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상담 치료학

수호천사1 2010. 1. 18. 19:55
상담 치료학
Counselling Therapy
박준배  저
브니엘
머 릿 말
1950년대에 리스만(David Riesman)은 현대인을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또 살아가기에 편리한 도구들이 많이 생겨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 필요한 대인관계의 문화는 도덕적인 퇴폐와 아울러 점점 더 삭막해져 가고 있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대 사회를 그렇게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관계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대립과 갈등으로 황폐되었으며, 형제간이나 친구 사이에도 신의를 잃어버린 실정입니다.
리스만(David Riesman)이 지적한대로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혼자서 무인도에 버려진 것처럼 느끼는 외로움을 어떻게 처리할 수 없어서 번민하고 방황하다가 정신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 입시로 인하여 불안 속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자살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비율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급속한 컴퓨터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문명의 발전인지, 문화의 파괴인지를 구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대인관계가 삭막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아(自我)를 상실한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사고방식 때문에 사회적으로 삶의 방법이 비뚤어진 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1년에 한 차례씩 겪어야 되는 교육정책의 변화도 문제가 되지만, 보이는 외형적인 성공만을 최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본래 교육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들도 역시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생활이 풍부해졌으면 정신 연령도 그만큼 성숙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텅 빈 가슴을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 누구의 탓일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지도자들의 과제이며, 교육을 맡은 자들의 과제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가슴앓이를 해야 되고, 정치 지도자들이 몸부림치며 연구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근본적인 문제는 팽개쳐두고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앙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주후 2001년 여름 오후
                                    
저자   박준배   드림
목 차
I. 서 론 1
II. 인간에 대한 이해 4
  1. 과학적인 인간관 5
  2. 윤회론적 인간관 7
  3. 성경적(창조론적) 인간관 8
    1)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8
    2) 타락한 존재로서의 인간 8
    3)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10
    4) 구속받은 존재로서의 인간 13
III. 목회상담과 상담치료학 15
A. 목회상담의 정의 15
  1. 임상목회학 18
  2. 상담치료학 19
B. 상담학의 발자취 21
C. 상담의 종류 23
D. 상담의 원리 25
E. 상담의 방법 28
  1. 지시적 방법 28
    1) 명령 28
    2) 훈계 29
    3) 충고 29
    4) 격려 29
    5) 정화법 29
    6) 과학적 논리적 설명 30
  2. 비지시적 방법 30
    1) 개인의 자율성과 통합성을 중요시한다 31
    2) 정서적(감정)인 면에 중점을 둔다 31
    3) 개인의 현재의 상황에 중점을 둔다 32
    4) 내담자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게 한다 32
  3. 절충적 방법 33
  4. 권면적 방법 33
F. 상담학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 35
IV. 상담치료와 심리학과의 관계 36
 A.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36
    1) 이드(Id) 37
    2) 초자아(Superego) 37
    3) 자아(Ego) 37
 B. 정신분석학 39
  1.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 43
 C.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 46
 D. 삶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49
  1. 인간의 병은 어디에서 오는가? 49
  2. 왜 감정에 의해서 병이 생기는가? 52
  3. 감정으로 인한 병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58
  4. 어떻게 해야 감정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60
    1) 사고방식을 스스로 조절하도록 노력해야 된다 61
    2) 항상 즐거운 감정이 되도록 한다 62
    3) 행복감을 잃지 않는 삶 63
    4) 평화가 통치하는 생각과 마음 64
  5. 문제 발생의 예방 66
    1) 감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증상들 67
    2)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 68
    3) 경험을 통한 적응 72
    4) 가정생활의 중요성과 교육문제 73
E. 성경적 치료원리 76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 76
  2. 성령을 의지하는 치료 78
    1)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야 된다 79
    2) 감사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82
    3) 사랑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86
4)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88
F. 성경적 상담의 과정 89
  1. 진행과정의 중요성 89
    1) 내담자를 맞아들이는 과정 90
    2) 말을 듣는 태도 91
    3) 감정적인 접근 92
    4) 깊은 이해력 95
    5) 자율성을 살려주는 상담 98
 2. 완전히 승화되도록 하는 상담 99
V. 결론 101
 A. 성경적인 신앙상담의 실제(Case Study) 103
  1. 불신자들의 문제 105
  2. 신앙인의 문제 118
  3. 지식인들의 변명에 대해서 135
참고문헌 145
 
 I. 서 론(序論)
현대사회의 문제점은 사상의 변화보다 더 빠른 문명의 발전에 대처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 갈등과 번민(煩悶)을 안고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즈음은 도시화의 경향으로 인해서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말세의 현상들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형편이다.
말세의 현상이란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만을 즐기는 현상으로 결국 자신과 사회와 국가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번져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개선하고 치료해 줄만한 어떠한 기관도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우리 나라의 중·고등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흡연 문제나 음주 문제를 막을 수 있는 그 어떠한 학생의 지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명의 발달에 비례해서 사람들이 정신질환 및 정신 신체질환을 앓는 비율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아랑곳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다니며 맹목적으로 사는 자들도 있다. 이들이 모두 현대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원인이 무엇이며, 어떠한 병인지 알고싶어서 의사의 시원스런 대답을 듣고 싶어하지만 의사들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결국은 정신 신경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한다. 사실 정신 신경과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병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거나 상담을 해주지 않고 있다.
아무리 병원에 다녀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답답한 마음에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는 경우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인간에게서 건강은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서 건강을 담보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늦게 서야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좋다는 약이나 음식을 모두 찾아 먹어도 해결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어 가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상담치료학(Counselling Therapy)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 상담학의 분야도 옛날에는 그냥 {상담학}이라고만 일컬었으나 근래는 {상담치료학}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의 내용뿐만 아니라 상담의 범위까지도 상당히 복잡해졌다.
{신경성}이란 이름이 붙은 질병뿐 아니라 모든 내과나 외과의 질병들이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1930년대 이후로 서양 의학계에서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양의학에서는 수 천년 전부터 병은 마음으로 다스려야 된다고 하며 예방의학에 치중했었다.
만약에 병이 생겨도 음식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며 약으로 치료하는 것을 최하의 방법이라고 해왔다. 이런 주장들이  서양 의학계에서도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을 주요 치료방법으로 삼았던 동양 의학은 실험 과학적인 서양 의학에 밀려서 그 자리를 많이 빼앗겼었으나, 요즈음은 그 자리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많이 확보해나가고 있다.
목회 상담학은 동양의학보다도 훨씬 오래 전부터 성경에 이미 밝혀진 진리를 토대로 해서 심령에 병든 영혼들에게 치료와 삶의 능력을 제공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목회 신학적 측면에서 사명감을 더욱 절실히 느껴야 할 문제이다.
현대의학이 완전히 해결해줄 수 없는 어려운 개인적인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을 치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주어지는 구원과 사랑에 대한 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삶의 모든 문제를 치유하는 학문이 {목회 상담학}이라고 할 수 있다.

II. 인간에 대한 이해(理解)
스핑크스 하나가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 수수께끼는 바로 {아침에는 4발로 걷고 점심에는 2발로 걷고 저녁에는 3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는 것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 갓난아기는 4발로 기어서 다니고 어른이 되면 2발로 서서 걷다가 늙으면 지팡이를 짚고 걷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을 하자 스핑크스가 물에 빠져서 죽었다는 전설이다.
이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상담의 대상자는 누구일까?
상담의 대상자는 바로 인간이다. 그러므로 상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에 관해서 모든 문제를 연구하려면 먼저 어떠한 인간관을 가졌는가? 에 따라서 연구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前提)해야 된다. 왜냐하면 인간을 인격적 존재로 다루느냐? 아니면 하나의 동물로 다루느냐? 에 따라서 이론적인 근거는 물론, 연구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나 인간에 관계된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인간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인간관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과학적 인간관
1920년대에 미국의 한 법정에서는 하나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그 재판은 창조론 대 진화론의 재판이었다. 그런데 그 재판에서 진화론이 승리하므로 그때까지 미국을 지탱해오던 정신적 토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의 종교적 얽매임을 벗어나려는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사회질서가 무너지게 되므로 미국은 폭력이 난무하는 마피아 문화가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진화론이 대두(擡頭)되면서 인간은 하등 동물로 전락해버렸다. 하나의 아메바에서 진화하여 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설명한 것이다. 인간을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즉 원숭이 과(科)에 속한 하나의 동물로 분류하며, 이것이 과학적인 인간관의 가장 훌륭한 이론으로 현재까지 알려져 왔다.
인간을 분석한 결과 비누 한 개의 가치밖에 없다고 과학자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물리적인 가치만을 지닌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물리적으로 분석해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진화론에 따르는 {동물로서의 인간관}을 가지고 하나의 물질 개념으로 인간을 이해할 때 인간의 존재가치나 존재목적은 물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스스로 상실(喪失)해버리게 된다.
그래서 인간을 전연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인격적 요소들을 요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하나의 짐승처럼 생각할 때에는 교육도 동물을 길들이는 정도의 교육 외에는 그 어떠한 교육도 필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과학적 동물로서의 인간관}은 인간이 짐승으로서의 욕구, 그 이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인간교육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근래 발간된 게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에 따르면 생물의 유전자 염색체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미생물까지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전공학의 발달은 인간의 질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 발전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다른 동물의 유전자를 이용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가치를 하나의 동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또한 인간의 존재의미마저도 없어지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전자를 조작시키는 것이 완전하게 성공할 수도 없다는 이론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비인간화(非人間化)시켰을 뿐 아니라 사실 과학이 멸망을 초래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기에 편리한 도구들이 발명되면서 지구환경을 오염시켰고, 창조 당시의 아름다움을 상실한 황폐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친다 해도 바벨탑을 쌓던 인간으로서의 한계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과학은 인간 스스로 모든 만물의 창조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파괴시킬 과학문명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될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과학문명의 오염 때문에 인간은 병들고 최후에는 멸망당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지닌 죄의 성향(性向)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로도 인간의 문제를 올바르게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2. 윤회론적(輪廻論的) 인간관
힌두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론(輪廻論-transmigrationism)은 영혼의 불멸성(靈魂不滅性)을 강조하기 위한 종교적 이론이다. 그런데 윤회론은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다음 세대에 어떠한 동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정설(定說)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존재로도 태어날 수 없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그 어떠한 희망과 위로를 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더욱 끔찍한 내세관을 갖게 만든다. 윤회론적인 인간관은 과학적 인간관처럼 동물과 인간의 구별을 없애버렸다.  윤회론은 인간의 생명을 동물적 가치만을 지닌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인이나 폭행을 아무런 죄의식(罪意識)도 없이 저지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외경심(畏敬心)과 존엄성을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존재가치와 존재의미를 모르고 동물적 인간관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물로서의 인간관을 부르짖은 윤회론자들과 과학자들도 결국은 {동물로서의 인간관}을 지닌 살인마들에 의해서 살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고 살인을 목적으로 동물적 인간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인간의 삶을 더 아름답게, 더 가치 있게 만들려는 인간의 시도가 어긋났다는 사실을 뜻한다. 인간을  동물로 보았다는 사실은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平價切下)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만든 것이다.
3. 창조론적(성경적) 인간관
1)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성경은 인간 존재의 기원(起源)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귀한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중심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被造物)을 통치할 수도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가치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서 아름다운 사회를 구성하며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모든 생물들을 통치해야 될 존재라는 사실 속에서만 그 가치를 찾을 수가 있다.
인간은 단순히 통치자로서의 사명만 받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통치자로서의 축복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사명을 소유한 자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2) 타락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본래 주어진 축복과 사명과 권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죄인이란 이름이 주어졌으며, 사명감을 잃은 무능하고 연약하며 병들어서 {죽음을 향하여 가는 육체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창6:3)
육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사르(   )는 단순하게 살(flesh)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육체(바사르:    )를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은 그 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11:19-20)
새로운 영어 번역에서 육체(바사르:    )를 flesh 대신에 mortal(육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 이라고 신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인간은 육체(    : 사르크스)를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혼(    : 프슈케)과 영(      : 프뉴마)까지 소유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영혼으로 표현된 단어는 혼(    : 프슈케)을 의미하며, 목숨 또는 인간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가지 문제점은 하나님의 신(영:    )이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함께 하다}는 말은 동반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함께 하다}는 히브리어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딘(   ): 심판하다(judge), 변론하다(plead), 통치하다(rule), 다투다(contend)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동반자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인간이 그 어떠한 죄를 범하여도 하나님께서 참견하거나 간섭하지 않으시고 방치해 두시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동반자가 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인간을 통치하지 않으시겠다는 사실이 영적으로 병들거나 혼적으로 병들고 육체적으로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심리적인 병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병들고 말았다. 정신적인 병이나 심리적인 병이란 혼적(psyche)인 질병을 의미한다. 혼(    )은 마음이나 정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간이성(人間理性)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적(魂的)인 인간}이란, {이지적 인간}을 뜻한다. 그런데 이지적(理智的)인 인간은 자신의 지식 때문에 영적인 일을 수용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지성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인간에게 혼적(    )인 질병과 육체적인 질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질병도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영적인 병}이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짐승과 같은 삶에서 비롯된다. 죄악을 범하는 가운데서 영적인 병이나 혼적인 병을 앓게 되고 육체적인 질병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는 죄(罪)에 대한 문제라고도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죄란 창조주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의지(意志)대로  육체적인 쾌락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背馳)되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회라는 단위 안에서 삶을 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작은 사회로 가정이 있으며 나아가서 국가까지도 인간이 삶을 영위해야 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존재와의 인간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이다.
인간관계란, 자신이 가장 유일한 존재란 사실과 함께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서로 적응시키는 삶을 의미한다. 각자 자신의 생활만을 고집한다면 사회는 붕괴되고 사회적인 행복은 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고부갈등(姑婦葛藤)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그 원인은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며느리들이 남편을 독점하려고 할 때나 시어머니가 아들을 독점하려고 할 때에 고부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가정은 행복을 추구하는 작은 단위의 사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회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 남편의 마음에 불행을 심어준다면 그 가정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혼자서만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어머니로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잘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게슈탈트 치료방법(method of Gestalt Treatment)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독일어 게슈탈트(Gestalt)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뜻은 {조직되어 있는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개체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자신을 보는 견해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전체로서의 자신을 보지는 못하고 하나의  조각으로서의 자신만을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보다는 언제든지 자기 입장만을 중요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변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편이나 아들로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서로 배려해줄 때에 그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과 더불어  살 때에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할 때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때에 자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관계를 잘 갖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자신 안에서 성격의 이중성을 느낄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못 갖는 이유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성격의 양면성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경우에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거만을 떨다가도 혼자가 될 때에는 한탄하거나 슬퍼하며 자신을 질책하고 혹사하게 되는 것이다.
성격의 양면성에도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는데 어릴 적부터 갖게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성장한 후에 생긴 경우도 있다. 가정환경 문제나 교육적인 문제로 인한 경우는 어린 때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은 반면, 성적인 문제나 대인관계에서 생긴 문제, 그리고 사업의 실패 때문에 생긴 문제들은 성장한 후에 생긴 경우이다. 따라서 자신의 양면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나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4) 구속 받은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 하면서부터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존재로서 이미 사형언도를 받은 처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범죄자로 그냥 처형하실 수만은 없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속(救贖)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두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로 제공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의 구주로 믿는 사람을 구속하기로 결정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구속이란 본래대로 회복하는 것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한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 3자에게 의존해야 되는 존재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불행에 빠져들게 된다. 불행에 빠져들면 인간은 비로소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병원이나 점쟁이 등, 여러 가지로 그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불행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으로 행복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목회이며, 치료자의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목회 상담이다. 다시 말하면 영적이거나 혼적(심리적 또는 정신적)인 병은 물론,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먼저 해결해야 되는 것이 바로 죄 문제이다.
목회상담은 인간치료를 목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이다. 상담을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할 때에 영적인 병과 혼적인 병이  치료될 뿐만 아니라 육체적 질병도 치료되는 것이다. 목회상담은 그러한 면에서 어떠한 상담치료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다.
인간은 단순하게 혼적인 존재만도 아니고 물질적인 존재는 더욱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고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하나님의 뜻을 맡아서 이루어야 할 책임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처럼 귀한 신분으로부터 죄인이란 신분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병들고 고통에 시달리는 연약한 존재가 된 것이다.
상담 치료란, 물론 목회상담을 통한 치료를 뜻한다. 치료 과정에서 신앙이 돈독한 의사와 함께 치료를 병행할 수만 있다면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임상목회학적으로도 상담 치료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III. 목회상담학과 상담치료학
A. 목회 상담의 정의
{목회 상담학}은 인간의 삶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문제를 목회자가 신앙적인 상담을 통해서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해주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 개개인이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신앙을 중심으로 도와주는 {학문적인 과정}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개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개인적인 문제가 자신의 삶을 어둡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병들게 만든다. 그러므로 상담이란,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상담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상담은 어떠한 사람과도 가질 수 있고 또 치료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큰 치료효과를 얻게 된다. 상담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내담자에게 자신의 생각만 강요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 {목회 상담학}을 {상담치료학}(Counselling Therapy)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일부에서 {임상목회}(Clinic Pastoral Care)라고도 한다. 그러나 임상목회학과 상담치료학(相談治療學)은 그 개념이 비슷하면서도 전연 다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상담 치료란, 물론 목회상담을 통한 치료를 의미한다. 그런데 무엇을 상담하느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일반적인 상담은 질병을 치료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목회상담의 치료영역은 육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적 문제도 치료해야 된다는 사실에 그 사역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고 권리를 되찾아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에는 구원문제와 아울러 영적 치료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목회상담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담으로 영적인 치료는 물론 삶의 모든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원죄를 해결해야 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죄 문제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에 한해서는 그 어떠한 상담으로도 손댈 수 없는 분야이며, 오직 목회상담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원죄(原罪)란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 때문에 인류에게 지워진 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범하지 않고도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죄는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로 구분된다. 그런데 자범죄는 물론 원죄까지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밝고 건강한 삶을 살려면 죄를 해결해야 되는 것이다.
 자범죄(自犯罪)는 죄의 열매가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만 된다. 그러나 원죄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인간은 원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병들고 연약하며 고통 속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그러므로 상담을 한다는 것은 죄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세상에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이다. 상담으로 {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의 죄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 문제까지도 십자가 위에서 책임지고 죄인을 대신해서 처형당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상담치료학}의 근본 원리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으로 죄 문제는 해결된다.
죄 문제가 영적으로 해결되면 혼적인 질병까지 빠르게 치료될 수 있다. 따라서 육체적인 치료도 가능해진다. 상담치료학은 바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담자의 심령에 심어주는 것이다.
그 치료의 과정에서 의사와 함께 치료를 연합할 수만 있다면  놀라울 정도의 치료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임상 목회학은 목회자가 연구하고 시도해야 되는 학문분야이다. {상담치료학}은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신 능력을 단순하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상목회학적으로도 {목회상담 치료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상담 치료학}은 전인(全人) 치료이기 때문에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선행조건이 바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인간이나 윤회론적 인간으로의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이해가 있어야만 올바르게 상담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1. 임상목회학(臨床牧會學)
과거에는 목회학으로 분류하던 것을 요즈음은 {목회 상담학}이라고 별도 분류되고 있다. 목회 상담학이 다루는 분야는 인간의 삶 전체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목회자는 성경과 학문적 지식을 많이 쌓아야만 된다.
상담의 목적은 내담자(Client)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운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데까지 이끌어주는 과정으로서 내담자가 스스로의 문제를 정확하게 통찰하여 {인격의 통합}을 달성하게 하며, 앞으로 부딪치는 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데 상담의 목적이 있다.  
과학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게 되었으나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병든 영혼들이다.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것이야말로 목회의 주요 기능이기 때문에 {임상목회: Clinical Pastoral Care}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병든 심령의 영적인 치료는 목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래서 병든 사람을 의사에게 인도하기 전에 그 원인을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학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의학적인 측면에서도 영적 진단은 대단히 중요하다.
{임상목회}(Clinic Pastoral Care)는 의학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목사가 혼자서 치료한다기보다는 의사나 상담원 또는 간호사, 자선사업가 등, 주변의 도움을 얻어서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임상목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목사는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판정될 때에 의사에게 그 치료를 맡겨야 된다. 그 때에 치료비와 거기에 따르는 모든 경비는 자선사업가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삼박자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임상목회의 장점이다.
그런데 오늘날 말하는 {임상목회}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눈다는 측면에서만 연구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상목회}의 사명감과 그에 따르는 기능이 중요시되는 것이다.
2. 상담 치료학(相談治療學)
{상담치료학}(Counselling Therapy)이란 상담을 매개체로 해서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담치료학은 심리학적 상담이나 정신의학적 상담으로 질병만을 치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담의 방법으로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인간에게는 영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영적 문제를 중요시하면서 영적으로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상담치료학}이다.
영적으로 치료한다는 말은 {성령을 절대로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상담치료(相談治療)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소유할 때에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해진다.
상담의 과정이나 방법에 있어서 의학적 상담과 비슷한 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상담치료의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먼저 심령의 치료가 이루어져야 된다.
목회상담의 특징은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심령 속에서부터 회개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상담자(Counsellor) 자신의 지혜나 지식을 의지하기보다는 절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되는 것이 상담치료인 것이다.
{상담치료}는 목사나 상담자의 능력을 꼭 필요로 하지만, 결코 자신의 어떠한 능력보다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만 의존해야 되는 것이며, 성령의 도우심에 맡겨야 되는 것이다.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성령께서 그 치료를 감당하시도록 {맡기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해야만 된다. 그래서 상담치료(Counselling Therapy)란 목회학적 측면과 영적 측면에서 환자(Client)를 인격적으로 상대해야 된다.
내담자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한다는 것은 어떠한 편견이나 전제조건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관점이나 견해를 가지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상담이 실패하는 원인들이 내담자의 죄나 잘못을 염두에 두고 상담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에 기울어져서 상담을 그릇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치료학}은 {삶} 자체를 치료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전인적인 치료로서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담치료학은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과정들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내담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상담자가 알려주고 인도하는 역할만 하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직접 의사의 심정으로 내담자를 대할 때에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치료할 수가 있는 것이다.
B. 상담학의 발자취
{상담}이 학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전쟁에서 입은 심리적 충격 때문에 현실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아를 상실한 상태에 있을 때에 그들과 상담하는 동안에 어떻게 하면 그들을 삶의 현실에 적응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상담학}으로서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동기이다.
그러나 {상담}은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가 생길 때에는 누군가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상의해야만 답답함을 덜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에게나 상담할 수 있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목회 상담학은 1905년에 보스턴(Boston)의 임마누엘 감독교회를 중심으로 한 임마누엘 운동(Emmanuel Movement)에서 종교와 의학의 관련성을 모색한데서 비롯되었는데, 1908년 우세스터(Worcester)와 맥콤브(McComb) 및 코리에트(Coriat)에 의해서 {종교와 의학}이란 책이 나오므로 발전되었다.
정신병 학자이면서 성직자인 올리버(John R. Oliver)가 1932년에 {목회적인 정신치료와 정신건강}(Pastoral Psychiatry and Mental Health)이란 책을 펴내면서부터 박차를 더욱 가하였고 미국의 여러 정신병원에서 선교하던 보이슨(Anton. T. Boisen)이 {인간정신의 탐구}(The Exploration of the Inner World)를 1936년에 출판하므로 써 새로운 기원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 후에 롤러 메이(Rollo May)가 {카운슬링의 기술}(The Art of Counselling)을 1939년에 출간하므로 상담학의 체계와 모형을 이루었으며, 칼 로저스(Carl R. Rogers)가 {카운슬링과 정신요법}(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카운슬링의 이론과 실제-한승호 역)을 1942년에 출간하여 카운슬링을 통해서 치료를 할 수 있다는데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힐트너(S. Hiltner)의 {목회 상담학}(Pastoral Counselling)이 1949년에, 1951년에 와이즈(Caroll A. Wise : 1962. 이환신 역)가 역시 {목회상담학}을 저술하였다. 그보다 앞서 와이즈는 {질병과 건강에 있어서의 종교}(Religious in Illness and Health)를 1942년에, {종교와 건강}(Religious and Health)을 1943년에 각각 저술하였다.
근래에는 임상 목회학의 발달과 더불어 상담학은 물론 상담치료학도 매우 발전하였다. 그러나 지성의 발달과 더불어 정신적인 치료방법이나 심리적인 치료방법을 너무 많이 도입하는 경향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상담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따라는 상담이어야 하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상담이 되도록 해야 되는 것이다.

C. 상담의 종류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병 학자인 투니어(Paul Tournier) 박사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중에 완전하게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 후에 다시 입원하여 치료는 것을 보면서 그 문제점을 연구하다가 그것이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사람은 누구든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성격과 체질, 혈액형에 따라서 감정에 상처를 잘 입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누구나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 오늘의 문제이다
{목회 상담}의 범위는 인간 생활에서의 모든 문제를 취급한다. 정신적인 문제로부터 육체의 질병까지, 또한 사업과 신앙,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 다른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결혼이나 직업까지도 모두 다루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상담의 대상자도 각계 각층으로서 대략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아동상담(child guidance clinics)---어린이들을 주로 상대하여 지도한다.
2) 학생상담(student counselling)-----학생들의 학업이나 그 외의  모든 문제를 취급한다.
3) 결혼상담(marriage counselling)----결혼문제를 위한 상담
4) 직업상담(works counselling)------직업에 관계된 성격과 환경 등을 상담한다.
5) 건강상담(health counselling)------질병과 모든 정신과 심리적인 것들을 상담
6) 신앙상담(faith counselling)-------신앙의 문제는 인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앙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해야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문제삼는 신앙상담은 바로 인생상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7) 기타--------------------- 혼자서 처리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들 상담
 
D. 상담의 원리
{상담의 원리}는 한 마디로 {대화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대화는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대화는 평상시의 인간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을 이룰 수 있는 {대화의 묘약}을 어떤 방법으로 진행시키느냐에 따라서 상담은 성공적일 수도 있고 또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화에는 어느 정도 {대화의 기술}까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되며, 그 만남의 요소가 바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닫혀진 마음을 열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대화보다는 마음을 개방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닥친 고독과 탄식, 그리고 갈등과 죄책감, 불안 등… 모든 문제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어떠한 치료보다 목회상담의 우월성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길이 성경에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닫혀있는 사람의 마음 문을 열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담의 목적은 마음 문을 열도록 하는 것이다. 상담은 대화로 이루어지며, 또한 상대적이다. 유치원생에게는 어린이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서는 병든 내담자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어야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사과한다. 자신의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합리화하려는 심리상태가 바로 불안한 심리상태이다. 그러나 열린 마음은 자신의 약점도 공개해야 할 경우에 아무 거리낌없이 공개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다음 마음이 열렸을 때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 과거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요4:39).
마음이 열리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심지어는 계명이 자신의 삶을 속박할 때에도 오히려 그것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시119:32)
하나님께서만 열린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왕상4:29) 상담자는 성령께 의존하고 자신의 권위의식을 철저하게 배제시켜야만 된다. 성령은 상담자(보혜사:           -파라클레토스)이시다. 상담자가 되시는 성령께서는 인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이다.
따라서 성령께 의존한다는 말은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상담한다는 뜻이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하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로 성경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철저하게 배제시켜야만 된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고요하게 기도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상담자(Counseller) 혼자서만 가려는 의욕을 제거해야 바른 상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자체가 모든 문제점을 성령께 맡기는 과정이 된다.
상담자(카운슬러)의 겸손은 성령께서 상담하시도록 그 자리를 성령께 양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면 상담하기보다 먼저 기도로 자신을 낮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E. 상담의 방법
1. 지시적 방법 (Directive method)
이것은 상담자 중심(Counselor centered)으로 상담을 이끌어 가는 방법이다. 한국 교인들은 자신의 말보다 목회자의 말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에 신앙상담은 물론, 개인적인 문제의 상담까지도 목회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상담의 목적은 내담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므로 상담을 통해서 내담자가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시적인 상담에는 많은 문제점이 포함되어 있다.
1) 명령(Order)
명령은 일방적인 분부로 명령을 받은 대상자에게 어느 정도의 여유도 주지 않게 될 염려가 있다. 상대편 입장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명령하는 사람의 감정이 내담자의 감정에  깊이 개입되어 내담자가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 됨으로 상담은 비효과적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명령은 때에 따라서 듣는 사람에게 중압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훈계(Exhortation)
훈계는 타이르는 것이다. 훈계도 훈계로만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훈계에는 대개 서약이나 약속이 강조되기 때문에 명령을 받을 때처럼 내담자에게 부담감을 안겨준다. 서약은 은근하게 강조하면서 책임을 지우려는 것 때문에 대화를 끊어놓게 된다.
3) 충고(Advice)
충고는 훈계나 명령보다는 그래도 부담감이 적다. 상담에 있어서 설득이란 상담자가 의도하는 대로 이끌고 가려는 방법이다. 그러나 충분히 내담자를 이해하려는 입장을 가져야만 상담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4) 격려(Encouragement)
격려는 내담자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의지를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위로와 격려는 내담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주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정화법(Catharsis)
자신의 내부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놓는 방법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이나 고해성사 등은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모든 비밀을 털어놓으면 잠재적인 죄책감을 벗을 수 있는 것이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큰 것을 보고 이발사는 그것을 말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가 산에 가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침으로서 갈등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 바로 정화(淨化)의 원리이다.
그러나 비밀을 털어놓아야 문제는 해결되지만, 회개를 강요할 경우 환자에게 더 큰 부담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6) 과학적, 논리적 설명
비교적 이지적(理智的)인 사람에게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잘하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지만, 일방통행이 되기 쉽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2. 비 지시적 방법(非指示的 方法)
비 지시적 방법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찾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좋은 이론에도 불구하고 비 지시적 상담 방법에는 문제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아를 상실한 자가 어떻게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발견할 때까지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마음을 열도록 한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상담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 개인의 자율성과 통합성을 중요시한다.
상담에서의 초점이 개인의 자율성(independence)을 원만하게 발휘하고 뜻과 이상과 행동이 일치되는 통합성(integration)이 작용되어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된 인격적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지(知), 정(情), 의(意) 이 세 가지 인격적 요소가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율성이란 스스로의 능력에 의해서 사고(思考)와 관찰(觀察), 판단(判斷), 결단(決斷), 행동(行動)으로 창조(創造)하는 능력을 뜻한다. 또한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건설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상담자의 의사를 강조하는 대신 내담자가 미숙해도 내담자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율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2) 정서적(감정)인 면에 중점을 둔다.
질병의 원인이 대개 감정에 상처를 입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감정은 인격적 능력의 핵심이다.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발산을 인격적으로 하도록 돕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다.
오늘날 신경성 질환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감정의 질환}이라고 해야만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풍부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상담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담자의 감정이 건전해질 수 있도록 카운슬러로서는 주의를 해야 된다. .
3) 개인의 현재의 상황(situation)에 중점을 둔다.
현재 내담자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를 살핀다는 것은 과거나 미래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만 과거나 미래를 전연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발자취와 미래의 목표 사이에 서있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를 중요시하되 과거와 미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4) 내담자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게 한다.
비지시적 상담은 내담자 중심(Client centered)이 되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한다. 그 중에서도 내담자가 말을 하도록 함으로서 그의 숨겨진 감정을 털어놓게 만들고 그의 말에 공감해줌으로 신뢰감을 조성해야 하며 세 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이미 토해버린 언어
둘째, 아직 말하지 않은 감추어져 있는 언어
셋째, 내담자 자신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영적인 언어
이러한 세 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을 때에 내담자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상담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 지시적 상담방법에서 문제점은 자아(Ego)를 상실한 정신이상자나 귀신들린 자가 어떻게 스스로 깨달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3. 절충적 방법(折衷的 方法)
절충적 상담(Eclectic counselling)은 지시적 상담과 비지시적 상담 방법의 장점들을 택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개인의 인격적, 자율적 능력이 연약하기 때문에 내담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상황판단이나 통찰력이 생기지 않을 때에 어느 정도 상담자의 견해를 내담자에게 심어주면서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 방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약간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상담 방법이다.
절충적 상담방법은 내담자의 인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방통행 식의 명령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교적 좋은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그러나 절충적 상담방법을 사용할 경우에 결과를 얻을 때까지는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하다.
4. 권면적 방법(勸勉的 方法)
권면적 상담방법(Nouthetic Confrontation)은 아담스(J. Adams)가 주창한 방법으로 자아를 상실한 사람에게 상담자가 주도하여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뜻하며, 목회상담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담자들이 원하는 상담도 역시 목회자의 일방적인 처방을 기대하는 것이 과거의 실례이다.
권면하다(누데테오:         )라는 헬라어의 누스(    : 마음; mind, 이해력: reason, understanding)와 티데미(      : 두다, 놓다, 고정하다)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하기에는 적합한 단어가 없다. 대개 admonish(훈계하다, 타이르다), exhort(권하다, 간곡히 타이르다) advise(충고하다) 등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영어와 헬라어의 뉘앙스(함의: 含意)가 전연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잘못되면 상담자 자신의 뜻을 주입하려는 경향 때문에 권면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담자의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권면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범위 내에서만 효과적이다.
 
F. 상담학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
상담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심리학이란 빼놓을 수 없는 학문 분야이다. 그런데 목회상담을 위해서 필요한 기초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는 심리학을 꼭 배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심리학을 배우지는 않아도 심리학적 원리에 대해서는 꼭 이해해야 마음의 움직이는 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의학적인 지식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의학적인 상식이 전문적 수준이 아니라고 하여도 의학적 원리만 이해할 수 있다면 내담자에게(Client)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상담방법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익혀야 한다. 그러므로 본서에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실제상황을 연구(Case Study)하고 그 실제적인 치료효과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많은 예를 참조하도록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려움에 처한 자들과 병자들에게 도움을 주셨던 원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보혜사 성령(파라클레토스:           )께서 상담자가 되신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와 성령의 역사(役事)를 통해서 어려움에 직면한 오늘의 영적 환자들에게 영적인 상담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담자가 되도록 구속사(救贖史)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시도해야 되는 것이다.

IV. 상담치료와 심리학과의 관계
A.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성경에는 마음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다. 현대 철학자들은 마음의 능력과 그 존재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신경 생리학자들은 마음과 뇌와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뿐만 아니라 새 세대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마음과 컴퓨터의 [하이테크] 자료의 산출 체제와의 유사성을 연구하고 있다.
마음이란 헬라어는 프슈케(    )이다. 프슈케(    )라는 헬라어 단어를 영어로는 psyche라고 기록하며 싸이키라고 발음한다. 또한 마음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을 사이콜로지(Psychology)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그러나 마음이 어디에 존재하며 어떠한 영향력을 가졌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신의학은 싸이키아트리(psychiatry)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모두 헬라어에서 혼이라고 표현되는 프슈케(    )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나 정신이 헬라어의 프슈케(    )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에 상담학은 이 두 가지 학문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마음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키며, 갈등을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심리학의 관심사이다.      
1) 이드(Id)
이드(Id)는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신체의 욕구이다. 배고픔, 갈증, 성욕, 심지어는 도박 등, 육체적 욕구를 정신적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이드는 전혀 길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르침을 받을만한 능력도 없으며, 가치 체계도 없다. 또 과거의 어떠한 경험에서 유익을 찾아 낼만한 힘도 없다.
이드(Id)는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망과 욕구만을 표현한다. 그런 욕구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통제력이 결여되어 있을 때에 그 충동은 비정상적인 것이 된다.
2) 초자아(Superego: 슈퍼에고)
초자아(Superego: 슈퍼에고)란 인격구조에 있어 이드 저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아(에고: Ego)를 초월한 존재로서 인간의 에고 위에 놓인 일련의 규범을 따르려는 외적 압력이다. 위에 있으므로 {초월}적이며 또 에고(ego)보다도 더 크고 강력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일컫는다. 슈퍼에고는 윤리적이면서 도덕적인 계율에 따르려는 경향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3) 자아(Ego: 에고)
자아(Ego: 에고)는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 있으면서, 그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육체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욕구를 조정해준다.
따라서 가치체계는 내면화되어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 있는 긴장을 해소하고 내면화된 에고의 가치체계에 의해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진다. 인격의 이러한 구성 분자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에 갈등이 야기된다.
이드로부터 보내는 배고프다는 느낌은 에고에게 스테이크를 먹자는 신호를 보내고, 에고는 또 이에 순응함으로써 이드의 욕구가 가라앉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 훈련이 고기를 먹는 것은 죄가 된다는 신호를 보냈는데도 고기를 먹었다면 에고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 안에서 상당한 응징을 받게 된다.
만일 이드가 {초콜릿을 먹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슈퍼에고가 {안돼 너는 너무 뚱뚱해}라고 말하면 갈등에 빠진다. 에고는 이드 편을 들어야 할지, 아니면 슈퍼에고 편을 들어야 할 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건전한 자아는 식이요법(食餌療法)에 맞는 캔디를 사서 먹음으로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만일 이드(Id)와 슈퍼에고(Superego) 사이의 요구로 말미암아 에고의 갈등이 너무 심각해지면 그러한 걱정이 낙심, 강박감, 강압적 행위, 공포증, 사회 부적응증, 또는 정신병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에서 다시 논할 것이다.
 

B. 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이란,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발표한 신경증의 치료법과 심리학적인 이론체계를 의미한다.
히스테리는 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의식 속에 억압된 채 잠재되었던 마음의 갈등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육체적인 증세로 변형되어서 일어나는 정신적 에너지로 생기는 병이라고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 깊이 억눌린 채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처받은 잠재의식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스테리를 고치려면 무의식 속에 눌려있던 감정을 정상적 통로를 통해서 방출(放出: catharsis)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자기의 학설이 처음부터 가설(假說)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불가능하여서 감히 {정신분석학}이라고 학(學) 자를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히스테리 증상에 있어 그 원인을 성적(性的)인 충동이라고 주장하여 1905년 {성(性)의 이론에 관한 3개의 논문}이라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그의 학설이 범성론적(汎性論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그래서 유력한 협조자였던  아둘러와 칼 융(Karl Jung) 같은 우수한 학자들이 떠나고 말았다.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성을 중심으로 무의식에 대해서 연구하는 심층심리학에 기울었고, 아둘러는 권력의지(權力意志)를 인간행동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자아의 문제에 주목하였고, 융은 분석적 심리학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연구하는 심층심리학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역동적인 특징 : 정신분석은 모든 정신 현상을 협력하다가도 반발하는 갈등과 결합하거나 타협하는 {힘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이 힘을 자기보존의 본능인 {자아본능}과 {성본능}의 두 가지로 나누었으며, 성본능의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고 불렀으나 1926년경부터 삶의 본능, 즉 에로스(    )와 죽음의 본능인 다나토스(       )의 둘로 나누었다.
삶의 본능은 영원한 결합을 찾는 자기보존 본능과 성 본능을 포함시켰고 죽음의 본능은 삶을 파괴하려는 본능을 의미한다. 특히 성 본능의 에너지 리비도(libido)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생후 18개월까지의 구순(口脣)시기, 8개월에서 4세까지의 항문(肛門)시기, 3-7세의 남근기(男根期)로 발달되어 가며 남근기의 마지막 시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억압  받으면 리비도의 쾌감추구는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잠복기로 접어든다. 잠복된 리비도는 사춘기가 되면 다시 소생하여 성인형태로 이성에 대한 성욕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란, {남성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의미하며, 그리이스 신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프로이드가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한 단어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의 아들인데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테베의 왕이 되었다. 이오카스테가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한 그들은 그 사실을 알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눈을 빼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경향은 남근기(男根期: 3-7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잠재기에는 억압된다고 한다.
유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의 정상적인 생애(性愛)가 발전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콤플렉스의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 신경증 환자가 되며, 이러한 콤플렉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프로이드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1929년 말리노프스키의 문화인류학상의 발견으로 일부 종족에서만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며, 보편적이거나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별히 신 프로이드 학파의 학자들은 사회적인 원인과 가족 내의 대인관계로부터 생기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여 프로이드의 이론을 반박했다.
한편 여자아이가 부친에 대하여 성적 애착을 가지며 모친에 대하여 증오심을 갖는 성향(性向)을 엘렉트라 콤플렉스(Elektra Complex)라고 한다.
2. 경제적인 특성 : 정신은 에너지의 막혀있는 상태, 울체(鬱滯)를 저지하고 정신이 받은 흥분의 총량을 가급적 낮추려고 한다. 정신은 쾌감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쾌감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장에 따라 쾌감만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원칙과 타협하여 쾌감추구를 지연시키기도 하고 일시적인 불쾌감을 참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국소론적(局所論的)인 특징 : 정신분석에서는 정신 또는 마음을 이드(id)나 에스(es),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나눈다.
이드(id)는 무의식에 속하는 본능적인 충동을 의미한다. 기본적인 신체의 욕구로 배고픔, 갈증, 성욕, 심지어는 도박 등, 육체적 욕구를 정신적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이드는 전혀 길들여질 수 없는 육체적인 욕구이다.
자아(ego)는 이드가 바깥세계로 방출하려는 에너지의 통로를 지배한다. 자아는 의식 자체가 아니므로 자아의 대부분은 의식밖에 있으며, 필요할 때만 의식의 세계로 불러들이는데 프로이드는 이것을 전의식(前意識)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아에는 무의식적인 측면도 있다.
초자아(super ego)는 자아의 이상(理想)으로 양심이나 도덕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자아는 초자아의 기준에 따라 자아를 맞추어 행동하려고 한다. 자아와 초자아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죄악감이나 열등의식이 생긴다.
그러므로 자아는 초자아의 기준에 이드의 행동을 묶어두려고 한다. 그러므로 초자아에게 얽매인 이드를 해방시키면 질병은 치료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체계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채 형성되었다. 이드의 충동을 제멋대로 방출시키면 초자아의 꾸중을 듣게 되고, 세상에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염려하기 때문에 자아는 항상 이드의 충동적인 욕구와 초자아의 꾸중과 세상에서 받게 될 비판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이 갈등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불안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불안에 빠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 자아는 이드에 대해 방어태세를 취하게 된다. 방어는 이드가 명하는 긴박한 충동의 발동을 간섭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억압하며 또 이드의 충동을 위험성이 없는 방향으로 돌리게 한다. 이러한 방어의 수단을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라고 일컫는다. 자아가  자기 임무에 실패하면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며, 이 노이로제는 현실신경증과 정신신경증으로 나누인다.
현실신경증은 외계, 즉 바깥세상이 이드의 충동성 방출에 대하여 반발하는데서 생기며, 신경쇠약, 질병염려, 불안신경증 등으로 나타나고,
정신신경증은 초자아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이드가 일으키는 충동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은데서 오는 히스테리와 공포증과  강박신경증 등이 생기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
근래에 들어서야 프로이드(Sigmund Freud)에게 많은 비판이 퍼부어졌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행동을 너무 기계적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비평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으며, 프로이드 자신도 {강하고 건전한 에고를 통한 인간관계의 가치}에 대해서 그의 생애 말엽에야 깨닫게 되었다.
프로이드가 주장하던 많은 학설들이 요즈음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은 프로이드의 인간관이 불완전하며, 사람을 전체적 인격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프로이드의 {지나친 단순화}(Freud's Oversimplified)라고 현대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은 인격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열쇠는 심리학적이거나 생물학적 단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고 지적한다.
과거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사전의 정의에 맞추려는 행동주의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지론(認知論 : Cognitive science)이란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프로이드의 학설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록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의 변화에 따르는 인간관계와 생활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음은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볼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무게를 달거나 해부하여 갈라 보일 수도 없기 때문에 심리학을 일컬어 가설적 구성개념(假設的構成槪念)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에 대해서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정확한 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임시로 설치해놓은 가설(假設: 건축할 때 임시 설치하는 물건)처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된 이론은 믿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심리학적인 상담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마음은 어느 정도 지능이나 인격과 연관성을 갖는다. 성경에서 마음은 그리스도를 닮거나 악한 마음이 된다. 마음은 만들어지고 조작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에게 천재성을 주거나 베토벤에게 창의성, 그리고 히틀러에게는 야만적인 잔인성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각 사람의 생활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서 영향을 끼친다. 마음은 타인이나 우리 자신에 의해 조절될 수도 있으며, 왜곡된 생각에 의해서 뒤틀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바르게 지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너무나 다양한 의미들을 가졌기 때문에 한 가지만의 정의로 사람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정의한다면, 사고(思考), 학습(學習), 문제해결(問題解決), 의지(意志), 인식(認識), 집중(集中), 기억(記憶), 주의(主義), 사상(思想)과 감정(感情)의 경험(經驗) 등을 포함한 인간의 정신활동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으로 말미암아 심리학도 기계적인 판단에 흐르는 경향을 갖게 되었으며, 그래서 오늘날 심리학적 상담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C.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영어의 단어도 성경에 표현된 마음(mind)의 뜻과는 그 뜻이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킹 제임스 번역 성경에는 여섯 개의 다른 히브리 단어들이 마음(mind)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이 단어들은 영어로 번역될 때에 혼(soul)이나 마음(mind), 그리고 태도(attitude)로 번역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구약의 일부에서는 기억을 뜻한다(사46:8-9). 네페쉬(   )를 영혼으로 번역하면서도 RSV에서는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감정적인 안전성(emotional stability)에 관계된 예들을 보여준다(막5:15, 눅8:35→정신). 또 야고보 서에서는 두 마음을 품은 자(        : double minded)라고 표현하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마음이 생각(thinking)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심리학을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었고, 마음에 대한 개념도 역시 하나의 수동적 반사나 명상이라기보다는 거의 행동 쪽에 더욱 가깝게 설명하고 있다. 근심스러운 마음은 위축된  행동을 낳고 어리석은 마음은 어리석은 말을 하게 만든다. 죄를 품은 마음은 하나님과의 적대행위를 범하게 된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는 다툼을 일으키는 등, 우리의 마음은 조절될 수 있으며 행동을 위해 준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갈5:17은 {인간적인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의도(意圖)} 사이의 긴장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의도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육체의 욕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6-17)
이것은 성경을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진리이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만물보다 부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반영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반영한다.
그것이 바로 육체적인 욕망을 뜻한다. 성령의 의도와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될 때에 육체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으며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성령께서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의 무능함을 능력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7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8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9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렘17:7-9)
노만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이 로버트 슐러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자기 존중의 신학과 가능성의 신학을 그는 강조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결정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상이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성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깨달아야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하게 요구하게 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목회상담학}은 {상처 입은 자아를 치료하여 건전한 삶이 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상담자는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된다.  상담 치료학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본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는 하나의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성령께서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도록 맡겨야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가르쳐주는 가장 귀한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치유와 구원의 역사}를 가장 기쁜 소식으로 병든 심령들에게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 치료학(Counselling Therapy)}은 성경을 중심으로 해서 치료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서 상담하고 치료하는 학문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D. 삶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
1. 인간의 병은 어디에서 오는가 ?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삶이란 악전고투(惡戰苦鬪)의 연속이다. 오늘날까지 인간이 누리는 행복(幸福)이란 오로지 순간적으로만 맛볼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똑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영속적으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인간의 커다란 실책 때문이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잘못된 욕망 때문에 행복 대신 불행을 얻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이나 고난을 참고 견디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쾌락을 얻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비결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외면해버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각도로 조사해보면 악전고투의 생활에서 오는 정신적인 혹사(酷使)가 그들이 앓고 있는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질병의 원인이 대개 {불안}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 불안의 원인들은 단순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 시기 등, 자신 안에서 영적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운 마음은 본래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려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리브만(Joshua Liebman)이란 유태인이 {마음의 평화}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책을 발행한지 3년 후인 41세에 사망하고 말았다.
리브만의 사망 원인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으로 시달림을 받다가 그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상실한 채 사망했던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은 50대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갖게 되는 불안감이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학생들의 불안감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환자(Client)들은 그들의 질병에서 가장 큰 원인이 되는 불행 때문에 의사를 찾아오지는 않는다. 환자가 의사를 굳게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결코 자기 불행을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질병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지 못하는 숨겨져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닫혀져 있는 자신의 마음 문을 개방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이다.
따라서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게 되어야 비로소 껍질을 벗고 자신의 실상(實狀)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 일단 육체의 증상(症狀)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는 그것을 혼자서 참고 견디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환자는 불행 때문에 의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증상 때문에 의사에게 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목회상담(牧會相談)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상담자(Counsellor)는 영적 의사의 위치에서 내담자(Client)가 가진 불행의 원인을 제거시키고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말하지 않는 불행도 목회자에게는 털어놓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서 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는 현재의 생활방식이 최선의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출처 : 기독교상담실한국기독교상담교육원
글쓴이 : 아카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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