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토착화
- 안영권 박사(아세아 연합신학대) -
선교와 토착화라는 제목을 선택한 이유는 토착화를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다 루어 보기 위함이다. 선교학적 관점의 토착화는 전통신학의 관점에서의 토착 화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의 차이는 선교학적 관점이 순 수한 신학적인 관점에 비해 명백하고 실용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 토착화의 4가지 방해 요소
선교학에서 가장 유명한 이슈인 토착화를 그동안 많은 선교학적 토론이나 글 에서 다루어 왔음에도 내가 다시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많은 이유에서이다.
첫번째로 토착화에 관하여 쓰여진 글들이 너무나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경향 이 크며 실용적이지 못하다. 토착화는 복잡한 사고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어야 한다.
두번째로 많은 글들이 단순히 복음의 구체적인 부분만을 다루고 있음으로 인 하여 넓은 관점에서 보는 토착화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세번째로 토착화된 신 학이 토착화라는 이름 아래 신학적인 용어들을 정치적이고 사회학적 이데올 로기로 덧입혔다 라는 부정적인 평판을 받고 있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 신학 그리고 여성 신학 등 소위 토착화된 신학들의 주장은 모든 환경이 토착 화된 신학이라 하지만 압제적인 사회 문학적 구조 안으로부터 힘없는 자들을 해방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네번째로 토착화에 관한 토론들은 단순히 성 경적인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복음의 의미를 전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있지 만 진정한 토착화란 말씀의 의미를 전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가 선교 안에서 토착화라는 이슈를 고려할 때에는 교회사역을 넓게 보는 안목으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의 진수는 다른 문화 안에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신학적인 이슈들에 중점을 둔 경우 구체적인 문화의 배경 안에서 교회가 어떻게 토착화되는지를 보여주는데 실패했고 그 들의 문화 속에서 교회사역이 토착화되어져야 하는 필요를 보여주는 것에도 실패했다. 우리의 토착화에 관한 토론에서 추구할 것은 실용성, 교회사역중심, 사역 안에서의 토착화 개요, 정통적 성경적 증인 등 이 네 가지이다.
2. 선교와 토착화의 관계
모든 선교사들은 교회의 토착화 이슈를 마주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첫번 째로 어떠한 현대문화도 구약시대 또는 초대교회의 문화와 동일하지 않다. 그 러므로 현대 교회는 그 나름대로의 상황에 맞는 토착화를 필요로 한다. 두번 째로 모든 선교사들이 그들 자신들의 문화 안에 적응되어져 왔으며, 그 문화 의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개교회들은 접하고 있는 문화와 그들 자신 들의 신학으로 만들어진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선교사들은 그들이 속한 교회문화와 다른 새 문화로 보내어진다. 세번째로 선교사역은 선교가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수반되어지는 이상 토착화 작업을 피할 수는 없다. 서구에서 토착화되어진 신학이 선교지로 옮기어졌을 때에는 다른 세계관을 가진 새로운 토질에 맞게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네번째로 문 화는 항상 변화한다. 어떠한 문화도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것은 급변 하는 테크놀러지와 다른 분야를 볼 때에 분명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3. 토착화되어져야 할 교회학적 요인들
가. 성경적 진리를 전하기 위한 접속점의 상황
설명화사회적 또는 종교적인 정보를 교환함에는 형식과 의미로 구성되어져 있다. 정보 교환자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의미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문화의 형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진다.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형태가 없이 는 의미가 전달되어지지 않는다. 이 진행은 성경적 진리를 전하는 데에도 적 용되어지며, 성경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하여는 문화적인 형태를 사용하여 받 아들이는 자들이 단어, 노래, 연극, 풍습 그리고 신앙들을 이해하게 된다. 성경 적 진리는 변하거나 문화에 의해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성경적 진리를 전하기 위한 매개체는 받아들이는 문화에 따라서 변화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접속점을 찾아가는 방법이 곧 토착화인 것이다. 이렇게 접속점을 찾기 위한 일들에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들이 수반된다.
첫째로 접속점들은 사람들 자신의 세계관과 신앙을 시작으로 발견 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세계관은 성경적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속 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관문이다. 복음 전달자로써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세계관에 관계없이 적절하지 못한 복음의 메시지만을 선포함으 로 사람들의 세계관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음을 그들의 세계관에 맞 게 맥락화 함으로써 성경적 진리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둘째로 ‘하나님’의 기독교 개념은 가지고 있는 문화에서 쓰 이는 ‘신’이라는 용어로 사람들에게 전해 질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기독교적 인 의미와 더불어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하나님의 의미로 전달된다.
셋째로 성 경적 진리의 핵심인 복음도 맥락화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복음의 의 미가 문화에서 문화로 옮기어질 때마다 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복음을 전 하는 방법, 즉 형태를 바꾸어 문화적 접속점을 통한 전달이어야 한다는 의미 이다.
넷째로 접속점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경우는 받아들이는 문화가 비슷한 성경적인 개념, 예를 들어, 죄, 구원, 중보자, 예배, 천국, 그리고 지옥들의 개 념들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다섯째로 성경적 진리를 위한 접속점들은 문화적 으로 현대적 의미가 있는 실례, 은유 그리고 비유로 맥락화 되어야 한다. 예수 님과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는 효과적으로 성경진리를 전하기 위 하여 문화적으로 적절한 실례를 찾는 것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
여섯째로 접 속점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경험하는 출생, 성장, 죽음, 질병, 그리고 부모의 사 랑에 의해 설명함으로 성경적 진리를 전달하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이러한 접 속점들은 성경적 진리에 반응하도록 도와준다.
나. 사람들의 필요를 위한 성경적 대응으로써의 토착화
선교사는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를 찾아내야 하며 그것들을 복음의 접속점으 로 사용해야 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선교의 토착화일 것이다. 3세계의 성령주 의적 교회들은 사람들의 급박한 필요들인 건강, 부 그리고 성공, 이러한 필요 에 복음과 함께 다가감으로 부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에 대응하는 것이 곧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다. 사회적 이슈를 위한 성경적 대응으로써의 토착화
모든 사회는 아주 중요한 사회이슈들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회들이 가진 자
들로부터 갖지 못한 자들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억압을 이슈로 들고 있다. 어 떤 사회는 종족 분리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며, 다른 사회는 비윤리가 중요 한 이슈가 된다. 교회는 시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가르 쳐야 한다. 그리함으로 성경적 가르침을 토대로 사람들은 반응을 보일것이다.
라. 교회 이슈를 위한 성경적 대응으로써의 토착화
신학은 접근하고자 하는 상황에 적절한 맥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들을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 신학적으로 대응하는 형식으로 써 나아갔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문맥 안에서 신 학을 다룬 좋은 보기인 것이다.
마. 신학적 평형을 위한 토착화
교회나 사람들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하고 있는 교회 사역이나 신학을 그들의 신학과 사역 안에서 조화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잘 조화되지 못한 토착화는 십자가 사건이나 또 는 부활 중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할 것이다. 어떤 교회는 십자가 신학을 지 나치게 강조하는데 이유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야만 한 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의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으로 치유하시며 구해 내 시며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일들을 우리들의 삶 속에서 나타내신다. 이것은 토착화의 중요한 관점이 된다.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조화도 토착화 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예수님 사역 당시 유대교는 개인적이고 가깝게 만나 주시는 하나님의 면보다는 하나님의 전능함과 강한 면만 강조하였다. 예수님 께서는 하나님을 따뜻하시고 부드러우시며 개인적이신 아버지로 가르치시며 그들의 하나님의 이해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셨다.
바. 교회의식의 토착화
한 문화에 기독교가 소개될 때, 교회의식의 맥락화 이슈는 피할 수 없는 두 가 지의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로는 문화는 이미 그들만의 의식을 가지 고 있다. 교회가 비기독교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문화에 접해 있을 때에는 그것에 대응해야 한다. 비기독교적인 전통의 의식들에 대해 아무런 고려도 안 하고 부인하는 극단적인 방법이 있으며, 또한 적절한 연구를 거치지 않고 무 조건 수용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적절한 연구를 통해서 전통적인 의식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예를 보면 환갑이나 추석 등을 보면 알 수 있 다. 둘째 이유로는 교회는 서구 문화 안에서 만들어진 관습이나 의식이 있으 며 (예: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 감사절과 크리스마스) 교회 자체가 갖는 관 계들 (예: 교회 예배, 세례, 그리고 결혼 예식, 장례 예식)을 가지고 있다. 한 교회가 다른 문화 안에 세워질 때에는 이러한 기독교 관습들이 소개되어진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회는 비서구 문화안에서 이러한 기독교적인 관습들을 어 떻게 실행할 것인가의 문제를 피할수 없다.
사. 교회 정책의 토착화
교회의 메시지가 토착화 되어야 함과 같이 교회의 정책도 토착화되어야 한다.
선교사는 소속한 교회의 교회정책을 선교지에서 강요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 의 스타일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를 임명하는 방법들은 선교지의 사회질서를 고려하여 행하여야 한다. 투표의 개념이 없는 사회에서 이 방법을 통해 지도 자를 선출한다면 혼란만 가져올 것이다.
아. 목회자 훈련의 토착화
서구 사회에서는 많은 부분을 세상의 교육 제도와 병행하여 목회자들을 훈련 시키고 있다. 서구 사회의 목회자들에게는 신학을 시작하기 위해 고등학교 교 육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요즈음 서구 사회의 교회들은 대학원 수준의 신학 교육을 목회자들에게 요구 하고 있으며, 공과들은 학적이며 논리적이다. 공과는 실습하는 자보다는 유능 한 학자들과 생각하는 자들을 키워내는 것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또한 신학 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높은 차원의 시간 그리고 물질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 다.
선교사들은 이런 식의 목회자 훈련의 필요성과 토착화되어야 할 부분들을 고 려해 보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선교사들은 교육의 수준이나 방법을 선교지의 환경에 맞추어 토착화시켜야 한다.
자. 교회건물의 토착화
선교사들은 예배 장소 그리고 성경 공부를 위한 장소 선택에 있어서도 토착화 되어져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의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융통성 있게 예배 장소 를 정해야 할 것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선교사는 극장을 또한 중국에서는 호 텔을 예배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 건물의 모습에 있어서도 토착화되어져야 한다. 선교사는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적인 편안함 을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교회 건물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결 론
토착화 자체가 모든 것은 아니며 교회 사역 안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 는 인간의 차원이며 또 다른 차원은 신의 차원이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진 정한 회심, 하나님께로의 헌신 그리고 진정한 예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 므로 교회 사역자들은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이 기독교 교회인 우리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은 현대적인 문화의 교회를 부지런히 세움으로 사람들이 교회를 영 적인 가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력하는 크리스챤 선교사들을 위한 토론
필자는 종족 문화에 적절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토착화되어져야 할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작은 시작을 계기로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가지고 더 명백하게 토착화에 관하여 기술함으로 선교지에 있는 사람 들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적절한 교회들을 만들어 가는지에 대하여 뚜렷한 아 이디어를 갖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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