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영적붕괴와 선교의 필요성
콜린 니콜라스
저는 동유럽과 남유럽에 있는 11개의 선교지를 관장하는 권역 대표로서 종종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많은 교회나 사람들이 유럽은 복음이 필요한 지역이 아니라고 말할 때입니다. 오늘 강력히 여러분에게 던지고 싶은 도전은, ‘유럽은 영적인 황무지’이고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유럽이 한때 복음을 접했던 나라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선교가 시작 되었던 곳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재 남유럽의 복음적인 기독교 분포를 보면 전체 인구 중에 1%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는 기독교신자가 20%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껏 미전도 종족 중심으로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유럽도 복음이 필요한 나라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수억의 유럽 사람들은 정말로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곳에도 외형적인 모습을 갖춘 교회가 있고 이름뿐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인들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교회들이 전혀 선교적 책임감을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현실에서, 유럽의 영혼들도 거의 미전도 종족의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유럽 안에도 한 때 복음의 꽃을 피웠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마게도냐 행을 시작으로 이루어진 유럽 선교는 주후 2∼3세기가 되면서 그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교회는 동서남북으로 확장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교회에 놀라운 성장이 있었을 그 때가 바로 교회가 가장 심각한 박해를 받고 있던 때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교회는 이런 핍박이 있을 때 교회가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의 교회와 네팔의 교회, 그리고 지금 성장하는 교회의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 한국에서 부탁을 받았던 강의 주제는 이런 유럽의 모습, 쇠퇴해가는 유럽 교회의 모습을 통해 한국 교회가 교훈 삼아야 할 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나누려고 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한 때 기독교의 본거지였던 한 지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처럼 철저한 영적 황무지가 되었는가를 보는 것은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는 한국 교회도 이런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럽 교회를 오늘과 같이 퇴락의 길로 가게 만든 몇 가지 주요 요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유럽 교회에 주어진 자유의 축복이 권위와 전통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가 엄청난 박해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던 때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황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콘스탄틴 황제입니다. 그는 기독교를 로마인들이 받아들여야 할 종교로 공인을 해 줍니다. 이때부터 핍박받고 숨어 다니던 기독교인들은 존경과 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는 형식적이고 권위적이 되었으며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은 점점 약화되어 갔고, 교회의 지도자는 세속적이 되어 갔습니다. 때를 맞춰 등장한 이슬람교도들의 점령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럽 교회는 깊은 영적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유럽 교회는 동쪽의 정교회와 서쪽의 카톨릭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 두 교회는 한결 같이 외형적이고 권위적이며 세속화되기 시작합니다. 개인의 신앙 고백보다는 이들 교회의 멤버가 되는 것이 구원의 필수적 조건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쇠퇴의 과정은 더욱 급격해졌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의 결과로 유럽은 또 다른 한 기독교 세력이 등장하게 됩니다. 북서지역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리와 전통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예전이나 형식은 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되었습니다. 유럽의 교회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영적인 쇠퇴의 길은 점점 급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카톨릭과 정교회가 어떤 모양의 기독교의 옷을 입고 있는지 여러분에게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문제는 명목주의입니다.
이런 자유와 방종은 자연히 명목주의로 흐르게 했습니다. 기독교식 이름만 가지고, 기독교의 모양을 갖춘 사회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다 교회의 구성원들이라고 인식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에 두 번 교회에 가는 사람들입니다.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기독교적 삶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물질주의입니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유럽인들의 물질적 삶의 질은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풍요로워 졌습니다. 유럽의 모든 미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즐기자’하는 것이 유럽 물질문명의 상징입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게 되는 삶입니다. 인생이 너무 즐겁고, 편안하고, 편리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는 영적인 필요란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만족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죽이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바로 무신론주의의 영향입니다.
이런 무신론주의는 주로 동유럽의 공산주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입니다. 이미 쾌락문화 속에 깊이 빠져 있는 서유럽이 실제적인 무신론에 빠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신론 공산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던 동유럽인들은 자연스럽게 무신론주의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탈 현대주의 영향입니다.
특히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탈 현대주의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들에게는 규칙이나 법이 필요 없고 그들 자신 하나 하나가 곧 법이고, 개개인이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곧 법이고 규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사회라는 개념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철저한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에 빠진 유럽은 지금 심각한 통제 불능의 혼란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의 복음주의 교회는 과연 무엇을 잘못하였는가?
복음적이라고 하는 유럽의 교회는 이런 시대적 추세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자기방어적이고 자기중심적이게 했습니다. 교회 밖에 존재하는 모든 악에서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것은 곧 영적인 고립에 빠지게 했습니다.
쇠퇴의 중요한 증상 중에 하나는 교회의 외형적인 문제에 집착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 보다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지는 때부터입니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어떤 외형적인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유럽 교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목마르게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깊은 교제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신앙 생활하는 것이 너무 편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일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필요로 하는 신앙을 상실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향기도,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도 잃은지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까?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 하나님 없는 삶을 즐기는 현실 안일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도대체 어려움이나 필요한 것이 없는 세대에서 하나님이 들어가실 자리는 있는 것입니까? 더 나아가 내가 곧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교회의 외형과 형식을 추구하는 물질주의에 깊이 빠져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미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 속에 침투해 있는 현대주의 문화라는 강력한 무기에 대항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보다도 내 스스로의 결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성경의 법이나 규례가 오히려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방종을 제어하고 지도할 통제력이 있습니까? 갈수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패역한 길로 치닫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회 방어하고, 나를 방어하기 위해 교회의 담을 세상으로부터 높이려는, 그래서 결국은 그 안에서 고사(枯死)해 가고 있는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중요 사역의 최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지는 않습니까? 유럽 교회를 보고 배우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유럽 교회가 간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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