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는 목회자의 보조인이 아니다 |
제자 훈련의 한계와 평신도의 선교적 사명 |
한국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한국교회는 교회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와 민족, 세계 속에서 봉사할 그리스도인들을 길러 내야 한다.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 중심에 세상 속으로 날마다 파송받는 '평신도'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사회에서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을 언급할 때 매우 중요한 단위인 평신도의 역할에 대하여 많이 주목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교회의 사회봉사를 대부분 교회 차원(개 교회, 교파)에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봉사는 교회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개인적, 그가 속한 사회적·직업적 차원에서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 교회의 사회봉사는 개 교회 단위 혹은 교단 차원에서의 봉사 활동이었다. 개 교회는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노회나 총회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사회의 어려움에 접근한다. 교회의 사회봉사는 교회 이름으로, 교회의 단위로 봉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인들은 각자의 헌금을 통해 사회봉사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 교회가 특별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돌아볼 때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사회봉사를 위한 자원, 그리스도인
교회적 차원에서 사회봉사를 수행하는 것이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봉사를 위해 가진 또 다른 자원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매일 사회의 전 영역에 흩어져 활동한다. 우리가 봉사의 개념을 현재 교회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통한 활동 외에, 사회 전반에 속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활동을 통한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봉사 활동을 지향한다면, 그 영향력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지대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을 언급할 때 각각의 그리스도인의 직업적 소명의 관점에서 봉사 활동을 논하고 이것에 신학적, 선교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최근에 한국교회에는 평신도의 재발견에 대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를 계급 구조에 기인하여 평신도에 대한 목회자 우위적 인식을 교정하려는 것이다.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의 계급적 구조를 일신하고 만인 제사장직을 통한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다시 그것을 반납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전통적 구조에 대한 비판과 개혁 교회의 정신을 회복하여 평신도의 본래적 위치를 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평신도는 목회자에게 종속된 자가 아니라 목회자와 동등한 협력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은사들을 부여받았다.
한국교회에서 평신도에 대한 재발견을 시도한 사람은 <평신도를 깨운다>의 저자인 고 옥한흠 목사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회 철학에 바탕을 둔 목회 경험으로부터 평신도를 동력화하는 책을 저술하고, 20년 이상 평신도 세미나를 인도했었다. 고 옥한흠 목사는 어떤 교회보다 평신도의 역할을 인정하고, 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파트너로서 순을 맡기고 교회 성장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도록 해 왔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소외되었던 평신도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교회 내에서 잠자고 있는 평신도를 깨워,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역의 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 내의 계급 구조와 목회자 우월 의식을 지양하고, 평신도를 자신에게 종속된 위치로부터 해방시켜 교회의 주체로서 사명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신도를 깨우는 것은 교회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책은 평신도를 깨우고 훈련하기 위해 제자화를 추구한다. 목회자는 평신도를 철저히 제자로 훈련하여 목회자와 동력하는 일군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내부적인 사항-예배, 기도, 모임, 경건 등-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본래적 사명, 사도적 교회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은 곧 모든 평신도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의 사도적 책임을 곧 선교로 이해하면서 이것이 그의 책의 전체 주제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분석하면 몇 곳에서 평신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평신도 지도력은 전반적으로 교회의 소그룹을 인도하는 소그룹 지도력, 신앙을 상담하는 영적 지도력, 순원들의 인격과 가정생활 혹은 사회생활을 돌아보는 목회적 지도력 등 교회 내부적 활동에 국한되어 있다.
한국교회가 목회자 중심으로 움직일 때 고 옥한흠 목사는 누구보다 먼저 교회 내의 평신도의 자원에 주목했다. 그들을 목회자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제자로 훈련하여 목회자와 동력할 수 있도록 평신도의 지도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의 평신도 운동이 가져온 건전한 교회 성장과 영향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한국교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평신도 운동의 성격을 평가해 보면 고 옥한흠 목사의 평신도 운동을 비롯하여 최근에 한국교회 내에 전개되고 있는 대부분의 가정 교회 운동들은 아직 교회 내부적 차원 즉 목회 영역에 머물고 있다. 리더십과 관련하여 과거의 목회자 중심의 목회 구조를 탈피하고 평신도가 은사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활동의 장을 마련하고 있으나, 그 모든 것은 한마디로 평신도의 제자 훈련이라는 범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신도 운동이 한국교회의 평신도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은사와 리더십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크지만, 이런 운동이 지닌 근본적 한계는 평신도에 대한 이해와 교회론, 선교 이해에 있어 아직 편협하고 편향적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 옥한흠 목사의 평신도 운동은 한국교회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운동 중 가장 신학적이며 체계적인 운동이지만, 그 특성은 교회 내 소그룹 운동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격은 개인적 인격이며 사회 변화는 개인 윤리적 차원, 리더십은 소그룹 인도하는 능력에 제한되어 있다.
이제까지 한국교회 내에서 전개되어 온 대부분의 평신도 운동은 교회 내부적 차원과 관련된 평신도 활동과 동력화와 리더십에 그친다는 점이다. 평신도를 활용한다고 할지라도 그 목회 패러다임이 교회 내부 지향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평신도를 목회자의 동역자로 간주하는 목회 철학 역시 교회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교회 내부 지향적 리더십이다. 교회의 사도성을 실현하는 선교 이해 역시 말로 증거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교회 성장을 지향하는 평신도 운동
무엇보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대부분의 평신도 중심의 운동과 목회 패러다임은 교회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목회자 중심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평신도의 자원과 은사·능력을 활용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교회 성장을 위한 전략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평신도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운동이 교회의 범주 내에 제한되어 있으며 그 이면에는 교회와 세상의 대립 구조를 극복하지 못한 이원론적 사고와 교회 성장과 그것을 위한 평신도의 동력화라는 문제이다. 더불어 실용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어 대부분의 평신도 운동과 동력화는 교회의 목회 활동과 성장을 위한 목회적 역량과 지도력에 있어 목회자의 보조자 위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진행되는 평신도 운동은 작은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선교를 강조해도 교회 중심적 선교 패러다임(church centered mission)을 넘어서지 않는 한 평신도의 모든 활동은 교회 내부적인 것이다. 교회는 내부 지향적 특성에 머물게 된다. 교회가 평신도의 소명에 관하여 언급할 때 대부분 교회 안에서의 활동과 전도 활동에 국한된다. 세상 속에서 수행하는 직업적 소명과 그들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있다고 해도 매우 소극적 차원에서만 다루고 있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평신도 사역의 필요성이 교회 내에서의 평신도 지위의 고양이나, 목회자의 바쁜 목회 사역의 분담을 위해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의 진정한 존재 의미와 선교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평신도 사역이라는 말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온 교회가 동참하는 특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신도의 '일과 소명'에 관한 교회의 후원이 필요하다. 평신도가 속한 모든 직업이나 전문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교회는 내부에서 행해지는 교육과 훈련에서 복음을 개인의 경건 생활, 가정생활 또는 인간관계에 적용하는 것에 비해 복음을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속한 사회의 각 분야에서의 직업과 그 전문 분야에서 적용하려는 노력은 매우 부족하다. 평신도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에 근거한 사역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열심과 노력의 대부분은 종교적 범주에 머물고 있다. 세속적 관점에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져 있다.
평신도는 교회와 세상이 분리되지 않도록 다리를 놓는 사람
세계교회협의회는 평신도 사역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온 교회가 동참하는 특권을 표현하고 있다고 천명한 바 있다. 교회의 사회봉사적 역할은 바로 이러한 평신도들의 소명 의식을 일깨우고 그들의 묻힌 은사들이 개발될 때 바르게 실현될 수 있다. 이들의 관심이 교회 안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자신과 같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을 발견하게 될 때 교회의 선교 사역의 방향을 결정하고 제시할 수 있다.
평신도는 교회와 세상이 분리되지 않도록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다.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이러한 평신도에 대한 신학적 이해(교회론, 선교론, 평신도론 등)를 기초로 하여 하나님이 주신 풍부하고 다양한 자원들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전문화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자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교회 내에서 전개되어 온 대부분의 평신도 운동은 교회 내부적 차원과 관련된 평신도 활동과 동력화와 리더십에 그친다는 점이다. 평신도를 활용한다고 할지라도 그 목회 패러다임이 교회 내부 지향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평신도를 목회자의 동역자로 간주하는 목회 철학 역시 교회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교회 내부 지향적 리더십이다. 교회의 사도성을 실현하는 선교 이해 역시 말로 증거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평신도 사역의 필요성이 교회 내에서의 평신도 지위의 고양이나, 목회자의 바쁜 목회 사역의 분담을 위해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의 진정한 존재 의미와 선교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평신도 사역이라는 말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온 교회가 동참하는 특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신도의 '일과 소명'에 관한 교회의 후원이 필요하다. 평신도가 속한 모든 직업이나 전문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섬기는 공동체로서 세상에 보내졌다는 것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세상을 섬기도록 보내졌다'는 의미가 있다.
"평신도들은 그들의 선교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기본적으로 교회 조직 내부에서의 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일상사와 공공 봉사에서 그들의 전문적 기술과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교회의 직제와 평신도론> 중)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투쟁의 장은 세상
목회자의 사역의 장이 교회라면 평신도의 활동의 장은 세상이다. 복음이 모든 삶의 영역을 위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신앙의 투쟁과 하나님나라의 실현과 확장은 바로 사회의 다양한 영역(공장, 가게, 사무실, 농장, 정당, 정부 기관, 학교, 가정, 언론 매체, 연예가, 국가 관계 등)에서 발생한다. 교회가 이런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곧 평신도 개개인을 통해서 가능하다. 평신도가 아니면 교회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접촉할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선교적 과제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교인 간에 협력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선교적 역량을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행사에만 활용한다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라는, 즉 세계 안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나라는 교회 안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나라의 지표로서 세상 속에서 가시화하는 일은 평신도의 구체적인 참여를 통해서 실현된다.
교회는 신학적으로 평신도가 단지 목회자의 보조 역할의 수행자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위한 목회자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인식하고 재능을 발휘하도록 인도해야 한다.물론 평신도가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세상 속에서 실현하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많은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조직화된 산업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분별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여전히 사회의 제도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윤리적 책임만을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 속에서 올바른 직업윤리와 소명의 실천을 위해 교회는 직업적 소명에 대한 전문 연구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개 교회의 목회자 역시 평신도들의 소명의 장인 현대 직장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직장에서 지치고 피곤한 성도들을 말씀으로 격려하고 지지해 주어 새로운 힘을 얻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평신도들이 세상을 직면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자랑할 만한 것 중에 하나는 세계 교회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높은 수준과 신앙의 열정과 봉사의 정신을 지닌 교인들이다. 이들은 신앙적으로 잘 훈련된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 선교에 앞장서서 활동할 수 있는 귀한 자원이다. 이와 같은 풍부한 자원을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사회봉사 요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올바른 교회론, 선교론, 평신도론에 대한 신학적·선교학적 근거를 가지고 구체적인 도전과 훈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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