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독교

[스크랩] 중국 삼자교회의 신학사상

수호천사1 2009. 4. 29. 11:44

중국 삼자교회의 신학사상

  
공산당이 들어선 초기에 공개적으로 출현한 신학은 서구열방의 제국주의적 기독교를 축출하고 오직 공산당을 중국사회 전면(全面)의 절대 지도사상으로 받아들이는 데 공헌하는 정치적인 신학사상으로 여겼다.

 

   그들이 주장하는 신학은 공산당치하의 새로운 현실을 무조건 지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황화(contextualization)와 토착화(indigenization)라는 개념을 이용하기 시작한 신학(물론 상황화나 토착화 자체는 좋은 것이고 또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이 그 중심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상황화적 신학사상이 실제로 중국 전국의 삼자교회의 모든 부분과 지도자들 및 성도들의 생각을 모두 사로잡거나 인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에 그들의 신학 자체를 논할 때 다루겠지만,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여하간, 1950년대의 소위 삼자교회의 '기독교혁신운동'은, 우야종을 비롯한 친 공산당계 기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정치적 기독교운동이다. 이 운동은 공산당치하에서 공산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지만, 당시의 기존 교회와 신학에 큰 충격과 함께 새롭게 바뀐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던 운동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서명운동' '공소운동' '사회주의식 개조운동' '삼자조직 가입운동' '교회연합운동' 등은 중국전국의 기독교인과 교회에 어떠한 동기와 모습 속에서건 소위 '거듭남'과 '새로운 빛'을 받고 체험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거듭남'이란 사회주의 정치현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각함으로서 얻게되는 사상적 각성을 의미한다. '거듭남'의 참 결과는 모든 제국주의와 장개석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배척과 척결 그리고 그들의 관점에 의한 '인민의 입장'과 '애국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빛'이란 사회주의 정치현실의 상황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에 갖게 되는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야오종을 비롯한 삼자운동 즉 '기독교혁신운동'(삼자교회 초기)의 인물들은 곧 삼자교회신학사상의 특성과 기초를 세운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신학은 사회주의 정치현실의 관점에서 모든 전통적 신앙과 신앙을 재 사고하여 새로운 해석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조화를 이루기를 원하는 공산당이 공인하는 '삼자교회신학'은 중국의 정치적인 신학의 기초를 세웠다(왕쓰웨, 199?:73).              

     
 A. '신학'의 개념

   삼자교회 신학자들의 공통적인 신학은 '기독교인의 영성체험의 총결'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신학은 기독교인의 영성체험에 따라 항상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중국교회의 신학이란 중국기독교인의 영성체험의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신학의 정의에 대한 근래 삼자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이 표현한 정의를 살펴보면, '역대의 많은 문화배경이 다른 기독교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영성체험의 총결' '교회가 사고하고 있다'(띵광쉰), '교회 영성체험의 총결'(천저민), '교회신도의 신앙실천 혹은 영성 실천에 근원을 두는 동시에 역시 그것을 지도하는 기독교이론' '교회 혹은 크리스천 개인이 교회와 자기 민족(인민대중)에 대한 관심과 양들과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종의 숙고'(왕웨이환), '상황화의 사고'(선이환, 깐바오핑) 등으로 표현한다(왕쓰웨, 199?:102-106).
    

 B. 신학의 임무 및 주요 과제

   중국공산당정부의 수립으로 달라진 중국사회의 정치현실은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영성체험을 갖게 되거나 갖도록 요구받게 되었고 특히 정통신앙과 신학에 대한 재고, 내지는 회의를 하도록 강요받게 되었다. 삼자교회 신학자들은 모두 신학사상의 재사고와 새로운 신학사상의 수립이 시대적 요청에 의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삼자신학자들은 이렇게 달라진 그들의 현실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주어진 신학연구의 주제와 임무가 '화해'라는 것에 있다고 본다(띵광신, 1984:10, 1986:6). 그리고 이 화해란, '이전에 인민과 떠나있던 그리스도인이 다시 많은 인민과 하나가 되고 화해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통해, 기독교가 인민과 정치적으로 하나가 될 때, 즉 인민의 편에 설 때 비로소 '화해의 기초가 형성된다'고 한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신학의 주제와 임무를 '화해'에 두고 한쪽으로는 하나님과의 화해와 한편으로는 인민과의 화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그래야만 기독교와 그 메시지는 존속이 되기 때문이다(왕쓰웨, 199?: 106-109). 

    
   여기서 '인민의 편에 선다'라는 말은 바로 마오쩌뚱이 규정한 인민 즉, '노동자 농민 도시소자본가와 민족자본계급'을 말한다. 즉 삼자교회신학의 출발점은 곧 노동자 농민의 신학이고 따라서 자본주의 계급의 신학과는 반대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은 삼자교회의 신학도 역시 계급투쟁의 신학 즉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신학으로 하락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C. 신학의 방법론

   삼자교회가 그들의 신학연구의 방법론으로 이미 공식 발표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분명한 신학방법론과 틀을 가지고 있다(왕쓰웨, 199?:108-113, & 金陵神學文選, 1992).

 1. 그 출발점으로서, 

 

 (1) 중국기독교인의 영성체험 특히, 일반적이고 대중성 있는 영성체험으로부터 시작하라.
 (2) 서재에서 시작하지 말고 역사실천의 현장에서부터 시작하라.
 (3) 인민의 입장에서 시작하라.

 2. 중국공산당의 노선과 국가의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

 3. 사회주의라는 새 환경에서 얻어진 새로운 빛(新的陽光)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4. 상황화작업을 통해야 한다.

 5. 서양신학의 틀을 벗어버리고 중국대륙의 성도들이 해야 하며, 이전의 기성교회의 현실 도피적인 이원론적 사상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신학체계(즉, 사회 혹은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D. 그들의 신학


 1. 삼자(三自)사상

   1980년 10월에『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는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의 영도아래 전국의 기독교신도들은 단결하여 조국을 사랑하면서 국가의 법령을 준수하고 자치 자양 자전의 3자를 지지해나가자"고 하는 주요 취지를 발표하였다. 

 

   3자(三自)란, 중국교회관리에 있어서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철저히 차단하고 중국인이 직접 중국교회를 관리해 나가는 自治와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철저히 단절하고 중국인이 직접 중국교회의 경제를 담당하는 自養, 복음전파의 면에 있어서 제국주의와의 관계와 제국주의의 잔재적인 사상을 철저히 제거하며, 복음을 중국인이 스스로 전하려는 自傳을 말한다. 

 

   그들은 '애국애교(愛國愛敎)'를 항상 강조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애국(愛國)'이란 공산주의 정권을 지지하며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적극 건설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애교(愛敎)'는 그들이 원하는 바 삼자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중국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공산당과 공산당 정부의 종교정책을 철저히 시행해나가는 방법을 통한 애교(愛敎)를 의미한다.      

 

* 평가 : 

 

   '삼자운동'의 사상은 공산당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으면 안돼는 강제적 환경 속에서 나온 정치운동적 성격의 사상이다. 겉으로는 그들도 예수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됨을 일관성 있게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위에 언급한 삼자의 주요 취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중국 성도들이 일치단결 해야 할 환경에서 영도자는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이지,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이 아니다. 아무리 과거 기독교선교사들이 제국주의적 환경과 성향 속에서 일한 부분들이 어느 정도 분명히 있었다고 할지라도, 공산당의 정책과 관점에 의해서 모든 사실을 판단한다. 

 

   중국교회를 중국인들 스스로 관리하고 재정을 스스로 책임지며 스스로 복음을 전하는 수준 정도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되지 못한 결과에 대해선, 과거 선교사들의 책임이 물론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거를 반성하고 토착화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중국교회와 외국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인 세계의 보편적 교회내의 순수한 교제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또한 바울과 초대교회 사역자들이 이방인지역에 가서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구체적이고 주도적으로 관여하여 스스로 장로를 안수(물론 장로의 회에서) 하고, 그가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였던 많은 사실들을 간과하는 그런 우를 범치 않아야 할 것이다.       

 2. 그들의 신학표현 즉, 상황화 신학의 예

 (1) 성경관

   띵광쉰(金陵神學文選, 1992)은, 삼자교회의 성경관과 관련된 그들의 신학적 전제를 대략 아래의 7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ㄱ. 공자사상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인본주의적 윤리문화의 전통과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긴 하면서도 종교란 별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사상. 

 

 ㄴ. 이전의 서구선교사들과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은 특별히 성경을(좀 지나치게?) 중시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ㄷ. 과거 몇 년간 특히 문화혁명 기간 중국교회와 세계교회의 교류가 중단되었다가 현재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ㄹ. 중국교회는 현 교회구조상 종파관념을 이미 없애버렸다. 광범위한 연합이 형성되었지만 동시에 신학의 창조성을 연합하고 또 제한한다. 

 

 ㅁ. 최근 몇 년간 중국은 종교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하고 있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중국종교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사회주의와 협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ㅂ. 또 그 동안 중국내의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성경에 대한 그들의 관념이 새롭게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성령께서 항상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롭게 주실 수 있는 '새로운 조명'을 강조한다. 

 

 성령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성경본문 이해의 어떤 특정한 면만을 강조하는 선을 넘어서, 이제 참으로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고 존중하며 연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들도 이제는 적극적이다. 

 

 ㅅ. 성경 전체가 중요하지만 실제적으로 성경의 특정 부분이 특정 상황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난 40년 간 중국 기독교인들은 특히 아래 4가지 종류의 성경구절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성경 구절들을 통해서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고 본다.

   a. 고난 중에서의 구원에 관련된 구절들.(마 5:11-12, 시 23) 문화혁명 때 혹은 그 후의 시기에 큰 은혜를 받음.

 

   b.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구절들( 오랫동안 중국교회에는 2가지 관점이 있었다. 첫째는 개인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 둘째는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개인영혼 구원보다는 산상보훈과 같은 교훈은 가르치시는 교사이신 예수를 경배하는 것 (산상보훈, 골 1:16-17, 히 1:3, 요 1:9).  

 

   c.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구절들(요 3:16, 요일 4:16, 마 6:26-29). 지나치게 죄와 타락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아직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범죄는 은혜를 초월하지 못한다(롬 5:15-20). 

 

   d.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관한 구절들(요17, 고전1, 엡4:1-4. 중국인은 종파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연합을 원한다).
 
* 평가 : 

 

   정주교가 표현한 성경관을 보면 상당히 교묘한 방법으로 공산당을 지지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중국내 복음주의자들(그가 근본주의자들이라고 표현하는)의 성경관 중에서 '새로운 조명' 마저도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한다. 물론 그가 여기서 말하는 어떤 근본주의자들이 의미하고 설명하는 바와 같은 '새로운 조명'이 실제로 '신앙의 타협을 보이는 복음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위의 성경관과 관련된 정주교의 표현 이외에, 중국교회와 신학적 입장과 관련된 13인의 글을 모은 기독교와 중국현대화(殷琦, 1995)라는 책에 나타난 삼자교회의 신학을 대략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2) 신론

   전 인류의 신관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 신학사상은 하나님을 단지 그리스도인들만의 하나님으로 보는 편협한 관념에 반대한다. 종파주의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신도와 비신도, 영적 신도와 비영적 신도로 사람을 구분하여 하나님을 영적 신도의 하나님으로만 묶어두던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은 전 인류의 하나님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교회지도자들은 신도들이 교회 밖의 모든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그것들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 평가 : 

 

   온 세계의 정통적 기독교회는 하나님을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으로만 보지 않는다. 실제로 하나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시며, 우리도 하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과 세상의 것들을 -- 그것이 성경에서 분명히 언급하는 죄악된 행동이나 사고가 아닌 한 --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받아야 할 참 사랑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구속사역과 그 것을 받아들임을 통하지 않고는 참으로 완전한 의미에서의 사랑을 맛볼 수 없다. 더욱이 한사람 한사람이 개인적으로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제공해주시지 않았다. 물론, 중국 전통적 기독교회가 어느 정도 이원론적, 피안적인 천국만을 소망하는 듯한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적인 성격을 다분히 나타낸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하나님을 단지 그리스도인들만의 하나님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교회지도자들은 신도들이 교회 밖의 모든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그것들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의 동기 배후에는 잘못된 이원론을 고치려는 뜻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그 목적보다는 오히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을 바로 알게되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적 방법을 간과하고, 단지 보편 구원설과 자연신론적 구원관이나 종교 다원주의적 구원관적인 결과를 연결시키려는 목적의 신관으로 여겨진다.          

 (3) 기독론

   '우주적 그리스도'의 사상은, 그리스도가 전 인류를 구원한 것이지 단지 신자만을 구원한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택자(擇者)에 대한 관심으로, 제한된 그리스도의 관심을 '우주적인 그리스도관'으로 확대해서 보아야 한다. 

 

   중국신학은 특별히 기독론 중심의 신학이다. 즉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나서 그의 계시로부터 출발하여 아버지 하나님께로 추급해가야 한다. 이에 따라 성령도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면에 치중해 있다. 이러한 기독론은 형제 사랑을 만인사랑으로 확대하고 예수의 형상이 신도들과 사회와 국가인민을 위해 공헌하도록 고무시킨다.  

* 평가 : 위에 평가한 내용이 거의 그대로 연결된다.  

 (4) 인간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담의 범죄(원죄)를 초월하며, 인성이 결코 완전히 몰락해버리지 않았다. 본래 중국 전통문화에는 '원죄'라는 개념이 없고 오히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본성이 선하다고 믿기 때문에 중국교회는 지난 30∼40년 간 원죄론을 강조하지 않았다. 중국사람들이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원죄를 강조하는 대신,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가진 존재로서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손상되진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재 중국의 이러한 인간론은 중국 전통문화의 인성론과 부합될 뿐 아니라 중국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소극적이며 염세적, 비관적 정서를 벗어버리고 적극적인 인생관을 갖게 하며 자발적으로 현실 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고무해 준다.  

* 평가 : 

 

   적극적 인생관과 적극적 사회관을 가지고 사는 것은 성경적이고 지금까지 정통적 복음주의적 기독교회들이 믿어왔으며 동시에 더욱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죄를 거론치 않고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예수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치 않고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의 교훈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가지고 범죄할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났고 그것으로 인해 범죄 하였으며 그 결과 사망이 생겼다. 그 사망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5) 구원론

   사람이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는 인간의 죄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기초 위에 달린 것이다. 즉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 중국교회는 복음의 기초를 죄악에 두고 교회의 앞길을 인류의 절망 위에 둔 구원론을 반대한다. 

 

   오히려, '인간이 완전히 손상되어야 하나님을 찾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면류관이며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어졌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계를 관리하기 때문에, 인류는 하나님이 구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천저민)라고 믿는다.
평가: 위의 내용을 보라.

 (6) 종말론

   전 천년설에서 후 천년설로 바꿔야 하는데 후 천년설이 더욱 중국상황에 맞는 이론이다. 세상은 점점 더 좋아져 갈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1958년부터 중국교회의 각파는 연합예배를 실시함으로써 '교파후시대'에 들어섰는데, 이는 세계초유의 일이다. '장래에 우리 주님의 양들이 한 무리로 모이는 것은 아마도 중국에서부터 시작될 것이고 중국기독교회가 연합의 발단이 될 것이다'(자유밍). 중국교회가 순조롭게 교파후시대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중국교회가 비교적 젊은 교회로서 서구의 배타주의적이고 교파주의적인 영향을 덜 받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교회의 연합원칙은 중국문화가 '구대동존소이'(求大同存小異--큰 공통점을 추구하면서 작은 차이점도 보존한다.)의 사상을 주창하는 것에 기초한다. 교회가 내세운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사람에게 유익'이라는 내용의 구호는 중국기독교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영성과 경건을 배양하도록 고무한다.

   공의는 하나님의 의도와 요구이며, 사회주의는 바로 공의가 실천되는 사회를 모색하는 것으로 '성경정신에 위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부합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를 옹호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건설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가난함과 부족함은 절대로 기독적이 아니다. 가난과 고행, 가난할수록 영성이 강하다는 신조는 해롭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진정한 기독교란 생산과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지 빈곤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 평가 : 

 

   후 천년설은 지금까지 점차적으로 신학계에서 가장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사회주의 이론과 너무나 흡사하므로 그들이 이용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교회의 연합이 아무리 중요해도 기본적 사도적 신앙의 공통적 고백이 없으면 무조건 연합이 될 수 없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닌데도 사회주의에서의 인민을 위하는 일과 성경에서의 이웃사랑이 모든 면에서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상황화는 필요한 것이고 지혜롭게 해야 할 일이지만, 성경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교훈을 그저 하나의 이데올로기 정도로 전락시키는 것은 큰 범죄이다. 이미 언급된 삼자교회신학은 정치적 혼합주의적 신학이지 제대로 된 상황화신학이 아니다.

 (7) 교회론

   중국교회는 최근 10년 간 신학사상이나 교회 조직에 있어서 그 초점을 사회참여의 방향으로 대폭 조정하여 시대조류에 적응하고 사회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상황화 방면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중국교회에 있어서 남은 문제는 현재 갖추어 놓은 기초 위에 어떻게 하면 남미의 해방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처럼 완전하고 국정에도 적합한 신학체계를 세우느냐, 어떻게 하면 중국정세에 알맞은 교회체제를 창출해낼 것이냐 하는 것이다.  

   

* 평가 :

 

   교회의 머리가 예수그리스도이라고 그들도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신학과 실제 조직, 행정에서 공산당의 종교정책과 통일전선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시녀역할을 하려는 것이든지 아니면, 그 분위기 속에서 그저 목숨이나 유지하려는 정도의 사상이다.


   앞으로의 그들의 방향은 성령님의 특별한 간섭이 없다면 더욱 그런 생각을 확실한 이론으로서 공고히 하는 과정을 걷게 될 것이다. 복음의 핵심을 빼고 사회참여를 말한다든지, 사랑과 구원,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성경의 절대영감과 권위를 믿지 않는 인본주의적 신학에서 나온 결과이며 사회주의와 성경교훈을 무조건적으로 융합시키려는 잘못된 시도이다.  

출처 : 중국어문선교회

출처 : 내 사랑 중국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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