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기독교는 가룟 유다에게 감사를 해야한다?

수호천사1 2010. 4. 21. 11:26

기독교는 가룟 유다에게 감사를 해야한다?

글/扈一麥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죄 많은 인간들을 죄로 부터 구하고자 죽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시말해 그의 죽음은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대속물로 죽으려고 온 분이 만약 늙어 꼬부라질 때 까지 살다가 죽는다는 것도 이상하고 어느날 병이 들어 죽는 다는 것 또한 이상합니다. 기왕에 인간을 위하여 죽는다면 젊은 나이에 극적으로 죽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죽는 시기를 미리 예비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죽으려고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어린양 되셔서 제물로 죽으셨고 이에 가롯 유다가 한 몫을 합니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행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요?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역활을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 받은 가룟인 유다는 그의 역활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러므로 역설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팔아서 죽게 한 가룟인 유다에게 감사를 해야합니다.

 

 가룟인 유다가 예수를 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긴 이유는 그의 탐욕에 있었습니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은 자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을 때 가룟 유다가 그녀의 행위를 비난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가룟 유다는 돈 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가는 도적이었다고 증거 합니다.(참조, 요 12:6). 그는 결국 재물에 욕심을 내어 은 30에 스승을 배신하고 아무 죄 없는 예수를 악한 무리의 손에 넘겨 주었습니다. 유다가 배신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를 쫒아 다닌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데 대한 실망감과 반항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적인 욕심을 가진 자로서 예수님이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자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성공하여 높은 권세를 누리게 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죽으러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5절-18절【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러면 자신도 예수님의 측근으로서 권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다는 예수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마저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를 잡으려고 기회를 노리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를 물질로 유혹하자 유다는 여지없이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가룟인 유다의 범죄는 순간적인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좇는 목적이 처음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는 성도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게 해줍니다.예수님을 은삼십에 팔아버린 가룟인 유다는 그가 무슨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1. 가룟 유다의 시대적 배경

 '유다'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dwjy 유다>라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을 찬양'이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지니고 있는 고상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뒷날 그리스도를 배반하여 판자라는 오명의 대명사로 이름의 상징을 퇴색시켰습니다. '유다'의 이름 앞에 대명사처럼 붙어 있는 '가룟' 은 그의 출신 지명으로서, 오늘날 '키르벳 엘 카라테인' 이라고 불리는 당시의 <kerio" 케리오스> 마을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의 최남단으로서 브엘세바 북동 약 29km지점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하신 기간이 A. D. 27-30년이고, 당시 유대 지방의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약 A. D. 26-36년으로 추정)였으며 대제사장은 가야바, 로마 황제에 디베료 가이사가 각각 재임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리스도와 만나 함께 활동한 시기는 바로 이즈음이었습니다.


2.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
가룟 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제자 유다(일명 다대오, 참조, 마 10:3)와 구별하기 위하여 '가룟'이라는 지명을 붙여 불렀습니다. 다른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 어촌의 농, 어부 출신으로서 무학자(無學者)인 반면, 가룟 유다는 예루살렘 남단의 도시 출신으로서 비교적 교육도 받은 지식인으로 추측된니다. 마태나 마가, 누가 기자들이 예수의 제자 명단을 나열할 때 하나같이 가룟 유다를 마지막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장차 그의 변심과 제자로서의 수행에 자질이 부족했던 점과 관계한 기술로 볼 수 있습니다(참조, 마 10:4 막 3:9 눅 6:15). 열두 명의 예수 제자 중 하나로 활동하였던 가룟 유다는 그 속에서 재무 회계를 맡았었습니다.(참조, 요 12:4-6, 13:29).

 
 3. 배반자 가룟 유다
 애당초 가룟 유다는 예수를 그리스도,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다른 일부 제자들과 다른 스승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죄를 극복하고 만인을 사망의 종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오신 종교적 메시야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귀신을 쫒고 병 고치는 능력을 행하기도 했으나 탐욕으로 예수를 제사장들에게 은 30개를 받고 팔아 넘김으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였습니다(참조, 요 12:1-8). 많은 군중이 따르고 무리가 옹호하는 그리스도를 정치적 지도자로 여겨 그의 제자가 됨으로써 세속적 영달을 달성코자 하였던 것입니다(참조, 마 26:25). 그의 이같은 메시야관, 스승관은 그리스도가 고난에 처하자 즉각 표출되었습니다. 세속적 이기심으로 스승을 대하여 왔던 유다는 그리스도가 정치적 영향력이나 군중의 인기에서 급락하자 서둘러 예루살렘의 실권자, 권력자들을 찾아가 그리스도를 판 것입니다(참조, 마 26:47-56).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줄 때 예수에게 나아와 입을 맞추는 것으로 신호를 삼았습니다. 입맞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였습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를 스승을 배반하는 데 사용한 것은 매우 가증스러운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 다가와 입맞추는 가룟 유다의 겉모습은 스승에게 다가오는 제자였지만, 그의 속 마음은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양을 잡으려고 접근하는 것과 같이 속임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속임과 거짓은 악인의 특성으로서, 악한 세력은 언제나 거짓으로 진리를 왜곡시키고 파괴하려 합니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가룟 유다의 악행은 타락한 인간 모두에게 가능성이 있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출애굽하였으면서도 하나님을 배신하여 불평과 원망을 하고 이방의 다른 신을 음란히 섬긴 것도 하나님에 대한 배신 행위였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입었으면서도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이와같은 배신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참조, 딤전 6:10). 예수께서도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말씀하시며, 재물을 사랑하여 재물의 종이 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셨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듯 하면서 속으로는 세상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가증한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성도는 항상 깨어 기도하며 영적으로 경성하여야 합니다.

 

4.가룟인 유다는 예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자임을 알고 계셨었고 배반한 이후의 인생 말로의 비참함 또한 내다보시어 그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자라고 연민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참조, 마 26:24). 그리스도의 이같은 관심은 가룟 유다에게 사랑과 긍휼이요,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스승 배반의 길을 선택하였고 결국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는 비운의 인생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참조, 마 27:3-5).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여 대적들에게 팔아 넘긴 사건은 겉으로 보면 스승에 대한 제자의 배신이었지만, 실제로는 메시야에 대한 사단의 도전이었습니다. 사단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 했지만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역을 방해하도록 했습니다. 사단은 그 마지막으로 예수의 생명을 빼앗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사단에게 속해있는 가룟 유다를 통해 예수를 십자가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일찍부터 예수의 열두 제자중에 속해 있었지만, 실은 거짓과 불의의 아비인 사단에 속한 자였습니다(참조, 요 8:44). 거짓과 배신과 살인과 도적질은 사단에 속한 자들의 열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에 속한 자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정직히 행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삼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다니며 예수의 행하시는 이적을 보았고 복음을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결국 진리를 배반함으로써 자신이 비진리에 속한 자임을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날 성도가 예수님을 좇는 것 같으면서도 삶 속에서는 사단에 속한 자의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한 경고를 줍니다. 성도는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 합니다.

 

스가랴 11장 12절-14절【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예수님이 은 삼십에 팔릴 것과 그돈을 여호와의 전에 던질 것과 그 돈으로 토기장이 밭을 살 것을 미리 스가랴 예언 되었는데 그것을 가룟인 유다가 성경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성경에 미리 예언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5절【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태복음 27장 3절【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마태복음 27절 9절【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마태복음 27장 10절【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우리도 가룟인 유다처럼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인생을 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구원 받았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씀드려서 가룟인 유다는 제 갈길로 갔을 뿐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이루시기 위해 악역을 맡고 부름 받은 가룟인 유다에게 실상은 예수님을 팔아주어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악역을 맡고 예수님을 팔아 넘겨 죽게 만드는 일에 일조 했으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주님의 은혜와 더불어 성경에 악역을 맡고서 이름도 없이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실상 오늘도 감사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오늘날 무슨 역할을 맡으셨는지요? 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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