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소원”이 오늘의 교회에 대하여 갖는 의미.
교회의 신학자 Ph. J. 슈페너
I. 경건한 소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7-19)
필립 야콥 슈페너(1635-1705)의 대표적 저작이요, 경건주의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진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 1675)은 오늘의 교회에 여전히 타당성을 갖는가? 만일 우리가 라틴어 제목에 附記된 “진정한 복음주의 교회가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함”에 주목한다면 이 책이 갖는 영향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제안된 6가지의 개혁안은 당시의 루터교회가 직면한 상황과 결부되어 있는데, 특히 당시의 교회는 자신들만이 전적으로 올바른 가르침을(정통주의)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 만족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등한시된 “진정으로 살아있는 신앙에 대한 물음”이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바, 이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다른 방식에서 동일한 물음을 묻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슈페너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는 살아있는 공동체이다. Pia Desideria는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당시의 계층구조 각자가 가진 타락상을 조목조목 되짚어봄으로써 개관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보다 더 나은 장래에 대한 가능성을 성서의 근거로써 제시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살아있는 신앙의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여섯 가지의 개혁안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K. Aland, Spener-Studien, AKG 26, Berlin 1943. M. Schmidt, Speners Pia Desideria, in: Schmidt, Wiedergeburt und neuer Mensch, AGP 2, Witten 1969. J. Wallmann, Postillenvorrede und Pia Desideria Ph. J. Speners, in: H. Bornkamm, F. Heyer, A. Schindler(Hgg.), Der Pietismus in Gestalten und Wirkungen, AGP 14, Bielefeld 1975. M. Greschat(Hg.), Zur neueren Pietismusforschung, WdF 440, Darmstadt 1977. J. Wallmann, Ph. J. Spener und die Anfaenge des Pietismus, BHT 42, Tuebingen 1986.(2 Aufl.)
이러한 공동체는 바른 신앙고백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통해 신자들이 교회와 세상에서 가시적으로 활동하는 삶으로부터 이루어진다. 그가 구상하는 교회공동체의 영적인 갱신을 위하여 성서와 지속적인 교제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만나는 일은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그가 “영적”이라고 사용한 단어는 단지 목회자와 그들의 직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믿는 일에 실제적으로 헌신하는 모든 신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그에게 있어 성령의 사역이며 은혜와 자비로움의 일 가운데 드러난다. 진리를 위하여 신앙의 문제를 갖고 논쟁하는 일은 필연적이지만 그 경우 그리스도의 사랑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신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항상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학문적인 연구가 신앙경험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순전히 지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마음을 아우르는 全人을 양성하는 것에 그 목표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경건한 소원은 단독으로 출판되기 전에 요한 아른트(Johann Arndt, 1555-1621)의 설교집을 편찬하였던 슈페너가 서문 격으로 기술한 것으로 독자들의 영적인 측면을 각성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아른트와 마찬가지로 슈페너 역시 자신의 전 생애가 신앙고백을 달리하는 교파주의 시대를 살았으며 개인의 신앙적 삶이 교회에 결부되어 있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파주의라는 물결에 휩쓸리기보다는 깊이 있는 신앙적 삶에 보다 큰 관심을 가졌다. 때문에 이들은 진정한 경건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는 어떻게 요청되는가? 하는 문제에 나름의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슈페너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그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각성된 신자들은 일반적인 신앙성장의 기회였던 주일성수에만 만족할 수 없었으므로 슈페너의 지도하에 특별한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경건한 자들의 모임(Collegium Pietatis)으로 알려진 이들은 신앙서적을 읽고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는 회합으로 곧바로 독일전역과 全유럽으로 확대되어 나아갔다.
슈페너 자신이 독창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단지 前시대를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영적인 구조에 관해 부지런히 탐구하는 학자형 목회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신비주의가 기독교 신앙에 가치를 지닌다고 느끼는 이들과 동감하면서도 완전주의라는 성향에 대하여는 거부하였다. 그의 이런 성향은 다소간 국가교회와 열광주의자들 양편으로부터 오해를 낳기도 하였다. 원래 카톨릭교도이었으나 칼빈주의에로 개종한 프랑스인 쟝 드 라바디(Jean de Labadie, 1674년 사망) 보라. RGG (3 Aufl.) IV, 193 과 LThK (2 Aufl.) VI, 718 그리고 TRE 20, 362.로부터 슈페너는 “진정한 복음주의 교회가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함”을 위한 결정적인 충동을 받았다.
라바디는 프란시스코회와 예수회의 영성을 개혁교회의 공동체에 적용시키려 시도하였고 성서에 대한 묵상이 기독교 신앙에 본질적인 요소가 됨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라바디는 카리스마적인 인품의 소유자로 자신의 영적인 통찰력이 모든 교회에 영향을 미쳐야한다고 여겼던 인물이다. 우리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한 세기 전의 카스파 폰 슈벵크펠트(Caspar von Schwenckfeldt, 1561년 사망) 신비적 영성주의자로 알려진 슈벵크펠트는 자신의 저작과 단편들에서 이름뿐인(명목상의) 기독교를 자주 고발하고 있다. “입으로는 죄에 대해 말하면서도 마음은 회개할 줄 모른다”(Corp. Schwenckf. VI, 235)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바, 슈벵크펠트는 국가교회가 자신의 관심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교회 밖으로 탈피해 나갔던 인물이다.
슈페너가 교회의 영적인 면에 관하여는 어느 정도 라바디와 유사한 생각을 가졌음은 분명하나 후기의 라바디가 보여주는 모습과는 달리 슈페너는 제도화된 루터교회의 전통 안에서 영성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하였다. 비교. K. D. Schmidt, de Labadie und Spener, in: ZfKG, Bd. 46, S. 566-583.프랑크푸르트, 드레스덴 그리고 베를린에서 목회하는 가운데 슈페너는 지도적인 위치를 확보하였으며 일생에 걸쳐 교회의 영적인 구조에 관한 의식에 있어서는 특출하였다고 하겠다. 이러한 면에서 그는 경건주의의 아버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슈페너의 “경건한 소원”은 오늘까지도 실제적이고 교회와 그의 신학에 비평적인 물음을 던지며 항상 새로이 갱신하려는(Ecclesia semper Reformanda) 이들에게 여전히 도전적으로 봉사한다. 오늘의 교회와 신학의 상황에 대해 Otto Dilschneider는 “영적인 망각”의 시대라 명명한 바 있다.
II. 금기(Tabu)를 깨다: 개인의 신앙에 대한 물음.
슈페너는 자기 시대의 교회가 갖는 폐해를 예언자적인 안목을 갖고 보았다. 종교개혁의 근본신앙, 즉 죄인들의 의롭다함은 오로지 은혜로만 다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지나칠 정도로 지성에 국한됨으로써 신앙은 가르침에 머물러 삶과 유리되어 있었다. 루터의 명성은 가르침의 순수성에만 적용될 뿐 신앙으로부터 형성되는 삶(Aus Glauben Leben)에 있어서는 잊혀져 있었다. 카톨릭과 열광주의자들에 반대하여 개신교 정통주의는 계시의 원천인 성서의 배타성(성서영감론)을 주장하였다.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은 그때마다 언급되었으나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같이 영접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주님의 경고(막10:15)는 무시되었다.
슈페너는 루터의 문헌이 자기 시대의 신학자들에게 단지 가르침을 제공하는 자료 이상의 내적인 측면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1669년부터 루터의 성서주석을 비롯하여 문헌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러한 결과가 경건한 소원에 잘 드러난다. 특별히 루터가 신비주의 저술가 가운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요한 타울러(Johann Tauler, 1361년 사망)와 독일 신학(Theologia Germanica)이 언급되어 있다. 슈페너의 루터 연구는 자신의 견해를 강화시켜 주었는데, 稱義에 관한 종교개혁의 근본신앙을 全기독교적인 삶에로 확대시킴으로써 그 가르침을 값싼 은총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막았다.
종교개혁자 루터에게 있어 칭의에 관한 가르침은 신학적인 原理라기 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격적으로 분여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신학적 기술이요 반성인 셈이다. 루터는 이러한 칭의의 체험을 새로운 출생이요 천국에 이르는 문으로 기술하지 않았던가?(“Hic me prorsus renatum esse sensi, et apertis portis in ipsam paradisum intrasse”) WA 54, 186.슈페너는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자신의 사역지에서 종교개혁의 진정한 가르침과 단지 루터의 이름만 빌린 신자들 간에 깊은 간격이 있음을 경험하였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한 무더기의 가르침과 신앙고백들은 그것이 비록 복음주의적이라고 명명되어진다 하더라도 실제의 사실과는 거리가 먼 생각들이요 상상에 불과하다” PD(Pia Desideria), S. 33.고 그는 비판하였다. 루터의 작품과 만남으로써 슈페너는 이미 위험수위를 지닌 교회에 대해 비평적인 물음을 제시할 수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본질을 자신의 “경건한 소원”에서 개진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은 루터 종교개혁의 신실한 계승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사람들이 신앙이라는 단어에서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에 촉각을 기울임으로써 그것이 성서 자체와 개혁자 루터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가 당시의 루터교회에 내놓은 물음, 즉 성서에 바탕을 두고 체험된 신앙과 그에 응답하는 책임의식은 오늘 우리의 시대, 특히 교회의 다양성이 공존하고 보다 세속화된 현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이기를 소원하는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음이라 할 것이다.
슈페너는 터부시되던 물음에도 관심을 보이되, 그러한 문제들에 어떻게 신앙적으로 응답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예로써 그 당시에 개인의 신앙과 그것을 사랑으로 유지하는 일에 대한 대화는 극히 드물었다. PD, S. 42.
교회의 관습을 유지하고 죄인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칭의론에 대한 이론적 동의가 마치 복음의 주된 관심사로만 취급되고 있었다. 슈페너는 여기에 신앙의 내면성에 대한 금기를 문제시함으로써 루터의 신앙이해에 대한 새로운 주의를 집중시켰다. 즉 신앙은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야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깊이와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자리잡음으로써 세상의 권세자들과 악과 파멸에 대해 바르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은 신학적인 반성 그 이상의 것이다.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성서의 지평에서 만나는 사건이다. 신앙은 하나님 자신을 통해 선사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써 매일의 삶 속에서 구체적이며 - 성서의 언어를 빌리자면 - “새로운 출생”으로 비쳐지는 일이다. 여기에서 칭의와 신생(거듭남)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의 경험 가능한 새로운 관계라는 시각에서 이해되어진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귀한 선물을 주시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길 수 있다. 신앙의 출처와 근거를 물음으로써 단순히 이론적인 가르침의 방향을 뛰어넘어 성령으로 충만한 삶과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앙의 인격적인 교제에 슈페너는 강조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란 바로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롬8:15) 그분 스스로가 진정한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신앙이다.
신앙에 관한 슈페너의 이러한 관심 배후에 루터의 로마서 서문에 나타나는 신앙이해가 적절하게 인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경건한 소원에서뿐만 아니라 여타의 그의 저작들에서 신앙이해에 대한 관점은 그와 루터가 가장 분명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루터가 그의 로마서 서문에서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 카톨릭교회였다면 슈페너는 국가교회의 외형으로 자리잡고 있던 루터교회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마치 요한 계시록의 사데 교회(계3:1-13)처럼 말이다. 자기 시대의 종교비판이라는 점에서도 루터와 슈페너는 일치한다. 다만 그러한 비판이 “거짓신앙”이라는 표적을 가지고 있음이 시대를 넘어 양자의 일치를 가능케 한 것이다. “믿음은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이 인간적인 개념이나 꿈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음에 뒤따르는 생활의 개선이나 선한 행위들은 보지 못하면서도 믿음에 대한 말은 많이 하고, 또한 많은 것을 들어서 오류에 빠져 믿음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얻으려면 선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이 복음을 들을 때에 앞으로 나아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마음에 믿습니다 라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이것이 참 믿음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상상이나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결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이르지 못하며 따라서 그 결과 아무 것도 생기지 않으며 개선되는 것이 전혀 없다. 믿음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새로이 태어나도록 만든다(요1,13). 믿음은 옛 아담을 죽이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뜻과 능력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믿음에는 항상 성령이 동반하여 믿음이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생동력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일은 끊임없이 선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 믿음은 왜 선행을 해야 하는지 묻기 이전에 이미 선행을 하였으며 또한 항상 행하고 있다.” PD, S. 34; WA, DB, VII, 9f.
거짓 신앙은 하나님 안에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신앙이며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명명하는 신앙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보다는 이성에 방향 지워져 있으며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가 불가능한 하나의 원칙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은 그러한 신앙으로 복음을 빗겨가기 십상이다. 하나님은 객체이고 인간이 주체인 신앙, 바로 그곳에 불안을 숨길 자리가 있다는 말인가? 이상의 정반대야말로 진정한 신앙이다. 신앙은 환상이나 훈련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양육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 刻印되는 것으로 성령과 신앙은 하나가 되어 나누일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은 임의적이며 그가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되, 사람의 마음이 예수에게 열린 곳으로 나아간다. “죄인은 오직 은혜로써만” 이라는 칭의론은 신앙에도 타당하다. 항상 생동적이며 새로운 출생에 비견되는 신앙은 언제나 행함 안에 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의 출처요 동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항상 성령의 사역이다. 신앙은 성령에 사로잡힘이요 성령의 충만함이다. 결과적으로 성령의 열매가 뒤를 따른다. 자연인, 옛 아담은 하나님의 요청에 응답하지 못하나 하나님의 영에 의해 추진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삶에 능력을 가지는 바, 복음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집행되는 곳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사역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사실은 사람은 항상 성령의 사역에 전제되어 있으며 성령의 간구하심에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실재하심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은 교리문답이나 교과서에 나타나있는 성령에 관한 지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III. 교회의 영적인 구조를 재발견하다.
슈페너는 자기 시대의 교회가 갖는 결함을 들추어내는 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경건한 소원”은 만들어진(造作된) 신앙으로는 교회의 참된 본질에 대해 해답이 될 수 없음을 경고함으로써 복음적인 교회(루터교회)에 대한 하나의 참회설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가 바란 목적은 분명한 바,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더 나은 상태를 회복하는 데에 있다. 슈페너가 신학적으로 잘 훈련된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인 사유방식이 교회의 본래됨을 일으켜 세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점, 즉 사도 바울이 로마서(롬12장)와 고린도 전서(고전12장과 14장)에서 다루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과 은혜로 주어지는 은사들이 교회를 다루면서 언급되고 있다. 교회는 사회적인 집단 그 이상의 크기를 가지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둘러싸인 자리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스러운 몸으로서 교회는 가시적인 회합이요 영적인 공동체이다. PD, S. 66.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8:32의 말씀에서 드러나듯 교회의 구조는 영적인 측면이 있다. 진리가 철학적인 사변이나 학문적인 연구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조명되어야 하듯이 영적인 교회의 구조는 성령이 주시는 은사들의 나눔이라는 측면에서 철저히 카리스마적인 구조를 갖는다. 교회의 이러한 영적인 구조를 재발견함으로써 슈페너는 신자들의 영적 사제직에 대해 새롭게 그리고 강력하게 그 의미를 논할 수 있었다.
슈페너는 무조건적이고 필연적인 “영적 사제직의 정립과 부지런한 훈련”을 베드로 전서2:9에 의거하여 강조하되, 루터의 다음의 글을 인용하며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속주 예수로부터 사제에로 만들어지고 성령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으며 영적 제사장직에로 세움을 입는다.” PD, S. 58. 비교. WA 12, 169ff.
개개의 그리스도인이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간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활동과 실재가 드러나므로 열매있는 신앙을 갖게되고 성령을 받는다.(롬8:9, 엡1:13을 보라) 교회의 영적인 구조란 더 나아가 “성직자”만이 영적인 것으로 지칭되거나 교회의 모든 영적인 삶이 목회직에 종속된다고 하는 사실에 반대한다. 이론과 실제에 의해 규명되지 아니한 영적인 상태에 대해 슈페너는 자신의 시대에 고통스러운 비평을 가했던 셈이다. 그는 목회직의 필연성과 고유성을 -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교회의 관행이나 - 성직자를 계급시하는 - 일상의 삶 속에서 헌신과 기쁨을 가지고 단순하게 섬기는 일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목회자들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목회자의 인격 속에 모든 종류의 영적인 업무들과 그에 합당한 카리스마(은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면 더더욱 그 일은 실제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특히 그의 동료들에게 받은 은혜를 따라 가르치고, 징계하고, 권면하며, 회심시키고, 경건케 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공동체의 삶을 관찰하고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至福과 가능성을 염려(돌봄)해주어야 한다.” PD, S. 59.
여기에서 슈페너가 은혜에 관해 논할 때 그는 사도 바울이 고전14장에서 밝힌 그리스도의 몸의 기능으로서의 은사를 말하고 있다. 특히 그는 영혼의 돌봄이라는 은사에 주목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가 갖는 나태함의 주된 근거의 하나는 돌봄이 단지 목회자의 몫이라고 여기는 데에 있다. PD, S. 59. 비교. A. Bittlinger, Charisma und Amt, 2 Aufl. Stuttgart 1967.
하나님은 지체들의 다양한 은사들을 통하여 교회를 살아있게 한다. 지체들의 은사는 또한 교회를 그리스도 공동체의 본래적인 의미에로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단지 도움을 주는 자를 넘어서서 믿음이 강하고 충실한 일군들에게 역할을 분배해주어야 한다. 현대가 전문화된 사회인만큼 당시에도 다양한 기술의 관점에서 변화를 꾀하던 시기였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목회자에게 기꺼이 섬길 줄 알았으며 일상의 질서에서 목회직의 과제에 협력할 수 있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소위 “주일성수”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외적인 율법의 일조차도 도전을 받고 있었다. 슈페너가 관심한 직무와 공동체, 카리스마와 직무의 관계는 따로 떼어 취급할 수 없다. 우리 시대의 실천신학자 루돌프 보렌은 기술하기를 “우리는 은사들을 전적으로 목회직에 국한하고 있다. 목회자만이 왕이요 제사장이며 예언자요 교사이다. 모든 이들이 한 사람을 섬기며 한 사람이 모든 이들을 섬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변하지 않고 목회자는 지쳐있으며 세상에의 섬김은 뒤로 떠밀려 있다. 우리 시대의 목회직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된 교회를 섬기기에 적절하지 않으며 목회자와 공동체간의 대립은 성서적이지 않을 만큼 치명적이다.” R. Bohren, Predigt und Gemeinde, 1963, S. 192.
슈페너가 당시에 보았던 문제가 오늘에까지 유효하지 않은가? 슈페너는 영적인 상태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공동체에 관심하고 있다. 이는 성령이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하나님의 영을 초대공동체의 그것과 같이 생각할 수 없듯이 당시의 슈페너도 성령의 사역에 대해 “능력이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현실을 의식하며 살았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성령의 일 “거룩의 사역”이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요3:8절에 대한 오해가 빚어낸 - 성령의 일은 무계획적이며 사람의 준비와 무관하다 - 사실에서 “결단”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마음대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슈페너가 강조한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맡겨져 있으며 그것은 성령의 사역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 곳에서 교회의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상태(계3:15)가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성령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고 도리어 방해가 되는 데에 모든 원인이 있다.” PD, S. 52. 고 슈페너는 말한다. 성령이 활동하도록 그에게 내어 맡기고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교회의 갱신을 위한 첫 번째요 결정적인 발걸음이다.
슈페너는 신령주의자들이 말하는 불가시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 이름이 제대로 지탱되기만 한다면 성령을 통하여 생생하게 유지될 수 있다. 때문에 교회는 직무뿐만 아니라 영적인 본질을 인지하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 같은 구조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는 고전14장을 언급하면서 “옛 사도적 방식으로 공동체의 회합이 이루어지기를” 제안하였으며 주일과 공휴일의 거룩성을 회복함은 물론 일상의 모임이 바르게 세워지기 위하여 그는 “가정교회”에 대해 말하였다. PD, S. 55f.
고전14:26ff을 언급하면서 제안된 가정교회는 루터의 만인사제직에 대한 올바른 계승이요, 지적으로 편협하여 다소간 죽은 정통주의로 알려진 자기 시대를 되돌리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가정교회를 건축함에 있어 슈페너는 일차적으로 주석적인 방향성보다는 개인의 신앙체험에 깊이를 두었다. 가정교회는 공동체의 지체뿐만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큰 수확이다. 이를 통해 모두는 “중심으로 現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신앙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다. 목회자와 지체들간에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신뢰가 싹트고 이를 통해 돌봄이 쉽게 이루어진다. 결국 가정교회의 지체들은 영적 사제직에의 구성원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슈페너는 교회의 책으로서의 성서의 의미를 잘 알았다. 성서는 특히 가정교회에서 사용되어져야하는 것으로 그것은 학문적으로 바르게 해석되어져야 하는 것보다 우선은 개인의 신앙을 강화시켜주는 데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설교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논의하는 등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 어떤 일을 개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그는 시편1:2절을 지적하는 가운데 구약 성서적인 경건의 의미를 되새긴다. 마음속에 자리잡은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좋은 것을 우리 안에서 자라게 하는 씨앗이다.” PD, S. 57.
성서를 묵상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길을 통해 영적인 의미에서 성인이 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항상 성장하는 가운데 있으며 율법이 아니라 은혜와 그의 추진력에 뒤따르는 순종에 의해 이끌어진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며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골3:16)의 말씀에 호소하는 가운데 슈페너는 가정교회의 영적인 분위기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논하였다.
우리는 슈페너가 항상 가시적인 형태로서의 교회의 영적인 구조에 관심하였다고 말하였다. 루터가 “독일신학”과 요한 타울러를 언급하였듯이 WA, 1, S. 152f. 그 역시 위의 책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신학생들에게 추천하였다. 성서 곁에 이러한 서적들을 둠으로써 지성 단편주의에 빠지지 않고 교회의 본래적인 본질을 늘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PD, S. 74. 교회의 영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는 것은 본질에 관심하는 것이며 “우리의 全기독교회가 내적이고 새로운 인간 위에 기초함이요, 그의 정신은 신앙이며 그의 활동은 삶의 열매이기를” PD, S. 79. 강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교리문답 교육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체들인 성인들도 늘 가까이 해야하는 것으로 그것은 단어 이상의 이해를 요청한다고 보았다. 슈페너는 최상의 교육학적인 방법을 위하여 당대의 저명한 교육가들과 신실한 그리스도인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의 방법을 배웠다. 교리문답 교육을 통한 지식은 단지 기독교에 대한 입문이요 초보자를 양육시키는 것이며, 신앙은 “내적인 인간을 지향하도록”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해 항상 새로이 세워진다. 이 일은 설교직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에 의한 복음의 선포를 통해 활동하는 신앙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슈페너는 하나님의 영을 통한 봉인에 대해 말하며 이로써 말씀의 능력은 살아있는 운동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은 성령의 활동으로부터 기인한다. 하나님에 의해 내면적으로 갱신된 인간은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케 되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 이점에서 슈페너는 무엇보다도 요한 아른트에 빚지고 있다. 아른트는 그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요, 루터의 후계자이다. 교회의 영적인 갱신을 위해 수고하는 자는 누구든지 성서 그 자체로부터 추출된 토대에 영적인 소경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물론 슈페너는 교회공동체를 이상적인 사회(respublica platonica)로 꿈꾼 것이 아니다. PD, S. 47. 오히려 그는 벧전2:13-17과 벧후13:9-11을 따라 기독교적 완전을 추구하되 복음을 마음의 근거로 삼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 구원의 온전함을 이루어 가는 변증법적 태도를 취하였다.(빌2:12-13절과 비교해 보라)
IV. 교회와 그의 신학.
기독교적 신앙이란 세상 앞에서, 세상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진술이어야 한다. G. Ebeling, in: RGG 3. Aufl. VI, 767. 이 점에서 교회를 바로 섬겨야 하는 신학의 과제가 형성된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도 학문의 중개자이므로 교회와 신학은 동일한 토대, 즉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고전3:11) 신학은 교회를 섬김에 있어 비평적인 기능을 갖는다. 신학은 교회에 항상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함이 바른지를 묻는다. 이 점에서 슈페너는 신학적 작업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크게 부각시켰다. 신학적으로 학문하는 일은 철저히 진리와 연관되어 있다. 신학이 교회를 섬기는 일은 진리의 대적자들을 쳐부수는 것이며 교회를 섬기는 자들을 양육하는 일이다. 신학적 논증은 그것이 어떤 사안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를 밝혀주는 한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성서의 가르침이 왜곡되어서는 안되는 근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슈페너의 시대는 옛 개신교 정통주의라 불리우던 때로 성서해석이 신앙고백 문서에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성서를 그 자체로 하나의 증빙문서(dicta probantia)로 간주함으로써 교리적인 사안을 위한 보조자료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슈페너는 자기 시대의 바른 신앙을 위한 노력을 가치 있게 보았으나 그에 따른 결점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신앙의 근본”을 지키고 신앙의 진리에 대한 동의를 규정하려는 시도 가운데 지나치게 이성에 의지함으로써(convictio intellectus) PD, S. 66.
성서적 근거가 인간적인 호기심으로 가득한 건축물의 토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바른 신앙을 구축하려는 신학에 그는 사랑이라는 거룩한 열심을 요청하였다. 만일 신학이 세밀한 논증과 성서에 대한 학문적인 각주로 가득한 하나의 교리체계에 불과하다면 그의 본래적인 과제는 곡해되고 말 것이다. 때문에 그는 교리에 대한 그 시대의 열심에 대해 때때로 “성령과 신앙이 없는 이들”이라고 비난하였던 것이다. PD, S. 64.
예로써 헬름슈테트의 학자였던 코르넬리우스 마르티니(1568-1621)의 말을 들어보자. “누군가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제대로 배우기만 했다면 그는 단번에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n: C. G. Joecher, Allgemeines Gelehrtenlexikon, Bd. III (1751), S. 227.
슈페너는 바로 이러한 사고에 가장 열정적으로 반대하였던 인물이다. 만일 학문이 “인간 고유의 자연적인 힘과 단지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성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이 경우 신학이란 “육신적인 지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PD, S. 65.
우리는 슈페너가 당시의 신학적 노력 자체를 무시한 것이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적인 敎養학으로서의 제도적 장치-신학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는 그것이 필수적이고 유용하긴 하나 신학의 본질은 아닌 셈이다. 그가 말하는 신학의 본질이란 철저히 “실제적인 태도(몸에 밴 습관과도 같이, habitus practicus)”이다. PD, S. 76.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 고백으로는 바른 신학이 아니다. 진정한 신학은 믿음, 소망, 사랑에 관한 가르침이며 교회에 대해 비평적인 기능을 가지되, 교회의 일이 문자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으로부터인지를 묻는다. 슈페너가 이점에서 관심하는 것은 죽은 정통신앙과 삶으로 중재되어지지 않는 학문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연구하는 인간의 정신 사이의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단편적인 신학이란 기껏해야 그 핵심에 옛 스콜라주의의 재생에 불과하며 이는 루터가 그렇게도 투쟁해왔던 사안임에 틀림이 없다. 루터가 앞문으로 쫒아내었으나 뒷문으로 슬며시 들어온 스콜라주의 신학은 이제 하나님 자신이 성서의 말씀이 되심으로 새롭게 바뀌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스콜라주의가 갖는 학문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음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가시투성이의 학문(theologia spinosa)일뿐이다. PD, S. 24. 때문에 슈페너는 만일 사도 바울이 오늘날 다시 온다면 많은 신학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그의 지혜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교리나 윤리 같은 형이상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옛 자아를 바꾸는 일에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루터의 다음과 같은 경고도 덧붙여 밝힌다. “진리는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논증들에 의해 손상을 입는다.” WA 40/3, 361:“Neque enim docendo, sed disputando amittitur veritas”. PD, S. 64.
학문이라는 이름의 논쟁은 입씨름에 빠지기 쉬우며 결국 주님의 발 앞에 앉아야 하는 꼭 필요한 일을 망각하게 하는 위험에 직면하고야 만다.(눅10:38-42) 우리는 다시 한번 슈페너가 살았던 시기를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30년 전쟁(1618-1648) 후 많은 신학자들은 논증을 통하여 루터의 신학을 공식적인 기독교로 자리매김하려 하였으며 자연히 “루터처럼 됨”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영적인 삶에는 등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슈페너는 신학교수들에게 권하기를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안내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신학은 신적인 일을 가르침에 있어(philosophia de rebus sacris) 철학 이상의 것이므로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항시 명심해야 할 것은 신학 본래의 의미를 체험된 신앙과 불가분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신학은 “성령의 빛에서만” 체득되어진다. PD, S. 71. 만일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인지되기만 한다면 신학과 교회에서 신앙을 파괴하는 허영심은 자리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슈페너의 신학수업을 위한 개혁안은 학문적인 철저성과 성령의 실재를 체험함이라는 양자의 調和에 있다.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통하여 “육신적인 지혜”와 “성령 안에서의 지식”을 포괄함으로써 복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수업과 설교의 자리에서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결여되면 바른 신앙에 관한 가르침은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슈페너는 결단코 전문 신학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제도 장치로서의 신학과 인격적인 신앙체험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교회의 상태를 회복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가르침의 체계나 철학적인 이해구조 속에 그리고 가설적인 연구결과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경험 위에 세워진다. 19세기의 저명한 학자요 경건주의 연구가였던 알브레히트 리츨(1889년 사망)은 경험을 하나의 운동으로 간주하고 그 주체를 인간적인 자아로 밝힌 바 있다. A. Ritschl, Rechtfertigung und Versoehnung, 4 Aufl., Bd. 2, S. 6.
그러나 자아는 객체요, 주체인 성령의 영역 안에 있다고 슈페너는 이해하였다. 이는 태양을 피해 숨어버린 사람이 그 열기를 경험할 수 없듯이 신자들이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역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하는 것이다. 제도 장치로서의 신학과 경험신학 간의 차이와 대립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로 섬기는 일에 있어 불가분리의 하나됨을 논하였던 것이다. 신학과 경건을 화해시키고 성서를 교회의 본래의 책으로 재발견한 노력을 우리는 그의 특별한 기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신적인 말씀과 가르침의 순수성은 많은 서적들과 논쟁들 가운데 보존될 뿐만 아니라 참된 회개와 거룩한 삶 가운데 유지된다.” J. Arndt, Vier Buecher vom wahren Christentum, I, 39.
V. 오늘의 슈페너.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타눔의 신앙고백에 의할 것 같으면 교회의 보편성(公교회성)은 4개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다.(una, sancta, catholica, apostolica) 황제 트라야누스(98-117) 치하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내어 던져져 순교한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보편교회가 있다” Ignatius, Brief an die Smyrnaeer, VIII, 2. 여기에서 사용된 “카톨릭”이라는 희랍어 단어는 “일반적인/보편적인”의 의미를 가진다. 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분열을 거듭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교회의 보편성이 깨어진 것은 동-서 교회의 분열(867년과 결정적으로 1054년)이었으며 종교개혁은 가시적인 교회의 일치에 대한 열망에 종지부를 그었다. 연합과 재연합의 시도들이 있었으나 나아진 것은 없다.
30년 전쟁은 교파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의 욕망에 붙여진 불이었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슈페너 역시 그 시대의 아들로써 로마-카톨릭 교회를 “적 그리스도의 바벨” PD, S. 11. 로 묘사하곤 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교회의 깨어진 보편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시대를 살았으며 따라서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영적인 수단들을 강구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슈페너의 “경건한 소원”은 특히 옛 개신교 정통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 루터가 진지하게 투쟁하였던 스콜라주의가 대학의 신학과 논쟁을 장식함으로써 성서는 성령에 의해 문자적으로 기술되었으나 성령의 실제적인 조명은 필요로 하지 않는 영감설에 의해 지탱되었으며 종교개혁의 근본원리인 칭의론에 결정적인 자리를 맡겨놓은 교리적 체계에 대하여는 아무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위 “정통”이라는 교리체제 하에서 우선 순위는 이성에 두어졌으며 체험된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뒷전으로 떠밀려졌다. 그에게 있어 참된 신학은 “경험의 신학 theologia experimentalis”이지 “교리의 신학 theologia doctrinalis” PD, S. 61ff. 비교. Luther, WA XI, 98. 이 아니다. 즉 형식의 앎이 아니라 신앙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학문적인 신학의 근거가 옛 개신교 정통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비평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오늘의 신학 역시 현대 학문의 방법과 이론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신앙의 진정성과 생생한 경험을 도와야만 한다. 우리 시대에 학문적인 신학은 많은 다양성을 갖고 있으며, 전승으로 기어 올린 제도적 장치 신학에 익숙한 많은 목회자들도 갖고 있다. 그러나 루터와 슈페너가 만들어진(가공된) 신앙으로부터 진정한 신앙을 열정적으로 구별지었던 것처럼 참된 신앙은 신학적 연구의 결과물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적인 신학작업은 진정한 경건을 바로 세우되 다만 現세상적인 가능성으로의 신앙, 즉 가공된 신앙을 경시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 슈페너의 공헌으로 볼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서 위에 세워지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이며 때문에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마음을 요청하는 것이다.(“... affectum, non intellectum requirit fides”) WA 4, 356. 신학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지 간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본래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
슈페너는 성서와 성령의 신학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새로운 가르침을 바라거나 가르치지 않았으며 자신은 루터교회의 충실한 일꾼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의 의미는 적지 않다. 그는 뛰어난 수사학자나 논쟁가는 아니었으나 복음적인 기독교에 대한 명료함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심같이(요1:14)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해야 함을 역설하였고, 진정한 교회의 보편성은 사랑의 보편성에(벧후1:7) 기인한다고 강조하였다. 체험되지 않는 성서와 제도적 장치 신학이란 기껏해야 껍데기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는 그를 하나님의 일꾼이요 교회의 신학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교회의 영적인 차원을 재발견하였으며 영적 갱신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수고에 준비된 평신도들이 등용되었으며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다양한 은사가 나누어지도록 영성을 개발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적인 갱신을 위해 애쓰는 자들은 다음의 물음에 진지한 숙고를 기울여야 한다. “제도적인 교회, 조직화된 그룹들, 전통적인 가르침에 익숙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교회의 구조를 영적으로 변화시켜 갈 것인가? 어떻게 그들이 역동적이며 생동감 있으며 성령의 은사들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可視化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이 물음은 살아있는 신앙과 진정한 교회를 회복하려는 이들에게 책임있는 대답을 요청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그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는 슈페너의 “경건한 소원”과 그의 다른 저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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