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회(목사 이현래: 양문회, 하표사)
대구교회에 대해서 아들이 대구교회에 빠지게 되었다고 전화를 하신 분이 있었다. 그분에게 답변을 못하여준 것이 내내 가슴에 다가 왔다. 그동안 몇분이 연락을 해왔기에 대구교회에 대해서 자료를 정리하여보았다. 대구교회는 그동안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미혹된 사람들을 돕고 구출하는데에 사용되어진다면 하는 바람뿐이다.
지방교회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자료를 정리하였다. 그 자료를 참고하면 대구교회에 대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대구교회는 외부적으로는 교리를 표방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교리적으로 비판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외부적으로 이들의 교리는 정리되어있지 않지만, 이들의 교리는 지방교회의 것과 거의 유사하다.
# 개요:
대구교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으며, 목회자는 이현래목사로서 기독교하나님의교회측 신학교(현 돈암동에 위치한 한양신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대구교회를(목사. 이현래) 중심으로 아직은 적지만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으며, 이들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자생적인 지방교회(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만든 교회로서 이미 이단으로 정죄되었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하이텔등 인터넷 통신상에서 하표사(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들)란 명칭을 사용하였고, 양문회라는 곳에서 마치 지방교회(한국복음서원)와 같이 그들의 출판물을 간행하며, 교회 이름도 지방교회와 같이 대구교회 혹은 서울교회등 지방의 명칭을 딴 교회를 두고 있다.
이들 이현래목사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목사가 우연히 책방에 들려 워치만 니의 책을 읽고 그 사상에 빠져서 그 책을 모두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지방교회에 몇번정도 출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방교회에서 실망을 느껴 몇 명의 청년들과 대구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훗날 대구교회 교인 중 한명은 "우리는 지방교회와 한가지가 다르다"고 하는데, 그 한가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결국 한가지만 빼놓고 모두 지방교회와 같다는 의미가 된다.
하이텔 당시에 대구교회를 2년간 다녔다는 어떤 증인은 그 한가지가 "이현래목사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하였고, 대구교회 측의 주장은 지방교회와 다른 것이 지방교회가 "주여 주여"라고 인위적으로 부른다는 것이 다르다고 하였던 적도 있다. 이현래목사 자신은 "교회적인 부분이 다르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교회는 지방교회와 달리 자유스럽다"고 말하였다.
어쨋든 대구교회는 이현래목사의 사상을 추종하는 무리들로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자생적인 지방교회가 분명하며, 그들의 교리와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지방교회의 것을 참고하면 된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으로는 지방교회도 우리나라에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본다. 지방교회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단성이 많다. 그들은 엄격하게 말하여 기독교와 모든 것이 다르다.
단지 대구교회 이현래목사의 특징은 언어를 지방교회보다 좀더 상징적이며 은유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초심자들은 자칫하면 은혜롭다고 생각할른지 모른다. 또 지방교회보다 좀더 노골적인 점이 기존교회의 틀에 박힌 신앙적 형태를 진부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게 된다.
이것이 대구교회에 청년들이 많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구교회는 대부분 워치만 니의 책과 위트니스 리의 책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고, 필자가 보기에는 지방교회가 위트니스 리의 사상이 주가 되어있는 반면, 대구교회는 이현래 개인의 사상이 가미되어있지만 워치만 니 쪽에 더 가깝다고 보여진다. 원래 워치만 니의 표현이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반면에, 위트니스 리는 직선적이고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교단에 대구교회가 알려진 것은 1997년 5월호 교회와 신앙지에서 장운철기자가 대구교회를 취재한 적이 있으며, 본인은 그 전부터 하이텔에서 이들과 오랫동안 토론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장운철기자를 만나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던 적이 있었다.
또한 2001년 여름에 교회와 신앙의 홈페이지에서 지방교회측에서 공식토론을 요청하여왔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본인(이인규)과 김성일이라는 지방교회측과 전용게시판에서 공식토론을 4개월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당시 지방교회에서 발행한 책을 상당히 많이 읽고 나름대로 연구한 적이 있다.
# 활동:
최근에 이들은 통신, 인터넷상에 소모임을 갖고 일반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우연히 이들의 모임(하표사: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들)에 접촉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세트 테잎이나 교회 간행물 혹은 서적을 보내준다고 접근하며 전도하고 있다. 또는 대학, 직장을 통하여 동호회와 유사한 조직을 만든다 겉으로 보면 아주 은혜스러운 듯한 글을 올리면서 유혹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메일이나 대화실을 통해 집요하게 자신들을 선전한다. 이들은 양문회라는 곳을 통하여 이현래목사의 책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 책들을 보내주기도 한다.
이들이 올리는 글은 전부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의 책, 혹은 이현래목사의 글이다. 마치 고승의 선문답처럼 "사람은 성육신을 해야 한다"는지 "하나님의 실재에 거하여야 한다"는지 "하나님은 육체를 가짐으로 완전하여졌다"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글을 올리는데, 이들의 사상을 파악하게 되면 이들의 글의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또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접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이현래목사의 설교가 알아들을 것 같으면서 완전히 이해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설교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에 관한 지식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양태론이란 삼위일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이들의 조직은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에 있으며 가정예배 중심으로 소조직화 되어있는 곳도 있다.
관련교회명: 서울.부산(이정자).광주(김우성).대전(최광숙).울산(황경연).경주(김오현).구미(박주백)인천 마산(권석일),문경(노성준),목포(정순구).순천(박은용),안양,영주(박종규).일산(장용성).정읍(강형석)부천 제주(박영호).청주(박귀순).충주(최성일).천안(이경락).춘천(이성국).포항교회(박무석) 뉴욕(권도상) 아틀렌타(이봉균).LA(최활수)워싱턴(배석규)케나다(김치헌).독일(김무룡)영국(이동신)
# 이중적인 대구교회:
이들은 이미 1996년도에 컴퓨터 선교회(하이텔)에서 문제가 되어 공개토론회를 컴선사무실에서 갖은 적이 있다. 공개토론회에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용어상의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고 수정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며, 다시는 자신들의 모임에 오라는 선전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며, 일방적으로 하표사의 사상이나 주장을 올리지 않겠다고 이미 약속을 하였다. 그 공개토론회의 우리측 참석자는 본인(이인규)과 강세창목사(장로교)이었다. 그리고 하표사측 참석자는 김치현이라는 젊은 목사(현재 대구교회 캐나다교회에 있음)와 당시 하이텔 하표사 시삽이었던 김상도이었다.
본인과 강세창목사가 그들의 이상한 점을 직접 예를 들며 추궁하자, 그들은 단지 용어가 다를 뿐, 교리나 사상은 일반교회와 동일하다고 변명하였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차후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함으로 공개토론회가 싱겁게 끝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도 그후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계속 하이텔 컴선에 그들의 글을 올렸고, 자기들의 모임에 오라고 선전하였다.
더욱이 이 공개토론회가 끝난 후, 그들의 동호회에서는 "아주 잘했습니다. 우리를 알릴 필요가 없지요"라는 글이 올라옴으로서 그들이 위장하였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즉 이들은 외부적으로는 자신들의 사상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위장하며 숨기고 조작하기도 하는 이중인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이단들과 같다. 이 대구교회를 다녔던 한 증인이 있었는데 이 증언을 살펴 보자. 이 기사는 교회와 신앙의 장운철기자가 직접 증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교회와 신앙지에 기재되었던 것이다.
- 한번은 교회가 비좁아 옮기려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장로님이 반야월에서 대구교회에 온다고 했어요. 그 때에 대구교회에서는 주님,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비롯하여 평상시 간증하는 스타일을 자제할 것을 지시한 적이 있지요."
교회가 좁아 다른 교회의 어떤 장로가 대구교회를 보러 온다고 하자, 이 목사가 교인들에게 자신을 주님, 그리스도라고 부르지 못하게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자신을 주님이나 그리스도로 부르는 것을 그 장로가 보면 그 교회를 이단이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 장로가 왔는지 안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 장로가 왔다면 그날의 예배는 목사를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며 일반 교회와 유사했을 것이라고 추측이 간다.
또 이 교회의 목사설교테잎이 그곳을 참가한 사람으로부터 본인에게 전달된 적이 있다. 그 테잎을 들어보니, 본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 우리가 컴선의 열린문에 등장함으로 우리의 정체가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하니 여러분들은 각별히 조심하라"
그리고는 그 목사는 "특히 하이텔에서 감리교회의 이모권사를 특히 주의하라"고 예배 중 광고시간에 본인에 대한 주의사항을 말하였던 것이다. 왜 진리와 실재가 있다는 대구교회에서는 외부적으로는 감추고 조심하여야 하는가? 하나님이 된 사람들과 그리스도가 있는 교회는 자신을 위장하고 감추며 거짓말을 하는가? 이들의 이중적인 인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대구교회를 출석하다가 그만 둔 증인들은 하나같이 대구교회의 교인들에게 "더이상 감추지 말라"고 증언하고 있다.
# 양태론적 삼위일체:
이것이 이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이론이다. 이들은 지방교회의 위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학을 추종하고 있으며, 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하나님의 실재"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 "인간은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육체를 가짐으로 완전해진다" "과정을 거치는 영" "그리스도를 누리자"는 주장은 모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모방한 것이고, 이들은 이러한 주장에 이현래라는 개인의 풍유적인 성경해석을 혼합하여 매우 위험한 사상을 갖고 있다. 결국 이들은 물과 수증기, 얼음같은 비유로서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를 주장하는데, 엄격히 구별하자면 변형된 양태론으로 계승설이라고도 불린다. 즉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예수로 오셔서 직접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인데 한 인격의 하나님이 변화하여 계승되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 계승된 부활의 영이 인간의 몸과 연합하여 인간이 하나님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말하는 "인간은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거나 "하나님은 육체를 가짐으로 완전해 진다"는 주장 혹은 "과정을 거치는 영"이라는 주장등이 바로 그것이다. 양태론에서는 구약의 성령(하나님의 영)이 신약의 성령과 동일하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양태론에서 신약의 성령은 예수 부활후에 이 세상에 처음 나타나는 영이기 때문이다.
정통신학에서 삼위일체는 본질적으로는 한 분이시지만, 인격적인 점에서는 상호관계가 가능한 구별된 삼위라고 가르친다. 삼위는 본질적인 점에서 하나이고, 하나의 신성을 가졌지만, 인격적인 점에서는 세 인격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성부하나님이 성자를 파송하고, 성자와 성부는 성령을 파송하기 때문이다. 또 성자예수는 성부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무엇보다도 성경은 삼위간의 인격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부도 하나님이며, 성자도 하나님이고, 성령도 하나님이지만, 성부는 성자는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다. 정통신학의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시다. 그러나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며, 성령도 하나님이시고 각 위는 모두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각 위는 인격적으로 상호교류하며 서로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본질적으로 말할 때에는 한 분이라고 말해야만 한다.
반면에 세 본질을 가진 세 분의 별도의 신이 존재한다고 하면 삼신론이 되며, 한 인격이 시대에 따라서 세가지 형태로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양태론이라고 하는 이단적 주장이 되고 만다. 양태론은 하나님이 직접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기 때문에 성부수난설이라고도 불리며, 양태론은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쳐진 예수님과 그 제물을 온전하게 받으신 하나님의 인격적 구별이 없어지기 때문에 "대속적인 개념"이 부정되어진다.
또 양태론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간의 인격적인 교류와 관계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본인이 교회에서는 권사이며, 회사에서는 사장이고, 가정에서는 가장이 되어진다는 비유와 같다. 이와 같은 한 인격의 세가지 형태는 세 형태간의 인격적인 교류나 상호관계가 없기 때문에 모순이 된다.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책을 직접 인용하여 비교하여 보자. 그들은 한 하나님이 세 단계를 직접 거쳤다고 주장한다.
-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처녀의 태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아홉달 동안을 머무셨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인성을 그분의 피난처와 거처로 취하셨다. 분명히 그분의 성육신은 그분의 과정이었다. 두 번째로 그분은 삼십삼년 반이라는 인생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이 땅에서 생활하셨다. 이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세 번째로 그분은 죽음 안에 들어가서 무덤과 음부를 포함한 죽음을 통과하였다. 네 번째로 그분은 삼일후에 사망과 음부를 걸어 나오셔서 부활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 분의 죽음과 부활 또한 하나의 과정이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인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52-53쪽)
- 첫 번째 영은 생명주는 영이 되기 위하여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자신"이다. 이 영은 최종 완성되신 삼일하나님이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인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51쪽)
- 이 놀라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분배를 성취하기 위해 <친히 두 단계>를 취하셨다. 성육신에 의해 그 분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의 사람,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또 하나의 단계 인 부활을 취하셨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더 전진된 어떤 것이 되셨다.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큰 비밀. 19-20쪽)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하나님 자신이 직접 십자가에서 죽으셨고(성부수난설이라고 불림), 부활하여 살려주는 영(성령과 다르다고 주장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살려주는 부활의 영이 하나님의 최종완성단계라고 주장한다. 예수와 부활의 영은 하나님의 자신의 단계적 과정일 뿐인 것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승계설"이라고 불리는 변형적 양태론이다. 하나님 자신이 예수로, 하나님 자신이 죽고 부활하여, 예수가 성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 삼위일체란 가장 어려운 신학적 이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을 경험한 사람에겐 너무나 쉬운 이치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고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다. 그리고 이 생명은 그 자체로 영원하기도 하다. 물방울 이론을 주장한다고 했는데 웃기는 이야기이다. 하표사에 이론은 없다. 이런 식으로 이론화하고 교리화해서 비난을 하기에 할 수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답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방울의 비유로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하표사엔 이론이 없다. 그 때 그 때의 간증과 계시가 전부이다.(대구교회)
하표사에게 이론이 없으며 간증과 계시만이 있다? 천만에 말씀이다.
한편으로 생각할 때에 이론이 없다는 것이 맞기는 맞다. 그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모방하는 것이니까 그들에게는 별도의 이론이 없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교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내부적으로는 양태론적 승계설이라는 변형적인 양태론이라는 교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다. 대구교회의 이론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교리와 사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들은 분명한 신학과 사상, 교리가 있으며 더욱 더 배타적이다. 그들은 양태론적 삼위일체를 따르며 계승설을 믿고 있다. 그러한 빗나간 양태론은 다시 신인합일이라는 결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이 말하는 성육신이란, 성령이 내주하면 사람이 성육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부활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는 지방교회가 말하듯이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성육신의 첫 샘플이 되어진다. 만일 그들에게 교리와 신학도 이론도 전혀 없다면, 일반 교회의 삼위일체론도 모두 인정을 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들이 일반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체는 그들이 갖고 있는 신학과 교리가 일반 교회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증거를 말하여주고 있다. 과연 하나님은 단계와 과정을 거쳐서 스스로 변화하고 계승되어져 가는가? 성경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함이 없으시다.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 지리니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히1:10-12. 시편102:25-27을 인용)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3:6)
# 그리스도:
이들은 그 목사를 실제로 "주님" "큰 빛"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그 목사가 바로 성육신이 된 하나님이라고 그들은 믿기 때문이다. 이 점이 대구교회의 중요한 사이비성이다. 한 증인에 의하면 이들은 목사의 생일날에 맞추어 성탄절을 보낸다고 한다. 그 목사의 음력생일이 12월말경에 돌아오는데, 예를 들어 그 목사의 음력생일이 양력으로 12월 22일이면 이들에게는 그 날이 성탄절이라고 한다. 이현래목사가 이들에게 그리스도이고 주님이기 때문이다.
장운철기자가 이것에 대해 이목사에게 질문하자, 교인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교회의 글을 보면 "주님을 만나러 오라" 든지 "성육신이 된 하나님을 만나러 오라"라고 말하고 있다. 전에 통신상에서 이들과 토론을 할 때에, 본인이 그리스도가 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하고 물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이 "몇 명이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성경에 과연 그리스도가 되라고 말하는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5)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 막13:21)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6)
# 예배:
이들은 예배시간에 성경책을 갖고 오지 않는다.
교회와 신앙의 장운철기자가 이들을 직접 취재하였을 때에, 이들은 성경책을 가지고 온 자가 몇 명뿐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찬송가도 우리와 전혀 다른 가사로 부른다. 그 이유는 찬송가 가사가 자신들의 교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지방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삼위하나님에 대한 찬송, 십자가 대속에 의한 찬송, 천국에 대한 소망..... 당연히 이들이 부를 찬송은 없는 것이다. 이들의 예배는 목사의 설교, 그리고 교인들의 자유로운 간증이 있다. 이 간증 시간에 목사를 찬양하는 자들도 있고, 자신의 신앙에 대한 간증을 눈물을 흘리며 하는 자들도 있어서 이들은 스스로 은혜를 받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이 자유로운 예배와 간증시간이 젊은 청년들에게 미혹될만한 요소로 작용된다고 본다. 또 이들은 예배 중 대표기도는 물론이고 기도시간이 없다. 한 참석자가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 옆에 있는 지방교인에게 물어보니 "이미 하나님의 생명에 거하는 자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 이 점은 교회와 신앙의 장운철기자도 지적한 바와 같으며, 세 명의 증인이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은 왜 성부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는가?
# 구원관:
이들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살수 있다고 주장하며 구원은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이들은 구원관, 천국, 지옥, 부활의 개념이 우리와 전혀 다르다. 이들이 말하는 부활은 거듭남을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대구교회의 교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구원의 개념이 다르며 사후 천국과 예수 재림등을 부정한다. 이것은 지방교회와 유사하다. 다만 지방교회는 모호하게 양면적인 개념을 말하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대구교회는 보다 노골적이다. 예를 들면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옥은 없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도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책을 읽어보면 같다. 이들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위 신인합일론이다. 그것이 이들에게 거듭남이고 천국이고 부활이고 재림이며 구원이다.
-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죽으면 주 예수를 믿는 한,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일단 죽으면 그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여러분이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왕국, 315쪽)
-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입니다. 사탄이 한 최대의 거짓말 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교도적인 거짓 사상이 버젓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믿음 생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참된 성도들 생각 속에서 말끔히 씻겨져야 할 누룩인 것입니다.(지방교회)
지방교회 역시 천당을 부정한다. 이교도의 가르침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교도였는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
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2-6)
바울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불쌍한 자라고 말하면서 죽은 자가 부활함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교도였는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in this life only)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19-22)
요한은 이방종교를 가진 자였는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2-24)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8-10)
정통신학이 말하는 천국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실제적인 신정정치의 왕국. 둘째는 미래적이고 영적인, 종말적 개념의 실체. 세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순종하는 개인적인 성도로 구성되는 내면적인 의미
지방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사상을 가진 지방교인들로만 구성된 지방교회를 천국으로 봄으로서, 위에서 언급한 천국의 세 번째 개념만으로 그것도 오직 지방교회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예 두 번째의 천국의 개념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살펴보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8)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10:30)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계6:9)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20:4)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 몸의 구속을 말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23)
대구교회를 2년간 다녔던 한 증인은 이현래목사가 "죽으면 가는 천국은 없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 성육신:
젊은 청년들과 초신자들에게 있어서 성육신에 관한 주장이 대구교회가 주장하는 것 가운데 가장 새롭고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되어질 것이다.
- 예수만 성육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에 속은 것이다. 모든 인간은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약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창조의 목적인 것이다.(대구교회 이현래)
대구교회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육신이란 무엇인가?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사람이 성육신이 되어야 하는가? 성경에 의하면 성육신이란 태초부터 계신 독생자 예수께서 낮고 낮은 비하된 종의 모습인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
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
대구교회는 하나님이 육체를 가짐으로서 이 성육신이 하나님보다 더욱 완전하여졌다고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이 성육신은 하나님과 동등됨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진 것이다. 대구교회의 모든 교리가 위트니스 리나 워치만 니에게서 비롯되었을 뿐, 성경에 그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만 추종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진 비하적 신분이 곧 성육신이다. 그런데 대구교회는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더욱 완전하여졌다고 주장한다.
또 대구교회는 사람은 예수가 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는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이 충만하였던 요한(눅1:15)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요한은 대구교회의 주장과 왜 다른가?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1:20)
바울이 루스드라성에 가서 앉은뱅이를 걷게하는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왔다고 말한다.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행14:11)
대구교회 이현래목사의 주장대로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면, 세례요한은 왜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했고, 바울은 왜 자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온 신이 아니라고 말했는가? 요한과 바울은 사단의 속임수에 빠진 사람들인가? 성경 어디에 사람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는가? 사람은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는가? 사람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했는가? 바울은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였는데,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옷을 찢고 소리를 질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행14:14-15) 과연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가? 뱀이 무엇이라고 유혹하였는가를 살펴보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였다. 대구교회 이현래목사는 "인간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도를 터득한 고승과 같이 선문답과 같은 그들의 주장이 단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오직 대구교회에만 하나님의 형상이 실제로 있고, 하나님의 인격이 있으며, 하나님의 실재가 있으며 그리스도와 성육신이 된 주님이 실제 인격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라.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성경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되라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뱀과 사단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대구교회의 주장은 성경과 모두 반대이다.
대구교회 이현래목사는 다음과 같이 같이 주장한다.
- 하나님의 형상이 독생자로 나옴. 이것은 하나님 자신보다 더 완전하다. 왜냐하면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니까...
- 여호와 하나님은 육체가 없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된 그것이 바로 생명이다. 이것이 복이고 영생이고 천국이고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들어보자
-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쪽)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므로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인 우리는 그분과 똑같다. 그러나 그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높혀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위트니스 리의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5쪽)
- 바로 그 때 그들은 안팍으로 - 생명과 본성과 기질과 몸의 형태에서 -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4쪽)
-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쪽)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예수와 믿는 성도의 구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일반교회가 말하는 예수를 닮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이 이들의 용어와 어떻게 다른가?
이것을 정리하여 보자.
첫째: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째: 살려주는 영과 성령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셋째: 양태론적인 주장, 하나님 자신이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넷째: 한 인격, 한 실제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는 이단적 기독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여섯째: 양자와 독생자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일곱째: 상호관계가 가능한 구별되는 인격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 이원론:
이들은 세상을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이라고 하는 이원론적인 존재론을 갖고 있으며 누가 인간을 차지하느냐가 전쟁의 승리의 관점이라고 설명한다.
- 세상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며 누가 인간의 몸을 빼앗는가 하는 것이 승리이다. 마치 전쟁에서 육군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대구교회)
이 사상은 "존재론적 이원론"이라고 하는 위험한 사상이다. 하나님과 사단을 이원적인 두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단이 하나님에게 이길 수도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을 사단과 하나님의 싸움으로 보는 견해인 것이다. 성경은 예수를 믿으면 사단에게 능히 이김을 말하고 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읽어보면 대구교회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위트니스 리의 왕국, 218쪽)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 성경관:
이들은 성경은 단지 하나님을 아는 책이라고 정의하며 특별한 영적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하나님의 실체에 거하는 자. 혹은 하나님의 생명에 거하는 자라고 하는데, 결국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의 이단적인 견해와 교리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들의 교리는 성경이 중심이 아니라,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중심일 뿐이다. 이것을 깨달아야만 거듭나고 부활이고 생명에 거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니 이것이야말로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교리와 신학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들은 기독교는 2000년간 실패를 하였다고 주장하며, 장로교는 그동안 이단만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고, 이들은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자는 다른 하나님을 만나고 온 자라고 한다. 즉 대구교회는 2000년간의 기독교와 다르고, 장로교와 다르고,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과 다르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즉 이들은 기존교회를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들은 무교회. 무신학. 무형식이라고 말한다. 무교회, 무신악학 무형식이란 일반교회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그들 나름대로의 신학과 사상이 있으며 지방교회의 교리와 거의 동일하다. 이들은 기존교회의 세례. 성찬등의 성례를 부정하며 주일의 개념도 부정한다. 그들의 삼위일체는 양태론이며 그들의 부활과 영생과 재림은 하나님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무신학, 무교리, 무형식이 아니라 다른 신학, 다른 교리, 다른 형식을 갖는 것이다. 일반 교회의 사상과 교리, 신학은 성경에서 비롯되었고, 대구교회의 사상과 교리와 신학은 성경이 아닌 개인으로부타 비롯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교훈을 얻으려거든 성서를 보지말 것. 성서에서는 얼마나 좋은 교훈들이 많은가. 그러나 그것들이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무엇이 다른가! 모두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대구교회) 그래서 이들은 "성경만으로 알 수가 없으며 성경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
# 배타적 교회관:
다른 이단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대구교회만이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기독교 전체를 비난하고 장로교는 그동안 이단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들과 유사한 지방교회도 실망하였다고 이현래목사는 말한다.
- 2000년간 기독교는 실패했다.
-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오는 것은 다른 하나님을 만나고 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지방교회의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이비 저질스러운 이단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오류가 있어서 이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를 말하므로서 자신이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위트니스 리가 생각하는 일반 교회관은 무엇일까?
- 주 예수께서 돌아오실 때 거짓 믿는 이들은 단으로 묶어져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가라지들을 종결시키는 불 속에 던져 질 것이다.(왕국, 563쪽)
-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유대교는 모두 사단의 조직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인 '지방교회'를 해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몸안에 모든 분파와 교파 그리고 분리를 일으킴으로써 또 하나의 조치를 취했다..... 하나님께서는 요즈음 회복을 위해 운행하고 계시다. 하나님의 회복의 방법은 무엇인가?..... 온전한 연합을 통한 회복이다. 이 세가지가 우리 안에서 회복되지 않는 한 우리는 온전하고 만족한 교회생활을 할 수 없다."(교회에 대한 사단의 전략, 1977년 생명의 흐름사 간)"
# 결론:
이제 이들의 선문답같은 특이한 주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 앞에서 설명한 이들의 사상을 이해하였다면, 이제는 이들의 사상이 모두 이해가 갈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사상과 교리는 단순하다. 이들의 교리와 사상중 중요한 두가지는 바로 양태론과 신일합일론이다.
양태론 : 하나님이 직접 예수로 왔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부활의 영으로 과정을 거쳤다.
신일합일론 : 사람이 생명의 영을 받아들이면 성육신이 되며 곧 하나님이 되는데 이것이 부활이고 천국이며 영생이다.(이들은 구약과 부활 전의 성령은 부활후의 영과 다르다고 주장함) 결론: 이것은 성경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영적 깨달음으로 얻게 된다.(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게 되면 이들의 주장이 성경과 다르며 성경과 서로 모순으로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대구교회로 오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하나님의 형상을 만나러 오라. 하나님의 인격이 있는 교회로 오라
- 참교회는 사람이 만든 문이 없어야 하고 성경에서 생긴 문도 없어야 한다
- 그러니 아들을 아는 것이 성경을 아는 것이다. 다른 목적으로 성경을 알려고 하면 전부 헷갈린다. 우리 인간의 제한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제한받는다.
- 하나님의 실재를 만나러 오라. 말씀이 성육신이 된 사람을 만나러 오라
이현래목사는 스스로 책방에서 워치만 니의 책을 읽고 자생적인 지방교회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지방교회와도 차별화를 말한다. 즉 대구교회 자신만이 문과 사상과 교리가 없는 참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교회를 만들었으며 또다른 교리와 사상을 만든 것이다. 또한 그는 성경의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라는 개인사상을 추종하여 교회를 세운 것이다.
인간이 우상을 숭배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숭배하는 것이며.....
둘째,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대구교회 이현래목사는 이 두가지를 모두 선택하였다. 그의 주장은 매우 기독교와 유사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기독교가 아니었다. 혹간 사람들은 삼위일체와 같은 교리는 사람들이 만든 인위적인 것이 아니가? 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교회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초대교회부터 있었던 이단들의 주장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교리임을 안다. 초대교회부터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소리높히기 시작하였다.
예수는 피조물이라고 하였고, 그리스도의 신성은 나사렛예수라는 인간에게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성경을 정리하고 요약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졌던 것이다.
굳센 믿음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일률적인 테두리 안에서 습관화가 되어 교회를 출석하던 초신자, 즉 특히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하는 청년들에게는 이현래목사의 주장은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며 그것이 유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평범한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진리는 오직 성경 안에서 추구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지키라고 한 것을 지킴으로, 거래를 하는 것으로 이 갭을 메울 수 없는 것이다. 성육신이 돼야 한다. 성육신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말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독생자는 오직 유일하게 그것이 그것으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독생자로 나옴. 이것은 하나님 자신보다 더 완전하다. 왜냐하면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니까. (#13339, 김상도 sibjaga )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간증이다. 사람의 모든 말은 그 사람의 간증이고 그 모든 행동은 그 자신의 표현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간증이다. 하나님은 빛으로, 궁창으로, 땅으로, 식물로, 해와 달과 별들로, 물고기와 새들로, 동물들과 그리고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간증하고 있다. (#12721, 김상도 sibjaga )
교훈을 얻으려거든 성서를 보지말 것 (11/12 22:20 47 line)
성서에서는 얼마나 좋은 교훈들이 많은가. 그러나 그것들이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무엇이 다른가! 모두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12719, 김상도 sibja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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