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선교, 순교 그리고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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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식의 선교는 세계 복음화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오히려 피해를 입힌다. 왜냐하면 선교는 그냥 하면 될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 역사가 스티븐 니일(Stephen Neil)이 오래 전에 말한 대로, 선교는 인간이 하기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선교를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선교적 활동이 현지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서 별다른 대비책이 없을 것이다. 선교를 어려운 것이라고 여기고 배우는 마음으로 하면, 다른 이들과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단순한 생각에서 선교적 활동을 모색하는 선교는 기회주의적이고, 활동주의적이고, 현실을 외면하는 성향을 드러낼 것이다. 창의적 접근 지역, 특히 최근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슬람권에서의 선교를 염두해 둔다면 지나친 낙관주의는 금물이다.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비평 능력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은 복음 자체에 대한 지식과 이해 면에서 다른 나라 교회들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신학교 교육을 사역을 위한 필수적 준비 과정으로 여기는 풍조가 이런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 같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배출한 사역자들은 대체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것 같다. 특별히 학자들의 눈으로 본 공식종교(formal religion)에 대비되는, 보통 사람들이 실제로 실천하는 종교인 민간종교(folk religion)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특히 부족하다고 하겠다. 이 점에 있어서 현장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도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타종교에 대한 연구를 하자는 것은 타종교에 구원이 있어서라기보다, 지금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인 사람들을 잘 이해하자는 뜻이다.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 자체에 대한 지식과 함께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선교학적 이해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는 복음 자체에 대한 지식만 있어도 되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 설 때는 복음을 전하는 전반적 상황과 방법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특히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더욱 절실한 과제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선교학은 신학교육의 필수 분야로 자리 잡아야 하며, 모든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선교학적인 사고를 더욱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21세기 상황은 영적인 진공 상태에서 선교하는 것이 아니며, 저마다 고유한 종교적 전통이 있는 상황에서 복음을 효과적이고도 의미 있게 전해야 할 상황이다. 글로벌화가 되기 전에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종교만 이해하면 되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과거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종교로 인식되었던 이슬람은 이제 유럽과 북미 그리고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에 존재한다. 힌두교도 인도의 종교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뉴에이지 운동과 더불어 세계 곳곳에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선교사들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관계없는 일이 아니라 중요한 사실이 되고 있다. 전세계가 글로벌화 되어가는 시대속에서, 한국교회 교인들의 자녀가 해외 유학을 갔다가 모슬렘이 되어 돌아왔다면 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것은 기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타종교에 대한 연구의 초점은 우선 현상론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이해와 판단은 사실에 바탕을 둔 논의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신학교들에서 타종교에 대한 과목들은 지나치게 교리적인 논쟁에 머물고 있다. 타종교에 대한 심도 높은 이해와 적용을 위해서는 현지에 바탕을 둔 현상학적인 이해를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이 현상학적인 연구의 범위는 너무 넓어서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복음주의 진영은 현상학적인 연구에서 뒤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타종교의 현상학적 연구는 근본적으로 문화 현상의 가장 깊은 차원인 세계관 차원에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고는 정확하게 현실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 많은 경우, 선교사들은 정치 분야 등 일부 분야에서는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종합적인 안목에서 현상학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그것은 아직 타세계관을 이해하고 비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관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선험적인 전제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세계관을 이해해야 사람들의 지적, 정서적, 의지적 성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타종교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가운데 하는 선교는 일방적인 선교가 되기 싶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은 유럽인의 세계관만 주장했지, 타종교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시대의 불행한 모습이다. 타종교의 세계관을 고려하지 않은 선교와 목회는 일방주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이라크와 이슬람권에서의 선교는 일방주의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선교뿐만 아니라 사업도, 남의 불행을 틈탄 사업이라고 여겨지면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현지 정서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도 높은 선교를 해야 한다. 또한 문화적 다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도 감도 높은 사역을 하려면, 신세대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선교를 고려한 싱크 탱크 기능 선교에 있어서 단기적 관점은 전투적인 선교로 연결된다. 그 방법이 공격적이고, 상대방에게 위협감을 주는 선교가 된다. 단기적 관점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만큼 신중하지 못하고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이슬람권 등 민감한 지역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대체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사역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단기적 기회들에 집착한 나머지 그 동안 해왔던 방식과는 달리 선교적 모험을 하기 쉽다. 일시적인 기회에 편승한 무모한 선교적 시도는 선교 역사상 일어났던 실수들을 반복하기 쉽다. 이슬람권의 정서는 아직도 십자군 전쟁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새로운 십자군 전쟁으로 인식하는 모슬렘들이 많다. 아편전쟁 당시에도 영국 군대가 중국에 진주하는 상황이 오면 서구인들이 선교하기가 쉬워질 것이라고 기대한 선교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제국주의 세력에 편승하려 했지만, 그 결과는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우리는 일시적인 기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교 여행의 효과와 영향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장기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상당수 선교 여행 프로그램들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이전부터 선교 여행의 효과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많았지만, 개선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짧은 선교 여행 기간 동안 무언가 가시적인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은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기 쉽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방식으로 선교 여행을 하고 단기 선교를 한다면 특히 이슬람권에서의 사고 위험성은 대단히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 여행도 일방적으로 계획하지 말고 현장 선교사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선교학계에서 논의된 바대로 ‘영적 전쟁’, ‘사단의 요새’, ‘능력 대결’ 등 대결적인 구도를 설정하는 표현들도 삼갈 필요가 있다. 선교 여행을 계획함에 있어서 웬만한 규모가 되는 지역 교회들은 선교단체와 협력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잠재적인 위험성이 있다.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 및 선교 단체의 전문가들과 상의하면서 단기 선교와 선교 여행을 계획하면, 위험 요소들을 사전에 제거하고 무리 없는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선교 여행은 직접적인 활동이 줄어들더라도, 현지 문화를 배우고, 현지 종교를 관찰하는 학습 목적을 띨 때 오히려 알찬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교 훈련은 이제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도 적절한 훈련 없이 선교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장기 선교사들의 경우 파송 전에 적절한 훈련을 받는 편이지만, 단기 사역자들과 여행자들의 경우 훈련 과정이 전무한 경우도 흔히 있다. 사고를 막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교 여행에 있어서 훈련은 필수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적절한 훈련을 받지 못한 경우 쉽게 일방적인 선교 방식에 빠지게 된다.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몰두하다 보면, 현지 사정에 맞지 않는 방법을 쓰기 쉽다. 특히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복음의 고유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며, 훈련을 통해 여러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한국 선교계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는 활동가들이 많은 반면 전략가나 이론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적인 활동의 양상은 선교를 몸으로만 하는 것처럼 인식해서 활동주의로 빠지는 문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선교를 실용주의 노선에서만 생각해서 이론과 전략을 경시하는 양상을 띤다. 이론과 전략을 경시하는 풍조는 장기적인 선교 발전을 가져오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인력 중 연구개발(R&D)에 종사하는 인력이 1/3 정도 되지만, 한국 선교계에서 그 비율은 0.1% 정도이다. 장기적인 발전을 모색하면서 우리는 연구개발에 더욱 힘써 투자할 필요가 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조직인 싱크 탱크(thinktank) 기능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진정한 순교의 정신은 투철한 삶의 태도 진정한 순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것보다, 평상시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죽음의 순간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는 삶의 한 단면에 불과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살다가, 죽기까지 충성하는 모습이 진정한 순교적 삶의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선교하는 데 있어서 순교의 정신이 필요하다. 순교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순교가 최고의 목표는 아니다. 최고의 미덕은 사랑이다. 영혼들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사랑이며, 그 사랑의 극적인 표현 방식이 순교이다. 순교의 정신은 단순히 죽음을 무릅쓰는 것만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랑하고, 희생하고, 충성하고, 지혜롭게 일하는 태도에 있다. 이런 점에서 순교는 하드 파워보다 소프트 파워를 지향한다. 많은 경우 자살공격과 같은 형식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투쟁은 하드 파워를 추구하는 순교를 미덕으로 여긴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스데반의 경우에서와 같이 용서와 사랑의 능력을 믿는 것이 진정한 순교 정신이다. 현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순교의 본을 보인 손양원 목사의 순교 정신의 핵심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기꺼이 용서한 정신이다. 한국 선교사들은 우리 교회 전통에서 이런 순교의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모슬렘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복음의 빛을 필요로 하는 고객일 뿐이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을 순교로 미화한다고 인간의 도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무로 돌릴 수는 없다. 선교 역사상 많은 죽음은 전략상의 실수의 결과로 초래되었다. 선교 역사는 설령 순교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전략적인 실수에 대해 지적한다. 짐 엘리엇과 그 일행은 20세기 미국 선교에 있어서 가장 많이 알려진 순교자들이며, 이들은 죽음 이후에 오히려 생전보다 더 많은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선교사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학자들은 그들의 죽음을 몰고 온 전략적인 실수에 대해 말한다. 만약 짐 엘리엇과 그 일행이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육로로 갔더라면, 그리고 권총으로 무장을 하지 않고 갔더라면, 위협감을 주지 않고 현지인을 앞세워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선교의 역사를 통해 선교의 원리들을 배우기 위해서는 심지어 이미 죽음 저편에 있는 분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다. 예비 선교사 김선일 형제가 선교사 혹은 순교자인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근거가 없다. 혹자는 이런 죽음이 계속되어야 이슬람권 선교가 가능해질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오히려 이번의 불행한 경우에서 선교사 훈련 및 정보의 필요성과 함께, 선교 인력의 보호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 같은 불행한 죽음을 막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의 삶을 살면서 사역하는 관점에서 미래 선교를 대비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복음의 로고스의 고유성, 아가페 사랑, 삶을 통해 드러나는 샬롬에 있어서, 타종교보다 우위에 있는 기독교를 전파할 때 21세기 기독교 선교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로고스와 아가페와 샬롬은 교회 지도자들의 본을 통해 전수될 수 있는 것이다. 선교사들과 포괄적인 선교 사역자들을 위해서는 손양원 목사님에게서 볼 수 있는 사랑과 용서와 평화의 정신을 배울 때 선교 현장에서 그런 삶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순교자의 죽음이 감동적인 것은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무슨 대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꺼이 목숨까지도 내어 놓은 태도일 것이다. 이런 감동이 있으면 아무리 복음에 적대적인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자꾸만 강퍅해져 가는 세태는 웬만한 감동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총칼로 나아올지라도 우리는 샬롬과 아가페로 나아간다는 태도가 있을 때, 우리 한국교회의 영성의 전통을 바로 내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자기들의 대의명분에 목숨 걸고 헌신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영적 헌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는 죽은 자’(the living dead)로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지 모른다. 죄와 세상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이지만, 복음 안에서 산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 다른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아니라, 평상시의 삶이 자기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산 자의 삶을 살 때, 성공적인 선교사, 성공적인 목회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가 해외 선교사 수로는 세계 2위이지만, 이런 순교 정신, 이런 삶의 태도 면에서는 몇 등일까?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정신이 우리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에게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 |
글: 문상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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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목회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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