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전략적 배치란 무엇인가
전호진 교수
1. 선교의 연합은 동전의 양면이다.
요한복은 17:21-23에서 예수님은 세 번이나 제자들이 하나되도록 기도하심, 이유는 세상으로 하여금 더 잘 믿게 하는데 있다. 선교를 위한 연합의 당위성과 시대적 요구는 현대 세계 기독교는 후기 기독교 시대, 탈교파주의, 순교시대이다. 후기 기독교 시대란 기독교가 서구나 비서구 공히 소수종교로 전락하는 상황이다. 비서구는 물론 서구에서 조차도 기독교가 숫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다만 기독교적 가치관이 서구 사회를 지배하여 아직도 기독교적 원리나 사상 혹은 이념이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공익 정신과, 질서, 공존원리는 집단주의를 지양하는 비서구보다 더 공동체이다. 아프리카 남부는 숫적으로 기독교가 굉장하여 무려 50%를 넘는 나라가 있다. 가나, 케냐 나이지리아 등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기독교 복음이 인종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도리어 인가종갈등과 더불어 종교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자로 작용한다. 그러나 과거 기독교 역사에서 북구라파도 다양한 인종들이 있었지만 오히려 복음으로 인종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의 나라를 세웠다. 즉 서구는 현재 기독교가 숫적으로는 감소하지만 사회 모든 분야에 기독교적 가치관이 많이 투영되어 문화 변혁의 사명을 다한 셈이다. 그러나 비서구에서 기독교가 문화 변혁으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시간이 요한다. 이 시대 기독교 내부의 정서가 교회로 하여금, 아니 목사들로 하여금 선교를 위한 연합을 강요한다. 그것은 현대는 초교파주의 혹은 탈교파주의 시대로서 평신도들에게는 교파나 교단 개념이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 특히 평신도 선교사의 증가와 평신도 운동의 강화는 연합을 더욱 촉진한다. 교단주의 혹은 교파주의는 사라진 옛말 이야기되는 실정이다. 신학적으로도 이 시대는 전통적 기독교의 선교 연합을 강요한다. 이 시대는 합리적 사상이나 논리보다는 경험을 더 중시한다. 신학적으로 종교 다원주의는 노골적으로 종교를 경험의 자원으로 축소시킨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종교 경험은 종교적으로 다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비서구의 감정주의는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경험이나 체험을 선호한다. 특히 오순절 운동은 이것을 더욱 심화시킨다. 즉 성직주의가선교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세계 기독교는 연합 운동이 주요한 특징이다. 연합을 거부하는 교회는 배타주의, 고립주의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한다. 반 두센같은 신학자는 20세기 기독교 운동은 연합운동, 선교 운동, 오순절로 정의하였다. 연합, 특히 에큐메니칼 연합 운동은 사분오열한 한국 교회에 심리적 부담을 주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복음주의 교회는 지도록을 에큐메니칼에 빼앗기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의 본질인 선교를 희생하면서 연합을 강조한다. 반면, 복음주의, 특히 한국의 복음주의는 연합을 희생하면서 선교를 살릴려고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선교는 위기에 직면한다.
2. 역사적으로 본 선교 연합
한국 교회는 선교사 배치문제에 있어서 서구 선교로부터 연합 정신을 배워야 한다. 선교 운동은 서구 복음주의 운동의 산물이다. 복음주의 운동은 일부 서구 기독교로부터도 분리주의라고 규탄을 당하였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주의를 근본주의라고 정죄하였다.
편협하고 완고하고 배타적인 분리주의자들로 낙인찍었다. 1949년 한국을 방문하였던 에밀 브루너는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은 과학을 정죄하고 진짜 복음을 방해하는 근본주의하고 비난하였다. 자신을 자유주의라고 하면서 강의도 안 맡길 정도로 편협하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 복음주의 운동은 선교에 있어서는 철저히 연합하였다. 미국 근본주의 교회의 선교 엽합체인 IMFA 와 EFMA는 서로 협력하였다. 영국은 19세기 선교를 할 때 잉글랜드는 아프리카를 웨일즈 교회는 인도를, 스코틀랜드 교회는 극동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이점에서 19세기 후반 웨일즈 부흥 운동과 인도 부흥 운동 및 한국 교회의 부흥 운동은 무언가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19세기는 라토렛이 지적한대로 서구 기독교의 선교의 위대한 세기이다. 이때 동시에 서구 기독교 선교는 경쟁과 연합의 묘미를 살린 시대이기도 하다. 특히 앙글로 삭슨의 기독교는 서구에 개인주의와 경쟁주의를 심어주었지만 동시에 연합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소위 한국에서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협력하는 선교연합회이며 지역 활당제이다.
3. 미완성의 사역
1970년대에 랄프 윈터가 더욱 신랄하게 이 문제를 제기하였었다. 영국의 바렛은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지도를 A,B,C로 구분한다. A는 미복음화지역으로 국가는 약 30개에 인구는 13억 정도이다. 이것은 전 세계 인구의 23.7%이며 참고로 이들 국가의 수입은 5%에 불과하다. 다음은 B지역으로, 전도가 비교적 되어진 국가면서도 기독교 신자가 적은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76개 국가에 23억 정도이다. 다음은 C로서, 이들 지역은 145개의 기독교 국가로서 인구는 18억이다. 기독교 국가라는 신자가 인구의 60% 혹은 그 이상의 나라이다. 바렛의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회 수입의 99.8%는 이 지역의 자체를 위하여 사용된다. 불향하게도 0.09%의 예산만이 복음화된 지역의 비고독교 세계를 위하여 사용되고, 0.01%만이 미복음화된 지역을 위하여 사용된다. 선교자원도 85%의 인력과 돈이 기독교 세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미국, 브라질, 케냐, 필립핀 등에 집중화 현상이 두들어진다. 전세계에 약4천개의 해외 선교부가 있다. 그런데 A지역을 위하여 사용되는 선교비는 1억불이며 선교사는 3천명으로 전체의 1%이다. 기타 3만명의 기독교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5만 여명의 평신도 신자들이 이들 이들 지역에 거주한다. 반면 8.1%의 선교사들은 복음화 된 비기독교세계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바렛에 의하면 전 세계의 선교사 통계는 약 26만명이다. 한국 교회도 선교의 집중화는 이미 거론되어진 문제이다. 특정 국가의 수도권에 많이 몰려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그럴만한 많은 문제가 이다. 특히 자녀 교육 문제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선교를 지원하기 전에 이미 드러난 사실이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계속 이것을 문제로 제기한다면 곤란하게 될 것이다. 자녀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결국 아직도 한국 교회가 선교하기에는 성숙하지 못하였다는 구조적 결함을 노출하는 것이다.
4. 바람직한 전략적 배치는
이제 한국 교회는 교파나 교단을 초월하여 선교사의 배치를 위한 연합과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바울은 베드로와 선교지를 분할, 바울은 이방으로 베드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였다. 바울은 동시에 남의 터 위에 세우지 않는다는 신사도를 발휘하였다. 과거에 선교사 배치와 협력은 일부 선교지에서 이미 좋은 모델을 보여주었다. 필리핀에서는 합동측과 고신이 신학교 사역에 협력하기로 하고 대신에 선교지는 분할하는 데에 합의하여 고신은 시부 시역을 합동은 마닐라 지역을 담당하였다. 나중에는 통합 및 다른 장로 교회 선교도 동참하여 하나의 필리핀 장로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이러한 협력 구조에 대하여 기존의 필리핀 장로 교회 지도자들은 불만을 표시하였다.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는 두 가지 면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는 지역적으로 서로 협의하는 것이요, 둘째는 사역 종류에 있어서 협력하고 연합하는 것이다. 먼저 지역적 분할이나 협력은 미전도 종족 사역에서 가능하다. 즉 미전도 종족을 서로 협의하여 입양하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 교회가 담당해야 할 미전도 종족은 많이 이다. 한국 미전도 종족 입양 운동 본부는 이 점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지만 이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중국 선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특히 한족이나 조선족 선교는 갈수록 통제가 심하다. 그래서 상당수 한국 선교사들은 이미 중국 서부의 미존도 종족 선교로 방향을 전환하고 이다. 중국의 미전도 종족을 한국 선교 단체들이 서로 협의하여 선교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나라나 지역도 서로 분담할 수 있다. 여기에는 먼저 국내 파송 선교회가 선교지를 함께 논의해야하며 선교지의 선교사들이 동의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배치를 위하여 기존의 선교 협의회가 더욱 선교 협력체로서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유사한 선교회끼리 협력하는 것도 가능한 방안이다.
선교 사역의 종류에 의한 전략적 배치란 같은 선교 업무에 선교사들이 협력하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필리핀이나 중앙아시아에서 한동안 시도하였던 신학교 협력이다. 이러한 식으로 병원 사역, 개발,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교지를 분산시키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신앙 고백이나 신학적 차이가 심하면 협력이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파키스탄에 한 병원을 한국 선교사들이 서구 선교회로부터 인수하였지만 수년동안 정상 궤도에 올려놓지 못하였다. 어느 선교회도 단독으로 이를 인수하고 경영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이러한 전략적 배치를 위하여 서는 한국 교회 선교가 거듭나는 노력이 요구된다. 초교파 선교회는 비교적 기동력과 신축성이 있으며 연합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잘 되어 있으나 교단 선교회는 구조적으로 교단을 초월한 연합이나 협력에 많은 애로가 내재한다. 분파주의적 사고 구조가 결국 장애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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