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뉴톤 (John Newton 1725-1807) 죄악의 심연을 헤어나와 탕자처럼 돌아온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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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파선된지 4주만에, 뉴톤과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영접해 주심으로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날수가 있었다. 이것은 그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것을 계기로 신앙의 각성이 일어났고 더욱 진지하고 열렬해졌다. 그는 그의 여가 시간을 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주님께 자비와 지도를 간구하는데 보냈으며 특히 신약을 통독하면서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자신을 예시해 주며 탕자를 받아주는 아버지의 선하심은 죄인들을 돌이키시는 주님의 선하심의 충분한 설명이 되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침내 그는1750년 2월 어머니의 옛 친구의 딸인 메리 케틀렛(Mary Catlett)와 결혼했다. 그는 이 결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합당한 때-주께서 그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후-연결된 것으로 믿었다. 1754년 11월 초에 그 동안 노예 매매에 관계한 기간 동안, 나는 그일의 합법성을 조금도 의심해 본적이 없었다. 그 일은 하늘이 나에게 정해 놓은 직업으로 생각하고 대체로 만족했었다. 그러나 자심을 형무소의 간수와 같다고 생각했고, 쇠사슬, 족쇄, 수감을 항상 보아야 하는 이 직업이 때때로 끔찍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믿는 자들과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며 집과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힘든 적이 많은데 이런 환경에서 조금 벗어나기를 원하며 기도했었다. 그런데 그 응답이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온 것이다. 출항을 이틀 앞두고 발작이 일어나고 몸이 마비가 된 후 회복되었지만 계속된 통증과 현기증으로 인해 의사는 항해를 포기하라는 충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항해와 무관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리버풀에서 조수(潮水) 측량사 직에 임명되었는데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측량 기사의 자리는 그가 원하던 자리였고, 그것은 그에게 많은 여가와 스스로의 방법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뉴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이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으나 이후로는 고전과 수학을 결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를 작정하곤 이 주목적에 도움이 되는 외에는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목적에 대한 첫 시도는 신약과 그리이스어 역(譯) 구약성경(Septuagint)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이스어를 충분히 배우고, 다음 해에는 히브리어를 배웠고 2년 후에는 시리아어 공부를 시작하여 성경을 깊이 연구하였다. 뉴톤은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라는 갈라디아서 1장 23∼24절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공중 앞에서 증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고 이 희망 때문에 성경 원본을 계속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좀더 광범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목사직에 종사할 것을 희망하는 많은 이들의 요청에 따라 1758년 요크의 대감독에게 안수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한다.
그 후 1764년에, 뉴톤은 오올리의 목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고 오올리 교구의 목사가 되어 15년간 목회사역을 감당하였으며, 자신의 마지막 일터에 대한 커다란 감회를 이렇게 말한다.
"가장 무지하고 가장 비천하고 가장 무참히 버려진 노예 중의 하나인 내가, 아프리카 연안의 참혹한 생활로부터 건지워져 마침내 세계의 도시 중에서도 으뜸 가는 교구 목사로 지명된 것은 여기서 그러한 은혜를 증거할 뿐만 아니라 그 은혜의 특이한 실증과 기념으로 서기 위함이요, 역사 설교 그리고 저술을 통하여 널리 세계에 그 은혜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것은 결코 내가 자격이 있어서 되었다고는 평가할 수 없는 사건이다. "
1780년 그는 런던의 성 메리울노쓰 교회로 옮겨서 생을 마칠 때까지 28년간을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목회사역을 하는 동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설교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1807년 12월 21일 죽기 한달 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는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육체와 마음이 쇠할 때 우리 마음의 힘이요, 우리의 기업으로써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나는 내가 의뢰한 분을 알며 그 분이 내가 그에게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후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니 그것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께서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입니다. "
그는 추악하고 더러운 범죄 가운데서 자신은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일생 간직하였다. 놀라운 은혜에 기초하여, 언제 불러도 은혜스러운 찬송 "나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등의 찬송가를 썼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리고 1807년 12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다음은 1803년 6월 13일자로 된, 뉴톤의 유언장의 서두를 베낀 것이다.
뉴톤의 유언
“나는 내 영혼을 나의 자비로우신 하나님과 구세주께 위탁한다. 그는 내가 배교자요, 신성 모독자요, 방탕자였을때, 자비롭게도 나를 남겨 두시고 보존해 주셨으며, 자신의 완악함으로써 스스로 나를 빠뜨린 아프리카 해안에서의 저 참혹한 상황으로부터 건지셨다; 그리도 그는 가장 쓸모 없는 나에게, 그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파하도록 허락하셨다. 나는 그가 불확실한 나의 여생을 통해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과 후에 하늘나라로 그의 임재 가운데 나를 받아 주실 것을 믿으며 겸손한 확신을 가지고, 내가 자주 다른 이들에게 추천해 온 바 죄인이 그의 소망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써, 하나임이요 사람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자 중재를 의지한다. ……”
한때 불신자요 방탕자요,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관원이었으나 주님의 자비와 은혜로 변화시킨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도 틀림없이 변화시켜 놀라운 일들을 하실 것을 기대해본다.
존뉴톤의 자서전 ( 생명의 말씀사)참고
|출처: Global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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