을 주심이니라."  그의 정의에서 성결은 성신세례, 중생후의 이차적 경험, 원죄에서 정결, 성별, 능력받음의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 명직 목사님은 그의 책 [기독교의 사대복음]에서 성결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즉 성결은  하나님의 성결인 절대적 성결과 인간의 성결인 상대적 성결로 구분한다.

 

 

 

     (1)절대적 성결


    절대적 성결은 하나님의 성결로서 하나님만 가지신 성결이다.  즉 "지존무상(至尊無上)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通悔)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이사야 57장 15절).


    또한 욥4: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결은 그 이상의 성결이 없는 것이요. 또한 거룩하사 악(惡)으로 시험을 받지도 않고 그 성결하심을 잃어버리지도 않으시는 성결인 고로 하나님과 같이 성결한 자는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없다.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가지신 성결이니 그 이상의 성결이 없는 것이다.

 

 

     (2)상대적 성결


    상대적 성결은 인간의 성결이며 하나님의 성결을 상대로 하여 우리 성도가 원하는 성결이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되라고 요구하시는 성결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결이요, 인간 스스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는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에 근거한 우리의 성결이다.


    이와 같이 이 명직 목사님은 성결을 죄를 짓지 않고 "무죄하게 사는 생활을 가리킴"으로 보고 있다.  기독교에서만 죄없이 사는 성결을 가르치는 종교라고 하면서 성결을 단순히 내적, 영적 차원에서만 두지 않고, 성도의 실제 생활로까지 확대하여 적용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웨슬레가 주장하던 "내적 성결과 외적 성결"의 사상과도 같은 것이다.

 

 


    b.성결의 필요


    성결의 필요성에 대하여 신학대강(神學大綱)에서 다음 여덟가지를 말한다.
    (1)성결의 은총은 永遠前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인 까닭에 (엡1:4,  요일3:8).
    (2)성결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까닭에 (벧전1:15-16,마5:48,약4:8,요13:8등).
    (3)성결은 하나님의 뜻인 까닭에(살전4:4,7).
    (4)성결은 하나님이 約束하셨으므로(살전5:23,딤후2:13).
    (5)肉의 性質을 滅하는데 필요함(롬6:6,8:6-8).
    (6)성결은 贖罪의 목적이므로(엡5:26,27 히13:12 딛2:14).
    (7)재림하시는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마5:8,히12:14,히9:28).
    (8)성경 전체가 성결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c.성결과 성장


    성결체험에 순간적 변화의 요소와 점진적 성장의 요소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명직 목사의 견해는 순간적 변화에 치중하고 있고 점진적성장은 단지 은혜의 성장일 뿐 성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구분하여 설명한다.


    (1)성결은 죄악이 제거된다는 것이요, 성장은 은혜가 증가되는 것이다. 죄는 은혜가 성장함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단순히 믿음으로 제거되는 것이요, 이 죄가 제거된 후에 더하는 일(은혜의 성장)이 따라온다.


    (2)성결은 心中罪에 관한 것이요, 성장은 心中 은혜에 관한 것이다.
    (3)성결은 단지 하나님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요, 은혜의 성장은 하나님과 함께 일한 결과이다.
    (4)성결은 신앙으로만 되는 것이요, 영의 생명의 성장은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여 이루어진다.
    (5)마음의 성결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진실과 사랑의 성장은 점차적이다.
    (6)마음을 성결케 하는 것은 직접 성신의 증거가 있고, 심령상의 발달은 성신의 진리로 말미암아 진보되는 마음에 의하여 발견할 수 있다.


    (7)마음의 성결은 그 소유자만 알 것이요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나, 성장은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된다.


    (8)성결은 영적 성장을 위한 터전이다.
    (9)성결은 완성하는 일이지만(罪에서 완전히 깨끗해졌다), 성장은 우리
생존중에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10)마음의 성결은 누가 가지든지 차별이 없으나, 은혜의 성장은 각자가 같지 않다.
    (11)성결은 천국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것이나, 성장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상에서 소개한 이 명직 목사님의 성결론은 웨슬레의 신학에 입각한 성결의 도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 하겠다.

 

 

 

 

2. 趙鍾男 박사의 성결론

 

    a.정의


    消極的인 면에서 보아 성화는 죄의 세력에서 자유케 하며 죄의 성질로부터 씻기게 된다.  그리고 積極的인 면으로는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 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이며, 새생명이 은총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자의 완전'이라고도 말하는데 이것은 의도의 순수성이요, 生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것은 온갖 더러움과 모든 내적 외적 불결을 탈피하는 마음의 할례다......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b.현세에서의 성결의 가능성


    웨슬레는 우리가 성결을 얻을 수 있는 시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이 순간은 보통 죽음의 순간 즉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직전의 찰나임을 믿는다. 그러나 그 순간이 죽기 십년 전 이십년 전 혹은 사십년 전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믿는다."


    곧 웨슬레는 현세에서 우리가 성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

 

 

 

 

    c.완전 상태의 維持


    인간이 가진 制約性은 완전의 상태에서 인간을 후퇴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 상태의 유지란 그것의 획득보다 더욱 어렵다.   결이란 質에서 완전한 것이며 동시에 量에 있어 부단히 성장하는 완전이다. 또 이것은 순간순간 主를 의지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에서만 유지된다.

 

 

 

 

3.웨슬레(John Wesley)의 설명


    1740년 말경으로 웨슬레는 당시 런던의 주교 깁슨(Gibson)박사와 화이트홀에서 면담한 일이 있었다.  그는 내가 말하는 완전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나는 조금도 꾸밈이나 숨김 없이 설명했다.  내 말이 끝나자, 그는 "웨슬레 씨, 당신의 완전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 뿐이라면 이것을 온 세상에 공포하시오.  누구든지 당신 말을 반증할 수 있다거든 실컷 해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고 말하였다.  웨슬레는 대답하기를,  "주교님, 그리 하겠읍니다"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완전] 이라는 설교를 써서 발표하였다.


    웨슬레는 자신의 성결 또는 완전론에 대하여 자신있게 말하였던 것이다.그와같은 웨슬레의 완전(성결)에 대한 정의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a.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완전이다.


    '그리스도 안의 젖먹이라도 죄를 범하지 않을 만큼은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비록 베드로가 외식함으로써(갈라디아2:11-13), 그리고 바울은 바나바와 심히 다툼으로써(사도행전 15:39),범죄하였다 할찌라도 그렇다고 해서 사도 중 두 사람이 한때 범죄했었으니 모든 세대의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살아 있는 동안은 범죄할 수 밖에 없으며 실제로 범죄한다고 하는 이론을 세울 수 있는가?  결단코 그럴 수 없다.  범죄의 필연성은 그들에게도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넉넉했으며(고린도 후12:9),오늘날 우리에게도 넉넉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5:18)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못 짓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은혜 안에,말씀안에 거하면,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죄를 안 짓는 것과 못 짓는 것은 다른 것이다.

 

 

 


    b.악한 생각, 악한 기질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의미에서 완전이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2:20)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도 악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웨슬레는 '악에 관한 생각'이 반드시 '악한 생각이'이 아니며 죄에 대한 생각과 죄된 생각과는 아주 뜻이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즉 죄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과 죄되게 생각하는 것은 같지 않은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선량한 사람도 살인자에 관하여 생각할 수 있읍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악하다고 죄된 생각이라 할 수는 없읍니다.  은혜로우신 우리 주님께서도 마귀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 4:9)고 시험하셨을 때 그 마귀의 말을 틀림없이 생각하고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주님께서 악한 생각이나 죄된 생각을 품으셨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님은 참으로 그런 생각을 품으실 수가 없읍니다.  마찬가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도 그런 생각을 품으실 수가 없읍니다.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니라"(누가6:40)라는 말씀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악하고 죄된 생각에서 해방되셨다면 그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도 악하고 죄된 생각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을 것입니다.

 

 

 

    c.원죄에서 정결케 된다는 의미이다.


    웨슬레는  완전히 성화된 사람은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외적인 죄는 물론 내적인 죄에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  완전한 인간은 악한 생각과 악한 마음이 없다.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이란 사랑에 배치되는 그릇된 성품이 전혀 그 영혼안에 남아 있지 않으며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순수한 사랑으로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사랑에는 순수한 마음과 모든 죄로부터의 해방이 수반된다.


    중생한 자는 외적인 죄의 지배를 받지 않지만 내적인 죄는 계속 남아 있다.  죄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다.  완전 성화된 사람은 외적인 부정은 물론 내적인 부정으로부터의 정결을 받는다.  그는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형상으로 완전히 새로남을 의미한다.

 

 

 

    d.온전한 사랑을 의미한다.


    웨슬레는 1744년 6월 25일, 감리교회 최초의 연회에서 성화 또는 완전의 교리에 대하여 신중히 토의하였다.  그 문답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문) "성화된다" 함은 무엇인가?
   (답) "진리에서 나온 의와 성결"로 하나님의 형상에 새로와지는 것이다.

 

 

   (문)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답)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신명기 6:5).

 

 

   (문) 이 말은 "내적인 죄가 다" 제거되었음을 의미하는가?
   (답)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렇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가 "모든 더러움에서 구원되었다"(에스겔 36:29)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같이 하나님을 전심전력 사랑할 때에 우리의 영 속에는 불의한 성품이나 사랑에 위배되는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사고, 말, 행동이 순전한 사랑에 의해 지배될 뿐이다.   그리고 성결이란 현세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상대적 완전이지 도달이 불가능한 절대적 완전이 아니다.  성서가 요구하고 제시하는 수준에서의 완전이요 그 수준에서의 성결을 뜻한다.

    웨슬레는 성결함을 받는 믿음을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결함을 받는다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당신의 원칙에 진실하십시오!   그리고 이 축복을 구하십시오 !
구하시되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상태에서(just as you are), 곧 더 나은 상태나 더 약화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그대로에서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가 돌아가셨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지불할 것 없는, 또한 간구할 자료도 없는 다만 가엾은 죄인의 자리에서 구하십시오.  당신이 있는 그대로에서 이것을 구하신다면, 그럼 지금 이것을 기대하십시오.  지연시킬 이유는 없읍니다.  어찌하여 지연시킬 것입니까?  그리스도는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야말로 당신의 원하는 바의 전부이십니다.  그는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문에 서 계십니다!   마음 깊이에서 부르짖으십시오.


                그대, 하늘의 손님이시여
                들어오시오, 들어오시오
                그리곤 다시 떠나지 마시고
                저와 더불어 먹으며
                이 찬치가 영원한
                사랑의 잔치가 되게 하옵소서.

 

 

 

 

                III. 성령과  성결

 


    하나님의 성결의 도구로서 성령은 웨슬레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증거가 없이는 성결의 구별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결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성결의 증거도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웨슬레의 성결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성결은 구원과 연결되는데, 구원은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신자들의 종합적으로 성숙된 과정을 성화' 로볼때, 그 성화를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다.   즉 구원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지만, 인간 심령 속에서의 성결의 성취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이다.


    웨슬레도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며, 따라서 마음 속에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도 성령의 역사라는 점을 믿었다.   그에 의하면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도 크리스챤이 아니다.   웨슬레는 성결이나 기독자 완전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그 어떤 사람도 성령없이 성결될 수 없다.  성결은 성령에 기인한다.  그리고 성결은 성령의 사역에 기인한다.  즉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롬15:16)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살후2:13)이라는 말씀이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본 장의 제목을 "성령과 성결"이라 정하였다.  따라서 본 장에서 먼저 웨슬레가 바라본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본 후 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사역을 연구한 후 성결의 확신을 갖게하는 성령의 증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A.성령의 역사

 

    웨슬레는 사람 속에서 성령께서 은혜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은 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 점진적인 방법과 즉각적인 방법이 있다고 보았다.


즉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그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기까지 성령의 점진적인 역사가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1.성령의 즉각적 역사

 

    웨슬레는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 이후 온전한 성화에 이르는 것은 성령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은혜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 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칭의에 의해서 우리는 죄책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
    의 은총을 회복하고, 성화에 의해서 우리는 죄의 세력과 그 뿌
    리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모든
   경험과 성경은  이 구원의 방법이 즉각적임과 동시에 점진적임
  을 보여준다.  이 구원은 우리가 칭의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거룩해지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인내하며 하나님과 사
    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 구원의 은혜는 그 순간부터 점점 증가
  하기 시작한다......따라서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에 대한 순수
     한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하여 우리
  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모든 면에서 성장해 가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점진적인 성화의 발전을 통하여 기독교인의 생활은 결국 성화의 성숙한 단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에 도달할 것이다.

 

    린드스트롬(Lindstrom)은 구원의 질서에 관한 웨슬레의 이론 즉 신앙의 성장과정에서 점진적인 것과 즉각적인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생과 온전한 성화는 그의 구원론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유기적
   관련이 없이 두 개의 독립된 현상으로 관찰되어진다.    웨슬레는
   두 가지가 모두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므로 웨슬
   레의 구원론에서 순간적인 요소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웨슬레가 또한, 구원은 하나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으로 파악한 사
   실은 경시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점진적 발전의 사상은 그의 구원
   관에서 가장 특출한 요소이며 실제  그의 사상의 일반적인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 요소 즉, 즉각적인 것과
   점진적인 것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며,  웨슬레에게 특유한
   구원의 질서는 이러한 두 요소의 결합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이
   다.   구원은 사람이 여러 단계의 신앙 과정을 통과하는 과정으로
   이해되며 각 단계는 여러 가지의 신앙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웨슬레는 사실상 즉각적인 면과 점진적인 면을 똑같은 비중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크고 위대한 변화가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구원은 언제나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다시 말하면 현재 성결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점점 더 거룩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웨슬레는 순간적으로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그러한 은혜를 사모하도록 권면하였고 동시에 은혜의 지속과 보다 더 큰 은혜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는 전진과 노력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웨슬레는 점진적 역사와 즉각적인 역사를 모두 수용하면서 계속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강조했다.

 

 

 

 

2.성령의 지속적 역사

 

    웨슬레는 사람의 영적 상태를 크게 셋으로 나눈다.  첫째는 자연상태(the natural state), 다음에는 율법적 상태(the legal state), 끝으로 복음적 상태(the evangelical state) 혹은 사랑의 상태(the state of love)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은 세 가지 영적 상태 중 어느 한 곳에만 전적으로 속해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속에 여러 가지의 영적 상태가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신자들은 대개 자연상태와 율법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에 있고,  제자들은 대개 일반적으로 율법적 상태와 복음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를 가지고 살아간다.  한편 웨슬레는 그의 사상의 초기에는 진실한 기독교인은 오직 복음적 상태에만 머물러야 하며 율법적 상태와 섞여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웨슬레는 1738년에 행한 {믿음에 의한 구원}(Salvation by Faith)이라는 설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 가졌던 믿음에 대하여, 그것은 우리를 구원시키는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이 비록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일으키고 천국의 복음을 증거했지만, 그런 믿음 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웨슬레는 신앙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게 되었고 온전에 대한 그의 사상도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되었다.  즉 후기에는 사랑의 충만을 통한 온전 혹은, 자신의 무력을 깊이 인식하고 철저히 의지하는 가운데서 온전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율법적 상태에 있는 사람의 연약한 믿음도 하나님께서는 물리치지 아니하고 받으실 것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다.  웨슬레는 1788년에 행한 {믿음의 발견에 대하여}(On the Discoveries of Faith)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천국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켜 주신다. 그 방법은 우리 심령의 베일을 벗기시고 우리
   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
   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 즉, 우리의 악한 성품과 악
   한 기질과 악한 말과 행동 등을 분명히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런한 모든 죄들을 우리의 심령 속에서 나오는 것들로서 우리
   의 심령을 부패시키는 것들이다.  성령께서는 다음에 우리 죄의
   보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는 입을 다물고 하나님
   께 사죄의 탄원을 하게 해 주신다.

 


    웨슬레의 원숙한 사상의 특징으로서 지속적 성장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야만 하며 신앙의 현상유지란 일종의 퇴보라고 웨슬레는 강조했다.


    따라서 영원한 성장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웨슬레의 구원관의 점진적 성격과 함께 그의 온전한 성화론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점진적인 성장이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질문:사랑으로 온전해진 사람들도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가.
     대답:의심없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 속에 머물 때 뿐만 아니라 아마 영원토록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B. 성결을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

 

    거듭난 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성결, 또한 사랑의 행위는 성령께서 동시에 역사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은 의인의 근거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과 같이 성화의 동인(agent)은 성령임을 말 해 준다.   믿음에 의한 의인은 구원의 뿌리(root of salvation)이고 성령에 의한 성화는 구원의 본질(substance of salvation)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받게 되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을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말했다.   이것은 성결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성령의 사역과 또한 성령의 강력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명직 목사는 성결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신께서 불로 임하사 사람의 마음에 유전죄와 거기 속한 악한
   정욕과 죄의 정욕을 정결케 하시나니 제자들이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신을 받음으로 그 정과 욕까지 정결하여졌느니라.

 


    이것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간의 유전 죄까지 정결하게 하심으로 성결의 은혜를 받게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결의 은혜는 반드시 성령의 강력한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성결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성령이 협력해 주는 것이다.  한편 중생된 인간의 영혼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새로나게 되며 성결된 인간의 영혼은 육적인 모든 것을 양보하고 온전히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서 그리스도가 내안에 계시므로 산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히2:1-4)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성결의 은혜를 가져오는 성서적인 근거라고 하겠다.
    웨슬레 자신도 성령께서 한 순간에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거나, 혹은 온전히 성화되게 하실 수 있다는 점을 올더스게잇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그리고 성령의 사역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C. 성결과정에서 성령의 사역

 

    중생한 사람은 성결을 향하여 성장하여야 하며, 성결한 사람은 더 완전한 성숙단계에 이르도록 노력하여야 된다.  성결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태만하거나 교만하다면  후퇴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웨슬레는 완전 성화에 이르기 까지는 점진적인 성장의 과정이 있음을 그의 설교 "그리스도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서 '어린이', '청년' 그리고 '어른'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한일서에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2:12-15)라고 하였다.  즉 자녀들(baby)은 중생한 자 곧 초기의 성화의 단계이며, 청년들(young man)은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있는 신자이며, 어른들(father)은 온전한 성화에 이른 자, 즉 성결한 성도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성결한 성도는 계속하여 구원을 향하여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1. 관계적 성화 (Positional  Sanctification)

 

    누구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믿음으로 인하여 전에 원수되었던 사이가 부자관계로 회복된다.   이때에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백성이 된다.   관계적 성결이란 이와같은 관계의 변화에서 본 것이다.   이는 주관적 변화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변화이며, 내적 변화가 아닌 외적 관계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관계적 성화는 의식적 성결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분된 물건이나 사람은 모두 거룩하다.   실제로 이들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칭의는 하나님이 성자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것이요,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에 의해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칭의에서 사역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칭의의 조건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17:5),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고전12:9)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우리가 칭의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순간에 성화가 시작되는데, 우리가 다시 나며, 위로부터 나며,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그 순간에 관계적 변화 뿐만 아니라 진정한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내적으로 새로와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성령에 의한 관계적 성결 만으로는 온전한 성화라고 볼 수 없기에 더욱 나아가야 한다.  믿고 용서받은 신자는 이제 실제적인 영적 도덕적 변화를 받아야 한다.  이 실질적 변화를 웨슬레는 초기의 성화, 온전한 성화 그리고 그 전후에 있는 점진적 성화의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2.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

 

    사람이 거듭날 때 성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웨슬레의 견해인데 이는 흔히 초기적 성화,   거듭나서 성화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완전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 이르기 전의 신자의 상태를 말한다.

    웨슬레는 초기의 성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전적인 성화가 그의 영혼에서 발생하기까지, 그의 성결은다른 것과 혼합되어 있다(all his holiness was mixed).  즉 그는 겸손하지만 온전히 겸손하지 못하며, 그의 겸손은 자만
     과 섞여 있다. 그는 온유하긴 하지만 그의 온유는 분노나 어
     떤 사나운 성정(turbulent passion)때문에 자주자주 깨지고
     만다.

 

    그러므로 비록 중생은 했지만 여전히 세상의 힘에 눌려있는 사람이 온전한 성결을 체험하기 전의 상태는 퍽 불안정한 것이다.


    웨슬레는 중생은 성화의 시작이요 문이라고 했다.  중생은 성화의 첫 단계이다.  이것을 초기의 성화라고 했다.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가질 때 의로워지고, 거듭나게 되며, 초기의 성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죄에서 용서받으며, 죄의 세력이 깨어지며, 성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영태 박사는 학위 논문에서 중생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인간 심령 속에서 일으키는 큰 변화이다.
    이것이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아 의
    와 참된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나는 것이다.....우
    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됨을 이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중생할 때  즉 내적, 외적 성결은 시작한다고 하였다.  또한 중생과 성화는 모두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3. 점진적 성화(Gradual or Progresive Sanctification)

 

    많은 사람들은 즉각적 성화만을 강조하면서 점진적인 성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웨슬레는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 순간부터 거기에는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점 적인 성화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믿음을 지속하고 있는한 성장을 거듭하여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 하  순간적 체험 인 완전한 성화에 나아가는 것이라 했다.

 


    한영태 박사는 점진적 성화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고전1:2)이라고 불렀으나, 3장에서는 저들이 아직도 젖먹이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꾸중한다(3:1-3).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중에서 성장하여 온전한 성결을 이룬 자들이 있음
    을 "너희 중에 이와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
    을 얻었느니라"(고존6:11)라고 쓰고 있다.   어린 아이가 태어
    나면  성장해야 하는 것처럼 신자도 은혜  안에서 성장해야 한
    다.   성장하지 않으면 무언가 병들었거나 문제가 있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과 같이 신앙도 마찬가지다.

 


    점진적 성화의 과정은 신자의 성화의 과정이다.  이 기간에 신자는 영적인 싸움을 무수히 겪게 되며 승리와 패배를 교대로 겪게 될 때가 많다.  유혹에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중요하며,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3:23)는 말씀은 특히 중요하다.

4.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는 신자가 다시 자신의 무능과 자신안에 남아 있는 죄를 자각하고 믿음으로 받는 것을 말한다.   웨슬레는 이 체험을 순간적으로 받는 것이라 하면서  이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씻김을 받는 다고 하였다.  중생의 순간부터 성화의 역사는 시작되어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 만큼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죄로부터의 정결함을 받으며(소극적 의미의 성결), 성령의 역사로 순수한 사랑의 충만을 (적극적 의미의 성결)얻게 된다.


    웨슬레는 온전한 성화를 두번째 경험이라 했다.  두번째 은총의 체험이란 뜻에서 "제2의 축복", "제2의 은혜", "두번째 변화", "온전한 구원", "기독자의 완전"이라고 불렀다.   온전한 성화는 바로 "온전한 사랑" 또는 "순수한 사랑"이며 이 사랑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되며, 하나님과 이0웃을 사랑하며 사랑과 봉사에 더욱 큰 힘을 얻어 승리하는 생활의 계기가 된다고 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온전한 성화는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을 말한다.  즉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 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라고 하였다.   성령으로 마음이 정결해 진다.   성령께서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이 사랑으로 충만케 하신다.

 

 

 

 

5.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레는 완전의 교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의 설교의 관심이 신자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받도록 하려는 데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문)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을 사랑하되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는  그것이다. 

 

이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그릇된 기질이 조금도 그 영혼에 남아 있지 않고 그의 온갖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순수한 사랑으로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성결해도 연약성을 지니며, 무지나 실수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다.   비록 육체가 죄는 아니더라도 육체 안에 있는 동안은 죄의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이 타락하고 부패한 연약한 인간성이 영화의 단계에서야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함을 얻을 수 있다.  

 

 

현세에서의 완전은 이 최종적 완전을 얻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완전은 끝이 아니다.  완전한 자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최종적인 칭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 또는 영화(glorification)라고 한다.   그리고 웨슬레의 완전은 절대적, 천사적, 아담적인(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 완전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지나, 과오나, 결점이나, 유혹받을 가능성 등에서의 완전을 말하지 않는다.  즉 완전은 '제한된 완전'이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나 천사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연약성을 인정하는 '인간적 완전'이라고 할 것이다.

    조종남 박사는 웨슬레의 인간적 완전에 대하여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이해와 강조의 차이는 우리의 눈과 안경에 적절히
    비유될 것 같다.  안경을 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안경
    을 아무리 잘 닦아서 써도 깨끗한 상태의 유지는 그 순간일
    뿐 곧 먼지가 쌓이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안경이 정결을 유지할 수 없듯이   세상에서는 무지와 실수
    로 신자(信者)는 정죄 아래 있음을 면할 길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보자. 안경에 먼지가 잠시도 쉬지 않고 쌓이듯
    이 눈에도 그러할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항상 정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은 눈물이 언제나 흘러
    먼지를 씻어내기 때문이다.  성결한 자가 그 자신의 연약성
    으로 인하여 무의식적인 죄를 범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으로 그 성결을 지속할 수 있다는  웨슬레의 주장은 바로 이렇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웨슬레는 보혈을 항상 의지하는 신자는 계속하여 그 죄를 씻음받고 있으며(요일1:7), 신앙으로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인격적 관계 안에서 그의 사랑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D. 성결의 확신:성령의 증거


    웨슬레 신학의 공헌중에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확신의 교리라 할 수 있다.  이 확신의 교리는 성서에 근거한 것으로 초대교회에서 특히 교회가 핍박속에 있을 때 활력소의 역활을 하였다.  웨슬레는 이 성령의 증거의 교리야말로 메소디즘의 공헌 가운데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이 위탁한 교리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자녀의 독특한 특권을 표시한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라고 하였다.  즉 성령의 증거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리는 성서에서 출발한다.


    웨슬레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진리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 없으며 계시된 이 진리는 단 한 번 만이 아니요, 또 불명료하거나 우연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엄숙하게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가지고 계시되어 있다" 라고 하였다.   특히 확신의 교리는 웨슬레 자신의 신앙 체험에 의해서 분명해졌다.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신앙 체험을 기술하면서 자기의 마음이 뜨거워진 경험을 통하여 나 같은 죄인의 죄 까지도 없이 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올더스게잇 사건은 그에게 확신의 교리를 얻는 성령의 증거라고 하겠다.

 

 

 

1.성서적 근거

 

    '성령의 증거'는 성령께서 신자의 의식을 향해서 직접적으로 계시해 주는 - 하나님에게 열납되었다는 일에 대한 - 내적인 증거를 말한다.  성서는 성령의 증거를 향수한 수많은 사람들의 실례를 제공해 주고 있다. 구약성서 중에는 아벨(히11:4), 에녹(히11:5), 욥(욥19:25), 다윗(시32:5,시103:1,3,12) 이사야(6:7) 및 다니엘(9:23)의 기록이 있다.   신약성서에도 이 교리에 대한 인용이 많이 나타난다(행2:46,8:3916:34).   특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롬8: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1서 5:7)."   이 성구들은 성령께서 신자가 하나님을 향한 관계에 대해서 증거해 주시는 사실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2.증거의 내용

 

    성령의 증거에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the direct witness of the Spirit)와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the indirect witness of the Spirit)의 두 종류가 있다. 웨슬레는 "성령의 증거"라는 두 편의 설교에서 성령의 증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령의 증거는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inwa impression on the soul)인데, 즉 하나님의 영이 이것을 통하여  나의 영에게 직접 증거하는 바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셨으며,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것과 또한 나의 모든 죄는 도말 되었고, 나 아니, 나 같은 사람과 하나님과 화목되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에게 강하게 주는 내적 느낌이다.  또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성령의 증거는 영혼에 주어지는 내적인 납득인데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령은 직접적으로 내 영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하는 일, 나의 모든 죄는 도말되었으며 나 같은것까지도 하나님과 화해되어졌다고 하는 것을 증거해 주신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간접 증거에 대해서 웨슬레는 우리 영의 증거(the witness of own Spirit) 그리고 선한 양심의 증거(the witness of a good conscience)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영혼이 땅 위에서 어떤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아는 것과 같이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
   뻐할 때 그것을 친히 또는 분명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영혼이 존재하느냐 안하느냐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과 같이 영혼이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가 안하는가도 의심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공정히 추리한다면 지
   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한  사랑과 거룩한 기쁨과 순종하는 사랑
   을 가지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의 증거는 가장 온전한 확신과 더불어 우리 마음에 나타나서 우리의 아들 됨을 증명하며 내적 증거를 만든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것과 이 증거는 칭의와 성화를 포함한 우리 구원의 전 과정에 존재한다.

 

 

    한편 한영태 박사는 성령의 증거에 대한 확신의 범위를 3단계로 말한다.

 


   1)신앙의 분명한 확신(clear assurance of faith):의심과 두려움이 섞여있는 신앙,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 특권으로 설교되는 것.

 


   2)신앙의 충만한 확신(full assurance of faith):의심과 두려움없이 용서에 대한 완전하고 내재적인 신앙.

 


   3)희망의 충만한 확신(full assurance of hope):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

 

    따라서 성령의 증거는 구원의 확신 뿐 아니라 신자의 삶에 소망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승리로운 삶의 경험을 위한 길을 열어 주게 된다.  성령께서 친히 그의 영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 하나님의 가족중에 입양되어졌다고 증거해 주실 때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IV.성결된 삶의 표적

 

A.기독교적인 사랑

 

    성결된 삶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사랑은 구속과 의인이란 객관적인 사건과, 성화라는 주관적인 변화에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될 주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웨슬레의 성결의 교리를 연구하기 위하여서는 성결의 본질이며 표적이되는 사랑을 분석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웨슬레 신학에 있어서 사랑의 중요성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을 정의한 것에서 볼 수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여기에서 웨슬레는 실수까지도 없어야 한다는 절대적 완전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완전을 성경의 표준보다 지나치게 높히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질문 : 어떻게 하면 완전을 너무 높게나 너무 낮게 설정하는 일을 피할
           수 있는가.

 


대답 : 성경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완전을 성경의 표준에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온 심령과 영혼
       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
       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령과 생활을 다스리는 사랑이며 우리
       모든 성품과 말과 행동에 고루 퍼져있는 사랑이다.

 


    이와같이 웨슬레는 사랑의 충만을 완전의 완성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완전의 완성은 곧, 온전한 사랑이며 이것이 바로 성서적 완전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성서에서 완전을 목표로 제시하고 완전해지도록 촉구하므로 웨슬레는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며(마22:38), 율법의 완성(롬13:10)임을 알고 웨슬레는 사랑의 완성을 통한 율법의 온전한 준수를 주장했던 것이다.


    한편 기독교적 사랑에 대하여 윌리암 로오(William Law)는 '우주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즉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인 것과 똑같이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우주적인 것이 아니면 안된다.  사랑이 만물에게 미치게 될때 그 사랑은 기독교적인 사랑이 될 수가 있다.
    따라서 웨슬레의 성결한 삶이야말로 기독교적인 사랑의 윤리에 근본적인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B.웨슬레의 사랑 관념

 

1.사랑과 믿음

 

    웨슬레는 믿음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중생과 성결이 믿음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믿음도 사랑에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믿음이란 그것이 비록 기독교인의 믿음이든지,택함을 받은
   사람의 믿음이든지 혹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이든지
   간에 그 믿음 자체는 사랑의 시녀에 불과한 것이다.  믿음은
   명예로운 것이지만 이것이 율법의 목적은 아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영광을 오직 사랑만이 갖도록 했으며 사랑은 하
   나님의 모든 율법의 목적이 된다.  사랑은 이 세상이 시될
   때부터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날까지  하나님의 모든 섭
   리의 유일한 목적이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 사랑
   은 홀로 남아 영원히 있을 것이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영원하
   신 모습을 마주 대하게 됨으로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웨슬레는 사랑은 영원한 것이지만 믿음은 일시적인 것임을 밝히고 믿음은 사랑의 완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올더스게잇은 웨슬레에게 믿음의 위대성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하여 웨슬레는 그가 바라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길을 갈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전보다 더욱 순수하고 능력있는 사랑을 하게 되었으며,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설교하기에 합당한 사도가 되었다.  즉 웨슬레는 믿음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온전히 이룬 것이다.

 

 

 

2.성결의 표적인 사랑


    웨슬레는 기독교인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완전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완전한 사랑의 증거가 당연히 나타나야 한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는 십가가 위에서 표현되었으며, 이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의지할 때에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모
    든사람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랑은 그리
    스도의 수치, 조롱, 멸시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받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허용 하는  범위내에서 사람과 마
   귀가 범 하는 어떠한 악한 일도 기쁨으로 인내하게 해 주는 것이
   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역사하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
   구나 거의기독교인(Almost Christian)이 아니고 온전한 기독교인
   (Altogether Christian)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의 가장 위대한 표적은 사랑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심령 속
      에흘러 들어 온 것이다(롬5: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
      을 그들에게 보내심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여' 라고
      부를 수 있게된 아들이기 때문인 것이다(갈4:6).

 

 

 


C.사랑과 그 대상

 

    웨슬레의 사랑을 일반적으로 분석할 때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에만 언제나 주의를 집중시켜 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에 선행한다.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인간이 그의 사랑을 하나님에게만 집중하여야 함은 하나님이 최고선이라는 이유에서만이 아니요 이웃을 사랑하여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함축되어 있거나 혹은 당연히 그 사랑 밑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하나님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언급하면서 웨슬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사랑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즉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따라서 이웃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필연적인 열매로 간주된다.


    인간이 왜 이웃을 사랑해야 되느냐 하는 이유로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모방하게 될 때에도 하나님은 사랑의 주요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하시므로 인간도 역시 그것을 본받지 않으면 아니된다.


    웨슬레는 이웃사랑에 관하여 말할 때 가끔 자기사랑에 관하여 언급하곤하였다.  그러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나타난 계명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는 이웃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자기 사랑을  이웃사랑의 한계를 결정하는데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이웃사랑을 자기 사랑의 필요조건으로 생각했다.  그 계명은 자기사랑과 이웃 사랑간에 균형이 잡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자기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따라서 성결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이다.

 

 

 

          V.  결   론

 

A.  요   약

 

    종교개혁자들은 "비참한 죄인으로서의  기독교"(miserable sinner christianity)에 관심을 가지고 현생에서 기독교인의 계속적인 불완전(the continued imperfection of Christian)을 강조하여 성화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웨슬레는 계시된 하나님, 지금 여기에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셔 우리안에 거하시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정결케 하시며 온전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완전성화를 성취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결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성결은 사람이 출생 후 성장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후에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웨슬레는 말하고 있다.


    한영태 박사는 웨슬레의 성결의 과정과 완성을 5단계로 보고 있다. 첫째 관계적 성화  둘째 초기의 성화  세째 점진적 성화  네째 온전한 성화  다섯째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보았다.   웨슬레는 성화의 점진적인 성장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성결이 완성된다고 하였다.


    한편 성결의 과정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라고 하였다.  웨슬레의 성결의 출발점인  중생은 칭의와 동시에 시작되며 이는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성결의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성결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강조했다.  특히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성결의 확신을 강조하였다.


    한편 그는 성결된 삶의 표증으로 기독교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자연인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보아서 자연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먼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원인이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그것의 필연적 결과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근원이다.

 

 

 


B.비평과 제언

 

    18 세기 웨슬레의 부흥운동으로 인한 성결운동은  19세기 초 중반의 Finney의 부흥운동과 19세기 후반의 성결운동, 더 나아가서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성령의 직접적, 즉각적 역사로서의 성령세례의 체험으로  전승됨으  로 인하여 그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로인하여 웨슬레는 성결에 바탕을 둔 그의 구원신학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열광주의,신비주의 배척운동에 입각한 철저한 합리주의 사조의 팽배로 인하여 광신주의자라들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으나,  성서와 이성과 경험에 입각한 웨슬레의 성결사상은 초대교회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성결의 전통을 원형 그대로 전승할 수 있었고, 성령의 직접계시를 주장함으로 타락한 사회에 혁신적인 생명 복음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레의 성결운동은 미국 성결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오순절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한국성결교회도 초기 웨슬레 신학을 발견하고 돌아가려는 성결의 복음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한국성결교회는 성결한 신앙과 생활, 즉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체험하고, 전하고,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교단이다.  일찌기 교단 헌법에 [본 단체에서 주장하는 교리는 새로 만든 교리가 아니요,옛날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던 교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느니라]고 명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성결복음에 입각한 한국성결교회의 비젼(Vison)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생명의 복음인 성결복음을 만방에 전하여 세계를 구원하여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으며, 성결의 복음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뜨거운 성결운동의 열기를 일으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개인주의적, 이기적인 위험성에서 벗어나 개인과 교회와 사회를 성결시키고  세계를 향하여 성결의 복음을 선포하는 세계지향적이고  선교지향적인 성결 운동으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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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 시대의 성결신학

                                        - 성결론을 중심으로 -


                                       1)정 상 운*

 

                 Ⅰ. 여는 말                 Ⅲ. 세속화 시대에 대한 성결신학

                 Ⅱ. 세속화의 의미         Ⅳ. 닫는 말
 

 

 

I. 여는 말

 


지난 한 세기 동안에 교회와 신학의 관계는 언제나 급변하는 사회 상황의 변수 작용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 즉 신학자와 교회가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전달하고 보호하는 근원적이며 평상적인 임무만 수행함으로써 그 사명을 다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사회는 그동안 자연과학과 기술공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생긴 인간의 문화생활의 전면적인 변화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가져온 지구촌의 정치 사회적인 변동과 이러한 변동에 수반한 팽창된 세속주의는 기독교의 종교적 위치와 가치관을 인간생활의 한구석으로 몰아내어서 교회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신앙생활은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하게 되었다.2)

 

세속화 현상은 대략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되어, 20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심화되었다. 현대인은 진리를 상대적으로, 실제를 역사적으로, 인간을 기능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으로 치달았다.3) 이러한 급변한 역사적 상황에서 교회에 미친 다양한 현대사조의 영향으로 1950년대 후반에 고조된 급진적 세속화 추세와 때를 같이하여 세속화 신학이 발전되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전통적인 신학 주제들에 대해 다분히 반동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4) 한국교계와 신학계는 서구교회보다 10여 년 늦게 이에 대한 관심이 쏟아져 1960년대에 들어와 기독교 ‘세속화’(Secularization)라는 술어를 통하여 진보?보수간 신학자들간에 논쟁을 넘어서 도에 넘치는 감정대립을 보이기까지 큰 논란이 있었다.

 

 

1960년대 3월에〈기독교사상〉에 J. 브라우어의 “세속주의”를 필두로 해서 세속화 논의가 소개된 후, 1966년까지 3년여에 걸쳐 〈기독교사상〉지가 1965년 2월호부터 특집으로 다룸으로 해서 세속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연구되었고,5) 이 문제가 크게 한국교계에 환기된 것은 서남동 교수가 1966년 1월 6일 온양에서 모인 기독자교수협의회에서 행한 주제 강연인 “세속화 과정과 그리스도교”라는 글이〈기독교사상〉에 전부 게재됨으로서였다.6)

 

 

이 일을 계기로 하여 구미 각국에서 논의되어 오던 기독교 세속화 문제는 1960년대에 들어와 외래사조로 인한 제 교단들이 교단 분열이라는 쓰라린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세속화 또는 비종교화라는 용어가 소수의 사람에 의해 패션 쇼처럼 한국 신학의 전시대에 놓여지자 이에 대한 찬반론으로 다시 심한 반목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세속화 논의가 대체로 1960년대 세계교회가 참여하고 있는 세속화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고, 1960년대 말쯤에 가서 끝이 났다.7)

 

 

한국성결교회는 1960년대 한국교회의 세속화 논의과정에 개입하여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세속화론에 대한 위험성과 탈선을 경고하고, 복음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세속화론에 대한 찬성의 입장이 공고화되고, 또한 21세기에 세속화라는 현대사조의 변화의 파고는 지난 세기말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우리 앞에 다양한 위협과 도전으로 놓여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와 마찬가지의 배타적 자세의 일관성이나 보수적인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21세기의 급속한 사회적 변화를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하여 과거의 불필요한 구조와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세워 가는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 있어야 한다.8)

 

종교와 문화의 상대성을 철저하게 인정한 나머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상대적 공론을 표방하는 다원주의 원리와 무신론적인 현대주의, 경제 효율의 법칙 아래 무한 경쟁과 자기 생존을 향해 나가는 세속화의 시대적 변화에 대해 분명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곡해되어지고 성경의 권위가 무시당하면서 각종 이단사상과 세속적인 풍조가 교회 안에까지 침입하여 교계는 물론 사회까지도 극도의 혼란에 빠뜨려놓은 위급한 이 때에 과거 영국에서 일어났던 영적 혁명과 같은 복음주의 신학적인 대안으로서의 패러다임의 변형이 지금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9)

 

 

세속 현대사회의 다원화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대인들의 질문들에 대하여 복음이 어떻게 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성결교 와 관련된 신학자들도 고민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복음주의는 복음의 본질에 관한 한 어떠한 변화도 용납할 수 없지만,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 면에서 변화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여 수정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참신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새 천년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방향에서 재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10)

 

 

바야흐로 몇 년 뒤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한국성결교회도 현대 세속화 시대에 자기정체성 확립뿐만 아니라 성결신학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통하여 시대를 계도하고, 선도하는 역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Ⅱ. 세속화의 의미

 


1. 세속(Seculum)의 어의(語義)

 


세속의 희랍어적 용어는 κοσμικóς이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나타났는데 ‘세상에 소속된’(belonging to the world)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유대 랍비들이 외래어로서 채용하여 ‘온 세계에 응용하는’(applying to the whole world)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초대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에 속한 것’(which belongings to this world)의 뜻으로 사용되어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시적인 삶을 의미하였다.11)

 

 

구체적으로 ‘세속’(世俗, seculum)이란 말의 어의는 중세에 사용한 라틴어로서 거기에는 기독교 용어 라틴어에 세계를 의미하는 두 가지 낱말이 있는데, 곧 saeculum과 mundus다. saeculum은 age를 의미하고, mundus는 world를 의미한다. 우리말에 세계(世界)는 시간의 차원을 의미하는 ‘세’(世)와 공간의 차원을 의미하는 ‘계’(界)가 합쳐서 세계가 되었고, 인간이 태어난 환경에는 시대(age)와 세계(world)의 두 영역 내지 차원이 있다.12)

 


2. 세속화의 의미

 


영어에는 형용사 ‘세속적’(secular)과 세 개의 명사, 즉 ‘세속적인 것’(the secular), ‘세속주의’(secularism), ‘세속화’(secularization)가 있는데 secular와 secularism은 공통으로 사용되고, the secular와 secularism은 기술적 의미를 가진 용어로서 세속화 논의에서 사용된다.13) 흔히 세속성(secularity)과 세속주의(secularism) 이 두 낱말은 구분하여 사용한다.

 

 

아울러, 이에 해당하는 형용사인 세속적(secular)과 세속주의자(seculartist)도 구분하나, 이러한 구분은 다소 인위적인 것이어서 좀 부자연스럽게 느낀다.14) secular는 거룩한(sacred)의 반대어로서 종교에 대한 일차적 관심이 아니고, 생의 영역에 관한 것으로 사용된다.15) secular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의미와 특수한 의미를 다같이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secular는 현세의 일들과 관심거리에 전심하는 것을 의미하며, 통상적으로 영적 또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물의 전 체계를 거부한다.

 

 

보다 특수한 의미로는, secular라는 용어는 인간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 주장이나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하게 행하는 생활에 대한 견해를 의미한다.16) 그리고, 세속주의(secularism)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에 의해 만들어진 말로 “종교적 가치나 초월적 실재를 고려해 넣지 않는 생의 철학과 태도”를 지시하는 것이었다. 이 말은 확실히 그 의도에서 경멸적인 것이며,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사용한 대로 그것의 인생관을 거룩한 것으로서 부정한다. 세속화는 서양에서 오랫동안 작용해 왔고, 근래에 와서 매우 빠르게 증대한 현대화의 과정, 중세기의 교회 지배로부터 인간주의에로의 인간 이성의 해방, 자율의 성취과정이다.

 

 

Macquarrie는 세속성(secularity)을 현대과학적 태도와 더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이 이 관점에 찬동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한편 세속주의(secularism)를 단지 과학을 통해서만 어떤 진정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구체적인 것과 이 세상의 인간사상만이 관심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엄격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17) 또한 그는 ‘세속적’이라는 의미를 다음의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세속적이라는 것은 시간적이고, 영원한 것에 반대된다. 이것은 ‘세속적’이라는 라틴어 seculum의 본래의 의미를 반영하는 것으로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세대(generations) 또는 시대(age)를 의미한다. 이것은 역사 즉, 시간 속의 있는 인간의 관심사를 말하는 것으로 타계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으로써 이 세상적인 삶에 속하는 것(이 세상적)으로 말할 수 있다.

 

 

둘째, 세속적인 것은 보다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것의 반대되는 것으로, 세속주의자는 세속적 활동들과 비교해 볼 때 종교적 활동들은 비현실적이고, 그림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셋째, 문화와 지식의 영역에서 세속적인 지식은 인간의 탐구에 의해서 얻는 지식과 인간의 합리적 능력과 그의 관찰 능력의 운동에 기초를 둔 지식으로 자연과학이 그것에 대한 전형적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방식에서 얻는 지식은 신학(계시에 기초를 두고 있는)과 대립 속에 있고, 옛 형이상학에도 반대된다.

넷째, 세속적 인간은 자율적 인간으로 인간이상 더 높은 존재가 없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들을 창조하고, 자신의 표준과 목적을 세우고 자신의 구원을 성취해야 한다. 따라서, 자율적 인간은 신앙의 삶에 반대하며, 거부한다.18)

 

 

세속화의 의미는 요컨대, 기독교의 수적 감소와 사회적 영향의 감축, 그리고 세속적 영역으로의 적응과 전이의 현상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교회는 세속화를 일차적으로 ‘비기독교화’(de- christianization)와 그 사회적 결과로 이해하는 반면, 한국교회는 이 용어를 한결같이 현대의 이데올로기들, 유행하는 풍조들, 또는 종교적 혼합주의와 같은 세상 정신의 유입과 관용을 통한 교회의 영적 타락을 서술하는 데 사용한다. 이것은 로마서 12:2에 나오는 ‘세상을 본받는 것’, 즉 ‘세상화’의 개념과 거의 동일하다. 서구적 이해가 사회적이며 현상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는 데 비해, 한국적 견해는 영적이며 교회적인 측면을 강조한다.19) 리트펠드(Boudewijn Rietveld)는 세속화를 ‘창세기 3장 타락의 역사가 세속화의 시작의 역사로 세상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존재하기 위한 삼위 하나님으로부터의 이탈’로 정의하였다.20)

 

 

 

 

 

 

 

 

 

Ⅲ. 세속화 시대에 대한 성결신학

 


기독교는 한 가지 종교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가르쳐 주는 종교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속된 사회와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하며 또한 그 다른 점을 자랑삼아 왔고 그것을 말하기 위하여 교회는 이 때까지 싸워왔던 것이다.21)

 

 

 21세기 새 천년에 들어와 작금의 시대 현실은 인간 스스로 창출해 낸 세속적 가치를 존중하고 기독교 정신을 역행하는 세속화를 향한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관차와 같이 질주하고 있다. 21세기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바, 이 시대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기치아래 경제효율의 법칙들이 정치?사회?문화 제반을 지배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22) 세속화 시대의 마지막 판도라 상자는 세계화와 지방화?다원화?지식정보화로 포장되어 있고, 그 속에는 반윤리적 부도덕성, 환경 파괴, 경제?사회적 적자 생존과 약육강식을 통한 이익추구로 인해 실직, 빈곤, 기아, 세대?계층간의 갈등 등 변화된 시대의 각양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1세기 이 시대는 과거와 다른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서 인류에게 새로운 생활방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 변화는 도덕적인 영역에서까지도 새로운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23) 세속적 가치가 맹위를 떨치는 이 시대에 한국성결교회는 이에 대한 본연의 교단 창립 이념에 따른 정체성 규명과 적용에 따라 현실적인 신학적 제안과 실천적인 행동 강령들을 가지고 세속화 시대를 주도하고 선도하는 역사성 있는 교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성결교회는 본연의 정체성적 특성이 자생성과 성결성이라는 개체적 고유성을 강화함과 함께 우주적 조화성으로 세계 교회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둘째로 소극적 내지는 역기능적인 면에서는 새 시대의 세계화와 지방화의 현상 속에서 야기된 문제인 무한경쟁과 극심한 대립 내지는 충돌에 한국성결교회는 성결성, 곧 사랑으로 극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24) 따라서, 세속적 가치를 절대시하고 도덕적 타락이 극도로 팽배한 이 시대에 반성서적이며, 인간중심 가치의 세속성을 제압하고, 끊어내며 교회가 교회답고, 성도가 성도답게 살아가는 성결성, 성결신학이 요청됨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1. 성결신학의 핵심으로서 성결론

 


한국성결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사중복음이다. 한국성결교회는 1907년 설립 때부터 사중복음의 전파를 그 사명으로 해왔다.25) 중생?성결?신유?재림의 사중복음 중에서도 한국성결교회의 핵심적 신학은 성결론에 있다. 성결론은 사중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신학사적으로 성결교단 신학이 성결론(성결신학)으로 집약된다는 설명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한국성결교회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나 기독교대한성결교회나 할 것 없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중생(Regeneration)한 자는 성결(Holiness)을 추구해야 하며, 신유(Divine Healing)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한 병고침을 넘어서서 하나님 앞에 성결한 삶을 살아가고, 장차 재림(Second Coming)하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성결한 심령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성결론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집약이요, 강령으로써 넓은 차원에서 본다면 창조론과 구속론, 그리고 종말론을 꿰뚫는 기독교 신학의 근간이요, 복음의 골간인 것이다.26) 따라서 성결신학의 중심은 사중복음, 사중복음 중의 중심은 성결론으로 성결신학은 곧 그 핵심과 정점이 성결론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직 목사는 성결교회가 1907년 설립시에 이미 조선에 개신교가 들어와 활동을 하고 그 결과로 많은 교회가 세워졌지만 완전한 은혜, 즉 성결의 도리를 강력하게 전하는 단체가 없기에 주께서는 미신자는 물론이고 신자에게까지 순복음(사중복음)을 외치며 이단과 세속화를 공격하는 성결교회를 세우셨다고 피력하고 있다.27)

 


2. 요한 웨슬리의 성결론 이해

 


앞서 논급한 바와 같이 사중복음의 중심이 성결론이요, 성결론은 한국성결교회의 교리적 요체이다. 그러나 성결론은 성결교회나 웨슬레안 교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성결을 강조하여 왔다. 동방과 서방교회 교부들은 “온전한 그리스도인”(Christian Perfection)을 강조하여 왔다. 물론 동방교회의 온전한 기독교인의 개념이 플라톤적 요소가 있고, 서방교회의 그 개념이 율법주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은 그들의 신앙과 신학에서 핵심적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성결교회의 성결론의 특징은 성결론을 처음으로 말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전통이 가지고 있는 성결론을 재확립했다는 데 있다.28)

 

 

교회 역사상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완전한 사랑에 대한 교리, 또는 성결론29)을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보다 바르게 연결시킨 사람은 없었다.30) 이것은 웨슬리신학에서 성화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지적하는 말로서, 웨슬리신학에서 성화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다.

 


웨슬리는 두 개의 근본적인 교리로서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에 중요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중에서도 더욱 중요시되는 것은 성화이다.31)

 


웨슬리는 성화를 구원론의 범주 안에서 파악하는데, 구원론의 핵심은 칭의와 성화이다. 웨슬리는 루터(Luther)가 천주교의 행위신학, 즉 공로구원에 반대하여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주장한 개신교 진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화에 대해서는 그는 종교개혁자들과의 의견을 달리한다.

 

 

루터는 ‘의로운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을 주장하며 인간 자신의 내부에서의 의인과 죄인의 긴장에 찬 투쟁적 공존에서 철저한 죄의 고백과 거기에 따른 은총의 간구를 강조한다. 즉, 우리의 죄악된 내면성이 변화되어 성결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낯선 의를 전가 받음으로 성결해짐을 말한다.32) 웨슬리는 중생을 성화의 첫단계로 보았다.33)

 

 

이것을 그는 초기 성화로 설명하며, 중생 때부터 점진적인 성화가 시작된다고 한다.34) 이 점에서 칼빈(Calvin)과 동일한 견해를 가진 웨슬리는 성화를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칼빈과 달리 이 세상에서 온전한 성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웨슬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온전한 성화란 죄 없는 완전한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즉, 웨슬리는 하나님 형상의 핵심을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능력(도덕적 형상)이라고 말하고, 이런 관계 회복을 이 세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35) 조종남은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속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시작되며, 은혜만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는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그 성화의 과정의 성격에서는 서로 이해를 달리하고 있다. 즉 순간적인 단계로서 온전한 성화(또는 성결)가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그는 종교개혁론자들의 해석과 구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화의 과정이 있다는 성화론의 대의에서는 같으나, 그 세부 이해(circumstance of the doctrine)에서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보다 더 자세하게 또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점으로 보아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더욱 진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다.36)

 


칼빈과 마찬가지로 루터나 쯔빙글리(Zwingli) 같은 종교개혁자들도 현세에서의 온전한 성화를 인정치 않았으나,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로 인해 중생 체험 이후에 “제2의 축복”(Second Blessing),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 불리우는 두 번째 은총의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초기 성화 이후에 자신의 무능과 아직도 자신의 심령 안에 남아있는 죄를 깨닫고 중생 이후에 오는 또 하나의 순간적인 체험인 온전한 성화를 모든 신자들이 경험해야 할 것을 권고하였다.37) 웨슬리는 내재적 죄를 씻어주는 성결의 은혜는 온전한 성화(성결)의 단계에서 온전히 이루어져서 죄가 없다라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하였다.38)

 

 

웨슬리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온전히 성화된 상태, 즉 모든 죄에서 정결케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으나, 다시는 타락하여 죄를 지을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는 절대적 의미의 완전이 아니고, 상대적 의미의 완전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완전한 사랑으로 자력적이거나, 독립적인 완전이 아닌 신의존적인 완전이다.39) 성화의 교리를 자신의 신앙체험으로부터 신학적으로 정립한 웨슬리는 성화의 교리를 강조하고, 전하는 것을 자신과 자기를 추종하는 메소디스트들에게 주께서 맡기신 위대한 기탁물로 확신하였다.40) 따라서 웨슬리는 완전, 즉 온전한 성화는 개인적인 내면적인 성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회적 성화로서 이 땅에서 죄를 벗어난 삶을 살게 하는 성결의 복음을 전파하는 부흥운동을 벌임으로써 이후 성결운동의 역사적인 신학적 기원을 갖게 하였다.

 

 

 


3. 웨슬리의 성결운동이 18세기 영국사회에 끼친 영향

 


웨슬리의 성결운동은 산업화가 시작됨으로 많은 문제점을 도출시켰던 영국 사회에 모든 죄로부터의 자유라는 성화의 메시지를 통하여 기존 영국사회에서 묵인되어 오던 죄악들을 그냥 간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41)

 

 

18세기 말 영국은 농업국가(agriculture)에서 수공업국가(manufacture)로 변형되는 산업혁명의 전야를 맞게 되었다. 1769년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는 최초로 효과적인 증기엔진, 1770년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ves, ?~1778)는 방적기, 1768년 리챠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 1732~1792)는 방직기, 1784년 에드문드 카트라이트(Edmund Cartwright, 1743~1823)는 동력직조기(power-loom)를 만들고, 1762년 죠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 1730~1795)는 스태포드셔(Staffordshire) 도자기 제품 공장을 가동했다.

 

 

산업과 사회적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에 수반된 문제들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종교도 극히 실제적인 재조정 과정을 겪게 되었다.42) 개인적인 신앙의 침체는 도덕적 수준을 허물게 하였다.43)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민의 신앙은 전반적으로 침체 분위기였는데 18세기에 들어와 당시 영국적 상황과 맞물려 전통적 기독교 신앙이 그 영향력을 잃어감과 함께 영국에는 도덕적 수준이 저하되었고 공직사회에는 부패가 만연하였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국 사람들이 그들의 정열을 신앙으로부터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 방면으로 돌린 필연적 결과였다.

 

 

 18세기를 통해 영국인의 교회 출석률은 전 인구의 20%밖에 되지 않았다.44) 이미 18세기 이전 17세기부터 영국에서 추진한 이성의 종교, 이신론(Deism)은 영국을 강타하고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파급되었다. 처베리(Cherbury)의 군주, 에드워드 허버트(Edward Herbert, 1583~1648)가 1624년 이신론의 기본교리들을 제시한 이후부터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이신론은 영국 상류층의 사고(the thinking of the upper classes)를 지배하였다.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자기 피조세계를 자연법(natural laws) 아래 조종받도록 하셨기 때문에 기적,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로서의 성경, 예언, 섭리, 신인양성이신 그리스도 등이 필요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리스도는 단지 도덕 선생이라고 가르쳤고, 예배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덕과 경건(virtue and piety)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예배였다.45)

 

 

이신론의 결과는 결과적으로 교회와 사회를 황폐화시켰다. 따라서 교회의 설교는 흔히 도덕적 상투어구로 가득찬 긴 훈계에 불과했다. 고위 성직자들은 5,000개가 넘는 교회의 하위 성직자들이 일년에 20파운드 내지 50파운드 정도밖에 받지 않을 때 많은 급료를 받았다. 그들은 지방의 대지주들의 식객이 되어 그들의 조악한 운동과 술잔치에 참여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도덕 역시 땅에 떨어져 18세기 초반에 값싼 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수용소(asylum)로 보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므로 사망률이 증가했다. 정치지도자,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는 24살 때 10만 파운드를 날렸다고 말한다.46) 웨슬리는 당시의 반법종교(irreligion)에 대해 ‘영국의 현상태는 어떠한가?’에 묻는 질문에 ‘사악한 상태에 있다(It is ungodliness) 사악함이 모든 곳에 만연해 있고, 계속되고 있으며, 기묘한 특색을 보이고 있다’고 답하였다.47) 18세기 그 시대는 분명히 병든 시대(sick century)로서 신학에 대해 의심하며, 열정이 결여된 시대였다.48)

 

 

드디어 심원한 변화가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 변화는 우선적으로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결과였고, 모든 영어권 사용국가에 복된 흐름으로 넘쳐 흘렀다. 18세기 초에 각성의 조짐이 스코틀랜드 두 형제 에벤에젤(Ebenezer, 1680~1754)과 랄프 어스킨(Ralph Erskine, 1685~1752)의 지도 아래 복음주의 부흥 운동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이후 세 명의 위대한 지도자 존과 찰스 웨슬리(John and Charles Wesley) 형제와 화이트 필드(George Whitefield)의 출현은 복음주의 부흥운동을 당시의 강력한 조류로 등장하게 하였다.

 

 

이 운동은 40년간 뚜렷이 세 가지 다른 것으로 구분되지만 밀접하게 관련된 흐름 안에서 모두 영국국교회와 연관을 맺고 발전하였다. 웨슬리 형제의 감리교(Methodist Societies), 화이트 필드의 칼빈주의적 감리교(Calvinistic Methodist), 그리고 좀 더 전통적인 교구의 노선을 따르는 앵글리칸 복음주의자들(Anglican Evangelicals)의 3조류이다.49)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 청교도주의 이후 발생한 감리교 부흥운동은 영국의 세 번째 종교각성운동이었다. 그것은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는데, 종교에 관한한 18세기를 지배했다. 역사가들은 감리교 운동(Methodism)이 18세기 위대한 역사적 현상의 하나로서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에 쉽게 비견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50)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예루살렘 오순절 이후에 18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오순절운동이었다.51) 웨슬리는 말을 타고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지를 20만 마일 이상 여행하였고, 약 42,000번 설교하였고, 200권 정도의 책을 저술하였고, 그의 추종자들을 조직했다. 중요 교리는 앞서 논급한 중생의 순간적인 경험을 통한 신앙에 의해 얻어진 칭의(justification)와 그리스도인의 완전(perfection), 완전한 사랑(perfect love)의 교리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신자들의 심령 속에 가득하므로 죄를 축출하고 완전한 성결의 삶을 촉진시킬 것이므로 기독교인은 동기(motive)에서 세속적인 삶에서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가능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또한 이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죄가 없거나 무오한 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심령은 동기면에서 죄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52) 또한 복음은 개인 심령 부흥뿐만 아니라 세속사회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감리교 신앙부흥이 영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술, 노예제도(slavery), 전쟁을 반대했다.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부분적이지만 술 판매가 중지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746년에 영국 최초의 무료 의무실이 설립되었다.53) 웨슬리는 감옥의 개혁뿐만 아니라 빈민구제를 위한 기금모금을 통해 의복과 음식을 분배해주고, 법률적 특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기독교적 관심을 일으켜 1787년에 자선우정회(Strangers’ Friend Societies)를 만들게 하였다.54) 웨슬리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으로 인해 영국은 사회적 의무를 깨닫고, 세속사회에 대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표본적 모델을 이루며 개인적 성결을 넘어선 사회적 성결까지 성결론을 확장시켰다.

 

 

결국,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요한 웨슬리의 사회적 변혁을 포함한 성결운동은 19세기 미국에서 감리교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서 성결을 강조하게 하였고, 이후 한국성결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19세기 성결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19세기 성결운동의 부산물로 베빙톤(D. W. Bebbington)은 미국에서 전통적인 세속적 악단과 민속 합창단의 폐지를 통해 종전의 새로운 국면이 그 시대의 정신에 합당한 음악적 고유어를 택하는 변화가 찾아오고, 또한 여성들의 사역을 확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레크레이션과 달리 세속적 놀이 행사(돈을 따기 위한 카드놀이, 극장, 오페라, 무도장에 단골손님, 경마장 경기에 참여)할 것은 반대하는 장벽이 높이 세워지고, 알코올에 대한 절제 여론이 강화된 것을 지적하였다.55) 미국에서의 이 같은 결과들은 청교도 혁명이 실패한 영국을 산업혁명 과정의 위기에서 구원한 감리교운동, 즉 웨슬리의 성결운동을 통한 사회적 변혁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이 점에 감안하여 19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감리교 신학자들과 해방신학자들이 사회적 성결(성화)과 사회적 해방을 웨슬리신학에서 재해석하여 왔다. 20세기 초 시카고 게렛(Garret)신학교에서 가르쳤던 헤리스 플랭클린(Harris Frankline Rall) 교수를 비롯해서 레온 힌슨(Leon Hynson), 알버트 아우틀러(Albert Outler), 데오도어 러년(Theodore Runyon), 남미 해방신학자 죠세 미퀘즈 보니노(Jose Miquez Bonino), 여성해방신학자 레티 러쎌(Retty Russell) 등이 그의 성결(성화)신학을 사회적 해방의 개념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데올로기적 해방운동이나 폭력적 혁명으로서의 해방을 말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의 해방, 성령의 사랑과 자유의 은총을 힘입어 사회의 구조적 악과 제도적 모순에서 해방시키는 운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 성결(성화)신학은 현대 해방운동의 영성회복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 감리교회(U.M.C.)는 웨슬리의 사회적 차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그의 영적, 내면적 성결(성화)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한국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개인적 성결(성화)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기에 사회적 성결(성화)의 차원에 무관심하여 왔다.56) 한국성결교회도 교단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웨슬리의 개인적 성결에 머물러 세속사회를 향한 사회적 성결의 변혁적 차원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18세기 웨슬리 신학이 말하는 바 성화, 즉 완전한 성결 개념이 지향하는 바 개인적 성화와 동시에 사회적 성화를 양면으로 강조하는 내용을 그대로 전수받지 않고, 그 중간에 19세기 성결운동을 통한, 즉 개인적 성결체험으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한 교리적 내용을 단편적으로 동양선교회를 통해 신학적 전통유산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성결교회의 성결신학의 핵심인 성결론은 성령세례, 즉 중생한 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순간에 받을 경험과 원죄에서도 정결케 씻음을 받고, 성별하여 능력받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57) 이 같은 내용은 19세기 성결운동이 성령세례를 강조하면서 따라온 자연적인 결과로 ‘능력받음’ 외에는 모두가 웨슬리 부흥운동 즉, 웨슬리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어온 개념들이다.58) 그러나 한국성결교회가 가르치는 바 사중복음의 성결론은 많은 장점과 함께 세속화된 현시대에 와서 보완의 필요성을 제기받는다. 21세기 들어와 인류사회는 더욱 점증되는 도덕성 상실과 사회 구조적 악, 그리고 생태계 파괴, 더 나아가 인간복제 또한 배타적 독존을 거부하고 다원화를 주장함으로 신학과 교회에 도전하는 세속화 시대에 놓여져 있고, 새로운 문제제기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하고 있다.

 

 

따라서, 19세기 성결운동에서 성령세례를 통한 순간적 성결체험 신앙은 개인적인 체험신앙으로 하나님과 신자 개인 사이의 내면적 깊이를 더해주고,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 주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개인주의나 분파주의, 더 나아가 영적 체험의 신비주의로 발전되어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무관심과 몰역사성을 보이는 한계를 드러낸 점을 보완해야 한다. 따라서, 현 성결교회의 성결신학, 즉 성결론은 성화의 양면을 강조한 웨슬리 신학의 내용을 절대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세속화 현시대에 개인적 성화에 머무르는 반편의 신학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성화로까지 나가는 온전한 신학을 주장해야 한다.59) 사회적인 성결(Social Holiness)이외는 다른 성결이 없다고 주장한 웨슬리에 대해, 브래디(John W. Bready)는 웨슬리 신학을 단적으로 가리켜 ‘사회적 종교’라고까지 말한 점을 한국성결교회는 오늘의 상황에서 깊이 생각해야 한다.60)

 

 

 

Ⅳ. 닫는 말

 


주지한 바, 웨슬리는 성화를 성결과 사랑으로 이해하여, 성결이 개인적 성화라면, 사랑은 성육신적인 요소로 사회적 성화로 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성화를 말함으로써 중생의 체험을 한 성도는 당연히 그 관심이 세속사회를 변혁시키는 사회적 성결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논급한 바와 같이 웨슬리는 한편으로는 경건주의적 요소를 갖고 인간의 타락성을 지적하며 개인 영혼 구원과 개인적 성화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건주의적 내세지향적 천국관에 머무르지 않고 현세적 천국을 실천하는 이 땅에서의 사회적 성화를 말함으로 인해 세속 사회를 복음으로 선도하고, 변혁시키는 일을 하였다. 초월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면서도 그는 세속 역사와 사회 속에서 실현되는 내재적 하나님 나라도 강조하였다.

 

 

앞서, 세속화 개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속화시대의 정점에 놓인 새 천년에 들어와 오늘의 한국적 사회상황은 한국성결교회의 성결신학, 즉 성결론의 기독교 윤리와 사회적 적용에서 그 어떤 시대보다 폭넓게 적용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성결의 복음의 지평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 신학적 이론과 실천적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놓음으로 통전적 구원의 이중 범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18세기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운동이 누란(累卵)의 위기에 놓인 영국과 유럽을 구한 것과 같이, 오늘날 세속화 시대의 각양의 위기에 놓인 한국 사회와 교회를 인간 영혼 구원의 개인적 성결운동에서 사회구조적 그리고 근원적으로 윤리적인 변혁을 일으키는 사회적 성결운동을 동시에 한국성결교회가 펼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산업화와 정보화로 인한 맘모니즘과 문화의 세속화, 과학의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자만과 허영, 절대적 가치관과 윤리의 붕괴로 세속화된 현대사회의 황폐화와 자유신학의 공허함으로부터 이 땅에 구원과 정화를 가져다 주는 치유의 방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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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 웨슬리와 민중신학

                            김홍기(감리교신학대학)

 

           1992년 감리교신학대학의  웨슬리회심기념 제6회 신학공개강좌
                  '웨슬리신학의 현대적 조명'중 두번째강의 내용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  사실의 단순한 객관적  묘사의 서술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요 만남이다. 역사연구란 과거
사실을 암기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요, 오늘의  역사적 상황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이다. 오늘의 실존적,  상황과 만나는 역사해석이 없다면 그것
은 죽어버린 역사다. 따라서,  역사신학의 일부분인 웨슬리의 신학이 오늘
의 현대 신학적, 현재의  한국감리교적 문제와 대화하여야한다. 그것이 역
사신학적 과제다.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의 모습과 한국 교회의 신학적 풍
토를 진단해 봄이  있어서 웨슬리신학과 만나는 일은  너무나도  절실하고
긴요하다. 특히, 현대 해방신학적  조명 - 여성해방, 흑인해방, 남미의 해
방신학 - 에서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신학을 재해석하는 일이  최근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이런 해방신학적 시각에서 웨슬리와 민중신학을 재해
석해 보고 비교하여 보는 것이  아주 흥미로운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아
주 가치 있고 귀한 일로 여겨진다.


   더욱이, 역사연구는  과거의 현재의 만남일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내일의 한국감리교회, 내일의  한국사 - 통일의
역사적 과제 - 창조를 위한 신학적 에너지를 웨슬리와 현대신학 특히 민중
신학과 대화함에서 새롭게 창출해 낼 수 있다.
 

 

 


    = 성화 교리의 역사신학적 배경 =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신학은 그의  탁월한 역사 신학적 재해석을 그 
배경으로 두고  있다. 그는 여러 역사신학적  전통을 에큐메니칼하게 종합
(ecumenical synthesis)하였다.

 


   먼저 그의 구원론은 루터신학  및 모라비아주의 (Noravianism) 에 의해
영향받았다. 그의 올더스게잇체험은 루터의  로마서 서문 특히 로마서 1장
17절 해석을 어떤 청년이 읽는 것을 듣다가 뜨겁게 일어난 것이다. 루터의
신앙의 인화(Justification by faith)를 모라비안교도로부터 배웠다. 그래
서 철저히 신앙으로만 의롭게 됨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루터신학과 모
라비안주의의 정숙주의(quietism,stillness) 를  비판한다. 행동하지 않는
율법폐기론(antinominianism) 에 이를 수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루터적,
모라비안적 의인화는 전가 되고 주어지는 의(imputd righteoursness) 만을
강조하지만, 웨슬리의 의인화는  성도의 실성이 하나님의 의로움(iustitia
Dei)의 성품으로 화하는 것도   포함된다. 주어지면서도 본성적 변화를 일
으키는 의(imputed and imparted  righteousness)의 양면성을 웨슬리는 믿
는다. 따라서, 루터와  모라비안주의의 신앙제일주의(Solafieism)와 '용서
받는 죄인' (simul justus  et peccator)의 개념을 웨슬리는 비판한다. 의
인화 뿐만 아니라 의인화의 요소를  강조하고 계속 죄인으로 남아  있는게
아니라   죽기전에도  완전한   의인  곧,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
(righteorsness and holiness of God)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partaker) 혹
은  파트너(partner)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둘째로, 웨슬리는  칼빈신학적  요소를 받아들인다. 곧, 칼빈의 율법의
제3의 용법 (the third use)  을 수용한다. 루터는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
는 역할 (제1의  용법) 과 공민법을 위반한  형사적 범인을 다스리는 역할
(제2의 용법)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칼빈은 제3의  용법으로 성도를 성화
시키는 채찍질의 역할을 말한다. 이런 제3의 용법이 웨슬리에게 강하게 나
타난다. 그래서 웨슬리는 산상수훈을 여러번 나누어 설교하면서 그의 종교
개혁 교과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칼빈의 성화론은 어디까지나 전가되고
주어지는 성화(imputed sanctification)  이요, 인간의지는  노예신세임을
웨슬리가 비판한다.  웨슬리는 인간  의지의 참여가  강조되는 신입협조설
(Synergim) 적  선행을 강조하는 성화(imputed  and imparted holiness)를
말한다.


   셋째로, 영국성공학적, 로마천주교적 영향을 또한 받았다. 그가 올더스
게잇을    경험하기   전까지    영국성공회적,    가톨릭적   선행의인화
(Justification  by good  works)를 추구하였다.  그래서  (Jeremy Taylor
Thomas A Kempis William Law 등의 신비주의적 경건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신앙의 인화를 강조하는 개신교 종교개혁전통을 강조하기에 이르렀고 신비
주의를 비판하게  된다. 신비주의가 성서보다  체험을, 공동체적 성화보다
개인적 고독한 성화를 강조함을  웨슬리는 비판하면서 기독교는 사회적 종
교요, 고독한 은둔자의 종교를 만들려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성화와  선행 - 의인화 이후의 - 사상
은 성공회와 천주교의  영향을 다분히 많이 받았다.  그의 신학의 4대원리
중 셋 -  성경, 전통, 이성 -은 영국성공회에서  그대로 전수한 것이요 그
위에 체험만 웨슬리가 추가하였다.


   넷째로 웨슬리의 복음적 신인협조설(Evangelical synergism),은총론 선
재적 은총론은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았다. 어거스틴의 말, "우리 없이 우
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Quifecit nos sine nobis,non salvabit nos sine nobis)를 인용하면서 선
재적 은총(prevenient grace)과 은총이  주도권적으로 개입함에 대한 인간
의 수동적 의지적 참여(Evangelielical Synergism)를 웨슬리도  강조한다.
또한,어거스틴의 은총론의 양면성(imputation and inpartation) 을 루터는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웨슬리는  수용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
(concupiscence) 때문에 죽기 전에 완전히 불가능하며, 불가항력적 예정의
은총이 강조되는  어거스틴의 구원론은 웨슬리에게서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다.


   다섯째로, 웨슬리는 또한 동방교회(Greek Or thodox Church) 전통을 강
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Macarius the  Egyption 을 통해 Gregory of Nyssa
를  이해하게   되었고,  사무엘  웨슬리(부친)의  권고에   의해    John
Chrysostom을 열심히 읽게 되었다.  이런 동방교부들에게서 자유의지의 참
여, 점진적 성화, 그리고  완전의 개념을 배웠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금욕
주의적, 신비주의적 성화개념보다는 사랑의 행동주의로써의 성화개념에 더
욱 큰 영향을 받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서 사랑의 에너지로 채워지는
신앙을 배웠기에 선행사상의 강조되고 사회적 성화의 행동주의가 강조되는
성화신학을 웨슬리가 형성허게 된 것이다.
 

 

 

 

   = 사회적 성화의 특징 =
   
     1.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성화

 

        웨슬리의 성화개념은 소극적 의미에서 성결(holiness) 이다. 이것
은 의인화의 순간에 외적  행위죄(actual sins) 가 사함 받았으나, 내적죄
(innersin, roots  of sin,original sin)는 남아  있기에 (remain) 성화의
은총이 필요하다, 죽기전에도 이  내적죄가 뿌리 뽑히는 완전한 성결이 가
능하다고  웨슬리는  이해한다.  그러나,   완전한  성도도  의식적인  죄
(voluntary sin)는 안 짓지만  무의식적인 죄(involuntary sin)는 지을 가
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이 필요하다. 죽기전에도
이 내적죄가 뿌리   뽑히는 완전한 성결이 가능하다고 웨슬리는 이해한다.
그러나 완전한 성도도 의식적인  죄(voluntary sin)는 안 짓지만 무의식적
인 죄 (involuntary  sin)은 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성결의 요소(holistic foctor)는 더욱 적
극적인 성육신적 요소(incarnational factor)로 나타난다. 그것이 곧 사랑
이다. 그 사랑은 사회적 행동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사회적 참여,
곧  사회적   성화(social  sanctification)로  이어진다.   신앙의  본질
(essence)은 내면적일찌라도, 신앙의 증거   (evidence)는 외향적, 공중적
사회적이라고 Outler 는   가오한다. Hildebrandt는 복음의 인본주의적 요
소가 루터의 신학 속에서는  운명론적으로 무시되었지만, 웨슬레에 의하여
인본주의적 요소가 자리하게 되었다고 본다. 또한 세리 창녀 조인, 소외된
자들이 인간 대우 받던  예수시대처럼 웨슬리 시대에도 인간답게 인정받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Outler는 자신의 의로움만을 강조하고 내세지향적 구
원만을 강조하는  것은 불건전한 복음주의  (Unhealthy Evangelism) 인데,
웨슬리처럼 이웃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이 세상속의 하나님 나라 실현
을 강조하는 것이 건전한 복음주의 (Healthy Evangelism)이라고 해석한다.

 

 

 

   2. 사회적 성화의 가르침

 

      이 사회적 성화는 그의 논문들과 설교들에서 강하게 외쳐지고 있다.
웨슬리는 1772년 자유에 관한 논문 "Thoughts on Liberty" 1777년  노예해
방에 관한 논문  "Thoughts o Slavery", 그리고  1773년 가난에 관한 논문
"Thoughts on the Present Soarcity of Provisons"을 썼다. 가난과 경제에
관한 논문에서 그는 제도적  개혁을 강하게 부르짓고 있다. 그는 고용체제
의 개혁, 부자들의  사치와 음식 낭비에 대한  경고, 대자본가와 대지주의
독점화에 대한 비판, 시장경제(laissezfaire)의 모순지적, 및 부유층과 정
치지도자의 작은 세금부과 및  가난한 계층의 높은 세금 부담의 세제개혁,
상속재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사회에 환원할 것을 촉구하는 등 다양한 사
회 경제개혁안을  내놓는다.  또한  그의 설교에서 경제의  세가지 원리들
gain all yon can,save all you can,give all you can 을 주장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제3의 원리, 할  수 있는대로 모든 것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
는 청지기 의식을 강조하면서 나눠주는 자는 유대인 신앙 밖에 안되고, 십
분의 이를 나눠주는 자는 바리새인  신앙 밖에 안되고 참 크리스챤은 식구
들이 필요한 필수품을 사용하기 위해 애쓰는 것외에는 모두 나눠주는 것이
라고 말한다.  부자드에게 다가올  곤경을 위해 울라고, 돈을 사랑함이 일
만악의  뿌리라고,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고 말하는 것은 사단적이고 거
짓말이라고 지적한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돈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은
헌금만 의미하지 않고 이웃을 구제하고 나누어 주는 것도 뜻한다고 강조하
였다.

 

 

   3. 사회적 성화의 실천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경제 구조와 사회구조의
전환점에 서 있었다. 수공업에서  갑자기 기계공읍으로 바뀌면서 노동자들
의 심리적 불안, 정신적 발광, 심지어 어린아이들의  노동강요까지 일어나
는 사회상황이었다. 감리교의 부흥운동은  노동자들의 불안과 공포를 치유
해 주는 운동이었고, 최초의 영국 노동조합을 결성시켜 주었다. 1831년 전
국 노동자연맹 (The National  Union of Working Classes) 이 조직되었다.
초기 노동조합조직은 감리교 속회조직과  같았다. 노조 규칙이 속회규칙이
었고, 12명의  회원과 1명의 지도자로 구성되었고  속회처럼 매주 1페니씩
지불하여 정치적  자유를 얻고 권리를 찾는  목적에 사용하였다. 수천명의
노조지도자들이 모두  감리교도들이었고, 8천명의 감리교지도자들(속장,재
산관리집사, 평신도 설교가등) 모두  노등자 출신 - 민중 -들이었다. 그런
데, 놀라운 것은 감리교운동이 산업부르조아 (중산층, 고용주)와 프로레타
리아(무산대중, 노동자) 모두를 만족시켜 주고 양자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분배해가는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리교는
산업혁명의 자녀(A Child of  Industrial Revolution) fkrh Oscar Sherwin
은 해석한다 (Friend  of People). 또한 그는  당시 일어나고 있었던 Adam
Smith 와 Adam  Ferguson 의 시장경제 이론 (Theory  of Laissez - faire)
을 비판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요소 (gain all yor can, save
all can) 를 강조하면서도 재분배  운동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give all
you can). 또한 웨슬리는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선 지도자였다. 감리교회가
영국 각처에 개척되어가는 과정에  여성의 역할이 아주컸다. 특히, 과부들
이  재산을 헌납하여 예배당을 사거나 짓는일에 크게 봉사하였다. 순회 선
교하러 다니는 웨슬리에게 방을 제공한 사람들이 대부분 과부들이었다. 그
당시 여성들은 감히 공중  앞에서 말할 수도 없었는데, 웨슬리는 과감하게
여성에게 공중기도,간증, 권면, 속회운영 및 지도 그리고 설교의 기회까지
주었다. Sarah Crosby 는" 내 양을 먹이라" 는 음성을 듣고 속장으로써 용
기있게 속도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하여 20-30밖에 안 모이던 속회가 갑자기
2백여명으로 늘어 남으로써 웨슬리가  개인적 차원에서 - 연회에서 공식적
으로 인정안함 - 그녀의 설교를 허용하였다. Mary Bosanquet 은 남편 John
Fletcher 갑자기 죽자, 보수적인  사람들이 고린도전서 14장과 디모데전서
2장을 갖고 그녀를 비판했으나, 웨슬리는 1771년 그녀의 소명을 하나의 특
수한 부르심 (extraordinary call)이라고 받아들였다. 마침내 1787년 맨체
스터 연회에서 웨슬리는 Saran   Mallet를 공식적으로 여성 설교가로 인정
하였다. 그녀는 시각과 청각등 온몸의 감각이 마비 되면서 오직 말씀을 전
하는 권능만을 보유하게 되어, 이 특유한 광경을 보기위하여 2백여명 이상
의 무리들이 몰려들어 그녀의  설교에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연
회에서 공식적인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4. 해방신학적 해석

 

      이런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  혹은 해방운동은 현대의 해방신학적 조
명에서 다시금 재해석 되고 있다. Elie Halevy 는 그의 저서 The Birth of
Mothodism in England 와 England  in 1815 에서 감리교의 종교적 영적 폭
발이 참으로 혁명적인  정치력을 폭발시켰기에 불란서 혁명  같은  정치적
혁명이 영국에서는 안일어났다고 해석한다.  감리교도들에 의해 조직된 노
동계급 성장을 도모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James  H.Cone 은 흑인
예배는 흑인들의 영적 경험인 동시에 성령에 의한 자유의 투쟁의 공동체적
사건이라고 성화와  해방의 연속성을  흑인의 상황속에서  해석한다. Jose
Miques Bonino 는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 이해는 역사속에서 해방운동을 전
개하는 남미해방신학의  이상과 같다고 해석한다. Elsa  Tamez 는 제3세계
(남미) 의 해방 투쟁시각에서  웨슬리의 성화론이 재발견되어야 한다고 해
석한다  Theodore W.Jennigs,  Jr, 는  그의 책  Good News  to  the Poor
(1990) 에서 웨슬리의 복음적 경제론이 해방신학의 주제에 대한 신선한 충
격을 제공하였을 뿐 아나리, 해방신학 자체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고 관찰한다. Leon D,Hynson 의 책  To Reform the Nation 도 웨슬리의 사
회윤리적 성격을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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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리의  성화 신학에 대한 고찰

 

 I . 본론

 

   1 . 웨슬리 신학 형성의 배경.

 

 

    A) 요한 웨슬리 신학의 시대적 배경.

 

  웨슬리가 상았던 영국은 "Three Rs' Age"라고 일컬어진다. 첫째는 理 性의 시대(the age of erason), 둘째는 復興의 시대(the age of reviv-al), 셋째는 革命의 시대(the age of revouition)였다. 이성의 시대란 유럽 대륙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독일의 合理主義(rationalism) 혹은 啓蒙主義운동(enlightenment)에 이어 프랑스의 浪漫主義(romanticism) 혹은 自然主義(naturalism)의 바람이, 영국에서는 理神論(deism)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合理的 이성 중심의 哲學은 聖書의 합리적 해석, 구속주 그리스도보다는 歷史的 예수, 道德的 유토피아, 宗敎간의 대화, 하나님의 역사 간섭을 배제하는 인간 중심의 역사 해석등을 강조하였다. 그런가 하면 합리적 이성 중심의 철학에 반기를 들고,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ism)가 스콜라주의적 경향을 띠는 것에 도전하면서 경건주의 부흥운동이 독일에서 시작하여 스페너, 프랑케, 진젠돌프를 거쳐 웨슬리에게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집중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상황은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산업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슬리의 시대는 인류의 역서적 운명을 바구어 놓은 산업혁명의 시대였다. 수공업에서 기계공업으로 발전하는 역서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1760년 경 제임스 하그리브스(Jmaes Hargreaves)는 실 짜는 기계를 발명함으로써 섬유산업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하그리브스의 기계로 더욱 튼튼하고 더욱 좋은 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10년 만인 1778년에는 실 짜는 기계가 영국 전역에 2만 개나 되었다. 에이브라함 다알비(Abraham Darby)가 1708-9년에 철 제련에 석탄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여 개발시킴으로 석탄 생산이 더욱 활발하게 되었다. 1775년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엔진이 발명되어 시장에 나옴으로써 증기의 힘이 철공업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어것은 산업혁명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철공업과 섬유공업이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자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는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랱커셔(Lancashire)의 인구가 한 세기동안 세 배로 증가하였고, 인구 8,000명의 맨체스터(Manchs-ter)가 9만 5,000명으로 증가하였다.

 

  따라서 산업화에 뒤따르는 부작용으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문제시되게 되었다. 노동운동은 산업혁명의 열매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노동운동의 수천 명의 지도자들이 감리교도들이었고, 그들에 의해 노동자들이 정의감과 권리의식을 갖도록 의식화되어 갔을 뿐 아니라 감리교도들은 노동자들에게 조직화해 가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1). 감리교는 초기 산업혁명의 열악한 노동조건속에서 웨슬리의 종교적 영향으로 당시 사회의  노동자들에게 어둠속에서 빛을 던져 주었다.

 

 또한 산업혁명과 함께 격동과 변환의 시대에 감리교는 광부, 산업 노동자, 농부의 사회속으로 참여함으로써 박해로 시작된 적은수의 신도들이 1800년의 교인수보다 1850년 교인수가 6배로 증가하였으며, 구성원은 광부, 노동자, 농민들로 가득찼다.

 

 

 

 

    B) 웨슬리의 생애

 

  이제 감리교의 창시자이자, 기독교의 또 다른 장을 펼친 웨슬리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웨슬리(1703-1791)는 감리교회의 창시자이며, 엡위트의 목사인 사무엘 웨슬리의 15번째 아들로 태어나 옥스포드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1726년 옥스포드 대학 링컨 컬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 선발되었으며, 1727-29년까지는 부친의 교회에서 부목사로 재직했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시절에 진지하고, 경건하고, 학구적인 크리스찬들을 모아 신성구락부(Holy Club)를 조직하고, 신앙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윌리암 로오(William Law,1686-1761)와 헨리 모어(Henry More,1614-1687), 토마스 아켐피스,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1613-1667)등의 영향을 대학 시절에 받았다. 그는 1738년 5월 24일 올더스 게이트가의 한 모임에서 마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론이 낭독될 대 회심의 경험을 갖게 되었으며, 1739년 킹스우드 공부들 앞에서 야외설교를 시작하였다.

 

또한 그는 1744년에 평신도 설교자들의 회의를 열었으며, 1760년 미국에서 감리회 조직이 소규모 형태에서 점차 발전하여 1768년에 감리교회가 뉴욕에 세워지게 되었으며, 이에 웨슬리는 토마스 코크박사(1747-18914)를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감리회 조직이 영국 성공회안에서 하나의 신앙운동이 되기를 바랐으나 점차적으로 독립적 조직으로 성장해 나가게 되었다.

 

그는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반대했으며, 1741년 조지 화이트 필드와 단절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웨슬리의 사망당시, 영국은 194명의 설교자와 71,668명의 회원이 있었으며, 선교부에는 19명의 선교사와 5,300명의 회원이 있었으며, 미국에는 190명의 설교자와 43,265명의 회원이 있었다. 그는 동생 찰스와 화이트 필드보다 더 감리회 전도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크리스찬들 주의 하나였다는 The Oxfo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에서는 말하고 있다.

 

 

 

    C) 올더스게잇(Aldersgate)체험

 

  웨슬리가 웨슬리 되게한것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논란이 있으나 우리는 그의 올더스 게잇 체험을 중요시 하지 않을수 없다. 먼저 그의 1738년 5월 24일의 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 5월 24일 수요일 "그는 그 영광과 덕으로 가장 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신의 성품을 함께 가지는 자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베드로 전 1"4) 내가 성경를 펴서 이 말씀을 읽는 것이 오늘 아침 5시경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나오기 직전에 읽은 말씀은 "너는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마가12:34)는 말씀이었다.

 

오후에 나는 세인트 폴 교회에 오라는 청을 받았다. 거기서 부른 찬송가는 이런 것이었다. "여호와여 내가 싶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귀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저녁에는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어느 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전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며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악의적으로 나를 이용했거나 박해한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생전 처음 내 마음속에 느낀 것을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터놓고 간증을 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원수같은 마귀는 넌지시 이렇게 속삭였다. "이것은 믿음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기쁨은 어디 있냐?" 그때에 나는 배웠다. 평화와 죄에 대한 승리는 우리의 구원의 대정되시는 주님을 기쁨 특히 깊이 애통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기쁨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때로는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주지 않으시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집에 돌아온 추에 나는 여러가지 시험으로 몹시 괴로웠다. 그러나 큰 소리로 외쳤더니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 시험은 자꾸 되풀이되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눈을 들어 주님을 향하자 주께서는 "주의 거룩한 곳으로부터 나에게 도움을 보내주셨다."

 

나는 여기서 이런 체험과 주로 전에 일관되었던 나의 신앙상태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싸웠다. 그렇다. 나는 율법아래서 뿐만 아니라 은총 아래서 역시 있은 힘을 다하여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자주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늘 승리하는 사람이 되었다2).'

 

  우리는 여기서 올더시게잇 체험을 두가지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하나는 이 체험으로 인해 웨슬리의 윤리관의 변화와 다른 하나는 의인관의 변화를 알아 보고자 한다.

 

 

 

      ①사회 윤리에 대한 체험 이전과 이후의 윤리

 

  웨슬리는 신앙을 윤리로부터 분리 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사회 윤리는 크리스찬의 완전과 성화에 관한 그의 신학으로부터 분리될수 없으며, 특히 올더스게잇 이전과 이후의 그의 윤리관이 차이가 있음을 알수있다. 쉽게 말하자면 올더스게잇 이전의 웨슬리의 접근방법은 카톨릭적 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신앙과 윤리와의 관계를 복음주의적 의미에서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의 실천적 의의를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올더스게잇 이전에 웨슬리의 맏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신앙)와 사람과의 관계(사회 윤리)에 매우 실제적인 영향을 주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는 길이 그의 인격과 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웨슬리는 이해했다. 그리고 올더스게잇 이후에 그는 이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했다. 단순히 표현하면, 이것이 바로 다른점이다. 올더스게잇 이전에 그의 사회윤리는 그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깊은 관심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올더스게잇 이후에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된 새로운 애정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야 자기 자신을 내어줄수 있게 되었다. 전에, 그는 의인의 은총과는 별도로 聖火를 구했다. 크리스찬이 되기 위하여 그는 기도, 금식, (조지아에로의)순례를 통하여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봉사를 통하여 거룩한 삶에 도달하려고 애썼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펠라기아니즘(Pelagianiam)이었다.

 

그러나 그는 1738년 체험이후 그는 하나님을 얻기 위하여 선을 행하고자 하던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 사로잡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의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것이 되었엇다. 그의 선행(사랑)이 믿음을 낳은것이 아니라, 그의 속에서 역사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지게 된 믿음이 사랑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3). 즉 동기부여에 있어서 올더스게잇 이전에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했으나 체험 이후에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하게 되었다.

 

 

 

      ②올더스게잇 체험 전.후의 의인관의 변화

 

  먼저 올더스게잇 이전의 웨슬리의 사상에는 인간은 도덕적인 선과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복종 그리고 하나님의 법도를 짐킴으로서만 구원받는다는 기본적인 원리가 있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려는 노력과 그 노력의 도덕적 영적 결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말하자면 웨슬리는 하나의 의식주의자(Methodist)였다4).

 

이와 같은 행위에 의한 구원관은 웨슬리 부모의 의인관에 기인한다5). 이런 그가 런던의 올더스게잇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신앙 동지들의 집회6)에서 참석하여 「로마서 서문」낭독을 듣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즉 이 경험는 자신의 선한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다가 실해한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종교개혁자의 교리로 돌아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7).

 

  이로서 웨슬리의 신학의 시대적 배경, 생애, 그리고 회심의 계기가 된 올더스게잇 체험의 바탕 아래 웨슬리는 그의 중심신학인 성화사상을 전개해 나가게 되었으며, 다양한 신학을 정립해 나갔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성화 신학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II. 웨슬리의 성화 신학

 

 

     A)성화 신학의 배경

 

      ①성서적 배경

 

  웨슬리의 성화신학은 강한 성서적 배경속에 기초하고 있다. 웨스리에게 있어서 성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원천적인 근거가 된다. 네가지 신학적 기준 - 성서, 이성, 전통, 경험 - 중에서 성서가 가장 근본적 기준이 된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성서적 해석 없이 성화의 교리를 취급하지 않는다.

 

그의 두 중요한 논문 " 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1725-77)과 "Original S- in"(1756)은 그가 성서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8). 그리고 그의 신학의 교과서는 산상수훈이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완전이란 점진적 성장 과정이 개념이다.

 

이런 과정의 개념은 빌립보서 3장 12절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완전한 성화의 과정이다. 그의 설교 "On Perfection"의 본문이 히브리서 6장 1절 "...성숙한 경지(완전)로 나아갑시다"이다. 그는 우리가 끊임없이 완전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9).

 

 

 

      ②역사적 배경

 

 웨슬리는 동방교회적 전통의 영향을 받게되어 인간이 완전에 관계되는 은혜와 선행의 상호협조를 강조한다10). 그리고 성화개념은 동방교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 347-407)의 영향을 받아 그를 통해 구원의 신인 협조질서를 배웠다. 하나님의 은총의 주도권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성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구원의 질서이다. 인간의 책임성은 신앙과 회개로 구성되어 있다.

 

크리소스톰에게 있어서 신앙과 회개는 자유 의지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은혜가 먼저 역사하면 자유 의지(신앙과 회개)가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회개만이 인간의 책임이다. 이점이 웨슬리가 크리소스톰과 다른 점이다11). 크리소스톰이나 웨슬리에게는 신앙과 사랑이 함께 있으며,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의 개념은 어거스틴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웨슬리 신학의 역사적 배경은 동방교회적 배경 - 성화의 점진적 과정과 은총과 자유의지의 신인 협조적 구원관 - 과 서방교회적 전통 - 어거스틴과 루터의 신앙의인화 - 을 종합한 제3의 변증법적 신학을 형성 하였다12).

 

 

 

 

     B) 선재적 은총

 

 웨슬레이 선행은총론은 "1)구원에 있어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고 있으며, 2)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도 책임이 있다. 3)또한 이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전도해야 한다"13)는 것으로 귀결된다.

 

 선행은총은 웨슬리 은총론의 출발점으로서, 그의 은총론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웨슬리의 은총론을 보편적 은총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만인을 위해, 만인안에서"역사한다. 선행은총에 응답하고 자기 양심에 복종하는 인간이 그것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회개, 칭의, 중생의 은총으로 인도되어 갈 것이며, 은혜에서 은혜로 더욱 나아가면 성화의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주신 선행은총의 불꽃을 더욱 돋우어야 한다.

 

 선행은총에 의한 자유의지의 회복으로 오늘날 인간은 "책임적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에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책임사상은 기독자 윤리읭 중심이 된다. 이 점에서 선행은총은 기독교 윤리의 전제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응답과 책임은 언제나 "은총 안에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웨슬리의 신학이 인본주의로 오해받는 이유가 "은총 안에서의 응답"이라는 것을 모르는데서 기인한다14).

 

 웨슬리의 이러한 선재적 은총은 "불가항력적"이 아닌 "가항력적"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고 역사하는 그리고 온총에 응답하는 복음적 협동설(evangelical synergism)임을 알 수 있다.

 

 

 

     C) 성 화

 

 웨슬리는 의인화의 은총을 제1의 복이라고 보았고, 성화를 제2의 복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의인화의 은총만을 강조하고, 칼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주는 의인화와 성화의 두 차원적 은총을 말한다. 웨슬리는 칼빈이 이해한 성화의 교리를 더욱 발전시킨다. 칼빈은 성화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은혜라고 해석했지만, 웨슬리는 의안화는 그리스도의 은혜요, 성화는 성령의 은혜라고 해석한다15). 계속해서 그는 거듭남과 성화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거듭남의 순간에 겸손하나 은전히 겸손하지 못하며 성도의 겸손은 자만과 섞여 있다. 거듭난 성도는 온유하나 때때로 분노가 그의 온유를 부숴버린다. 그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용해되지 못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거듭남이 순간적 탄생이라면, 성화는 태어난 아기가 계속 자라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에게 이르기까지 계속 성장하고 성숙하지 아니하면 온전한 겸손, 온전한 온유, 온전한 순종은 불가능하다.

 

 웨슬리는 의인화가 믿음으로 이루어지듯 성화도 믿으??으로 출발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행위로 나타나야 함을, 믿음의 본질은 내적이지만 믿음의 증거는 사회적 행동임을 강조한다. 루터는 로마서를 높이 평가하면서 - 믿음의 책이기에 - 야고보서의 행위의인화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행위이기에 행위의 중요성을 중시했고 선행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라의 에너지로 채워지는 믿음을 강조했다. 웨슬리는 로마서가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75세 때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믿음을 뜻하는 것이요, 야고보서가 말하는 아브라함의 행위는 100세 때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칠 때의 헌신적 행위를 말하기에 야고보서의 행위는 믿음을 전제한 행위하고 해석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행동을 강조하는 산상수훈을 중요한 설교본문으로 택했다. 산상수훈 설교는 그의 성화 신학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16).

 

 칼빈과 더불어 산상수훈 등에 나타난 율법을 성화생활의 좋은 교훈과 채찍질로 생간한다. 칼빈은 율법을 단순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제1의 용법)이나,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공민법을 어긴 악한 사람을 다스리는 것(제2의 용법)으로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성화의 생활을 훈련시키기 위한 채찍질로서도(제3의 용법)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터는 제1의 용법이나 제2의 용법으로만 이해했다.

 

 

웨슬리는 제3의 용법까지도 받아들였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지만, 구원의 확증과 풍성한 구원 또는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는 행함과 사랑을 배제할 수 없는데 율법의 제3의 용법은 산상수훈 같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사랑과 선행을 싱펀하도록 채찍질한다. 성화를 통한 구원의 완성이 있음을 웨슬리는 히브리서 12장 14절을 통해 강조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거룩함, 성화)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17).

 

 웨슬리는 순간적으로 부어지는 성화가 성화의 출발점이지만, 그후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impartation) 과정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D) 성화의 특징

 

 웨슬리 신학의 특징은 크게 '성결', '사랑', '사회 참여로의 성화'르 구분할수 있다.

 

 

      ① 성결

 

 웨슬리는 행동 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는 순간에 용서함을 받고, 내적 죄는 성령의 역사로 성화의 과정에서 성결함을 받는다. 이 내적 죄는 교만, 자기 의지, 분노, 불신앙, 언갖 욕망 등이다. 이 내적 죄는 죄의 뿌리 혹은 원죄라고 웨슬리는 이해한다. 행위의 죄들은 용서받았다 할찌라도 - 의인화의 순간에 - 내적 죄악은 계속 성도들에게 남아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죄가 더 이상 성도들을 지배하거나 다스리거나 조종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성도들도 완전의 은혜에 의해 성결함을 받을 때까지 우리의 내적 죄악을 계속 회개해야 한다. 완전의 은혜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크리스찬을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18).

 

 웨슬리에 있어서 의인화가 행위의 죄를 용서하는 객관적 은총이라면, 거듭남과 성화는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주관적 은총이다.  거듭남은 성화의 출발점이요, 거기서부터 성령이 우리 안에 계속 역사하여 완전한 성화로 영적 성장을 이룬다. 의인화는 거듭남과 시간적으로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나 다만 논리적으로(in thinking) 의인화가 거듭남에 앞서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동시에 성화가 시작한다. 의인화가 상대적, 관계적 변화라면, 거듭남과 성화는 실제적 변화를 말한다. 까닭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화는 의인화로부터 전적으로 구분되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은사이다19).

 

웨슬리에게 있어서 완전은 이 세상세서도 - 죽음 이전에도 -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지상에서 절대적 완전이 가능한 것은 믿지 않는다. 그 완전은 상대적이요, 동기적이다. 죽음 이전의 완전한 성화의 개념은 사랑과 선행을 온전히 실천함을 의미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화의 소극적 의미는 성결 혹은 죄 없음이지만, 볻다 적극적 의미는 사랑이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결잉 성화의 한 요소이지만, 세상으로 찾아가는 성육신적 행동과 사회 참여로서의 사랑과 선행이 성화의 또 한 요소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상하고, 하나님을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완전한 성도의 궁극적 목표이다20). 

 

 

 

      ② 사랑

 

 무엇이 성화요, 무엇이 완전인가? 웨슬리는 대답하기를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단순한 마음이다. 그 사랑은 모든 죄를 싫어하고 영혼의 모든 가능성를 마음속에 채우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랑이다(살전 5 : 16-18). 이 사랑이 신앙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랑의 에너지로 채워지는 신아이다. 신앙 없이는 어떤 인간도 성화되지 않는다. 어떤 인간도 그가 믿을때까지 성화될수 없다. 신앙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인가 하면, 사랑은 신인 협조적인 행동이다.

 

 이 사랑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포함한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 9 : 19). 웨슬리는 모든사람을 섬기는 사라의 종노릇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설교"The Important Question"에서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병든 자와 갇힌 자를 방문하고, 눈먼 자에게 눈이 되어 주며, 고아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고, 과부에게 남편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감리교도들의 회심 경험은 인간 존재에 대한 선교적 봉사로 직접 연결되게 되었다. 세리, 창녀, 죄인, 소외된 자들이 대우받던 예수시대처럼 웨슬리시대에도 인간답게 인정받게 되었다. 루터에세서 사랑은 신앙의 나무에서 저절로 맺히는 열매이지만, 웨슬리에게서 사랑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신인 협조적 응답으로서의 선행이다. 루터는 사랑을 주어지는 은총으로 강조하지만, 웨슬리는 사랑을 주어질 뿐 아니라 참여하는 은총으로 보았다21).

 

 

 

      ③ 사회 참여로서의 성화

 

 웨슬리는 사랑의 성화를 성육신 즉 사회참여(Incarnationol Soci- al Participation)로 해석한다.

 크리스찬의 선포는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크리스찬 공동체는 사회 개혁에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게 해달라는 주기도문을 공허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 정의, 평화, 그리고 사랑의 뜻이 성취되어야 한다. 매일읭 생활속에서의 사회적 증거는 내적 신앙의 어떤 내재적 체험의 필연적 확신이다.

 

웨슬리의 성화교리를 통하여 불건전한 복음주의(unhealthy-evangelism)를 비판한다. 불건전한 복음주의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만을 강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주장하는 신앙 유형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당신은 구원받기 원하십니까?"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하십니까?" 라는 질문만을 던진다고 아우틀러는 비판한다. 그러나 건전한 복음주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질문할 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질문하는 것이다22).

 

 웨슬리는 이 역사안에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 개념을 설교하였다. 또한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바꾸는것이 기독교를 파괴시키는것이라고 말한다.

 

 

 

 

 

III. 결론

 

 이제 웨슬리의 성화 사상을 맺고자 한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웨슬리가 교회에 미친 공헌을 살펴보고, 웨슬리 신학의 특색과 함께 한국 교회의 과제를 끝으로 이 논문을 마치고자 한다.

 

 

 

    3. 웨슬리 신학의 공헌

 

 웨슬리는 오늘의 교회에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선교(mission of the church)에 주는 바 신학적 의의가 크다고 본다.

 

 첫째로, 선교 특히 인간 구원에 있어서의 사랑의 협력은 가능성과 責任의   를 認定한다. 인간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이니시어티브(initiative)를 재강조하는 현대 改新敎神學(Luther나 Calvin 神學)은 구원에서의 인간과  도덕적 책임을 거의 等閑視한다. 以信得儀의 교리를 保護하기 위해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의 追從者들은 사람을 아주 무능한 자로 몰아 놓고 만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호응할 'point of contact"가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신정통주의  신학은 선교라는 수고를 무익한 것으로 만들 염려가 있다. 그러나 웨슬리에 의하면 사랑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선행적 은총의 역사로 이미 이니시어티브를 취하고 계시지만 사람은 회개하고 믿을 책임이 있다고  한다23).

 

 두번째로, 이와같은 웨슬리의 사상으느 기독교의 他界와의 대화의 근거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법이나 종교는 중립적이 아니요, 은종의 보편적 역사의 영향아래서 생겨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웨슬리는 교회는 세속세계라고 일컬어지는 일반문화, 철학, 과학과의 대화의 문을 열고 있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진리는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소示에 의하여만 온전한 진리인 바, 이것이 문화, 타종교안에 있는 것들은 分別하는 표준이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함으로 웨슬리는 교회와 세상과의 계속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유독성(uniqueness)을 주장한다.

 

 세번째로, 이와같은 웨슬리의 사상은 교회 선교에 대한 소망과 힘을 제공하고 있다. 웨슬리읭 신학은 교회선교에 있어서의 비관주의에서 은총의 낙관주의(Optimism of Grace), 곧 하나님이 역사하시매 가능하다(possibility in grace)라는 믿음으로 대치에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웨슬리으이 사상의 특징은 그의 성화에 대한 이해에서 보다 具體的으로, 그리고 힘차게 表現되어 있다고 본다24).

 

 

 

     4. 웨슬리 신학의 특색

 

 웨슬리 신학의 특색은 우리가 알아온것처럼 그 신학의 독특성에서 찾아 볼수 있다. 웨슬리가 宗敎改革者들 처럼 신약성서에 있는 중요한 要素들을 강조하되 그 신학형성에 있어서 교회안에 있는 여러 학파의 장점들을 창의적으로 종합(Creative Synthesis)하였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와같이 웨슬리는 참으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그들의 신학을 재해석 내지 是正하여 보다 성서적이고 인격적인 기독교 복음의 Dunamics를 되찾는데 이르렀다고 본다.

 

 

 

    5. 한국 교회의 과제

 

 위와같은 웨슬리 신학의 장점과 더불어 지금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들의 편협되고, 개인 아집이 강한 자세에서부터 나오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종교다원주의이니,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하며 세상은 우리에게 문을 활짝 열고 있는데 비해 우리들은 我와 非我를 엄격히 구분하여 대립시키는 이분법적이며 배타적인 단선적 투쟁사로서의 역사 이해를 극복하는 일이고, 자신이 속한 교단에의 애정은 가지되 그 한계를 넘어설 줄 아는 열려진 마음과, 신앙고백적인 성령운동에 대한 관심 내지 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과제이다.

 

 

더불어 성령운동에 있어서도 십자가 없는 성령운동 내지 하나님 없는 성령운동의 많은 문제점들을 밝히 보면서도, 그 자체가 안고 있는 아주 좋은 유산인 체험적이며 축제적인 요소를 잘 간직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 한 가운데에서 역사의식을 가지고 관심을 두어 결단하고 행위하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오는 말

 

  "요한 웨슬리", 나는 그이 성화신학의 독특성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다. 특히 본인이 소속되어 있는 예장 통합측의 사회 참여에 대한 수동적 모습과 교회들의 피상적이며, 주체성 없는 사회선교 모습에 안타까운 현실인 반면에 웨슬리의 신학은 색다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더욱더 나를 놀라게 한것은 웨슬리가 노동자들, 농민, 광부들과 함께 호흡하고, 어두운 사회 구석 구석에 도움의 손길과 더불어 호흡하는 모습이후, 박해 받았던 감리교가 '부흥의 시대'를 맞이 하였다는데 있어서 지금이 우리도 과거 초기 한국교회의 네비우스 선교정책으로 인해 정치 불간섭주의를 이제는 깨뜨려 버려도 하나님의 의는 변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참고 문헌>

 

。김 홍기, 「기독교 사상사」, 대한 기독교서회, 1992,11.

。------ , 「요한 웨슬리·신학의 재발견」, ------ , 1993.

。John Weslwy, 「요한 웨슬리의 일기」, 김영운 역.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1.

。레온 O. 힌슨, 「웨슬리의 윤리사상」, 이희숙 역. 전망사,1987.

。송 흥국, 「요한 웨슬리 신학과 구원론」, 기독교서회, 1975.

。한 영태, 「웨슬리의 조직신학」, 서울:성광 문화사, 1975.

。조 종남, 「요한 웨슬리의 신학」, 서울: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4.

。------ , 「신학사상」, 한국 신학 연구소, 1973, 3.

 

1)김홍기, "요한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신학에 대한 역사신학적 고찰(I)" 「기독교사상사」(1992,11) p 90-91.

2)John Wesley, 「THE . JOVRNAL OF JOHN WESLEY」ed. by Perey Livingstone Parker (Chicago, IL.; Moody Press), 김영운 역, 「요한  웨슬리의 일기」,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1), p 69-70.

3)레온 O. 힌슨,「웨슬리의 윤리사상」, 이희숙 역. (전망사,1987), p 38-40.

4)Methodist : 신성클럽 회원들의 규칙적인 생활 태도와 종교적 의무에 대해 규칙적일 정도로 엄격하게 지킴을 비난삼아 이런 별명이 붙게 되었다.

5) 송흥국, 「웨슬리 신학과 구원론」, (기독교서회, 1975), p 30.

6) 이 집회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였던 듯하다. (송흥국, 「요한 웨슬리 신학과 구원론」), p 40.

7) 한영태「웨슬리의 조직신학」,(서울: 성광 문화사, 1975), P 30.

8)김홍기,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신학에 대한 역사적 고찰(I)"「기독교 사상사」,   1992, p 95.

9) 김홍기, 「요한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 (대한 기독교서회,1993), p 70

10) I bid .,71

11) I bid ., 73

12) 김홍기, 「기독교 사상사」, p 105

13) 조종남, 「요한 웨슬리의 신학」, (서울: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4), p 102.

14) 한영태, 「웨슬리의 조직신학」, (서울: 성광 문화사, 1975), p129.

15) 김홍기, 「요한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p 102.

16) I bi . , 103.

17) I bid . , 104 - 105.

18) 김홍기, 「기독교 사상사」, (대한 기독교서회, 1992, 11), p 106.

19) I bid . , 107.

20) I bid . , 108.

21) I bid . , 109 - 110.

22) I bid . , 112.

23) Wesley는 사도행전 5 : 31의 강해에서 말하기를 "어떤이들은 悔改와 믿음이    모두 赦罪의 선물이라고 하나, 事實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믿음을 선물로 받    으나 그에 앞 선 悔改에 있어서는 더불어 協力하여야 한다".

    Cannon은 "사람은 先行的 은총으로 인하여 悔改(스스로 깨달음)의 能力을    받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실 때 悔改라는 두 팔로 그것을    받아야 한다"고 說明하고 있다.

24) 조종남, 「신학사상, 1973.3」(한국 신학 연구소), p.18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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