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란?
정동섭 교수
먼저 어원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단이란 원래 '당파' '종파'를 뜻하는 의미의 헬라어‘하이레시스’에서 온 말이며, '이단'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heresy'(벧후2:1- 'Heresies')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는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참고 갈5:20, 딛3:10, 요21:10-11). 즉 이교, 이설, 반대론, 분리, 당파, 선택된 의견, 종파, 부조화, 불화, 논쟁, 이단 등의 뜻이다. 영-영 사전에는 "superstition(미신,사교) - all teaching that not conform to confucianism" <미신 - 전통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 모든 가르침>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 이교(異敎), 사교(邪敎)라는 뜻의 'cult(ic)'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웹스터의 사전에는 "이단이란 비정통, 혹은 사이비로 간주된 신조를 붙잡고 있는 적은 무리의 종교단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문의 뜻을 보면 이단(異端)이란 "시작은 같은데 끝은 다르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이단이라는 말은 사이비종교(또는 종파)와는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사이비란 (似而非)란 이단으로 정죄되지는 않았지만 성경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잘못된 신앙운동을 말하는데 엄격히 말한다면 기독교를 빙자한 유사한 종교집단으로 기독교 같지만 기독교가 아닌 집단을 말합니다. 그 집단의 대표되는 개인이나 무리가 종교에 대한 신앙 자체를 추구하지 않고,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추종자들을 속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집단일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월터 마틴(Walter Martin)은 말하기를 “이단은 어떤 특정인의 그릇된 성서 해석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사실 사이비종교·이단·유사종교의 교주들을 보면 거의가 정상적인 신학을 하지 않은 자들로 저들의 성경해석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선택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 레위기 22:18, 21절을 보면 그들이 택한 대로 예물을 드리는 것 즉, 낙헌제를 이단이란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2) 선택된 의견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 조금 전에 인용한 베드로후서 2:1에서는 선택된 의견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멸망케 할 의견들이라고 하였다.
3) 어떤 의견을 고집하는 분파나 분당의 뜻으로 사용한 경우: 고전11:10, 갈5:20, 롬18:17, 행5:17)
따라서 성경에서 이단이란 특정주의나 교리를 공표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깊은 성경공부가 없이는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삼대 시험의 경우를 보아도 이단의 괴수인 사탄은 성경을 인용하여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단이란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갈1:7).
그러나 사이비는 좀 다르다. 중간사 시대를 중심으로 (위경)이라는 것들이 많이 쓰여졌다. 유명한 성경의 인물들의 이름으로 쓴 책들인데 그러나 사실은 위조 지폐처럼 본인이 직접 쓴 것이 아니고 또 그의 사상이 기록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단과 사이비는 구별되는 것이 옳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단이란 잘못된 교리를 주장할 뿐 아니라, 단순히 틀린 교리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교리이다. 이것을 위해 전통적인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간 자들이지만 사이비는 기성 교회 안에 속해 있으면서 그릇된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이단의 유형을 보면 크게 다섯 가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부정하거나 세속적 계시를 주장하는 경우이다(계22:18-19).
②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믿는다는(롬1:7) 교리를 부인하고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유대주의자들의 경우가 있다.
③ 골로새서에 나타난 이단으로서 금욕주의자들이 있었다(골2:8-10). 이들은 영지주의자들로서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에 근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육은 악하므로 묶어 두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금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④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도 근원적으로는 영지주의자들로서 육은 악하니 쾌락을 누리면서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는 사상이었다.
⑤ 가현설. 이들도 신학적으로 보면 영지주의자들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육은 악하니 어떻게 주님께서 육으로 오실 수 있겠느냐 하면서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예수지 그리스도(신성)가 아니라는 견해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선포함으로써 이 가현설을 비판하였고 요한일서 4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단들과 또 그들의 공격이 있어 왔습니다. 그들은 제각기 자신들만이 올바른 성경해석을 내리고 있다면서 정통 기독교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와 섭리 가운데 기독교는 위기와 극복, 그리고 발전을 거듭하며 2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져 내려 왔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정통 기독교 교리 속에는 2000년의 섭리의 역사가 녹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내려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이단들 역시 제각기 자신들만이 말씀의 올바른 해석자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의 물결은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끊어짐 없이 면면히 흐를 것이며 구석구석에서 생겨나는 이물질들을 집어삼키고 정화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왜 우리를 이단이라고 하느냐, 이단의 기준이 무엇이냐"하는 항의성 질문들을 해 옵니다. 그러나 그 '이단 판정'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통 기독교의 교단들이 충분한 자료 수집과 기도하며 연구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서 판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대개 영적, 정신적, 사회적 악영향을 끼치는 위험한 어떤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됩니다.
이단 사이비 문제 이해를 위한 기초 자료
사이비 이단들의 특성 -
기독교의 진리인 구원의 복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런데 요사이 한국교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사이비 신앙운동이나 기독교이단들은 성경이나 교리를 왜곡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전통진리의 일부를 전부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한국산 이단들의 특성
1. 혼합현상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특히 무속과의 혼합현상이 뚜렷하다. 작금 한국 기독인을 혼란케 하는 귀신론을 예로 든다면 저들은 귀신을 제 명에 못 죽은 불신자의 사후의 존재라고 말한다. 이것은 샤머니즘적인 사상이요 표현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의하면 "귀(鬼)는 음영이고 신(神)은 양영으로 차이는 조화에서 오고 두 기(氣)의 양면에 불과하다. 살아 있으면 사람, 사물이고 죽으면 귀신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죽은 영혼이 원귀가 되어서 사람을 괴롭힌다는 주장은 비 성서적이다.
2. 귀신들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질병이나 사고나 실패나 재난이 모두 귀신에서 온다고 말한다. 감기만 들려도 곳불 마귀가 붙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은 마귀를 쫓는 일이었고, 인간구원은 마귀로부터의 해방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귀를 알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하고 예수님을 알려면 마귀를 알아야 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들은 귀신을 위협용으로 사용하여 인간을 귀신에게 예속시키고 있으며, 귀신세력에서 구원받아야 되기 때문에 축사법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는 자가 능력 있고 신령한 목사로 부각시켜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3.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한다.
근래에 극성을 부렸던 '시한부 종말론'을 주목해 보자. 이단집단들 중에는 종말들을 앞에 내세우는 집단이 21개 정도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 중에도 다미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을 단언했었다. 이들은 시한부종말론으로 신도를 미혹하고 헌금을 강요하는 위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상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요. 우리 신도는 믿고 소망하며 준비할 것뿐이다. 칼빈은 "누구도 감히 그 날이 언제 임할런지 물으면 안 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시기에 대해 주님 이상으로 관심을 갖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그런데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년 월 일 시 분까지 단언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닌가?
다미선교회 발행 「예수 공중재림과 휴거를 준비한다」라는 책자에 보면은 "적그리스도는 짐승의 666표를 찍어 자기 백성으로 만들고자 갖가지 린치를 가하며 갖은 고문을 참혹하게 가한다. 눈을 뺀다든가 코 귀를 짤라내는 고통, 손발을 짤라내는 고통...."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환난시대의 광경을 계시로 받았다고 하면서 "표(666)를 거부하는 여자들을 모두 옷을 벗겨 목욕탕 안에 밀어 넣고 적그리스도 요원 남자들을 보내서 욕을 보이게 하며 표를 받게 했습니다." 등으로 환란시대의 광경을 말함으로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종말에 대한 묵시는 초대교회의 네로와 같은 폭군이 나와 기독교인들을 박멸하고 핍박하는 상황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최후로 승리할 것을 보여 주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위로와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보여 주신 것이다.
4. 열광적 신비체험을 특성으로 한다.
사이비 이단들은 인간의 호기심과 신비추구 의욕을 최대 한도로 이용하여 입신, 방언, 안찰, 진동, 접신, 환상 등의 신비하고 격렬한 체험으로 유도하고 이것이 신앙생활의 최고 경지인 것처럼 말한다. 이것은 한국인에게 깊숙히 뿌리내려 있는 무속신앙의 기능으로 엑스타시(황홀경)와 기복심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여간 광신적 신비주의는 모든 이단의 온상이 된다. 허황된 이적을 추구하고 잘못된 신비체험을 따르다 보면 주술적이고 미신적이며 의존적인 신앙으로 기울어지게 되는 반면 비윤리적이며 탈사회적 혹은 탈역사적인 인간관을 갖게 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몇이 와서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할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39)고 하시면서 자신의 대속적 죽음과 이로 인한 인간구속의 역사가 참된 기적임을 말씀하고 있다.
한국산 이단의 특성은 무속신앙이나 여타 종교와의 혼합현상을 이루고 있으며 신도들을 공포와 불안으로 유도하여 의존적이고 미신적이며 주술신앙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단을 척결하고 복음적 신앙과 성숙한 교회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거짓 계시운동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이단, 이단적 개인과 집단들은 하나의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새 예언 새 계시'를 통해 거짓진리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거짓 계시는 주로 종말론에 집중돼 있고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대한 예언과 계시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사실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대한 관심은 교회사의 모든 세대에 있어서 가장 호기심을 주는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므로 이때를 산정해 보려는 거듭된 노력이 있어 왔고 신적 계시를 빙자한 새 예언 혹은 새 계시가 신적 권위를 빙자하여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교회는 "기록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고전 4:6 계22:18). 그러나 2세기 이후 교회사 특히 근년에 와서 한국교회에는 종말론, 미래적 사건, 무분별한 예언과 사적 계시가 범람하고 있다. 많은 이단들은 「새 예언」은 보다 높은 영적 은사이며 이것은 종말의 때를 위한 발전적 계시로서 성경이 침묵하는 부분에 대한 해명과 성경계시에 대한 보충적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마 24:36, 행 1:7, 살후 2:1-3 등에서는 재림과 종말에 대한 거짓계시와 거짓예언을 경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서는 기록된 계시의 가감을 금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성경적 권위의 궁극성을 부인하는 것은 거짓계시일 따름이다. 장래사에 대한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의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거짓계시운동은 범람하게 된다. 교회사는 「위경운동」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과 이단성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으나 거짓계시는 신적 권위를 가진 정경이라는 미명 하에 교회에 침투하고 있다. 성경만이 유일한 규범이며 정경임을 확고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교회사에서 1930년대는 보기 드물게 신비주의적 혹은 신령주의적 신앙운동이 전개된 시기였다. 그것은 경제적 시련과 일제의 정치적 압제가 빚어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한국교회는 이설이나 이단에 대한 분별력을 갖춘 신앙성숙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신비적 열광주의와 거짓 계시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중 황국주는 백일간의 기도를 마친 후 묵시를 받았다고 주장, 자신을 신언(神言)의 대변자로 자처했다. 또 자신의 주장을 계시화하고 추종자를 얻음으로 열광적인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황국주는 후일 삼각산에 기도원을 세우고 소위 목가름, 피가름의 교리를 가르치고 실행했는데 이것은 영체교환이란 이름의 혼음이었다. 황국주 일파의 신비주의적 거짓계시운동은 윤리적 방종을 동반하였으므로 1933년 만주노회와 평서노회에 의해 '위험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황국주 일파는 이단적이라기 보다는 새 계시를 빙자한 사교적 성격을 띤 운동이었다.
또 1930년대 함남 원산에서는 일종의 신비적 체험과 예언을 중시하는 신령파운동이 전개되었다. 유명화는 원산감리교회 여신자였는데 27년경 입신의 체험이 있은 후부터 예언활동을 시작했다. 예수가 자기에게 친림했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특수화시킴으로 원산지방에 큰 파문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일군의 무리를 형성하였다.
한준명 백남주 등도 이단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1945년 이후에 나타난 이단을 살펴보면 이재명과 한에녹을 시발로 김백문 문선명 박태선 이뇌자 박명호 이장림과 다미선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는 새 예언 새 계시운동을 주도하고 조직화했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과 단체가 이장림과 다미선교회이다.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 그리스도가 공중재림하며 7년간의 대 환란이 있은 후 1999년에는 예수의 지상재림이 있다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계시의 종국성을 부정하고 계시의 계속성을 주장한다. 그러기에 그는 계시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진군 하군 권양 등을 통해 계시가 계속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계시가 성경의 침묵하는 부분을 해명해줌으로 성경보다 더 권위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정경의 집성과 더불어 종료되었다는 것이 사도시대 이후 기독교의 일관된 사상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이장림집단의 새 예언 혹은 새 계시운동은 거짓계시임이 명백하다. 이점은 이장림의 저서 속에 나타난 내용의 불일치에서 벌써 나타나고 있다.
간단하게 살펴보았지만 거짓계시운동은 모든 이단운동의 핵심적문제임이 분명하다. 이단종파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역사적 기독교신앙을 왜곡시키거나 변경시키는 집단인데 일반적으로 이들은 신비주의적 환상이나 접신. 예언 등 사적 체험을 자기들의 교리로 합리화시키는 근거로 제시한다.
한국교회의 종말론적 이단들은 대체적으로 세대주의적 종말관을 따르고 있지만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① 계시의 종국성을 부인하고 새 계시를 주장하거나 위경사조를 지닌 거짓계시운동을 추구한다는 점
② 신비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③ 자기집단을 특수화한다는 점이다. 자기들만이 구원의 대상이며 일반교회보다는 높은 차원의 영적은사 공동체임을 주장한다.
④ 윤리적 삶이나 도덕적 강조, 합당한 삶에 대한 고백이 없다. 그래서 오도된 도덕적 완전주의 혹은 도덕폐기론을 주장하기도 하며 혼음 재산 탈취 등 불의를 저들의 교리로 정당화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거짓예언자들의 출현을 경고했고(마7:15-23) 사람들을 미혹할 것임을 예고했다(마24:11, 막13:22-23).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2:1-2)고 말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바른 성경관, 정경관 정립을 통해 새로운 계시를 빙자한 거짓계시운동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이단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단(異端)을 신학적으로 정의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을 파괴하거나 거부하는 가르침"이다. 즉 교리적 탈선에 초점을 맞춘다. 성경에서 이단을 언급할 때는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하는 정통신앙에서 이탈한 그릇되고 거짓된 믿음과 가르침"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사회심리학적 측면을 함께 고려하여 이단을 정의하면 "어떤 특정인의 그릇된 성서해석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신학적으로 분파나 배교(背敎) 그리고 이교는 구별돼야 한다. 통일된 교회로부터 의도적으로 분립되려는 것이 분파요 그것이 신앙보다 사랑에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면 배교는 기독교를 버리고 불신앙을 택하는 입장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이단은 그릇된 교리를 주장함과 연관되는 성서신학적인 개념이다.
이단과 정통의 비판은 사회학적 심리학적 신학적인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이단은 신학적 정통의 기준에 비추어 분별되어야 한다. 그릇된 신학이 그릇된 행위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이단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 배후에는 어떤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가. 이것은 아주 복합적인 문제이다.
1. 이단의 배후에는 미혹하는 자 사단(마귀)의 역사가 있다.
2.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 때문이다. 구원파나 여호와의증인 안식교 다미선교회 통일교 등 대부분의 이단은 말세위기의식을 고조시켜 절망감을 안겨주고 자기네들을 통해서 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피난처의 희망"을 주입시킴으로 기존 교인을 유혹한다.
3.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사회가 비인간화되고 있는 것이 이유이다.
이밖에도 이단은 보편적인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극단적인 자유주의 성향과 다원주의 △교회의 부패와 분열 △가정의 붕괴와 윤리적 타락 등도 이단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성경은 이단과 거짓선지자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구약시대에도 거짓선지자들이 있었으며(렘5:31,23: 9 -18) 신약시대에도 영지주의 신비주의 쾌락주의 금욕주의 율법주의를 비롯해 다양한 이단이 진리를 왜곡해 정통교회를 어지럽혔던 것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알고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거짓선지자들의 출현을 예고했으며(마7:15, 마24:11,24)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능력을 행해 추종자를 거느린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한다는 보증이 되지 못한다(벧후2:5). 예수님은 과실(열매)을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우리는 거짓선지자들과 이단을 식별할 수 있는가.
1. 이단은 강력하고 권위주의적인 지도자에 의해 시작되며 그들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거나 추종자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2. 대부분의 이단은 성경 이외의 다른 경전을 갖고 있으며 '성경외의 계시'에 의존하다. 통일교의 「원리강론」 몰몬교(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의 「몰몬경」 여호와의 증인의 [새 세계성경]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3. 이단들은 다른 집단이나 개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4. 이들은 이중적인 언어체계를 갖고 있으며 성경의 용어를 기존 교회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5. 거짓선지자들은 정욕적이며 호색적이며 탐욕적인 경우가 많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집요하게 목적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이단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특히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거짓선지자가 많은지 어떤 지도자를 따르고 누구의 성경해석을 좇아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거짓선지자의 미혹에 넘어가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그리스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눅21:8)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정상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그대로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처럼 떠들어대는 거짓선지자들에 대해 바울선생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서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는 때와 기한은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첫째 서둘러서 민족과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일이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집단이 1만 2천개나 되고 있다. 둘째 우리는 성경을 옳게 분별함으로 말씀을 가까이 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셋째 교회가 하나 되어 분열되거나 교파 문제로 다투는 것이야말로 이단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넷째 이단을 상대로 전도할 때는 비판만 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을 존중해주며 진지하고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다섯째 우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지도자들을 순종하고 따르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여섯째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 스트레스와 슬픔, 불안을 겪을 때 이단으로 넘어가기 쉽다. 따라서 가정을 대화가 넘치는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을 연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보다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고 이단에 대처하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금식과 기도 말씀 봉사 교제 희생 정절 근검절약 찬양 예배 등의 영성훈련을 통해 주님을 향해 나아갈 때 이단은 결코 발을 붙이지 못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켜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1:20-21)
이단이 생겨지는 배경과 이단에 끌리는 이유
① 이단의 사회적 배경 - 무엇보다도 사회가 안정되었을 때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가 혼란할 때 사람들이 어디에 마음을 둘지 알지 못하여 방황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최근의 이단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회적 불안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② 기성교회가 건전할 때에는 절대로 이단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난다 해도 숨어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기성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할 때에 이단들이 춤을 추는 것이다. 사실 오늘의 교회는 참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급급한 심령들에게 영적으로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고 목사와 교인들 사이에 인격적 관계가 이루어져 있지 않고 교회는 삶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은 생겨지는 것이다. 오늘의 설교를 보면 만사형통, 소원성취, 만병통치, 사업성공, 건강장수, 행복 보장 등 기복적인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③ 중요한 것은 성경적 무지에서 이단이 생겨난다. 사실 이단들만큼 성경을 많이 인용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러므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④ 교회의 부정부패에서 이단이 생겨난다. 예를 들면 구원파의 경우 저들은 먼저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을 노출시킨 후에 구원에 대한 깨달음 자체를 구원이라고 하면서 기성 교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미리 아시니 기도가 불필요하다고 하면서 유명한 사업을 돕는 게 기도라고 함. 장로, 집사제도를 부정하는 등) 마지막으로 자기들의 모임으로 끌어 들인다. 구원파가 대구에 있는 모 장로교에서 생겨진 것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틈을 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일단 구원 받으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하든 관계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대판 영지주의자이다.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있고 집단 우월감과 중앙집권적 체제를 가지고 있다.
⑤ 기성 교회의 분열에서 이단이 생겨진다.
⑥ 신학의 부재와 극단적 자유주의 신학이 바로 이단의 온상이 된다.
이단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무엇보다도 교회 지도자들이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가져야 한다. 신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고 성경에 정통해야 하며 계속적인 연구를 통한 지적, 영적 재 충전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목회자보다 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 다음은 정치적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져야 이단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이단이란 독버섯은 사회적 혼란이 없이는 자리를 잡을 수 없고 또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③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 칼빈이 말한 계속적인 개혁이 있어서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될 때 이단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 이단은 어두움 속에서 자라나는 독버섯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단은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고 그 틈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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