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사교육,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이종전 목사/ 인천 만수남부교회
어느 나라든 국민을 교육함에 있어서 국어와 역사(국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초등학교는 물론 의무교육 교과과정에서 두 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당연히 높다. 또한 공무원 채용은 물론 승진과 관련해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요구하고 있다.
한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학입시는 물론 국가 공무원 채용시험에서조차 중요한 과목으로 채택하지 않음으로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역사의식의 결여로 인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입시에서도 선택과목으로 편성함으로써 학생들이 점수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다른 과목을 선택하고, 상대적으로 암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국사는 기피과목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니 국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인종이나 출신지역과 관계없이 성장과정에서 어떤 역사를 배우냐에 따라서 그 사람 안에 형성되는 가치관과 정체성이 달라진다. 비록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할지라도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기성세대가 국사를 배울 때와 현재 자라는 세대가 공부하는 국사에 대한 해석의 차이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성세대는 ‘동학’을 ‘난’(亂)으로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革命)으로 배운다.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관점이 달라짐으로 인해서 ‘동학’의 의미도 달라진 것이다. 따라서 ‘난’으로 배운 세대와 ‘혁명’으로 배운 세대는 생각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역사를 아예 배우지 않거나, 무시하는 상황에서 자아형성을 했다면 이도저도 아닌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국민들이 국가관이나 국가를 형성함에 있어서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것들을 분담하지 않게 된다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게 되는 문제를 동반하게 된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이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형성된다. 때문에 국민은 각자가 분담해야 할 책임을 동반한다. 그러나 국가관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분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거나 회피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국가관이 확립되지 않은 국민이 국가적 책임을 요구받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을 회피하거나 부정하게 됨으로 인해서 국가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금을 탈세한다든지,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들이다.
국민 된 의무를 누구나 감당해야 할 것이지만 의무를 감당하는 사람은 능력이 없거나 백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다면 누가 그 의무를 감당하려고 하겠는가. 실제로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 가운데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를 회피했다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자라는 아이들에게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역사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요구하는 제도들을 마련하고 있다. 국가관을 일치시키는 것은 공동체로서 국가를 형성시키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극단적이게 되면 국수주의나 제국주의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교육이 없는 국민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극단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역사교육을 하고, 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또한 필요하다.
국가 공동체를 확립하기 위해서 역사적 확신과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역사교육에 의해서다. 어떤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역사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면 긍지를 가질 수 있고, 긍지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국민의식 가운데 국가관과 함께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를 가지고 있고, 국방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모래성과 같은 국가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현실은 국사교육에 허점과 국사가 정책적인 면에서조차 소외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적 미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현실로 나타날 것이고, 어쩌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급박하게 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현실이건만 정작 그 책임을 지고 있는 교육 당국이나, 정치인들은 무관심한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서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일로 생각하듯이 무관심한 상태로 지난다면 심각한 미래가 있을 뿐이다. 어느 날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호들갑을 떤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역사교육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정치권이나 교육 당국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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