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도덕적 진공과 영적위기..기독교연구는 주요 방책
글/ 장 폴 위스트 교수
번역/ 문전섭(예장 통합총회 파송 싱가포르 선교사)
저변 층의 연구에 대한 전망들
해방 이후 및 현대의 연구는 정부 통제와 엄격한 검열로 인해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2003년 10월 정부 시인하의 모임은 학자들이 점차 현대 종교들에 대한 현지 조사에 더 많은 자유를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2일간의 행사에 참여한 13명의 학자들은 '현대의 종교들과 경험적 연구의 방법론'을 주제로 토의하기 위해 북경에서 만났다. 이 비공식적인 모임은 두 가지 주제가 중심을 이뤘다. 첫번째는 여러가지 조사방법론의 찬반에 대한 발견과 토의에 대한 제시이며 두번째는 사람들의 신뢰와 지역 종교지도자들의 협력, 그리고 지역 관리들의 지지를 얻는 방법에 대한 전략들과 생각들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 회합에서 제시된 7개의 논문들 중, 4개는 특별히 기독교를 보는 것이었고 하나는 중국 불교에 대하여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다른 두 개는 신앙의 새로운 표현들 및 실제들을 연구하였다. 많은 문제들이 숙고되었는데 모든 논문들은 어떤 식으로든 급변하는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도전들과 시장 경제의 도래를 다루었다. 이런 새로운 상황이 농촌 및 도시의 한족 그리스도인들과 이종족의 소수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종교적 실제들에 긍정적,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급속한 경제적 변화와 사회적 혼란이 그들 개인의 삶에 의미를 주는 종교적 표현을 발견하기 위해 기독교인이 아닌 새로운 도시 거주자들을 어떻게 인도하였는가를 토의하였다. 예컨대, 한 학자는 홍콩 경계선을 바로 건너 쉔젠의 특별 경제구역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한 때 잊혀졌고 소멸해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민중 종교의 요소들에 대한 새로운 영적 의식의 발흥을 문서화했다. 이 도시 거주자들은 개인적인 의미와 영적인 자양분의 한 원천으로서 그런 요소들을 그들의 현대적인 삶에로 병합시켰다.
이러한 연구자들과 최근 점점 더 많은 중국의 학자들이 중국에서의 종교의 현 상황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에 중요성을 두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분야의 보도는 아직도 너무 산만하고 범위가 매우 제한된 초기 단계에 있다. 그들은 좀더 건설적인 설문들과, 단지 일반적인 가정 보다는 오히려 실제적인 자료에 기초된 분석들에 좀더 많은 포괄적인 방법론들이 필요하다는데 합의하였다. 많은 연구들은 또한 1949년 해방의 시기보다는 더 뒤로 보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유익을 얻곤 한다.
중국의 학자들은 경험적 연구들의 결함들 모두가 연구자들의 경험 없음과 빈약한 훈련에서 생긴 것은 아니며, 흔히 관련 정부 사무실로부터의 협력 부족에서 생긴 것이라고 재빨리 지적한다. 현재, 저변의 연구들은 아직도 이러한 활동들이 흔히 정보수집의 비밀자료로 분류되어 제한돼 있음으로 자유롭게 일어날 수 없다. 신자들의 면담에 기초된 어떤 연구든 조사될 지역과 설문의 체제, 내용, 그리고 면담될 사람들의 명단에 대한 사전 승인을 요청한다.
지난 토의에서는 지역 관리들이 친절하고 적응하기 쉬운 곳에서 이같은 조치들은 단순한 형식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다른 분야들에서의 연구자들은 사실의 공적인 왜곡과 위협의 말과 조취에 부딪힌다, 더욱이 종교 출판들에 대한 당국자들의 엄격한 통제는 부적합하게 여겨지는 연구의 전달을 막음으로써 자료 분석의 학문적인 자유를 계속 탄압한다.
2003년 10월의 모임에 회집하였던 학자들이 그들이 직면하였던 어려움들과 장애들로부터 오는 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어떻게 함께 나누었는가를 보는 것은 좋았다. 그 토의는 특별히 중국공산당 연합전선 사업부서 대표의 참여로 인해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사람은 어느 때에나 조금도 토의를 통제하려거나 상부로부터의 지시들을 시달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었다. 동시에, 학자들의 표현에 억제되지 않은 자유가 있었다.
경험과 해결, 또한 제안들에 대해 솔직한 나눔의 대화는 현대 중국 사회에서의 연구조사에 좀더 친밀한 분위기를 육성시키기 위한 양측의 진정한 노력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교와 이슬람과 티벳 불교에 대한 논문들의 부재가 이들 종교들에 대한 심도있는 현재의 연구에의 부족에 기인한 것인지 혹은 이 분야들에 대한 전문적인 학자들이 참석하지 못한 다른 약속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었다. 서부 중국에서의 이슬람, 티벳 불교의 경우에 있어서 만약 종교당국자들에 대한 정부의 억제와 함구령이 그러한 연구를 거의 불가능하게 했다면 우리가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1924년 3월 아시아 연구들을 위한 협의회의 연례모임에서 오늘날 '중국에서의 기독교 사회에 대한 현장 연구'에서 '통찰들과 의의들'은 토착적인 저변 연구에 대한 국제적인 노출을 주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발표자들 중 두 사람이 이 종족의 중국인이었던 반면에, 그들은 중국의 시민들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들과 그 석좌는 미국 대학교들에 소속되었다. 위에서 말 한대로 어떤 페널리스트도 인민 공화국 안에 있는 학문 단체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것은 큰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극히 민감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대 종교 문제들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므로, 중국 정부는 중국 본토의 연구자들로 하여금 외국의 국제적인 모임들에서 그러한 제목을 토론하는 것에 덜 의욕적이다.
만약에 그들 나름대로의 연구를 행하는 토착 중국학자들이 많은 장애들을 갖는다면, 외국 학자들이나 혹은 지역 및 외국의 학자들은 비 중국의 시민들의 실험적 연구조사에 대한 정부의 규제로 인해 한층 더 어렵다. 1998년 중국공산당의 중앙위원회 사무소와 국가협의회 사무소가 국가 안전부에 외국 학자들에 의해 후원되고 행해진 모든 저변의 연구조사를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비밀문서를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그 때 이래, 중국에서의 모든 학문 단체들은 외국인 개인이나 혹은 단체에 의해 실시되는 조사연구들을 국가 안전부의 지역 부서에 제출하는 것이 요구되어왔다. 그 부서는 설문조사문항들을 개정하고, 그것들이 실시되는 방법들을 감독할 뿐만 아니라, 수집된 자료들을 검토하고 외국 연구자들에게 발표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것이다.
분명히 현대 문제들에 대한 중국 및 외국 학자들의 협동을 제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 문서는 처음에는 낙담하게 하는 결과를 가졌다. 국가 안전부가 책임을 맡은 이래, 주변을 맴돌려고 노력하는 어떤 사람이든 국가 기밀을 퍼뜨리거나 훔치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의 경우가 흔히 그런 것처럼 이 문서의 시행은 대부분은 국가 안전부의 지역 대표의 성향에 의존하여 한 지역과 다른 지역간에 그 사정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우리가 신문보도를 통해 너무나 잘 아는 바와 같이 외국인과 중국인 연구자들의 투옥에 대한 위협은 매우 실제적으로 남아있다.
결론
이런 비관주의적인 어조로 끝내는 것은 그릇된 일일 것이다. 종교에 대한 중국의 학문적인 저널들과 책들은 정부의 검열로 인해 지나치게 명시하는 것을 막고 있다할지라도, 민감한 문제들을 취급하고 또한 실제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광범한 암시를 주는 학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설명된 한계점에서도 이러한 연구들은 흔히 정직하며 철저하다. 행간의 이해의 절실성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더욱이 기독교를 연구하는 한편, 여러 중국의 학자들은 기독교 안에서 현대 중국 사회에 요청된 도덕적인 코드와 이타적인 원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가치평가는 도덕 가치들의 전통 유교 체계의 붕괴와 현대화의 공세 하에 공산주의 윤리의 침식과 날카롭게 대조되어 있다. 근대화의 과정에 의해 야기된 물질적, 과학적, 경제적 진보는 도덕적 쇠퇴 및 부패의 만연, 금전의 이기적인 추구와 환경의 악화와 같은 엄청난 악들과 손에 손을 잡고 가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인 이론들은 현 시대를 종교가, 특히 기독교가 현대적인 영적 및 문명화된 중국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할 호기로 보는 것이다. 중국의 사회는 도덕적인 진공을 중심으로 영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기독교에 의해 제시된 것과 같은 그런 도덕성과 윤리의 코드는 동시에 근대화의 과정을 강화시키고, 또한 근대화의 부정적인 결과들을 지우는 활력 있는 대로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문화적인 기독교인들'이라는 그 애매한 표현의 사용을 둘러싼 논쟁에 연루됨이 없이, 우리는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기독교적인 가치들, 삶, 세계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메시지를 획득한 중국 지성인들의 상당한 그룹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실제로 회심하고 교회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대다수는 교회에 속하거나 혹은 회심 자들로 동일시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다른 종교적,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가치를 배격함이 없이 기독교의 도덕적인 가치를 칭송하고 채택하는 친구들로서 그들 자신들을 동일시한다. 주은래에 의한 문장을 사용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차이들은 보류하는 한편 공통적인 지반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단지 수년 전 누가 서양에서 기독교 가치들의 채택을 지지하는 비기독교 중국인 학자들이 종교 연구들의 분야에 선봉에 나서리라고 예견할 수 있었단 말인가?
* 글쓴이에 대한 소개 :
장 폴 위스트 교수는 북경의 명문대학인 청화대학교 초빙교수로 중국에 관한 다양한 서적을 저술한 중국 전문가다. 위 글은 최고의 선교 학술지로 평가받는 인터내셔날 브러턴 어브 미셔너리 리서치(IBMR,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에 금년 초 기고된 글이다.
역자 문전섭은 순천중앙교회에서 목회를 했으며, 대전 장로회신학교 교장, 통합 총회교육부 총무를 역임한 후 러시아 선교사로 모스크바장로회 신학교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싱가포르 선교사로 사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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