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세계관을 몰아내고 들어앉는 희랍의 콘텍스트들
‘다시 써야 하는 세계 기독교사’(4)
부제 -서양 사상사의 재해석과 기독교-
- 2006년 韓國크리스찬 學術文學賞 著述大賞 作 -
심 상 용 (월드 크리스천 성경학연구소 소장)
제 4제 초기 기독교 세계관을 몰아내고 들어앉는 희랍의 콘텍스트들
1. 희랍으로 들어가 희랍사상으로 거듭난 기독교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지금까지의 기독교의 실상은 철저하게 희랍의 사상체계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편에서 교회사가인 윌리스턴 워커(Williston Walker)는 ‘기독교가 희랍으로 들어가면서 희랍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독교는 직면한 기존의 개념들(희랍의 전통적인 종교 철학의 사상 체들)로부터 많은 자료를 취하여 그 구조를 형성해야만 했다’라고 하였다.그리스-로마(희랍)로부터 가져온 기독교 신앙구조! 물론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신앙구조가 성경에 의한 신앙구조가 아니라 이교도들의 이방종교에 지나지 않는 희랍에서 가져온 신앙구조라는 사실을 알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두가 성경에서 나온 것들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착 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기독교가 안고 있는 심각하고도 큰 문제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상은 성경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써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기독교인들은 그 배경이나 내막조차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맹신하며 쓰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신앙구조나 교리 사상적 구조는 어디까지나 성경과 아무 상관도 관련도 없는 이교도 희랍의 것이다. 이교도들의 목마를 타고 가면서도 그것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하고 무한정 달려가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이교도 희랍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성경인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신앙의 말이 희랍에서 가져온 것임에도 자신은 성경에 의거한 신앙을 준마를 타고 있다고 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교도 희랍의 길과 희랍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성경 속을 달려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은 성경을 손에 들고 오직 성경만을 믿는다고 하니 그는 성경만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부산을 가야할 사람이 평양 가는 열차를 타고 가면서 부산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믿고 있는 것과 같은 꼴이다.
기독교가 빌려온 이 희랍의 개념구조 자체는 결코 성경이 용납할 수 없는 이교도들의 악마종교사상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도들은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하여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있으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다 성경이려니 착각하고 위장된 이교도들의 악마사상을 맹신하고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2. 희랍의 콘텍스트가 기독교 콘텍스트로 둔갑하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특징에 대하여 W.워커(Williston Walker) 박사는 후론(後論)하기를
‘기독교는 희랍철학의 콘텍스트 속에서 그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 기독교는 그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해명함에 있어서 희랍철학의 개념과 사고를 도입하였다.’라고 하였다. 기독교 신학의 조성자들은 고대 이교도들의 희랍의 악마 사상적 종교-철학적 명제가 성경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희랍의 콘텍스트에 성경을 무차별적으로 그러나 철저하게 포장하여 그것이 정통기독교 교리신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예 그것을 원형 그대로 받아들여 기독교 교리 사상체와 신앙관의 주인이 되고 말았다. 대단하고 화려한 조작이었고 교활한 조합이었지만 이것이 성경을 위한 교리사상으로 받아 들여 기독교화 시킨 것이다. .
과연 기독교가 빌려온 이교도들의 희랍철학의 콘텍스트가 성경이 말하는 콘텍스트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현재까지 지속되어져 나오고 있는 희랍의 콘텍스트를 가지고 증명하는 기독교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적어도 기독교는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이것을 정통신학이며 성경에 대한 정통사상이라고 믿어 왔던 것이다.성경과 전혀 무관한 희랍의 콘텍스트가 마치 성경의 콘텍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사i용하고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기독교는 가면적으로는 기독교라고 할지 모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교도 희랍인들의 악마 종교의 콘텍스트일 뿐이며 이는 성경을 신앙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체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기독교를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상체계의 골격은 모두가 이교도 희랍의 구조들이며 그 바탕들 위에 성경을 덮어 씌워 놓고 그것이 성경의 사상구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신학교에서 이 구조 아래 그것이 성경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냉정하게 말해 이는 그리스-로마의 악마사상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기원사적으로 보면 명백히 독그릇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그리고 여전히 독의 요소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독그릇인데 그것을 밥그릇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교도들의 우상 신과 우상의 교리사상체계를 원형 그대로 둔갑시켜 그것이 성경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성경을 그 독그릇에 퍼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희랍의 종교사상 체계 위에 온통 성경으로 모자이크 해 놓고 그것이 기독교라고 외치는 것은 한마디로 기만의 역사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유사하다고, 비슷하다고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한 방울의 독약이라도 그것이 독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밥을 비벼 먹겠는가? 거기에 밥을 비벼 먹는 사람들이 다른 아닌 기독교라는 사실이다. 이교도들의 그리스-로마의 사상적 콘텍스트는 성경을 해석하는 콘텍스트로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을 성경의 콘텍스트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성경을 죽이는 치명적인 반역행위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기독교는 그것만이 정통교리 정통신학이라고 거기에 온통 성경을 도색시켜 놓고 그것이 유일한 성경의 정통신학이라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애지중지하며 손도 못 대게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양같이 보이지만 안으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외관상으로 보는 표변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본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교도들의 희랍의 개념들을 가져다가 거기에 성경을 덧입혀 놓고 그것이 성경을 말하는 신앙구조라고 하는 것은 마치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은 것이다.사정이 이러함에도 그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그 유사성과 차별성을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가 성경이라고 맹신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성경을 짓밟는 중차대한 범죄행위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일이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을 때 그 현상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외치고 인도하고 있는 것이 이교도들의 희랍사상체계로 이끌고 있다면 이것은 성경을 기만하는 범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지금 기독교는 고대 이교도들의 그리스 -희랍이라는 바알 사상에 함몰되어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하나님을 외쳐대면 모두 성경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남의 아버지 붙들고 자기 아버지라고 부르짖고 있지는 않는지 최소한의 사실 만큼이라고 확인해 보고 외쳐야 할 것이다.성경을 위한다고 성경을 배반하는 행위는 어떤 명문으로도 있을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소위 희랍의 철학과 기독교라는 종교가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기독교화 시킨 이교도 희랍의 콘텍스트들이 기독교라는 탈을 쓰고 기독교의 기본사상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것은 성경을 모독하고 짓밟는 행위인 것이다. 문이 넓고 길이 넓어 그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멸망으로 가는 기독교 화된 희랍의 이교도 교리사상체계의 정체가 무엇이라는 것만이라도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3. 희랍사상위에 성경을 포장했다고 그것이 성경이 될 수 없어
교회사적으로 그리고 교리 사상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시급하게 밝혀져야 하는 것이 희랍으로 들어간 기독교가 희랍의 사상 구조를 빌려 기독교화 시킨 이교도들의 희랍사상체계들이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떤 것들이 존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최소한 어디까지가 이교도들의 희랍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성경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이리라면 어디까지가 양의 탈이고 어디까지가 이리인지 그 실체만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성경이 아닌 것을 성경이라고 말할 수 없고,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이라고 외칠 수는 없는 일이다. ‘예’는 예고 ‘아니오’는 아니오라고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이교도 희랍의 것은 희랍의 것이고 성경은 성경의 것이다. 이교도 희랍 사상체계 위에 성경을 얹혀놓고 그것을 성경이라고, 복음이라고 할 수 없고, 희랍사상체계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으로 칠해 놓고 그것을 성경처럼 위장해 놓고 성경이라고, 복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독교가 희랍으로 들어가 희랍의 사상구조 위에 성경으로 도배시켜 놓고 그것을 성경이라고, 복음이라고 외치는 역사는 역사의 본질을 왜곡하는 기만 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유감스럽게도 희랍의 사상구조위에 성경을 덮어 씌워놓고 그것이 정통기독교라고 맹신하는 까닭에 사람들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희랍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성경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만을 당하고, 기만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기만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교도 희랍의 콘텍스트에 성경을 포장해 놓고 그것을 성경을 위한 신학이라고 기만하는 교리 사상의 신학체계는 아무 성경으로 잘 포장해 놓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상사상이며 허구체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사상체계라는 실체를 들여다보면 어디까지나 고대 이교도들의 종교관일 뿐이지 성경이 말하는 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무늬만 성경일 뿐이고 성경이 아니고 무늬만 예수일 뿐 예수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오직 성경만 믿는다고 해도, 오직 예수만 믿는다고 부르짖어도 궁극적으로 희랍의 종교와 세계관을 위하여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4.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대립하던 두 세계관
정통기독교의 기원을 철학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를 밝혀주고 고 있다. ‘초기 기독교 세계관과 이교적 세계관과는 대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점점 영향력과 영역을 확대해 감에 따라 교리의 합리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를 위하여 고대 철학을 이용하려는 노력이 대두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리고 Building A Christian World View'의 공동저자 A 호페커(A Andrew Hoffecker)와 게리 S. 스코트(Gary Scott Smith)는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신학과 그리스 철학 사이에 대한 강한 대조를 파악했던 반면 2,3세기의 몇몇 그리스인들은 다른 문화와 세계관으로부터 큰 통찰력을 사용하여 성경의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상기 두 학자들의 주장에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는 초기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 View)과 이교도들의 세계관 즉 그리스-로마의 세계관이 서로 대립되고 전혀 다른 세계관이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서로 대립되고 다른 두 세계관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로 통합되어 갔다는 사실이다.물론 상기의 학자들이나 분석가들은 1세기의 기독교 초기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이고 후자의 이교적 세계관이 각각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들의 저서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기록한 바가 없다. 이것은 이들만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하여 양자의 세계관 특히 전자의 세계관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하여 그 특징을 기술해 놓은 바가 전혀 없다.
다만, 1세기의 기독교 초기 기독교 세계관과 후자의 이교적 세계관이 다른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자의 세계관은 대립에서 양자 간 세계관이 좁혀지고 결국 하나가 되어갔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이 양자의 세계관(World View)은 각각 어떤 세계관적 차이점과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양자가 결합해 감에 따라 어떠한 특징으로 통합내지 합류가 이루어 갔는가에 대하여 역사는 그 내막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대립되는 세계관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되어 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양자의 대립되는 세계관이 하나로 통합되었다며 양자의 세계관의 양상이 어떠한 양상으로 변화하며 통합되어 갔는지, 더 나아가 양자의 세계관이 각각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것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밝혀진 바가 전혀 없었다. 이 사실에 대하여 그 어느 누구도 말한 바 없고 이야기 된 바 없는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5. 이교도 희랍의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둔갑시킨 조작의 역사
이와 같은 역사의 미스터리를 잠시 뒤로 남겨두고 우리는 다시 본 글의 서문으로 돌아가 어떤 역사적 내막을 가지고 통합되었는지 그 실상의 일면을 공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W.워커(Williston Walker) 박사가 지적한 바가 그것을 말해준다. ‘기독교는 희랍철학의 콘텍스트 속에서 그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 기독교는 그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해명함에 있어서 희랍철학의 개념과 사고를 도입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기독교가 ‘희랍철학의 콘텍스트 속에서 그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하였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바는 1세기의 기독교의 초기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 그 사실조차도 전혀 규명되지 아니한 채, 희랍의 콘텍스트가 원형 그대로 기독교 세계관으로 둔갑됨으로 초기 기독교 세계관은 그 형체도 드러내기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리스-로마의 희랍의 세계관으로 병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희랍의 세계관이 기독교 세계관이 된 것이다. 초기 기독교 세계관은 완전히 무시되고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일방적으로 그리스-로마의 세계관이 기독교 세계관으로 둔갑된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1세기의 기독교의 초기 기독교 세계관’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또 그것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착각하기를 이교적 세계관 즉 2,3세기의 몇몇 그리스인들의 다른 문화와 세계관 그리스 철학적 세계관이 오직 유일한 성경의 세계관이라고 오해하고 그것 없으면 자신들은 죽는다는 식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자기 것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도 못한 채 자기 것도 아닌 남의 것 붙들고, 또한 자신이 대 착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것 없으면 죽는다고 목숨 내걸고 싸우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터무니없는 악마 사상적 이교도 세계관에 지나지 않는 희랍의 콘텍스트는 성경의 콘텍스트가 아니며 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독이다. 여기에 온통 성경을 도색시켜 놓고 그것이 가톨릭과 개신교를 넘나들며 정통교리, 정통신학이고 외치는 것은 악마 사상적 이교도 세계관을 정당화 시켜주는 행위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귀에 듣기 좋다고, 아주 품위 있고 권위 있어 보여 사람들은 그것을 성경의 교리신학사상이라고 외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길은 문이 넓고 찾는 이가 많은 멸망으로 가는 이교도 희랍이라는 길이다. 이교도들의 희랍사상 체계에 성경으로 포장해 놓고 그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기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이지 그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없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온통 성경으로 덧칠해져 있어 성경같이 화려해 보이지만 덮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겨보면 그 안에는 성경을 기만하는 터무니없는 악마 사상적 이교도 세계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하여, 아무런 연구가 없으니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이교도들의 희랍사상인지 어디까지가 성경인지 그 존재 자체에 대한 구분이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다.
희랍의 콘텍스트가 보기에 좋다고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에 안주하고 있는 한 그로 말미암아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서구 기독교와 같은 교회의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기독교는 만사를 다 모두 제쳐놓고서라도 자신들이 잃어버린 ‘1세기의 기독교 초기 기독교 세계관’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그것이 비록 희랍의 콘텍스트보다 화려하지 못할지라도 그리고 찾는 이가 적을지라도 그것이 진정 현대 기독교회를 살리는 생명으로 가는 좁은 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심상용"<karisis7274@naver.com> 댓글보다 저자와 직접 대화의 창을 열었으니 이메일로 주고 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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