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중국기독교 전국회의」와 오늘의 삼자교회
왕쓰웨/
Ⅰ. 들어가는 말
중국정부가 공인한 기독교 인민단체인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이하「삼자회」라 약칭)와 중국기독교회(이하「기협」이라 약칭)는 1996년 12월 28일부터 1997년 1월 5일까지 제6차「중국기독교 전국회의」(이하「전국회의」라 약칭)를 뻬이징(北京)에서 마쳤다.
「전국회의」는 중국기독교의 최고기관으로 매 5년에 1회씩 개최되며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중국 각 지역의 삼자교회를 대표하는 자들이다. 이 회의에서 선출된 인물들과 결의한 내용, 결정된 사항은 향후 삼자교회 전개와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기에「전국회의」의 개최와 회의의 결과가 갖는 의미와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에 동참하고, 순응한 기존의 교회가 체질개선을 해서 변모된 삼자교회는 오랜 시일동안 두 가지 방향 속에서 중국교회의 일원으로서의 모습을 지니고 발전해왔다. 우선 1950년에서 1970년대까지 삼자교회는 사회주의 중국과 계급투쟁적 개념, 성격이 강한「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을 지향하는「삼자(三自)의 교회」로 경주해왔고, 1980년대 이후는 사회주의 건설과 발맞추어 이제 교회를 잘 세우자(중국어로「辦好敎會」라 한다)라는「건설의 교회」로 전개해가고 있다.
이번에 개최된 제6차「전국회의」도「삼자의 원칙으로 교회를 잘 세우자(按三自原則辦好敎會)」를 향후 삼자교회의 방향으로 결의하는 것을 재 천명하였다. 삼자교회는 지속적으로 중국공산당의 노선과 정치환경 속에서 변화를 해나가면서 중국교회에서의 그 위치를 찾아나가고 있다.
본 글은 제6차「전국회의」와「전국회의」에 나타난 오늘의 삼자교회의 위상을 조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래서 먼저 제6차「전국회의」의 회의 주요내용과 결정사항 그리고 회의에서 설정한 향후의 삼자교회 방향과 그 임무 등을 살펴보면서 논평을 하고자 한다.
그 다음 제6차「전국회의」를 통해 나타난 삼자교회의 현황통계와 현 상황, 그리고 여러 문제점 등도 살펴보겠다. 결론적으로는 상술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오늘의 삼자교회의 위상을 조망(眺望)해 보고자 한다.
Ⅱ. 제6차「전국회의」의 개최와 주요내용
「전국회의」는 공인된 중국기독교의 최고조직으로 1954년 7월에 제1차「전국회의」가 개최된 것을 시작해서 현재 제6차까지 개최되었으며 명실공히 중국의 공인 기독교와 삼자교회들을 영도하는 기관으로 자리잡아 왔다.
「전국회의」는「삼자회」와「기협」(「삼자회」와「기협」을 동시에 언급할 때「양회(兩會)」로 약칭)의 상무위원회의 업무보고와 삼자교회 현안문제에 대한 토의,「기협」의「전문위원회」의 업무보고,「양회」의 새로운 위원회 위원 선출, 회칙의 개정과 통과, 결의서 채택 등을 주요내용으로 개최된다.
제6차「전국회의」도 과거에 개최된 전체회의의 골격과 비슷하였다. 이번에도 회의의 개최지는 뻬이징이었으며, 참석대표는 총 299명 이었고, 그 가운데 정식대표는 274명이며, 특별대표는 25명이며, 실제적으로는 총 287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대표자들 가운데 소수민족 대표가 21명이었고, 여성대표는 78명이었으며, 평균 연령은 지난 제5차에 비해 6.4세가 낮아져, 52.6세였다.
1. 회의 주요내용
제6차「전국회의」는 12월 29일 개회예배를 드리므로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져쟝성(浙江省)「기협」의 쑨시페이(孫錫培) 목사가「집, 몸, 영궁(靈宮)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고, 시에시아오원(葉小文)종교사무국 국장이 세기(世紀)를 넘기 위해 반드시 정확한 방향을 견지하며, 시대의 조류에 순응하고, 자체건설을 강화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강화(講話)가 있었다.
띵꽝쉰(丁光訓)「삼자회」주석도 개막 강화를 하였는데, 그는 그의 정식퇴임을 공포하면서 중국교회가 단결하는 일과 윤리도덕을 중시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후「양회」의 상무위원회를 대표해서 한원짜오(韓文藻)「기협」부회장의 상무위원회 사업보고가 있었는데, 한원짜오의 업무보고는 이번 회의의 중요한 순서와 내용이 되었다.
상무위원회원의 업무보고는「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자(同心協力建立基督的身體)」라는 주제로, 우선 서론 부분에서 전국에 개방된 예배당의 숫자를 발표하는 등 현재 삼자교회의 현황을 보고하였다.
본론에서는 먼저 지난 5년을 회고하면서 교회사역의 추진상황, 애국교육과 삼자교육의 전개, 각 지역「양회」의 연결사업과 건의사항의 내용, 정부의 종교신앙 자유정책과 교회당 등록상황 등을 보고하였다.
둘째로「삼자의 원칙으로 교회를 잘 세우자」라는 방향을 명확하게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자주를 지키고, 애국애교(愛國愛敎) 교육을 실시하며, 내부적 단결을 증진시키고,「삼호(三好)」(즉 자치를 잘하고, 자양을 잘하며, 자전을 잘하는 것)를 총력으로 기울여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는 향후의 임무 열 가지를 언급하면서 마쳤다. 이 보고는 현재의 삼자교회 현황을 잘 설명하였고,「전국회의」개최기간에(1997년 1월 2일) 이 보고를 받아들이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후 이틀간은 다섯 개의 주제를 가지고 전문 분과토의를 진행하였는데, 회의 참석대표들은 각각의 주제에 대해 발언을 하였다. 다섯 개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자전(自傳)과 신학연구 사업을 잘 할 것인가?」
「개방의 상황에서 어떻게 자양의 원칙을 지켜나갈 것인가?」
「어떻게 교회규정을 집행하여 교회치리 사업을 잘 할 것인가?」
「어떻게 대외연락 사업을 잘 할 것인가?」
「기독교는 어떻게 정신문명을 건설하는데 공헌할 것인가?」
199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는 송구영신 예배를, 새해 첫날인 1997년 1월 1일에는 신년예배를 각각 드렸다. 1997년 1월 2일은 회의 마지막 날로서 이날은 여러 가지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우선「양회」의 새 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하였는데, 총 185명의「삼자회」제6차와「기협」제4차의 위원회 위원이 선출되었다. 새로운 위원들의 평균 연령이 지난 제5차때 임원보다 7.6세가 낮은 54.8세이다. 한편 이들 새로이 선출된 임원들은「전국회의」를 마친 후 다음날인 1월 3일, 제1차 위원회 회의와 상무위원회 회의를 개최하여 신임 주석과 부주석, 회장과 부회장 등 삼자교회를 이끌게 될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하였다.
또 한원짜오의 상무위원회 업무보고와 개정된「양회」의 새로운 규정, 그리고 두개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두개의 결의안이란〈중공중앙이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하는데 여러 중요문제에 관한 결의(中共中央關於社會主義精神文明建設若干重要問題的決議)〉에 대한 옹호에 관한 것과 한원짜오의 상무위원회 업무보고에 대한 결의안이다. 한은 이 둘을 모두 지지 한다고 하였다.
같은 날 드려진 폐막예배는 제6차「전국회의」의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기협」부회장인 한원짜오가「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자」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그는 현재의 삼자교회의 상황과 직면한 도전들을 언급하면서 바울이 신도의 영적인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더 관심을 가졌기에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중국교회를 세우자 라고 강조하였다. 설교후「삼자회」의 부주석인 루오꽌쭝(羅冠宗)은 삼자의 원칙으로 교회를 잘 세우고, 기독교의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며, 교회 내부의 단결을 수호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폐막사를 하였고 이로써 모든 회의가 끝 마쳤다.
2. 주요결정 및 변화
제6차「전국회의」는 삼자교회가 2천년대 즉 21세기로 넘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삼자교회의 지도자들이 선출되었고, 삼자교회의 제도가 되는「양회」의 규정이 개정되었다. 또 제6차「전국회의」직전에 통과된 삼자교회의 교회규정(1996년 12월 28일에 통과된「中國基督敎敎會規章」을 가리킨다)을 회의 기간에 공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원짜오의 상무위원회 업무보고와「전국회의」의 두 개의 결의를 통해 향후에 삼자교회가 걸어갈 방향에 대한 제시와 임무, 과제를 분명하게 지적하는 등 제6차「전국회의」는 21세기를 향해 전진해 가는 삼자교회에 새로운 기운을 전달해 주었다. 아래에서는 주요 결정내용과 변화들을 살펴보겠다.
1) 지도급 인물의 교체
제6차「전국회의」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공인된 삼자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삼자회」의 주석,「기협」의 회장 띵꽝쉰 주교가 정식으로 퇴임하고,「양회」의 명예주석과 명예회장의 명예직을 맡고, 그를 뒤이어 루오꽌쭝이「삼자회」를, 한원짜오가「기협」을 맡는 후임 지도자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로써 1980년 제3차「전국회의」이후 16년동안 삼자교회를 이끌었던「띵꽝쉰 시대」가 끝을 맺게 되었다.
실제로 새로운 회기(會期)의「양회」의 최고 지도자들은 제6차「전국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1997년 1월 3일에 거행된 제6차「삼자회」와 제4차「기협」의 제1회 전체위원 회의에서 선출되었다. 다음과 같은 지도급 인물들이 각각 선출되었다.
「삼자회」는 먼저 띵꽝쉰을 명예주석, 루오꽌쭝을 신임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또 왕쥐쩐(王菊珍) 등 9명을 부주석, 마젠화(馬建華) 등 42명을 상무위원으로 그리고 떵푸춘(鄧福村)을 비서장, 쉬밍한(徐明涵), 진웨이(金蔚)를 부비서장으로 선출하였다.「기협」에서는 역시 띵꽝쉰이 명예주석으로 선출되었고, 한원짜오가 신임 회장으로, 쑨시페이 등 8명을 부회장, 위신리(于新粒) 등 42명을 상무위원으로 그리고 쑤떠츠(蘇德慈)를 총무, 썬청언(沈承恩), 빠오지아위엔(包佳源), 위신리(于新粒)를 부총무로 선출하였다.
신임「삼자회」주석인 루오꽌쭝은 1920년 꽝똥성(廣東省) 출생으로 1943년 상하이(上海) 복단(福旦)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난후 상하이의 와이엠씨에이(Y. M. C. A) 학생회 간사를 시작으로 중국의 기독교계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그는 젊은 3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951년에「삼자회」의 전신인「중국기독교항미원조삼자혁신운동위원회 준비위원회」의 위원에 선출되어, 그 이후 지속적으로「삼자회」에서 고위직을 맡아왔으며, 1980년 이후는「삼자회」의 전국 부주석에 계속 임직한 인물이었다.
신임「기협」회장인 한원짜오는 1923년 상하이 출생으로 1944년 상하이 성요한(聖約翰)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상하이의 와이엠씨에이의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51년에는 루오꽌쭝과 같이「중국기독교항미원조삼자혁신운동위원회 준비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28세 였는데 당시 중국 기독교의 최고 지도자들로 구성된 준비위원회 가운데 최연소 위원이 되었다.
이는 그 당시 상황에서 볼 때 쉽게 납득되기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한원짜오는 그의 탁월한 업무와 사교 능력으로「삼자회」와 1980년에 조직된「기협」에서 꾸준하게 최고위 지도자의 반열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대외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국제적인 업무와 회의에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한원짜오는 회장이 되기 전에 1986년 이후 부터「기협」의 부회장직을 10년 동안 맡아왔다.
사실 삼자교회의 지도자 문제에 있어 이번 제6차「전국회의」에서 띵꽝쉰의 퇴임과 함께 루오꽌쭝과 한원짜오의 동시 퇴임을 기대한 자들이 많았고, 그렇게 되면 중국의 삼자교회에도 새로운 인물과 함께 젊은층(50, 60대 연령층)이 지도할 수가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루오꽌쭝과 한원짜오가「삼자회」와「기협」에 유임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각 최고의 지도자로 진급되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실망을 가져다주었다. 아직까지 이들은 최소 5년동안 삼자교회를 이끌어 나가게 되는 셈이다.
이 둘은 모두 목사직을 갖고 있지 않고, 목회와 교회사역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들이며, 강성(强性)적인 이미지를 지닌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인물 배경과 경험으로 인해 삼자교회를「삼자의 원칙으로 교회를 잘 세우자」라는 방향에 적절치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삼자의 원칙」을 교회로 하여금 고수하는 일에는 적합할 수 있으나,「교회를 잘 세우는 일」을 이끄는 데는 부족하다.
신임「삼자회」의 비서장인 떵푸춘은 1929년 져쟝(浙江)성 출생으로 상하이 성요한 대학과 난징의 금릉협화신학원(金陵協和神學院)을 졸업하였고, 1950년부터 문화대혁명인 1966년까지 져쟝성 항쩌우(杭州)에서 목회를 하였으며, 1985년 교회로 복귀하여 전임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92년부터 져쟝성「기협]의 부회장을 맡았고, 전국「삼자회」의 상무위원이기도 하였다. 신임「기협」총무인 쑤떠츠는 1933년 상하이 출생으로 1953년 상하이 복단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에는 지아위밍(賈玉銘)목사가 설립한 영수신학원(靈修神學院)을 졸업하여 상하이의 중화기독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1958년 반우파 투쟁때 비판을 받아 그 이후부터 상하이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해왔으며, 1984년에야 교회로 복귀하였다.
1986년에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또 미국에 유학을 하여 1992년 워싱턴의 웨슬리신학교(Wesley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였으며, 상하이의 화동신학원 교무처장과 부원장직을 맡아오다가 1992년에는「기협」부총무로 임직하였다.
떵푸춘을 비서장으로, 쑤떠츠를 총무로 선출한데는 삼자교회가 소위「삼자의 원칙으로 교회를 잘 세우자」라는 방향에「교회를 잘 세우는데」부합된 인선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그런 목적으로 두사람을「양회」의 실무 책임자 자리에 등용을 한 것이다. 떵푸춘이 비서장으로 선출되기 이전에는 루오꽌쭝이 비서장이었고, 쑤떠츠는 한원짜오 후임으로 총무가 되었다.
한원짜오와 루오꽌쭝이 똑같이 목사직이 없고, 목회와 교회사역 경험이 부족한 반면에 떵푸춘은 풍부한 목회와 사역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쑤떠츠 또한 목회와 교회사역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자로서의 학생을 가르쳤고 신학교육 분야에 대한 식견도 겸비한 자이다. 그래서 떵푸춘을 통해 삼자교회가 교회를 잘 세우는 일에 주력하고 쑤떠츠를 통해 삼자교회의 신학교육의 보급, 확대와 보강하는 일을 감당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2) 삼자교회 제도, 규정의 변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삼자교회의 제도라 함은「양회」의 규정(중국어로 규정을「章程」이라 사용), 그리고「중국기독교교회규정」(이하「교회규정」이라 약칭)을 가리키는데, 제6차「전국회의」에서「양회」의 규정이 새로이 수정되어 통과되었고,「교회규정」도「전국회의」직전인 1996년 12월 28일에 통과되어「전국회의」때 공포하였다. 과거의 규정들과 비교하여 새로운 규정들이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1)「삼자회」규정
우선「삼자회」의 규정을 보면, 수정전의 1992년 1월 6일 통과된 규정은 15개 조항이었으나, 수정된 규정은 16개 조항으로 증가되었다. 원 규정은「삼자회」조직의 목적과 임무를 제2조에 함께 두었으나, 새 규정에는 목적을 제2조로, 임무를 제3조로 분리시켰다.
원 제2조에는「삼자회」의 목적과 임무가「국가안정의 수호」라는 조항이 있으나, 새 규정에는 이것을 제3조의 임무 쪽에 두어「삼자회」는「국가단결과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최근 국가의 안정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통일과 안정을 위해서 내부의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삼자회」의 임무에 국가의 안정도 수호할 것을 첨가시킨 것이다.
원 제3조는「전국회의」가 「삼자회」의 최고기관으로 「기협」과 함께 회의 개최를 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지만, 새 규정 제4조에는「전국회의」의 임무에 대해 명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으며, 회의의 개최와 대표의 선출에 대해서도 규정을 명확히 하였다. 이는「전국회의」의 위치를 확립시켜, 그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원 제4조에 "본회는 각 성(省)의「삼자회」와 상황을 서로 연락, 교제하며, 경험을 교류하여, 각성의「삼자회」와 공통적인 문제를 연구, 협조(協調)해 나간다"고 하였으나, 새로운 규정 제6조에는「협조」를「협상(協商)」으로 바꾸었고,「공통적인 문제」를「보편적인 문제」로 고쳤다. 이에 대해 규정의 수정 설명을 한「삼자회」의 부주석인 왕쥐쩐은「협조」는 일방적이며, 전국「양회」가 현지에 가서 지방의 관계를 조정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지방에 의한 자율적인 협상이 되지 못하기에 바꾸었다고 하였다.
또「공통적인 문제」란 각지에 모두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가리키나,「보편적인 문제」로 고친 것은「보편적인 문제」는 각지에 반드시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전국「삼자회」가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지시하기 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의견을 조정해 나가고, 또 각지의「삼자회」사이도 서로 협력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 할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또 이는 현재 전국「삼자회」의 역할과 힘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즉 각지의「삼자회」와 삼자교회도 지방주의와 지방세력이 그만큼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공통적인 문제」를 「일반적인 문제」로 고친 것도 과거에는 각 지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연구하고, 협조해 나갔지만, 현재 전국「삼자회」의 역량으로 모든 지역과 삼자교회가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보편적 즉 모든 지역과 삼자교회가 반드시 지니고 있지 않은 문제를 연구하고 이에 협조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전국「삼자회」의 문제해결 능력의 부족과 처리영역이 축소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현재「삼자회」가 지니고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원 제5조에는「삼자회」위원회가 "「전국회의」에서 선거를 통해 탄생되며, 위원의 임기는 다음회「전국회의」까지이며, 연임할 수 있다"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새 규정에는「삼자회」위원회에 대해 언급은 그 임무까지 명시해 놓았다. 이는「삼자회」위원회의 위치와 역할 강화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3) 삼자교회 향후 방향과 임무의 제시
(1) 삼자교회의 향후 방향
제6차「전국회의」에서 한원짜오가 행한「양회」의 업무보고에서 그는 삼자교회의 향후 방향과 임무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우선 삼자교회의 총체적 방향은「삼자의 원칙으로 교회를 잘 세우자(按三自原則辦好敎會)」이다. 즉 삼자교회를 자치, 자양, 자전의 원칙으로 잘 세워 나가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총체적인 방향아래 삼자교회가 향후에 달려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독립자주의 견지, 애국애교(愛國愛敎)의 실천, 단결증진의 노력,「삼호(三好)」의 총력 실천 등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는 삼자교회 전개와 발전의 구체적인 방향이자 내용이기도 하다.
「독립자주의 견지」의 방향에 대해 우선 삼자교회는 1950년대의 삼자애국운동으로 중국의 교회가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끊게 되었고, 서양 선교단체가 중국교회를 통제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독립 자주적인 교회가 되었으며, 중국교회의 자치, 자양, 자전을 실현하였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래서 서양으로부터의 독립자주를 쟁취한 중국교회가 오늘날에도 쟁취한 독립자주를 지켜나가는 것 역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국교회의 독립자주를 지켜나가는데 있어 먼저 삼자교회는 중국에서의 교회사역과 전도사역은 중국교회의 주권과 직책으로써 중국기독교 당국의 동의없이 함부로 중국 내에서 어떠한 선교성격의 활동을 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중국교회」는 삼자교회요,「중국기독교 당국」은「양회」를 가리킨다. 그래서 중국내의 모든 기독교 사업과 활동을「양회」와 삼자교회가「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또 중국교회의 독립자주를 지키기 위해 삼자교회는 헌법 제36조에 명시된 "우리 나라의 종교단체와 종교업무는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지 아니한다."를 근거로 해서 외국의 대 중국 선교를 거부하고 있으며, 그것은 중국교회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요, 적대침투행위이며, 중국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며, 또 다시 중국교회를 통제를 하려는 것이다 라고 비난하고 있다.
결국「독립자주의 견지」는 삼자교회만이 독점할 수 있는 중국내의 교회사역과 전도사역을 계속 독점하여 지켜나가는 한편 모든 형태의 해외의 대(對) 중국선교를 반대하는 것을 동시에 뜻하고 있다. 이것이「양회」가 모든 삼자교회에게 제시한 첫 번째의 향후 방향이다. 삼자교회는 바로 이 방향 속에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애국애교의 실천」은「양회」가 삼자교회에 제시한 두 번째 반드시 따라야 할 방향이다.「애국애교」에서「애국」은 무엇보다도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 그리고 사회주의 제도를 옹호하며,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부강시킬 수 있다고 믿고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또「애국」은「정치적으로 단결하고 협력」하는 것을 말하며,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정치적 입장과 방향아래 단결하고 또 협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애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공헌을 하며, 당과 국가에서 강조하는 정신문명 창건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기독교가 갖고 있는 사회봉사라는 전통을 끊임없이 지켜나가야 한다.
한편「애국」은 또 소위「지하선교」를 하는 활동과 "유신론과 무신론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험악한 말로 공산당과 인민정부를 저주하고, 중국의 사회주의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것들에 대한 높은 경각심과 해외의 적대세력의 침투활동에 대해 적극 대처하는 것을 동시에 가리킨다.
「애교」는 중국의 기독교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중국의 기독교와 교회라 할 때 그것은 삼자교회만을 국한해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삼자교회를 사랑하는 것은「애교」요, 그 밖에 교회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반(反)애교」로 간주할 수 있다. 결국「애국애교」는 당과 정부를 만을 옹호하고 따르고, 협력하며, 삼자교회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앞으로의 삼자교회가 나갈 방향이며, 이 방향 속에서 교회를 잘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결증진의 노력」은 최근 당과 정부, 그리고「양회」에서 무척이나 강조하는 말이다. 당과 정부는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과 국가통일을 위해 단결을 강조하고,「양회」는 또 삼자교회내의 불일치와 교파문제의 대두로 인해 단결을 강조하고 단결증진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단결증진의 노력」은 우선 삼자교회내의 교파간의 단결을 가리키고 있다.
1950년대의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은 당과 정부의 정치력과 공권력을 통해 중국교회내의 소위「제국주의 세력」을 쫓아내었고, 복잡한 교파들을「삼자애국」이라는 깃발아래 통폐합시켰다. 그 결과 삼자교회내의 교파활동과 교파주의가 1950년대와 60년대에 잠잠해졌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개방의 노선은 기존의 삼자교회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어 정치 투쟁적 성향의「삼자애국」으로 통폐합된 기존의 삼자교회내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교파들의 교파주의와 교파세력의 형성이 또 다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양회」와 삼자교회의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제6차「전국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퇴임한 띵꽝쉰도 회의 개막 축사에서「단결」을 무척 강조하였고 마치 마지막 유언과 같은 느낌으로 단결의 증진을 삼자교회에게 남겨놓았다.
또「단결증진의 노력」은 아직「양회」와 관계를 갖지 않고 있는 자생교회와 가정교회에 대한 단결까지 포함하고 있다.
소위「비삼자교회」,「비공인교회」가운데 나라를 사랑하고 법을 준수하며, 삼자의 원칙을 찬성하며,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을 지니고 있는 교회를 단결시키는 것을 노력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로「단결증진의 노력」은 기독교 신앙을 믿지 않는 이와 다른 신앙을 지니고 있는 사람과의 단결증진도 의미하고 있다. 이들과의 단결된 관계를 가져 사회의 안정을 수호하고, 화목하게 함께 살며, 현실 생활가운데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를 증폭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믿지 않는 자와 함께 사회주의 양대문명(兩大文明, 즉 사회주의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가리킨다.)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단결증진의 노력」은 삼자교회안과 밖에 있는 교회무리와의 단결, 그리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단결의 증진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양회」는 바로 이런 방향아래 삼자교회가 전개, 발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삼호(三好)」의 총력 실천은 삼자교회가 앞으로 달려가야할 네 가지 방향 가운데 마지막 방향이다.「삼호」란「삼자」를 잘 하는 것으로 즉 자치를 잘하고, 자양을 잘하며, 자전을 잘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삼호」의 제창은「삼자」의 계속적인 발전과 심화이며, 교회를 잘 세우기 위함이며,「삼호」를 떠나서는 삼자의 원칙은 공허한 구호로 전락될 수 있기에 「삼자」교회는 최근 들어「삼호」를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다.
우선 자치를 잘하기 위해 각자의 삼자교회가 나름대로의 규정을 만들어 기강을 세우고, 민주정신에 입각하여 회의제도를 통해 업무를 협상 토의하며, 또 교회 내부의 관리제도를 통해 업무를 진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양회」는 삼자교회에 산재한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적극 도와주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삼자교회가 자치를 잘 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제도화, 민주화하는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자양을 잘 한다는 것은 중국 기독교인의 헌금정신을 발휘하여 교회가 자력갱생을 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또 비교적 부유한 지역의 교회는 빈곤한 지역의 교회를 도와 지체 사랑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재 삼자교회에 많이 진행되고 있는 해외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이것은 중국교회의 존엄을 상실하는 것이요 중국교회가 해외에 의해 통제를 받을 수 있기에 엄격하게 경고를 하고 있다. 자양을 잘 하는 문제에 있어「양회」가 각 삼자교회를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결국 자양문제는 혼자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자전을 잘 하기 위해 우선 순전(純全)한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진리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이단사설을 반대해야 하며, 중국의 상황 속에서 신학사고를 전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자전과 신학사상을 전개하는 데 있어 인간론, 세계관, 종말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배제해야 하며, 설교의 내용도 중국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중국의 국가적 상황에 맞지 않는 내용이나 현실생활과 괴리된 것, 그리고 애국애교의 원칙에 위배된 것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상호 적응하는 것에 강단의 설교와 출판물이 잘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결국 삼자교회에서 자전을 잘한다는 것은 순전한 복음을 잘 전하고 바른 신학사상을 확립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들의 전개가「애국애교」의 원칙과 위배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신학사상의 전개는 체제옹호론적으로 전개해야지, 신학의 비판적 기능을 통해 사회와 정치비판의 신학사상은 전개할 수가 없다.
Ⅲ.「전국회의」를 통해 본 삼자교회의 현황과 문제
1. 삼자교회의 현황 통계
제6차「전국회의」의 한원짜오의 업무보고 가운데 삼자교회의 현황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그의 보고에 나타난 삼자교회의 현황 통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삼자교회의 성도가 1천만 명이며, 교회예배당은 1만2천 개이며, 예배처소는 2만5천 곳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또 신학교는 17개가 있고, 신학교 재학생은 1천명이며, 남녀의 비율이 각각 절반정도 된다.
1980년 이후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의 수가 2천7백 명이나 달하고 있다. 1992년에서 1995년까지 각 성, 자치구, 직할시에서 45세 이하의 목사를 347명, 교사를 272명을 안수하였다. 또 전국에「양회」조직은 전국 27개 성(省), 자치구, 직할시에 총 27개가 있다.
출판사역 부분에 있어 1992년에서 1996년까지 총 1천만 권의 성경을 인쇄하였으며, 한어(漢語)이외에도 중영대초(中英對照) 성경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點字) 성경, 그리고 소수민족 언어의 성경이 포함되어 있다. 소수민족언어로는 이족(彛族), 조선족, 미야오족(苗族), 리쑤족( 族), 징퍼족(景頗族), 라후족(拉祜族), 따이족( 族) 등이 있다.
한편 삼자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인《찬미시(讚美詩)》는 1983년이후 현재까지 총 8백만 권이나 인쇄하였다. 현재 공식적으로 기독교 관계서적을 출판하는 곳은 전국「양회」와 져쟝성, 쟝쑤성(江蘇省) 등 8개 성의「양회」와 난징의 금릉협화신학원(金陵協和神學院), 뻬이징의 연경(燕京)신학원, 상하이의 화동(華東)신학원, 우한(武漢)의 중남(中南)신학원 등 4개의 신학교가 있다.
2. 삼자교회의 현 상황
제6차「전국회의」를 통해 나타난 오늘의 삼자교회에 두드러진 상황은 우선 교회의 잘 세우는 일, 즉 목양 사역이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여기고 있으며, 목양 사역에 각 지역 삼자교회는 물론 이거니와「양회」도 함께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양회」는 삼자교회의 총 방향을「삼자의 원칙으로 교회를 잘 세우자」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6차「전국회의」의 결의문에서도 이 부분이 잘 나타나 있다. 결의문에서 "(전국)회의에서 방향이 명확하게 되었으니, 마땅히 착실하게 열심히 노력하여「세움(중국어로는「辦」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에 총력을 기울여 일을 하여, 중국의 교회를 잘 세워나가(중국어로「辦得更好」) 더욱 더 신도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게하자."라고 하였다.
그래서 삼자교회는 현재 교회를 잘 세워 나가는 일이 가장 급선무이며, 가장 주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비록 많은 숫자가 아닐지라도 신학교의 숫자가 증가하도록 노력한 일과 성경을 대대적으로 인쇄한 것, 신학과 신앙서적을 꾸준하게 인쇄, 발간하였고, 농촌에 평신도 지도자 훈련을 빈번하게 개최한 것, 또「교회규정」을 제정한 것 등은「양회」가 교회를 잘 세우자고 하는 노력과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각 지역 삼자교회에서도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목회자들이 교회 목양에 주력하고 있어 삼자교회가 공인된 공개교회로 교회가 교회되는 일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둘째, 개정된「교회규정」의 정식 공포와 실행, 그리고 각 교회의 설립조건으로 제시된 각 교회 나름대로의 교회규정에 대한 제정은 삼자교회가 제도화, 조직화의 길을 걸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6차「전국회의」에서 정식으로 공포된「교회규정」으로 각지역의 삼자교회는 신도와 성례에 대한 규정, 성직의 종류, 자격, 안수절차, 안수의식과 성직자에 대한 권징, 교회의 조직과 관리 등에 대해 이제부터 보다 질서있게, 규칙적으로 교회의 제도를 운영해 나갈 수 있다. 이로서 삼자교회가 내부적으로 무질서와 인위적인 교회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와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삼자교회의 지도자들의 젊은 층으로 세대교체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삼자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라 할 수 있는「전국회의」대표들의 연령이 낮추어지고 있다. 1992년 제5차에는 59세였는데, 1997년의 제6차는 6.4가 낮추어 져서 52.6였다. 그 중 50세 이하가 144명으로 전체 대표의 48.2%이며, 51-65세는 62명으로 20.7%, 66세 이상은 93명으로 31.1%를 각각 차지하였다.
또 1997년 새로이 선출된「전국회의」의 위원도 1992년의 위원보다 7.6세나 낮추어진 54.8세이다.
그리고 전국 23개의「양회」가운데 젊은 층이 정(正), 부(副) 부서장이나, 총무에 임직하고 있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1993-1994년에 증원된 전국「양회」의 26명의 위원가운데 20명이 중년, 청년층이다.
둘째, 신학교의 교수요원도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는데, 1995년의 통계에 의하면 젊은 층 교수가 81명으로 전체 교수의 61.1%가 되었다.
셋째, 새로 안수 받은 목사와 전도사의 연령층이 낮추어지고 있다. 1992년-1995년 사이 각 성, 자치구, 직할시에서 총 45세 이하의 목사를 347명과 교사(전도사)를 272명 안수하였는데, 이는 같은 시기 전국에서 안수 받은 총 목사 숫자의 41.6%와 교사 숫자의 63.4%가 되었다.
3. 삼자교회의 문제
제6차「전국회의」에서 부각된 삼자교회의 문제가 여러 가지 있었다. 그 중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것은 삼자교회의 단결 문제이다. 삼자교회내의 단결문제는 우선 전국「양회」와 지방「양회」간의 갈등, 그리고 각 지방 삼자교회가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삼자교회내의 교파의 대두와 세력형성이 골칫거리로 자리잡고 있으며, 삼자교회 밖에 있는 자생교회와 가정교회의 독립적인 전개와 발전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삼자교회내 교역자들 사이의 반목과 내부분쟁도 교회의 일치와 단결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삼자교회내에 이러한 일치 단결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기에 제6차「전국회의」에서 정식퇴임 직전의 마지막 연설에서 띵꽝쉰은「단결」이 자기의 삼자교회에 대한 소망이다 라고 안타깝게 피력하였다.
띵꽝쉰 뿐만 아니라 국무원 종교사무국 국장인 시에시아오원(葉小文), 신임「삼자회」 주석 루오꽌쭝, 신임「정협」회장 한원짜오도 각각 행한 강화와 폐막사, 폐막설교에서 삼자교회의「단결」을 강조하였다.
삼자교회에 두 번째로 부각된 문제는 윤리도덕의 문제이다. 이 부분에 대해 가장 강조한 이는 띵꽝쉰이었다. 띵꽝쉰은 중국 기독교에 대한 소망을「단결」과 함께「윤리도덕에 대해 중시할 것」을 들었다. 띵꽝쉰은 "우리 기독교는 정신문명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반드시 윤리도덕을 내세워야 한다. 나는 오늘 이후의 우리 기독교가 점점 더 윤리수준이 있는 종교로 변하길 소망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지역에서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부도덕한 일들을 반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루오꽌쭝도 폐막사에서 삼자교회가 윤리도덕 강조를 경시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한편 새로 개정된 교회규정에서 교역자의 권징 내용부분이 강화된 것도 삼자교회내의 교역자의 윤리도덕의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을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의 개인주의와 배금주의(拜金主義)이다.
삼자교회에 나타난 개인주의와 배금주의는 교회내의 교권의 쟁탈, 자기 명예를 내세우는 일, 개인의 권위를 수립하는 일, 타인에 대한 중상모략 등을 먼저 예로 들 수 있다.
또 돈과 명예로 생겨난 분쟁과 질투, 그리고 교권의 쟁패(爭覇), 해외의 물질 지원을 받기 위한 변태적인 구걸행위 등이 심각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원짜오는 삼자교회내의 배금주의는 교역자직에 대한「직업화의 경향」과「상업화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교회내 지도자들의 교회재물에 대한 착복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교회규정」에는「교회재산과업무에 대한 관리」 내용이 첨가되어 엄격하게 교회재산에 대한 착복을 막고 있다.
정부나「양회」 또는 삼자교회를 통하지 않는 해외의 대(對) 중국선교는 삼자교회의 네 번째 문제가 된다.
삼자교회는 항상 중국 국내의 교회사역과 전도사업은 중국교회(오직 삼자교회)의 주권이자 직책이다 라고 입장을 표명하여 왔고 또 강조하여 왔다. 따라서 정부나「양회」조직 또 삼자교회를 통하지 않는 해외의 대 중국선교를 중국의 교회주권을 무시한 침투활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 이는 중국 기독교의 독립, 자주, 자체운영의 방향을 변혁시키는 허망한 시도이다 라고 비난하고 있다. 선교활동의 내용도 중국의 개혁개방에 발맞추어 전개되는 여러 가지의 선교형태와 내용, 예를 들어 기업을 운영하고, 사회발전의 명목으로 행하고 있는 지원, 학자와 전문가의 신분으로 선교 거점을 확보하여 각 지역에서 발전하고자 하는 일 등을 지적하였다.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사역과 전도사업을 독점할 수 있는 삼자교회에서 볼 때 이런 비공인 선교활동은 삼자교회가 중국에서 기독교 사역을 전개하는 방해거리로 작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삼자교회의 위치에서 볼 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제시될 수 있는 삼자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란 다름 아닌 삼자교회 밖의 비공인 교회들이다. 삼자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비공인교회란 삼자교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거나,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교회, 삼자교회를 비난하거나 배척하는 교회 무리, 그리고 기독교 사이비 이단들 등을 가리킨다.
비록 삼자교회는 이들 비공인 교회들에 대해서도 구분하여「주안에서의 형제 자매」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절대적으로 이들 비공인 교회들을「이단사설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교리와 신앙적적인 판단아래「이단」이 되는 경우는 있지만, 삼자교회 밖에 있다는 이유와 또한 삼자교회에 대해 비판을 해도「이단」이 될 수 있다.
이들 비공인 교회들의 활동은 삼자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중국내의 교회사역과 전도사역의 독점적 위치를 유지하는 위협적인 세력이 되고, 또 반대세력이 되기에 삼자교회가 문제로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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