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목회자 영적 회복 없이는 교회 미래 없다

수호천사1 2009. 11. 10. 11:26

목회자 영적 회복 없이는 교회 미래 없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또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용서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용서받은 사람들에게 그 용서와 구원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고 그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며, 또한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자비로우신 은혜를 증거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 오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이룸에 있어서 우리는 오직 성령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의 고민은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역사 없이 결코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 없이는 어떤 사람도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씀 사역은 처절한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처절한 싸움에서 인간적인 책임이나 인격, 심지어는 자연적인 지성의 능력 같은 것들로도 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사역이 영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ey)는 이 점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학자일 수도 있고 목사일 수도 있고 교회 행정가일 수도 있고 또는 재치가 번뜩이는 연설가일 수도 있고 사회 개혁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영적 인식이 사라짐

오늘날 우리는 목회 현장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목회 사역을 영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싸움에 관한 긴박한 위기 의식이 사라지는 곳에 언제나 나태와 안일이 깃들이며 도덕적인 타락은 바로 그것들의 둥우리에서 깨어나는 새와 같습니다. 이제는 영적인 전쟁에 대한 원색적인 설교들이 사라지고 현대인의 지성을 거스르지 아니하는 알량한 도덕적인 설교들이 강단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한 도시를 영적으로 변화시키시는 일들을 성취하실 때는 반드시 자신의 복음 사역이 치열한 영적 전쟁임을 인식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긴박감을 가지고 더욱 거룩한 하늘의 영력을 사모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강단을 지키고 있을 때 마귀는 결박되었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목회 현장이 이루어 졌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능력으로

저는 몇 해전 여름 엄청난 수해가 휩쓸고 지나간 철원 지역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물이 산맥을 타고 흘러 내렸는지 산은 골짜기마다 패이고 승용차 만한 바위 덩어리들이 수류에 떠밀려 와서 계곡 가득히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대형 트럭들이 지나다니던 다리는 폭격 맞은 것처럼 절단되었고 불로도 녹일 수 없을 것같이 단단하고 우람한 철제 교각들이 흉측하게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습니다.

당시 그 고장에서 엄청난 물난리가 일어나던 날 밤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주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 물난리가 나던 날 밤, 개울에서는 밤새도록 천둥 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물에 떠밀려 내려 온 집채만한 바위들이 쉬지 않고 물결을 타고 굴러가며 다른 돌들과 부딪히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하늘의 권세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직무는 우선적으로 땅에 있는 사상과 변증하거나 말다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물이 바다를 덮는 것과 같은 거룩한 능력이 우리의 목회 현장과 복음 사역을 통하여 나타나 온 세상이 복음의 진리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학의 지식이 불붙고 우리의 복음 사역이 거룩한 성령의 능력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거역할 수 없는 진리의 힘을 이 패역한 세상에 보여주는 것만이 궁극적인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에게서 이러한 위대한 사역의 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

부패하고 안일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만큼 우리를 역겹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늘의 은혜로 그의 목회 사역의 동기가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능력을 사모하는 것은 단지 종교적인 탐심일 뿐입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일의 성공일 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서의 거룩한 소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대치할 수 없는 첫 번째 직무가 말씀 전파를 통하여 죄인들을 회심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엄숙하게 깨달은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씀 사역에 하늘의 위대한 능력이 깃들 수만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버릴 각오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역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과시, 간교한 인간의 방법, 육적인 매력 같은 것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암의 세력들은 그들을 무서워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단순한 증언 속에서 거역할 수 없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섬기는 그들의 외양과 나타나는 결실은 전혀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잘 것 없는, "미련한" 방법으로 위대한 열매들을 수확하였을 때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여 영광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부흥의 시기에 경험되는 일입니다. 지나간 세기의 부흥의 역사를 회고한 호러시우스 보너(Horatius Bonar)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가슴에 새겨 둘 만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들이 그러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굉장한 일들이 그러했다. 다양한 영적 각성들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성령께서, 당신이 쓰고자 하시는 인물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그러나 부흥을 반대하는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은 분명히 거기 계셔서, 마귀의 강력한 요새에 있는 사단의 성벽과 성채들을 밑바닥까지 흔들어 놓는 굉장한 역사를 일으키셨고, 심화시키셨으며, 확장시키시고 진전시키셨다"

피끓는 외침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지 인간일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없이 단 한 사람이라도 회심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풀 포기 하나 벌레 한 마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흑임의 권세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마귀의 손에서 탈취할 수 있을 것이며, 마른 뼈와 같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한 교회를 생명의 전당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목회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지 않는 방법이 성공하면 얻는 것은 서말의 가루일 뿐이다. 누룩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태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리석게도 성령의 능력을 불신하거나 믿지 못하는 쓸모 없는 목회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半소시너스주의(semi-Socinianism)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 로버트 홀(Robert Hall)이 외친 피끓는 울부짖음을 자금 우리가 들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같은 사람, 리챠드 백스터 같은 사람, 슈바르츠 같은 사람, 곧 서로 다른 지역에 살면서도 더 없이 탁월하고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무엇 보다도 성령의 능력의 도우심을 어린아이와 같이 의지하였던 사람들이다. 다른 한 편으로 성령의 이같은 도우심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믿지 아니하였던 자들의 목회에는 아무런 성과도 따르지 못하고 있다...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던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의 팔이 나타난 적이 있었는가?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름에게 비를 뿌리지 못하도록 명하신 밭에서 일하도록 내버려 두라...곧 하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목회는 곧 이단의 목회이다"

"영성목회"도 프로그램인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이것입니다. 목회자의 영적인 회복 없이는 영혼을 변화시키는 목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목회자의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지 아니하고 단지 기능으로써 목회 사역을 수행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래의 교회는 분재와 같은 지도자와 말라버린 묘목과 같은 교인들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영성 계발" 프로그램이나 소위 "영성 훈련" 같은 것도 결국 목회 사역에 있어서 목회자의 영적인 준비의 미흡함에서 오는 목회적인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전 시대의 은사 운동이나 성령 운동이 조국 교회의 영적 상황을 위한 타개책이 될 수 없었던 것 같이 동일하게 사라질 "상품 같은" 유행입니다. 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광야에 자신을 세우고 하나님의 진리와 대면하는 영적 수련을, 이 면에 있어서도 프로그램으로 대신해 보려고 하는 유혹에 빠져 조국 교회 목회 현장에 직업주의적 풍조를 더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영적 자질이 그런 식으로 대치될 수 있다면, 모든 선지자들과 영적인 인물들은 가장 어리석게 자신을 준비한 사람들일 것이고, 그 중 으뜸은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름길을 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름길은 실패하였습니다.

변화에 이르는 길

조국교회를 위하여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멈추고 있는 영적 성장이 재재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먼저 거룩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노가다" 목회는 "노가다"교인들만 양산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 영적 순례길에서 경험하는 아픔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목회를 통하여 교인들에게 기대하는 변화된 삶, 그 이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리의 말씀이 목회자인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허락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대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함으로써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모든 영적 경험은 불안할 뿐 아니라, 목회 사역에 진리의 빛이 깃들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신학적인 편견을 형성합니다. 무엇보다도 목회자인 우리 자신이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의 내용들을 체험하기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영적 목회를 말하기 전에 먼저 목회자가 영적인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 나무 아래 교인들이 깃들 수 있도록...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