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곡해(曲解)한 용어들(동성애,영,혼,육)

수호천사1 2010. 2. 3. 23:39

 곡해(曲解)한 용어들(동성애,영,혼,육)


1, 남자와 여자 2, 결혼과 이혼 3, 신약 서신에 나타난 남자와 여자의 의미 4, 교회의 직분에 대한 오해
 曲解곡해 곱새김. ①사실을 굽혀 옳지 아니하게 해석(解釋)함. 또는 그런 해석(解釋)

②남의 말이나 행동을 본뜻과는 달리 좋지 아니하게 이해함. 또는 그런 이해

 

■동성애에 대한 가장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내용


로마서 1장 18절-28절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 불의란 세상에 속하려는 마음이다. 행위의 법으로 구원을 받는 때는 지나갔으므로 여기서 불의란 세상에 속한 마음이 곧 불의다. 진리를 막는다는 것은 동성애가 육체적인 욕구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은 다만 육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육신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다.
성경이 동성애자를 정죄하고 있지 않으나 정죄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곧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다. 하늘로 좇아 나타난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인하여 진리를 막는 자들의 불의함이 증거 된다는 것이다.

19절-20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였다는 것은 그들 눈에 보이는 만물에 하나의 창조가 이미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피조물일 수밖에 없음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안다는 것은 피조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해 아래 있는 인생과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됨을 알고 헛된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또 감사해야 하는 것은 내가 피조물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향할 수 있게 하고 또 헛된 세상에서 구원의 길이 내게 열렸음을 안 뒤에 하는 것이다. 생각이 허망하여 졌다는 것은 헛된 세상을 따라 가는 마음으로 가득하여졌다는 것이며 그 미련한 마음으로 인하여 자기를 어둡게 만든 것이다.

22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성경을 안다고,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비 진리로 변형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자기에게 맞는 해석을 하여 마치 말씀이 썩어 사라지고 말 사람의 육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여 성경을 헛된 세상에 속하게 하는 죽은 자들을 생산해 내는 책으로 만들어 놓았다.

23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그래서 하나님의 그것을 내버려두셨는데 그 현상을 보니 진리를 비 진리로 해석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보다 사람 중에 높아진 자가 하는 말을 더 인정하며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경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이 남성을 섬기는 구조가 아님에도 그들은 그것을 따로 남성은 가르치고 여성은 한복입고 섬기고 경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6절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절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며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음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 어떻게 서로 욕되게 하셨는지 보자. 이것이 동성애자를 정죄한 구절이다.
부끄러운 욕심이란 세상 것을 향한 마음이며 그것을 따라가게 놓아둔 것이고 피 전도된 자들이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높아지기 위하여 전도를 하고 또 그들에게 헌금을 많이 걷어 내는 것으로 교회 안에서 지위가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순리로 쓸 것을 역리로 쓰는 것이다.
또 먼저 된 전도자가 나중 된 피전도자를 가르쳐 그 또한 남자 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안중에 없고 그들을 모아 그들의 희생 제물을 먹고 자기의 조직 확대를 위해 열심을 내므로 피차 전도자인 자들끼리도 서로 자기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하여 영역의 확장을 기도한 야베스의 기도를 표어 삼아 자기의 영역확대를 위해 여인들을 이용하고 또 다른 전도자들과 여인 뺐기를 하며 순리로 써야 할 것을 역리로 쓰고 있는 것이다.


피전도자에게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 순리이며 전도자를 보게 하는 것이 역리이다. 하나님을 보게 하는 순리를 행하는 전도자는 최소한 그리스도를 따라간 표인 자기부인의 조건을 갖춘 자다. 자기가 없는 자에게 자기의 얼굴이나 자기의 약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알고 드러낸 것은 마음에 역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정죄를 당할 때 핑계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높아짐과 넓어짐은 결과적으로 버려야 할 것을 쌓은 것이므로 그 쌓은 대로 보응을 받는 것이다. 이미 역리로 쌓아놓은 그 쌓음이 곧 보응인 것이다. 그래서 이미 받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만일 이 보응이 에이즈라고 우긴다면 그 당시에도 에이즈가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에이즈는 바울이 이 말을 한 뒤 2000년이 다 되어 발생한 바이러스이다.


선을 가장한 악이 바로 자기 눈의 들보이다. 이것은 아무도 뽑아낼 수가 없다. 티끌이라고 여겨 불편해야 빼는 것이나 들보가 않았어도 남의 티끌을 말하는 여유가 있는 그들에게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는 것을 느낄 수도 없는 것은 당연하며, 더 이상 그들에게 희망은 없다. 자기들이 쌓고 자기들이 넓힌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악이다 말하고 버리라고 하면 도리어 악하다고 죽이려는 것이다. 바로 그들이 세상이 악하다고 증거 하는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단자들인 것이다.


요한복음7장7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 함이라.

28절-32절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추악: 선한 것을 바꾸어 악한 것을 얻으려는 것에 쓰는 것

#탐욕: 자기의 욕구 충족을 위해(명예, 권력, 돈...)성경을 쓰므로 그들의 이름과 사진 아래는 언제나 헛도니 세상에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을 걸어놓고 그것으로 사람을 모은다. 모두 자기가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알고 있다면 사람 앞에 자랑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지 않으므로 자랑하는 것이다.

#악의: 세상 것을 얻으려는 의도가 마음에 가득한 것이 증거가 그들이 쌓은 결과다.

#시기: 사라 사이에 섞이지 말라, 사람을 삼가라고 가르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의 높음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의 허점을 찾아 그것을 공략한다. 동성애의 비판도 바로 거기에서 오는 것이다.

#살인: 동성애자는 선택으로 동성애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정죄하여 평생토록 죄 가운데 머물게 하는 것이 바로 살인이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것은 뚱뚱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날씬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난쟁이나 키다리나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관계없이 만민을 향해 주신 것이다.

#분쟁: 자기이익이 걸려 있지 않으면 분쟁할일이 없다.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기: 말씀에 뭐라고 돼 있든 관계없이 자기 말만 하는 것이 곧 사기다

#악독: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다. 왜냐하면 돈은 상대적인 사고를 유발하게 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세상것의 가짐이 바로 돈으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군수군: 뒷말을 하는 것이다. 떳떳하지 않으므로 뒷말을 하고 드러난 악을 가리기 위해 수군거리는 것이다.

#부모거역: 하나님과 성경을 거역하는 것이다. 부모가 없는 고아는 거역할 수 없다. 말씀은 진리다.
이 같은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은 사형인데 불구하고 그 같은 말을 하고 써서 유명해지면 그들이 옳다고 말한다. 그들이 추종자들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것이 육이며 그다음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이 영이며 그다음 선악과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정신을 주신 것이 바로 자유의지의 부여이며 하나님의 법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정신이 가진 자유의지이다. 만일 선악과가 없었다면 자유의지는 부여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선악과는 반드시 있어야하는 필연적인 나무였던 것이다.

선악과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수단이다. 만일 선악과 가 없었다면 사람에게는 좋거나 나쁜 것이 있을 수 없다. 좋거나 나쁘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의 바탕위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주신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주신 것이 바로 선악과인 것이다.

법을 어기는 것과 어기지 않음 또한 자유의지가 발동이 될 때 일어 날수 있는 일이며 자유의지 없이 법은 필요하지도 않다. 법이란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 했을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육과 혼과 영이 함께 나는 데 영은 죽은 상태로 난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람이 “거듭나야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죽은 영이 산영으로 다시 낳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성령을 받는 것이 곧 산영이 되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고 했다.

살아있는 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죽은 영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기능이 바로 혼, 즉 정신의 기능인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부여 받은 자유의지이다.

사탄은 이 “혼”이 세상 것을 따라 살도록 유도하고 하나님의 영은 육에 속한 생각을 버리고 영이 사는 쪽을 택하도록 돕는다.
사람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혼의 몫인 것이다.

만일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상실되었다면 사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탄에게 시험을 받을 일도 없고 성령을 따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의지가 상실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오류다. 사람을 분류하는 가설에 육과 혼이 하나이고 영이 또 하나라는 설이 있고 육과 영과 혼이 모두 별개의 성질을 갖는 다는 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개신교는 육과 혼을 하나로 보는 이 분 설을 채택 한다.

그 오류에서 출발한 것이 자유의지의 상실이라는 주장이고 또한 그 주장을 타당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예정론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정론은 성경적으로 피조물이 조물주의 영역에 침범하는 범죄이다. 하나님이 부여한 자유의지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역인 예정을 말하는 월권의 범죄, 바벨탑을 쌓은 범죄로부터 성차별대한 오류가 시작된 것이다. 성경은 사람에게 있어 구원의 대상이 영이며 육은 아니라고 했으며 또한 그리스도는 천국에서는 시집도 안가고 장가도 안 간다고 말씀을 하셨다.

혼과 육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육적 본능과 함께 혼적 자유의지 기능을 갖고 태어난다. 마음이 반드시 성기능의 이치를 따라 가야한다는 것이 철칙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은 사람의 혼을 육체와 일체시하는 것이다. 그것을 일체 시 하면 다음의 그리스도 말씀이 오류가 된다.

마태복음 26장41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 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혼과 육신은 하나일 수 없다. 성적 규정은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노력과 선택에 의하지 않은 천성을 가지고 우월을 주장하는 것은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도 타당하지 않다. 천국에서는 시집과 장가를 가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천국은 누가 누구에게 성기능으로 인하여 예속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기능과 마음은 별개이다. 아담이 먼저 나서 서열상 높고 하와는 낮은 것이 아니라 단지 성기능의 차이만 있는 것이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피전도자에게 있어서 전도자가 머리이고 전도자의 머리는 어떤 제자 위에 세워진 교회(에클레시아)이며 그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뜻이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이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버러지의 형상에 적용하여 오해한 대표적인 성구 중에 하나이다. 이 오해가 성차별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영과 혼과 육이 별개임을 증거 하는 전도서 기록


전도서3장
18.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는 그 깨달음은 혼이 깨닫는 것이다. 사람과 짐승이 날 때에 같은 것은 육과 혼이 함께 나는 것이다. 육은 판단을 하게 하는 것으로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짐승은 자유의지 없이 본능이 아는 대로 좋은 것은 좋게, 싫은 것은 싫은 것으로 반응한다. 사람과 짐승의 혼이 다른 것은 자유의지의 유무이다. 만일 사람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무익한 육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여 영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면 결국 짐승의 혼과 다름이 없이 흙으로 가고 끝나는 것이다.

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 또 내가 생각하기를 인생이 해아래서 일을 하게한 것은 누가 수고하며 수고의 가치 없음을 깨닫는가를 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의 욕심껏 세상에서 수고하여 무엇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해본 자는 결국에 이룬 자도 못 이룬 자도 그 수고함으로 얻은 것이 헛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외에 다른 깨달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은 자는 자기가 짐승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고 짐승과 내가 다른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으려 할 것이다. 만일 사람이 짐승과 같은 것을 알고도 벗어나려 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인생을 살아보고도 그와 같은 깨달음이 없다면 그 자는 사람으로 나서 짐승이 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을 가거니와
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 모두가 흙으로 지음 받은 것이므로 육과 혼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생이 짐승과 다르다면 혼이 위로 가는 것을 선택할줄 알아야 사람으로 지음 받은 것을 유지하는 것인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마음이 아래, 땅에 속한 것을 향해 감으로 흙으로 돌아가고 흑암으로 내려가게 생겼으니 그것을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그 혼이 하늘로 향하는 것이 원래 지음 받은 사람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니 하늘로 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시편22장29절: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짐승이란 구원받지 못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이것을 오해하여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의 혼은 구원을 받든지 못 받든지 위로 올라간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이다. 자기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는 진토로 짐승의 혼과 같이 내려가는 것이다. 산자의 영과 혼은 하늘로 가고 영이 거듭나지 못한 자의 혼과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또 사라지는 것이다.)

# 성경에는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포도농사를 지으며 살 때 함이 저주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노아가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고 자고 있는 것을 함이 보게 되고 그것을 형들에게 가서 말하자 형들이 노아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뒤돌아 뒷걸음으로 들어가 노아의 하체를 덮는다. 노아의 하체를 보고 형들에게 이야기 한 것이 왜 저주의 대상일까? 그 핵심은 에덴이후 인간의 하체가 더 이상 거룩한 것을 낳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법을 어기고)제일먼저 부끄러워 한 것이 서로의 하체였다. 법을 어김과 동시에 거룩한 것을 낳는 기능이 상실되고 이제는 악을 낳는 기능을 가진 것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체를 가죽으로 가려 주신 것이다. 그 가죽을 벗고 다시 거룩해지는 것의 표가 곧 할례이며 또 바울이 말하는 마음의 할례인 것이다. 율법시대에는 할례가 거룩해지는 것을 표였고 그리스도 이후에는 육체에 할례를 받는 것이 무의미 해졌고 이제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마음의 할례란 마음에서 세상에 속한 것을 모두 비워내는 것이며 그것이 곧 경건이고 또 그리스도를 따르는 조건인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라”에서 “자기의 부인”이 곧 마음의 할례인 것이다. 노아의 하체를 보았으면 악을 생산하는 것을 본 것이므로 즉시 그것을 가렸어야 한다. 그러나 함은 그 악한 것을 감추기보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것을 타인에게 전한 것이다. 말하자면 타인의 혼에 악을 전파한 결과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믿음이 아니고는 주를 볼 수 도없고 행함으로는 육체의 할례와 같다. 히브리 음역에는 이부분을 강간과 같은 표현을 하였다.

행위의 법이 아닌 마음의 법이 시행되는 이때에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여전히 성경적으로 의미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한 마음의 법을 인정하지 않는 적그리스도, 즉 이단이 된다.(끝ⓗ)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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