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오늘날의 기독교 선교 (문진섭)

수호천사1 2009. 11. 8. 21:58

오늘날의 기독교 선교 



미국의 학자들인 제임즈 엥겔스(James Engels)와 윌리엄 다이르니스(Williams Dyrness)에 의한 책 "Changing the Mind of Missions"를 소개한 책 커버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세계는 초기 서방 선교사들이 바다들을 건너 항해하였던 이래 많이 변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천년이 동터오는 때에, 한층 더 큰 지구적 및 문화적인 변화들이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는 많이 구태 의연한 체로 남아있다." 이것은 아마도 기독교 선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그대로 요약한 말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선교는 복음을 전파하고 새로운 교회들을 외국 나라들에 심기 위하여 해외에 선교사들을 보내는 것이거나, 혹은 이러한 과정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면 그 외 어떤 것이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물론 아직도 오늘날 매우 많이 필요로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이것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엥겔스와 다이르니스의 비판에 대한 한 양상을 정확히 예시한 것이 될 것이다.

선교 적인 사고가 왜 이런 양태로 굳어졌는가에 대한 한 주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마태복음 20:18-20의 대위임을 해석하는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시작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복음전도에 주의를 집중하며,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이 "내(예수)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로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것을 포함하는 것을 주목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복음전도가 다분히 그리스도에의 믿음에로의 회심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개인사가 된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인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부적절한 것이 된다"

신약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메시지의 중심적인 주제이다 는 데 합의한다. 최근의 토의들은 우리가 대위임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로 시작함으로서 선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어떤 더욱더 명백한 이해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어 왔다. "하나님 나라"라는 구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생의 모든 국면에서의 하나님의 왕 적인 통치를 가리킨다. 사람이 예수를 구주와 주로서 받아드리는 때, 사람은 현생에서와 영원에서 자기의 삶에 대한 예수의 왕 적인 권위를 시인하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의 이름으로 쫓겨나고 질병들이 치유되는 때, 하나님의 왕 적인 권위가 생의 이러한 영역들에서 다시금 작용되는 것이다. 굶주린 자들이 먹여지고, 가난한 자들에게 집을 주고, 부패와 부 정의가 제거되고, 또한 공의가 땅들과 나라들에 널리 성행하는 때, 하나님의 왕권이 그러므로 말미암아 증가 적으로 행사되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선교를 다음과 같은 말들로 정의한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가 나에게 기름을 부어 가난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함이다. 그는 나를 보내 사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눈먼 자들에게 보게 함을 선포하고, 압제받는 자들을 놓아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려함이라."(눅4:18이하, 또한 7:18-23참조)

예수가 실천하고 가르쳤던 선교는 전체적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 실존의 모든 국면을 포함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생의 모든 국면에서의 그의 주되심을 재 확언하려고 의도하기 때문이다. 선교는 그래서 죄 있는 인간에 대한 예수의 복음전도 적인 부르심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더욱이, 수많은 사람들이 악마적인 권세와 질병에 속박되어 사는 세상에서, 선교는 또한 축귀와 치유의 기도를 통한 "표적들과 기사들"의 사역가운데서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약 10억의 사람들이 하루에 미국 돈 1$ 이하로 연명하는 곳에서, 선교는 가난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과 그리고 굶주린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커다란 불평등들과 부 정의와 끊임없는 사회적인 봉기들과 테러주의와 전쟁의 상황가운데서, 선교는 더 좋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필요로 된 사회 정치적인 변혁들을 야기 시키기 위하여 예언자적으로 우리의 살아있는 그리고 거침없는 발언과 관련된다. 그리고 서방 적 혹은 아시아적인 가치들에 대한 기존의 토론들의 와중에서, 기독교의 선교는 교회가 세계에서의, 특별히 가족과 매체들과 예술들과 학교들과 대학교들과 그리고 물론 인터넷에서의 문화적인 영향의 중심부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들을 놓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단지 개인적인 회심뿐만 아니고 또한 전 사회들과 그리고 나라들을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두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선교가 관련을 갖는 것이라면, 우리의 의제들과 우선순위들에 대한 재고가 분명히 필요로 되는 것이다. 우선, 진지한 주의가 지역적으로 복음전도와 해외에 교회 심기에 주어져야 하는 한 편, 기독교 선교의 다른 국면들도 또한 말하는 것이 필요로 한다. 더욱이,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제2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제자 만들기, 즉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성숙에 이르도록 돕는 그 과정에 쓰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성숙한 제자들이 진정한 영향을 만들기 위하여, 그들은 희생적인 그리스도인의 삶과 선교의 생애에 그들 자신들을 주어야한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남녀들을 투하하고 있는가? 오, 그런데...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떤가?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한다.

출처 : 인터넷 선교학술지

- 문진섭 목사 -
조직신학, D.Min
장로회신학대학(Th.B.)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Th.M.)
미국 Sanfrancisco 신학대학교 대학원(D.Min.)
대전신학대학 학장
러시아 선교사
현, 싱가폴 선교사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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