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선교의 필수 조건: 개인 접촉 (2)

토드 존슨(Todd M. Johnson)과 찰스 티에스젠(Charles L. Tieszen)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세계화를 가속시켰다. 그것은 전 세계를 더욱 가깝게 하기도 하였으나 개인들 간에 고립을 낳기도 하였다. 친밀한 접촉이 배제된 채 새신자를 양육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가 사용하는 최첨단 기술 그리고 발전된 미디어는 반드시 개인적 접촉의 중요성을 강조한 복음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전도자이신 하나님, 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 모두를 부를 수 있다. 예수님에 관한 꿈을 꾸고 개종한 많은 무슬림들과, 병 고침 기도 후 치유의 경험으로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한 힌두교도들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하지 않고서도 당신의 백성을 부르신다. 하지만 이런 초자연적 접촉이 개인적 접촉의 중요성을 경감시킬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예수의 꿈을 꾸고 개종한 무슬림의 경우, 현지 무슬림 지도자의 꿈 해석을 받은 후 다시 무슬림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기적을 경험한 후 기독교인이 된 힌두인의 경우 예수를 3억3천3백만의 신들 중의 하나로 치부해 버린다. 위와 같은 예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뜻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슬람에서 개종한 신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많은 무슬림들이 예수를 따르게 된 가장 주요한 이유는 사랑의 힘이라고 한다. 이 사랑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초자연적인 통로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 직접 보여지는 사랑과 또 개인간의 접촉을 통해서 보여지는 사랑이다. 개인 접촉은 중요할 뿐 아니라, 성경적 복음 전도의 근간이 된다.
대략 86%의 무슬림, 힌두, 불교 신자들 또는 80%의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과 개인적 접촉을 가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네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야기한다.
1. 이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 문화, 혹은 언어 집단 안에 고립되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인가?
서구 사회에서의 다양성의 증가로 문화적 고립 또한 증가되었다. 전형적인 서구 대도시에는 차이나 타운(Chinatown), 사이공 촌(Little Saigon), 무슬림 지구(Muslim quarter) 같은 것들이 자리한다. 대중교통으로 시내를 가로질러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틈에서 살아간다. 비단 서구뿐만 아닌 세계 각 곳의 사람들도 종족, 문화, 종교 그리고 언어로 나누어져 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기독교인은 세계의 다른 종교에 대해 무관심한가?
이 무관심은 종교적 무지뿐 아니라, 무슬림과 힌두교인 또는 불교 신봉자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내켜 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서구에서 기독교인이 자기 사회 안의 비(非)기독교인에 대한 앎이 적다면, 하물며 멀리 있는 무슬림과 힌두교인 그리고 불교인들을 알 수 있을까? 서구의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비(非)서구 지역의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의 지역에 거주하는 타(他)종교인들에게 무관심하다. 나이지리아,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사람들은 언어, 종교, 그리고 지리적 요인들로 나뉜다. 비기독교인에게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기꺼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언어를 배우고, 또 종교적 지식을 습득할 각오를 해야 한다.
3. 위에서 언급한 그 무지는 미전도 종족에 대한 무지까지 해당되는 것인가?
미전도 종족의 대부분은 무슬림, 힌두, 그리고 불교도들이다. 그들은 복음과의 접촉은 물론 기독교인과의 접촉도 아주 제한된 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까지 약 90%의 기독교 선교자원은 기독교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미전도 종족에 대한 정의를 신중하게 다시 정의하여, 선교와 복음 전도의 대상을 미전도 종족으로 다시 집중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재 집중은 무슬림을 포함한 비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접촉 기회를 증가시킬 것이다.
4. 전도하기 힘든 사람들에 대한 사역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제3의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육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성서신학에서는 미디어와 기술이 복음전도에 긍정적 기여를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기독교인과의 개인적 접촉을 대신할 수 없다. 특히 무슬림과 힌두교인, 그리고 불교도에게는 비(非)개인적 복음 전도도 필요하지만 개인 접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독교인과 타종교인과의 개인 접촉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리를 놓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
1) 세계의 주요 종교에 대한 관심을 증대하라.
타종교인들이 신봉하는 것이 무엇이며, 왜 그것을 믿는지, 또 어느 곳에 주로 거주하는지를 알아낸다. 우리가 무슬림을 비롯한 힌두교도와 불교신자들과 교류하는 것을 내켜 하지 않아 개인적 접촉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그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한 무지 때문에 접촉을 못하고 있기도 하다. 모든 기독교인이 종교학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영적인 개인 접촉을 하는데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지식을 갖자는 말이다. 이슬람과 힌두교, 불교 지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에게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슬람을 기피하는 몇몇 파키스탄의 기독교인들은 무슬림에게 다가가기를 거부하며, 아랍 지역의 개신교도들과 심지어는 중동 지역의 서양 선교사들 중에도 무슬림과의 접촉을 꺼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아랍의 전통 정교회 기독교인들에게만 사역하길 원하고 있다.
2) 언어 습득의 중요성을 강조하라.
의사소통 불능은 곧 개인 접촉, 건강한 대화, 그리고 친밀한 이해의 장벽을 의미한다. 단일 언어권의 북미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그렇다. 또한 이웃의 언어를 배우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세계 여타의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망설임으로 인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개인 접촉의 기회가 감소되고 있다. 성육신적 복음 전도는 전도를 받는 대상에 맞추어진 방식의 개인 접촉을 발전시킨다. 내부자 운동(Insider Movements)은 비기독교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존재하는 성육신적 개인 접촉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복음 전파를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들의 영어 실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도네시아의 기독교인이 개인적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 중국인들이나 바하사(bahasa)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한 지식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말이다.
3)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구하라.
예수에 대한 꿈을 꾼 무슬림과 접촉하여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되기 위해 기도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힌두교인들이나 불교도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기도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이러한 접촉들을 위해 기도하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미전도 종족을 향한 복음의 도구가 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라.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종족에게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개인적 접촉을 갖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非)개인적 접촉 방식의 복음 전파와 선교가 이런 장벽을 뛰어넘는데 얼마간의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개인 접촉을 대체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사람들 안에 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매우 사랑하셔서 사람들 안으로 오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할 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큰 무리가 일어나 보좌 앞에 서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다’ (계 7:15) 라는 요한 계시록 7장의 말씀의 실현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토드 존스(Todd M. Johnson)는 미국 고든 컨웰 신학대학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의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the 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의 소장이다.
찰스 티에스젠(Charles L. Tieszen)은 영국 버밍햄 대학교(the University of Birmingham)의 박사 과정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출처: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2007년 10월호,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610호)
'선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선교전략은 신학과 연계성 속에서 일어나야” (0) | 2010.04.10 |
---|---|
[스크랩] 21세기 선교의 필수 조건: 개인 접촉 (1) (0) | 2010.04.10 |
[스크랩] 선교 주도권의 긴장과 균형 (안교성) (0) | 2010.04.10 |
[스크랩] 한국교회 선교 현주소에 대한 인식과 반성 (0) | 2010.04.10 |
[스크랩] 중국 복음화 예측 모형과 선교 전략적 의미 (이우*) (0) | 2010.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